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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365화 (365/475)

〈 365화 〉 352화 : “제 담당 아닌데요.” (1)

* * *

대강이나마 이 숲의 상황을 파악했겠다, 이번 일에 회의적이던 로나도 고개를 끄덕였겠다, 진지하게 마음을 다잡고 출발하기로 했다.

이번에 상대할 놈은 저주를 주로 다루는 만큼, 해가 쨍쨍하게 나와 있을 때에 처치해야 한다.

놈은 어제 노을 진 시간대에 튀어나왔었으니, 아마 햇빛을 쬐더라도 죽진 않겠지.

그래도 밤에 상대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지금 여름이니까, 늦어도 오후 세 시까지는 잡아야 한다고 보는 게 좋겠지?”

그 이후는 뭐…… 죽자사자 덤벼서 날이 저물기 전에 숨통을 끊던가, 그 전에 퇴각해야겠지.

그러나 로나는 내 말을 듣고,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세 시라뇨? 한 시까지 못 잡으면 그냥 갈 건데요?”

“아, 그래.”

제한시간이 두 시간이나 당겨졌다!

이제 아홉 시 좀 넘었으니 대충 네 시간 남았군.

안내인이 있으니 시간이 모자라진 않겠지만, 그래도 서두를 수 있는 만큼 서두르는 게 좋겠어.

그런 이유로, 어째서인지 블루벨의 손가락을 물으려고 애쓰는 트릴드를 들어 로나에게 턱 안겼다.

“자, 트릴드, 방향 알려줘.”

“트릴드 걸을래~”

“너 다리 짧아서 안 돼. 이 사제님이 있지, 해가 제일 뜨거울 때까지 거미 못 잡으면 그냥 간다고 했거든. 빨리 가야 돼.”

덤으로 이 녀석이 저지를지도 모르는 불의의 사고, 구체적으로는 블루벨의 손을 지키기 위한 방책이기도 하다.

그녀의 종족인 엘프는, 전대 왕을 필두로 수호자의 의무를 무단으로 때려쳐서 자연에게 미움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트릴드가 아무 짓도 안 한 블루벨에게 죽으라고 욕한 거나, 방금처럼 괜히 손가락을 물으려고 든 것도 그 일환일 터.

녀석은 다른 요정들보다도 더 쇠붙이를 싫어하니, 그 핑계를 대며 블루벨의 손을 뜯으려 할 게 분명했다.

나나 메린도 검을 쓰는 만큼 심술을 부릴 게 뻔하므로, 우리 중에 유일하게 날붙이를 쓰지 않는 로나가 데리고 있는 게 가장 안전하겠지.

“히잉…… 하늘 몽둥이 쪼잔해.”

로나의 팔에 안긴 채 바둥거리던 트릴드가 시무룩해하며 중얼거리자, 로나가 뚱한 눈으로 녀석을 내려다보며 대꾸했다.

“쪼잔하다뇨? 저랑 아~무 상관없는 일인데 이만큼이나 시간을 들여주는 거에요! 고마워해야죠! 아무튼 방향 알려주세요. 몬스터에게 바로 가는 거면 훨씬 좋겠는데요.”

“바로 못 가. 인간들 봐야 돼. 울타리 쳐 놨어.”

발을 까딱거리면서 술술 이야기하는 트릴드에게,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 인간들 싫다며? 뭔 일이 일어났는지 다 아는 것도 그렇고, 은근히 볼 거 다 봤구나?”

“귀쟁이 없어지는 거 좋아서 봤어! 근데 새까매지더니 더 나빠졌어. 그래서 다 찢어버리려고 다 봐뒀어! 트릴드 잘했지?”

“나도 인간이라서 잘했다고 하긴 좀 힘들다. 그래서 말인데, 트릴드,”

나는 팔짱을 끼면서 녀석에게 말했다.

“거미는 없앨 건데, 인간은 사정 봐서 안 죽일 거야. 너도 죽일 생각 마.”

“왜?! 그 인간들 나쁜걸! 트릴드 친구 다 없앴는걸! 찢어버릴 거야!!”

어우, 눈구멍밖에 없는 녀석이 입 쩍 벌리고 소리지르니까 장난 아니네.

밤이었으면 십중팔구 비명 질렀을 거다.

다행히 지금은 밝고 화창한 아침이기에, 나는 아주 약간의 오싹함만 느끼며 대꾸할 수 있었다.

“나도 인간이라니까? 사정도 안 듣고 막 죽일 순 없어. 눈앞에서 죽게 둘 수도 없고.”

“쪼잔해.”

트릴드는 투덜거리면서 입을 비죽 내밀었다.

그래도 상대적으로 착한 요정인 만큼, 녀석은 내가 물 묻은 손으로 머리를 살살 건드려도 그냥 가만히 있었다.

표정은 엄청 부루퉁했지만.

“우으으, 겁쟁이 용사님 쪼잔해!”

“그래그래, 나 쪼잔하다, 임마. 아무튼 방향 알려줘. 그 거미 몬스터 소굴 어느 쪽에 있어?”

“저~쪽.”

트릴드의 짤막한 팔이 가리키는 곳엔, 다른 곳보다 훨씬 더 많은 나무들이 뚜둑 부러져 있는 듯했다.

메린은 그 방향을 잠시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작게 끄덕거리며 말했다.

“어제 놈이 튀어나온 방향이네.”

“그래? 그럼 확실하군. 가자.”

그렇게 트릴드를 안고 있는 로나가 맨 앞을 걷고, 나를 포함한 나머지는 각각 말 하나씩 끌면서 그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 몬스터가 나무를 마구 부러뜨리고 다닌 덕에, 길에서 한참 벗어난 곳인데도 생각보다 수월하게 걸을 수 있었다.

좌우로 방향을 꺾지도 않고 한참 직진하는데, 별안간 블루벨이 로나의 말을 끌면서 나에게 슬쩍 다가왔다.

“진짜 이대로 따라가도 되는 거야?”

“왜? 요정은 거짓말 안 하잖아. 놀리려고 너스레 떨긴 하지만.”

예를 들면, 마가목 열매를 주면서 ‘앵두처럼 생긴 거’라며 먹어보라고 할 때가 있다.

물론 독이니까 진짜 먹으려고 하면 허둥지둥 말리긴 하지만.

그런 내 말에 블루벨이 이상한 표정을 지은 걸 보니, 엘프들에겐 좀더 공격적인 모양이다.

하긴, 녀석들이 돌을 던진다는 것부터 우리 고향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니…….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정 걱정되면 댁이 먼저 가서 보고 와.”

“………싫어.”

“왜? 우리가 버릴까봐? 안 그런다니까 참 못 믿네.”

“아니, 느낌이 안 좋아. 혼자 있으면 안 될 거 같아.”

그렇게 말하는 블루벨의 얼굴엔, 이 주변의 녹음보다도 더 짙은 그늘이 껴 있었다.

그 거미 몬스터가 자신을 노리고 있는 게 느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그럼 그냥 믿고 가는 수밖에 없지.”

“……”

“걱정 마. 쟨 지금 엘프보다도 그 몬스터를 더 싫어하는 거 같으니까, 적어도 놈을 처치한 뒤에나 해코지하려 들 거야.”

“참~ 안심되는 말이구나.”

말과는 달리, 나를 보는 블루벨의 눈빛은 무척이나 흐릿했다.

음, 왠지 ‘지금 그딴 걸 위로라고 하냐, 새꺄.’라는 뜻을 담고 있는 거 같군.

위로하려고 한 게 아니라 그냥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어쩌면 더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우리를 앞서서 가고 있는 로나에게, 정확하게는 그 품에 안겨 있는 트릴드에게 물었다.

“트릴드, 엘프랑 거미 몬스터 중에 뭐가 더 싫어?”

“둘 다 싫어. 둘 다 죽었으면 좋겠어.”

“엘프가 거미 잡아줄 건데?”

“그럼 같이 죽었으면 좋겠어.”

허, 이런 대답이 나올 줄은 몰랐는데.

혹시 이 녀석들은 어휘력만 처참할 뿐, 머리는 요정 치고 엄청 똘똘한 게 아닐까?

“이야, 똑똑하네.”

“트릴드 똑똑해!”

꺄르르 웃는 트릴드에게 진심으로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굉장히 날카로운 시선을 날리고 있는 옆사람을 보지 않으려 무던히 애쓰면서.

잠시 후, 우지끈 쓰러져 있는 나무들 너머로 울타리와 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 거미를 섬기는 인간들의 마을이리라.

그 기괴한 거미를 만들고 섬기는 집단인 만큼, 바로 접근하지 않고 일단 나무 뒤에 숨어서 살펴보기로 했다.

화창한 오전이라 그런가?

환한 햇살 아래에서 텃밭을 가꾸거나 닭에게 모이를 주는 등, 여느 마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겉보기엔 그냥 평범한 사람들 같은데…….

“트릴드, 거미 몬스터는 저 안에 있는 거야?”

“울타리 안에 있어. 저~기, 제일 큰 나무.”

트릴드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향했다.

거리가 좀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뭐가 가장 큰 나무인지 모르겠다.

그냥 마을 안에 들어가서 보는 게 빠르겠구만.

“좋아, 가보자. 트릴드, 욕하거나 으르렁대는 건 상관없으니까 얌전히 있어.”

“쪼잔해.”

“많이 봐준 거야, 임마. 가자.”

나무 뒤에서 나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가장 바깥쪽에 있는 집에서 텃밭을 돌보고 있던 아낙네가 우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힉?!”

곧바로 사색이 되어서는 어딘가로 헐레벌떡 뛰어갔다.

“……”

……기분이 이상해.

저 아낙네가 우릴 경계하는 건 당연하긴 하다.

이 마을은 외지인이 지나다 들를 위치에 있는 게 아니니까.

그래도 말 한 마디는 나눌 수 있잖아…….

아무리 낯선 사람이 꺼림칙하다고 해도 그렇지, 얼굴 보자마자 도망가는 건 너무한 거 아니야……?

“아니, 우리 중에 말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뭐, 네가 미친놈인 거 꿰뚫어본 거겠지. 나이 든 인간들은 사람 잘 본다며?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한 거 아냐?”

하하,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시비를 터네.

정말 못 말리는 할망구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구나. 댁의 변태끼를 느끼고 도망간 거야. 하긴, 키워준 보호자랑 애인 사이가 된 사람은 좀 꺼림칙하지. 무려 130살 차이이고 말야.

게다가 벌받는 거 좋아하는 특급 변태잖아? 나라도 튀겠다.”

“내, 내내, 내가 뭘 버, 벌받는 걸 좋아한다고 그래?! 개소리 지껄이지 마, 미친놈아!”

‘다른 애인 만들면 벌을 주겠다’고 들었었다면서 헤벌쭉하는 거 다 봤는데 말이지?

촉수가 나왔다는 소리에 곧바로 능욕을 떠올리기도 하고 말야.

나 참, 그 파란머리 엘프 양반은 대체 이 변태의 어디가 좋은 거람?

혹시 그건가? 트릴드가 요정 중에서 상대적으로 착한 것처럼, 블루벨도 엘프 중에선 그나마 덜 변태인 거지.

근친 및 피학성애는 귀엽게 보일 만큼, 다른 엘프들의 성 취향이 진짜 장난이 아닌 거야.

그래, 그런 게 틀림없어.

세상에, 이 변태가 그나마 멀쩡한 축이라니……!

“블루벨, 엘프는 숲 바깥으로 안 나오는 게 세상을 위한 거 같다. 댁도 이 여행 끝나면 거기 처박혀서 나오지 마.”

“개소리 다음은 시비야? 머리에 바람 구멍 나고 싶구나?”

“귀쟁이 죽어~”

“닥쳐, 나무토막.”

그렇게 사소한 실랑이를 벌이며 마을 안으로 좀더 들어갔다.

여기저기서 쾅쾅 문을 닫는 소리가 들리거나, 어딘가로 허겁지겁 뛰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단순히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건 아닌 거 같은데…….

게다가 슬슬 움직임이……

“야, 카엘, 저거 아냐? 트릴드가 말한 제일 큰 나무.”

“응?”

메린이 가리키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마을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 집에서도 한참 떨어져 있는 곳에, 사람 키만 한 울타리에 둘러싸인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말뚝이 아닌 널빤지로 나무 주변을 감싼 걸 보니, 안쪽이 보이거나 나무에 접근하는 걸 단단히 막고 싶은 듯했다.

……근데 어째 한 명씩 그 앞에 모이고 있다?

손에 괭이나 쇠스랑 등등을 들고서 우리를 노려보고 있는 거 같은데?

퇴로를 끊으려는 것처럼 뒤에서도 슬슬 나오고 있는 것 같고.

“트릴드, 저 나무 말한 거야? 몬스터가 저 나무 안에 살아?”

“아니? 해가 지면 일어나.”

“아하.”

그럼 저거 지금 자고 있다고 봐도 되겠군.

다행이다. 생각보다 일이 쉽게 끝날 거 같아.

……저 사람들만 없으면 더더욱.

커다란 나무 앞에 모여든 사람들의 얼굴이 보일 거리에서 멈춰선 후, 나는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아보았다.

양옆엔 목책이 세워져 있어서 그런지, 마을 사람들은 우리의 앞과 뒤쪽에만 몰려 있다.

하나같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날카로운 농기구를 들고서 우리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근데 신기하네.

이 정도의 인원이 뚫어져라 쳐다보는데도 마음이 차분하다.

그새 내 고질병이 고쳐졌을 리는 없는데.

“이야~ 생각보다 더 열렬하게 환영해주시네요! 전혀 생각 못했는데요!”

별안간 로나가 키득키득 웃으며 크게 외쳤다.

여전히 트릴드를 꼭 안은 채, 앞쪽과 뒤쪽을 한 번씩 번갈아 보면서 말을 이었다.

“근데 당신들은 제 적이 아니에요. 믿기 힘드시겠지만, 저는 당신들을 처단할 생각이 없답니다. 냄새가 별로 안 나거든요.”

“거짓말 마라, 사냥개야!”

나무 앞에 모인 사람들 중 하나가 매섭게 소리쳤다.

얼굴에 가느다란 주름이 새겨져 있는 여자가, 큰 소리를 낸 반동으로 씩씩거리고 있었다.

여자는 다른 사람과 달리, 한 손에 각각 하나씩 무기를 들고 있었다.

하나는 날카로운 낫.

그리고 또 하나는, 양치기 할 때나 쓸 법한 길다란 막대기.

머리 부분에 방울이 달린, 길다란 지팡이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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