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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374화 (374/475)

〈 374화 〉 외전 7) 떠나는 발걸음에 축복을 (Side : Shoull) (4)

* * *

그날 이후, 슐은 다시 바깥으로 나갔다.

여전히 에스트렐 가족의 집을 직접 찾아가지는 못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 두 아이는 거의 매번 밖을 쏘다니며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으니까.

“대체 왜 들키는 거냐고오오!!”

“아하하하! 뛰어라, 뛰어~!”

‘잘 노네~’

온 동네를 질주하면서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카엘.

그런 그를 천진난만하게 웃으면서 쫓아가는 메린.

몸이 약한 탓에 같이 놀지 못하는 걸 아쉬워하며, 슐은 그 모습을 즐겁게 지켜보았다.

“우와악!”

“히힛, 잡았다! 또 내가 이겼네!”

“히익! 싫어, 잡아 먹힌다……! 으아아아, 살려줘요오오!”

놀이에 열중하는 아이들을 보는 것만큼 즐거운 건 없다.

메린에게 등이 깔린 카엘이 새파랗게 질린 채 바둥거리며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는 것도, 분명 메린이 그런 설정의 술래인 것이리라.

다른 아이들은 고블린을 술래로 삼아서 노니, 아마 그걸 조금 흉내내는 것이리라.

“아파아파아파, 물지 마, 아윽, 물지 말라고! 핥지도 마!! 히윽, 아, 누나, 슐 누나아! 저 좀 살려줘요!”

“응, 안녕, 얘들아. 오늘도 사이좋네~”

“이게 어딜 봐서요?!”

‘찰싹 붙어있으니 사이좋은 것 아닌가?’

슐은 고개를 갸웃하며, 손에 든 바구니에서 사과 두 알을 내밀었다.

“엄청 뛰던 거 같은데, 이거 먹을래?”

“사과!”

카엘의 목에 얼굴을 묻고 있던 메린이 고개를 홱 쳐들더니 슐의 손에서 사과를 홱 낚아챘다.

간식거리를 줄 때마다 늘 있던 일이므로 익숙해질 때도 되었건만, 슐은 아직도 흠칫 놀라게 되었다.

“야…… 너 그러지 말라고 했잖아…….”

비틀비틀 일어나며 타박하는 카엘의 목과 어깨엔 자그마한 이빨자국이 나 있다.

아프다더니, 메린이 진짜로 깨물고 있었던 듯했다.

‘와, 엄청 실감나게 노네.’

카엘이 다시 말을 건 이후로 밝아진 슐의 눈엔, 훌쩍이면서 처량한 표정을 짓는 그가 놀이의 여운에 빠져 있는 걸로만 보였다.

‘엄청 씩씩해졌어.’

그 후로 석 달쯤 지났을까?

이런 식으로 매일 뛰어 노는 덕인지,카엘의 혈색은 눈에 띄게 좋아져 있었다.

술래잡기에서 메린에게 붙잡히기까지의 시간도 조금씩 길어지고 있고, 이젠 잡히자마자 지쳐서 잠들지도 않는다.

병약한 건 여전했지만, 그래도 차츰차츰 더 건강해지고 있었다.

“달다! 아, 맞다. 어어, 슐 언니, 고마워. 잘 먹을게.”

“후후, 그래. 천천히 먹어.”

메린 역시 달라졌다.

에스트렐 부부가 교육을 맡은 뒤로, 순서가 조금 바뀌긴 해도 꼬박꼬박 인사를 하는 등 좀더 자연스러운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다른 아이에 비해선 잘 웃지 않았지만, 이따금 슐이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찰싹 붙어서 얼굴을 부비는 게 은근히 귀엽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겉모습도 석 달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바뀌어 있다.

산발머리는 말끔히 빗겨졌을 뿐 아니라 한 갈래로 고이 땋아져 있다.

몸과 옷 여기저기에 묻은 흙먼지도, 예전에 비하면 굉장히 옅다.

메린이 사과를 입에 문 채 옷을 탈탈 터는 걸 보면, 그 내외에게 바로바로 털라고 배운 게 분명했다.

“자, 카엘도 먹어.”

“고마워요, 누나. 와, 이거 진짜 다네요.”

“숲 가장자리에 있는 사과나무 알지? 거기서 따온 거야. 나중에 시간 되거든 같이 가봐.”

슐은 고개를 끄덕이는 두 아이에게 손을 흔들며 그 자리를 떠났다.

이후에도 심부름이나 병문안 등, 바깥을 나가야 하는 일이 생기면 자신이 하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친동생보다도 더 귀엽고 사랑스러운 두 동생을 보러 가는 것이었다.

비록 그 만남은 짧았지만, 슐에겐 그 찰나의 시간이 하루를 살아가는 원동력이나 다름없었다.

심보 나쁜 어머니가 혹시라도 ‘쓸데없이 놀러만 다닌다’고 트집 잡을까봐, 슐은 열심히 바느질을 하고 어머니가 시키는 집안일을 실수없이 해내는 등 갖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오로지 두 아이, 카엘과 메린을 만나기 위해서.

그를 위해 슐 역시 온 동네를 다니느라 전보다 기운이 생기고 혈색이 더 좋아졌지만, 슐 자신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열 여섯 살이 되면서 처음으로 남자에게 고백을 받을 때까지도, 자신이 ‘그럭저럭 예쁜 여자애’로 통하고 있다는 걸 전혀 몰랐다.

“근데 왜 거절한 거야? 꽤 잘생겼던데.”

“바빠서.”

개년인 넷째 언니의 말에 대충 대답하면서 빵을 뜯었다.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두 아이를 지켜볼 시간을 만들기 위해 바쁘게 지내고 있었으니까.

“그래? 그럼 넌 걔한테 관심 없는 거지? 내가 가진다?”

“맘대로 해.”

정말로 관심 없었기에 솔직히 대답했다.

뒤늦게 조금 그 남자가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뭐, 멀쩡한 사람이라면 알아서 개년인 거 알아보고 차겠지.’

상당히 무정하게 결론을 내리고 그냥 잊어버렸다.

슐은 이 마을에서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자신이 외동딸이었다면 ‘이딴 핏줄 안 이을 것’이라고 비장한 마음으로 결심했겠만, 이미 언니 셋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뒤이다.

그러니 설령 슐이 독신으로 죽는다 해도 핏줄이 끊어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런 마음을 먹은 이유는 단 하나.

이 마을에 사는 사람과 결혼하면, 여길 떠날 수 있을 가능성이 확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부모님을 도와 마을의 여러 작은 일을 맡은 덕에, 슐은 마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에 따른 결론이, 이 마을은 객관적으로도 그리 살 데가 못 된다는 것이었다.

몬스터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 마을에선 사람이 오래 살 수 없으니까.

이곳 놋지빌엔, 특이체질 외에는 하얗게 센 머리와 수염을 가진 사람이 별로 없다.

이야기책에 나오는 ‘흰 수염 노인’이 되기 전, 정확하게는 예순을 맞이하기 전에 대부분 죽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일흔까지 살았던 전대 검술 사범은, 그 신들린 듯한 검술과 함께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었다.

그와 같은 일부를 뺀 대부분의 사람들은, 쉰을 맞이한 순간부터 급속도로 몸이 쇠약해지기 시작했다.

평소에 얼마나 건장했건 상관없이, 나날이 기운을 잃어갈 뿐 아니라 잔병을 앓는다.

그러다 어느 날 피를 토하고 며칠 내로 세상을 떠난다.

숲이 그만큼의 삶만 허락했기에.

약 오십 년의 시간이, 이곳에 뿌리를 내려 오랫동안 쌓아 올린 내성의 한계였기 때문이다.

­­독기 때문이야.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던 어느 날, 마을의 치료사가 슐에게 알려주었다.

몬스터가 독을 품은 존재라는 건 상식이다.

실제로 그 고기를 날것으로 먹으면 독이 올라, 자칫하면 목숨을 잃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몬스터가 내뿜는 호흡이나 땀에도 독이 들어있다는 사실까진 알지 못한다.

몰라도 상관없는 게, 드넓은 대지와 하늘에 비하면 먼지보다도 더 작아서 아무 영향도 끼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긴 달라.’

마을 북쪽에 있는 산에 드래곤이 봉인되어 있기 때문인지, 이 주변 숲에는 유독 몬스터가 많다.

마을의 식수인 호수로 가는 길에서도 오크나 고블린이 툭툭 튀어나왔고, 그보다 더 안쪽에선 나무귀신, 트롤, 늑대인간에 숲슬라임 등이 배회하고 다닌다.

돌이나 버섯이 달린 곰 등의 짐승형 몬스터까지 합하면 입이 아파서 다 말을 못할 지경이다.

그뿐인가?

훨씬 더 안쪽, 아무도 감히 발을 들이지 못하는 깊은 곳엔 저주라고밖에 할 수 없는 존재가 자리하고 있다.

그 모든 몬스터들이 내뿜는 숨결이 이 마을을 자욱이 뒤덮고 있고, 놈들의 땀과 피가 땅속에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게다가 호수에도 몬스터가 살고 있으니, 이 마을의 사람들은호흡하고 물을 마시고 채소를 길러 먹으면서 몬스터의 독기를 함께 먹고 있는 상태였다.

그 속에서 적응하여 살아남은 사람들이 대를 이은 곳.

그것이 슐이 나고 자란 고향인 놋지빌이었다.

그러나 후대가 항상 더 강한 내성을 지니는 건 아닌지,간혹 슐처럼 내성이 약한 아이가 태어났다.

다행히 슐은 가장 내성이 약한 시기인 갓난아기 시절을 견딜 수 있었지만, 다른 아기들은 전부 시름시름 앓다가 목숨을 잃곤 했다.

하지만 무슨 방법을 찾은 건지, 어느 시점부터 원인 모를 병으로 앓던 아기들이 건강을 되찾기 시작했다.

일찍 묘지에 묻히는 아이의 수가 점차 줄어들고, 마을에 아기 우는 소리가 자주 들리게 되었다.

독기가 약해졌던 건가 싶었던 슐은, 어느 날 어린 조카의 병문안을 갔다가 생각지도 못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치료사의 제자인 밀렌이 아기에게 묽은 약을 먹이길래, 슐은 작은 호기심으로 그게 무엇인지 물었다.

그러자, 밀렌은 별반 비밀도 아니라는 것처럼 태연히 대답했다.

“이거? 카엘이 먹던 걸 한참 약하게 만든 약이야. 네 조카처럼 괜히 앓는 아기를 위한 특효약이지.”

‘카엘이 먹던 걸……?’

다른 사람이었다면 별 생각없이 넘기거나 오히려 약의 효능을 신뢰했을 것이다.

그러나 카엘이 어떤 계획에 휘말렸었다는 걸 아는 슐은 그 말을 그냥 넘겨들을 수도, 조카가 낫게 될 거라고 맘놓고 기뻐할 수도 없었다.

‘특효약…….’

그가 약을 물처럼 마셔대던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전부 기침이나 두통 등의 증상을 완화하기 위한 것이었으니, 독기로 앓는 아기에게 들은 만한 약은 아니었을 터.

‘아니, 애초에…….’

카엘보다 한참 상태가 좋은 아기도 목숨을 잃었었다.

그러나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던 그는 살아남았다.

슐은 여태껏 그게 카엘이 꿋꿋이 버틴 덕이라고 믿고 있었다.

물론 그 끈기가 빛을 바래진 않지만, 그래도 만약 그에게 어떤 조치가 취해졌던 것이라면.

독기에 대한 내성을 키우기 위해 약을 먹어왔던 것이라면.

‘설마.’

아기들에게 그가 먹었던 약을 약화시켜서 먹이는 것.

그 행위가 품은 음울한 사실을 상상한 순간, 슐은 오래 전에 느꼈던 그 두려움이 엄습해오는 것을 느꼈다.

‘확인해야 해.’

네 살의 슐은 그 공포를 그저 감내해야 했다.

무언가 행동하고 깨닫기엔 너무나도 어렸기에.

하지만 지금은 열 여섯, 곧 열 일곱 살이 되는 아가씨이다.

홀로 조사하고 다닐 행동력도, 그 내용을 이해할 사고력도 충분하다.

그러니 카엘이 무슨 짓을 당한 건지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게 슐이 상상하는 것만큼 끔찍하고, 또 그 짓이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면,

‘반드시 구해줄게!’

어떠한 희생을 치르게 될지라도 카엘을 그 지옥에서 구해낼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그렇게 굳게 다짐한 슐은, 그날 이후로 아버지를 몰래 관찰했다.

아버지가 촌장으로서 매일 작성하는 일지를 보기 위해서였다.

일지를 작성하는 것은 마을 촌장의 가장 중요한 일과이다.

자신이 무엇을 보고 듣고 행했는지 한치의 거짓 없이 후대에 남기는 것.

그것이 역대 촌장의 최우선적인 의무이기 때문이다.

진실성이 훼손된다고 오자(??)조차 고치지 않는 만큼, 촌장의 일지는 작성자가 죽은 뒤에 장서관에 들이도록 되어 있었다.

외부인인 엘리아스 에스트렐은 슐의 아버지가 촌장일 때에 마을로 왔고, 그의 주선 하에 가정을 꾸렸다.

다른 마을 사람들처럼, 슐도 아버지가 엘리아스를 마을에 정착시키려고 그런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무언가 있어.’

아버지는 분명 다른 계획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엘리아스에게 마을 대소사를 맡기는 것도, 그저 그가 유능하기 때문만은 아닐 터.

촌장으로서 일할 때의 아버지는 그런 단순한 사람이 아니었다.

얼마 뒤, 마침내 슐이 아버지가 꽁꽁 숨겨둔 수기를 손에 넣고 그 내용을 확인한 순간,

“……!”

슐은 고향을 더 이상 미워할 수 없게 되었다.

에스트렐 가족을 괴롭게 했다는 이유로 아버지를 혐오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카엘을 고통 속에 몰아넣은 것은, 그의 부모를 포함한 마을 전체였으므로.

싸늘하게 식은 손끝으로 종이를 넘기며 수기를 전부 읽은 뒤, 슐은 장서관을 찾았다.

오늘을 사느라 아무도 찾지 않는 마을의 역사, 역대 촌장들의 일지가 꽂혀 있는 책장으로 향했다.

먼지가 켜켜이 쌓인 일지들 중, 슐은 전전대 촌장의 일지를 꺼냈다.

아버지의 수기에서 ‘전전대의 한’ 어쩌고 하는 글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뒤, 책장의 일지들을 며칠에 걸쳐 읽고 나서야 슐은 모든 수수께끼를 풀 수 있었다.

카엘의 고통은, 전전대 촌장 때에 마을이 대대적인 습격을 받은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숲에 싸인 마을, 놋지빌은 항상 몬스터에 시달려왔다.

그러나 대규모로, 그것도 다양한 종족의 몬스터가 쳐들어온 건 마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슐이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마을은 엄청난 피해를 입긴 했으나 살아남았다.

사람들은 무너진 집들을 보며 다시 세우면 된다고 웃었지만, 전전대 촌장은 도저히 웃을 수 없었다.

마을의 중요시설들이 파괴되면서 거기 있던 지식들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중요기록들을 잃었으나,="" 다행히="" 가장="" 중요한="" 기록은="" 복구할="" 수="" 있다.=""/>

전전대 촌장이 말한 ‘가장 중요한 기록’은 내성을 기르는 방법이었다.

마을을 유지하기 위해선 갓난아기들을 독기로부터 지켜야 하므로, 반드시 되살려야 하는 지식이었다.

장서관과 치료소에 있던 것은 몬스터에 의해 소실되었으나, 다행히 신전에 보관된 서적은 무사했다.

정확하게는, 그 서적이 들어있다고 전해지는 보관함이 망가지지 않은 채 잔해에 묻혀 있었다.

그러니 그걸 열어서 복구하면 그만이었다.

비록 보관함은 사제만 열 수 있고, 마을의 사제는 습격 당시에 목숨을 잃었지만 그렇게 심각한 문제는 아닐 것이었다.

놋지빌 역시 왕국이 다스리는 마을이며, 창조주를 믿는 교단의 사제와 함께 개척한 곳이다.

그러니 요청만 하면 즉시 새 사제를 파견해줄 터.

그렇게 믿었건만.

새로운 사제가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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