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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362화 (362/475)

〈 362화 〉 349화 : 방치된 미아 (2)

* * *

천막을 기어나와, 아직 꺼지지 않은 모닥불 가까이에 앉았다.

땅거미는 이미 물러갔는지, 어슴푸레하던 사위가 까맣게 물들어 있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엔 은빛 별들이 한가득 흩뿌려져 있을 뿐, 조각배 모양일 달은 보이지 않는다.

모닥불 바깥이 많이 어둡지 않은 걸 보면, 하늘 어딘가에 떠 있긴 할 거 같은데.

­­뾰족한 달. 차가운 빛을 쐬어야 돼!!

……남자가 두 눈을 부릅뜨면서 광기 섞인 소리를 질러대던 게 다시 떠오른다.

심장이 도로 조이는 것 같아.

“후……”

고개를 내려 다시 정면을 향하고, 손으로 얼굴을 덮은 다음 눈두덩이를 살짝살짝 눌렀다.

그 상태로 여러 번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쉰 후, 모닥불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네.

둘 다 어디 간 거지?

그 의문을 떠올리자마자 저편에서 곧바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엉? 벌써 다 끝났냐?”

“……메린.”

덤덤한 목소리를 담은 그림자덩어리가, 이내 모닥불 근처로 오면서 제 형태와 빛깔을 되찾았다.

메린은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솥을 두 손으로 든 채, 나를 물끄러미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둘 다 왜 멍청하게 앉아 있어? 뭔 일 있었냐?”

둘?나 혼자가 아니고?

양쪽 좌우를 보았지만 역시 아무도 없다.

앞에는 모닥불밖에 없으니, 누가 있다면 내 뒤에 있을 터.

몸을 살짝 틀면서 뒤를 돌자마자, 세로로 찢어진 녹색 눈동자가 불빛에 번뜩이는 게 보였다!

“으……!”

가까스로 비명을 삼키며 자세히 보니, 블루벨이 웅크려 앉아서 바닥을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이씨, 진짜 깜짝 놀랐네.

저 눈은 밤에 보면 안 되겠구만.

가슴을 쓸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나저나 블루벨도 좀 놀란 게 아닌가본데.

완전히 얼이 나간 얼굴이야.

나도 방금까지 이런 표정을 짓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툭툭.

옆에서 머리를 두드리는 느낌에 시선을 돌리니, 메린이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다.

그 눈을 마주하자, 내 표정에서 무언가 봤는지 그녀가 살짝 눈썹을 찌푸리는 게 보였다.

이윽고, 메린은 희미한 염려가 담긴 눈으로 나를 보면서 내 머리를 살살 쓰다듬기 시작했다.

“왜 그래? 천막 조용해진 거 같긴 한데, 뭐 있었어?”

“……좀 있었어. 로나는?”

“아까 잠깐 쑥 캐고 오겠다고 했어. 저기 오네.”

메린이 고갯짓하는 쪽으로 눈을 돌렸다.

까만 어둠밖에 없던 곳에서 그림자가 움직이는 게 보이더니, 이내 붉은빛을 칭칭 두른 로나가 소쿠리를 든 채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 게 보였다.

“어라라? 카엘 님, 왜 나와 계세요? 벌써 심문 다 끝나신 건가요? 소리 쩌렁쩌렁 울리길래 간만에 신나게 하시는구나 싶었는데요.”

“너네 날 대체 뭘로 보는 거냐?”

또 고문하냐느니, 벌써 끝났냐느니, 신나게 하는 줄 알았다느니…….

누가 들으면 내가 사람 고문하기 좋아하는 미친놈인 줄 알겠네.

거듭 말하는 것이지만, 고문은 어디까지나 필요해서 하는 거다.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절대 아니라고. 특히 피 보는 방식은 더더욱!

되도록이면 대화로 풀거나, 아니면 간지럼 태우는 걸로 끝내고 싶다.

근데 막상 때가 되면, 그렇게 느긋~하게 시간을 들일 수 있는 경우가 별로 없단 말이지…….

그래서 할 수 없이 조금 과격한 방법을 쓰는 것뿐이다.

애초에 순순히 입 안 여는 게 잘못 아니야?

말 안 하면 좋지 않은 일을 당할 거라고 미리 경고도 하는걸!

반대로, 누가 나한테 그런 짓을 하더라도 백 번 이해할 수 있고!

“뭐? 이해할 수 있다고? 그럼 누가 너 고문해도 봐주겠다는 거냐?”

어처구니없다는 말투로 묻는 메린에게,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아니. 이해하는 건 하는 거고, 그거랑 별개로 열받으니까 조져야지. 고문 전문가는 대부분 남 괴롭히길 좋아하는 개놈이니까, 무덤을 파내서라도 샅샅이 뒤져서 찾아낸 다음에 조각내야 하지 않겠냐?”

“존나 미친놈이네…….”

“조용히 하세요, 할머니.”

망연한 표정으로 잡소리를 넣는 블루벨에게 톡 쏘아붙였다.

평소처럼 대꾸할 수 있는 걸 보니, 방금 전에 본 광경 때문에 어지러웠던 마음이 그새 평정을 되찾은 듯했다.

아마 메린이 머리를 쓰다듬어준 덕분이리라.

매번 겪으면서도 참 신기해.

아무리 크게 동요했더라도, 이 녀석이 있으면 금방 마음이 진정되니까.

그만큼 이 녀석이 없으면 쉽게 불안해지는 것 같긴 한데, 상황이 특수하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싶다.

……그보다 이 녀석, 언제까지 쓰다듬을 생각이지?

두 눈에 담겨 있던 염려는 어느새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고, 왠지 즐거워하는 기색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마음도 차분해졌으니 이제 됐다고 말하려는 순간,

“으앗?!”

갑자기 녀석이 두 손으로 머리를 마구 쓰다듬기 시작했다!

아니, 쓰다듬는 게 아니라 거의 털어대는 수준인데?!

이 자식, 또 장난기가 올라온 건가!

“야, 그만! 그만해, 임마!”

“히히.”

마구 머리를 헝클어뜨리는 양 손목을 콱 잡아버리자, 메린이 킥킥 웃으면서 순순히 손을 떼어줬다.

하…… 거울 안 봐도 알 것 같아.

내 머리, 지금 새 둥지보다도 더 개판이 나 있겠지.

평소에 빗질 같은 거 안 하고, 어차피 곧 잘 거니까 상관없긴 한데…….

머리가 붕 뜬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묘하다.

“재밌었냐……?”

“어.”

“돌겠네, 진짜.”

고마우면서도 얄미운 그 손을 살며시 끌어와, 장갑에 싸이지 않은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런 뒤, 그대로 손을 꼭 감싸 쥐고서 녀석과 눈을 마주하며 웃었다.

……정말, 이 녀석 없이는 못 살 거 같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말야.

“로맨스는 이따 실컷 찍으시고, 먼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해주세요.”

“……로맨스 찍기는 누가.”

히죽이는 웃음이 섞인 로나의 말에 거의 반사적으로 대꾸했다.

……왠지 얼굴이 따뜻해진 것 같아.모닥불에 너무 가까이 앉았나봐.

아주 약간, 모닥불에서 조금 떨어져 앉았다.

그나저나…… 역시 말을 해야겠지?

근데 그 미친 광경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작게 한숨을 쉬자, 메린이 살짝 손을 빼더니 내 손등을 감싸듯이 고쳐 잡았다.

아무래도 내가 또 겁을 먹은 줄 안 모양이다. 그런 거 아닌데.

쓴웃음을 지으며, 나는 방금 천막에서 일어났던 일을 두 사람에게 말해주었다.

로나는 소쿠리의 풀들을 매만지며 잠자코 듣고 있다가, 내가 말을 마치자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며 입을 열었다.

“왜 날이 저물면서 주변이 맛이 가나 했는데, 대강 이유를 알겠네요.”

“맛이 가다니?”

“전투사제라서 상대적으로 둔감한 저도 느껴질 만큼 저주가 차고 있어요. 카엘 님이 무심코 슥삭 해버리신 그 사람도 아마 저주가 씌었던 거겠죠. 달을 보지 않으면 광증으로 죽는 저주 같은 게 아니었을까요? 왜 하필 달인지, 그 몬스터가 뭣 때문에 저주를 뿌리는지는 모르겠지만요.”

로나는 배낭에서 작은 사발과 나무공이, 그리고 또 다른 풀을 꺼냈다.

그 풀을, 소쿠리에 담긴 쑥과 함께 사발에 넣고 나무공이로 콩콩 찧고 돌려 으깨면서 말을 이었다.

“이런 일은 치유나 보호사제 전문이라서요~ 그 사람을 완전히 살리려면 치유사제가, 저희가 편하게 이 숲을 빠져나가려면 보호사제가 제격이란 말이죠~”

“어, 우리 그렇게 위험한 거야?”

“놈이 블루벨 씨를 지목했다면서요? 목 씻고 기다리라고도 했고요. 완전히 목표물이 됐으니 위험한 상태죠.”

기다리라고는 했지만, 목을 씻으라는 말은 그 비슷한 소리도 없었다.

역시 전투사제야. 어떤 말이든 과격하게 들리는구나.

“근데 바로 오지 않은 건 좀 희한하네요. 카엘 님 말씀을 들으면, 곧바로 쳐들어올 기세였던 거 같은데요.”

“놈이 말을 마치고 뭐 하려던 중에 베어버렸거든. 그래서 그런 게 아닐까?”

그때, 목소리까지 변했던 그 미친놈은 ‘피를 따라서 오겠다’고 선언했었다.

그 다음에 입을 크게 벌렸었으니, 어쩌면 피를 토하려 했던 건지도 몰라.

그럼 나는 본의 아니게 놈의 추적수단을 끊어버린 게 될 것이다.

로나는 내 말에 재차 고개를 끄덕인 뒤, 메린에게 소금 한 줌을 받아 사발에 넣고 나무공이로 콩콩 찧었다.

그런 뒤, 사발에 든 내용물을 두 손으로 감싸고서 작게 무어라 중얼거렸다.

기도하는 건가……?

저 녹색덩어리를 어디다 쓸 생각이길래?

잠시 후, 나는 내용물을 조금 떼어 동글동글하게 빚기 시작하는 로나에게 물었다.

“방금 기도한 거지? 그걸로 뭐 하려고? 아니, 그 전에 그게 뭐야?”

“이거요? 향초에요. 전에 우슬초 태워서 마녀 막았던 거 기억하세요? 마녀 집에 묵었을 때, 제가 하나 드리면서 태우시라고 했었잖아요? 그거랑 비슷한 거에요.”

마녀 집에 묵었을 때……?

아, 내숭 더럽게 심하면서 엉덩이가 끔찍하게 가벼웠던 그 마녀 말하는구나.

그래, 맞아, 그때 로나가 자기 전에 태우라고 풀 한더미를 줬었어.

그게 우슬초였구나. 처음 봐서 몰랐네.

교단 사제가 정화의식 때 쓴다고 듣긴 했는데, 우리 고향에선 그 의식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탓이다.

“우슬은 부정(不?)을 맑히고, 쑥은 독기를 없애고, 소금은 부패를 막죠. 보호사제가 만드는 것보단 한참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저주에 눌려서 죽진 않을 거에요.”

로나는 네 개의 향초를 빚은 다음, 나머지는 모닥불 속으로 휙 던져넣었다.

그러자 불꽃이 화륵 일어나면서 잔잔한 향기가 느껴졌다.

아까 만들 때 쑥 엄청 넣던데 하나도 안 독하네. 기도의 효과인가?

메린도 그걸 느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코를 킁킁거리면서 말했다.

“와, 냄새 좋다. 쑥 넣은 거 맞아? 로즈마리 쓴 거 같은데.”

“히히, 교단의 비술이랍니다! 캐모마일보단 덜하지만 숙면 효과도 있을 거에요! 뭐, 두 분은 그런 거 없어도 잘 주무시겠지만요~ 꺄아~”

“왜?”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 메린에게, 로나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두 분 같이 주무실 거잖아요? 지난번처럼 꼭 껴안고서!”

“엥? 아닌데? 따로 잘 건데?”

“……”

오오, 웃는 얼굴로 굳었어.

말 한 마디로 로나를 굳어버리게 만들다니, 역시 메린이야, 대단해!

이내, 로나는 눈썹을 홱 찡그린 채 입만 활짝 웃고 있는 괴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왜 같이 안 주무세요? 카엘 님이 싫다고 하셨나요?”

“아니, 그냥 내가 그러려는 건데.”

“왜요?”

“보초 서야 되잖아.”

“그게 무슨 상관인데요……?”

낮은 목소리로 묻는 로나의 표정에선 살벌한 기운이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아, 한 마디 해주고 싶어.

우리가 같이 자든 말든 너랑 무슨 상관이길래 그러냐고 쏘아붙이고 싶다……!

그보다 누구만큼은 아니어도 눈이 점점 무서워지는데!

살짝 긴장이 도는 나와 달리, 메린은 지극히 덤덤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이며 나를 가리켰다.

“나 얘랑 같이 자면 새벽에 못 일어나.”

“………”

이번엔 내가 굳을 차례였다.

메린 이 자식, 그렇게 말하면 저 녀석이 또 오해할 거 아냐!

아니, 다 알면서 일부러 그쪽으로 해석할 거야, 뻔해!

아니나다를까, 로나는 무시무시하기까지 하던 기운을 싹 거두고, 히죽 웃으면서 우리 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렇네요~ 그러시겠네요~ 제가 미처 그 생각을 못했네요~ 하긴, 동굴도 아니고 천막이니까요~ 실내에 들어간 거나 마찬가지이니 뜨겁~게,”

“안 해! 너 때문이라도 안 할 거야, 임마!”

로나를 포함해, 우리 일행은 나 빼고 죄다 귀가 좋다.

게다가 밤엔 소리가 잘 울리니, 그런 짓을 하면 아무리 입을 꽉 막는다 해도 십중팔구 다 들리겠지!

싫어!

아무리 다들 나랑 메린이 이미 할 거 다 하는 사이인 걸 안다고 해도, 그 소리까지 다 들어버리는 건 싫다고!

로나는 내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이 킥킥 웃었다.

“보세요, 메린 님~ 그냥 손만 잡고 얌전히 주무신다네요~”

“엉? 아니, 내 말은……”

“히히, 알아요, 농담이에요! 너무 푹 잠들어서 못 일어난다는 말씀이시죠? 뭐, 다른 날은 어쨌든, 오늘은 같이 주무세요. 보초 안 설 거거든요.”

메린뿐 아니라 나까지 놀랄 말이었다.

평원도 아니고 숲인데 보초를 안 설 거라고?

밤중에 뭐가 덮칠지도 모르는데?

“안 선다고? 왜?”

“어차피 저주가 심해서, 일반 짐승이나 몬스터는 못 움직일 거거든요. 어쩌면 이미 다 죽었을지도 모르고요. 오늘밤에 소리 내면서 움직이는 건 모두 원념이라 생각하시면 돼요.”

“……”

음, 유령이나 악령 계열의 영체만 돌아다닌다는 거군.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인 후, 메린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

“야, 같이 자자.”

“너 이런 건 안 쪽팔리냐……?”

“어. 난 쫄보니까.”

“자랑이다, 등신아.”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서슴없이 까면서도, 메린의 입에선 싫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긴커녕, 녀석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고 있었다.

나랑 같이 자도 된다는 사실이 기쁘다는 듯이.

………하, 야영만 아니었으면 맘껏 사랑해주었을 텐데.

그래도 같이 자는 게 어디야.

녀석이 혼자 자다가 또 악몽 꾸면 어쩌나 걱정됐는데 다행이다.

안도하며, 그녀의 옆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었다.

“적당히 하라고, 잡것들아…….”

음, 벌써 원념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나보군.

이상한 잡소리가 들리는걸?

유령 등이 속삭이는 건 무시해야 하는 법.

나는 바로 뒤에서 들리는 웅얼거림을 한 귀로 흘려버리며, 실실 웃는 메린과 마주 웃었다.

자기 전에 향초를 피우고, 아침 여덟 시가 되기 전까진 천막에서 나오지 마라.

로나는 그렇게 신신당부하며 촉촉한 녹색 풀덩어리를 나에게 주었다.

밤기운이 진해지는 만큼 저주가 더 강해진다고 했으니, 오늘은 그냥 바로 자는 게 낫겠군.

기록은 내일 아침에 하지, 뭐.

더블릿을 벗어 튜닉 차림이 된 후, 무심코 메린 쪽을 봤다가 배낭을 둔 가장자리로 고개를 다시 홱 틀어버렸다.

……후, 위험했어. 마침 가슴속옷 벗고 있을 줄이야.

어색하게 안 보이려고 공연히 배낭을 뒤적거리던 중, 작은 상자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하나는 바닷속 아가씨가 준 팔찌, 다른 하나는 유서 깊은 귀족 아가씨의 선물인 반지이다.

……맞아, 이거 줘야 하는데.

메린의 뜻하지 않은 기습 아니었으면 또 까먹을 뻔했어.

나는 뒤를 힐끗 봐서 완전히 안전해진 걸 확인한 후, 막 담요를 덮고 누우려는 메린에게 상자들을 내밀었다.

내가 이것들을 받을 때 그녀도 같이 있었으니, 내용물이 무엇인지 기억할 터.

역시나 메린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한참 동떨어진 답을 내놓았다.

“뭐, 맡아달라고?”

“아니, 너 하라고.”

“엥? 나? 왜?”

메린은 정말로 뜻밖이라는 듯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여러 번 빠르게 깜빡였다.

어째서인지 얼굴을 마주할 수가 없어,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상자를 하나씩 열면서 대답했다.

“너도 이거 둘 다 부적이란 거 들었잖아. 그러니 너 줄게.”

“그러니까 왜 주냐고.”

“……무서운 꿈 안 꾸게 지켜줄지도 모르잖아.”

이틀 전, 또는 어제 새벽, 메린은 악몽에 짓눌려서 제대로 숨도 쉬지 못했다.

그간 악몽을 꾸고 있었으면서도 단 한 번도 동요하지 않았던 그녀가, 완전히 공포에 질려서는 덜덜 떨면서 울음을 터뜨리기까지 한 것이었다.

괜히 기억을 더듬다가 도로 상태가 나빠질까봐 무슨 꿈을 꾼 건지 묻진 않았다.

그러나 나를 볼 때마다 시선이 떨린 것에서 대강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아마 나를 죽이거나 하는 꿈을 꾼 거겠지.

그게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거니까.

그리고 악몽은 본래 그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나쁜 내용이 나오는 법이다.

그래서 그때 메린에게 말해주었다.

우리는 사제가 아니니, 무슨 꿈을 꿨든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나는 물론이고, 다른 세 명이 절대 그게 이루어지도록 두지 않을 거라고.

물론 어쭙잖게 위로하려고 한 말은 아니다.

정말로 그녀가 나를 죽이는 꿈을 꾼 거라면, 그 꿈이 이루어지는 일은 절대 없을 테니까.

그날은 그렇게 넘어갔지만, 메린이 이후에도 또 그 꿈을 꾸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어쩌면 더 끔찍한 꿈을 꿀지도 모르고.

그래서 팔찌에 이어, 반지까지 보호의 기원을 담은 부적이라고 들었을 때, 나는 둘 다 메린에게 주기로 결심했다.

마침 여자가 주로 쓰는 장신구이기도 하니까.

“그, 너 원래 이런 거 잘 안 하고 다녔고, 또 장갑 끼고 다니잖아. 아마 낮엔 불편할 거야. 그러니까…… 그, 잘 때만이라도, 이거 하고 자.”

……근데 왜 이렇게 말이 안 나오는 거지?

장신구 주는 게 처음도 아니고, 펜던트 줄 때에 비하면 아무 일도 아닌데.

내 손으로 녀석의 목에 걸어준 거에 비하면, 이건 그냥 내밀고만 있으니 긴장할 건 하나도,

“껴줘.”

“……네?”

없었을 터인데.

상상도 못한 소리에 고개를 들자, 메린이 두 손을 내밀면서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나 그거 할 줄 몰라. 네가 껴줘.”

“………”

지극히 덤덤한 목소리와 어울리지 않는, 엄청난 말이 들려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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