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370화 (370/475)

〈 370화 〉 357화 : 숲의 막내딸, 결심하다 (2)

* * *

대륙 중앙에 엘프가 남아있을 줄은 몰랐다.

불가의 꼬치들을 바라보며 블루벨이 중얼거렸다.

“아마 아저씨도 생각 못하고 계실 거야. 아저씨보다 어린 블루스타는 말할 것도 없고.”

“연락 안 했다며? 일부러 무시한 것도 아닌데, 몰라도 어쩔 수 없지.”

나 역시 그 옆에 쪼그려 앉아 꼬치를 살피면서 대답했다.

오늘은 어제와 반대로 우리가 꼬치구이를, 메린이 스튜를 만드는 중이다.

교육을 위해선 훈제고기보단 생고기가 훨씬 나았겠지만…….

뭐,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

그러고보니 올라가는 길에 물가가 있다고 되어 있던 거 같은데.

상황 봐서 내일은 생선요리 해야겠다.

“사실 그것도 이해가 안 돼. 왜 연락을 안 한 거지? 우리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

“따로 살고 싶었나보지.”

솥 안을 뚫어져라 보면서 메린이 대꾸했다.

“같이 살 필요가 없으면 안 그래도 되는 거 아냐?”

“그렇기는 하지만……”

블루벨은 한숨을 푹 쉬면서 꼬치 하나를 툭툭 건드렸다.

저러다 괜히 하나 쓰러뜨리지.

“우리한테 왔다면, 적어도 그 꼴은 안 당했을 거 아냐.”

“뭐, 그래봤자 묘지……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우, 저 눈 진짜 장난 아니네.

안 그래도 세로동공이라 섬찟한데, 불가에 있으니 왠지 이글거리는 것 같아서 압박감이 더하다.

근데 내 말이 틀린 것도 아니잖아?

옛날에 거기서 반란이 두 번인가 일어나면서 많이 죽었다고 들었는데, 뭐.

고향숲을 지키려고 일부러 뒤틀린 나무가 됐을 만큼 우직했으니, 십중팔구 반란 났을 때 무기 들었을 거야.

“그래서 뭐가 고민인데?”

꼬치 하나를 불가에서 꺼내 이리저리 살피며 물었다.

음…… 이건 좀더 구워야겠군.

다시 모닥불 가까이에 꼬치를 꽂는 내 귀에, 블루벨이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다른 숲에도 엘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떻게 해야 될까?”

“어떡하긴 뭘 어떡해?”

다른 꼬치를 살피며 무심히 대꾸했다.

“그냥 댁 맘대로 해.”

“………아무리 남일이라도 그렇지, 너 너무 성의 없는 거 아니니?”

“지금 최대한 성의 있게 대답해준 거거든? 이거 지켜보면서 댁 얘기 듣고 이해하는 게 얼마나 힘든데?

이거 잠깐만 깜빡해도 까맣게 탄다고, 그럼 저녁밥 끝장이야, 알아?! 지금 이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없어!!”

열과 성을 다해 힘껏 외치자, 블루벨은 잠시 벙벙해하더니 곧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내 고민보다 밥이 더 중요하다는 거야?”

“당연하지. 고민은 좀 미룬다고 안 죽지만, 밥은 당장 보살피지 않으면 뒤진다고.”

“맞아. 밥이 더 중요해.”

솥을 저으면서 굉장히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메린이었다.

하하, 이 녀석의 끝없는 음식 사랑이 이렇게 예뻐 보일 때가 있다니, 진짜 세상 살고 볼 일이야.

이제 남은 건 딱 한 사람.

로나의 대답에 따라 밥과 고민, 둘 중에 뭐가 더 중요한지 결정될 것이다!

“로나, 넌 어때? 밥이랑 고민해결 중에 뭐가 더 중요하냐?”

내 물음에, 배낭에서 그릇을 꺼내던 로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둘 다 거기서 거기 아니에요?”

“아, 그래.”

무효표였다.

후후, 역시 사제님이야. 사고방식이 우리와는 완전 차원이 다른걸?

하긴 뭐, 사제에게 식사는 그냥 배 채우는 목적이라고 했으니 별로 안 중요하겠지.

창조주가 내린 사명에 목숨을 걸기로 맹세한 만큼, 그다지 고민할 것도 없을 거고 말야.

비록 로나의 지지는 받지 못했지만 메린 덕에 여전히 내 의견이 우세했기에,나는 블루벨에게 당당히 선언했다.

“아무튼 밥이 더 중요하니까 이따 다시 물어봐. 그땐 좀더 진지하게 대답해줄게.”

“하……”

“한숨 쉬지 말고 이거나 봐. 보여? 좀 타긴 했지만, 이 정도 두께의 고기는 대개 이만큼 구우면 속까지 잘 익어 있어. 그러니 꺼내자고.

……아, 빨리빨리 손 안 움직여?! 후딱 안 꺼내면 탄다니까!!”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보채지 마!”

다행히 꼬치구이들과 함께 내 목숨을 제때 구할 수 있었다.

휴, 정말 다행이야.

하마터면 아까운 식량을 버렸다고 메린에게 쪼일 뻔했어.

……누구나 먹을 게 못 써지면 화를 내는 법.

그러나 메린은 그 정도가 훨씬 심하다.

먹을 걸 중요시하는 만큼 식량을 허투루 날리는 걸 엄청나게 싫어해서, 평소에 덤덤한 건 전부 이때를 위해 아끼는 건가 싶을 정도로 마구 화를 낸다.

하, 옆에서 보기만 하는데도 심장에 살얼음 끼는 것 같았었지.

블루벨 때문에 질투하는 것 다음으로 무섭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저녁 식사도 무사히 살렸겠다, 나는 한결 평안한 마음으로 하다 만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그래서 아까 그 얘기 말인데,”

“……흥!”

“뭐. 하기 싫어? 싫으면 말고.”

“누가 싫대?! ………뭐, 할 말 있으면 해보던가!”

평소처럼 괴상하게 돌려 말하는 걸 보니 다시 기운을 차렸군.

좀 울컥하긴 하지만, 조금 전처럼 쭈그러져 있는 것보단 훨씬 나으니 그냥 넘어가야지.

나는 관대하니까.

휘적휘적, 그릇 속의 스튜를 스푼으로 저으며 말했다.

“요지는 같아. 댁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거지. 블루벨, 대륙 중앙에 엘프가 또 남아있는지 알고 싶은 거지? 그래서 만약에 또 찾으면? 그 다음엔 어쩌고 싶은데?”

“그야……”

곧바로 대답할 줄 알았는데, 블루벨은 의외로 말끝을 흐린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내 입으로 여럿 제시하는 것도 웃길 거 같아, 나는 블루벨이 다시 말을 꺼낼 때까지 식사하면서 느긋이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스튜 반 그릇과 꼬치구이 하나를 먹어치웠을 무렵,

“결심했어.”

느릿느릿하게 그릇을 비워가던 블루벨이 돌연 손을 멈추며 힘주어 말했다.

시선을 끌 목적으로 그런 건 아니겠지만, 눈길을 준 사람이 나 하나뿐이라는 게 조금 안타까웠다.

어휴, 매정한 자식들.밥 맛있게 실컷 먹어라.

그보다 엘프를 찾으면 뭘 하고 싶냐고 묻지 않았나?

근데 벌써 그걸 정하고 뭘 할지 결심까지 했다고?

더 미적거릴 줄 알았는데 의외이네.

나 혼자만 고개를 들어서 그런지, 블루벨은 나를 똑바로 마주보며 말을 이었다.

“대륙 중앙에 엘프들이 더 남았다면, 한곳에 전부 모을 거야. 인구가 보다 많은 곳을 중심으로.”

두 명 이상의 엘프가 지금까지 무사히 살아있다면, 지금쯤 식구가 꽤 많아졌을 터.

그건 즉, 그만큼 다른 인간들의 눈에 띄지 않은 채 조용히 살아왔다는 뜻이다.

말 그대로 예부터 전해내려온 전통을 지키면서.

그런 그들을 서쪽 산맥 너머의 숲으로 데려가는 건 악수(?手)일 뿐이다.

그곳엔 이미 옛 엘프들이 기억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문화가 피어나 있으니까.

친목을 다지자는 의미로 쏘던 촉 없는 화살이, 결투하자는 뜻으로 변해버린 것처럼.

“그러니 여긴 여기대로 따로 뭉쳐야 해. 뿔뿔이 흩어져서 살면 안 되는 거야. 그리고 교류는 하지 않더라도 세상 정세는 알고 있어야 돼. 그래야 그 숲의 엘프처럼 멋도 모르고 잡아 먹히지 않을 수 있어.”

“그 엘프들은 정보가 부족해서 비극을 맞은 거다?”

“그래. 그 사람들은 엘프가 왜 변화한 건지 몰라서 당한 거야.”

허기와 육욕.

본래 엘프에겐 없던 그 두 가지는, 천상과의 계약을 무단으로 파기하면서 얻은 부작용이다.

그 숲의 엘프들이 그걸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인간들이 신성 어쩌고 하며 꾀는 말에 넘어가지 않았을 터.

설령 그들을 속여서 억지로 의식을 진행한다 해도, 호락호락 당하진 않았을 것이다.

계약은 없어졌지만, 그들이 본래 지닌 초월적인 능력들은 여전히 남아있었으니까.

애초에 그 능력들은 강력한 존재와 싸우려고 받은 거니, 다른 세계의 존재이건 무엇이건 간에 죄다 해치워버렸을 것이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던 자들이 그런 결말을 맞이한 것.

그게 안타깝고 분하다며 블루벨은 그릇을 꽉 쥐었다.

“그러니 이 여행이 끝나는 대로 아저씨…가 아니라 폐하께 주청할 거야. 대륙 중앙에 엘프가 남아있다면, 그들을 규합해서 따로 공동체를 세워야 한다고.”

“응, 좋네. 만약 여러 집단이 발견되면, 억지로 한곳에 모으지 말고 서로 연락망만 갖춰도 될 거야. 우리 인간처럼 말야.”

“그때 가서 봐야지. 그 숲의 엘프들이 마지막이었을 수도 있으니까.”

“또 있을 거란 희망을 가지셔야죠, 블루벨 씨. 아무튼, 그럼 댁도 그 수색대에 참여하겠네?”

내 말에, 자신 있게 이야기하던 블루벨의 표정이 약간 어두워졌다.

공연히 스튜를 휘적거리며, 그녀는 수그러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글쎄…… 나보다 뛰어난 사람은 얼마든지 있거든. 중요한 일이니까, 능력 따져서 보내야지.”

“하긴, 외교적인 일인데 댁은 성격이 배배 꼬였으니……. 무, 뭐! 내가 틀린 말했어?! 솔직히 댁 성격 안 좋잖아,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딴 건 몰라도 이건 절대 철회 못해!!”

또 다시 부릅뜬 짙은 녹색 눈동자를 향해 발악하듯 외쳤다!

설령 목이 떨어지더라도 할 말은 해야 한다는 게 내 신조다.

메린한테도 그러고 있는데, 녀석보다 덜 무서운 할망구가 째려본다고 물러설까보냐……!

“앞뒤가 바뀌었잖아! 딴 녀석들 도량이 좁은 거지, 내 성격이 나쁜 게 아니라고!”

“글쎄, 댁의 성질머리를 온전히 받아들이려면 속이 대륙만큼 넓어야 할걸? 그게 되면 사람이 아니라 신이지? 그래도 오늘 보니 변태끼는 잘 통할 거 같더라.”

“너 메린 믿고 너무 까부는 거 아니니?”

“메린 덕에 솔직하게 다 말할 수 있는 거긴 해.”

메린이 없었다면 진작에 블루벨에게 쳐맞았겠지.

그럼 난 할 말을 다 못한 원통함에 괴로워했을 것이다.

그냥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날 지켜주고 있으니, 이 얼마나 고맙고 경이로운 존재인가!

그 마음을 담아, 나는 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우물거리는 메린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응……?”

녀석은 내가 갑자기 왜 머리를 쓰다듬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하하, 블루벨이 하는 얘기 하나도 안 들었구나.

진짜 개미 솜털만큼도 관심이 없었던 모양이다.

“고마워, 메린.”

“엉? 뭐가? 저녁밥?”

“전부 다.”

“으응???”

메린은 한층 더 동그랗게 눈을 뜨면서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아, 귀여워.

……이거 진짜 큰일이네.

메린 녀석, 어제보다 훨씬 더 예뻐보여.

반지 끼고 있어서 그런가?

보호가 아니라 매료를 위한 부적이었던 거 아냐?

근데 생각해보면 저거 끼워주기 전에도 날이 갈수록 더 예뻐졌던 거 같다.

어제는 그저께보다, 그저께는 그 전날보다 더 예쁘고 귀여웠어.

지금도 입 오물거리는 거 봐.

와씨, 미치겠네, 그냥 뭐 먹고 있는 게 어떻게 저리 귀여울 수가 있냐고!

“……히히.”

물론 이런 말을 입 밖으로 낼 순 없다.

다들 날 팔불출로 볼 게 뻔하니까.

근데 난 아니잖아?작은 걸 크게 과장해서 자랑해야 팔불출이지.

하지만 난 그냥 사실 그대로 생각하고 말하는 거니까, 절대 팔불출이 아니……

“팔불출.”

“커헉?!”

뜬금없이 블루벨의 말이 귓속을 파고든 탓에 사레가 들려버렸다!

격한 기침 때문에 얼굴이 후끈해진 채로, 나는 귀 뾰족한 암살미수자를 노려보며 빽 소리질렀다.

“지, 지금 나한테 한 거야?! 누가 팔불출이야, 누가!!”

“너 새끼 말고 여기 또 누가 있겠니? 아주 그냥 헤벌쭉해선……. 하, 전엔 눈치라도 보더니 이젠 그것도 없네.

야, 좋냐? 오늘 촉수 같은 나무한테 존나 따인 사람 앞에서 염장 지르니까 좋냐고, 새꺄!”

으악, 블루벨이 또 다시 눈을 부릅뜨고 무시무시한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은 아직 그릇을 붙잡고 있는데, 어째 내 멱살을 잡고 마구 흔들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억울해!

내가 뭘 어쨌다고 염장 지른다는 거야?!

그냥 얼굴 보기만 했구만!

“내가 쟤한테 키스하길 했어, 뭘 했어? 그냥 귀여워서 보고 웃은 것밖에 없잖아! 근데 뭔 염장……! 어휴, 할머니, 개 같은 경험했다고 주변에 화풀이하시면 안 되죠!”

“아, 그거 사실 바깥이어서 그렇지, 생각보다 꽤,”

“와아아악! 닥쳐, 이 변태야, 누가 소감 물어봤어?! 제발 정서교육에 안 좋은 소리 좀 하지 마세요, 블루벨 씨!”

이런 망할, 그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걸 넘어서……!

끔찍한 기억으로 시달리는 것보다 낫겠지만, 이건 듣는 내가 정신이 나갈 거 같아!

도와주세요, 창조주님, 당신이 이렇게 되게 만들었잖아요, 책임져!!

“뭐, 이 새끼야, 넌 내 정신 공격해대고 있잖아! 너랑 메린 때문에 옆구리 시리다고! 너희 때문에 그이 생각하다가 보* 달궈졌을 때의 내 심정을 알아?! 애인 뻔히 있는데도 혼자 푼 뒤의 그 허탈함을 네가 아냐고!”

“몰라, 씨발, 내 알 바 아냐, 미친 할망구야, 제발 닥쳐, 진짜 정신 나갈 거 같다고!”

“당연히 모르겠지! 너희 둘은 언제든 붙어서 신나게 물고 빨고 박,”

“그만하라니까!!!”

목이 터져라 내지른 외침이 별하늘에까지 울려퍼지는 듯했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식사 자리엔 내 잔기침 소리만 나지막이 울렸다.

잠시 후, 블루벨은 목의 통증 때문에 얼굴을 찌푸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게 내 바람이야. 이 여행이 끝나면 대륙 중앙에서 엘프들을 찾고, 그들을 한곳에 모아서 마을을 만드는 걸 보는 것. 만약 폐하가 그 수색대에 날 껴주지 않는다면, 뭐, 개인적으로 돌아다니면 되겠지. 난 어차피 고향숲을 나갈 예정이니까.”

허? 여기서 이렇게 다시 멀쩡한 얘기로 돌아간다고?

그것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혹시 내가 헛것을 봤나?

저녁 먹다가 잠깐 졸아서 괴상한 꿈을 꿨던 걸까?

근데 목이 지금 존나 아픈데?

메린이랑 로나는 멍한 얼굴로 블루벨을 향해 눈만 끔뻑이고 있고.

……꿈이 아니야.

방금 전에 블루벨이 발작을 일으킨 건 엄연한 현실이라고!

“와, 이 할망구 양심 없네. 사람 목 나가게 해놓고 존나 자연스럽게…… 켁, 크흠!”

“그래서 넌? 이 여행 끝나면 뭐할 거니?”

더럽게 뻔뻔한 얼굴로 묻는 블루벨이 기가 막히지만, 방금 같은 미친 소리를 듣는 것보단 훨씬 낫다.

나는 따끈한 차로 목을 달랜 후,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뭐하긴? 메린이랑 결혼하지.”

“뭐……?”

멍한 목소리로 불러온 침묵을,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스스로 깨뜨리려 했다.

“너 지금……”

“와, 그럼 사명 끝나자마자 식 올리는 거에요? 아트라토스 시체 앞에서?! 꺄아~ 살벌하면서 낭만적이네요!”

그 말을 가로막듯이 튀어나온 로나의 호들갑을, 나는 작게 한숨 쉬면서 기각해버렸다.

“어디가 낭만적이야? 어쨌든 마을에서 해야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귀여운 여자가 내 아내가 됐다고 엄청 자랑해야 되는데.”

“오, 그럼 그냥 수도에서 올리죠! 대신전에서 아주 화려하게!”

“그건 내가 기절할 거 같은데…….”

고향마을 사람들 앞에서도 긴장할 게 뻔한데 대신전이라고?

아으, 상상만으로도 어지러워!

“그래도 카엘 님 마을에서 하기엔 너무 작을 거 아니에요. 위슨 씨까지 해서 저희 셋에, 두 분 주변인들에, 부엉이탑의 두 현자에…….”

로나는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으면서 나열하기 시작했다.

“율리아 님이랑 저희 특별 사제들, 클라크 경이랑 마티아스 님에 그 부하분들, 피터 왕자랑 옐리카 님, 드워프분들, 골든로드 왕을 비롯한 엘프들…… 아, 어쩌면 산꼭대기의 그 드래곤들도 올지 모르겠네요!”

“오겠냐?! 아니, 그보다 만난 사람들 죄다 꼽는 거야? 어떻게 부른다고……!”

“에~이, 그야 저희가 불러드리면 되죠! 그 걱정은 마세요! 무려 용사님의 결혼인걸요! 율리아 님도 선뜻 도우실 거에요!”

………뭐지?

왠지 내가 스스로 함정을 파고 그 안에 빠진 기분인데.

나를 보며 엄지를 척 세운 로나는, 킥킥 웃으며 재차 메린에게 말했다.

“그렇죠, 메린 님? 카엘 님이 결혼하신다면 엄청 크게 올려야 하죠? 많은 사람의 축복을 받으면서 아주 행복하게요!”

“응. 아주 행복해야지.”

“거봐요~ 메린 님도 그래야 한다고 하시잖아요~ 그리고 블루벨 씨가 들러리 서시고요.”

“나?! 아니, 내가 왜?! 애초에……!”

“왜요? 싫으세요?”

그렇게 되묻는 로나의 얼굴은 활짝 웃고 있었다.

블루벨은 그 얼굴을 잠시 말없이 마주본 후, 이내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홱 돌렸다.

“……누가 싫대? 신부보다 들러리가 더 아름다운 꼴이 되니까 그렇지! 다들 메린이 아니라 나한테 시선 빼앗길 거 아냐. 아무리 메린이어도 상심할걸?”

“메린이 댁한테 시선을 빼앗긴다고? 하하, 참 같잖은 꿈을 꾸는구나.”

“그러게요.”

“이 새끼들이.”

발끈하는 블루벨과 또 다시 떠들썩하게 실랑이하면서 저녁을 마저 먹었다.

그 뒤, 한창식기를 정리하고 있는데 블루벨이 불쑥 다가오더니 물었다.

“결혼 말고는 없어?”

“뭐?”

“메린이랑 결혼하는 거 말고 다른 계획은 없냐고.”

“어…… 글쎄? 생각해본 적 없는데.”

생각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 말 대신,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다른 말을 꺼냈다.

“아버지 일 물려받을걸? 보통 그러는 법이니까.”

“한 번 생각해봐. 분명 하고 싶은 게 있을 거야.”

“……”

굳이?

그 생각에 미간을 찌푸리는 나를 향해,

“생각, 꼭 해.”

블루벨은 손가락으로 내 코를 두드리기까지 하며 신신당부한 다음, 다른 데로 휙 가버렸다.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해보라니, 그게 뭔 의미가 있다고?

어차피……

“………”

………뭐, 생각해본다고 나쁠 건 없지.

메린과 고향에서 사는 것도 좀 그러니까 말야.

홀로 고개를 끄덕이고서 다시 손을 움직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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