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395화 (395/475)

〈 395화 〉 377화 : 조금 특별한 인형사 (5)

* * *

주위가 조용해졌길래 다시 가게로 들어가자, 은빛머리 여주인이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어머, 오셨어요~ 이쪽에 앉으세요. 금방 맛있는 차를 가져올게요~”

여주인은 어제와 같은 자리로 우리를 안내한 후, 어제와 같은 찻잔에 차를 내주었다.

그런 뒤, 카운터 안쪽에서 고운 빛깔의 선물상자를 들고 테이블로 돌아왔다.

“주문하신 인형 한 쌍이에요. 열어서 확인해보시겠어요? 후후, 개인적으론 여태 제가 만든 인형 중 가장 잘된 것 같아요!”

“예에, 그거 기대되네요. 근데……”

나는 찻잔을 내려놓고서 말을 이었다.

“어제도 인형놀이 하고 계셨어요?”

일순 정적이 내려앉았다.

와, 진짜 시간 멈춰버린 줄 알았어.

어떻게 눈썹 하나 안 움직이지?

“………호호, 호호호! 인형놀이라니요, 이 나이에 무슨!”

“어제 왔을 때도 인형에 둘러싸여 계셨죠?”

인형을 내려다보고 있진 않았지만, 옹기종기 모인 인형들과 함께 서 있긴 했다.

그때는 가게 곳곳에 전시되어 있는 인형들에 눈길을 빼앗기는 바람에 안중에도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도 혼자 놀다가 나와 메린이 온 걸 알아채고 멈춘 거 같아.

내 말에, 옆에서 차를 마시던 위슨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와, 진짜요? 그럼 손님 없을 때마다 혼자 그러고 있던 거야? 머리 하얗게 셀 만큼 나이 먹고서?”

“부업으로 인형극 하시나보지. 설마 그냥 놀고 계셨던 거겠어? 여기도 가을에 축제할 테니 그때 선보일 인형극 준비하시던 걸 거야.”

“인형극에 쓸 만한 내용이 아니었던 거 같은데요. ‘이 결혼 반대야!’라고 뛰어든 게 남자 주인공이면 또 몰라.”

“내가 어제 만난 인형극 아저씨가 그러더라. 요즘 애들은 자극적인 거 좋아한대. 딸 있는 거 숨기고 결혼하려다 들키는 것도 좋아할지 누가 알겠냐?”

쿵!

별안간 들린 큰 소리에 앞을 돌아보니, 여주인이 바닥에 엎드린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얼굴은 푹 숙여져서 보이지 않는데, 귀가 아주 새빨간 걸 보니 어떻게 되어 있을지 대략 짐작이 간다.

반응이 좋은걸?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혹시 인형극 처음 선보이는 건가요? 괜찮아요, 잘될 거에요! 아까 보니까 인형 되게 잘 조종하시던걸요!”

“우으으으……!”

“아, 대충 무슨 이야기인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제가 이야기를 좀 좋아해서요. 결혼식 난입한 다음엔 어떻게 되나요? 딸이 신랑 손잡고 달아나나요?”

“아으아아아……!”

“그러고보니 아까 인형 조종하는 거 실이 안 보이던데, 엄청 가느다란 거 쓰시나봐요. 손가락 하나당 인형 하나 다루시는 것도 아닐 텐데, 여러 개를 한 번에 조종하시고. 대단하세요!”

신부의 아버지인 듯한 인형이 결혼식장에 난입한 신랑의 딸에게 뭐라뭐라 할 때, 하객 역할의 인형들이 서로 수군거리고 있었다.

신부도 당황한 듯이 허둥대고 있었고.

반면, 신랑은 미동도 없이 그저 딸을 쳐다보기만 하고 있었다.

아마 신랑의 상황에 따른 연출이었겠지.

아무튼 손가락 열 개만으로 인형 여럿을 한꺼번에, 그것도 세밀하게 움직이도록 조종하다니 무척 놀라운 기술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진심으로 감탄한 건데,

“아, 그거?”

여주인이 아니라, 위슨이 찻잔을 든 채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마법이에요.”

“………뭐?”

마법? 내가 아는 그 마법?

마력이라는 힘을 이용해서 손으로 불도 쏘고 얼음도 날리고 하던 그 마법?!

그런 걸 할 수 있는 사람……

여자가, 왜 이런 마을에 있어?!

놀란 눈으로 다시 은빛머리 여주인을 보았다.

그녀는 엎드려 있던 몸을 천천히 일으키고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이쪽으로 향했다.

보랏빛 두 눈에 눈물을 글썽거린 채, 여주인이 샐쭉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내가 아닌, 위슨을 향해.

“역시 당신, 그 섬에서 왔군요?”

“섬을 아시나요?”

“왜 모르겠어요? 거기서 탈출했는데. 사십 년도 더 된 옛날이지만요.”

여주인은 의자에 털썩 앉아,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으며 훌쩍였다.

그리고는 약간 빨개진 눈으로 위슨을 날카롭게 쏘아보는데, 갑자기 사방에서 시선이 느껴지는 것과 동시에 묵직한 긴장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새 문화가 바뀌었나요? 사내가 멀쩡히 나다니다니 신기하네요. 아니면 당신의 주인이 자율적인 인형을 좋아하는 특이 취향인가요?”

“……특이하긴 했죠.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니지만. 어쨌든 섬 상황이 바뀌긴 했어요. 수장이 바뀌면서 마녀는 하나 빼고 봉인되었고, 노예들도 풀려났거든요. 시간 되시면 가보세요. 수장님이 반기실걸요.”

“……그래요.”

그 말에 안심한 건지, 긴 한숨을 쉰 여주인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러자 가게 안에 감돌던 긴장이 사그라들고, 곳곳에서 느껴지던 수많은 시선들도 함께 사라져버렸다.

“조금 흥미가 생기긴 하지만, 난 여길 떠날 수 없어요. 제약이 있거든요.”

“그래요? 그럼 수장님에게 얘기만 전해드릴게요.”

“고마워요.”

고개를 살짝 끄덕여 위슨에게 인사한 후, 여주인은 나를 향해 엷게 미소지었다.

“어제 말씀드렸지요? 저에겐 ‘특별한 기술’이 좀 있다고. 그 기술로 인형을 움직이는 거랍니다.”

말을 이으면서 그녀가 허공에 손짓하자, 어린아이만 한 인형이 뒤뚱뒤뚱 걸어오더니 그녀 앞에 찻잔을 놓고 안을 채웠다.

그런 다음, 가게 귀퉁이로 가선 털썩 주저앉고는 움직이지 않았다.

“마녀이셨던 건가요?”

“아니요. 의식을 치르기 전에 도망쳤거든요. 저는 조금 특별한 인형사일 뿐이랍니다. 그래도 제가 그 힘을 쓰는 건 비밀로 해주세요. 교단의 눈이 더 날카로워질지도 모르니까요.”

역시 교단은 알고 있구나.

그럼 뭐, 괜찮겠지.

교단이 감시하는데도 여주인의 인형은 마을의 명물로 알려져 있다.

마법으로 만든 인형이 어떤 말썽도 일으키지 않으니 가능한 것이리라.

근데 사십 년도 더 전에 마녀들에게서 탈출했다고 했던가?

그럼 지금 겉보기엔 얼굴에 주름 하나 없는 젊은 여인이지만……

“속은 인형놀이를 좋아하는 할머니……!”

“할머니?! 세상에, 이 탱탱한 얼굴을 보면서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어요?!”

“머리 하얗잖아요.”

“원래 이런 색이거든요!!”

“아, 그래요? 근데 인형놀이는 부정 안 하시네. 좋아하시긴 하나봐요?”

“아니야아아!! 추억을 되새겼을 뿐이란 말야아아!!”

절규하면서 테이블에 엎드리는 여주인.

이야~ 반응 진짜 장난 아니야!

놀릴 의욕이 마구마구 샘솟고 있어!

“형, 그쯤해요. 나중에 보복당할라.”

“응? 보복이라니?”

“액막이 인형에 왜 머리카락 넣게요? 그래야 주인의 분신이 되어서 재액을 대신 받거든요. 그걸 응용하면 인형이랑 주인을 연결시킬 수 있대요.”

일반적으론 저주를 거는데, 이따금 인형을 바늘로 콕콕 찌르거나 못을 팍팍 박기도 있다.

인형과 연결되어 있는 사람에게 그 감각이 고스란히 전해지므로,몸에 바늘이 푹푹 찔리거나 못이 박히는 고통을 그대로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와, 존나 음습하다…….”

“안 해요! 할 수 있지만 안 하거든요!”

엎드려 있던 여주인이 고개를 홱 쳐들며 발끈했다.

“아니면 여기저기 간지럼 태우거나 이상한 부분 만지거나.”

“추행까지……?! 히익!”

“왜 그렇게 보는 거에요, 그딴 짓 안 한다고요!”

“아니면 짐승이나 몬스터에게 던져서 갈기갈기 찢기게 하든가.”

“안 한다고 했잖아, 이 새끼들아, 주둥아리 꿰매버린다!!”

테이블을 쾅 내려치며 거칠게 소리지르는 여주인.

그 소란이 생각보다 컸던 건지, 별안간 가게 안쪽의 문이 열리면서 한 청년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어…… 또 무슨 일 있어요? 밑에 엄청 울리던데요.”

“으응? 아, 아무것도 아니란다. 호호, 호호홋! 미안해. 이 손님들이 너~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시는 바람에……! 소란 떨어서 미안하구나.”

중간에 우리를 보면서 눈을 부라린 것 같았지만, 여하튼 여주인은 젊은이에게 굉장히 사근사근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아래층이라……

인형가게 아래층은 양복점이던 걸로 기억하는데, 저 남자가 주인인가보네.

“아뇨. 별일 없으면 다행이고요. 활기차신 건 좋지만, 다치시지 않게 조심하세요, 누님. 나이도 있으신데.”

“얘는! 난 아직 파릇파릇한 아가씨라고!”

“예~예. 아, 말씀 계속 나누세요. 전 다시 내려가볼게요.”

청년은 우리를 향해 고개를 살짝 까닥이고 문을 다시 닫았다.

뒤이어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 걸 보니, 아래층으로 내려간 듯했다.

“동생이에요. 피는 안 이어졌지만, 절 돌봐주신 양아버지의 아들이니 제 동생이죠. 아버지의 뒤를 이어준 착한 아이이고요.”

“안 물어봤…… 어어, 음,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게 어제 주문한 인형이라는 거죠? 어디 보자~”

맞은편에서 웃는 얼굴로 눈을 부라리는 여주인의 시선을 피하며 상자에 손을 뻗었다.

안에 든 건, 한두 살 된 갓난아이만 한 크기의 소년과 소녀 인형.

서로 손을 맞댄 채 나란히 앉혀져 있었다.

“……”

……메린이다.

녀석이 어제의 옷차림 그대로 인형이 되어버린 거 같아.

나는 홀린 듯이 소녀 인형을 꺼내 들었다.

봉제인형인 만큼 전체적으로 둥글둥글한 모양이지만, 분위기는 정말로 메린 그대로였다.

주홍빛 눈, 갈색의 머리.

특히나 머리는 한 갈래로 길게 땋아 내린 모양에, 더듬이처럼 튀어나온 두 가닥의 머리카락까지 똑같았다.

그 밖에도 가느다란 목, 가녀란 팔, 그리고……

“……”

도담하게 솟은 두 언덕이……!

아니, 허리랑 골반은 보통 봉제인형처럼 거의 평평한 거나 다름없구만, 왜 가슴은 그대로 구현된 거야?!

내 시선을 받은 여주인이 손을 내저으면서 말했다.

“오해 마세요. 제가 아니랍니다. 인형이 고른 거에요. 머리카락 주인을 대신한다는 역할을 위해, 가장 두드러진 특징들을 받아들인 거죠.”

“아니, 가슴이 특징이라고요?”

“왜요? 그 크기면 특징이 되고도 남죠. 얼굴 파묻을 수 있을 것 같던데요? 솔직히 좋으시면서!”

“…………아니에요!”

일단 우기고 보았다.

으, 조금 전에 마신 차 때문인가?

얼굴이 약간 더워진 거 같아.

“참고로 그 인형도 옷 갈아입힐 수 있답니다. 안쪽까진 구현되어 있지 않지만, 뭐, 그렇다고요.”

알게 뭐야. 그딴 거 하나도 안 궁금해.

인형 옷을 벗길 수 있다는 걸 내가 알아서 뭐 한다고?

옷 만드는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왠지 어울릴 거 같아서 다른 옷도 만들어놨는데 말이죠~”

조금도 관심이 없어.

암, 일말의 흥미도 없고 말고……!!

“이런 드레스도 괜찮을 거 같던데요~ 셔츠에 바지 차림도 좋을 거 같고~”

가슴 언저리까지 깊이 파인 붉은빛 비단 드레스에 뾰족구두.

그리고 녀석이 평소에 입고 다니는 것 같은 하얀 셔츠에 가죽바지와 긴 부츠.

“이것들을, 당신이 직접, 입히는 거에요……!”

“내가, 직접……”

내 손으로 메린의 인형에게 옷을……?

메린을 닮은 인형의 옷을……

으아악, 아니야, 관심 없어.

난 그런 취미 없다고!!

“어때요? 특별~히 저렴한 값에 드릴 수 있는데.”

“으으, 돼, 됐어요, 필요 없어……!”

“그래요? 어머, 아까워라. 엄청 예쁘던데요. 지금 하고 있는 파란 브로치랑도 엄청 잘 어울리고요.”

여주인의 말에 다시 인형을 보자, 가슴팍에 연한 파란빛 보석 브로치가 반짝이고 있었다.

아, 이거 그 산호로 만든 건가?

되게 매끈매끈해졌네. 예쁘다.

이 브로치에 빨간 드레스…… 어울리긴 하겠네…….

하지만 아니야, 필요 없다고!

상술에 넘어가지 마라, 카엘 에스트렐!!

“지금 사시면 특별히 이 검 소품도 끼워드릴 수 있는데~”

“검……! 으으으……!!”

부드럽게 웃으며 속삭이는 여주인.

갑작스럽게 찾아온 고뇌에 씨름한 끝에,

“감사합니다~”

나는 패배를 인정하고 여주인의 손에 동화를 쥐어주었다.

……얼굴을 손으로 덮은 채.

젠장, 셔츠에 바지에 검이라니.

그거 입으면 완전 메린 그 자체가 될 텐데, 이걸 어떻게 참아?

아아……

남자는 정말 슬픈 생물이야…….

“이야, 이걸 넘어가네.”

위슨이 옆에서 중얼거리며 한숨을 푹 쉬었다.

어처구니없다는 감정이 팍팍 느껴지는 목소리이다.

이 자식, ‘상술에 넘어가다니 바보 아니야?’ 라고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해!

“시끄러, 임마, 네가 뭘 알아! 좋아하는 사람이랑 똑 닮은 인형이라고! 예쁘고 귀여운 차림을 실컷 볼 수 있는데 누가 참냐!!”

“아, 예. 그러시겠죠.”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그런다고!”

시큰둥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위슨.

하나도 안 믿고 있다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제기랄.

“그럼 이쪽은 형 인형인 거죠? 뭔 특징이 있나?”

“뭐 있겠냐? 머리 갈색이고 눈 파랗겠지.”

내가 보기에도 그거 말고는 딱히 특징이 없다.

위슨은 상자에서 소년 인형을 꺼내어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무언가 납득한 것처럼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딱 형이네요.”

“그러냐.”

“네. 되게 얼빵하게 생겼어요.”

“……”

확인해줘서 고맙다는 뜻으로 딱밤을 먹여주었다.

두 인형을 상자째로 배낭에 넣은 뒤, 이마를 문지르며 투덜대는 위슨과 함께 문으로 향했다.

여주인은 그런 우리를 배웅하면서 빙긋 웃었다.

“어떤 옷을 입히시건, 그 파란 브로치는 잊지 말고 꼭 달아주세요. 인형의 매력을 살려주는 필수 소품이거든요. 부적이 되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고요.”

“부적? 아, 액받이요?”

“후후, 맞아요. 브로치가 없어도 액받이는 할 수 있지만, 그게 있는 편이 효과가 더욱 크답니다. 그러니 꼭 달아주세요.”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향해, 여주인이 히죽 웃으면서 속삭였다.

“달아만 두시면, 무엇을 하건 강제로 안 떨어지니 안심하시고요.”

“………하긴 뭘 해요? 그냥 보기만 할 건데.”

“후후후후.”

아잇, 왜 웃는 거야.진짜 아무 짓도 안 할 건데!

인형 옷도 사긴 했지만, 진짜 내 손으로 갈아입히는 것도 못할 거 같구만!

의미심장하게 웃는 여주인을 내버려두고, 문을 홱 열어젖혔다.

“아무튼 예쁘게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중히 잘 두고 볼게요! 아무 짓도 안 하고!”

“다들 말은 그렇게 하죠.”

여주인이 별안간 두 손을 들고 가볍게 허공을 저었다.

그러자 가게에 전시되어 있던 모든 인형이 일어나서는 여주인의 주위로 하나 둘 모여들었다!

잠시 후, 여주인은 그 인형들과 함께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을 찾아주신 귀하신 분께 감사드립니다. 당신이 무사히 사명을 마치기를, 그 여정의 끝에 행복이 있기를 바라지요.”

“사명……? 어…… 혹시,”

“모를 리가 없죠? 저는 ‘조금 특별한’ 기술이 있으니까요. 후후, 인연이 이어져 있다면 또 뵙도록 해요. 빛의 대행자님.”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여주인.

그녀를 둘러싼 인형들도 모두 가볍게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건넸다.

소리 없는 열렬한 인사를 뒤로 하고, 계단을 내려와 다시 광장으로 나왔다.

“어떻게 안 거지……?”

“머리카락에서 기억을 읽었겠죠. 힘을 활용하면, 그 사람의 침이나 머리카락에서 기억을 읽어낼 수 있대요. 눈을 통해 엿보기도 하고요. 뛰어난 사람은 숨결만으로도 죄다 읽어버린다고 하던데요.”

그러고보니 장서관의 그 연륜 있는 마법사도 범인의 머리카락을 뽑았었지?

기억 어쩌고 하면서 말야.

“우와, 그럼 내가 산호를 가지고 있는 걸 알아낸 것도…….”

“그렇지 않을까요? 숨어 사는 것 치고는 꽤 강한가봐요.”

내용에 비해 무척 담담히 말한 뒤, 위슨은 나를 살짝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형은 이제 여관 가실 거죠? 전 좀 돌아다니다 들어가려고요.”

“그래? 아, 저녁 같이 먹을래?”

“됐어요. 괜히 방해꾼이나 되지. 두 분이서 오붓하게 드세요.”

“진짜 괜찮은데. 뭐, 맘대로 해라. 그럼 내일 성문 앞에서 보자.”

고개를 끄덕이고 저쪽으로 걷기 시작한 위슨.

나 역시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돌연 생각 하나가 머릿속을 번뜩이며 떠올랐다.

“아, 위슨, 잠깐!”

“응?”

녀석이 걸음을 멈추고 의아한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와, 큰일날 뻔했네.

속으로 가슴을 쓸며 녀석에게 다가갔다.

“네 배낭에서 뭐 좀 꺼내야 되는데 깜빡했어.”

“엉? 뭔데요?”

“그게 있지……”

잠시 후, 물건을 전달받은 나는 진짜로 녀석과 헤어져서 여관으로 돌아왔다.

겉보기엔 똑같지만 속은 훨씬 더 두둑해진 배낭을 내려놓고, 책상 위에 두 인형을 나란히 앉혀 두었다.

그런 다음, 크게 기지개를 켜며 창 밖을 내다보았다.

시간은 오후에 접어들었건만, 밖은 아직도 휘황찬란한 여름햇살이 내리쬐고 있다.

메린 녀석, 아직 숲 속에 있을까?

인형을 보고 어떤 반응을 할지 무척 궁금하다.

“……빨리 왔으면 좋겠다.”

저절로 떠오른 미소와 함께, 인형을 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