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6화 〉 382화 : 귀성길 (3)
* * *
사락. 사라락.
간드러진 소리를 내며 물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수면 아래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웅덩이 가장자리가 크게 흔들리는 것에서 대강 상상은 간다.
이쪽에서 저쪽, 저쪽에서 그쪽, 그쪽에서 다시 이쪽으로 파문이 피어나길 서너 번.
마침내 중앙 부분이 조금 크게 일렁이더니,
촤아—
커다란 물방울들과 함께, 메린이 수면 위로 튀어올랐다.
녀석은 공중에서 옆으로 한 바퀴 빙글 돌고서 우아하게 착지한 후,
“히힛! 시원해~”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면서 천진난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녀석의 옆에서 거북이가 고개를 쏙 내밀어 분수처럼 물을 뿌리자, 녀석은 한층 더 크고 높이 웃으며 활기차게 물을 첨벙거렸다.
그야말로 물놀이를 실컷 즐기고 있는 그 모습을,
“참 잘 노네…….”
나는 나무에 기대어 앉은 채 멀거니 쳐다보고 있었다.
반강제로 먹은 기력회복제 덕에 기운이 좀 생긴 것 같길래, 난 괜찮으니 물놀이하라고 녀석에게 권한 건데.
저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그러길 잘했다 싶다.
“꺄하핫!”
앉은 채로 거북이가 내뿜는 물에 방방 띄워지는 메린.
진짜 말 그대로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다.
저렇게까지 환히 웃으면서 즐거워하는 건 무도회 이후로 처음인가?
음…… 아니, 그 이후로 신나게 논 적이 없었구나.
게다가 요즘 날씨가 엄청 뜨겁거나 꿉꿉하기만 했으니, 몸에 눌러붙었을 찝찝함을 씻어낼 수 있어서 한층 더 기쁜 것이리라.
나도 더위만 안 먹었으면 물에 뛰어들었을 텐데. 좀 아쉽다.
“이야~ 메린 님, 정말 잘 노시네요~ 왠지 저까지 즐거워지는 거 같아요~”
그렇게 말하며, 로나는 복숭아를 담은 그릇을 들고 내 옆에 앉았다.
그리고 나에게 하나를 건넨 다음, 그녀 자신도 복숭아를 하나 집어서 먹기 시작했다.
그녀를 따라 복숭아를 한 입 베어 물자, 시원하게 식혀진 과육이 달콤한 즙과 함께 입 안을 가득 채웠다.
아주 조금 단단한 과육을 씹을 때마다, 달콤한 즙이 더 배어 나오면서 혀를 더더욱 즐겁게 해주었다.
왠지 평소보다 한층 더 단 거 같은데? 복숭아가 차갑게 식혀져 있어서 그런가?
더 진한 단맛이 느껴지는 만큼, 왠지 기운도 더 솟는 것 같았다.
“맛있네~”
“그렇죠~ 바람도 시원하고 맑은 물소리도 들리고! 히히, 피로가 싹 씻기는 느낌이에요! 덤으로 눈 호강도 하고요!”
“……”
눈 호강…….
복숭아를 우물거리면서 다시 웅덩이 쪽을 힐끗 보았다.
마침 또 물 속에 들어가 있었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던 메린이 또 땅을 박차고 공중에 튀어올랐다.
어째 이번엔 좀 높이 뛰었다 했는데,
“엇차.”
녀석이 나와 로나가 앉아있는 나무 근처에 착지하곤 가볍게 뛰어오는 것이었다!
“으.”
곧바로 고개를 돌리고서 복숭아를 까작거리기 시작했다.
기운을 차린 건 좋은데, 그 때문에 메린의 지금 모습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왜냐? 수영복이라는 이름의 속옷만 입고 있으니까!
물론 녀석의 저런 모습은 이미 몇 번이나 봐서 익숙하다.
심지어 그조차 벗어버린 것도 여러 번 봤지?
그러니 원래라면 조금 두근거리기만 하고 말아야 할 터.
그런데 이상하게도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녀석의 가슴이 크게 흔들리면서 물방울이 튀는 걸 볼 때마다, 온 몸에서 물기를 흘리는 녀석과 눈을 마주칠 때마다, 어째서인지 가슴이 마구 터질 것처럼 마구 뛰어대는 것이었다!
“복숭아 내 것도 있어?”
“물론이죠! 여기요~”
“고마워~”
감사를 표하는 메린의 목소리는 무척 밝다.
기분이 꽤나 좋은가보군. 참 잘됐네.
이내 바닥에 못 박은 시선으로 하얀 다리가 지나가는 게 보인 후, 내 옆 바로 가까이에서 시원한 기운이 풍기기 시작했다.
메린 녀석이,
내 옆에 앉은 것이다!
……뭐,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달다~ 근데 이 놈은 또 왜 이러고 있냐?”
“눈이 너무 호강해서 조금 과열되신 모양이에요! 기운을 많이 차리셨다는 증거이죠! 이야~ 역시 효과 끝내주네요! 수영복!”
“아니야!! 기력회복제랑 여기 그늘이 시원한 덕분이지!!”
속옷 따위가 뭐라고 기운을 북돋아? 말도 안 되는 소리!
메린이 즐겁게 놀면서 웃는 게 예쁘고, 꽉 조이지 않은 가슴이 흔들리는 게 조금 두근거리는 건 사실이지만!
저 속옷이랑은 하등 상관이 없다고!
뭐, 겉이 비단으로 되어 있는지 물에 젖어도 속이 비치지 않는 게 신기하긴 해.
하지만 그뿐이다. 속이 안 비치니까 야한 것도 아니고.
……그래, 하나도 야하지 않아.
얼굴이 화끈거릴 게 못 돼.
지금 그런 분위기인 것도 아니고 말야.
맞아,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이렇게 눈 못 마주칠 게 아니라, 오히려 시큰둥하게 봐야 한다고.
“그럼 이건 도움 안 됐냐?”
의아해하는 듯이 말하며, 메린이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강제로 돌렸다.
뺨을 흐르는 물방울이 목선을 타고 내려가, 봉긋하게 솟은 두 동산 사이의 계곡으로 들어가는 게 보인다.
그 아래에선, 매끈한 복부를 따라 흘러내려가던 물방울이 배꼽에 들어가, 그 안에 이미 고여 있던 물과 함께 더 아래로 또록 떨어지는……
“…………”
“아, 도로 뜨거워졌다. 여기 그늘인데 더워? 그냥 너도 물에 들어가는 게 낫지 않냐?”
“지금 들어가면 죽어…….”
물로 식히려 하면 십중팔구 익사할 거다.
물 속에 고개를 처박고 들지 못할 테니까.
“그래? 그럼 이러면 시원하지?”
물컹.
메린이 조금 전처럼 자신의 가슴에 내 머리를 묻으며 꽉 껴안았다!
녀석의 몸에 묻은 물기에 더해, 시원한 기운이 얼굴 사방을 감싸며 시원하게 식혀주기 시작했다.
응, 시원해. 무지하게 시원한데……
입 밖으로 말할 수 없는 부분이 한층 더 뜨거운 열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흐음…… 왠지 더 더워지는 거 같기도 하고? 역시 너도 물에 좀 담그는 게 나을 거 같은데.”
“아냐…, 너 때문이야…. 네가 놔줘야 돼…. 흑… 살려줘어…….”
“나?”
내가 봐도 조금 너무 애처로운가 싶은 목소리로 애원했더니,
“에엥~? 내가 문제야~? 왜애~? 내가 뭐가 어떻다고 문제라는 거냐~?”
말꼬리를 쭉쭉 늘리면서 내 뒷머리를 더 꾹꾹 누르는 것이었다!
이 새끼, 다 알고 일부러 하고 있구만?!
아으, 말랑말랑하면서 부드러운 게 얼굴 한가득……!
게다가 체취까지……!
살려줘! 숨 막히든가 머리가 터지든가, 둘 중 하나로 죽을 거 같아!!
“그러고 보면 너 내 가슴 꽤 좋아한단 말이지?”
“무, 뭔 소리야……!”
“아니야? 너 맨날 가슴에 제일 먼저 손대잖아. 전에 속옷 벗고 셔츠만 입었을 때도 뚫어져라 쳐다보고.”
“으… 그야… 워, 원래 남자는, 거기에 끌리게 되어 있으니까……!”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귓속을 울린다.
……착각인가?
왠지 메린의 목소리가, 조금 열을 띤 것처럼 느껴진다.
안 그래도 열이 올라서 뜨거워 죽겠는데, 녀석은 날 완전 익혀버릴 셈인 듯했다.
귀에 바짝 입을 대더니 숨결 섞인 속삭임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저번에 내가 너 욕구 풀어줬을 때도 손보다 가슴이 더 반응이 컸고.”
“……!”
“지금도 내가 이러고 들이미니까…… 후후, 엄청 답답할 거 같은데.”
“야, 너……! 윽……!”
이 녀석이 또 손을……!
바로 옆에 로나도 있는데!
“와~ 물 진짜 시원하네요~ ……네? 아하하, 수영복 하나밖에 없거든요. 장서관 기억하시죠? 거기서 자료 보고 신전에 그냥 제작요청 한 번 넣어봤는데 해주더라고요. 조건은 좀 붙었지만요.”
……있는 게 아니라 있었다.
대체 어느 틈에 간 건지, 로나는 물웅덩이에서 거북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었다!
그보다 장서관에서 자료를 봤다고?
그럼 진짜 다른 세계에선 속옷 차림으로 물놀이를……
아니, 대놓고 속옷 차림으로 밖을 돌아다닌단 말야?!
뭐 그딴 파렴치한 세계가……!
꽈악.
“아흑?!”
“내가 이러고 있는데 딴 생각하냐?”
“아냐, 아니…야…! 윽, 얌마, 그만해…!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뭐 어때? 그냥 장난치는 건데. 너랑 나 사이 모르는 것도 아니고.”
장난치는 거라고?
귀 깨무는 게? 목덜미 핥는 게?!
웃기고 있네, 이게 어디를 봐서 장난이야?!
벗어나야 돼! 이 이상은 진짜 위험하다.
안팎으로 열이 들끓어서, 진짜 머리가 어지러워지고 있어……!
“메린…, 으, 놔줘… 제발……!”
“싫~어. 히히, 새빨개진 거 귀여워~ ……야, 카엘.”
아무래도 이 녀석도 더위를 먹어버렸던 모양이다.
물의 정령이 마련한 시원하고 맑은 물로도 식힐 수 없을 만큼, 아주아주 뜨거운 열기가 몸 속에 박혀버린 게 분명하다.
확연히 달구어진 목소리로 속삭이면서, 평소에는 하지 않을 말들을 마구 내뱉기 시작했으니까.
“내가 그렇게 꼴려? 내 가슴이 그렇게 좋아? 당장이라도 쓰러뜨리고 싶을 만큼? 저번처럼 정신없이, 사정 안 봐주고 마구 내 뱃속 헤집고 싶을 만큼?”
“큭… 하……!”
속삭임도, 손도 멈추지 않는다.
요 며칠 전을 상기시키는 목소리. 그보다 지난 일을 불러 일으키는 손길.
뜨거워.
몸이 뜨거워서, 허리이건 머리이건 전부 다 타버릴 거 같아……!
이 녀석, 진짜 나 죽일 생각이구나.
몽롱해지는 의식 속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몇 번이고 내 이름 부르면서, 몇 번이나 안에 뿌리고. 뱃속에 가득 차서 흘러 넘치는데도 계속 붓고……. 후후, 또 그러고 싶어?”
아, 더는…….
“하으.”
“아.”
……녀석에게 꽉 껴안긴 채 의식을 잃고 말았다.
아득하던 목소리가 서서히 가까워진다.
“불구덩이………완전 비가 퍼부어서………”
“……연락을……”
“며칠……”
말소리가 들리긴 하는데, 너무 띄엄띄엄 들려서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말을 꺼내는 녀석들의 목소리가 하나같이 가라앉아 있는 걸 보아, 무언가 진지하고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 게 분명하다.
……그럼 내가 빠지면 안 되잖아.
눈을 감고 있는 상태에서 한층 더 힘있게 질끈 감았다가 번쩍 뜨는 동시에,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런 뒤, 흠칫 놀라는 시선을 받으면서,
“으으……”
그대로 앞으로 푹 고꾸라지며 신음했다.
어지러워…….
“갑자기 일어나니까 그렇지. 괜찮아? 자, 물.”
내밀어진 물잔을 받아서 반쯤 비운 후,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들었다.
노란색과 붉은색이 섞인 울긋불긋한 머리.
날카로운 눈매에 짙은 녹색 눈동자.
그 속에 자리한, 인간이 아니라는 걸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세로 동공.
조금 오래 자리를 비웠던 블루벨이, 모닥불을 등지고서 나를 매섭게 쏘아보고 있었다.
얼굴이 부루퉁한 걸 보니 무언가 불만이 있으신 듯했다.
“안녕, 블루벨. 좋은 아침, 아니 좋은 저녁이야.”
“너 진짜 태평하구나……. 나랑 까만 녀석,”
“색깔 언급하지 말라니까!”
이 할망구가 세상 무서운 줄을 몰라!
그러나 블루벨은 이상한 놈을 보는 듯한 눈초리로 나를 쳐다볼 뿐, 자신이 어떤 무시무시한 발언을 했는지 전혀 깨닫지 못하는 듯했다.
후, 역시 이종족은 이종족이구나.
문화적인 이해의 차이는 어쩔 수 없나봐.
이내, 블루벨은 왠지 상당히 피곤하다는 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하…… 됐다, 내가 뭔 말을 하겠니? 나랑 위슨 녀석이 뭘 보고 왔는지나 들어봐.”
“뭐 봤는데? 아니, 그 전에 메린은 어디 갔어?”
왠지 안 보이는 것 같아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 옆에는 위슨의 늑대가 엎드려 있고, 모닥불 근처에선 위슨이 프라이팬을 스푼으로 휘휘 젓고 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선 로나가 솥에 든 수프인지 스튜인지를 한 그릇씩 뜨고 있었다.
근데 메린은 어디 있길래 안 보이는 거지?
천막도 다 쳐져 있는데.
“메린? 저기.”
블루벨이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졸졸 흐르는 개울과 물웅덩이 앞쪽 바닥에, 무언가 둥그런 게 놓여 있는 거 같은데…….
약간 꿈틀거렸다!
어, 설마.
“저게 메린이야?! 왜 저러고 있어?!”
“아, 카엘? 깨어났냐? 머릿속 쿡쿡 쑤시고 그러진 않지?”
진짜 메린이잖아!
뭐야, 지금 메린이 땅 속에 묻힌 채 머리만 밖에 내밀고 있는 거야? 왜?!
“왜냐고요? 형은 지금 열 계속 식혀야 되는데 오히려 달궈버렸잖아요. 나 참, 아무리 형 놀리는 게 재미있어도 그렇지…….”
“잘못했어~ 풀어줘~ 으으, 배고파…….”
힘없이 훌쩍이는 메린.
아무래도 나를 기절시킨 벌로 땅에 묻어버린 모양이었다.
근데 왜 물웅덩이를 마주보는 방향으로 묻은 거지?
내가 깨어나는 걸 못 보게 한 건가?
뭐 아무튼, 환히 밝았던 주변이 어스름에 잠긴 걸 봐서, 한 네다섯 시간은 족히 뻗어 있었던 것 같다.
여전히 몸은 조금 무겁고 머리도 지끈거리지만, 덕분에 허기가 느껴질 만큼은 회복이 된 듯했다.
“위슨, 메린 풀어줘. 잘못했다고 하잖아.”
“……그렇다는데 테라? 어쩔래?”
위슨이 팬에 담긴 음식을 큰 그릇에 덜면서 묻자,
“으르르르……!”
……늑대가 노골적으로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싫다는데요.”
“그런 거 같네……. 테라, 그만 용서해줘. 난 괜찮아.”
늑대를 쓰다듬으면서 부탁해봤으나,
“웡!”
“아야.”
녀석이 오히려 내 손을 살짝 물어버렸다!
우와, 진짜 엄청 화났나봐.
혹시 나 죽을 뻔했었나?
“으르르르!”
“아윽, 더 조인다아! 으으, 잘못했어! 다신 안 그럴게!!”
……메린은 그렇게 한참을 울먹이면서 애원한 뒤에야 겨우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부드럽게 파인 구덩이를 올라온 후, 내 쪽으로 터덜터덜 다가오기 시작했다.
내가 쓰러져 있는 동안 갈아입은 건지, 그 수영복이라는 속옷이 아니라 평소처럼 튜닉과 바지 차림을 하고 있었다.
"카엘……!”
메린은 가까이 오자마자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늑대가 앞발로 등을 툭툭 두드리는 걸 조금도 개의치 않아 하면서.
“이제 괜찮아? 아까는 미안. 내가 너무 심했어. 적당히 했어야 하는데… 아까는 너무 들떠서…….”
“괜찮아, 괜찮아. 내가 그렇게 심각했어?”
“한참을 안 깨어났어. 으, 네가 열에 약한 거 누구보다 알면서……. 미안해…….”
“괜찮아, 메린. 나 이제 멀쩡해.”
훌쩍이는 메린을 토닥여준 후, 녀석과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동안 울기도 했는지 눈가가 빨갛게 부어 있었다.
“봐. 멀쩡하지? 이제 진정하고 같이 저녁 먹자. 배고프다며? 나도 배고파.”
“응…….”
고개를 끄덕이는 메린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로나가 건네는 그릇을 각자 받고 한 스푼 떠먹었다.
“음, 짜다.”
“하나도 안 짜구만, 뭘!”
블루벨이 곧바로 앙칼진 투로 대꾸하는 걸 보니, 오늘 수프는 그녀가 만든 모양이었다.
“먹을 만한데 짜. 빵 땡긴다. 그건 그렇고, 위슨이랑 같이 뭘 봤는데?”
아까 하다 만 이야기를 다시 꺼내자, 블루벨이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면서 툭 내뱉듯이 말했다.
“저~기 앞쪽 꼴을 봤어. 한치 앞도 안 보일 만큼 짙은 안개가 껴 있고, 머리가 따가울 정도로 비가 퍼붓고 있더라. 날씨는 여기보다 더 뜨겁고. 그냥 걸어서는 절대 못 지나가.”
“저 앞쪽에 뭐가 있길래 그래?”
생각지도 못한 흉보(??)에 표정을 찡그리며 물었다.
그러자 마침 그릇을 기울이는 블루벨 대신, 위슨이 고기조림이 담긴 그릇을 들고 오며 대답했다.
“불구덩이요.”
“불구덩이? 그 ‘불구덩이’?”
“네. 드래곤의 불꽃이 담긴 그 ‘불구덩이’요.”
달그락.
굉장히 태연하게 엄청난 소식을 전하는 위슨.
말투만큼이나 태평한 손놀림으로 우리 앞에 그릇을 내려놓고 빈 자리에 가서 털썩 앉았다.
그 괴리감 탓에, 나는 잠시 벙벙한 얼굴로 멍하니 있다가,
“……뭐?”
가까스로 그 한 마디만 꺼낼 수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