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4화 〉 366화 : 마음을 다잡는 휴식 (1)
* * *
결혼? 안 본 지 석 달 조금 안 된 사이에……?
이 누나가 이렇게 질러버리는 성격이었던가?!
슐 누나는 내 표정에서 무언가 읽었는지, 멋쩍은 듯이 뺨을 긁적였다.
“헤헤, 놀랐지? 그렇게 됐어. 자세히 얘기해주고 싶긴 한데, 일이 있는데다 시간도 늦었으니 내일 하자. 아, 혹시 내일 떠나니?”
“아뇨. 사흘 정도 묵을 생각이에요.”
“그래? 잘됐다! 그럼 내일 같이 점심 먹자! 다른 일행분이 계시면 같이 와서 소개해주고!”
그러면서 이번엔 내 손을 꼬옥 감싸 쥐었다!
우와, 이 누나가 원래 이렇게 적극적인 성격이 아니었을 텐데?
“어어, 네, 한번 물어볼게요. 어디로 가면 돼요?”
“치료사집으로 오면 돼. 시장 중간 즈음에 있으니 찾기 쉬울 거야! 와아, 진짜 반갑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니!”
들뜬 목소리로 소리치며, 슐 누나는 내 손을 놓더니 이번엔 메린을 꽉 껴안았다.
누나도 누나이지만, 메린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누그러지는 걸 보는 것도 꽤 신선했다.
메린 녀석, 혹시 내가 껴안아도 저런 표정이었을까?
포옹할 땐 얼굴 못 보니까 알 길이 없단 말이지…….
잠시 후, 누나는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녀석과 마주보며 그 뺨을 두 손으로 감쌌다.
“너 그새 엄청 예뻐진 거 같다? 카엘은 그대로인데, 우리 메린은 그간 무슨 일이 있었길래 미인이 됐나 모르겠네?”
“이것저것.”
“후후, 말투는 똑같구나. 그래, 둘 다 내일 꼭 와서 얘기 들려줘! 꼭이야!”
고개를 끄덕이는 우리에게 방긋 웃은 후, 슐 누나는 팔짱을 끼고 있는 여주인에게 다가갔다.
“미안해요, 언니. 이제 가요. 티미 씨, 일어나실 수 있어요?”
“으으……”
여전히 신음만 하는 남자를 능숙하게 부축하며 걷기 시작하는 슐 누나.
남편이 치료사인 것 같은데, 그간 같이 환자를 돌보기도 한 듯했다.
이야~ 찻주전자와 잔이 든 쟁반도 버거워하던 그 누나가, 자신보다 더 키가 큰 남자의 어깨를 부축하면서 성큼성큼 걷고 있다니.
왠지 감회가 새로운걸?
홀로 웃으며 메린과 다시 앉아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조금 전에 들었던 우중충하고 싸늘한 기분은 어느새 전부 날아가 있었다.
“진짜 깜짝 놀랐어. 이런 데서 슐 누나를 만날 줄이야.”
“응…… 언니가 결혼했을 줄은 몰랐어.”
너무나도 뜻밖이어서 혼란스러운 걸까?
메린의 목소리는 약간 가라앉아 있기까지 했다.
어쩌면 고향에서 자신을 반겨줄 사람이 하나 줄어들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뭐, 어때.
어차피 고향은 여기보다 더 짧게 머물 텐데.
길어봤자 이틀일 거고, 그 다음은 산으로 가서………
“………”
기습적으로 뻗쳐온 비통함을 조용히 눌러버렸다.
지금은 때가 아니야.
내가 메린에게 직접 말한 것처럼, 뭐든 때와 장소를 적절히 가려야 하는 법이라고.
사과주 한 모금과 함께 그 감정을 삼켜버린 후, 나는 아직 잔뜩 쌓여 있는 돼지고기 한 덩어리를 쭉 찢어, 왠지 조금 침울해져 있는 듯한 메린에게 내밀었다.
“아.”
“……”
말없이 나를 보다가 받아먹는 메린.
나는 자연히 볼록해진 뺨을 살짝 두드려준 뒤, 내 몫의 고기를 입에 넣으며 말했다.
“내일 슐 누나 집에 갈 때, 뭐 선물 들고 가자.”
“선물?”
“응. 결혼식 못 갔잖아. 그러니 선물이라도 해야지.”
엄마는 항상 누비이불을 선물했고, 아버지는 맥주 한 통을 식장에 보내시곤 했다.
나는 그만큼 친한 사람이 없어서 여태 넘어갔지만, 슐 누나에겐 간간이 도움을 받은 것도 있는 만큼 무언가 꼭 주고 싶었다.
근데 뭐가 좋을지 모르겠네…….
“누비이불도, 맥주도 안 되잖아. 뭘로 해야 되지?”
“와인은 되는 거 아냐? 과일은 맺히잖아.”
“그런가? 그럼 와인이랑 또……”
저녁을 먹는 내내, 메린과 무슨 선물을 가져갈지 이야기를 나눴다.
와인 외에도 선물할 만한 물건을 몇 개 생각해야 했는데, 내일 실제로 뭘 구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처음으로 결혼 선물을 준다는 사실에 들뜬 것도 있어, 결국메린과 목욕까지 마치고서야 겨우 선물 후보들을 정할 수 있었다.
슐 누나가 있을 치료사집엔 점심 때에 가면 되니, 내일 날씨가 좋으면 아침에 빨래를 하고나서 시장에 가기로 했다.
그렇게 결정을 내린 뒤,
“아까 오일 하니까 생각났는데.”
“엉?”
오늘 하루치 기록을 마치고 침대에 들자, 웬일로 일기쓰기를 일찍 마치고 먼저 뒹굴고 있던 메린이 말을 걸었다.
“몸에 바르고 안마하면 더 효과를 볼 수 있는 것도 있댔어. 내일 가서 물어보자.”
“엥? 왜?”
“왜긴, 임마, 네 그 지랄맞은 근육 때문이지! 매일 해도 모자란데 띄엄띄엄 하니까 풀릴 것도 안 풀리잖아. 야, 말 나온 김에 엎드려. 아까 낮에 너 잘 때 하긴 했는데 한 번 더 하자.”
나 잘 때는 무슨. 날 강제로 잠재웠을 때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런 사소한 걸 지적할 때가 아니다.
또 안마라니, 으으, 오늘만큼은 절대 안 돼!
“누누이 말하지만 굳이 해줄 필요,”
“좋은 말할 때 엎드려라.”
“………싫다면요?”
“이유는 들어주고 재워줄게.”
지극히 덤덤한 표정으로 허공에 손날치기를 때리는 메린.
세간에선 이걸 협박이라고 한다.
무서운 자식 같으니.
그래도 이건 기회야.
그간 내가 거절하든 말든 억지로 엎드리게 해서 말 못했는데, 오늘은 이유를 들어준다잖아.
설령 녀석이 개소리로 치부한다 해도, 이번에 확실히 전해야 해!
굳게 다짐한 뒤, 도끼눈을 뜬 메린을 마주하며 등을 꼿꼿이 폈다.
이유 모를 긴장이 흐르며 손이 떨리기 시작한다.
그를 팔짱 속에 감추고 마음을 다잡듯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런 다음, 조용히 목을 가다듬고서 천천히 말을 꺼냈다.
“안마받으면 자잖아. 그래서 싫어.”
“……”
“……”
“……어? 그게 다야?”
황당하다는 듯이 묻는 메린.
고개를 끄덕이니 눈썹을 구기면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와, 신기해라.
그냥 눈만 마주하고 있는데 왠지 ‘미친놈 아냐?’라는 말이 들리는 거 같아!
“네가 잠드는 거 보는 게 내 낙이란 말야. 아니면 잘 자라고 인사라도 해야 되는데 그것도 못하고.”
“그래서 싫다?”
녀석의 눈빛이 한층 더 건조해졌다.
음, 곧 어처구니없어 하면서 욕할 것 같……지 않아.
왠지 저 입이 삐죽 나오면서 삐칠 거란 예감이 강하게 들고 있어!
근데 왜 토라지게 되는지는 개미 눈곱만큼도 짐작이 안 가!
……뭐, 아까도 그랬듯이 모르면 맞아야지, 어쩌겠는가?
“네가 나 생각해서 해주는 거란 건 알아. 몸도 가뿐하게 되니까 좋기도 해. 근데…… 솔직히 말하면, 그간 몸은 좋아도 속이 계속 허전했어.”
“……”
“길 가는 중엔 잠자기 직전 말고는 둘만 있을 시간이 없잖아. 그 짧은 때만이라도 같이 얘기하고 싶은데…….
네 이마에 키스하면서 잘 자라고 해주고, 네가 옆에 없어서 아쉬운 걸 내일 다시 만난다는 기대감으로 달래면서 잠들고 싶다고.”
하지만 안마를 받게 되면 의식이 중간에 툭 끊겨버린다.
깨어 있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몸이 노곤해지면서 눈이 바로 감겨버린다.
그 뒤에 다시 깨면 곧바로 아침인데 옆에는 아무도 없으니까, 전부 꿈이었던 게 아닐까 하는 허망한 마음에 울적해지곤 했던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밤낮으로 몬스터에게 시달린 탓에 비몽사몽이 되어서 그냥 뻗어버리거나.
한 마디로,
“……쭉 쓸쓸했어. 더는 싫어.”
외로웠다.
단순히 허리 아래의 욕구만 쌓였던 게 아닌 것이다.
“쓸쓸했다고? 낮엔 같이 있었잖아.”
“……그걸론 안 돼.”
함께 길을 가고, 한자리에서 같이 식사를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건 그냥 길동무이니까.
그녀가 매일 내 열을 재고, 싸움이 끝나면 가장 먼저 나에게 달려오고, 꼬치구이나 수프를 나에게 먼저 건네는 걸로도 충분하지 않아.
그건 그냥 친한 사이랑도 할 수 있는 거 아냐.
전에는 그걸로 만족했겠지.
하지만 이젠 아니다.
“우리 애인 사이잖아?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더 오래…… 그런 사이로서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아~세…가 아니라 떡치기?”
“아니야, 임마! 아까 말했잖아, 같이 얘기하면서 시간 보내고 싶다고! 그보다 그거 말고 다른 말 써!”
“그럼 빠…… 아, 알았어, 안 할게! 음, 아무튼 네 말은 이거냐? 아까 한 판 하기 전처럼 껴안으면서 노닥거리고 싶은데, 내가 너 주물럭대면 퍼자니까 싫다. 맞아?”
……말씨 때문인가? 좀 미묘하게 다른 것 같은데.
어쨌든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뜻은 전해진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점점 더 메말라가던 메린의 표정이 다시 확 풀렸다!
토라지려는 조짐이 없어진 건 좋은데, 진짜 뭐 때문에 삐치고 풀어지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네.
여하튼 기분이 풀린 듯한 메린은, 다시 덤덤해진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근데 안마는 해야 돼.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더 빡세질 텐데, 몸이 뻐근해서 움직임이 둔해지면 더 위험해질 거 아냐. 적어도 돌덩어리 느낌이 안 날 때까진 풀어야 한다고.”
“그래도……”
“그리고,”
녀석은 내 말을 툭 끊어먹으면서 엷게 웃었다.
“나 있잖아, 네가 점점 퍼져서 푹 잠드는 거 보는 게 좋아.”
“……”
“네가 그렇게 푹 자고 일어나서, 아침에 훨씬 움직임이 가벼워진 거 보는 건 더 좋고. 너 그러는 거 볼 때마다, 속에서 뭐가 막 올라오면서 웃음이 나와. 또 해주고 싶어져. 전대 사범님한테 배우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고.”
다시 그 감각을 되새기기라도 하는지, 녀석은 시선을 약간 돌리면서 히죽 웃었다.
그 두 눈동자 속엔, 기쁨을 비롯한 여러 감정이 별처럼 반짝거리고 있다.
……이럴 땐 시인들이 부러워.
나도 그 사람들처럼 세상을 말로 그리는 재주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럼 저녁 노을을 품은 바다처럼 감정이 잔잔히 물결치는 네 주홍빛 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런 눈으로 나를 생각하는 네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말해줄 수 있었을 텐데.
지금 네가 느끼는 그 감정에도 좀더 낭만적인 이름을 붙여줄 수 있었을 테고.
하지만 난 글을 쓸 줄만 알지, 꾸밀 줄은 몰라.
너의 그 넘칠 듯한 감정을 짧게 줄여서 정의하는 것 말고는 못해.
“음…… 생각해보니 다른 때에도 그런 거 같다. 네가 내 요리 잘 먹을 때도 그렇고, 저번에 네가 늑대들 수월하게 상대하는 거 봤을 때도 그렇고. 음식하길 잘했다, 너한테 훈련시키길 잘했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웃음이 나오고 가슴이 두근거려. 전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 들어서 그러네.”
“뿌듯하구나? 보람도 느끼고.”
……내가 봐도 참 재미없는 말이다.
그런 면에선 네가 감정을 잘 몰라서 다행이야.
지금 너에게 필요한 건 사전적인 말이니까.
“으응…… 그런가? 뿌듯…한가? 맞는 거 같기도 한데. 그리고 보람…… ‘어떤 일을 한 게 만족스러운 것’이었지?”
“어. 그걸 한 사람이 네 자신이라고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고.”
“그럼 맞아, 보람 느껴. 너한테 뭐 해줘서 네가 좋아하는 거 볼 때마다 뿌듯해.”
“………”
정말 단순한 말인데.
그 안에 담겨 있는 감정이 진해서 그런 걸까?
왠지 마음이 벅차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엉? 너 우냐?”
“………아니, 하품한 건데.”
“아, 그래. 아무튼 난 너 안마해주고 싶어. 앞으로 얼마 안 남았잖아. 해줄 수 있을 만큼 다 해주고 싶어.”
“………”
약간 샐쭉한 표정으로 말하는 메린.
녀석의 그 말에 또 다시 울컥 솟아서 도로 고개를 숙여야 했다.
………비겁한 자식.
그런 소리를 하면 내가 안 들어줄 수가 없잖아.
이 상황에서 녀석과 마주보면 또 한바탕 해버리겠지?
그래서 그냥 철퍽 엎드려 누워서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엉? 자려고?”
“……안마해주고 싶다며? 맘대로 해.”
“어, 진짜? 진짜 해도 되는 거지?”
“그래, 실컷 해. 생각해보니 이 상태로도 얘기하려면 할 수 있을 거 같아. 아, 그리고……”
길게 들이켠 숨과 함께 눈물을 꿀꺽 삼켜버리고서 고개를 돌렸다.
들뜬 듯이 입가를 실룩이는 메린.
억지로 웃으려고 하면 도리어 터져버릴 거 같아, 나는 일부러 부루퉁하게 툭 내뱉었다.
“끝나면 꼭 깨워라. 잠 깨서 다시 못 자게 되더라도 인사할 거야. 인사는 꼬박꼬박해야 하는 거니까!”
“그래, 알았어.”
“꼭이야!”
“아, 알았다고. 근데 다시 못 자는 일은 없을걸? 내가 재워버리면 되는 거잖아. 안 그러냐?”
……재워버린다고?
나 이제 안마받는 날마다 손날치기 맞는 거야?
내 팔자 왜 이래?
다른 의미로 마음이 무거워진 나.
그런 내 속도 모른 채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하는 메린.
로맨틱함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밤의 시작.
그러나 그 끝에 찾아온 달콤함은 다른 연인들에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할 수 있다.
……날 다시 재워버리겠다더니, 아예 머리 껴안고서 신나게 쓰다듬을 줄이야.
푹신푹신한 감촉과 포근한 온기가 온 몸을 휘감으니 잠이 다시 깰래야 깰 수가 없었다.
잘 자.
또 한 번 나지막이 들려온 목소리.
저절로 입꼬리가 느슨하게 풀리는 걸 느끼며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