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375화 (375/475)

〈 375화 〉 외전 7) 떠나는 발걸음에 축복을 (Side : Shoull) (5)

* * *

전전대 촌장은 그 일을 굉장히 짧게 적었다.

<……편지도, 따로="" 사람을="" 보내도="" 소용없었다.="" 창조주께서="" 기어이="" 이곳을="" 버리신="" 것인가?=""/>

그러나 필체가 흔들려 있는 것에서, 그가 얼마나 깊은 원통함을 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결국 그는 수명을 다하기까지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의 통곡을 들어야 했다.

그 뒤를 이은 전대 촌장도 이렇다 할 방법을 찾을 수 없었고, 어머니들 사이에선 검증되지 않은 미신이 떠돌기까지 했다.

<……조짐이 있는="" 아기를="" 큰="" 나무="" 아래에="" 눕히고="" 기도한다.="" 그리고는="" 그대로="" 두고="" 온다.="" 숲이="" 원하는="" 대로="" 아이를="" 넘기니,="" 그="" 대신="" 다음은="" 봐="" 달라고="" 비는="" 것이다……=""/>

당연히 효과가 있을 리 없었고, 마을엔 서서히 빈 집이 생기기 시작했다.

젊은 사람이 적어지자 병력이 줄어들었고, 그에 따라 몬스터로 인한 피해도 점차 커져갔다.

보다 강한 무기와 효율적인 전투법을 마련해도, 그걸 쓸 사람이 적어지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전대 촌장의 수기는, 이제 남은 것은 멸망뿐이라고 선조들에게 사죄하는 걸로 끝났다.

그 고뇌와 시련은, 현 촌장인 슐의 아버지 대에 이르러서야 하나씩 해결되기 시작했다.

<……사제님이 나타난="" 순간,="" 신께서="" 우릴="" 버리지="" 않으셨음을="" 알았다.=""/>

홀연히 나타난 사제, 지금 신전을 맡고 있는 늙은 사제 덕에 마침내 신전 보관함에서 그 고서(古書)를 꺼낼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제 죽어가는 마을을 되살릴 수 있다.

그 희망을 품은 것도 잠시, 아버지와 마을 유지들은 책을 펴자마자 깊이 통탄했다.

늙은 사제를 포함해 아무도 책을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생전 처음 보는 글자들이라, 다른 서적에서 유추할 수도 없었다.

그들이 나름 애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책은 단 한 글자도 해석되지 않았다.

슐이 세 살일 적, 이 마을에 외부인이 오기까지는.

엘리아스 에스트렐.

별을 보기 위해서라는 괴상한 이유로 이 외딴 곳까지 온 괴짜.

그가 아니었다면, 마을은 해답을 눈앞에 둔 채 그대로 멸망했으리라.

누구도 읽지 못하던 책을 느릿하게나마 풀어갈 수 있었으니까.

<……에스트렐은 그="" 글자들이,="" 옛날="" 사제들이="" 쓰는="" 글자라="" 했다.="" 배운="" 지="" 한참="" 되었기에="" 가물가물하다지만,="" 그래도="" 그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분명="" 이것이="" 마지막="" 기회일="" 터…….=""/>

아버지는 그가 어떻게 옛 사제의 글자를 알고 있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어째서 늙은 사제가 그걸 모르는지도 의심하지 않았다.

마을의 멸망을 막는 게 더 중요하니까.

다행히 엘리아스는 한동안 마을을 떠날 생각이 없었다.

별이 뜨려면 몇 년 더 있어야 한다며, 그동안 책을 해석할 뿐 아니라 도울 수 있는 건 도와줄 테니, 여기서 살게 해달라고 역으로 제안해왔다.

아버지가 그를 적극 들어준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내성이 없는="" 외부인이="" 독기를="" 견딜="" 수="" 있을지="" 염려스러웠으나,="" 의외로="" 그는="" 별="" 어려움없이="" 적응했다.="" 요정들을="" 보면서도="" 놀라기보다="" 무언가를="" 수긍하듯이=""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에스트렐……="" 학자="" 가문이라="" 했는데,="" 보통="" 학자가=""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그 뒤, 엘리아스 덕에 책을 풀어내긴 했으나, 그 자신조차도 뜻을 올바르게 풀어낸 건지 의구심이 들었다.

오랫동안 소실되었던 지식인 데다, 그가 스스로 말했듯이 옛 글자에 대한 기억이 또렷하지 않았던 탓이다.

아이를 가진 여자에게 특정 약초와 몬스터의 내장을 달인 물약을 먹여서, 뱃속의 아이에게 내성을 심는다.

그게 정말 맞는 답인지 도통 확신할 수 없었다.

허브 차도 함부로 마셔서는 안 되는 임부(??)에게 독성이 담긴 물약을 먹이라니.

어느 누가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에게 시험을="" 위한="" 결혼을="" 제의했다.="" 그는="" 어차피="" 정착하려="" 했다며="" 흔쾌히="" 승낙했다.="" 카에브="" 가문이="" 선뜻="" 딸을="" 내준="" 게="" 얼마나="" 다행인지……=""/>

그리하여 엘리아스는 피아 카에브와 식을 올렸고, 아이를 가진 게 확인되자 곧바로 시험에 들어갔다.

그러나 본래 내성이 약했던 탓인지 피아의 몸이 약을 버티지 못했고, 뱃속의 아이는 일곱 달 만에 태어나버리고 말았다.

그것이 카엘.

놋지빌에서 가장 약한 아이이자 슐의 보물이었다.

시험은 실패로 돌아갔고, 피아는 약의 독성 때문에 더는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완전히 성과가 없는 건 아니었다.

선천적인 내성이 없는 외부인의 자식, 그것도 칠삭둥이가 일주일 이내를 견딘다는 건 분명한 진전이었으니까.

<……에스트렐은 다른="" 여식과의="" 재시험을="" 거부했다.="" 대신,="" 부부는="" 방법을="" 제안했다.=""/>

목적을 위해 맺은 부부의 연이었으나, 그새 애정이 싹터버린 것이리라.

두 사람은 서로를, 그리고 그 결실인 아들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를 위한 제안이, 피아가 먹었던 약에 물을 타서 아기에게 직접 먹이는 것이었다.

아이를 밴 여자가 약을 먹도록 한 건, 뱃속의 아기에게 그 기운을 전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아기에게 직접 먹이도록 개량하는 게, 어머니와 태중의 아기 둘 모두에게 훨씬 안전하지 않겠는가?

그게 에스트렐 부부의 주장이었고, 슐의 아버지를 비롯한 마을의 유지들은 그를 타당하다 여겼다.

그렇게 또 다른 시험이 시작되었고, 결과적으로는 크게 성공했다.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던 갓난아기는 살아남았고, 그때 쓴 약들을 통해 마을의 아기들을 구할 수 있었다.

그 시험은 카엘이 다섯 살일 때에 끝을 맺었다.

더 계속하면 목숨이 위험하다고 치료사가 진언했기 때문이다.

무려 오 년의 세월 동안 카엘은 몸소 약의 효력을 입증했고, 그 덕에 다섯 살까지의 아이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마을을 구한 영웅.

아버지는 에스트렐 가족을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심지어 엘리아스에게 다음 촌장직을 맡길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아마 그 때문에 그에게 자꾸 마을 대소사를 맡기는 것이리라.

‘영웅……? 어디가……?’

그러나 슐은 고개를 저었다.

이 대대적인 역사의 장에, 영웅은 그 그림자도 비추지 않았다.

그곳에 있던 건 영웅이 아니라 희생물이며,이것은 한 아이가 자신도 모르는 새에 실험체로 쓰이고 있던 비극일 뿐이다.

정말로 아버지가 그들을 영웅으로 여겼다면, 이 일을 마을에 공표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긴커녕, 내성을 위한 비약(?藥) 외에는 약값을 지원해주지 않았다.

아마 마을의 누군가가 그들이 왜 특별 취급을 받는 건지 의문을 가질까봐, 그래서 이 일이 알려질까봐 그랬던 것이리라.

사실 이 일을 비밀에 부친 건 아버지뿐이 아니다.

피아의 아버지를 비롯한 오랜 가문들의 가주들도 전부 입을 다물고 있었다.

갓난아기를 희생해서 살아난 게, 그들 스스로가 보기에도 수치스러웠기 때문일까?

그에 대한 고백은 적혀 있지 않았으니, 그 자그마한 진상만은 영영 밝혀지지 않겠지.

그리고 이젠 슐 역시 그에 동참해야 했다.

‘말할 수 없어.’

모든 진실을 알게 되었으나, 차마 카엘에게 전할 수 없었다.

그가 의지하는 부모님이, 사랑해 마지않는 어머니가 앞장서서 그에게 약 실험을 했다는 걸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설령 전하더라도 그는 원망하지 않겠지.

똑똑하고 착한 카엘은, 어쨌든 그 덕에 자신이 살았으니 됐다고 할 게 뻔하다.

속으로 얼마나 상심하든 겉으로는 그렇게 납득할 터.

슐은 그가 충격을 받는 것보다, 그렇게 이해하고 넘어가는 모습을 보는 게 더 끔찍했다.

그럴 것이라고 쉬이 예상할 수 있을 만큼, 슐은 그를 오래 지켜봐왔다.

‘역시 넌 특별한 아이였구나.’

솟아오르는 눈물을 참으면서 슐은 빙긋 웃었다.

그게 카엘에 대한 자랑스러움인지, 그 덕분에 조카가 살아서 고마운 건지, 그런 희생을 치렀다는 게 가슴이 아파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전부 다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너라면 할 수 있어. 여길 떠날 수 있을 거야.’

그가 성년을 맞기까지 앞으로 7년.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그는 무사히 오늘을 넘기고 내년을 맞이하겠지.

그리고 이곳을 떠나, 독기 따위 없는 곳에서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쭉 사는 것이다.

그 옆에 메린이 함께한다면 더더욱 좋을 것이다.

그 아이 역시 이곳에서 그리 좋지 않은 대우를 받고 있고, 무엇보다도 둘이 사이가 좋으니까.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꼭.’

슐은 저 멀리 들판을 보았다.

홀로 우뚝 솟아 있는 나무 그늘 아래, 두 아이가 나란히 앉아 졸고 있었다.

서로를 의지하듯 어깨를 기댄 채.

‘꼭, 그렇게 될 거야.’

그렇게 두 사랑스러운 아이를멀리서 격려했다.

그게 슐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 후로 7년이 흘렀다.

그간 슐은 첫째 언니를, 카엘은 어머니를, 메린은 아낙네들에게서 평판을 잃었다.

물론 잃기만 한 것은 아니다.

카엘은 마을 사람들의 인망을, 메린은 자경단의 선망을 얻었다.

그리고 지난주, 카엘은 성검을 얻고 용사가 되었다.

슐의 아버지는 ‘역시 에스트렐은 뭐가 있다’면서 들떴었지만, 슐은 그저 걱정스럽기만 했다.

카엘이 용사가 된 것 자체는 한치의 의문 없이 수긍할 수 있다.

모르는 새에 마을을 구한 사람이니, 아마 세상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신이 평가한 것이겠지.

하지만 이번엔 검을 들고 직접 싸워야 한다.

슐이 걱정하는 건 그 점이었다.

‘검 못 쓸 텐데…….’

아무리 메린이 봐줘도 며칠만에 실력이 오르진 않을 터.

막냇동생을 두들겨 팬 게 카엘이라는 걸 알았을 땐 놀라긴 했지만, 그래도 수도까지 혼자 무사히 갈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그래서 메린이 같이 가게 된 것에, 슐은 크게 안도한 것이었다.

‘과정은 끔찍했지만.’

메린을 추방하자고 하겠다니, 카엘의 말마따나 배은망덕도 유분수다.

슐 자신의 개인적인 애정을 차치하고서도, 메린은 놋지빌의 절대적인 방패나 다름없다.

차라리 어머니와 막냇동생이 나가는 게 훨씬 마을에 도움이 될 텐데.

‘멍청하긴.’

어머니도, 어머니가 만든 모임에 모이는 아낙네들도 모두 멍청하다.

그 사람들이 정말 다 찬동했는지는 모르지만, 조만간 자신의 생각을 후회하게 되겠지.

남편이나 자식의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아.’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울리는 듯했다.

기나긴 상념에서 깨어난 슐은, 어느새 어스름이 걷혀가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제 슬슬 보이기 시작할 터.

슐은 외투 자락을 여미며 창 밖을 내다보았다.

잠시 후, 커다란 짐덩어리가 길 위를 터벅터벅 걸어오는 게 보였다.

커다란 배낭 두 개가, 꼭 발이 달린 것처럼 저절로……

‘아니, 카엘이잖아?!’

눈을 비비고 보니 카엘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카엘이 메린과 큰 배낭 두 개를 전부 짊어지고 가고 있었다!

물론 그리 낭만적인 광경은 아니다.

메린은 카엘에게 업힌 채 배낭과 두 길다란 짐을 짊어지고 있고, 나머지 배낭 하나는 카엘이 앞쪽으로 메고 있다.

두 사람에겐 한없이 긍정적인 슐의 눈에도, 그는 지금 처절한 고난의 행군을 하는 걸로 비쳤다!

‘힘내, 카엘!!’

처음부터 그럴 생각으로 여기 올라온 거긴 했지만, 슐은 예정보다도 더 뜨겁게 카엘을 응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곧바로 집을 나서서 그의 뒤를 쫓았다.

원래는 다락방에서 지켜보기만 할 생각이었는데, 방금 그 광경을 보니 끝까지 지켜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저기 있다. 으으, 카엘, 힘내!!’

슐은 충분히 상황을 볼 수 있을 정도로만 따라가면서, 카엘이 터벅터벅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당장이라도 가서 도와주고 싶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카엘에겐 미안하지만, 슐은 그가 이곳을 ‘배웅도 하나 안 해주는 매정한 고향마을’로 기억하길 바랐다.

그래야 다시 돌아와서 드래곤을 처치한 뒤, 곧바로 마을을 떠날 테니까.

메린에게 청혼도 했겠다, 이번처럼 그 아이와 함께 이곳을 영영 떠나는 것이다.

‘그것까지 지켜보고 싶은데.’

슐은 자신이 그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게 조금 슬펐다.

카엘이 성검을 받고 용사가 되기 전날, 슐은 한 청년에게 청혼을 받았다.

그는 치료사의 사촌 동생으로, 몇 년 전부터 바깥 마을에서 수습 치료사로 일하고 있었다.

곧 승급시험이기에, 현직 치료사인 사촌 형에게 조언을 구하러 오랜만에 방문한 것이었다.

원래 이 마을에 살던 사람인 만큼 그럭저럭 알고 지내긴 했지만,

­­사실 치료사가 되려던 건 당신을 위한 거였어요. 몸이 약한 당신을 고쳐주고 싶었거든요. 근데 알고 보니, 여기 환경 자체가 건강에 좋지 않더군요. 그래서 마을을 나간 거에요. 미리 터전을 닦아두려고요.

­­어어…… 그건……

설마 그간 자신에게 마음을 품고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쭉 좋아하고 있었어요. 갑작스럽겠지만, 슐, 당신과 결혼하고 싶어요.

­­어……

­­반드시 합격하고 돌아오겠습니다. 대답은 그때 들려주세요. 아, 걱정 마세요. 지금은 치료사 일 자체가 흥미로우니까요.

그래도 당신을 위해서 더 힘낼게요.

청년은 그렇게 말을 남기고는 마을을 떠났다.

그때가 지난주였고 승급시험이 2주 뒤라 했으니, 다음주에 시험을 치를 터.

결과 발표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나, 슐은 왠지 그가 다시 여기 올 거란 예감이 들었다.

그를 따라가기로 한다면 머지않아 이 마을을 떠나게 된다.

슐이 그간 바라마지 않던 일이었지만, 막상 그 기회가 찾아오니 자신이 정말로 바깥에서 살 수 있을지 불안했다.

‘아.’

그 고민에 마음이 또 다시 가라앉으려던 찰나, 카엘의 고난이 마침내 끝을 맺은 것을 보았다.

중간에 휘청거리긴 했지만, 어쨌든 그는 단 한 번도 쓰러지지 않고 메린과 짐들을 무사히 광장으로 옮긴 것이었다.

‘어릴 땐 책을 드는 것도 버거워했는데.’

왠지 모르게 감격스러워져 조용히 눈물을 훔치던 슐의 눈에, 카엘이 말에 오르는 게 보였다.

이제 출발하려는 듯한데, 슐은 곧바로 이어진 광경에자신도 모르게 입을 가렸다.

‘어머머.’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무려 카엘이 잠든 메린의 허리를 껴안으면서 고삐를 잡았으니까!

어릴 적 이후로 보지 못했던 서로 밀착한 모습.

슐은 가슴이 찡했던 것도 잊고 들뜬 마음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메린을 꽉 끌어안은 카엘이, 무척이나 편안한 미소를 짓고 있는 걸 발견했다.

‘그렇게 좋을까.’

카엘은 메린을 좋아한다.

슐은 어렴풋이 그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그가 메린을 보는 눈에 아련한 빛이 섞여 있었으니까.

그리고 올해가 되어서는 아련함을 넘어 애처롭기까지 했다.

‘근데 올해 초부턴 둘이 좀 데면데면했지.’

싸운 것 같진 않은데, 어째서인지 두 사람은 서로 거리를 두었다.

말을 잘 못 돌리는 메린에게 넌지시 물어도 ‘별일 없다’는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

두 사람이 같이 이곳을 떠나는 슐의 소망이 깨질까 염려스러웠으나, 정말로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카엘이 메린에게 결혼하자고 했으니까.

게다가 그 직후에 메린을 구하려다 용사가 된 것이라 들었다.

즉, 이건 신이 점지한 운명이나 다름없다!

‘꼭 로맨스 같아!!’

그러니 이제 슐이 걱정할 것은 전혀 없다.

굳이 꼽는다면, 여행 중에 아이가 덜컥 생길지도 모른다는 것일까?

하지만 카엘은 분별 있는 사람이니, 메린이 그런 위험을 안도록 하지 않을 것이었다.

“이랴!”

이내 천둥이 울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말들이 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어지간히 큰 소리가 아니니, 마을 사람들이 곧 무슨 일인지 하나 둘 나와서 살펴보기 시작하겠지.

그때 즈음엔 이미 카엘과 메린은 마을 밖으로 나가고 없을 터.

누구도 그 두 사람이 떠나는 걸 보지 못할 것이다.

그 뒷모습을 향해 손을 흔드는 건, 오로지 슐 한 사람뿐이리라.

그게 조금 슬프면서도, 슐은 자신의 바람이 일부 이루어진 것이 기뻤다.

자신이 가장 아끼는 두 사람이 함께 이곳을 떠났다.

물론 드래곤이 있는 산으로 가려면 마을을 통과해야 하니 다시 여기로 오겠지만, 마을에 정도 떨어졌고 또 바깥 세상을 봤으니 여기에 남겠다는 생각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남은 건, 슐 자신이 어쩔지를 결정하는 것뿐.

‘나는……’

아니, 나중에 생각하자.

슐은 고개를 흔들며 길을 달리는 뒷모습들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 섞여 있을 카엘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빙긋 미소 지었다.

슐이 어떤 결정을 내리건, 분명 두 사람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마을에 남는다면 무사히 돌아온 그들을 볼 거고, 여길 떠난다면 두 사람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슐이 다시 찾아올 테니까.

그러니,

‘또 보자, 카엘, 메린.’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인사를 보냈다.

먼 하늘에 떠오르는 아침해가, 그들의 길을 축복하듯 비추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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