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9화 〉 외전 8) 우린 사람이니까 (Side : Tiech) (3)
* * *
툭. 탁. 퍼억. 캬악. 털썩.
지하 훈련장에 울리는 소리들을 받아 적는다면, 이 다섯 종류로 끝날 것 같다.
티치는 저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치기, 아니 교습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방 중앙의 기둥이나 바닥을 박차며 ‘무언가’가 조부를 향해 튀듯이 날아간다.
뒤이어 조부가 제자리에서 목검을 휘둘러, 놈의 팔이나 다리를 쳐서 공격을 막은 뒤, 몸 어딘가를 세게 후려쳐 휭 날려버린다.
그러면 놈이 날아가면서 비명을 뱉고, 그대로 땅에 떨어져 엎어지는 것이다.
지금처럼.
“케헥! 우으… 으으……!”
흙먼지 속에서 ‘무언가’가 신음을 흘린다.
몸을 일으키는 놈의 얼굴에 쓸린 상처가 나 있는 게 보인다.
이번에 엎어진 게 다섯 번째일 터.
다섯 번이나 구르고 나서야 겨우 긁힌 상처가 난 것이었다.
놈이 자신의 뺨에 손을 대면서 앓는 소리를 내는 걸, 조부는 무척 심드렁하게 바라보았다.
“이 정도에서 생채기라……. 생각보다 가죽이 무르구나. 암놈이라 그런가? 아니, 중첩이 되어서 그럴 수도 있으니 아직 판단하긴 이르겠군. 네놈의 내구성은 내일 다시 확인하도록 하지.”
“으으으……!”
거의 으르렁거림이나 다름없는 소리.
‘무언가’는 아직 조부에게 덤빌 기세인 듯했다.
“기운 넘치는 것은 맘에 드는구나. 자, 짐승아, 목검을 들고 덤벼라.”
이번에도 조부는 놈에게 목검을 들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아마 놈은 그걸 무시하고 맨손으로 덤벼들겠지.
그리고 또 공중을 날고 바닥에 떨어질 것이다.
그게 다섯 번이나 반복되었으니, 당연히 여섯 번째가 이어질 터.
그러나 티치의 예상과 달리, 놈은 바닥에 팽개쳐져 있는 목검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가서 그걸 주워들었다.
‘드디어 포기했구나.’
놈의 수법은 하나도 통하지 않았다.
흙먼지를 일부러 일으키고 불쑥 덮쳐도, 고양이처럼 공중에서 몸을 돌려 착지하자마자 달려들어도,
조부는 제자리에 선 채, 별 어려움없이 툭툭 막아버렸다.
심지어 놈은 조부의 머리 위를 넘어간 다음, 중앙의 기둥을 차며 등을 노리기도 했다.
뭘 어떻게 재주를 부린 건지 티치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 기습도소용없었다.
그러니 ‘무언가’는 드디어 목검을 든 것이다.
자신이 조부를 당해낼 수 없음을 겨우 깨달은 것이리라.
조금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이제 진짜 검술 교습이 시작된다.
그 생각에 티치가 가슴을 쓸려는 순간,
“……어?”
놈이 조부에게 목검을 던져버리는 게 보였다!
그리고는 몸을 틀어서,
‘이쪽으로……!’
문 앞에 선 티치를 향해 뛰어오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약한 그를 죽여서 화풀이를 하려는 것일까?
티치는 마음속에 떠오른 물음에 단호히 부정했다.
놈이 노리는 건 그의 뒤.
바깥으로 나가는 문이다!
‘할아버지의 예상대로야!’
티치는 긴장 때문에 뻣뻣해진 팔을 억지로 움직여, 놈에게 목검을 겨누었다.
미친듯이 달려오는 ‘무언가’의 기세가 무섭긴 하지만, 순순히 비켜줄 생각은 없었다.
문을 지키는 것.
그것이 오늘 그가 맡은 역할이기 때문이다.
자물쇠와 빗장으로는 놈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며, 조부는 그에게 문지기 역할을 맡겼다.
다른 제자를 부르지 않고, 고작 열 살 밖에 안 된 어린 티치에게.
그가 자신의 손자라서 일을 맡긴 것인가?
결코 아니다.
조부는그의 양육자이자 혈육이기 전에 마을 사범이다.
사범은 사적인 인연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티치에게 문지기를 맡긴 것은, 그가 역할을 충분히 감당할 능력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틀린 적이 없어! 난 할 수 있어!’
그 마음을 붙잡은 채 덜덜 떨며 ‘무언가’에 맞서려는 순간,
“티치야, 기억해라! 놈은 짐승이다!”
조부가 크게 외치는 것이 들렸다.
짐승.
‘그것’은 사람의 가죽을 쓴 짐승이다.
아니, 짐승이 아니다.
겉모습과 움직임 모두 짐승을 뛰어넘은 무언가이다.
어쨌든 놈은 사람이 아니고,
‘전력으로……!’
티치가 온 힘을 다해도 전혀 문제될 것 없는 상대였다.
엄청나게 단단하니까.
“이야아앗!!”
자신을 후려치려는 손을 맞받아친다.
그가 맞설 줄은 몰랐는지 놈이 주춤거린다.
그 틈을 타,
“못 지나가!!”
“커헉!”
놈의 가슴을 있는 힘껏 차버렸다!
의외로 풀썩 넘어가며 데굴데굴 굴러가는 걸 보니, 몸무게는 보는 것만큼 가벼운 모양이었다.
“케헥! 켁! 으윽……!”
바들바들 떨면서 일어나 가슴을 부여잡는 ‘무언가’.
상당히 괴로워하는 것 같았다.
“명치를 친 게냐? 참 가차없구나.”
“며, 명치? 그게 뭐에요?”
“나중에 알려주마. 여하간 잘했다, 티치. 허허, 역시 내 손자야.”
조부는 흡족히 웃으면서 ‘무언가’에게 다가간 뒤,
“캬악!”
그대로 놈의 멱살을 붙잡고 땅에 메어꽂아버렸다!
쿵 소리와 함께 움푹 패인 바닥.
꼭 전투망치가 내려친 것 같았다.
그걸로 모자라, 조부는 놈의 팔을 잡고 벽에 내던져버렸다.
‘뭐? 내가 가차없다고? 누가 할 소리?!’
억울한 걸 넘어서 어이가 없어진 티치였다.
그러나 더 어처구니가 없는 건,
“윽… 우으……!”
아직도 정신이 붙어 있는 ‘무언가’의 맷집이었다!
다만 기력이 떨어진 건지, 바들바들 떨기만 할 뿐 좀처럼 일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아둔한 것! 내 분명 말했다! 네놈이 여길 나가려면, 내 손에서 목검을 떨어뜨리거나 네놈이 정신을 잃어야 할 것이라고! 감히 같잖은 수작을 부려 달아나려 해?!”
“아윽!”
또 한 번 메어꽂고,
“네놈이 달아나려 하리란 걸내가 예상 못했을 줄 알았느냐? 내가 공연히 티치를 문 앞에 세웠을까! 네놈과 같은 짐승은 저 아이의 상대가 못 된다! 설령 네놈이 저 문을 뚫은다 한들, 내가 네놈을 놓칠 줄 아느냐!”
“캬학!”
또 다시 메어친다.
“그간 무서울 것 없었겠지! 숲의 무엇이건 뜻대로 찢어발길 수 있었으니! 네놈을 내려다보던 그 어떤 것도, 결국은 네놈에게 내려다보이며 내장을 뜯겼으니!
허나 봐라, 나에겐 네놈의 그 잘난 힘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네놈은 몸집이 그리 차이 나지 않는 내 손자놈도 뚫지 못했다! 이것이 사람의 힘이다!”
그리고 엄하게 호통치면서 패대기쳤다.
‘무언가’의 입에선 이제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다.
그저 가느다란 신음만 흘러나올 뿐.
그럼에도 놈은 아직 의식이 또렷했다.
켁켁거리면서 몸을 일으키려고 발버둥치고 있었다.
저 작은 체구 어디에서 그런 기운이 나오는 것인가?
티치는 직접 보면서도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조부는 허리를 굽혀, 목검의 끝으로 놈의 턱을 들어올리고서 낮게 말했다.
“멧돼지를 잡고 두 해 동안, 네놈은 숲을 쏘다니며 망가뜨렸다. 그러고도 무사했던 것이, 그 잘난 힘 때문인 줄 알았느냐? 천만에.
네놈은 나, 칼라드 플린의 눈에 띄지 않았기에 무사했던 것이야. 고양이 새끼 하나 잡으려고 숲을 다니기엔 내가 다망해서 말이지.”
그저 시간이 나지 않았기에, 사범인 그에겐 보다 우선할 일이 있었기에 내버려둔 것이다.
너는 언제든 잡을 수 있는 한 마리 짐승일 뿐이었다.
조부는 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었다.
“그리고 손이 빈 지금, 에스트렐 덕분에 일을 덜었지. 짐승아, 나는 오늘 네놈의 윤곽과 기운을 이 눈에 새겼다. 이제 어디로 달아나서 숨든 내 눈을 피하지 못해.”
“으읏……”
“일어나서 택해라. 계속 손발을 휘두르는 짐승으로 남을지, 목검을 들고 사람 흉내를 내볼지.기운이 남은 건 알고 있으니 일어나라, 짐승아.
……어서 일어나지 못할까!!”
조부가 눈을 부릅뜨며 맹렬히 소리치자,
“으… 우으… 으아아아앙!!”
바들바들 떨던 ‘무언가’가 그대로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조부도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지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목검으로 들어올렸던 고개가 아래로 툭 떨어졌고, 마침내 해방된 ‘무언가’는 제자리에서 몸을 웅크렸다.
그런 뒤, 바들바들 떨면서 엉엉 울었다.
“아파… 아파아… 으아아앙……!”
“할아버지가 애 울렸다!!”
그 모습을 본 티치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놈이 아프다고 호소하는 것 자체는 여느 아이와 같았기 때문이다.
짐승처럼 몸을 웅크려서 그렇지.
‘진짜 그냥 짐승인가봐.’
그 자신이 증명한 것처럼, 조부의 안목은 틀린 적이 없다.
그러니 놈은 조부가 말한대로 그냥 ‘짐승’인 것이리라.
티치는 그렇게 생각하며 빼액빼액 우는 놈을 바라보았다.
“아이가 아니라 하지 않았느냐? 이 놈은 짐승이라 일렀거늘.”
조부는 길게 한숨을 쉰 후, 들고 있던 목검을 허리춤에 꽂았다.
“이거 원, 그래도 사람 말로 우니 어쩔 수 없구나. 나도 늙은 모양이군.”
그리고는 ‘짐승’의 앞에 주저앉아, 몸을 웅크린 놈에게 두 손을 뻗어 들어올리려 했다.
“시러… 아파아… 시러어어……!”
당연히 놈은 싫다고 바둥거렸고,
“가만 있어라.”
빠악!
조부는 일말의 자비도 없이 꿀밤을 먹여버렸다.
‘우와, 너무해.’
저걸 두고 피도 눈물도 없다고 하는 게 아닐까?
어린 티치는 다른 의미로 조부가 사람이 맞는지 의심스러워졌다.
“어…… 우, 으, 흐에에엥!”
‘짐승’은 꿀밤을 맞은 게 충격이었는지 멍하니 있다가, 뒤늦게 머리를 감싸며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저러다 숨 넘어가겠다 싶을 정도로 울어대면서, 놈은 더 바둥거리지 않고 얌전히 붙잡혀 있었다.
이내, 조부는 꺽꺽대며 울부짖는 ‘짐승’을 자신의 무릎에 엎드리게 한 후, 그 작은 등을 토닥이며 쓰다듬기 시작했다.
“옳지, 옳지. 많이 아팠구나. 참 다행이군. 아프라고 한 것이니.”
“우아아아……!!”
“서러우냐? 내 알 바 아니다. 네놈이 목검을 들라는 내 말을 어겼기에 벌을 준 것이니 말이다. 더욱이 그간 네놈이 숲을 헤집어서 다른 짐승들과 몬스터의 영역이 흐트러진 탓에 곤란을 겪었다. 그 벌도 겸한 것이야.”
엄한 말투와 달리, 놈을 쓰다듬는 조부의 손길은 무척 부드럽다.
티치 역시 그 손길에 닿은 적이 있기에, 그 손이 얼마나 포근하고 따뜻한지 알고 있으나.
‘저거 병 주고 약 주고 아닌가?’
신나게 두들겨 팬 사람이 달랜다고 효과가 있을까?
오히려 더 울면 울었지, 눈물을 그칠 것 같진 않았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으으… 흑… 우으…….”
“엥?!”
‘짐승’의 우는 소리가 차츰차츰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뿐 아니라, 훌쩍이면서 조부의 무릎을 껴안기까지 하고 있었다.
자신을 무참히 때리고 겁을 준 사람인데.
그 장본인이 조금 다정하게 대해준다고 곧바로 풀어지다니!
‘꼭 갓난아기 같네.’
그렇게 생각하는 티치의 귀에, 조부가 기가 막힌다는 투로 말하는 것이 들렸다.
“나 참, 이리도 쉽게…… 그리 정이 고프더냐? 그 늙은이가 제대로 봐주지 않은 모양이지? 하기야, 그러니 네가 숲을 둥지로 삼았겠지. 오죽하면 사람의 자식이 짐승으로 전락했을까.”
“흑… 읏……”
조부는 한숨을 쉬면서 ‘짐승’을 들어올려, 팔 하나로 놈의 머리를 받치면서 품에 안았다.
그대로 어깨를 토닥이면서, 여전히 문을 지키고 선 티치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그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다가가자, 조부가 훌쩍이는‘짐승’을 향해 고갯짓했다.
“너도 이 놈 달래라.”
“네? 제가요? 왜요?”
“왜냐니. 너도 때렸잖느냐.”
“……”
‘그건 그렇긴 한데…….’
아이는 고사하고, 강아지조차 얼러본 적이 없건만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난감해진 티치의 머릿속에, 엘리아스가 놈의 머리를 쓰다듬던 게 떠올랐다.
흙먼지가 잔뜩 묻어 있어서 그다지만지고 싶지 않지만, 조부이자 스승의 명이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안 물겠지?’
조심스레 손을 뻗어, 놈의 머리에 얹었다.
까끌까끌하면서 왠지 북슬북슬한 기묘한 느낌에살짝 미간을 찌푸리면서, 티치는 땀과 눈물에 푹 젖은 앞머리를 옆으로 치워주었다.
마침내 드러난 놈의 눈동자.
눈물로 촉촉해진 주홍빛 눈동자가 보인 순간, 그는 등줄기가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죽었어.’
물론 놈은 살아있다. 숨을 쉬면서 푹 젖은 눈을 깜빡이고 있다.
그러나 눈에는 생기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목놓아 울기까지 했으니, 조부에게 두들겨 맞아서 진이 빠진 것도 아닐 텐데.
그때, 놈의 두 눈동자가 슬며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
텅 빈 주홍빛 초점이 티치에게 맞춰지려는 순간,
조부의 손이 그 눈을 덮어버렸다.
그런 뒤, 조부는 놈의 어깨를 계속 토닥이면서 작게 속삭였다.
“한숨 자거라. 실컷 날뛰고 울었으니 피곤할 게야.”
“……”
“여기는 내 영역이다. 누구도 널 건들지 못해. 나도 널 가만둘 테니 마음 놓고 자려므나.”
이윽고, 놈이 느릿하게 숨을 내쉬면서 축 늘어졌다.
조부가 가만히 눈을 가리던 손을 떼자, 완전히 꼭 감겨 있었다.
정말로 잠들어버린 듯했다.
“아니, 뭐 이런…….”
“그래,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구나. 빈 껍데기에, 이리 정에 굶주려 있는 놈이었을 줄이야.”
오늘은 여기서 그쳐야겠다.
조부는 그렇게 말하며, 놈을 안은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쩌시게요?”
“어쩌긴, 눕혀야지. 네 침대가 더 푹신하니, 네 방이 좋겠구나.”
“………”
예정에도 없던 이불 빨래를 하게 생겼다.
티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면서, 가급적 조용히 빗장과 자물쇠를 풀고 문을 열었다.
‘짐승’이 다시 깨어난 건,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시간이었다.
티치가 마당의 과녁에 박힌 화살을 뽑으며, 뒷정리를 빼먹고 간 궁수에게 투덜거리고 있을 무렵,
“티치야, 이 놈 간다! 인사해라!”
조부의 말소리와 함께 ‘짐승’이 집 밖으로 터벅터벅 걸어나오는 게 보였다.
놈이 자신을 보며 걸음을 멈춘 순간, 티치는 일순 덤벼드는 것 아닌가 싶어 움찔했다.
“………갈게요.”
그러나 ‘짐승’은 멀거니 서서 고개를 살짝 까닥이며 인사할 뿐이었다.
티치는 그 모습이 의문스러웠다.
낮에 엘리아스가 시키는 걸 봤었기에, 놈이 인사하는 것 자체는 그리 놀랍지 않다.
하지만,
‘왜 쳐져 있지?’
어째서 놈이 아직도 기운이 없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잠깐 들여다봤을 때 굉장히 편하게 자고 있었으니까.
눈이 도로 머리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지만 자신을 공격할 것 같진 않았기에, 그는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왜 기운이 없어? 아직도 아파?”
“……지금 아파.”
“지금?”
티치가 되묻자, 놈이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훌쩍였다.
지금 아프다니, 방금 맞기라도 했다는 것인가?
‘응? 맞았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놈을 살펴본 티치.
곧 놈의 정수리가 유독 빨갛게 부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
굉장히 익숙한 광경이다.
티치가 말없이 범인을 바라보자, 그의 시선을 받은 조부가 씨익 웃었다.
“인사도 하지 않고 뛰쳐나가려 하더구나. 그러기에 예의를 가르쳐주었지. 허허!”
“우와, 불쌍해…….”
“말을 듣지 않은 놈이 잘못이지. 아, 그래. 잊을 뻔했군.”
무언가 생각난 게 있는지, 조부가 돌연 성큼성큼 걸어서 가까이 다가왔다.
‘짐승’은 조금씩뒷걸음질을 치긴 해도 도망치려고는 하지 않고 있다.
아무래도 조부에게 완전히 기가 죽어버린 듯했다.
“우으… 때리지 마…….”
“마?”
“마, 마요… 때리지 마세요…….”
“네가 내 말을 잘 들으면 내가 손을 대지 않겠지. 그러니 짐승아, 내 말 잘 들어라.”
조부는 놈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허리를 굽혀 그 얼굴을 들여다보듯 하며 나지막이 말했다.
“내일은 말끔히 몸단장을 하고 오너라. 에스트렐 일가와 저녁을 함께하기로 한 듯하니, 내가 그리 일렀다고 그들에게 전해.”
“아으……”
“대답.”
“시…러…… 싫어, 싫어요! 여기 안 올 거야!!”
놈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소리치고는 후다닥 도망가버렸다.
조부는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뜨고 그 모습을 지켜보더니, 이내 허허 웃으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녀석, 고집하고는. 그리도 씻기 싫을까? 한 달이나 손을 탔으면서도 저 모양인 이유가 있군.”
“어…… 내일 안 오면 어떡해요?”
“오지 않으면 마는 것이지.”
“네?”
황당해하는 손자의 어깨를 두드리며 조부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걱정 마라. 에스트렐이 끌고 올 게야.”
“에스트렐 씨가요? 아, 내일부터는 아들이 데려올 거라고 하시던데요.”
“아들? 흠…… 티치야, 내일 그 놈을 데려오는 사람을 살펴보거라. 저리 싫다고 뛰쳐나간 걸 끌고 온 것이니, 필히 그 자가 놈에게 목줄을 채운 장본인일 터. 어떤 자인지 보고싶구나.”
“네, 알겠습니다.”
조부는 힘차게 대답하는 티치의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고, 먼저 집으로 들어갔다.
왠지 흙먼지가 묻은 느낌에 살짝 얼굴을 찌푸리면서, 티치는 다시 마당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과녁에 푹 박힌 화살을 하나하나 뽑고, 그 주변의 부러진 화살들을 한구석으로 쓸어버리면서, 그는 조부가 마지막에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필히 그 자가 놈에게 목줄을 채운 장본인일 터. 어떤 자인지 보고싶구나.
‘목줄? 그런 거 안 하고 있었는데?’
그 의미를 혼자 알아채기엔 열 살은 너무 어린 나이였기에,
‘역시 어른의 말은 어려워.’
그저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