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6화 〉 378화 : 누나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끝낼게
* * *
때는 오후 다섯 시.
나와 메린은 각각 손에 자루를 들고서 시장 안을 걷고 있었다.
주위는 아직 한낮처럼 밝지만, 바람은 조금 열이 식혀져 있다.
저 멀리 내다보이는 하늘엔 아직도 노을이 낄 기미가 없이, 그저 푸르게 널리 펼쳐져 있을 뿐.
시계가 있었으니 망정이지, 까딱하면 지금 오후 한두 시밖에 안 됐다고 착각할 거 같아.
멍하니 그렇게 생각하며, 치료사집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하하, 두 분이시구나. 어서 와요.”
“응? 어머, 어서 와!”
선반을 정리하던 브랜과, 빗자루를 든 슐 누나가 같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역시나, 한창 영업을 마무리하고 있는 중인 듯했다.
“안녕하셨어요……. 내일 떠나니까 인사드리려고요…….”
“그렇구나,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음…… 근데 카엘, 무슨 일 있었어? 얼굴이 다 죽어가네? 어디 아파?”
“마음이 좀……”
“어? 혹시 둘이 싸웠니?”
놀란 눈으로 묻는 누나에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려는 순간, 메린이 한숨을 푹 쉬면서 불쑥 끼어들었다.
“쪽팔려서 이래. 이 새끼, 내 인형 안고,”
“와아아악! 쓸데없는 소리하지 마, 짜샤!! ……응, 별일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황급히 녀석의 말을 잘라버리며 멋쩍게 웃었다.
메린 이 자식, 날 끝장내버리려는 속셈인가?
용사를 적대하는 드래곤의 본능이 깨어나기라도 한 거야?!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그렇지, 내가 여기 오는 내내 쭈그러져 있는 거 봤으면서!
“인형……? 아, 인형가게 가셨군요? 굉장하죠?”
“네? 어어, 네. 장난 아니더라고요. 브랜 씨 덕분에 좋은 구경했어요.”
“그래. 나 닮은 인형 껴안고 헤벌쭉하는 시간도 보내고.”
“하하, 맞아, 되게 좋은 시간………………”
…………
…………죽자.
“………브랜 씨, 저거 벨라돈나죠? 좀 먹을게요.”
“네? 어, 잠깐잠깐잠깐, 손떼요, 카엘 씨!! 지금 치료사 앞에서 뭐하시는 거에요?! 여보, 얼른 빼앗아요!”
“카엘, 안 돼! 창피하다고 죽으면 안 돼! 그게 더 부끄러운 짓이라고!!”
“놔! 이거 놔아아!! 이 수치를 안고는 못 살아! 죽을 거야, 죽어버릴 거야아아!!”
내 손에서 독초를 빼앗고서 멀리 떨어지는 슐 누나.
그를 향해 필사적으로 팔을 뻗는 나.
그리고 그런 나를 붙잡고 반대쪽으로 떨어뜨리려는 브랜.
도통 수습이 될 것 같지 않은 이 난장판을, 메린이 멀거니 선 채로 정리해버렸다.
“수치…… 하긴, 진짜 못 볼 꼴이었지.”
……치명타를 날리는 것으로.
“다 큰 놈이 여자 인형 껴안고 헤헤 웃으면서 침대에 뒹구는 꼴은 도저히 못 보겠더라.”
“……으아아아앙!!”
결국 제자리에 엎드리고 말았다.
“이건 나라도 울겠네.”
“가엾은 카엘…….”
머리 위에서 내려오는 동정 어린 시선에, 마음이 한층 더 시큰거리는 듯했다.
지금으로부터 두 시간 전, 나는 굉장히 심심했다.
빨래 포함해서 짐 다 정리했지, 검이나 옷 손질도 다했지, 인형가게에 대한 기록도 끝냈지……
진짜로 할 게 없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책상 위의 인형이 눈에 들어온 건 당연한 수순이라 할 수 있었다.
그것도 그냥 인형이 아냐.
무려 메린을 닮은 인형이다.
무심한 눈초리에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것까지 똑 닮았는데, 봉제인형이라 둥글둥글해서 한층 더 귀여워진 얼굴이 나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굉장히 심심했다.
“……추억 되새기다가 기왕 옷도 샀으니 입혀보자 싶었고, 그 모습에 또 이것저것 떠올라서 이 녀석이 했던 말을 중얼거렸더니, 그때 일이 생생하게 생각나면서 웃음이 나오고…… 그러던 중에 이 새, 아니 이 녀석이랑 제 동료가 방에 들어와서 그만……!”
그렇게 들켜버린 것이었다.
메린과 로나에게, 내가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인형을 껴안고 침대 위를 데굴데굴 구르고 있는 모습을……!
으아아아악!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두 시간 전으로 돌아가서 하지 말라고 뜯어 말리고 싶다!!
폭소를 터뜨리면서 꺅꺅거리는 로나도 그렇지만, 메린의 그 눈빛……
마치 내가 고블린과 부둥켜안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보는 눈이었어.
말 그대로 정신이 실시간으로 조각나버리는 것 같았다!
“그치만 심심했는걸! 어제랑 똑같은 시간에 올 줄 알았는걸!! 삼십 분이나 일찍 올 줄 누가 알았겠냐고!!
흐윽…… 아니야…… 둘은 피난민들 때문에 숲 돌아다니고 고생하는데 나는 방에서……! 우으으, 난 쓰레기야!”
“아냐, 그런 소리 마, 카엘. 메린이랑 그 동료분만 나간 건, 넌 쉬라는 뜻이었던 거 아니니? 그래서 쉬었을 뿐인데, 뭘 그래.”
테이블에 엎어진 나를 다독이는 슐 누나.
흑, 역시 누나는 상냥해…….
“그래, 네가 그런 걸로 쉴 수 있다면야 뭐, 상관없어. 보기 좀 그래서 그렇지.”
“……”
그리고 여전히 메린은 가차없었다.
위로한다고 일부러 좋은 말을 골라서 할 생각 따위는 전혀 없다.
그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걸 그대로 말하고 있을 뿐.
“쓰레기가 아니라 그냥 눈 뜨고 못 볼 놈이었어. 괜찮아.”
“……어흐흑!”
그래서 더더욱 마음에 푹푹 박히는 것이었다!
진짜로 날 추잡한 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거니까!
“아냐, 메린. 본인은 조금 부끄러울지도 모르지만, 별반 이상한 일이 아니야.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인형을 예뻐하는 건 당연한 거야. 특히 그 가게의 인형은, 진짜 그 사람이랑 똑 닮게 만들거든.
나도 혼자 있을 땐 이이 인형에 뽀뽀하고 그러는걸? 이이도 내 인형에 하는 거 봤고. 얼마나 귀여웠는데.”
“뭐?! 아, 아니, 언제, 아니, 그게 아니라, 으으……!”
……본의 아니게 브랜에게 불똥이 튀고 말았다.
맞은편에서 열기가 느껴지는 것 같은데, 아마 착각이 아니겠지.
“그래? 난 못 보겠던데. 말 그대로 낯뜨거워서 빨리 치워버리고 싶던걸.”
“어느 쪽을? 카엘? 아니면 그 동료분?”
“엉? 어어…… 으응…… 모르겠어. 둘 다였던 거 같은데. 로나도 내보내고, 이 등신이 든 인형도 숨기고 싶었어.”
녀석의 그 대답에서 무엇을 본 건지, 슐 누나가 부드럽게 후후 웃는 소리가 들렸다.
테이블에 고개를 처박고 있어서 보이지 않지만, 누나의 얼굴엔 분명 미소가 떠올라 있겠지.
이따금 우리를 보면서 짓던 그 따뜻한 웃음 말야.
“그래? 카엘이 그러는 게 싫진 않았구나? 그렇지?”
“어…… 싫진 않았어. 오히려 웃겼는데, 로나랑 같이 그걸 보니까 쪽팔리더라. 얼굴이 따끈해졌었어.”
“로나라는 분이 없었으면 너도 웃었을 텐데. 창피하다는 거 말고 다른 생각을 했을 거고.”
“음…… 응, 맞아. 웃겼으니까, 이 녀석 놀리면서 놀았을 거야. 그리고…… 응, 인형 말고 나한테 하라고도 했을 거 같아.”
“어머머. 후후후, 우리 메린, 진짜 너무 솔직하다니까.”
그러게 말이에요.
어떻게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내뱉을 수 있는 걸까요.
“들었지, 카엘? 네가 부끄러운 게 아니라, 네가 그러는 걸 다른 사람이 본 게 부끄럽대. 인형한테 살짝 샘도 나고!”
들었다. 아주 똑똑히.
그래서 더더욱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쏟아졌던 눈물이 전부 말라버렸을 만큼 얼굴이 불타고 있었고,
……또 다시 눈물이 차오를 만큼 엄청 기뻤으니까.
쪽팔렸다고 했어.
내가 자신을 닮은 인형에게 애정표현을 하는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인 게 부끄럽다고.
그 말을 사전으로만 알던 메린이, 스스로 그 감정을 느끼고 그게 무엇인지 깨달은 것이다.
평범한 여자처럼.
다른 일반 사람들처럼.
어떻게 그게 기쁘지 않을 수 있을까?
……인형 대신 나에게 예쁨받고 싶다는 말이 기쁜 건 당연한 거고.
“샘…났나? 으응, 부러웠던 거 같은데. 이 녀석한테 꼭 껴안기는 거 좋거든.”
“어머나.”
………대놓고 말하는 건 안 부끄럽나?!
다른 의미로 눈물이 솟아오를 것 같았다!
“방에 돌아가면 나 보자마자 보고싶었다고 또 꽉 안아주겠지 했는데, 인형 보고 헬렐레 하고 있으니까 좀 욱하기도 하고.”
“하, 하하. 음, 왠지 듣는 제가 다 부끄러워지는데요.”
“그래도……응, 지금 생각해보면 좀 귀여웠던 거 같기도 해. 혹시 나도 이 녀석 인형 보면 저럴까 싶기도 했고.”
“그만… 그만해애…. 나 죽어…. 죽어버려엇……!”
바들바들 떨면서 애원하는 나를 향하는 두 시선.
여전히, 진한 동정심이 섞여 있었다.
그 후, 문 바깥에서 대강 서너 번의 심호흡을 하고 나서야 겨우 여기 온 목적을 수행할 수 있었다.
“뜻밖에 만난 거라 더 반가웠어요…. 누나가 행복해보여서 정말 다행이야…. 두 분, 다시 한번 결혼 축하드려요…….”
……어깨와 목소리는 축 쳐졌지만.
아마 표정도 조금 시들어져 있겠지.
슐 누나와 브랜은 그런 나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고마워. 나도 둘이 여전히 사이좋게 지내는 거 봐서 기뻤어. 특히 카엘, 여행길이 힘들 텐데 건강해보여서 정말 다행이야. 메린도 엄청 귀여워졌고!
얘기 다 들었어, 카엘~ 생각보다 정열적이었구나?”
“뭔 얘기 들은 거야…….”
“메린을 따라서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리고, 그 다음에 바로 고백했다며? 꺄아~”
“………”
진짜 죽을 거 같아…….
아니, 이 자식은 누나한테 뭐 그런 것까지 다 얘기하고 그런담?!
그래도 누나가 어느 사춘기 꼬맹이처럼 들떠 하는 걸 보니, 전부 다 말한 것 같진 않다.
“그리고 여행 끝나면 결혼하자고 했다면서? 날짜 정해지면 알려줘야 돼! 꼭 갈 테니까!”
우리가 이 여정의 끝에 맞이할 일을 알고 있다면, 누나가 이렇게 기뻐하며 웃지 못했을 테니까.
“와, 어머니 역할 해주는 거야? 고마워요!”
“언니 역할이라고 했잖아!”
“에이, 그러지 말고 어머니 해줘요. 이거 줄 테니까.”
메린에게 눈짓하면서 함께 자루를 내밀었다.
가게 입구에 잠시 두기도 했던 짐인데, 우리가 그걸 주는 것에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두 사람은 각각 하나씩 받아들었다.
“이게 뭔데?”
“고기. 야채도 좀 있어요. 지금 여기는 고기가 귀하잖아요? 둘이서 실컷 드세요. 친구분이랑 나눠 드셔도 되고.”
자루 공간의 대부분은 위슨의 배낭에 있던 생고기이다.
비록 소나 돼지 같은 가축보다는 늑대나 곰 같은 들짐승의 고기가 훨씬 많지만, 누나는 우리와 같은 놋지빌 출신이니 아무 문제도 없겠지.
실제로 누나는 자루를 들여다보며 깜짝 놀라기만 했다.
“뭐?! 아냐, 너희 아직 여행 중이잖아. 너희 먹어야지!”
“우리 몫은 충분해. 그러니까 주는 거야.”
특히나 고기는 언제든 보충할 수 있다.
메린이 그렇게 덧붙이자, 누나는 약간 곤란해하면서도 기쁘다는 듯이 방긋 웃었다.
“그래, 그렇겠구나. 메린 너는 그런 애였지, 맞아. 후후, 그럼 고맙게 받을게.
여보.”
응? 누나가 불현듯 브랜에게 눈길을 주었다.
브랜은 살짝 고개를 끄덕인 후, 문 안쪽에서 작은 꾸러미를 들고 오더니 내게 건넸다.
“왠지 답례 같이 됐네요. 이렇게 만난 걸 기념해서 준비했습니다. 받아주세요.”
“이러시지 않아도 되는데……. 이게 다 뭐에요?”
“메린 씨가 카엘 씨를 많이 걱정하시더라고요. 피로회복과 근육이완을 도와주는 오일, 숙면 효과가 있는 향초, 자양강장제와 정력제, 약간의 흥분을 일으키는 향초, 그리고 피부 미용을 위한 비누와 오일…… 뭐 그런 겁니다. 도움이 되실 거에요.”
와, 치료사라고 진짜 이것저것 챙겨주셨네.
미안할 지경인걸.
……근데 중간에 이상한 게 있지 않았나?
“……브랜 씨, 여기 뭐가 들었다고요? 숙면 향초랑 뭐요?”
“좋은 거에요, 좋은 거.”
“와, 고마워요!”
메린이 내 손에서 꾸러미를 낚아채듯이 가져가버렸다!
“아니, 잠깐, 중간이 이상하다니까?! 자양강장제 다음이 이상하다고!”
“아, 그래, 둘이 고향으로 가는 길이지?”
“어. 올라가는 중이야.”
“들을 생각 없구만?!”
혹시 미리 짜기라도 한 걸까?
세 사람은 아주 깔끔하게 내 말을 무시하고 있었다!
슐 누나는 정말 아무것도 못 들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나를 마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카엘, 만약 마을 사람들이 너에게 독을 먹인 의도가 궁금하거든, 네 아버지…… 에스트렐 씨에게 여쭤봐.”
“음…… 역시 아버지는 알고 계신가봐요?”
“아무리 우리 마을이 막돼먹어도, 남의 자식에게 허락없이 뭘 먹이진 않아.”
그건 그렇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궁금해지면 여쭤볼게요. 그럼 누나, 이제 더 없죠?”
“응? 뭐가?”
의아해하며 눈을 살짝 크게 뜬 누나에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켕긴다고 해야 하나? 누나의 언니나 동생 일이랑, 마을이 나한테 독 먹인 거 말고도 또 나한테 말 못한 거 있어요?”
“……없어. 너희는 있는 것 같지만 말야. 메린도 이야기 안 하는 걸 보면, 내가 알아서는 안 되는 비밀인 거겠지? 괜찮아. 나도 너한테 다 말 못한 게 있으니까.”
역시 전부 다 이야기한 건 아니구나.
녀석도 그 정도의 눈치는 있는 모양이다.
“그걸 알 수 있나봐요?”
“그럼! 내가 너흴 본 게 몇 년인데.”
“음음, 역시 어머니 역할이 딱 맞아.”
“안 한다니까 그러네! ……몇 년을 봤으면서도 네가 이렇게 짓궂은 애인 줄 몰랐는데, 어머니 역할을 어떻게 하겠니?”
샐쭉한 얼굴로 투덜거리는 슐 누나를, 브랜이 쓴웃음을 지으며 위로하듯 어깨를 토닥였다.
역시 잘 어울리는 한 쌍이야.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럼 어머니 역할은 자녀분 생기거든 실컷 하세요. 그 대신, 이제 나한테 미안해하지 마요, 누나.”
“……그건,”
“이제 그 집 식구도 아니잖아요? 누나는 이제 벤스가 아니니까.”
피를 이어받았으니 여전히 가족이긴 하겠지.
그래도 누나는 남편을 따라서 그 집을 떠났고, 또 성씨도 남편의 것으로 바꾸었다.
이제 누나는 촌장님 댁 다섯째 딸이 아니라, 치료사의 아내인 것이다.
“더는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처음부터 누나랑 상관없는 일이기도 했고요.
음, 그저께부터 이미 시작한 것 같긴 한데, 아무튼 이제 서로 허물없이 대하자. 진짜 누나동생처럼.”
“……!”
서로 선을 긋지 말자.
어쩌면 암묵적으로 동의했을 그 뜻을, 내 입으로 확실히 전했다.
누나는 고개를 홱 숙였다가 크게 숨을 들이쉬면서 다시 나를 보았다.
살짝 촉촉해진 두 눈으로 환히 웃으며, 누나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새삼스럽지만 고마워. 후후, 우리 애들에게 이렇게 좋은 삼촌이랑 이모가 생기다니, 정말 다행이야. 내년에 아기 보러 꼭 와야 돼! 네가 대부가 되어줘야 되니까!”
“내년……? 우와, 완전 작정했구만?!”
“그런 건 아닌데, 생길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하………”
메마른 웃음을 흘리는 브랜.
무슨 심정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그러고보니 이 누나, 메린에게 이런저런 지식을 심었었지?
매일 밤마다 행복해서 죽을 것 같겠구만.
진짜 말 그대로.
“브랜 씨도 감사했습니다. 걱정은 안 되지만, 그래도 누나를 잘 부탁드려요.”
“하하, 네, 맡겨주세요. 두 분 모두, 무사히 여행을 마치실 수 있기를 바랄게요.”
“고마워요. 그리고 음……… 힘내시고요.”
“네? ………아, 예. 카엘 씨도 지지 마세요.”
차마 전하지 못한 말을 눈빛으로 대신하며, 사나이끼리 굳게 악수를 나누었다.
건투를 빌어주는 마음을 한껏 담아서.
……오늘 밤도 각자 행복하면서도 고된 시간을 보낼 테니까.
“그럼 가볼게요. 누나, 건강해야 돼. 브랜 씨도 몸조심하시고요.”
“잘 지내, 언니. 브랜 씨, 고마워요. 잘 지내세요.”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우리를 향해,
“응. 너도 무사해야 돼. 메린도, 네가 센 건 알지만 그래도 조심해. 둘의 결혼식 초청장 기다릴게!”
“꼭 다시 만나요. 몸조리 잘하시고요.”
두 신혼부부는 환히 웃는 얼굴로 마주 손을 흔들어주었다.
조금 멀어지고서 살짝 뒤를 돌아보니, 서로 다정하게 어깨를 안으며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저렇게 사이가 좋으니, 첫 아이는 내년 가을에 태어나겠군.
……반드시 그렇게 되도록 할게.
그간 쭉 나에게 미안해했던, 그걸 이제야 겨우 다 털어놓은 누나가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그렇게 굳게 다짐한 뒤, 다시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내일부터는 또 여행이 이어진다.
왕국의 북쪽 끝, 그 너머에 있는 산을 향해.
……우리의 끝을 향해.
“……”
옆을 걷는 메린의 손을 잡았다.
머지않아 놓아야 하는 손이지만, 지금은 그때가 아니니까.
절대로 놓치지 않도록, 깍지를 끼며 힘있게 꽉 잡았다.
그러자 마주잡은 손가락들이 내 손등을 힘껏 껴안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서로를 붙잡은 채, 노을이 내려앉은 길을 걸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