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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400화 (400/475)

〈 400화 〉 외전 8) 우린 사람이니까 (Side : Tiech) (4)

* * *

다음날, ‘짐승’은 하루종일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 다음날도, 그 다음의 다음날까지도.

놈이 조부를 피해 마을을 떠나버린 건 아닌 듯했다.

훈련소에 오지 않은 대신 말썽을 부렸는지, 시장에 갈 때마다 새로운 사고 소식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티치는 놈이 어딘가로 다급하게 뛰어가는 것을 멀리서 보기도 했다.

아마 엘리아스나 그의 아내가 훈련소로 가라는 걸 듣지 않고 도망간 것이리라.

‘에스트렐 씨도 어쩔 수 없는 거겠지.’

지금보다 두 살이나 어렸을 때에 멧돼지 배를 찢어버린 놈이다.

사범인 조부는 싸움에 익숙하니 놈을 제압할 수 있었지만, 엘리아스는 칼이 아닌 깃펜을 쓰는 사람이니놈이 성질을 부리면 당해낼 수 없는 것이리라.

이대로 한 달이 지난다면, 놈의 목숨은 엘리아스에게 달린 것이 된다.

그가 놈의 교육을 포기하는 즉시, 조부는 놈을 처단할 터.

아니, 어쩌면 엘리아스가 포기하지 않더라도 없애려 할지도 모른다.

티치가 시장에서 들은 이야기를 조부에게 전할 때마다, 이마의 주름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었으니까.

‘좀 불쌍한데.’

티치는 ‘짐승’이 조부의 손에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놈이 착하고 좋은 아이라고 한 엘리아스가 옳았기를 바랐다.

놈은 눈이 죽어 있는 무서운 ‘짐승’이지만, 다정한 손길에 약한 어린 새끼이기도 하다.

그것도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

놈이 죽은 걸 본다면, 동네 아이가 죽었을 때처럼 기분이 썩 좋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놈이 다녀간 지 닷새째 되는 날,

‘오늘도 안 오나?’

티치는 놈이 여전히 나타날 기색이 없는 것에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런데 그 순간,

“어…… 안녕하세요~”

웬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자그마한 남자아이가 울타리문 안으로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는 게 보였다.

언뜻 봐도 티치 자신보다 어려 보인다.

하지만 처음보는 얼굴이기에, 티치는 어른에게 하듯 정중하게 물었다.

“누구세요?”

“아, 저기……”

아이는 머뭇거리더니, 이내 무언가를 결심한 것처럼 표정을 굳히고 모습을 드러냈다.

왼팔이 붕대에 둘둘 감겨 있고, 또 그에 부목을 대고 있다.

아마 부러진 것이리라.

아이는 어쩐지 휘청거리는 듯한 발걸음으로 울타리문을 지나려다, 돌연 뒤를 홱 돌아선 멀쩡한 팔로 무언가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앓는 듯한 소리와 함께, 웬 여자아이가 울타리문 안으로 끌려들어왔다.

남자아이는 여자아이를 끌면서 티치에게 다가오더니,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안녕하세요. 티치 형, 맞죠?”

“네, 그런데요?”

“저는 카엘입니다. 카엘 에스트렐. 엘리아스 에스트렐의 아들이에요. 이 녀석 데리고 왔습니다.”

“이 녀석?”

옆에 선 여자아이를 가리키는 것 같았으나, 티치는 동그랗게 뜬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얘가 누구길래?’

카엘이란 아이는 물론이고, 그 옆에 선 여자아이도 처음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길게 빗어 내린 갈색머리.

정수리에는 머리카락 두 가닥이 더듬이처럼 뾱 솟아나 있는 게 꽤 인상적이다.

그리고 그 아래엔 텅 빈 듯한 눈동자가……

‘응? 눈동자?’

죽은 듯한 주홍빛 눈동자가, 티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어, 설마?!”

티치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카엘의 옆에 서서 무감정한 눈을 깜빡이고 있는 자그마한 소녀는, 닷새 전에 조부가 두들겨 팼던 그 ‘짐승’이었다!

멍하니 ‘짐승’을 보는 티치에게,

“네. 메린 소더, 데려왔어요.”

카엘은 무척 담담히 전했다.

다치지 않은 오른손으로, 놈의 손을 꼭 잡은 채.

달그락.

각 사람의 앞에 찻잔을 놓은 후, 티치는 조부의 옆자리에 앉아서 건너편에 앉은 소년을 바라보았다.

‘사범님께 말씀드릴 게 있다’고 먼저 말을 꺼낸, 보기보다 담이 큰 소년.

카엘이라고 한 그 아이는, 조용히 찻잔을 입에 대고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런 뒤, 자신의 바로 맞은편에 앉은 조부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그간 빠져서 죄송해요. 제가 얘를 데려와야 했는데, 이틀간 아파서 못했어요. 메린도 저 간병하느라 못 왔고요.”

“벌통을 부수고 살구를 훔치면서? 참으로 기상천외한 간병이로구나.”

“벌통은 저희 집으로 서둘러 오다가 실수로 부딪쳐서 그런 거고, 살구는 나무가 다른 집 뜰에 심어진 걸 몰랐어요. 얘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그리고 살구는 제가 먹고 싶다고 한 게 원인이고요.”

“그래, 그럼 나머지 이틀은 무얼 했느냐?”

조부의 엄한 눈초리가 조금 부담이 되는지, 카엘은 또 한 번 차를 홀짝인 뒤에 대답했다.

“그저께는 메린을 놓쳐버렸고, 어제는 붙잡아서 몸단장시키느라 못 왔어요.”

“네가 붙잡은 것이냐? 아하, 그래서 팔이 그리 된 것이군? 저 놈이 한 짓이렷다.”

“네? 어, 이건……”

눈에 띄게 당황하는 걸 보니, 조부가 직설적으로 물을 줄은 예상 못한 듯했다.

카엘은 잠시 시선을 돌린 채 입을 오물거리다, 이내 조부를 보면서 말을 꺼냈다.

“그, 제가 막무가내로 우겨서……”

“저 놈이 했지? 놓으라고 꺾더냐?”

“제, 제가 좀더 좋게……”

“아니, 꺾는 건 기술을 요하니 그냥 잡아서 뿌리쳤겠군. 그 힘이 너무 강해서 팔뚝만 홱 돌아가버렸고 말이다.”

“그걸 어떻게…… 아니, 그게 아니라요, 사범님, 그러니까 그게……”

조금 전처럼 ‘짐승’을 감싸주려는 건지, 카엘은 눈을 이리저리 바쁘게 굴리며 열심히 말을 찾고 있었다.

‘희한한 녀석이네.’

티치는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차를 홀짝였다.

아무리 에스트렐 일가가 저 ‘짐승’을 맡았다고 해도, 자신의 팔을 부러뜨린 놈의 변호까지 할 필요는 없을 터.

그런데도 어떻게든 변호해주려고 애를 쓰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것도 눈물까지 글썽거리면서.

‘정작 놈은 저렇게 태평한데.’

그것도 덤덤하게 과자를 우물거리고 있다!

얘기를 듣고 있는지부터 의심스러운 모습이었다.

팔 부러뜨린 놈은 아무 신경도 안 쓰고, 놈에게 당한 사람이 필사적으로 감싸고 있는 꼴이라니.

혹시 놈이 시킨 건가 하는 생각마저 들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이걸 가만둘 리가 없는데. 예의범절을 엄청 따지시니까.’

티치는 찻잔을 입에 댄 채, 옆에 앉은 조부를 힐끗 쳐다보았다.

희끗희끗한 눈썹 아래에 자리한 눈이 실제로 누구를 보고 있는지는 모르나, 일단 ‘짐승’은 지금 실컷 평화를 즐겨두는 게 좋을 듯했다.

정면을 향한 조부의 눈빛이 꽤나 싸늘했으니까.

“카엘이라 했느냐?”

“네? 어어, 네. 카엘, 입니다.”

“네가 무슨 말을 짜내건, 저 놈이 네 팔을 부러뜨린 사실엔 변함이 없다. 틀리느냐?”

“………아니요. 사범님 말씀이 맞아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카엘은 낮은 목소리로 짜내듯이 대답했다.

약간 찌푸린 눈썹에서, 분해하는 기색이 엿보였다.

그러나 조부의 말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무슨 이유가 있건, 저 놈은 나흘간 여길 찾지 않았다. 그것도 아무 연락도 없이. 너를 간병해야 하기에 올 수 없다면, 그러하다고 알리는 게 마땅한 도리일 터. 내 말이 맞느냐?”

“……네.”

“그리고 너 역시 이를 어겼지. 어제와 그 전날, 어째서 여기 와서 알리지 않았느냐?”

“그건…… 그……”

카엘은 고개를 숙인 채 좀처럼 말을 잇지 못하고,불안한 듯이 손을 꼼지락거리며 테이블만 쳐다보았다.

불현듯 찾아온 침묵.

티치는 왠지 찻물을 마시는 것도 조심스러워졌다.

와작.

……그리고 ‘짐승’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과자를 깨물어 먹고 있었다.

주변 분위기 따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역시 짐승이야!’

티치가 놈을 보며 어처구니없어 하는 가운데, 조부는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는 카엘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눈치 없는 ‘짐승’을 타박하지도, 희한할 정도로 놈을 싸고도는 소년에게 대답을 채근하지도 않았다.

그저 말없이,카엘이 스스로 입을 열 때까지 가만히 기다릴 뿐이었다.

마침내 기나긴 침묵 끝에, 카엘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약해서 그래요. 혼자 밖을 못 다녀서요.”

“이유가 무엇이냐?”

“무서워…서요. 밖에는, 나쁜 아이들이 있으니까…….”

웅얼거리듯이 대답하는 카엘의 얼굴에는 짙은 그늘이 껴 있었다.

‘괴롭힘이라도 당하나?’

티치는 슬며시 카엘을 살펴보았다.

피부는 하얀 걸 넘어서 창백하고, 테이블에 올려진 손은 뼈 모양이 약간 드러나 있다.

얼굴도 핼쑥한 게, 아직 병상에 있어야 하는 몸을 억지로 끌고 나온 게 아닌가 싶다.

누가 봐도 약한 아이.

힘을 뽐내고 싶어하는 아이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먹잇감이리라.

“즉, 겁이 나서 나오지 못했다?”

“………네. 맞아요.”

카엘은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모자라, 작게 훌쩍이며 울기 시작했다!

‘누가 보면 엄청 혼난 줄 알겠네!’

조부는 그저 잘못을 지적하고 그 이유를 물었을 뿐.

언성을 높이거나 목소리에 힘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호되게 꾸지람을 들은 것처럼 비통한 표정으로 울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러나 정말로 기가 막힌 건 따로 있었다.

그런 카엘의 머리를 ‘짐승’이 위로하듯이 쓰다듬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덤덤한 얼굴로 과자를 우물거리면서!

정말 어이가 없는 풍경이었다.

티치는 조용히 찻물을 들이켰다.

이제 이유를 들었으니, 조부가 무어라 답을 할 차례이다.

마을 사람을 단련시키는 게 조부의 일인 만큼, 사내답지 않게 무슨 꼴이냐고 호통칠 가능성이 컸다.

“그러냐. 알겠다.”

“읍?! 콜록콜록!”

그런데 호통은커녕, 그냥 납득하고서 차를 들이켜는 것이었다!

뜻밖의 광경에 놀란 티치가 사레에 들리자, 조부가 한쪽 눈썹을 추켜올리며 그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별일이구나, 티치. 눈앞에 날벌레라도 지나갔느냐?”

“콜록! 네에, 좀, 놀라서요. 케흑! 죄송해요. 크흠!”

‘진짜 별일이네.’

이걸 꾸짖지 않고 넘어가다니, 병상에 누운 사람이 아니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티치는 목을 가다듬으면서 속으로 헛웃음을 켰다.

‘짐승’은 말끔히 하고 오랬더니 완전 다른 사람이 되질 않았나, 놈을 끌고 온 카엘이란 아이는 팔을 부러뜨린 놈을 옆에서 열심히 변호하질 않나.

오전만 해도 평소와 다를 바 없었건만, 오후는 이상하게 꼬여버린 듯했다.

“더 할 말이 없다면 슬슬 내려가려 하는데, 카엘 너는 어찌할 것이냐?”

빈 찻잔을 내려놓으며 묻는 조부.

티치는 약간 뜨뜻한 기운이 남은 찻물을 서둘러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직 울음을 그치지 못하고 있던 카엘은, 멍하니 조부를 보다가 옷소매로 눈가를 슥슥 닦고서 입을 열었다.

“여기서, 기다려도 될까요……?”

“흠, 네가 지루함을 달랠 만한 놀이거리는 없을 게다. 그래도 괜찮겠느냐?”

“괘… 죄송해요, 잠시만요. ……크흠. 네, 괜찮아요. 책도 가져왔고…… 아, 이거 제가 정리할게요. 설거지할 줄 알아요.”

“한 팔로?”

“어…… 그, 그래도 할 수 있어요.”

빨갛게 부은 눈으로 그렇게 말하는 카엘에게, 조부가 허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안 될 말이지. 너는 손님이야. 어찌 손님에게 수고를 끼치게 할까. 그냥 두거라. 이따 티치가 할 게야.”

“할아버지 말씀이 맞아. 내가 이따 하면 되니까 신경 쓰지 마.”

티치가 나서서 조부의 말을 거들었는데도, 카엘은 난처하다는 듯이 눈썹 끝을 올렸다.

그 모습에 빙긋 웃으며, 조부가 엄한 목소리로 단단히 엄포를 놓았다.

“카엘, 내 분명히 말하마. 우리가 돌아왔을 때 찻잔이 정리되어 있으면 크게 혼날 줄 알아라. 찻물이 아직 남았으니, 너는 여기서 얌전히 차 마시고 있거라. 과자도 먹고. 그런 다음, 책을 읽든 명상을 하든 시간 보내도록 해. 알았느냐?”

“그……”

“알았느냐고 물었다.”

“……네. 알았어요. 그렇게 할게요.”

머뭇거리는 대답이었으나, 조부는 흡족히 고개를 끄덕이며 카엘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그런 뒤, 티치에게 살짝 고갯짓을 했다.

일어나라는 신호였다.

“티치야, 전처럼 목검 여럿 가지고 내려오너라. 저 놈은 내가 데려가마.”

“네, 할아버지.”

티치는 곧바로 일어나, 지난번처럼 창고로 가서 목검들을 챙겼다.

울타리문과 훈련장 출입문엔 이미 팻말을 걸어놓았으므로, 목검을 담은 나무통을 들고 곧장 지하 훈련장으로 향했다.

조부는 이미 ‘짐승’과 내려와 있었는데, 어째서인지 그 혼자만 목검을 들고 있었다.

또 무슨 꿍꿍이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하는 티치에게, 조부가 딱딱한 말투로 지시했다.

“문 잠가라.”

지난번처럼 빗장까지 걸어 잠그자, ‘짐승’을 보던 조부의 눈초리가 곧바로 매섭게 변했다.

그리고는,

“이 파렴치한 것!! 잘못을 저지른 놈이 태평히 과자를 먹어?! 그것도 제 변호를 해주는 놈 옆에서?!”

노성을 터뜨리며 놈에게 목검을 휘둘렀다!

“와악!!”

그러나 ‘짐승’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숙인 탓에, 조부의 일격은 허공만 가르고 말았다.

‘저런, 피해버렸네.’

티치는 또 다시 ‘짐승’이 불쌍해졌다.

공격을 피하는 건 당연한 반응이지만, 지금은 때가 좋지 않았다.

조부는 행동거지가 불량한 걸 혼내려 하고 있으니,그냥 얌전히 맞는 게 훨씬 나았을 텐데.

아니나다를까, 조부의 눈빛이 한층 더 험악해졌다.

“피해? 피해?! 오냐, 짐승아! 네놈이 언제까지 피할 수 있나 보자!!”

“히에에엥!”

후웅—!

콰앙!

놈이 울상을 지으며 요리조리 도망치는 게 보인다.

그 뒤를 따라, 조부의 목검이 벽과 바닥에 얇은 자국을 내고 있다.

돌가루가 마구 튀는 걸 보며, 티치는 조부가 이 지하 훈련장을 고른 이유에 본인이 맘껏 날뛰고 싶은 것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렇게 이번에도 ‘짐승’이 두들겨 맞고 엉엉 우나 싶었는데,

“자, 잘못! 히으, 잘못했어요오오!!”

돌연 ‘짐승’이 바닥에 엎드리면서 그 마법의 말을 입에 담았다.

가차없이 등을 내려치려던 조부의 목검이 허공에 우뚝 멈추었고,

“히잉… 아파아…….”

놈은 목검 대신, 조부의 꿀밤만 얻어맞고 설교를 듣게 되었다.

……도중에 말을 못 알아들어서 혹을 두 개나 더 달았지만, 아무튼 놈은‘진지한 이야기 중엔 과자를 먹지 않겠다’고 조부와 약속했다.

그런 뒤, 조부는 혹이 난 머리를 매만지며 신음하는 ‘짐승’에게 물었다.

“짐승아, 시작하기 전에 내 하나 물으마. 그 카엘이라는 녀석에게 끌려온 까닭이 무엇이냐?”

‘그러고보니 신기하네.’

그 소년은 똑똑히 말했다.

자신이 놈을 붙잡아서 몸단장을 시켰다고.

벌써 두 해째 수련 중인 티치 자신은 당연하고, 몇 십 년째 사범 일을 하는 조부도 순수 힘으론 ‘짐승’을 이기지 못할 터.

그런데 놈은 그 비실비실한 소년에게 붙잡혔다.

죽도록 하기 싫어한다던 목욕을 하고, 안 올 거라고 빽 소리질렀던 곳에 다시 왔다.

왜? 무엇 때문에 놈은 그 아이를 떼어내지 않은 것인가?

티치는 ‘짐승’의 대답이 내심 기다려졌다.

“까닭? 카엘은 닭 안 썼는데…요.”

“네가 왜 여기 오기로 한 것인지 묻는 게다. 지난번엔 오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아. 으응……”

놈은 조부의 물음에 고개를 살짝 떨구며 말을 이었다.

“나 잡은 거 치우려고 한 건데, 카엘 팔 부러져서…… 그러려고 한 거 아닌데. 내가 아프게 해버렸어…요.”

“그래서?”

“저번에 네가,”

“사범님이라 불러라.”

“저번에 사범님이 나한테 그랬어요. 힘을 줄이라고. 어떻게 하는지 아니까 하라고 한 거 같아서요. 그래서 왔어요.”

말을 맺고서, 놈이 고개를 들어 조부를 올려다보았다.

“힘 줄이고 싶어요. 알려주세요.”

“……”

‘짐승’의 머리가 옆얼굴을 가린 탓에, 티치에겐 놈의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리 나쁘지 않은 표정……

조부의 방식대로 말한다면, 썩 괜찮은 눈을 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조부가 놈의 옆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빙긋 웃었으니까.

“물론 알려주고 말고. 애초에 그를 위해 마련한 시간이다. 그러니 짐승아,”

조부는 놈의 손에 목검을 들려주면서 말을 이었다.

“성실하게 임하고, 정직하게 행동하거라. 네가 그러는 한, 나는 너를 도울 것이다. 알았느냐?”

“응. ……아, 아니, 네. 알았어요.”

“나 참, 길이 멀구먼.”

바짝 얼은 놈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조부가 씁쓸히 웃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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