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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401화 (401/475)

〈 401화 〉 외전 8) 우린 사람이니까 (Side : Tiech) (5)

* * *

그 후, 무척 간단한 교습이 시작되었다.

조부가 처음에 말했던 대로, 서로 목검을 맞부딪치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는 훈련인형을 치거나 허공에 목검을 휘두르면서 자세를 익히는 게 먼저이나, ‘짐승’에겐 더 우선적으로 배워야 하는 게 있었다.

바로 힘 조절.

‘짐승’ 스스로 배우고 싶다 한 힘을 줄이는 방법, 즉 적절하게 힘을 쓰는 방법이었다.

후웅.

조부가 본래보다 상당히 느릿하게 목검을 놀린다.

공격 대상은 어정쩡한 자세를 잡은 ‘짐승’이 아니라, 놈이 들고 있는 목검이다.

딱! 따악!

나무막대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울린다.

놈은 얼굴을 찌푸린 채 조부의 공격을 일일이 막기만 할 뿐, 조부가 노골적인 틈을 보여도 공격하려 들지 않았다.

이내 조부가 빠르게 두 번을 휘두르자,

따닥!

콰직.

“아.”

놈이 잡고 있던 목검의 자루가 깨져버리고 말았다!

조부의 공격이 아니라, 단순히 놈의 악력을 버티지 못하고 부숴진 것이었다.

“티치.”

“네.”

문지기에서 수련보조로 역할이 바뀐 티치.

그는 새 목검을 ‘짐승’에게 건네고, 부숴진 목검을 주워서 물러났다.

“자, 다시 해보자.”

‘짐승’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천천히 손잡이를 잡고, 다시 조부를 향해 자세를 잡았다.

뒤이어 또 다시 딱, 딱, 나무막대가 부딪치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공격은 오로지 조부의 몫이고, ‘짐승’은 그를 막기만 하고 있다.

언뜻 보면 놈이 조부에게 겁을 먹어서 방어에만 치중하는 것 같으나, 놈은 그저 조부의 뜻을 따르고 있을 뿐이었다.

목검을 놓치지 말 것.

그것이 조부의 지시였으므로.

그리고 그게, 조부가 놈을 위해 고안한 힘 조절 수련법이었다.

후웅.

따닥! 따악!

“아.”

조부의 이단공격을 막은 건 좋은데, 놈은 그 다음 공격에서 목검을 놓치고 말았다.

아마 손의 힘을 너무 뺀 것이리라.

‘짐승’은 가볍게 뛰어가서 목검을 주운 후, 또 다시 조부를 향해 자세를 잡았다.

탁탁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티치는 목검을 담아왔던 나무통에 시선을 옮겼다.

오늘 창고에서 가져온 것은 열 자루. 이중에 벌써 일곱이 부숴지고 말았다.

자루만 새로 달면 다시 쓸 수 있긴 하나, 아무리 조부가 마을의 중요 직책인 사범을 맡고 있다 해도 목검의 자루를 공짜로 만들어주진 않는다.

진검보다는 당연히 훨씬 저렴하지만, 한동안은 놈이 목검을 족족 부숴버릴 터.

원래도 그리 넉넉한 생활은 아니었는데, 좀더 어려워지는 건 아닐까 하고 내심 걱정이 되는 티치였다.

이윽고 놈이 마지막 열 번째 목검까지 부수자, 조부는 어깨를 으쓱이며 손에 든 목검을 허리춤에 꽂았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

뛸 듯이 기뻐할 줄 알았는데, ‘짐승’은 멀거니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티치가 부숴진 목검을 주우며 슬쩍 쳐다보니, 자신의 손바닥과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다.

표정은 덤덤하고, 두 눈도 여전히 텅 비어 있으나,

‘실망했나봐.’

티치는 어쩐지 놈이 시무룩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기운 내.”

넌지시 말을 걸자, ‘짐승’이 그에게 시선을 옮겼다.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표정과 눈길.

그는 소름이 돋는 걸 꾹 참으면서 살며시 웃었다.

“목검 부수는 간격이 점점 길어지던데? 내가 보기엔, 너 잘하고 있어.”

“……”

‘짐승’은 말없이 조부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말이 맞는지 묻기라도 하듯이.

그러자 조부가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시큰둥하게 말했다.

“티치의 말이 사실이긴 하다. 한참 멀어서 그렇지.”

“거봐. 할아버지도 너 잘하고 있다고 하시잖아. 그러니 기운 내.”

그 말에, ‘짐승’은 티치를 향해 눈을 멀뚱거리다가,

“나 힘 있는데?”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엉뚱한 답을 냈다.

‘아까는 단어를 모르더니.’

이번엔 그 말이 가진 다른 뜻을 못 짚어내고 있었다.

놈을 데려온 카엘이란 소년에 비하면, 말에 대한 능력은 한참이나 뒤떨어져 있는 듯했다.

티치는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고쳐 말했다.

“오늘 못했다고 실망하지 말고, 내일도 열심히 하란 이야기야.”

“응…… 내일은 될까?”

“안 될 게다.”

딱 잘라 말한 뒤, 조부는 ‘짐승’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허나 오늘보다는 나아지겠지. 모레는 내일보다 더 좋아질 것이고. 그렇게 차츰차츰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네 몸이 알아서 힘을 조절하게 될 게다.”

“정말요?”

“그럼. 나는 없는 이야기는 안 한다. 그러니 앞으로 계속 열심히 해라.”

“응…이 아니라 네! 네에에!!”

“허허, 올라가자.”

조부는 ‘짐승’의 머리에서 손을 떼고 먼저 지하 훈련장을 나갔다.

그 뒤를 따라가며, 놈이 자신의 정수리를 매만지면서 앓는 소리를 냈다.

아마 ‘응’이라 대답할 때 조부가 손에 힘을 줘버린 것이리라.

‘불쌍해.’

앞으로 계속 저런 식으로 예의를 배울 터.

어쩌면 머리가 온통 혹투성이가 될지도 모르겠다.

티치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훈련장을 나와 시계를 확인해보니, 고작 한 시간 정도만 지나 있었다.

‘한 시간만에 목검 열 자루라니……. 할아버지가 한참 멀었다고 할 만하네.’

한숨을 쉬면서 창고에서 나와, 실내 훈련장 근처에 있는 집으로 향했다.

티치가 문을 열자, 마침 카엘과 ‘짐승’이 조부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차랑 과자 맛있었어요. 감사합니다. 어, 그래도 매일 먹으면 죄송하니까, 내일은 안 주셔도 돼요.”

“손님 주제에 집주인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게냐?”

“네?! 어, 아뇨, 그게 아니라……!”

“농담이다. 재미있는 녀석이구나.”

조부는 허둥대는 카엘을 보며 껄껄 웃은 후, 그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조심히 돌아가거라. 저 놈이 사고 안 치게 잘 보고.”

“네, 사범님. 내일 뵙겠습니다. 티치 형도 내일 봬요. ……메린.”

두 사람에게 허리를 굽혀서 꾸벅 인사한 다음, 카엘이 ‘짐승’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찔렀다.

그러자 놈이 흠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내일 뵐게요.”

“오냐, 잘 가거라.”

“내일 봐.”

카엘은 문을 열어준 티치를 지나치며 또 한 번 고개를 까닥였다.

조부와 티치는, 손을 맞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걷는 두 아이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 카엘이란 아이, 네가 보기엔 어떠하냐?”

불현듯 조부가 던진 질문에, 티치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엄청 고분고분해요. 바로 옆에 있는 놈과는 딴판이에요. 그리고…… 좀 이상한 애인 거 같아요.”

“어디가 이상하더냐?”

“놈을 감싼 거요. 놈이 살구를 훔친 것도, 팔을 부러뜨린 것도 전부 자기 잘못이라고 하는 거 같던데요.”

“그래, 상당히 필사적이었지. 제 목숨이라도 걸린 것처럼.”

조부가 중얼거리면서 턱으로 앞을 가리켰다.

그를 따라간 티치의 시선 끝에, 카엘이 ‘짐승’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무어라 말을 건네고 있었다.

곧이어 놈이 소년에게 장난을 거는 걸 보니, 놈을 북돋아주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아마 평소에도 놈에게 헌신하고 있겠지. 그러니 저 짐승 놈이 스스로 목줄을 내어주었을 게야. 내가 굳이 한 달이나 볼 필요 없겠구나.”

“네? 그 말씀은……”

“놈은 이 마을에 발을 붙이게 될 게다. 저 아이가 그리 만들 것이야.”

확신이 담긴 목소리로 말한 뒤, 조부는 티치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너 역시 놈에게 잘 대해주어야 한다. 조금 전처럼만 하면 돼. 네가 내 뒤를 잇고서 놈을 맘껏 써먹으려면, 어느 정도 가까워야 하지 않겠느냐?”

“……제가 할아버지를 이어요? 설마요. 저보다 강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사범은 강하기만 해선 안 돼. 지식과 지혜를 함께 갖추어야 한다. 허나 요즈음 젊은이들은 머리를 경시하는 풍조이니 맡길 수 없어. 짐승들과 부대끼며 산다고 짐승이 되고자 하는 것인지, 원…….”

혀를 차면서 깊은 한숨을 쉬는 조부.

티치는 왠지 오늘따라 조부의 머리와 눈썹이 더 하얗게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러니 티치야, 나는 네가 내 뒤를 잇도록 준비시킬 생각이다. 그리고 ‘그것’을 네 검으로 붙이려 한다. 이 마을의 존속을 위해서는 그 길이 최선이야.”

“……”

“솔직히 말하마. 너에겐 고생길밖에 되지 않아. 앞으로도 다른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 시간은 없을 테니. 네가 나를 얼마나 원망하건, 나는 네 어깨에 이 짐을 지울 게다. 나는 네 할애비이기 전에, 이 마을의 사범이니 말이다.”

사범은 정에 휘둘려선 안 된다.

그가 항시 주의를 기울이고 우선해야 하는 건 마을의 안전뿐.

손자의 꿈이나 행복처럼 사소한 것은 냉담하게 잘라내버려야 한다.

“허허, 참으로 끔찍한 할애비야. 너도 참 박복하구나, 티치야. 혈육이라고 하나 남은 것이 사람 가죽을 쓴 검이어서.”

“아니에요! 할아버지는 멋지고 굉장한 사람이에요!”

티치는 울컥한 마음에, 조부를 쏘아보며 크게 소리쳤다.

“딴 사람은 십여 년밖에 못한 사범 일을 이십 년도 넘게 하고 계시잖아요!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데요! 다들 할아버지가 존경스럽다고 하던걸요!”

“……”

“곰은 물론이고, 망령까지도 검으로 베어서 없애실 수 있고! 또 과자도 잘 구우시고요! 할아버지 과자가 얼마나 맛있는데요!”

조부의 과자는 축제나 바자회에 내놓는 족족 다 팔릴 만큼 인기가 많다.

동네 아이들이 과자 하나만으로 티치가 조부의 손자인 걸 부러워할 정도이다.

그뿐인가? 조부는 걸음마나 겨우 뗀 아기였던 티치를 맡아서 오늘날까지 키워냈다.

사범 일을 하면서도 그를 먹이고 씻기고 재웠다.

무서운 꿈을 꾸거나 밤의 숲에서 들리는 이상한 소리에 자다 깨서 덜덜 떠는 그를 다정하게 달래주었다.

“저, 다른 애들이랑 안 놀아도 돼요. 할아버지 얘기 듣는 게 더 재밌어요. 할아버지랑 같이 있는 게 더 좋아요!

그러니 할게요! 할아버지 뒤를 이을 준비할게요! 자신은 없지만, 공부 열심히 할게요! 할아버지의 손자답다고… 할아버지가 자랑스러워하시겠다고…! 다들 그렇게 말하게 할 테니까……!”

끝까지 씩씩하게 말하려 했는데, 갑자기 눈물이 솟는 바람에 끝을 흐리고 말았다.

이유도 모르는 채 눈물을 흘리는 티치를,

“……허허, 이거 원.”

조부는 난감해하는 투로 웃으면서 안아주었다.

“욘석아, 울긴 왜 우느냐? 누가 보면 내가 꾸짖은 줄 알겠구나.”

“할아버진 안 끔찍해요…! 난 할아버지 좋단 말야……!”

“그래, 알았다, 알았어. 내 다신 그런 말 하지 않으마. 그러니 뚝 그치거라.

허허, 이거 손자 무서워서 말도 편히 못하겠구먼.”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말과 달리, 그의 등을 토닥이는 손길은 한없이 부드러웠다.

티치의 몸은 아직 작아서 조부의 품에 쏙 들어가고도 남았기에, 티치는 조부의 얼굴을 올려다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조부가 이를 악문 것을, 엄하고 매서운 두 눈이 붉어진 것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저 오랜만에 느끼는 포근함에 잠긴 채, 옛날로 돌아간 것처럼 마음껏 울 뿐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할아버지와 손자는 서로를 껴안은 채 눈물을 흘린 것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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