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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386화 (386/475)

〈 386화 〉 368화 : 마음을 다잡는 휴식 (3)

* * *

너 잠깐 좋아했었어.

새신부가 해선 절대 안 되는 말일 텐데, 슐 누나는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입에 올리고 있었다.

심지어 점심을 먹으면서 그 이야기를 계속하기까지 했다!

“진짜 엄청 예전 일이야. 이삼 년 전인가? 그것도 ‘아, 그랬었구나’ 하고 나중에나 알아차린 수준이었어. 당연히 아무에게도 말 안 했고! 그런데 이이가 술 취해선 ‘당신이 다른 사람을 마음에 둔 것 알아요. 하지만 난 당신이 아니면 안 돼요. 나는 안 되나요?’라고는 우는 거야!

언제 그랬게? 무려 승급시험 합격 축하해주는 중에 그랬어! 다른 사람들도 다 있는데! 세상에, 난 이미 이이랑 약혼한 걸로 되어 있었는데, 내가 뭐가 되냐고!”

“여보오…….”

기어가는 목소리로 누나를 부르는 브랜.

우리가 선물한 크랜베리 와인처럼 얼굴이 새빨개져 있다.

슐 누나가 그를 보며 고소하다는 듯이 웃는 걸 보니, 그간 은근히 시달리고 있던 모양이었다.

“요즘도 술 취하면, 가끔 내가 그 놈보다 꼭 행복하게 해줄게~ 같은 소리한다? 과자 구웠을 땐 맛있다고 하면서도 왠지 표정 미묘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이라고 몇 번을 말해도 안 믿는 거 있지?”

“으……”

“내가 무슨 귀족 아가씨도 아니고, 좋아하는 사람 뻔히 두고 왜 다른 남자랑 결혼하겠어? 안 그래, 카엘?”

“아하하………”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슐 누나 편을 들면, 저 사람이 몰래 내 밥에 물약 넣을지도 모르니까……!

한참을 더 불평한 후, 누나는 속이 시원하다는 듯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런 뒤, 그새 말라붙은 순무가 된 듯한 브랜을 향해 환히 웃으며, 스튜 국물을 찍은 빵 조각을 내밀었다.

“자요, 여보, 아~”

“………”

어디서 많이 본 광경인걸?

브랜이 여전히 빨개진 얼굴로 받아먹고, 그걸 누나가 보면서 키득키득 웃는 것까지 엄청나게 익숙한 구도였다!

음음, 이렇게 그냥 보기만 하면 꽤 훈훈한 모습인데, 직접 당하면 엄청 쪽팔린단 말이지~

게다가 브랜은 공개적으로 난도질을 당한 직후이니…….

전에 메린에게 과자랑 밥이랑 먹여졌던 게 떠오르면서 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그 와중에 콕콕, 내 옆구리를 건드리는 손길.

의도가 뻔히 보였다.

“야, 카엘.”

“안 해읇?!”

대뜸 입이 막혀버렸다!

바싹 익힌 감자의 고소함. 약간 시큼한 크림의 향.

이 둘이 어우러진 고향의 풍미가 입 안에 가득해진 건 좋은데, 느닷없는 공격에 놀라서 숨이 막힐 뻔했다!

“……크흡! 으, 뭐하는 거야, 목 막힐 뻔했잖아?!”

쉰 목소리로 빽 소리지르자,

“좋은 말로 할 때 안 하니까 그렇지.”

“그래, 카엘. 그게 뭐 어떻다고 안 받아주니? 심지어 우리가 먼저 하기까지 했는데.”

“슐 말이 맞아요. 생각해서 주는 거니 받으셔야죠.”

갑자기 세 사람이 한 몸이 되어서 날 까기 시작했다!

뭐지? 죽을 뻔한 건 나인데, 왜 내가 까이는 거야?

안 받아준다고 입 안에 억지로 쑤셔 넣은 게 문제 아냐?

그건 뭐, 정당방위야?

안 되겠다, 상식이 더 박살나기 전에 화제를 돌려야지.

나는 와인으로 목을 축인 다음, 재미있다는 듯이 웃고 있는 슐 누나에게 말했다.

“근데 진짜 깜짝 놀랐어요. 갑자기 결혼하셨다니! 게다가 한 달 전……. 와, 브랜 씨에게 한눈에 반했나봐요?”

“후후, 브랜에겐 미안하지만 아니야. 좋은 사람이니까, 그냥 같이 있는 동안에 좋아졌어. 음, 사실 일이 좀 있긴 했는데, 궁금하면 이따 얘기해줄게.”

좋지 않은 일이었던 걸까?

누나의 미소엔 약간 씁쓸함이 섞여 있었다.

“슐…….”

브랜도 그 일을 알고 있는지, 누나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걱정스러운 눈길로 보고 있었다.

그러자 슐 누나가 그 손을 살며시 두드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난 괜찮아요. 그 일 덕에 당신이랑 결혼할 결심이 서서, 이렇게 잔뜩 사랑받으면서 살게 됐는걸. 내 애정을 독차지하고 싶다고 질투하는 것도 보고!”

“……몇 년 동안이나 당신의 관심을 받았잖아요. 부럽다고요.”

브랜이 툭 내뱉더니 단숨에 잔을 비워버렸다.

그런 뒤에 잔을 놓으면서 나를 힐끗 쳐다보는데, 치료사가 아니라 살수의 눈빛이 떠올라 있었다……!

우와, 진짜 내 잔에 뭐 넣은 거 아냐?!

“어머, 누가 들으면 내가 아주 쟤를 수발든 줄 알겠어요!”

기가 막히다는 듯이 말하면서, 슐 누나가 그의 잔을 다시 채워주었다.

“실제 시간을 따지면 당신을 더 오래 보살피고 있는 셈일걸요? 정말이지, 애초에 당신이 좋으니까 이렇게 따라나온 건데. 이제 자기 여자에게 믿음 좀 갖죠? 슬슬 정말로 화날 거 같아.”

“……미안해요. 이제 다신 그럴 일 없을 거에요.”

……정말인가?

나 여기서 계속 뭐 먹고 마셔도 되는 거겠지?

혹시 모르니 내일 로나한테 봐달라고 해야겠다.

그래도 브랜의 속이 풀린 건 사실인 듯했다.

긴 숨을 내쉬고서 나를 보는 그의 눈엔, 방금 엿보인 것과 같은 살벌한 기색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사실 카엘 씨에 대한 건 형님께 들어서 알고 있었어요. 마음씨 고운 슐이 당신을 돌보는 것도 당연하죠. 저 역시 치료사입니다. 당신이 건강히 지내는 걸 보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해요.”

……잘 모르는데다 질투까지 했던 상대인데.

그런 사람이 멀쩡하게 다니는 걸 보게 되어 다행이라고, 그는 정말 진심으로 말하고 있었다.

좋은 사람이구나.

누나가 좋은 짝을 만나서 정말 다행이야.

“감사합니다. 슐 누나가 당신처럼 좋은 분과 결혼해서 정말 다행이에요. 두 분이 참 잘 어울리세요.”

“하하, 고맙습니다. 어울리는 건 두 분도 마찬가지인데요? 그럼 우리, 서로 천생연분을 만난 걸 기념해서 건배할까요?”

“응, 좋네! 건강하게 다시 만난 것도 기념해서 건배하자!”

차앙—

네 개의 잔이 서로 맞부딪치며 울리는 맑은 소리.

입 안에 감도는 크랜베리 와인의 상큼한 향.

귀를 울리는 즐거운 웃음소리.

정성이 담뿍 느껴지는 요리들.

주변을 경계할 필요도, 어떠한 염려도 할 필요 없이,

그저 음식과 대화를 즐기기만 하면 되는 시간.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가득 채워지는 듯한, 정말로 따스한 시간이었다.

식사를 마친 후, 브랜은 다시 일터로 돌아갔다.

와인 두 잔을 깔끔히 비웠으면서도 흔들림 없는 모습으로 손을 흔드는 게 좀 인상적이었다.

그 정도는 물 마시는 거나 다름없다니, 치료사들은 다들 술이 센가보다.

“자, 마셔봐.”

“고마워요.”

달그락.

슐 누나가 내온 찻잔을 들고, 향기와 함께 한 모금 들이켰다.

와인의 취기조차 가라앉히는 상쾌함이 몸 속을 휩쓰는 듯했다.

“그럼……”

누나는 나와 메린을 한 번씩 번갈아 본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 듣고 싶니? 내가 왜 결혼을 결심하게 됐는지.”

“아뇨, 그다지……. 별로 좋지 않은 일이었던 거 같던데, 굳이 말 안 해주셔도 돼요.”

슐 누나는 지금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서 사랑받고 또 사랑하면서 살고 있다.

그것 외에 굳이 무엇을 더 알아야 하겠는가?

좋은 추억이면 또 몰라, 딱히 그렇지도 않은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의 위로로 치유되는 상처도 있지만, 그저 조용히 묻어두는 게 최선인 것도 있다.

설령 본인이 그 상처를 내보이길 바란다 해도, 결코 호기심을 가져서는 안 되는 법이다.

“후후, 여전하구나. 네 그 상냥하고 배려심 넘치는 무관심…… 두 달 넘는 여행으로도 바뀌지 않았네.”

“……”

“항상 그랬지. 메린 말고는 누구에게도 관심을 두지 않았어. 전부 거리를 두고 대했지. 나한테도 그렇고.”

“……그래도 누나에겐 감사하고 있어요.”

두지 않던 거리를 두기 시작했는데도, 누나는 변함없이 항상 친절하게 대해줬다.

뭔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젓지도 않았고, 원래부터 가까웠던 것처럼 친근하게 다가오지도 않았다.

그저 인사를 주고받고, 이따금 도움도 주고받는 친절한 이웃.

슐 누나는 그 이상이 되려 하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주었다.

그게 굉장히 편해서 무척이나 고마웠다.

……그래서 더더욱 누나가 날 좋아했었다는 말에 놀랐다.

내가 사람들에게 거리를 두던 것처럼, 누나 역시 나에게 거리를 두었으니까.

뭐, 이젠 아무래도 좋은 일이지만 말야.

여전히 슐 누나는 나에겐 고마운 사람이다.

“알아. 그러니 선물 준 거잖니? 와인에, 보(?)에, 향초에, 차까지……. 차는 카엘, 네가 직접 마시는 거이니 괜찮다지만, 다른 건 무리한 거 아냐? 아직 여행 중이잖아.”

“괜찮아, 이 놈 돈 많아. 신전에서 돈 줬거든.”

아니, 누가 들으면 교단한테 돈 받고 일하는 줄 알겠네!

나는 황급히 메린의 말을 보충하고 나섰다.

“지원금이에요, 지원금. 그리고 오해 마세요. 그 돈 안 쓰고, 제 돈으로 산 거에요.”

“폐허에서 주운 거지만.”

“시끄러, 임마!”

……이 마을에 오는 도중, 몬스터 때문에 무너진 마을을 두 곳쯤 지나게 되었다.

그때마다 그 폐허에 남아있는 몬스터들을 해치워야 했고, 그래서 한숨 돌리며 재정비하는 김에 조금 살펴본 것이었다.

방치된 시신도 묻어주고.

“장례비 받은 거나 마찬가지이죠, 뭐.”

“그 사람 돈이란 보장은 없지만.”

“너 이 자식, 자꾸 정론 꺼내고 그럴래? ……흠흠, 아무튼 걱정 마세요. 여비가 모자란 건 아니니까.”

와인 외에는 그렇게 비싸지도 않았고, 그 와인도 포도로 담근 게 아니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었다.

처음엔 포도주를 생각했지만……

술을 선물한다면 필히 식사 때에 마시게 될 터.

역시 점심에 포도주를 마시는 건 좀 그렇지.

“누나야말로 무리하신 거 아니에요? 박스티에 파이까지……. 밀가루 요즘 귀한 거 같던데요.”

“괜찮아~ 우린 아직 아이가 없으니 여유 있어! 그리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랑 메린인데, 아낄 게 뭐가 있겠니?”

“아끼세요. 아껴서 남편 더 드리세요, 부인.”

그래야 아끼는 동생이 독을 안 먹지 않겠는가?

아까 눈빛은 진짜 무서웠다고.

“어머, 남편 건 당연히 가장 먼저 챙기지. 그러고 남은 거 준다는 건데?”

“대놓고 부스러기 준다고 하시네? 우리 아끼는 거 맞아요?”

“그럼~ 아끼고 말고~”

누나는 찻잔을 기울여 한 모금 마신 뒤,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너희 둘을 데리고 고향을 버리고 싶었을 정도야.”

“……”

“물론 좋은 사람도 있고, 친구도 있지만…… 그래도 지독한 곳이잖아? 몸에도 안 좋고.

거길 나오니까, 아침에 일어날 때 머리가 아프지 않더라. 매일 상쾌하고 개운해. 그래서 더 기운이 솟는 거 같고. 카엘 너도 그렇지 않아?”

“……네, 그렇더라고요.”

자면서 별의별 꿈을 다 꾸는 만큼 개운하지는 않다.

그래도 아침에 머리가 지끈거리지 않는 건 사실이지.

맨날 기침하면서 깼었는데 그렇지도 않고.

무엇보다도, 뭐 막히는 느낌 없이 숨이 쉬어진다는 게 놀라웠다.

“진작에 나왔어야 했어. 카엘, 특히 너는 더더욱.”

“……”

“너에겐 미안한 게 많아.”

찻잔을 매만지는 누나의 시선은 잔 속에 머물러 있다.

찻물에 무언가 비쳐보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고개를 약간 숙인 탓에 드리워진 그늘처럼, 누나는 약간 어두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언니랑 동생이 그런 짓한 것도 그렇고…… 정말 미안해.”

“……누나 잘못 아니잖아요. 그런 말 마세요.”

“그래도 미안한걸. ……아주 많이.”

슐 누나는 무언가를 버리듯이 길게 숨을 내쉰 후,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니 부탁이야. 카엘, 네 일이 끝나거든 메린이랑 같이 고향을 떠나. 거기 머무르지 마.”

“……왜요?”

물론 거기 살 생각은 추호도 없다.

기적이 일어나건 말건, 카엘 에스트렐의 삶이 그곳에서 계속 이어질 일은 없다.

그럼에도 이유를 물은 건, 고향을 떠나라는 누나의 표정이 되게 진지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슐 누나는 친절한 이웃이 아닌 다른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왜 거길 떠나야 해요?”

“너희 편이 없으니까.”

“음, 아예 없진 않을 텐데요.”

“한 줌만으로도 영향을 발휘하는 건 독뿐이야. 그 외에 다른 어떤 것도, 한 줌만으론 아무 의미도 없어. 알잖아?”

일체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누나는 메린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그 사람들에게 넌 무기였어, 메린. 마을 일원이 아니라, 사람처럼 말하고 움직이는 칼이었지. 그래서 무서워했던 거야. 언제 바깥이 아닌 자신들을 향할지 몰랐으니까.

그러니 넌 지금 고향으로 가면, 굉장히 환영받을 거야.”

안 그래도 몬스터가 많던 곳이다.

울타리 하나 없이 살 수 있던 지역에도 몬스터가 넘치게 됐는데, 평소에도 드글거리던 곳은 어떻겠는가?

자신이 결혼식을 올리는 순간에도 다른 집에선 입관을 하고 있었다.

누나는 그렇게 담담히 말했다.

“어쩌면 네가 카엘이랑 같이 산에 가는 걸 막을지도 몰라. 며칠간 몬스터 좀 잡은 다음에 가라고 하겠지. 그리고 일이 끝나면, 전처럼 널 무서워하고 멀리할 거야. 그래도 좋아?

카엘, 넌 그 꼴을 두고 볼 수 있어?”

“……”

못 본다. 절대로.

이미 평생 용서 안 할 거라고 메린에게도 말했었다.

그리고, 슐 누나는 이미 내 대답을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넌 못 봐, 카엘. 너는 절대 잊지 않으니까. 산등성이조차 깎아내는 세월도, 네 원한만큼은 절대 지우지 못해. 내 동생은 당연하고, 널 건드리지 않은지 한참 된 뮤티 언니도 여전히 밉지? 메린에게 그런 말을 했던 우리 어머니도 밉고.”

“그건……”

“당연해. 사과를 듣지 않았으니 용서할 필요는 없지. 그런 사람들과 계속 살 수 있겠어? 한두 명도 아니고,마을 전체가 탐탁지 않을 텐데. 안 그래도 공기 나쁜 곳이니 언젠가 숨이 막힐 거야.”

굳이 네 스스로를 그런 불행에 밀어 넣을 필요 없잖아?

슐 누나는 그렇게 덧붙이곤 호로록,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런 뒤, 조용히 읊조렸다.

“너에게 독을 먹인 곳이야. 살 데가 못 돼.”

“……그러고보니 동료 사제님이 그러셨어요. 제가 몸이 안 좋은 건, 몬스터들이 내뿜는 독기 때문이 아니겠냐고.”

“맞아. 근데 그걸 너에게 직접 먹였어. 그러니 얼마나 더 안 좋았겠니?”

나지막이 말한 촌장님의 다섯째 따님은,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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