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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378화 (378/475)

〈 378화 〉 360화 : 서로가 필요한 이유 (2)

* * *

어릴 적의 나는 항상 혼자였다.

고향 사람이 이 말을 듣는다면 무슨 소리냐고 고개를 갸웃하겠지.

부모님 두 분 다 항상 집에 계셨으니까.

하지만 나는 혼자였다.

누군가와 함께 있었지만 항상 외톨이…… 쓸쓸했다.

건강할 때는 부모님이 모두 일하시느라 나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었고, 아플 때는 내가 정신이 없어서 부모님이 돌봐준 게 기억이 잘 안 나기 때문이다.

잠을 자기 전, 그리고 침대에서 눈을 뜰 때마다 엄마가 침대맡에 앉아 있지 않았더라면……

누구 말마따나 심장 쪽이 좀더 추웠을지도 모르겠다.

에스트렐 씨 아니면 에스트렐 부인.

우리집에 오는 손님은 그 두 사람만 찾고, 내 이름은 단 한 명도 부르지 않는다.

집 바깥에서는 누군가가 나를 부르긴 하지만, 거의 대부분이 적의 것이다.

내심 그거라도 듣고 싶었던 걸까?

적밖에 없는데도 나는 형편이 될 때마다 밖으로 나갔다.

그저 집 뒤뜰에서 햇빛을 쬘 뿐이라 해도.

산딸기나 살구를 따러 가던 길에 적에게 잡혀 끌려가더라도 계속 집을 나섰다.

호수에서 낚시를 하려고 애를 쓰고, 숲에서 나무열매를 따고, 그것도 안 되면 집 텃밭에 물이라도 줬다.

그것조차 못할 때엔……

글쎄, 무엇을 했더라?

여하간 필사적으로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누군가가 물건을 떨어뜨리면 같이 주워주고, 넘어지면 일어나는 걸 도와주었다.

새끼 고양이나 강아지에게 내 간식을 나눠주기도 했다.

어른들은 그런 나를 보며 착하다고 했다.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고맙다고 해주었다.

우리 부모님이 부럽다고 말했다.

그리고 뒤돌아서는 혀를 차면서 부모님이 불쌍하다고 했지.

몸으로 하는 건 거의 못하니까 머리를 쓰는 거라도 열심히 했다.

또래 누구보다도 빨리 글을 떼었다.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할 거란 말을 듣고 싶었다.

자식이기에 버리지 못하는 게 아닌, 쓸모가 있어서 버리지 않는 게 되도록.

자식이니까 데리고 사는 것이 돼선 안 된다.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랑받아서는 안 된다.

그 이외의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부모님이 아니라, 내가 가엾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쓸모없는 저주덩어리를 억지로 살리는 부모님이 아니라, 쓸 만한데 저주덩어리라서 곧 죽을 내가 불쌍하다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도왔다.

너 자신을 위해.

도와줄 수 없으면 슬퍼했다.

너를 위해 이용할 수 없으니까.

……착한 아이.

어른들은 나를 그렇게 불렀다.

그런 척한 것뿐이었는데 말야.

………맞아. 난 착하지 않아.

정말로 착한 사람이라면 고맙다는 말조차 바라지 않았어야 해.

선을 베푸는 행위만으로 기쁨을 느껴야 한다고.

사랑도 그렇고.

사랑……?

의아해하는 내 눈앞에 얼굴이 떠올랐다.

부모 얼굴도 모르는 고아.

치마가 아니었으면 여자애인 것도 몰랐을 정도로 엉망인 아이.

가엾은 아이였지. 안 그래?

아니?

존나 무서운 애였는데?지금도 무섭고.

가엾긴 개뿔.

………아무도 가까이하지 않는 쓸쓸한 아이였지. 안 그래?

축제날 밤마다 혼자 들판에 앉아 있었으니까.

특정할 수 없는 목소리가 그렇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래서 넌 그 앨 이용했어. 무서워하면서도 그 애가 널 찾아오도록 내버려뒀어.

그래야 적에게서 안전하니까.

어? 그건……

사람들 사이에서 사는 법을 가르친다는 구실로, 그 애가 네 말만 듣도록 만들었어.

아니, 난 그런 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해주고, 비난받는 걸 감싸주면서 신뢰를 얻었어. 널 의지하도록.

그래야 계속 널 찾을 테니까.

아니야……!

너는 그 아이를 이용한 거야.

네 방패막으로 써먹으려고. 너만 그 아이를 다룰 수 있다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그래야 네 가치가 오르니까.

……숨이 막혀온다.

식은땀이 아래로 떨어지며 물처럼 흐르고 있다.

제자리에 엎드리면서 귀를 틀어막는다.

그럼에도 목소리는 들려오고,

속삭임은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여정에 끌여들었어. 다른 사람이 채 가지 않도록.

덤으로 전투원으로도 써먹고 말야. 안 그래?

……아냐. 아냐, 아니야.

난… 나는……!

너만 의지하면서 생긴 친밀감에 빌붙어서 육욕을 풀었어.

그게 꽤 좋았나봐? 좋아함의 종류도 구분 못하는 아이를 계속 속이고 있잖아.

널 좋아하는 거라고 그 아이를 세뇌하고 있지. 안 그래?

이건…이건 꿈이야. 또 악몽을 꾸고 있는 거지.

그러니까 이런 말들이 들리는 거야.

내가, 원래부터 나 자신을, 그리 좋아하지 않으니까, 일부러 이런 말들이……!

넌 그 아이를 사랑하는 게 아냐.

아냐, 사랑이야.사랑하는 거야.

나는 그녀를 사랑해.

나는… 메린을……!

사랑을 구실로 이용하는 거지.

아냐… 아니야, 아니란 말야……

아니야……

더러운 위선자. 추악한 거짓말쟁이.

끔찍한 악질.

잠자리 생각밖에 안 하는 추잡한 놈.

아니라고 아무리 부정해도 소용이 없다.

비웃음 섞인 속삭임이 계속해서 나를 비난한다.

……어쩌면 전부 맞는 말일지도 몰라.

지금 이건 내 악행을 참다 못한 양심이 꿈에서 나를 꾸짖는 게 아닐까?

메린과 가까이 있으면서 내가 이득을 본 건 사실이잖아.

그럼 죽어. 너처럼 역겨운 놈은 살 자격이,

­충분하지.

갑자기 끼어든 선명한 목소리.

­찾았다……!

그와 동시에 무언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어느 호숫가의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부드러이 내리쬐는 오후의 햇살.

머리카락을 살짝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

테이블 위엔 따끈한 차가 담긴 잔들과, 케이크와 과자가 담긴 접시가 놓여 있다.

저 앞에 놓인 호수는 잔물결 하나 없이 햇빛을 받으며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내가 앉아 있는 티 테이블 근처엔 짧은 풀이 깔려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엔 짙은 녹색의 수풀로 무성하다.

새소리도 간간이 들리고 있는, 무척이나 따스한 곳이었다.

……꼭 그림 속에 들어와 있는 거 같아.

‘티 타임’이라는 말에서 떠올릴 수 있는 가장 평화로운 분위기가 아닐까 싶다.

근데 나 아직도 꿈 속에 있는 거지?

그럼……

이 과자 먹어도 되나?

­되지. 자네 거니까.

갑자기 앞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드니, 어느새 하얀 망토를 걸친 사람이 건너편 자리에 앉은 채 씨익 웃고 있다.

후드를 쓰고 있어서 코랑 입만 겨우 보이는데, 체구가 듬직한 걸 보니 남자일 듯했다.

……근데 누구이지?

이런 옷차림의 사람은 꿈에서도 본 적이 없다.

방금까지 비어 있던 자리에 나타난 건……

뭐, 꿈이니까 그런 거겠지.

내 의문은 아랑곳하지 않고, 처음 보는 남자는 의자에 앉은 채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굉장히 평화로운 풍경이군. 아니, 심상풍경은 이런데 겉은 왜 그 모양이야? 혹시 저 호수에 상어나 악어 있는 거 아니야?

상어랑 악어가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날 욕하는 거란 건 알겠다.

이 새, 아니 이 양반은 대체 누구이길래 남의 꿈 속에 들어와 있는 거야?

­내가 누구냐고? 비밀이야. 굉장히 뻔한 사이이지만 일단 그렇게 두세나. 난 아직 나올 때가 아니거든.

남자는 싱긋 웃으면서 계속 말했다.

­이번만 특별히 나온 걸세. 직접 사과하고 싶었거든.

사과? 웬 사과?

모르는 사람에겐 뭐든 함부로 받지 말라고 했는데.

그건 그렇고, 이 과자 맛있네.

이거 메린도 좋아할 텐데.

……

………메린.

정말로 나는, 널……

­그래, 그거. 그간 그런 같잖은 소리들을 듣게 해서 미안하네. 내 불찰이야. 자네가 아무리 기행을 벌인다 해도, 혼자 대답만 계속할 만큼 미치진 않았는데 말야. 하, 진작에 알아차려야 했는데…….

……뭐지?

굉장히 정중한 사과인데, 왠지 조금 울컥하는 것 같아.

저게 진정 어린 말이라는 게 더 빡쳐……!

­아까 들은 말은 전부 흘려버리게. 놈은 일부러 비틀어서 말한 거야. 자네는 누군가를 일부러 이용할 만큼 계산적이지 않아.

남자의 목소리엔 굉장히 굳은 확신이 담겨 있었다.

나를 굉장히 잘 알고 있기라도 한다는 듯이.

­알지. 자네가 여행을 시작하기 전부터 지켜봤거든. 응? 언제부터? 당연히 비밀이지!

그리고는 과자를 하나 집어먹으며 킬킬 웃기 시작했다.

아오, 저 놈의 비밀주의, 진짜 돌아버리겠네!

근데 그 비밀이란 말보다도, 저렇게 웃고 있는 게 더 열받는다.

아, 딱밤… 딱밤 갈기고 싶어……!

하지만 그 바람이 이루어지진 않겠지.

그런 이유 모를 강한 예감에, 나는 남자에게 딱밤을 놓으려 하는 대신 과자를 와작와작 씹었다.

그보다…… 아까 그 말은 일부러 비튼 거라고?

그 목소리는 내 양심 같은 게 아니었단 건가?

­당연히 아니지. 카엘, 양심은 말을 못해. 이후에 누가 자네의 양심이라면서 말을 걸거든, 가까운 신전에 가서 기도를 받게나. 자네 옆에 있는 사제에겐 하지 말고. 철퇴 휘두를 거야.

양심이 아니라면 뭐였던 거야?

그 의문에, 남자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이 시기에 자네를 괴롭히는 존재가 무엇이겠나? 여하간, 자네의 영혼에 붙어있던 파편을 없앴으니 이제 놈이 자네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못할 거야.

흠, 아무래도 그간 진짜로 잡귀… 악마가 내 속에서 지랄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조금 전에 날 신나게 비난하던 목소리도 그렇고.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전부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 정체불명의 남자는, 아까 그 말들이 일부러 비튼 것이라 했다.

그 말은 즉, 무언가 기반이 되는 사실이 존재한다는 뜻 아닌가?

나 스스로도 생각했듯이, 내가 메린을 만나서 이런저런 덕을 본 건 사실이다.

과장이 좀 들어가서 그렇지, 어쨌든 나 좋으려고 메린을 이용했다는 건 맞는 말일지도 몰라.

하지만……

내가 메린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건……

­부정하고 싶지? 부정해도 돼. 자네의 그 마음은 사랑이 분명하니까.

남자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생물이 무언가를 이용하는 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이지. 아니면 번식하거나. 놈이 말한 건 그런 종류야.

하지만 카엘, 자네는 달라. 그 아이를 위해선 죽음도 불사하지. 메린을 죽인 뒤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이고 말야. 그건 생물의 사랑, 번식본능에서 오는 욕구가 아니야. 사람이 표할 수 있는 사랑의 형태 중 하나이지.

……그 말에 확신했다.

평소에 잊을 만하면 속삭이던 목소리.

이따금 고개 숙이라고 알려주기도 하던 그 속삭임의 주인이,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다는 것을.

이 여정의 끝에서 내가 무엇을 할 생각인지는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으니까.

메린은 당연하고, 로나에게도 말하지 않은 상태이다.

사람 심리를 잘 읽는 녀석이고, 지난번에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으니 이미 눈치채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 그럼 이 양반은 설마……

­어허, 떽! 아직 때가 안 됐다니까? 엄청나게 뻔하긴 하지만, 언급하면 안 되네.

남자는 빙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휘적휘적, 망토자락을 휘날리면서 호수로 다가가 그 안을 힐끗 살피고 돌아오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농어와 꼬치고기처럼 멀쩡한 물고기만 있어. 아니, 그럼 그 기행과 발언은 대체 어디서 솟아나는 거야?

정체를 밝힐 수 없는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뒤, 한 손에 과자 여럿을 올리며 말했다.

­슬슬 깨어날 때로군. 다시 말하지만, 자네는 위선자가 아니야. 이유가 무언지 아나?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해도 그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고 있었기 때문일세. 이웃에게도, 메린에게도.

진심을 담은 순간, 그것은 위선이 되지 못한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과자를 우물거렸다.

­심상풍경에서도 차와 과자를 내주는 자네가 악질이라고? 말도 안 되지. 자네는 굳이 따지자면 그거야. 엄청나게 싫어하는 그거.

그래도 내 말이 믿기지 않는다면 메린에게 한 번 말해보게. 자네가 그 아이를 이용한 것 같다고 말야. 내가 그 기억은 또렷이 남겨줄 테니 한 번 해봐.

기억을 남겨준다고?

어째 다른 기억은 지워버린다는 의미로 들리는데?

­아니, 오늘 꾼 악몽도 포함해서 애매하게 흐트러뜨릴 걸세. 지독하긴 했지만, 다른 악몽처럼 정신이 금이 갈 정도로 끔찍한 건 아니니까.

남자가 자리를 벗어난 탓인지, 주변 풍경이 점차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남자는 그 변화를 인지할 수 있는 듯이 주변을 슥 둘러본 후, 나를 향해 살짝 손을 흔들었다.

­그럼 계속 수고하시게, 용사. 여태껏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자넬 지켜보겠네.

지켜본다……?

아…………잠깐 있어봐.

저 양반이 내 속에서 내가 하는 걸 다 지켜보고 있던 거라면.

­응?

내가 메린이랑 이런저런 것들 할 때도, 전부 다 보고 있었다는 거 아냐……?

실제로 지난번에 그러고 있는 중에 속삭이기도 했잖아?!

­………

………

­수고하시게!

관음증 새끼가 눈 깜짝할 새에 사라졌다!!

이런 썅, 저거 지금 인정한 거나 다름없잖아!!

아아아아! 아무리 초월적인 존재라고 해도 그렇지,

“뭘 맘대로 보고 있어, 이런 씹……”

“엉? 나?”

“엉………?”

어라, 풍경이 달라져 있네.

왠지 머릿속도 멍하고.

방금까지 분명…………

…………어디에 있었더라?

잘 떠지지 않는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움직이자, 아름답기 그지없는 눈동자 두 개가 멀뚱멀뚱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라…… 메린……? 여기 어디야……?”

“여관 방. 근데 자는 얼굴도 보면 안 되는 거냐? 말을 하지. 몰랐잖아.”

“어…? 아니, 봐도 되는데…. 왜? 내가 뭐라고 했어……?”

“아, 잠꼬대였구나. 그럼 됐어.”

슥슥.

메린은 무언가 혼자 납득했는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부스스 일어나, 내가 튜닉과 바지라는 굉장히 간소한 차림으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는 걸 확인한 다음, 다시 침대에 앉아 있는 메린에게 시선을 향했다.

으응……

뭔가 물어봐야 하는 거 같은데………

아, 생각났다.

“메린.”

“어.”

“내가 너 이용해먹고 있대. 너 방패막으로 써먹고, 네 몸만 탐하고 있는 악질 쓰레기 새끼래. 네가 보기에도 그러냐?”

“……꿈에서 들었냐? 평소에 얼마나 쓰레기 같은 생각을 했길래 그래?”

황당함과 질색함이 뒤섞인 눈빛을 마구 쏘면서 대꾸하는 메린.

녀석의 눈빛이랑 말이 가슴에 푹푹 꽂히는 것 같다.

어흑… 존나 아파…….

그뿐 아니라, 녀석이 저렇게 쳐다보니 내가 병신이 된 거 같은 기분도 든다.

우으…그래도 나름 심각하게 물어본 건데…….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탓에 평소보다 더 큰 타격을 받아버린 나는, 바들바들 떨면서 메린에게 말했다.

“엄청 어이없는 거 이해하는데… 진지하게 물은 거니까 솔직히 대답해줘…….”

“존나 쓸데없는 데에 진지함을 쓰는구나. 그런 건 아껴뒀다가 좀더 적절한 때에 꺼내 써.”

“너 설마 그게 대답이냐…? 아니지…? 말로 그만 때리고 대답해줘…….”

내 말에, 메린은 건조한 눈으로 나를 뚱하게 보다가 천천히 눈을 감더니, 생각에 잠기기라도 한 듯이 그대로 잠자코 있었다.

……잠시 후, 그녀가 서서히 눈을 뜨고 나를 마주보았다.

내가 왠지 모를 긴장에 마른 침을 삼키는 것과 동시에, 정갈하게 닫혀 있던 그녀의 입술이 느릿하게 열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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