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371화 (371/475)

〈 371화 〉 외전 7) 떠나는 발걸음에 축복을 (Side : Shoull) (1)

* * *

※ 15화 시간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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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디검은 밤이 물러나면서 어스름을 남기기 시작했을 무렵, 닭장에서 졸던 수탉이 그 서늘한 빛에 놀랐는지 소리를 질렀다.

“꼬끼오—!”

그리고 수탉이 울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던 슐은, 곧바로 눈을 번쩍 뜨고서 몸을 일으켰다.

‘서둘러야 해!’

황급히 침대에서 내려와, 가냘픈 손을 뻗어 외투를 걸친다.

그대로 조용히 방을 나선 뒤, 정돈되지 않은 긴 머리를 대강 둥글게 말아서 묶으면서 살금살금 계단을 오른다.

나무계단이 끼익 인사를 건넬 때마다 심장이 덜컥하고, 어디선가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숨이 멎는 것 같다.

그럼에도 슐은 계단을 오르는 걸 멈출 수 없었다.

오늘만큼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휴우…….”

마침내 다락방에 도착하자, 슐은 참고 참았던 긴 숨을 한꺼번에 내쉬었다.

여러 이유로 두근거리는 가슴에 손을 댄 채, 되도록 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스레 덧창을 열었다.

“하아……”

활짝 열린 창으로 산들바람이 들어온다.

항상 무거운 느낌이었는데, 새벽이라 그런지 상쾌하기만 하다.

‘날이 좋아서 다행이야.’

슐은 아직 돌아가지 않은 별들을 보며 미소지었다.

때가 되려면 좀더 기다려야 할 터.

바깥 공기 속엔 서늘한 밤기운이 아직 남아있었지만, 외투가 걸쳐진 몸은 따뜻하기만 했다.

‘정말 다행이야.’

텅 빈 길가 위, 슐은 두 눈동자 속에 담고 있던 기억을 고요히 펼치기 시작했다.

‘카엘.’

그 기억을 바라보는 두 눈에, 한층 더 깊은 웃음이 떠올랐다.

카엘 에스트렐.

그는 그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특별한 존재였다.

일단 그의 부모부터 범상치 않다.

아버지인 엘리아스는 몇 십 년 만에 맞이한 외부인이자 마을의 유일한 필경사이며, 어머니인 피아는 마을에서 오래된 가문 중 하나인 카에브 가의 여식이다.

이 대지의 기운을 조금도 받지 않은 외부인과, 그와 정반대로 이 땅에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토박이.

두 상반되는 피를 이은 아이가 주목을 받는 건 지극히 당연했다.

더욱이 그 아이가 쇠약의 저주를 품고 있었으니, 더더욱 주목받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숲이 노했다’, ‘땅이 엘리아스는 받아들였지만, 그의 피가 이어지는 건 용납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렇게 수군거렸으나, 슐은 똑똑히 알고 있었다.

카엘의 병약함은 저주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보다 한참 더 어렸을 적, 슐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야 했다.

몸이 약했던 탓에 다른 아이들처럼 바깥에서 놀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날도 슐은 집에 있었고, 목이 말라서 부엌으로 가던 중이었다.

“……취약해요. 그나마 뱃속에서 반년은 조정됐으니 숨쉬고 있지만, 아마 일주일도 못 버틸 겁니다. 그 애는 실패에요.”

“포기가 너무 빠르신 것 아닙니까? 당신 손자인데요.”

그러다 응접실에서 들려온 이야기에, 슐의 발이 저절로 우뚝 멈춘 것이었다.

손님이 올 거라는 건 어렴풋이 들어서 알고 있었으나, 누가 찾아올 것인지까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말소리를 듣는 순간, 슐은 오늘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온 손님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카에브 씨?’

피아의 아버지인 카에브 가의 가주였다.

카에브는 응접실 바깥에 있는 슐에게도 들릴 정도로 큰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혈육의 정을 걸 자리도 없어요. 피아가 좀더 버텨줬더라면 나았겠지만……. 그 애가 그 정도로 약할 줄은 몰랐어요. 면목이 없습니다.”

“그런 말씀 마세요, 카에브 씨. 오랜 가문 중에 제 요청에 응하신 건 당신뿐이었는걸요. 제가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데요.”

“뭘요. 마침 혼기가 넘은 막내딸이 있었을 뿐인데요. 마을을 부흥시킨다는 촌장님의 뜻에 감복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그런데,”

달그락. 찻잔을 내려놓은 듯한 소리에 이어, 카에브의 진중한 목소리가 슐의 귀에 나직이 들려왔다.

“피아는 더 아이를 낳지 못할 거에요. 그러니 에스트렐에게 다른 여자를 붙이시죠.”

“네? 아니, 카에브 씨, 그건…….”

“걱정 마세요. 저희 집안이 딸을 내놓았었으니, 다른 가문 역시 촌장님의 요청에 응할 겁니다. 피아는 본래부터 내성이 약했어요. 슐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이었죠. 그럼에도 일주일은 버틸 아이가 나왔으니, 제대로 내성이 있는 여자라면 보다 좋은 결과를 낼 겁니다.”

슐은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뜻을 알기엔, 네 살이라는 나이는 너무 어렸던 탓이다.

그저 자신의 아버지가 숨을 삼키는 것에서, 카에브의 제안이 경악할 수준이라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에스트렐이 동의할까요?”

“동의하겠죠. 피아와의 결혼은 정착을 위한……”

슐이 들을 수 있었던 건 거기까지였다.

왠지 모르게 무서워져서, 더 듣고 있을 수가 없었던 탓이다.

어린 슐은 그 자리에서 도망치듯이 떠나, 빠른 걸음으로 부엌에 들어갔다.

그녀의 어머니는 어린 딸이 덜덜 떨면서 물을 마시고, 부엌을 떠나기까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저 만삭의 배를 쓰다듬으며 콧노래를 부를 뿐.

슐은 항상 그런 어머니가 야속했지만, 그날만큼은 무척 고맙기 그지없었다.

취약. 조정. 내성.

그 단어들이 무얼 뜻하는지는 모른다.

그럼에도 슐은 자신이 무척 무서운 말을 들었다고 생각했다.

무엇이 무서운지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채, 이불 속에서 홀로 두려움을 삭인 것이었다.

그날 이후로, 슐은 아버지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밉거나 싫은 것은 아니다.

기침하는 자신을 염려하는 다정한 말도, 단어 맞추기를 일찍 마친 걸 칭찬하는 손길도 여전히 기쁘다.

그저 오랫동안 한자리에 있고 싶지 않을 뿐.

아버지와 얼굴을 마주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다행히 가족 중 누구도 슐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내는 어머니는 물론이고, 함께 방을 쓰는 넷째 언니조차도 슐에게 아무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본래 말이 없는 조용한 성격이었으니,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게 이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때문에 슐은 부모를 포함해서 일곱, 이제 곧 여덟이 되는 대가족 속에서, 늘 그랬듯이 홀로 그 공포를 감내해야 했다.

그 반동이었을까?

슐은 에스트렐 가족에게 전보다 더 신경을 쓰게 되었다.

어째서인지 직접 다가가는 건 도저히 할 수 없었지만,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슐의 눈은 에스트렐 가족에게 향했다.

특히 피아의 품에 안겨 있는 아기에게서 도무지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왜?’

스스로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아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갓난아기를 본 적이 별로 없어서? 그렇다면 갓 태어난 막냇동생을 실컷 보면 될 텐데.

그러나 슐은 친동생보다 그 아기가 더 관심이 갔다.

볼 때마다 가슴속이 시큰거리고, 커다란 바위가 꾹꾹 내리누르는 것처럼 무거웠다.

‘아파서 그런가봐.’

자신보다도 더 아픈 게 불쌍해서 그런 것이겠지.

어린 슐은, 축 늘어진 채 힘없이 훌쩍이는 아기를 보며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힘내.’

더 어릴 땐 며칠씩 앓던 자신도 이렇게 걸어다닌다.

여전히 환절기만 되면 심한 감기에 걸리고 다른 아이들처럼 뛰면서 놀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제 곧 다섯 살이 된다.

‘너도 될 수 있어.’

일주일이 아닌 한 달을 버텼으니, 그렇게 계속 버티면 된다.

슐은 신전에서 아기를 볼 때마다 남몰래 응원했다.

피아와 함께 예배에 결석했을 때는, 부디 무사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나고, 둘, 넷, 다섯 해가 지나서 슐이 아홉 살이 되었을 무렵,

“그러고보니 에스트렐 부인은 안 보이네요?”

마을 아낙네들의 바느질 모임에 껴서 조심스럽게 한 땀 한 땀 꿰던 슐의 귀에, 한 아낙네의 말이 꽂혀왔다.

“피아요? 아들이 또 쓰러졌대요. 그 애가 없으니 하는 말인데, 그 망할 저주덩어리가 이번에야말로 끝났으면 좋겠어요. 만날 때마다 점점 더 초췌해지고 있다니까요? 정말 딱해 죽겠어요!”

“맞아요. 어제 그 분에게 옷 수선 맡긴 것 받았는데, 그 곱던 얼굴이 많이 상했더라고요.”

비교적 젊은 여자가 한숨을 쉬면서 말을 마치자, 나이 지긋한 여자가 콧방귀를 뀌며 대꾸했다.

“고집을 부리니 그렇죠. 땅이 그 핏덩이를 거부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걸 받아들이긴커녕 도리어 극복하겠다고 했다면서요? 그 집이 고생하는 건 다 자업자득이죠!”

“그래도 그 마음은 이해돼요. 자식 죽는 꼴을 가만 볼 수 있는 어미가 어디 있겠어요? 살릴 수만 있다면, 제 심장이라도 뽑아서 내주고 싶을 거에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저는 아직 촌장님이 원망스러워요.”

피아의 근황을 이야기했던 아낙네가, 상석에 앉아 있는 슐의 어머니를 힐끗 쳐다보며 분통을 터뜨렸다.

“촌장님이 그 결혼을 주선하지만 않았어도……! 그걸 수락한 제 아버지가 가장 이해가 안 되고, 또 부인껜 죄송하지만, 촌장님이 그런 제안을 하셨던 거 자체가 섭섭해요!”

“저도 부인에겐 미안하지만, 제 남편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보진 않아요.”

슐의 어머니는 무뚝뚝한 얼굴로 바늘을 놀리며 대꾸했다.

“지금 에스트렐 씨를 보세요. 처음엔 뜬구름처럼 지내던 사람이, 결혼하니까 마을에 완전히 적응했잖아요. 너무 이르지 않나 싶지만, 그이가 마을 일을 맡길 만큼 유능하기도 하고요.”

“그래도……!”

“물론 부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에요. 동생이 고생하는데 언니로서 당연히 가슴 아프시겠죠. 하지만 그 결혼도, 지금 생활도 에스트렐 부인이 수락했기에 이루어진 거에요. 그건 알아주세요.”

“……알아요, 벤스 부인. 그건 알지만…… 하아…… 죄송해요,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요.”

아낙네는 울적한 표정으로 자리를 떠났다.

그 모습을 안쓰러운 눈길로 보낸 뒤, 아낙네들은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다른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아이들 교육, 모임에 오지 않은 다른 아낙네의 뒷담, 거대 멧돼지 사건 등등.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손처럼 이야기들이 빠르게 흘러갔다.

그 흐름에 집중하느라, 그 자리에 있는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구석에서 바느질을 하던 슐이, 굳은 표정으로 손을 떨고 있다는 것을.

네 살 때부터 진득이 자리하고 있던 두려움이, 그때보다 더 많은 의미를 불러 일으키며 일렁였다.

응접실 바깥의 복도에서 들었던 말들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다시 끌려 올라오는 듯했다.

­­취약해요. 그나마 뱃속에서 반년은 조정됐으니……

­­오랜 가문 중에 제 요청에 응하신 건 당신뿐이었는걸요.

­­피아는 더 아이를 낳지 못할 거에요.

­­피아와의 결혼은 정착을 위한……

바늘을 쥔 슐의 손이 덜덜 떨렸다.

아낙네들이 부주의하게 떠든 말들과, 슐 자신이 엿들었던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떠돌면서 하나하나 합쳐지고 있었다.

‘아버지 때문에……’

에스트렐 부부가 결혼한 건 촌장인 자신의 아버지 때문이다.

아버지가 원했기 때문에, 카엘은 뱃속에 있을 때 무언가를 당했고, 그래서 극한의 병약한 체질로 태어나버렸다.

그런 아들을 돌보느라 에스트렐 내외의 생활이 힘들어졌다.

‘아버지 때문이야……!’

전부 아버지 때문이다.

아버지가 그들을 괴롭게 했다.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건 나쁜 사람이라 했는데.

‘아버지가 나쁜 사람이었다니…….’

가슴이 시큰거리면서 눈물이 솟구쳤다.

그간 카엘을 볼 때마다 느꼈던 그 시큰거림이다.

‘카엘.’

카엘.

이따금 마주칠 때마다 꾸벅 인사하는 예절 바른 아이.

또래 애들 중에 글을 가장 잘 읽고 이해하는 똑똑한 아이.

슐이 속으로 보낸 격려대로, 오늘을 계속 버티고 있는 기특한 아이.

그런 그를 괴롭게 만든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아버지였다.

슐은 그 사실이 너무나도 슬펐다.

자꾸만 시큰거리는 가슴을 부여잡은 그녀의 머릿속에,

‘미안해.’

그 한 마디가 반복해서 떠올랐다.

……이제껏 그를 볼 때마다 느꼈던 그 시큰거림이, 다름 아닌 죄책감이었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 후로 슐은 조금 더 적극적이게 되었다.

그저 꺼리기만 했던 아버지를 원망하기 시작했고, 그저 속으로 격려할 뿐이었던 카엘을 종종 보러 가기 시작했다.

설령 그게 마을 장서관을 오가는 중에 살짝 보는 것뿐이라 해도, 전보다 조금 더 가까이에서 그를 응원하게 된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힘내, 카엘. 절대 지지 마!’

보란 듯이 건강해져라.

그래서 그가 겪는 괴로움의 원흉인 자신의 아버지와,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를 저주받았다고 지껄이는 사람들에게 본때를 보여줘라.

나쁜 사람들을 전부 물리치는 것이다.

그렇게 힘껏 격려하며, 슐은 그를 매일처럼 지켜본 것이었다.

‘할 수 있을 거야. 너는 특별하니까.’

카엘은 특별한 아이이다.

태생이 특이한 것 외에도, 그에겐 다른 아이에겐 없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선성(??)으로 똘똘 뭉친 성품이었다.

언젠가 슐이 많은 짐을 혼자 들고 가다가 넘어졌을 때, 집 안에 있던 카엘은 굳이 바깥으로 나와서 그녀를 도와주었다.

그리고는 짐을 못 들어줘서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과하기까지 했다.

물론 그 친절은 슐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다.

다친 강아지를 돌보고, 굶주린 고양이에게 먹을 걸 나눠주고, 몬스터에게 쫓기는 아이를 위해 시선을 끌기까지 했다.

그 자신이 누구보다도 힘들 텐데, 다른 사람을 돕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슐은 멀리서 지켜보았기에 전부 알고 있었다.

그렇게 착한 성품이기에 요정들이 그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리라.

다른 사람에겐 갖은 못된 장난을 벌이는 요정들이, 카엘에겐 과자나 나무열매를 선뜻 주면서 재잘거렸다.

그에게 몰래 차를 먹이려는 요정의 뺨을, 다른 요정이 힘껏 후려치면서 쫓아내는 걸 본 적도 있다.

요정들은 선하고 순수한 사람을 좋아한다.

카엘에게 적극 호감을 표하는 모습은, 아이인 걸 감안하더라도 그가 무척이나 선량하다는 증거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카엘의 고통이, 슐 자신의 아버지가 아니라 가족 전체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는 걸 알았을 때.

슐은 세상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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