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393화 (393/475)

〈 393화 〉 375화 : 조금 특별한 인형사 (3)

* * *

연이어 찾은 시장.

대다수의 피난민이 마을을 나가서 그런지, 어제에 비해 꽤 한산한데다 분위기도 조금 밝아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제는 가게와 가게 사이의 틈이나 골목에, 초췌한 몰골의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게 보였는데.

이제 그곳에는 서리가 녹으면서 생긴 축축한 웅덩이뿐이다.

광장에 나와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곤 전부 밖에 나갔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바깥……

……메린과 로나가 같이 가긴 했지만, 그래도 피 보는 걸 피할 순 없겠지.

로나는 어쨌든, 메린은 제 몸을 던져서 생판 모르는 사람을 지킬 녀석이 아니니까.

하…… 제발 녀석이 누군가를 버리고 오는 일이 없어야 할 텐데.

그게 최선의 선택이란 걸 알아도, 녀석이 덤덤하게 그 이야기를 하는 거 보면 울컥할 거 같아.

근데 진짜 괜찮을까?

메린 녀석, 낯선 사람이랑 거래는 할 수 있어도 잡담은 못하는데.

사람 여럿이 모일 때, 그중 하나는 꼭 쓸데없이 유들유들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길 가는 중에 귀찮게 하거나 오크랑 싸우는 모습을 보고, 또 이상하게 추켜세워질지도 몰라.

물론 로나가 있으니 괜찮겠지. 그걸 아는데도걱정이 사라지지 않으니 웃긴 노릇이다.

머리 둘 달린 오우거가 거대 곰을 타고 튀어나오지 않을까 하는 망상도 기웃거리고!

사람들과 말썽이 생기진 않을까, 예기치 못한 사태에 맞닥뜨리는 게 아닐까.

자꾸만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흔들고 있었다.

……안 되겠다. 이러다 엉뚱한 거 사겠어.

나는 살펴보던 면포(??)를 내려놓고, 공연히 눈두덩이를 매만졌다.

……뭐든 과하면 좋지 않은 법이야.

웃음도 너무 많으면 사람이 가벼워보여서 좋지 않은데, 걱정은 얼마나 더 해롭겠나?

메린은 세 살 먹은 애도 아니고, 누구에게 속아넘어갈 만큼 어수룩하지도 않다.

누가 꼬장부린다고 주눅들거나 겁먹긴커녕 그 놈을 땅에 묻어버리는 성격이고 말야.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려고 하면, 분명 로나가 중간에 껴서 도와주겠지.

로나는 어떤 면에선 나보다 더 메린을 잘 아니까, 나와 달리 녀석이 삐치는 일 없이 잘 풀 수 있을 거다.

그러니 괜찮아. 메린은 별일 없이 무사히 돌아올 거야. 로나도 그렇고.

설령 일이 있었고, 그 때문에 메린이 침울해졌다면 열심히 위로해주면 되지.

굳이 걱정해야 한다면, 녀석이 전리품이라며 오크 이빨을 뽑아오는 것 정도이다.

“……”

어이씨, 진짜 할 거 같은데?

이빨들 뽑아서는 산의 부족민들이 하던 거 괜찮아 보였다면서 목걸이 하나 만들 거 같아.

아니면 위슨이 걸고 다니거나.

………그러고보니 위슨 녀석이 생각보다 늦다. 어제 저녁이면 도착할 줄 알았는데.

혹시 정령의 힘을 빌리면 눈 깜짝할 새에 갈 수 있다면서, 느긋~하게 약재료 캐면서 오고 있는 거 아냐?

블루벨도 괜히 요리 망치고서 내가 알려준 대로 한 거라고 우기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거, 왕 암살미수죄 뒤집어씌우는 거 아냐.

진짜 그랬기만 해봐, 드래곤한테 가자마자 먹이로 던져버릴 거다.

……그렇게 일어날지도 모르는 걱정을 하는데, 왠지 마음이 점차 차분해져 갔다.

한 명에게 쏠리던 불안을 쪼개고 쪼개서 그런가?

잘 모르겠다.

홀로 어깨를 으쓱인 뒤, 주인장에게 면포를 잘라 달라고 부탁했다.

포목점을 나와, 메린이 주문했던 물건들을 찾으러 갔다.

우선은 이불가게.

관련 업종이라 그런지, 포목점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메린의 이름을 대면 되나 했는데,

“어서오세…… 아, 그때 그 젊은이! 이제 괜찮은가봐요? 전엔 여기저기 피 범벅이어서 깜짝 놀랐어~”

“……예.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그 아가씨가 맡긴 거 찾으러 온 거죠? 여기, 담요 가져가세요!”

이불가게 주인도 그렇고,

“으응? 어이구, 시체 같던 젊은이잖아? 허허, 어제 그쪽이 걸어다니더란 말 못 믿었었는데 진짜였구만? 그때 어디 아팠던 거요?”

“……제가 열에 좀 약해서요.”

“아, 일사병? 하긴, 요 밖은 그늘이 잘 없으니 그럴 수도 있겠군. 조심해요. 가는 데는 순서 없다고들 하니까. 여기, 아가씨가 맡겼던 거 가져가시오.”

가죽세공사도 내 얼굴을 보자마자 바로 알아보는 것이었다!

아니, 말 등에 얼굴 처박고 있던 거 아니었어?

뻗어 있는 얼굴 다 보이고 다녔나, 왜 내 얼굴 외우고 있는 거야?!

으윽, 신경 쓰여……!

어떻게 기억하는 건지 한 번 물어볼까?

그렇게 입을 열려다, 그냥 인사만 하고 가게를 나와버렸다.

……세상엔 빛 뒤나 땅 속에 묻어버려야 하는 진실도 있는 법.

괜히 우울해지기만 할 테니 그냥 모르는 채로 살자.

작게 한숨을 쉬며 터벅터벅 길을 걸었다.

문득 시계를 보니, 이제 오전 열한 시다.

인형가게 주인은 점심 이후에 오라고 했으니, 대강 두 시나 세 시에 가는 게 좋을 터.

음……그때까지 뭐하지?

벌써 점심 먹는 것도 그렇고, 여관에 갔다가 다시 나오는 건 더 꺼려진다.

그럼…… 시장이나 다시 돌아볼까?

어제는 눈에 안 들어왔던 게 있었을지도 모르니까.

그래, 그게 좋겠네.

고개를 찬찬히 끄덕이며 걷다가,

“………”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읏?!”

허공을 끌어안으며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는 남자.

그 발목을 차서 걷어올렸다.

놈이 턱을 찧으며 쓰러지는 순간,

“컥!”

등을 밟고 내려다보았다.

약간 낡은 튜닉, 잔흉터가 나 있는 팔뚝.

덩치도 좀 있는 거 같은데 불량배인가?

“돈 뜯으려고?”

“이 새끼……! 아악!”

내 다리를 잡으려는 손을 밟아버리고 다시 등에 발을 올렸다.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누구 하나 나서지 않는 걸 보니, 그다지 인망 있는 놈은 아닌 듯했다.

“아니면 다른 용건이라도 있나? 강도 짓만 아니면 괜찮아. 근데 돈 뜯으려는 거였다면,”

등을 밟은 발에 힘을 주었다.

쥐어 짜는 듯한 비명이 들려왔다.

“정신적 충격에 대한 배상을 해줘야겠어.”

“이… 날강도 새끼……!”

“돈 없어? 그럼 그쪽 동료한테 받지, 뭐.”

말을 마치자마자 옆으로 물러서면서 발을 내밀었다.

툭.

무언가 걸리는 느낌과 함께, 몽둥이를 든 남자가 앞으로 넘어졌다.

방금까지 내가 밟고 있던 놈 위로, 한치의 오차도 없이.

깔린 놈은 좀 아프겠군.

“……”

여전히 시선이 느껴진다.

더 있어.

골목? 가게 사이의 틈새? 잔뜩 쌓인 나무상자 뒤? 아니면 짐수레 바닥에 숨어 있나?

어쨌든 여기는 안 돼.

상관없는 사람들이 다칠지도 몰라.

특히 슐 누나가 휘말리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용건이 있으면 따라오든가.”

“으윽, 무, 뭐야?”

정신이 없어서 못 들었나보다.

딴 놈들이 들었겠지, 뭐.

그러니 꾸물댈 시간 없다.

무언가 또 느끼기 전에, 나는 제자리에서 땅을 박차며 앞으로 뛰었다.

바닥에 깔린 놈의 머리 위를 넘고서 다시 땅을 딛자마자,

그대로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잡아!!”

“놓치지 마!!”

무수한 발소리가 뒤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우와, 몇 명인지 모르겠지만 진짜 할 일도 없네!

지금은 오전 열한 시.

각자의 공간에서 한창 일에 매진하고 있을 시간이다.

이때가 시장이 가장 한산할 때인데, 그나마 공간을 메우고 있던 피난민들도 없어져서 한층 더 휑해져 있다.

그래서 마구 뛰기 좋긴 한데, 나만 좋은 게 아니란 말이지?

“으억!”

사각에서 달려드는 놈의 팔을 꺾어버리며 뒤로 던져버렸다.

육중한 게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에 이어, 여러 사람이 당혹에 찬 신음을 뱉는 게 들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계속 길을 따라 앞으로 내달렸다.

드물게 있는 행인과 최대한 부딪치지 않도록 몸을 돌리며 지나가고, 가게 앞에 세워진 짐수레를 뛰어넘는다.

골목에서 튀어나오는 몽둥이를, 거의 눕다시피 몸을 낮추고 바닥을 주르륵 미끄러지며 피한다.

건물 벽을 차서, 대놓고 앞을 막는 놈의 머리 위로 지나간다.

상자나 짐들이 쌓여 있는 곳, 천막 없이 가판대만 펼쳐져 있는 곳을 넘어다니며 건너편에서 건너편으로 끊임없이 오간다.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쉬지 않고 달릴 것.

장애물을 만들어낼 것.

몇 년 전, 무시무시한 술래를 피하면서 체득한 기초 생존법이었다.

……뭐, 그때 열 살도 안 된 술래에겐 안 통하고 매번 잡혔지만.

그래도 효력이 있는 건 분명했다.

“악!”

우지끈!

“어윽?!”

그때의 메린보다 열 몇 살은 더 먹었을 어른들은 굉장히 화려한 소리를 내고 있었으니까.

뭐가 막 부숴지는 거 같은데, 내가 배상해야 되는 건 아니겠지?

“거기 서!!”

“저기 간다!”

그런데도 여전히 추격은 그치지 않았다.

그래도 중간부터는 사람을 심어 놓지 않았는지, 골목에서 뭐가 튀어나오지는 않는다.

아무도 없다면 내가 들어가버릴까?

잘하면 따돌릴 수 있을지도 몰라!

결론을 내리자마자 옆으로 홱 틀어서 골목으로 뛰어들었다.

좁은 길모퉁이를 돌고 또 돌아서, 마침내 사람 따돌리기 좋아보이는 갈림길이 나온 순간,

쨍그랑!

“?!”

갑자기 병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불이 화륵 타올랐다!

그것도 양쪽 길 전부!

이 냄새, 기름인가?

화염병까지 쓴다고?!

곧이어 머리 위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몸을 틀어서 피하자마자, 후드를 쓴 놈이 착지하며 바닥에 몽둥이를 때렸다.

반사적으로 놈의 멱살을 잡고, 내가 들어온 길 쪽으로 던져버렸다.

“어이구…… 꽤나 하는구만.”

숨을 고르면서 낄낄 웃는 남자.

골목이라 그늘이 껴서 잘 보이지 않지만, 인상이 재수없다는 것과 놈의 머리카락이 금빛인 건 알 수 있었다.

이야기속 남녀 주인공은 굉장히 착하고 멋진 금발을 만나던데, 왜 난 맨날 재수없는 놈만 만나는 거지?

이러다 금발에 염증 나겠어.

놈은 심지가 바깥으로 나와 있는 병을 흔들며 씨익 웃었다.

“근데 우리도 그리 호락호락하진 않거든. 하하, 알아서 골목으로 들어와주다니 참 고맙기도 하지.”

“용건이 뭔데? 돈?”

“물어볼 게 있다. 순순히 협조해준다면, 약간의 기부만 받고 보내주지.”

“기부? 하, 결국 돈이구만?”

하긴, 순수하게 뭘 물어보려는 사람이었으면 이런 개지랄을 안 떨었겠지.

개 같은 강도 새끼들……!!

“폭력으로 남의 돈이나 뜯는 불량배 새끼가 어디서 잘난 척이냐? 보나마나 맨날 술집 가서 술 존나 처먹고, 거기 여급 엉덩이 만지면서 비명 지르는 거 실컷 즐긴 다음, 매춘부랑 뒹굴고 점심쯤 기어나와서 괜히 지나가는 사람에게 지랄하고 돈 뜯으면서 살고 있겠지! 그러면서 세상 엿 같다고 푸념하고!”

“………”

껄렁거리던 금발 놈이 흠칫 놀라는 게 보였다.

그 뒤에 있는 놈들 중에도 몇이 수군거리는 듯했다.

정곡을 찔렸나보지?

건달 새끼들 하는 짓이 거기서 거기이지!

“엿 같은 건 세상이 아니라 너네다, 이 병신들아! 그냥 다 나가 뒈져, 씹새끼들아!!”

“애송이 새끼가 겁을 상실했나, 아주 죽여달라고 애걸을 하는구만? 너 지금 혼자야, 병신 새끼야. 몸 좀 쓴다고 혼자서 우릴 다 상대할 수 있을 거 같냐?”

하긴, 열 명은 조금 많긴 해.

검을 두고 와서 단도밖에 없는데, 칼로 공격하려면 바짝 붙어야 하잖아.

그러다 붙잡힐 게 뻔하다.

게다가 저 놈들도 나이프는 가지고 있겠지.

으으, 단도로 싸우는 건 안 배웠는데.

“하…… 네, 좋아요. 뭘 묻고 싶은데요?”

“엉? 갑자기 고분고분하네. 뭐, 간단한 거야. 너, 치료사집 여자랑 같은 동네에서 왔지? 용사에 대해 말해. 이름이 뭐고, 어떻게 생겼고, 이런 거.”

“싫은데요.”

“이 새끼가 장난하나?!”

금발 놈이 곧바로 인상을 구기며 윽박질렀다.

성실하게 살 생각도 없고, 돈도 별로 없는 놈이 인내심도 없네.

가진 건 머리카락이랑 몸뚱이뿐이구만?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놈에게 대꾸했다.

“용사는 드래곤을 잡아야 돼요. 그런 사람을 돕지는 못할 망정, 숨기고 있는 정보를 굳이 캐려고 해요? 그러다 용사에게 해가 가면 어쩌려고요?”

“내가 그걸 왜 신경 쓰냐? 난 돈만 받으면 그만이야. 드래곤을 잡는다고 나온 놈이니, 뭔 일이 생기건 지 몸 지킬 수 있어야 되는 거 아냐? 신상 좀 팔렸다고 당하면 그게 용사냐? 잡놈이지.”

그렇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답변 고마워. 후레자식아.”

“……이 새끼가 아까부터 오락가락이네?! 뜨거운 맛을 봐야 정신 차리지! 야, 이거 불 붙여!”

“저 새끼, 그 치료사집 여편네랑 아는 사이잖아. 게다가 같이 다니던 그 여자도 있고. 칼 좀 쓰는 것 같던데, 복수하러 쳐들어오면 어떡해?”

“하! 여자 혼자서 뭘 하겠냐? 쳐들어오면 잡으면 그만이야. 그런 드센 여자 깔아눕히는 재미가 또 기가 막히단 말이지? 그 치료사집 여편네도 맨날 따박따박 쫑알대는 게 거슬렸는데 잘됐네. 이번에도 따지러 온다면, 크크, 여자가 나대면 어떻게 되는지 교훈 좀 알려주자고.”

재미……?

교훈……?

………

……저 새끼 반드시 죽인다.

“어이구, 애송이가 기분이 상하셨나보네. 그래, 같이 있던 그 여자랑 좋~은 사이인 것 같던데, 좋은 게 있으면 나누는 게 사람 인심 아냐? 그러고보니 그 여편네도 가슴이 좀 크던데, 너네 동네 어디냐? 존나 좋은 곳이네.”

“………”

“어쭈? 거기 서는 게 좋을걸? 그깟 칼에 누가 쫄 줄 아냐? 불에 구워지고 싶지 않으면 거기 서라고. 야, 내 말 안 들려? ……아니, 왜 더 빨리 오는 거야, 거기 서라고! 미친 또라이 새끼가……! 야, 이거 빨리 불 붙여, 너넨 저 새끼 막아!!”

세 놈이 주춤거리며 금발 놈의 앞에 섰다.

조무래기 새끼들.

막는 놈은 전부 조져버릴 거다.

특히 저 노란 대가리, 반드시 멱을 따주마……!!

벽처럼 나란히 선 세 놈.

그 틈으로 보이는 금발 놈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대로 단도를 꽉 쥐며 땅을 박차는 순간,

“컥!”

“?!”

갑자기 가운데 놈이 고꾸라졌다!

뭐지? 하늘에서 뭐가 떨어진 거 같은데!

갑작스러운 상황에 저절로 발이 멈추었다.

가운데에 선 놈을 쓰러뜨린 새카만 덩어리는, 이윽고 양옆의 건달들을 후려쳐선 각각 벽과 바닥에 얼굴을 처박아버렸다.

“무, 뭐야, 웬 놈이야?!”

“미친놈 친구.”

짧은 중얼거림과 함께, 따악, 손가락을 퉁기는 소리가 울렸다.

이윽고 금발 놈을 포함해, 건달들이 전부 새된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귀, 귀이이이………”

“으어어어………”

두 귀를 감싼 채 구르는 모습.

굉장히 눈에 익숙한 광경이다.

따악, 녀석은 또 한 번 울린 손가락을 퉁기고는, 한숨을 푹 쉬면서 중얼거렸다.

“하여간 누나 얘기만 나오면 눈이 돌아가요. 혼자서 저걸 어떻게 다 상대한다고.”

“카엘다우니 좋지 않아요오……?”

여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긴 코트를 걸친 소년.

땅 속에서 걸어나와 그의 옆에 서는, 상쾌한 향을 풍기는 커다란 짐승.

“좋긴 뭐가 좋아? 어휴, 난 저런 어른이 되지 말아야지.”

녀석이 투덜거리면서 모자를 벗었다.

어슴푸레한 골목 속에 드러난 얼굴은, 말투와 달리 재미있다는 듯이 빙긋 웃고 있었다.

“안녕하셨어요, 카엘 형. 여전히 정신나간 짓을 하시네요.”

“히히~ 카엘~ 우리 왔어요오~”

신나게 꼬리를 흔드는 늑대 옆에서,

검은 옷의 마법사, 위슨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