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364화 (364/475)

〈 364화 〉 351화 : 방치된 미아 (4)

* * *

트릴드.

나무로 된 둥글둥글한 인형처럼 생긴 요정으로, 대개 서너 살 먹은 아이만 한 크기를 지닌다.

진짜 인형과 달리 눈이 있을 곳에 구멍만 뻥 뚫려 있어서 좀 소름끼치긴 하지만, 키가 작고 땅딸막해서 뒤뚱뒤뚱 돌아다니는 모습이 귀여운 녀석이다.

“픽시나 페어리처럼 위험한 장난을 치지도 않고, 친해지면 몬스터도 막아줘. 가끔 자기 열매도 나눠주는 착한 요정이야. 상대적으로.”

상대적이란 말에 일부러 더 힘을 주었다.

어쨌든 요정이라서, 전반적으로 선량하면서도 잔인하기 때문이다.

싫어하는 상대에겐 일부러 마가목 열매를 주기도 하고, 쇠붙이를 든 손을 아무 경고도 없이 홱 뜯어버린다.

그 상태에서 겁을 주겠다고 불이라도 보이면 잘게 으깨서 거름으로 삼는다고 한다.

겉보기엔 그런 짓 못할 거 같은데, 본인들이 그렇게 한다니 맞겠지, 뭐.

그리고 위험하지만 않을 뿐, 장난칠 건 다 친단 말이지.

낚시 미끼를 훔쳐먹거나 맨드레이크를 살짝 뽑아서 겁을 주는 등, 사소하게 거슬리는 짓을 해댄다.

그런데도 다들 트릴드를 보면 귀엽다고 안으려 드니, 역시 뭐든 예쁘고 봐야 하나보다.

……근데 진짜 귀엽긴 해.

나는 녀석이 물잔을 들고 꼴깍꼴깍 물을 마시는 모습을 빤히 보면서 재차 입을 열었다.

“아무튼 착하고 무해한 녀석이야. 상대적으로.”

“푸하~ 트릴드 착해!”

와씨, 코맹맹이 소리내는 거 봐.

간만이라 그런지 더 귀엽게 들리네!

“착하긴 개뿔. 우리 볼 때마다 돌 던졌는데.”

그리고 블루벨은 뚱한 눈으로 녀석을 쳐다보며 딴죽을 걸었다.

트릴드는 그런 매정한 엘프를 빤히 쳐다보다가, 돌연 그녀를 가리키며 대꾸했다.

“귀쟁이 죽어.”

“저거 봐. 하여간 요정 새끼들은 싸가지가 없어.”

“댁이 할 말……일 수도 있지.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권리가 있으니까. 그렇고 말고.”

……세로로 찢어진 눈동자는 훤히 밝은 대낮에도 무서울 수 있군.

아무래도 좋은 지식이 늘었다.

“근데 트릴드가 여기도 있을 줄은 몰랐어. 트릴드, 여기 너희 많이 살아?”

“트릴드밖에 없어, 겁쟁이 용사님.”

“너 하나밖에 없다고? 그리고 겁쟁이라고 하지 마.”

“겁쟁이 맞잖아. 트릴드 보고 꺄아악 했잖아. 겁~쟁이~래요~”

“……이런 녀석이야. 알겠지?”

그렇게 트릴드를 처음 본다는 로나에게 설명을 마쳤다.

내가 이야기하는 내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던 로나는, 나를 가리킨 채 꺄르륵 웃는 트릴드를 멍하니 보다가 갑자기 방긋 웃었다.

“이야~ 신전 자료보다 더 자세히 알고 계시네요! 그나저나 카엘 님 고향, 정말 굉장한데요? 북쪽 산으로 가는 길에 있다고 하셨죠? 이거 기대되는데요~”

“……”

이상해.어린 여자애가 방실 웃으면서 기대된다고 하는데, 그게 뿌듯하긴커녕 엄청 불안하다.

가끔 엿 같긴 해도 엄연한 삶의 터전이니 박살 내면 좀 곤란한데.

그보다 역시 마을에 들러야 하나? 별로 내키지 않은데.

그렇다고 빙 돌아서 가자니, 여러모로 위험하고…….

아버지도 뵈어야 하니 어쩔 수 없나?

작게 한숨을 쉬자, 트릴드가 뒤뚱뒤뚱 다가와서는 머리에서 불쑥 무언가를 꺼냈다.

이건…… 버찌?

“놀려서 시무룩해졌어? 기운내~”

“응? 하하, 아니야. 딴 생각했어.”

“아니야? 그래도 이거 줄게. 부탁 들어줘.”

녀석은 내 손에 잘 익은 버찌를 툭 놓더니, 숲 속의 어느 한 방향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나쁜 인간들, 시꺼먼 거미, 전부 죽여줘.”

“……뭐?”

거미는 어쨌든, 인간을 죽여달라고……?

요정이 인간에게 인간을 죽여달라고 부탁하다니……?!

별별 괴상한 것들과 함께 살아온 놋지빌에서조차 들은 적이 없는 이야기이다!

엘프 쪽에서도 그런 사례가 없는지, 나뿐 아니라 블루벨도 화들짝 놀란 얼굴이었다.

그 시선들을 한데 받으며, 트릴드는 짤막한 두 팔을 활짝 펼쳤다.

“트릴드 알아. 겁쟁이 용사님은 겁쟁이지만 부탁 잘 들어주지? 트릴드 부탁도 들어줘.”

“내가 부탁 잘 들어준다고 누가 그러디?”

“나무, 바람, 흙, 물. 전부 다!”

나무는 그렇다 치고, 바람에 흙에 물? 혹시 정령 말하는 건가?

위슨이 부리는 정령들이 아닌, 자연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정령들.

그렇다는 건……

“야, 카엘, 너 쫄보에 호구라고 소문 다 퍼졌나보다. 하, 그러게 진작에 적당히 하랬잖아.”

“호구 아냐! 쫄보인 건 맞지만 호구는 아니라고!”

가시 돋친 말투로 쏘아붙이는 메린에게 빽 내지른 다음, 고개를 갸웃갸웃거리고 있는 트릴드에게 물었다.

“왜 인간을 죽여달라는 거야? 나도 인간인데?”

“나빠. 그 인간들 때문에 힘들어. 트릴드 친구들도 다 없어졌어.”

“그 인간들이 뭐했는데?”

“거미 만들었어. 귀쟁이로.”

엘프로 거미를 만들었다……?

이 녀석이 말하는 거미는, 아마 발이 사람 손처럼 생긴 그 몬스터를 말하는 거겠지.

근데 그걸 인간이 만들었다고?

이거 말로 듣는 건 안 될 거 같군.

나는 흙바닥을 툭툭 두드리면서 녀석에게 말했다.

“트릴드 그림 잘 그리지? 그림으로 더 자세히 알려줘.”

“그림! 트릴드 그림 그리기 좋아!”

작은 요정은 꺄르륵 웃음을 터뜨리면서, 손가락으로 바닥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연작 그림을 완성한 트릴드는 로나와 장난을 치며 놀기 시작했다.

“꺄아~”

“아하하, 생각보다 가볍네요~”

로나는 자신의 평소 전투 방식을 적극 살려서, 철퇴 대신 트릴드를 번쩍 들고 제자리에서 빙빙 돌고 있었다.

어린애 둘이 서로 노는 걸 보는 건 좋긴 한데……

로나 녀석, 이번 일엔 진짜 개미 눈곱만큼도 관심 없구나.

“어디 보자…….”

두 어린애를 내버려두고, 나는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중심으로 뺑 두르듯이 펼쳐진 그림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했다.

동그라미와 세모가 붙어 있는 건 인간일 거고, 길쭉한 막대에 머리 씌운 건 나무이겠지?

그림과 그림 사이에 화살표도 그려져 있는 덕에, 어떤 순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대강 파악할 수 있었다.

“흠…… 이 숲에 엘프가 좀 있었던 모양인데? 그리고 숲에 들어온 인간들이 엘프들을 숭배한 것 같고.”

“여기에 우리 일족이 있었다고? 진짜 제대로 본 거야?”

“이 그림 봐, 귀 뾰족하잖아. 십중팔구 엘프이지.”

상당히 간단하게 그려진 사람 모양 중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는데도, 블루벨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말도 안 돼. 육백 년 전부터 돌에렛…… 어머니 나무는 내 고향숲에 있는 그 한 그루밖에 안 남았었다고.”

“아~ 맞아, 드래곤이랑 거인들에게 쓰러졌다고 했지?”

옛 일을 모두 기억하는, 연노랑머리 엘프가 들려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지만, 엘프들은 본래 나무에 맺히는 꽃에서 태어났다.

원래는 트릴드나 픽시처럼 장난 좋아하는 요정이었던 그들은, 세계의 질서를 지키는 수호자의 사명을 맡는 대신 지성과 여러 초월적인 능력들을 받게 되었다.

……그 대신 엄청난 적들을 상대해야 했으니, 딱히 좋기만 한 건 아니었지만.

엘프들은 거인과 드래곤은 물론이고, 갖가지 이유로 질서를 어지럽히는 고대의 요수(??)들과 싸워야 했다.

하늘로부터 받은 능력들 덕분에 그 싸움에서 이기긴 했지만, 어머니 나무인 생명수를 하나 둘 잃어갔기 때문에 점차 세력이 줄어들게 되었다.

그러다 결국 육백 년 전, 이 대륙엔 생명수가 단 하나만 남아있게 되었다.

지금은 북쪽 산에 봉인되어 있는 대재앙 아트라토스가, 전쟁 중에 그 하나를 제외하고 몽땅 태워버린 탓이다.

그 마지막 한 그루가 바로 서쪽 산맥 너머의 숲에 있는 나무였고, 블루벨은 그 생명수가 마지막 남은 힘을 모두 짜내어서 피워낸 꽃이었다.

“근데 나무 없다고 죽는 거 아니잖아. 댁도 이렇게 멀쩡한데.”

“그렇기는 한데……. 그럼 어머니 나무를 잃은 뒤에도 계속 살았다는 거야? 왜 다른 숲으로 가지 않고……?”

“나야 모르지.”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한 뒤, 계속해서 그림을 살펴보았다.

엘프들이 과일 등의 공물을 받기 시작하고, 인간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가지기도 했다고 되어 있는 것 같은데…….

……근데 이거 달 아닌가?

인간은 그렇다 치고, 달이랑 어떻게 교접한 거야?

이 지팡이 든 인간은 또 뭐고?

촌장 비슷한 사람인가?

아무튼 바닥엔, 지팡이를 든 인간 앞에 엘프들이 한 나무를 둘러싸며 서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들 머리 위엔 완전히 동그란 원이 그려져 있는데, 주변에 지렁이 그림이 없으니 달이겠지.

그리고…… 모든 엘프에게서 시작된 화살표가 전부 나무를 가리키고 있다.

즉, 보름달이 떴을 때 엘프들이 나무로 들어갔다는 이야기겠군.

“주변에 쪼그라진 나무가 그려진 걸 보면, 이때부터 저주가 생긴 것 같아.”

블루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엘프들은 자의적으로 나무에 들어간 게 아닌 모양이었다.

그 원한 때문이었을까?

엘프들이 들어간 나무는 지팡이를 든 인간과 그 외 여러 몬스터와 짐승들을 마구 잡아먹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인간들은 보름달 아래에 서 있는 나무를 숭배했다는 것 같은데, 참 대단한 신앙심이군.

그 지독한 신심 때문인지, 아니면 나무가 집어삼킨 먹이들의 상태가 나빴던 건지, 엘프들이 들어간 나무는 점점 모습이 흉측하게 변해갔다.

그리고 종국엔,

“달을…… 삼켰어……?”

나무는 보름달을 집어삼키고, 짐승처럼 배가 생기면서 여덟 개의 다리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 커다란 나무가 숲을 삼키려는 듯이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 트릴드가 그린 마지막 그림이었다.

“뭐? 달을 어떻게 삼켜?”

“내가 알아? 아무튼 삼켰다잖아.”

내 대꾸에, 블루벨의 미간이 조금 더 깊이 찌푸려졌다.

“다른 뜻으로 그린 거 아냐?”

“아닐걸.”

요정들은 사람과 달리, 사물에 다른 의도를 담지 못한다.

하얀 새가 날아가는 그림을 볼 때, 사람이라면 그 새에 자유나 꿈 등의 의미를 부여하겠지.

그러나 요정들은 진짜로 하얀 새가 날아가는 것일 뿐, 그에 다른 의미를 담지 않는다.

가끔 더럽게 못 그려서 새가 아니라 다른 걸로 착각할 때가 있어서 그렇지.

하지만 트릴드는 요정들 중에 가장 그림을 잘 그리는 종족이라 별 걱정은 없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로나와 마주보고 앉아서 손장난을 하고 있는 트릴드를 불렀다.

“트릴드, 이거 보름달이지? 나무가 어떻게 보름달을 삼킨 거야?”

“꿀꺽 하고!”

“……아, 그래. 근데 밤하늘엔 계속 달 뜨잖아. 이건 다른 달이야?”

“응. 트릴드 봤어. 달에서 흐물흐물하고 진득진득한 달이 내려왔어.”

이런 쪽은 잘 모르지만, 아무튼 밤하늘에서 무언가 다른 존재가 내려온 모양이다.

마지막에 나무가 삼킨 보름달도 아마 그 흐물흐물한 존재인 것이리라.

로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도 조금도 흥미 없다는 듯이 하품을 쩍 했고,

“대가리가 나무에 가린 게 아니었구나.”

녀석과 비슷한 성격인 메린도, 트릴드의 마지막 그림을 보면서 굉장히 심드렁하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아니 뭐, 메린이 웬만한 일이 아니면 놀라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이건 웬만한 일 아닌가?

“……메린, 안 놀라워?”

“뭐, 거미 대가리가 나무인 거? 뭘 그런 걸로 놀래냐? 그럴 수도 있지.”

“……”

그럴 수가 있어……?

여러 짐승의 요소가 한데 합친 존재는 여럿 봤는데, 이것처럼 나무랑 짐승이 서로 합친 건 처음 보는데 말이지?!

“아무튼 정리하면…… 이 숲엔 엘프들이 좀 살고 있었는데, 중간에 이사 온 인간들이 어떤 짓을 해서 그 엘프들을 나무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 나무가 이것저것 다 처먹어서 엄청난 몬스터가 되었고, 그 놈이 지금 블루벨을 노리고 있다. 이렇게 되나?”

“……너무 줄인 거 아냐? 그 외에도 여러 신경 쓰이는 게 있지 않았니?”

하늘에서 내려온 흐물흐물한 존재의 정체나, 나무가 끔찍하게 뒤틀렸는데도 왜 인간들이 계속 섬긴 것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렇게 투덜거리는 듯한 말투로 묻는 블루벨에게 눈을 끔뻑이면서 대꾸했다.

“안 궁금한데.”

“아니, 왜 안 궁금해? 원념을 품은 나무가 그거 삼키고서 기괴한 모습이 된 거잖아. 엄청 위험한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그야……”

잠시 말을 끊고 나와 비슷하게 눈을 멀뚱거리고 있는 메린을 슥 돌아본 다음, 다시 블루벨을 보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숲에 사는 나무잖아? 그런 일도 있는 거지. 나무귀신도 나무가 사람을 삼켜서 되는 거잖아. 더 희한한 거 먹었을 뿐인데, 뭐.”

“맞아. 숲에선 뭔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고. 그쪽은 숲의 일족이라면서 그런 것도 모르냐?”

“네가 이해해, 메린. 블루벨은 마을에서 인기인이었다잖아. 아마 제대로 밖을 못 다녔던 거겠지.”

“흐음…… 꼭 직접 보기라도 한 거 같다? 그렇구나. 그렇게 바로 그려질 정도로 이해를 잘하고 있구나…….”

갑자기 메린 녀석의 목소리가 뚝 낮아졌다.

낌새가 이상해서 녀석을 보니, 약간 온도가 내려간 눈빛으로 나를 뚱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어이가 없네.

“그냥 그럴 거라는 얘기잖아, 임마, 추측도 못 하냐?”

“누가 뭐랬냐? 그러고보니 너도 골골대느라 밖에 잘 못 돌아다녔었지?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잘 이해하는구나.

그럼 블루벨도 마찬가지겠네. 둘이 서로 금방 잘 이해하고 참 좋겠다. 십여 년이나 써서 너 하나만 겨우 이해하는 나랑은 하늘과 땅 차이구만?”

메린은 왼손 약지에 끼워진 반지를 만지작거리면서, 툴툴거리는 듯한 말투로 뜻 모를 소리를 했다.

십여 년 걸려서 나 이해하는 게 뭐 어떻다고 그러지?

진짜 이해가 안 되어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게 뭐? 나 이해하면 됐지. 나도 너 말고 다른 사람은 그다지 관심 없는데?”

“엥? 너 딴 사람들 신경 잘 쓰잖아.”

“내가? 아니, 그냥 안 싸우고 잘 지내려고 하는 정도밖에 없는데? 뭔 생각하는지 항상 궁금하거나 한 건 너밖에 없어.”

내 대답을 듣고서도, 메린은 여전히 벙벙한 듯했다.

이해가 안 됐나? 아니면……

나 말고 달리 챙겨주고 싶은 사람이 생겼나……?

또 다른 십여 년을 쓸 만큼……?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어서, 메린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왜? 다른 사람도 더 깊이 알고 싶어? 나한테 하듯이 살펴주고 싶은 사람이 또 있는 거야?”

“엉? 어어,”

“있어? 있구나? 아, 뭐, 괜찮아. 다른 사람에게 관심가지는 건 좋은 일이니까.”

세상엔 메린과 죽이 맞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바로 가까이에도 하나 있고 말야.

세상은 넓으니까, 로나 말고도 메린과 잘 통하는 사람이 또 있겠지.

나보다도 더 잘 통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을 거야.

사람은 자신과 잘 통하는 사람과 더 가까이 지내고 싶은 법.

메린이 그런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웃거나, 그 사람이 좋아하길 바라며 선물을 하는 등, 호의를 베푸는 건 당연한 거다.

“응, 좋은 일이지. 잘 통하는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 건 좋은 일이야. 전혀 나쁘지 않아. 그런 친구는 많을수록 좋지.”

“어어, 카엘……?”

“괜찮아. 그냥 그 사람보다 나를 더 우선해주고, 날 더 좋아해주면 돼. 그것만 변하지 않는다면, 난 네가 누구랑 가깝게 지내든 상관없어. 오히려 친구 생겨서 잘됐다고 기뻐할 거야.

만약 애인이라면…… 음, 좀 많이 돌아버릴 거 같긴 하지만 그래도 참아볼게.”

이 녀석이 다른 사람에게도 그런 표정을 보여주고, 그런 목소리를 들려주는 건 당연히 싫다.여자한테도 안 돼.

생각만 해도 속이 뒤집어질 거 같지만, 이 녀석이 행복하다면 참아야지.

“열심히 참아볼게……. 나만 변함없이 좋아해주면……. 나만 우선해주면…… 읏…….”

“야, 뭘 혼자 떠들다가 우는 거냐?! 누가 애인 만든대?! 너 말고 딴 사람이랑 그런 거 하기 싫어, 미친놈아!”

“아… 그래…? 나 말고 없어…? ……하하, 그렇구나. 야, 그럼 그렇다고 빨리 말해야 될 거 아냐. 괜히 이것저것 생각해버렸네.”

“말할 틈 안 줬잖아, 미친놈아…….”

황당해하는 얼굴로 메린이 쏘아붙였다.

내가 그랬었나?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메린이 나 말고 다른 애인 만들 생각이 없어서 다행이다.

북쪽 산까지는 아직 더 가야 하지만 말야.

……그래, 아직.

아직은 내가 그녀에게 최우선 대상이야.

“뭐, 아무튼 거미 몬스터 잡으러 가자고. 로나, 너도 괜찮지? 해지기 전에 끝날 테니까.”

“예에, 뭐, 그러죠……. 근데 있잖아요.”

“엉?”

로나는 어디 먼 곳을 보는 듯한 눈초리로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두 분 정말 똑같으신 거 같아요.”

“나랑 메린? 엥? 그게 뭔 소리야?”

“그런 게 있어요. 그쵸, 블루벨 씨?”

로나의 시선을 따라 블루벨을 돌아보자, 그녀가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고개를 끄덕끄덕거렸다.

무척이나 질색해하는 표정으로.

……뭔 소리인지, 원.

도통 알 수 없는 상황에, 나는 그저 머리만 긁적거릴 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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