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366화 (366/475)

〈 366화 〉 353화 : “제 담당 아닌데요.” (2)

* * *

여자는 지팡이 끝을 앞으로 향하면서 재차 소리쳤다.

“그런 속임수에 두 번은 안 넘어간다! 그냥 하루 머물고 떠날 거라는 둥 지껄이곤, 여기저기 들쑤시더니 전부 엎어버릴 속셈인 것 모를 줄 알아?!”

“응? 전과 있으셨어요? 그런 것 치고는 냄새가 너무 평범한데요. 아니, 애초에 이렇게 살아있는 것 자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이리저리 갸우뚱거리던 로나는, 이내 얼굴을 활짝 펴며 외쳤다.

“아! 그 당시에 말단이셨거나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였군요? 응응, 그럼 말이 되네요! 그러니 전과범이면서 목숨이 붙어있고, 지금도 영혼이 비교적 멀쩡한 거죠! 이야~ 진짜 별일이 다 있네요!”

“웃어?!”

밝은 목소리로 감탄하는 로나를 향해, 여자는 부아가 치민 얼굴로 고함을 질렀다.

“우리 꼴이 우습다는 거냐?! 이 악랄한 년! 과연 다른 신앙은 전부 찾아내서 없애버리는 사냥개다운 성질머리구나!”

“우습지요! 아하하핫! 이걸 보고 어떻게 안 웃어요?”

여전히 트릴드를 품에 안은 채, 로나가 다 들리도록 크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선대가 뭘 섬겼는지도 제대로 모르고서 어쭙잖게 따라한 거잖아요! 그러면서 꼴에 신심은 깊어서 완전히 엉뚱한 걸 불러오고! 근데 그것도 결국 신이 못 되고 먹혀버렸잖아요!

저주 뿌릴 줄 밖에 모르는 몬스터가 되어버린 것도 모르고, 이렇게 지키겠다고 나서고 있고! 사람은 본래 어리석다지만 이건 정도를 넘었는데요! 아하하핫!!”

이 사람들이 엉뚱한 걸 불러왔다고?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팡이 든 여자가 역정을 낼 만한 소리인 건 알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얼굴을 빨갛게 물들인 채, 바들바들 떨면서 로나를 사납게 쏘아보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건 다른 마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하나같이 눈빛에 살의를 품고서 로나를 향해 한두 마디씩 저주와 욕을 내뱉고, 달려들 때를 재는 것처럼 몸을 들썩이고 있었다.

그들이 품은 살의와 적의, 증오, 분노는 모두 내 앞의 붉은 사제에게 향하고 있다.

아마 처음부터 로나에게만 주의가 쏠려 있었겠지. 그래서 내가 멀쩡했던 거야.

지금은 이 살벌한 분위기 때문에 긴장하고 있지만.

그리고 우리 사제님은, 마을 사람들의 적의에 아랑곳하지 않고 또 다시 입을 열었다.

“아, 근데 하나만 확실히 해주시겠어요? 몬스터를 만든 건 당신인가요, 아니면 당신의 선대인가요?”

“네년이 알 바 아냐!”

“트릴드는 알아요? 그 일이 일어난 뒤로 지금이 몇 번째 여름인가요?”

“열 번이 두 번…… 여름…… 찢을 거야…… 쪼갤 거야…… 뿌릴 거야……!”

쩌적쩌적, 나무가 쪼개지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트릴드.

녀석은 로나와 마주보고 있어서, 내 쪽에선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그게 무척 다행스러울 만큼 엄청나게 살벌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는데, 로나는 전혀 개의치 않아 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20년 전인가요? 그럼 본인이겠네요. 뭐, 그래도 여전히 당신들은 제 적이 아니에요. 악마가 껴든 것도 아니고, 사람을 제물로 바친 것도 아니잖아요. 그러니 안심하세요. 당신들은 이번에도 처단대상이 아니랍니다!”

“사람을 바친 게 아니라니?! 엘프가 잡아먹혔잖아!”

블루벨이 날카롭게 소리치자, 마을 사람들이 별안간 놀란 것처럼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설마 이제야 블루벨의 귀를 본 건가?

아무리 교단 사제에게 원한이 있어도 그렇지, 자신들이 바친 종족의 일원을 못 알아차렸다는 게 말이 돼?

그러나 블루벨은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고, 로나를 맹렬하게 쏘아보면서 불을 뿜듯이 크게 고함쳤다.

“한두 명도 아니고 그림에서만 여섯이 먹혔는데, 저 인간들이 사람을 바치지 않았다니,”

“엘프는 사람이 아닌데요?”

“뭐야?!”

로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대꾸했다.

“여기 있던 엘프는 사람 아니잖아요. 일자리 잃은 병기였지.”

“너……!”

“동족이 당해서 화가 나신 건 알지만, 확실히 구분해야 돼요. 사람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있는 건 블루벨 씨 다음에 태어난 엘프들이지, 여기 있던 자들이 아니에요. 그러니 이 사람들의 영혼에 아~무 이상도 없는 거죠.”

“……”

블루벨의 말문이 막힌 걸로 만족했는지, 로나는 다시 헤실 웃으며 앞쪽의 여자를 돌아보았다.

그대로 고개를 약간 기울이면서,

“아시겠죠? 이제 헛짓은 그만하시고 거기서 비켜주세요. 쓸데없이 시간 버리기 싫거든요.”

“네년……!”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건 제 일이 아니에요. 당신들의 목숨을 끊지도 못하고, 이 숲을 정화하는 건 더더욱 못하죠. 그래도 사제답게 길을 제시하는 건 할 수 있겠네요.”

로나는 품 안에 안고 있던 트릴드와 마주보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가엾은 트릴드. 우리를 만난 덕에 거미를 치울 수 있게 됐는데, 우리를 만난 탓에 인간을 가만둬야 하네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우리는 이 숲에 머무르지 않을 거에요.눈이 닿지 않으면무슨 일이 일어나든 전~혀 모른답니다!”

그리고 부드럽게 웃으며, 트릴드의 몸을 돌려 사람들을 보게 하면서 재차 입을 열었다.

“자~ 보세요, 트릴드. 당신의 친구들을 없앤 인간들이에요. 당신은 사명과는 상관없으니, 저 사람들의 영혼이 보일 거에요. 그렇죠? 잘 보고 기억해두세요.”

무언가를 유도하는 듯한 말투이다.로나 녀석, 뭘 꾸미는 거지?

수상한 짓 하지 말라고 한 마디 하려는 순간,

“……!”

트릴드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면서 곧바로 몸이 바짝 굳어버렸다.

험악하다는 말로 표현하기엔 한참 모자라고, 원한이 서려 있다는 말은 너무 서정적인 표정.

조금 전까지 천진난만하게 재잘거리던 모습에선 상상할 수 없는 순수한 살의.

노린 자를 반드시 죽이겠다는 사신과 같은 얼굴이었다.

“힉?!”

그 얼굴을 본 사람들이 새파랗게 질려서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개중엔 손에 든 농기구를 떨어뜨리고 바닥에 주저앉기까지 하고 있다.

그들을 향해 가지가 뜯어지는 듯한 소리를 내는 트릴드를, 로나는 밝은 목소리로 웃으며 독려했다.

“절대 잊지 마세요!하나도 놓치지 마세요!당신에겐 자격이 있으니까요!”

그렇게 마을 사람들을 보여준 후, 로나는 다시 트릴드와 마주보며 그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여기까지 안내해줘서 고마워요. 노을이 찾아올 때에 여길 다시 오세요.”

“노을……”

“네, 노을이에요! 그럼 작별이에요. 다른 분들도 인사하세요~”

“……”

도저히 인사할 만한 얼굴이 아닌데 말이지?!

트릴드 역시 그저 입을 쩍 벌린 채 가만히 있을 뿐, 어떤 인사말도 건네지 않았다.

심지어 메린이 악수하듯이 녀석의 손을 잡고 가볍게 흔들어도 아무 반응도 없었다.

……그보다 메린 녀석, 저 얼굴을 보면서도 잘도 웃으면서 ‘잘 지내~’라는 인사가 나오네.

역시 대단한 녀석이야.

대강 인사를 마쳤다 싶었는지, 로나는 다시 트릴드와 마주보며 방긋 웃었다.

“만나서 반가웠어요, 트릴드! 나중에 저희 치유사제가 오거든, 또 잘 대해주세요!”

말을 마친 뒤, 로나는 트릴드를 숲 저편으로 멀리 던져버렸다.

자그마한 몸체가 우리가 왔던 방향과는 완전히 다른 쪽으로 멀리 날아가는 게 보였다.

로나는 그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기까지 지켜본 다음, 등에 매고 있던 철퇴를 손에 들고 사람들을 다시 둘러보면서 말했다.

“자, 죽기 싫거든 당장 이 숲을 빠져나가는 게 좋을 거에요! 숲의 요정은 숲 바깥으로 나갈 수 없거든요. 잡히지 않길 바라며 열심히 뛰거나, 여기 남아서 노을에 물들듯이 죽으시면 돼요!”

“이, 이 사악한 년!! 남의 손을 빌어 우리를 죽이려 하다니!! 그러고도 네년이 신을 모시는 사제… 아니, 네놈들의 신은 이런 악독한 짓을 허락하는 거냐?!”

방금까지 호기롭게 외치던 여자는 완전히 사색이 되어 있었다.

손에 들고 있던 낫을 떨어뜨린 채 두 손으로 지팡이를 잡고 있는 걸 보니, 다리가 풀린 몸을 지팡이로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듯했다.

“악독? 어디가요?”

“……?!”

“당신들 때문에 숲이 저주에 오염됐어요. 그 탓에 저 요정 말고는 전부 다 없어져버렸죠. 대부분은 당신들이 만든 몬스터에게 먹혔겠지만요.

그 빚은 당신들 어깨에 지워져 있고, 저 요정은 그걸 받아낼 자격이 있어요. 창조주께선 당신들을 사랑하시지만, 책임을 회피하도록 두시진 않아요.”

제가 할 일은 아닌데 말이죠.

시큰둥하게 덧붙이면서 로나는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녀석이 한 발짝 나아갈 때마다, 지팡이를 든 여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질겁하면서 물러났다.

그 중엔 아예 울타리를 넘어서 달아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다 녀석이 우뚝 발을 멈추더니, 돌연 뒤로 홱 돌아섰다.

두 잿빛 눈동자는 나를 향했는데, 어째서인지 내 뒤쪽에서 작은 비명과 함께 여러 발소리들이 울리기 시작했다.

뒤를 살짝 돌아보니 뻥 뚫린 길 위에 농기구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이제 이 자리에 남은 건, 지팡이를 짚은 여자 단 한 명뿐.

저항할 힘 따위 조금도 남아있지 않은 중년 여자밖에 없었다.

그 때문인지, 로나는 여자에게 일말의 관심도 주지 않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뭐하세요, 카엘 님? 빨리 해치우고 가야죠!”

“너 말야…….”

“잔소리는 나중에 하세요. 안 들을 거지만요.”

“하……….”

돌겠네, 진짜.

아니, 뭔가 할 생각이거든 미리 말 좀 하라니까…….

상황이 정리된 건 좋은데, 마냥 좋아할 수가 없잖아.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울타리 근처에 말을 두었다.

우리가 몬스터와 싸우는 동안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 울타리에 매어 놓을 수는 없었다.

“여기 있다가 위험해지면 피해. 그 대신 부르면 와야 된다.”

“히힝!”

말을 쓰다듬으며 당부하자, 녀석이 대답하듯이 소리를 내더니 주둥이로 내 얼굴을 툭 쳤다.

뭐, 지 이름을 댈 정도로 똑똑한 녀석이니 잘 있겠지.

그 갈기를 쓰다듬으며 툭툭 두드려준 후, 나는 세 사람과 함께 나무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지팡이를 든 여자는 그런 우리를 멀거니 보다가, 갑자기 용기가 솟았는지 바닥에 떨어뜨렸던 낫을 다시 주워 들었다.

“아, 안 돼! 위대한 달을 또 잃을 순 없어! 절대로!!”

“혼자서 맞서시려고요? 안 하시는 게 좋을 거 같은데요.”

“위, 위대한 달이여, 내 피를 바치오, 아아악!”

여자가 무언가 외치다가 돌연 손목을 붙잡으며 몸을 굽혔다.

그 손에 들려 있던 낫이 덜그럭 소리를 내며 도로 땅에 떨어졌다.

그걸 신경 쓸 여지도 없는지, 여자는 제자리에 주저앉아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자신의 손바닥을 쳐다보고 있었다.

황당하겠지.

갑자기 손바닥에 화살이 생겨났으니까.

그 바로 다음 순간, 여자는 블루벨의 앞에 쓰러져 있었다.

목이 이상한 방향으로 꺾인 채 축 늘어져 있는 걸 보니, 단숨에 끝장내버린 듯했다.

블루벨은 바닥을 구르는 지팡이를 뚝 부러뜨리고 휙 던져버린 다음, 울타리로 향하는 우리를 기다렸다가 같이 걷기 시작했다.

“……로나 너, 아까 그랬지? 이 자들이 엉뚱한 걸 불러냈다고. 그게 뭔지 알아?”

앞을 보며 묻는 블루벨.

로나 역시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로 대답했다.

“무엇인지는 모르죠. 어디서 왔는지는 알 것 같지만요.”

“어디서 온 건데?”

“바깥이요. 다른 차원, 다른 세계, 다른 가지…… 적당한 걸로 생각하세요.”

그 설명으로 이해한 건지, 블루벨은 그 이상 더 묻지 않았다.

나는 도통 알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질문 하나로 이해될 것 같진 않아서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이 일이 끝나고서도 궁금해지면, 그때 진득히 물어보지, 뭐.

‘별로 궁금해지지 않을 거야.’

그런 내 속마음을 읽은 것처럼 속삭임이 들려왔다.

‘그러지 않는 게 좋다는 걸, 너라면 바로 알겠지.’

궁금해하지 않는 게 좋다는 걸 알게 될 거라고……?

이거 알면 안 된다는 소리 아냐?

수상쩍은 속삭임다운 뜻 모를 소리에,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입구처럼 뻥 뚫려 있는 울타리 사이로 들어갔고,

“……하.”

곧바로 호기심을 버리기로 하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세상엔 모르는 게 좋은 것도 있는 법이지.

예를 들면, 이 주변 풍경 같은 거.

벽처럼 서 있는 나무 울타리는 온데간데없고, 맑고 화창했던 하늘은 색이 빠진 것처럼 하얗고 흐릿하다.

바닥에는 물기 하나 없이 바싹 마른 흙이 깔려 있고, 주변엔 덤불은커녕 잔풀 하나 없다.

다른 건 몰라도 초목이 없다니, 그 점 하나만으로 여기가 방금 있던 그 숲과 같은 곳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장서관에 들어가던 게 생각나는군.

마법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처럼 울타리를 넘으면서 다른 장소로 온 모양이다.

아니, 다른 세계로 왔다고 하는 게 더 맞겠구나.

지금 하늘엔 노란 해가 아닌, 푸르뎅뎅한 달과 불그스름한 달이 나란히 떠 있으니까 말야.

달의 크기가 큰 덕분일까?

해가 없는데도 주변이 꽤나 밝다.

눈앞에 서 있는 존재를 또렷이 볼 수 있을 정도로.

“……”

바싹 마른 시커먼 흙 위에, 머리와 몸통이 나무인 기괴한 거미가 서 있었다.

나뭇가지라고 하기엔 흐물흐물하게 흐느적거리고 있고, 촉수라고 하기엔 잔가지와 나뭇잎이 제대로 달려 있다.

그다지 정체를 알고 싶지 않은 모습을 멀거니 쳐다보는데, 돌연 나무 몸통에서 얼굴이 불쑥 솟아나와서는 씨익 웃었다.

­동족.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말하는 듯한 목소리가 울렸다.

두 개의 텅 빈 눈구멍은 블루벨을 빤히 바라보면서 재차 입을 놀렸다.

­속죄하러 왔느냐?

“아니.”

블루벨은 그 소름 끼치는 얼굴을 똑바로 마주하면서,

“재워주러 왔어.”

무뚝뚝하게 대꾸하며 곧바로 화살을 날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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