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8화 〉 외전 8) 우린 사람이니까 (Side : Tiech) (2)
* * *
다음날, 점심이 조금 지난 오후라 훈련소에 아무도 없을 무렵,
“실례합니다.”
터진 훈련인형이 없는지 살피던 티치의 귀에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훈련소의 마당 한쪽에 세워진 시계를 힐끗 본 후,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았다.
목소리와 시간에서 예상한 대로, 마을의 필경사인 엘리아스 에스트렐이 울타리문 안에 발을 들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에스트렐 씨……”
평소대로 인사하던 티치의 눈에, 엘리아스의 옆에 선 작은 여자아이가 보였다.
갈색 머리카락으로 뒤덮인 얼굴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게, 주변을 살피고 있는 듯했다.
어제 조부의 말을 생각하면, 저 여자아이가 ‘짐승’일 터.
‘할아버지가 틀렸어.’
저건 ‘짐승’이 아니다.그를 뛰어넘은 무언가이다.
티치는 그 아이를 보자마자 확신했다.
왜냐하면,
‘짐승도 저런 꼬라지는 안 해!’
여자아이의 머리는 부스스한 걸 넘어, 혼자 폭풍이라도 맞은 듯한 꼴이었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당연하고, 곰이나 늑대도 저것보다는 더 말끔히 하고 다닌다.
저걸 ‘짐승’이라고 하는 건 그 녀석들에 대한 모독이다!
경악에 찬 눈으로 ‘무언가’를 보던 티치는, 엘리아스의 목소리에 흠칫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사범님 계시지?”
“어, 네……. 저기, 옆의 그 애가……?”
“음? 아아, 그래. 얘가 메린이란다. 우리 부부가 맡아서 이것저것 가르치기로 했지. 처음 보니?”
“네…….”
“앞으로 자주 보겠구나. 자, 메린, 인사하렴. 티치라고, 여기 사범님의 손자란다.”
‘무언가’는 별다른 움직임없이 티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머리카락이 눈을 가리고 있는 탓에, 티치는 ‘무언가’가 어떤 눈길로 자신을 보고 있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게 무척이나 다행스러웠다.
짐승조차 아닌 ‘무언가’의 눈 따위 보고 싶지 않다.
분명 꿈에 나올 만큼 끔찍할 테니까.
“……메린입니다.”
“어? 어, 음, 티치라고 해.”
‘말할 줄 아네.’
항상 숲을 쏘다니기만 한 것 치고는 발음도 제법 또박또박하다.
누군가 말상대가 있었던 걸까?
호기심이 일어서 더 물어보려는 찰나, 조부가 어제 했던 말이 티치의 머릿속을 스쳤다.
‘그것’은 사람의 가죽을 쓴 짐승이다.
‘맞아. 사람이 아니야.’
사람이 아닌 것에 품어야 하는 호기심은 단 하나뿐.
나를 해칠 의도가 있는가, 그 하나만을 생각하며 경계해야 한다.
티치는 큰일날 뻔했다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엘리아스를 올려다보았다.
“안으로 들어오세요. 할아, 사범님이 기다리고 계세요.”
“……그래, 고맙다.”
그리고 곧바로 몸을 돌려서 종종걸음으로 걷기 시작한 탓에, 티치는 알아채지 못했다.
자신을 보던 엘리아스의 눈썹이 조금 살짝 움찔한 것과, 그가 작게 한숨을 쉰 것을.
티치가 마당 맨 안쪽에 자리한 건물의 문을 열고 두 사람을 다시 돌아보았을 때엔, 엘리아스는 이미 평소의 차분한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쪽이에요.”
두 사람을 안으로 들인 후, 티치는 조부가 일러준 대로 두 사람을 지하로 안내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두 개의 방 중에 더 안쪽에 있는 문 안으로 들어섰다.
여기저기 움푹 패인 바닥과 벽.
중앙을 받치는 기둥 하나 외엔 아무것도 없다.
굳이 따지자면, 양손에 각각 목검을 들고 이쪽을 향해 서 있는 검술 사범, 그의 조부뿐이다.
엘리아스는 무언가 걸린다는 듯, 돌연 미간을 찌푸렸다.
그 상태로 조부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티치, 여긴 뭐하는 방이니?”
“여기요? 철퇴랑 전투망치 같은 거 휘두르는 곳이에요.”
“왜 여기에……?”
티치가 돌려줄 수 있는 대답은,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젓는 것밖에 없었다.
조부가 여기서 무엇을 할 것인지 그에게 알려주는 동시에, 그것을 발설해선 안 된다고 아주 단단히 이른 탓이었다.
“훈련장에 오는 이유가 달리 무엇이 있겠나?”
그때, 엄숙한 목소리가 방 안에 메아리 쳤다.
불현듯 울린 큰 소리에 흠칫 놀란 티치의 눈에, ‘무언가’가 작게 소리를 뱉으며 귀를 틀어막는 게 보였다.
보통 사람보다 귀가 예민한 모양이었다.
“검을 가르칠 생각이시라 들었습니다. 마당이나 이 위에서도 충분히 가능할 텐데, 왜 굳이……”
“어리석은 소리 마시게, 에스트렐. 목줄도 매지 않은 맹수를 누가 바깥에 풀어두나? 그것도 기운 팔팔한 놈을.”
“맹수……? 죄송합니다만 사범님, 무엇을 하실 작정이십니까?”
조부의 말에서 무언가 느낀 것인지, 엘리아스가 굳은 얼굴로 ‘무언가’를 감싸듯이 살짝 앞으로 나섰다.
돌연 지하실 안에, 어린 티치도 느낄 수 있을 만큼 진득한 긴장이 흐르기 시작했다.
“검을 가르칠 걸세.”
“어떻게요?”
“목검을 맞부딪쳐야지. 달리 방도가 있나?”
“………”
막힘없이 대답하는 조부의 눈엔 아무 감정도 실려 있지 않다.
적을 노려볼 때의 그 서늘한 기운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윽고 조부가 왼손을 움직였고, 그 손에 들려 있던 목검이 댕그르르 구르며 ‘무언가’의 발치에 멈추었다.
‘무언가’는 머리카락에 뒤덮인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엘리아스를 올려다보았다.
“아빠, 뭐야?”
“아빠?!”
순간, 티치는 머릿속에서 벼락이 친 것 같았다.
‘무언가’의 성씨는 에스트렐이 아니라 소더였을 터.
‘설마……!’
경악에 찬 그의 머릿속에 어른들이 속삭이던 말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이따금 시장이나 술집에 심부름 갔을 때, 자신들끼리 킥킥 웃으면서 나누던 이야기들.
티치가 가까이 가면 뚝 끊겨버리는 탓에 멀리서 주워듣기만 해야 했던 그 이야기들이 번개처럼 번뜩이는 것이었다!
“두 집 살림이던가 하는 그……?!”
“뭐?! 아냐, 티치, 오해다! 얘는 내 딸 아니야! 카엘, 그러니까 내 아들을 따라하느라 이래!!”
“그래, 티치. 오해하면 안 되지.”
조부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씨익 웃었다.
“소더 부부는 이미 죽고 없지 않느냐? 두 집 살림이 아니라 사생아를 가졌다고 해야 한단다.”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그보다 뭘 가르치시는 겁니까!”
“아, 불륜인가 하는 그……?”
“아니야아아!”
목이 터져라 외친 후, 엘리아스는 가빠진 숨을 가다듬고서 다시 진지하게 말했다.
“사범님,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메린에게 왜 검을 가르치시려는 겁니까?”
‘와, 이 흐름에서 다시 진지해진다고?’
역시 어른이구나.
티치는 엘리아스의 빠른 태세전환에 감탄했다.
그의 조부 역시, 장난기 어린 웃음을 거두고 다시 딱딱한 얼굴이 되어 있었다.
“촌장에게 듣지 못했나?”
“검으로 벼리겠다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그것이 내 목표일세. 잘 벼려진다면, 이 마을의 큰 힘이 될 터이니.”
조부의 말은 거기서 끝을 맺었다.
그러나 티치는 그 말 뒤에 숨은 뜻을 알고 있었다.
저 ‘무언가’가 검으로 벼려지지 않는다면, 조부는 그를 무참히 깨뜨려버릴 것이다.
끝까지 짐승으로 남는다면, 미리 싹을 뽑아버려야지.
통제할 수 없는 짐승은 해를 끼칠 뿐이다.
짐승조차 아닌 ‘무언가’는 더더욱 위험할지도 모른다.
티치는 겁을 먹었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 애쓰며, 남몰래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마을을 위해서군요.”
“나는 사범일세, 에스트렐. 마을의 일원을 무기로 벼리고, 적을 제하는 것이 내 소임이야. 자네도 그건 알고 있겠지.”
조부는 잠시 말을 끊고,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그 핏덩이는 필히 내 손을 거쳐야 해. 자네나 그 놈이나, 내가 목검을 들기로 한 걸 고맙게 여겨야 할 게야.”
“…………예. 메린의 힘은 마을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잘 벼려진다면.”
“잘될 겁니다.”
엘리아스는 ‘무언가’의 앞에 놓인 목검을 주워들며 엷게 웃었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무언가’의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흙먼지가 잔뜩 묻어 있고 마구 헝클어져 있는 머리임에도, 엘리아스의 얼굴에선 조금의 거리낌도 찾아볼 수 없었다.
“메린은 착한 아이에요. 병약한 제 아들을 잘 돌봐주고 있죠. 씻는 걸 극히 싫어하면서도, 제 아들을 간병할 땐 꼭 손을 씻을 정도로 지극정성이에요.”
“좋은 이야기군. 자네 일가가 맡은 지 얼마나 됐지? 한 달인가?”
“예, 한 달 정도 됩니다.”
조부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엘리아스의 눈엔, 조부가 자신의 말을 귀담아듣고 ‘무언가’를 기특히 여기는 걸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부의 표정을 바로 옆에서 8년째 보고 있는 티치는 이마를 찡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조부의 입꼬리가 아주 희미하게 올라가 있었던 것이다!
‘씻는 걸 극히 싫어한다’는 부분에서 나타난 변화.
성질 고약한 조부가 또 무슨 꿍꿍이인가 싶었다.
“그러니 사범님께서 우려하시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메린은 잘해줄 거에요.
……그럼, 메린.”
엘리아스는 들고 있던 목검을 ‘무언가’의 손에 쥐어주고,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며 ‘그것’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사범님 말씀 잘 들으렴. 끝나면 우리집으로 오고. 같이 저녁 먹자.”
“저녁? 그럼, 카엘은? 아빠랑 엄마가 볼 거야?”
“그래. 아저씨랑 아줌마가 돌볼 거야. 걱정 마.”
‘아저씨’와 ‘아줌마’에 유독 힘을 주면서 말을 마친 후, 엘리아스는 ‘무언가’의 머리를 한 번 더 쓰다듬고 다시 일어섰다.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사범님, 메린을 잘 부탁드립니다.”
“염려 말게. 티치, 손님을 배웅해드리고 오거라.”
조부의 지시에 고개를 끄덕인 뒤, 티치는 엘리아스와 함께 지상으로 올라왔다.
엘리아스는 걸으면서도 말 한 마디 하지 않았고, 티치 역시 굳이 말을 걸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아니, 곧 벌어질 일 때문에 긴장이 되어서 말을 할 여유가 없었다.
“티치,”
“네?! 어, 네, 에스트렐 씨.”
그래서 울타리문을 나선 엘리아스가 말을 걸었을 때, 저도 모르게 제자리에서 펄쩍 뛸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그런 그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으며, 엘리아스가 나지막이 말했다.
“메린은 좋은 아이야.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내 아들을 구해줬어. 지금도 구해주고 있고.”
“……”
“내일부터는 내가 아니라 아들과 함께 올 거야. 사범님께 그리 전해다오.”
“네, 전해드릴게요. 안녕히 들어가세요.”
“그래, 수고하렴.”
티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걸어가는 엘리아스.
성큼성큼, 약간 빠른 걸음으로 멀어지고 있었다.
티치는 그 뒷모습이 충분히 작아질 때까지 바라보다가, 울타리문 바깥에 팻말을 걸었다.
그리고 곧바로 창고로 가서 목검을 허리에 차고, 자그마한 나무통 하나에 몇 자루 넣은 다음, 통을 들고 다시 실내 훈련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출입문에도, 울타리문에 건 것과 똑같은 팻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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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치는 그 글자를 보며 작게 심호흡을 한 후, 문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들어선 지하 훈련장.
조부와 ‘무언가’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예정대로, 조부는 그가 돌아온 뒤에나 일을 시작하려는 듯했다.
“다 처리했느냐?”
“예. 할, 아니 사범님. 이라 걸고, 여분의 목검도 가져왔습니다.”
“얼마나?”
“열 자루입니다.”
“흠, 처음인 걸 감안하면 적당하군. 그래, 수고했다. 그럼 슬슬 시작하자꾸나.
잠가라.”
철컥.
스르릉!
티치는 주저없이 자물쇠를 채우고 빗장을 걸어버린 후, 다시 뒤로 돌아서고서 흠칫 놀랐다.
‘무언가’가 자신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 탓이다.
머리카락 뒤에서 던져오는 시선에 몸을 움츠린 것도 잠시, 이내 그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허리춤에 걸고 있던 목검을 손에 꽉 쥐었다.
목검을 ‘무언가’에게 겨누거나, 두 손으로 쥐고 자세를 취하진 않는다.
그저 문 앞에 우뚝 서 있을 뿐.
그것이 이 교습에서 티치에게 주어진 역할이었다.
“이쪽을 봐라, 짐승아. 네놈의 상대는 나다.”
“……?”
티치를 보던 고개가 정면을 향했다.
놈이 짐승이라는 말에 반응한 것 같진 않다.
그냥 목소리가 들려서 돌아본 게 더 맞을 듯했다.
“보아하니 말귀를 알아듣는 것 같더구나. 그러니 규칙을 말해주마. 네놈의 손에 들린 목검으로 나를 쳐라. 내 손에서 목검을 떨어뜨리거나 네놈이 정신을 잃지 않는 한, 이곳에서 단 한 발짝도 못 나갈 것이야.”
“쳐? 이걸로 때리라고?”
“오냐.”
놈은 고개를 살짝 갸우뚱거렸다.
“죽고 싶어? 내가 때리면 죽어.”
“힘을 줄이면 될 일 아니냐? 나를 죽이지 않고 목검을 떨어뜨려보거라.”
“그런 거 못해. 다 말랑해. 너도 똑같을걸?”
“허허, 그래, 나 역시 살덩이에 불과하니 네놈의 손에 찢기겠지. 허나,”
조부의 말이 끊긴 순간,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일었다.
‘무언가’가 눈 깜짝할 사이에 벽 가까이의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조부는 방금까지 ‘무언가’가 있던 자리에 서서, 목검을 늘어뜨린 채 그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닿지 않으면 그만이야. 사람이 무기를 쥐는 건 그러한 이유이다.”
“켁! 케헥! 아으.”
작은 체구에겐 큰 충격이었을 터.
그러나 ‘무언가’는 켁켁거리기만 할 뿐, 아무 타격도 입지 않은 듯했다.
‘아니, 진짜로 아무 타격도 없어!’
거뜬히 일으킨 몸 어디에도 상처가 보이지 않는다.
치마자락 밑에 드러난 다리는 물론이고, 뺨에도 긁힌 자국 하나 없다.
아픔을 느끼긴 한 걸까?
티치는 목검을 쥔 손에 땀이 배기 시작하는 걸 느꼈다.
‘할아버지가 옳아.’
열 살인 자신보다 더 작은데도 저 정도이니,나이를 먹고 완전히 자라면 아예 칼이 박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조부의 말대로, 놈에게 가능성이 보이지 않다면 싹을 잘라버려야 한다.
조부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무언가’를 바라보는 눈이 약간 날카로워져 있었다.
조부는 조금 전보다 더 딱딱한 말투로, 허리를 살짝 굽힌 채 자신을 빤히 보는 ‘무언가’에게 말했다.
“목검을 들고 덤벼라, 짐승아. 네놈이 오지 않으면 내가 갈 뿐이다.”
“으으……!”
‘무언가’가 땅을 박차며 조부에게 달려들었다.
가느다란 몸집에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내달리는 그 모습을 보며,
‘저런.’
가엾어라.
티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목검을 들고 덤빌 것.그것이 조부의 지시였을 터.
그러나 ‘무언가’는 지금 맨손이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무언가’의 몸놀림에 당황해하며 그대로 당했겠지.
하지만 티치의 조부는 마을의 사범, 그것도 검술에선 역대 사범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솜씨를 지닌 사람이었다.
밤의 존재조차 베어버리는 검을,본능에 치닫는 짐승 따위가 어찌 상대할 수 있으랴.
“오냐, 짐승아! 버릇을 고쳐주마!”
서늘한 기운을 담은 목소리.
차가운 적의를 품은 메아리가 방 안을 울린다.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면서도, 티치는 고개를 꼿꼿이 들고 지켜보았다.
조부가 두 손으로 목검을 잡고 몸을 낮추는 것을.
그 주먹을 내지르는 ‘무언가’를 향해 팔을 움직이자,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의 몸이 홱 틀어지는 것을.
교습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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