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7화 〉 354화 : 아무튼 벌목입니다 (1)
* * *
시위를 빠져나온 화살은 곧바로 나무줄기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저게 박히더라도 별 의미는 없을 것 같긴 했지만,
투웅—
아예 튕겨져 나올 줄은 몰랐는데!
게다가 쓸데없이 소리가 맑기까지 하고!
“망할, 보호막인가?!”
“아니, 그냥 촉을 뺀 거야.”
“……”
아니, 어이가 없네.
말도 없이 냅다 공격한 것도 황당하구만, 뭐? 촉 없는 화살을 날린 거라고?
더 어처구니가 없는 건, 이딴 답을 내놓은 블루벨의 얼굴은 한없이 진지하다는 것이다.
아, 그래, 물론 무슨 의미가 있으니 그런 거겠지.
하지만 난 엘프가 아니어서 다르게 볼 수밖에 없다.
그저 한없이 진지한 얼굴로 촉 없는 화살을 날린다는, 더없이 황당한 짓을 저지른 상식 없는 엘프라는 것 말고는 달리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주 그냥 다 없네, 다 없어. 아니, 뜬금없이 촉 없는 화살을 왜 쏴? 그새 머릿속도 없어진 거야?”
“경고 아닐까요? 다음엔 진짜 화살 쏠 테니 알아서 항복해라, 뭐 그런 거요. 그래도 우리한테 말도 안 하고 냅다 쏘다니, 일행에 대한 배려가 없네요~”
“가슴 없잖아. 그러니 대책 없이 저질렀겠지. 저 발이나 나뭇가지가 날아와도 손쉽게 피할 수 있는 거 아냐? 걸릴 게 없으니까.”
“닥쳐, 애새끼들아! 모르면 가만히 있어, 쓸데없이 잡음 넣지 말고!”
정당하기 그지없는 내 비판, 양심 없는 로나의 비난, 그리고 일리 있는 것 같으면서 전혀 없는 메린의 추측.
이 모든 걸 차례로 듣고 참을성 없이 발끈한 블루벨은, 망연히 입을 벌리고 있는 나무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이 아직 내 동족이라면, 내가 방금 한 행동이 무슨 뜻인지 알겠지!”
정……
“그래! 정정당당하게,”
정사…벌이자고……?
…………뭐?정사?정사라고?!
정사면 그거 말하는 거 아냐, 밤일!!
오, 주여, 지금 저 엘프가, 저 뭐라 말하기 힘든 괴생명체에게 그거 하자고……
그것도 다 보는 앞에서……?!
무서워!!
메린이 눈 번뜩일 때와는 다른 공포가 마구 솟아오르면서 몸이 바들바들 떨려왔다.
그대로 뒷걸음질을 쳐, 블루벨을 빤히 바라보며 눈을 깜빡이고 있는 메린을 붙잡듯이 그 어깨를 껴안았다.
“엉? 어어, 카엘, 왜 그래?”
“으으……!”
“저 놈이 한 말 때문에 그러냐? 정사가 뭐길래?”
녀석의 귓가에 대고 뜻을 알려주었다.
“어……? 그러니까…… 블루벨이랑 저 몬스터가…… 어어……?”
그러자 블루벨을 보며 실시간으로 넋이 나가는 메린.
그러면서도 녀석은 나를 달래려고 내 등을 찬찬히 두드려주기 시작했다.
흑, 상냥해…….
근데 자세히 보니, 반대쪽 손으로는 자신의 허리를 붙잡고 있는 로나의 어깨를 두드리고 있었다.
로나가 대체 언제 온 건지 모르겠는데, 나처럼 달달 떨진 않아도 혼자 감내하기 힘든 두려움을 느낀 게 분명했다.
무어라 작게 중얼거리고 있는 거 같은데…….
“전능하신 창조주여, 영원한 빛으로 우릴 보호하소서. 영원한 빛으로 보호하소서, 영원한 빛으로 보호하소서……!”
……저런 기도문이 있었나?
아무튼 정체 불명의 기도문을 읊을 정도로 겁을 먹은 듯했다.
드래곤이든 악마이든 폭풍고래이든, 당당히 앞에 나가서 맞서던 그 로나가……!
이해를 할 수 없는 ‘무언가’가 제일 무서운 법이라는 진리를 되새기는 순간이었다.
“아, 아무리 변태라도 그렇지……! 어떻게 저렇게까지 뒤틀릴 수가……!”
“우와…… 나보다 더 이상한 애였구나…….”
“영원한 빛으로 보호하소서, 영원한 빛으로 보호하소서……!”
“헉?! 아, 아니야!! 그딴 의미 아니야!!”
블루벨도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변태끼를 내보인 게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그녀 역시 우리처럼 얼이 나가 있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부정하기 시작했다.
“그딴 게 아니라 정정당당하게 결투하자는 의미야!! 저, 정… 아무튼 그런 거 아니라고!!”
“히익……”
“아니라고 하잖아?!”
당연히 믿을 수 없었다.
블루벨의 결백을 온전히 받아들이기엔, 저 할망구가 전에 저지른 짓이 너무 크고 굵직했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의 뜻이 전해진 건지, 블루벨은 수치심인지 분통인지 모를 감정으로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면서, 우리 중 누구보다도 멍해보이는 나무 얼굴을 향해 소리쳤다.
“야, 이 새끼야, 너 사실 엘프 아니지?! 뭔 말 같지도 않은 개소리를 떠들고 지랄이야, 지랄은!!”
아니…… 그거 결투하고나서 정사할지 말지 결정하는 거 맞는데……? 유서 깊이 전해내려온 전통 중 하나야……. 서로 호흡 맞출 겸해서 친목도 다지는…….
“아니야아아!! 그딴 식으로 상대를 정할 리가 없잖아, 내 자식의 부모가 될지도 모르는 상대인데!!”
아니, 그치만…… 원래 우리는 자식 안 낳았는걸?
………뭐지, 나무 얼굴의 말투가 갑자기 바뀌었는데.
목소리도 여럿이 아니라 하나로 합쳐져선, 소름 돋을 만큼 간드러진 소리를 내고 있다.
어째 나무에 달린 얼굴 표정도 좀더 부드러워진 거 같고 말이지?
……어이씨, 뭐야.
이거 진짜 일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거야?!
근데 갑자기 배가 고파지지 않나, 우리에게 생식 기능이 생기지 않나……. 우리가 아이를 낳는 걸 본 인간들이, 옛 신성을 되찾게 해주겠다면서 의식을 벌였어…….
놈이 갑자기 묻지도 않은 옛일을 읊기 시작했다.
별로 안 궁금해서 막고 싶은데, 충격 때문에 몸이 굳어버려서 그럴 수가 없었다.
그 탓에 인간들이 의식을 벌여서 무언가 알 수 없는 존재가 나타났고, 그 존재에게 이런저런 일을 당하면서 기괴한 새끼까지 낳게 되었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그저 고향을 떠나기 싫어서 남아있었을 뿐인데,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그리고 요정들이 갑자기 우릴 적대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어.
참다못한 엘프는 요정 하나를 잡아서 이유를 물었고, 그제야 그들은 서쪽 산맥 너머에 사는 동족이 저지른 짓을 알게 되었다.
원망스러웠어. 같은 종족이란 이유만으로, 저지르지도 않은 죄의 책임을 함께 떠맡게 된 게 한스러웠어. 그 때문에 알지도 못하는 존재의 씨받이가 된 게 원통했고.
“……”
그래서 너희에게 죄를 묻기로 했지. 하지만 그냥 떠나면 놈의 새끼들이 숲 바깥으로 나가버릴 게 뻔했어. 이제 어머니 나무는 없지만, 고향숲을 놈들에게 내줄 수는 없었어.
그를 위해 인간들에게 생명수에 대해 알려주었다.
창조주가 아닌 다른 신을 갈망하고 있으니 분명히 계획대로 될 것이라 예측했고, 엘프들은 계획대로 나무 한 그루에 삼켜지면서 뒤틀린 존재로 변모했다.
뒤틀릴 건 알고 있었어. 인간들과 그 끔찍한 존재, 그리고 우리 동족. 그 모든 게 저주스러웠으니까. 하지만 우리가 본래 지니고 있던 권능이 인간들의 엇나간 신앙과 맞물리면서, 비로소 그 미지의 존재에게 대항할 수 있었어.
그렇게 포식이 시작되었다.
엘프였던 나무는 자신들이 낳은 기괴한 새끼들, 그에 감염된 짐승들을 삼키고, 종국에는 자신들을 능욕한 미지의 존재까지 뱃속에 소화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그 도중에 힘이 커지면서 짙은 농도의 저주가 주위에 뿌려진 탓에, 요정들이 싹 다 죽어버리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그러나 나무는 그걸 큰일을 위해 어쩔 수 없는 희생으로 여기고 그냥 넘겨버렸다.
뭐든 대가가 필요한 법이니까. 안 그래?
“……”
나무가 된 엘프는 태연한 목소리로 동의를 구했다.
그 말투에선, 희생을 안타까워하는 기색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과연 세계의 수호자로 일할 만하군.
세계를 위해 자신의 종족까지도 미끼로 희생시키는 존재다운 사고방식이야.
그러니 사람 판정을 못 받았지.
하지만 전부 삼킨 뒤에 숲을 나가려 했더니,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거 있지. 그때 깨달았어. 우리는 더 이상 엘프가 아닌, 이 숲에서 새로 태어난 몬스터로 등록됐다는 걸.
오랜 숙원을 이루지 못하게 된 나무는, 숲에서 새로 태어나는 몬스터와 여전히 숲에 남아있는 인간들로 분을 삭이며 시간을 죽였다.
언젠가 전사나 사제가 찾아와, 자신을 죽여줄 날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그러다 네가 온 거야. 그리운 냄새를 품은 너……. 그래서 너로 분풀이를 삼으려 했는데…….
돌연 나무가 말을 끊더니 얼굴을 살짝 아래로 숙였다.
그와 동시에, 나뭇가지 하나가 움직이더니 그 얼굴 측면을 가리듯이 덮었다.
꼭 한창 때의 아가씨가 수줍음을 타는 것처럼.
………어, 설마 진짜인가?
이런 우리를 아직 엘프로 봐주다니……. 아아, 이런 감정 처음이야……!
저 대사는……!
틀림없어, 분명히 그거야, 그거!
한층 더 깊은 공포가 올라오면서 심장이 마구 조이기 시작했다.
메린이 당황하면서 자신을 꽉 끌어안은 내 귓가에 괜찮다고 속삭여주었지만, 하나도 진정이 되지 않았다.
메린은 몰라.
내가 갑자기 왜 더 무서워하는지 그녀는 모른다.
평소에 책을 안 읽었으니까.
반면, 로나는 나무의 말이 뭘 뜻하는지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니 실재여부가 불분명한 기도문을 좀더 크게 읊고 있는 것이리라.
속이 뜨거워……. 아아, 심장이 마구 뛰는 거 같아……! 이젠 있지도 않은데……! 이게 바로 사랑인 거지?
“갑자기 뭔 뜬금없는 소리야?!”
그립고 미웠던 동족…… 우리의 배다른 자매……! 죽이고 싶기만 했는데, 하아, 사랑스러워. 귀여워해주고 싶어……! 사랑해, 자매님! 우리와 함께해줘!
역시 그거였어!!
근본이 엘프인 게 어디 안 가는구나!!
미치겠네, 진짜.
저 놈 종족은 죄다 왜 저 모양이야?!
“이런, 씨발!! 그래도 엘프라고 명예롭게 보내주려 했더니 이게 뭔……!”
파랗게 질린 얼굴로 고함치던 블루벨은, 나무가 서서히 다가오자 바들바들 떨며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히익?! 가, 가까이 오지 마!! 가까이 오지 말라고!!”
결투하자며? 그래, 뜨겁게 몸을 덥히고, 같이 열을 식히자. 괜찮아, 이런 몸이 됐지만 사랑은 나눌 수 있어. 후후, 같이 즐기자……!
“싫어!! 안 해, 미친 장작 새끼야, 저리 꺼져!! 히익, 오지 마, 오지 말라고!!”
안 해? 괜찮아, 괜찮아. 귀찮으면 생략하기도 했으니까. 자아, 이리 와……!
나무 얼굴이 열띤 목소리로 외치자, 색 빠진 하늘을 향해 펼쳐져 있던 나뭇가지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블루벨은 질겁하며 뒤를 도는 듯했고, 그 다음 순간,
“우으으으?!”
다른 방향에서 그녀의 울먹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블루벨이 이질적으로 뻥 뚫려 있는 공간 앞에 주저앉아 있었다.
공간은 마치 출입구처럼 네모 반듯하게 나 있었는데, 그 너머로 햇살이 쨍쨍 내리비치는 숲이 엿보이고 있다.
아마 우리가 지나온 그 높이 세워진 울타리 틈이겠지.
그리고 땅에서 솟아오른 흐물흐물한 나무뿌리가 그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나는 훌쩍이며 몸을 일으키는 블루벨을 향해 외쳤다.
“야, 이 망할 할망구야! 지금 혼자 튀려고 한 거냐?!”
아니, 진짜 어이가 없네!
무의식적으로 나무를 꼬셔버려서 무서운 건 이해하지만, 그래도 엄연히 일행이 있는데 멋대로 혼자 튀면 안 되지?!
배신감이 치밀어오르며 공포를 밀어낸 덕에, 나는 메린에게서 떨어져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수 있었다.
“우리한테 맨날 자기 버릴 거 같다고 징징대더니 본인이 그러려고 하냐?! 난 전략적인 이유라도 있었지, 댁은 지금 그딴 것도 없잖아! 이 배신자아아!!”
“그치만 어쩔 수 없잖아! 이 미친 새끼 너무 무서운걸!!”
미친 새끼라니, 입이 험하네? 우훗, 귀여워라…….
나무가 정신나간 소리를 지껄이자마자, 꿈틀거리던 나뭇가지들이 일제히 블루벨을 향해 날아들기 시작했다!
“히이익! 저리가저리가저리가, 저리가아아!”
블루벨은 다리를 걸려는 듯이 아래를 훑는 굵은 줄기를 뛰어넘고, 그 높이를 노리고 날아오는 가지를 차면서 옆으로 폴짝 뛰었다.
그걸 노렸다는 듯이 착지 자리에서 꿈틀대는 또 다른 나뭇가지를 단검으로 잘라내면서 바닥을 구르고, 곧바로 일어나서는 달리기 시작했다.
아~ 이거 우리도 알아. ‘나 잡아봐라~’라는 거지? 그래~ 우후훗, 거기 서어~
“싫어어어! 꺼져어어!!”
“……”
나무는 키득키득 웃으면서, 또 다른 나뭇가지들을 마구 날려냈다.
거리가 너무 멀어졌다 싶으면, 여덟 개의 다리로 뒤뚱뒤뚱 움직여 좁혔다.
그러면서 몸을 날려 가지를 피하는 블루벨을 향해 쿡쿡 웃는 게, 꼭 손주 재롱 떠는 모습을 흐뭇이 지켜보는 노인 같았다.
……정작 블루벨은 여러 위기 때문에 필사적이었지만.
그보다 역시 저대로 두면 위험하겠군.
블루벨은 겁에 질린 것 치고는 상당히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냉정함을 잃은 상태에선 그 특유의 신속성을 발휘할 수 없는 듯했다.
아무리 저 몬스터의 덩치가 크고 다리가 여덟 개나 있다지만, 그래봤자 엘프가 아닌 몬스터일 뿐.
아무런 가공도 되지 않은 흙바닥에선 블루벨을 따라잡지 못해야 할 텐데.
그런데도 그녀는 나뭇가지에 시달리고 있을 뿐 아니라, 뒤뚱뒤뚱 움직이는 나무를 따돌리지도 못하고 있다.
보기보다 더 급박한 상황에 처한 것이리라.
저대로 계속 움직이면 머지않아 체력이 다 떨어질 터.
그러니 당장이라도 도와줘야 하겠지만, 우리가 가서 돕기에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게다가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블루벨 이 멍청아!! 왜 계속 그쪽으로 튀는 거야?!”
“이 놈이 자꾸 쫓아오잖아아아!! 달리 갈 데가 어디 있다고……! 히이익, 싫어어!!”
“이쪽으로 와야 할 거 아냐!!”
검을 뽑으면서 목청껏 소리쳤다.
“우리한테 와, 블루벨! 댁한테 추근대는 변태 나무 쳐죽여줄 테니까 우릴 믿고 이리로 와!!”
“으……!”
울먹이는 듯한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커흑!”
고통을 호소하는 신음이 바로 뒤에서 울렸다.
고개를 돌리자, 메린이 굉장히 딱딱한 표정으로 블루벨의 목에 팔을 감아 콱 붙들고 있었다.
켁켁거리는 걸 보니 숨이 막히고 있는 건 아닌 듯했다.
“…………”
근데 왜……?
이 할망구가 뭘 하려고 했길래?
멍하니 메린을 쳐다보니, 녀석이 딱딱한 표정 그대로 나를 똑바로 보면서 입을 달싹였다.
“뭐. 너 움직이는 거 방해하려고 하잖아. 그래서 막은 건데. 뭐.”
“아, 응……….”
더 묻지 않는 게 좋겠군.
나는 다시 앞을 보며, 뒤에서 울리는 훌쩍이면서 켁켁이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 애썼다.
괜히 저 소리 때문에 집중이 흐트러질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 염려는 금방 해결되었다.
자기야아아!!
콰아앙—!
저 멀리 떨어져 있던 나무 몬스터가 크게 도약하더니, 단숨에 우리 앞에 착지했으니까.
남의 연애에 훼방 놓을 셈이냐! 우리 자기를 내놔!!
“자기는 뭔 자기야, 지랄하지 마! 본인이 싫다잖아! 얘길 들어보니 삼백 살도 훌쩍 넘은 거 같은데 주책 그만 떨어, 노인네야!!”
닥쳐라, 더러운 인간놈들아!!
……아아, 그래! 비록 네놈들은 우릴 이 꼴로 만든 놈들과는 다르나, 네놈들도 같은 인간이지! 우리가 당한 것처럼, 네놈들에게 책임을 물겠다!!!
그저 같은 엘프라는 이유만으로, 저지르지도 않은 죄의 대가를 치른 것처럼.
네놈들의 동족 때문에 당한 고통! 이 원한, 이 저주, 이 원통함! 모두 네놈들에게 갚아주마!!
몬스터가 된 옛 엘프는 우리 세 사람에게, 이 숲에 숨어살던 마을 사람들의 죄값을 청구하기 시작했다.
“어림없는 소리……!”
두 손으로 성검의 자루를 꽉 쥐며 놈을 노려보았다.
“난 절대 누명 안 써줘!!”
죽어어어!!
독기 어린 함성과 함께, 검은 기운을 품은 나뭇가지들이 우리를 향해 뻗어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