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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409화 (409/475)

〈 409화 〉 385화 : 그립지 않았고 반갑지 않은 고향 (1)

* * *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햇살이 비추는 숲을 걷는다.

덤불을 헤집고 땅에 엎드려 바닥을 살핀다.

찾을 수 없다.

한 줌의 달빛만이 겨우 들어오는 숲을 걷는다.

땅에 켜켜이 쌓인 이파리를 뒤적이고,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달려간다.

그럼에도 찾을 수 없다.

­이미 늦었어.

앞을 걷는 내 뒤에서 목소리가 중얼거린다.

하루가 지났으니 죽었다고 봐야 한다.

아니, 죽었을 게 틀림없다.

그러니 묻자.

땅을 파고 관을 묻어서 무덤을 만들자.

평평한 돌에 이름을 새기고 비석을 세우자.

……정말 웃긴 놈들이야.

시체도 못 봤구만, 누구 맘대로 죽었대?

고작 하루밖에 안 지났잖아.

왜 멋대로 죽은 사람 취급해?

왜 찾으러 안 가?

이제 겨우 하루 지났는데!

­늦었으니까.

아직 늦지 않았어.

그러니 내가 찾아낼 거다.

이번에야말로.

­카엘……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두려움에 떨며 도움을 청하는 목소리.

늑대에게 물려가면서 필사적으로 바닥을 긁는 소리가 들린다.

직접 본 광경도 아닌데, 나는 ‘또 그럴 순 없다’고 생각하며 힘껏 내달린다.

엄마에게서 떨어지라고, 엄마를 내버려두고 꺼지라고 소리치면서 뛰어간다.

……그럼에도 목소리는 조금도 가까워지지 않는다.

빽빽하게 자란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건 또 다른 나무들뿐.

찾고 싶은 사람의 모습은 머리카락 한 올도 보이지 않는다.

­카엘……! 카엘……!

소리들이 들려온다.

으르렁거림. 날카로운 비명. 천이 찢기는소리. 고기가 뜯기는 소리.

숨이 끊어지려는 소리.

울창한 숲 너머에서, 그 소리들이 끊임없이 들려온다.

보일 리도 없고, 본 적도 없는 광경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귀를 틀어막은 손을 뚫으면서까지 귓속으로 들어오는 소리에 몸부림치며 바닥에 엎드린다.

어쩐지 원망 어린 한탄이 들려오는 것 같다.

왜 버렸냐, 어째서 잊으려 하냐,

지금까지 널 키우느라 뼈빠지게 고생했는데, 그 은혜를 원수로 갚는 거냐.

엄마가 하지 않을 법한 말들이,

엄마의 목소리로 들려오고 있다.

……죄송해요. 못 찾아서 죄송해요.

아무 쓸모도 못 되어서 죄송해요.

바닥에 머리를 박고 하염없이 사죄하는 나를, 누군가가 일으켜 세우면서 끌어안는다.

­카엘.

단 하나 남은 따스함이 속삭인다.

­네 잘못이 아니야. 괜찮아. 울지 마.

이것마저 잃어버리면, 이 이상 살아갈 의미 따위 없다.

­돌아가자.

그렇기에 놓치지 않으려 꽉 붙잡는 순간,

“………”

……폭신한 감촉이 옆구리와 어깨에 느껴지면서, 등이 살살 두드려지는 느낌이 들고 있었다.

먼 곳에서 희미하게 탄성이 들려오고 있다.

그리고 코끝에 감도는 익숙하고 편안한 향기에 섞여, 향긋한 냄새가 풍기는 것도 같았다.

가만히 눈꺼풀을 들어올리자, 자그마한 펜던트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은방울꽃,청초하면서 귀여운 외양 속에 무시무시한 맹독을 품고 있는 꽃을 본 따 만든 장식이 보인다.

나도 모르게 코를 훌쩍이면서 그에 손을 뻗었다.

달달 떨리는 손가락 끝으로 그를 매만지자, 등을 휘감은 팔이 갑자기 더 깊이 들어오면서 부드럽고 포근한 무언가에 얼굴이 폭 잠겨버렸다.

“깼냐?”

“……”

대답하려고 입을 열려는 순간, 그제야 나는 호흡이 흐트러져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얼굴이 축축하다는 것도, 눈가가 뜨겁다는 것도.

……내가 지금 울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었다.

말을 꺼내려 하면 괜히 흐느낌만 터질 거 같아, 입을 꾹 다물고 침묵을 지켰다.

그 대신 그녀의 등 뒤로 팔을 둘렀다.

그러자 등을 토닥이던 손이 머리로 옮기며 나직이 쓰다듬기 시작했다.

“꿈꿨어? 꽤 시달리는 거 같던데. 나쁜 꿈?”

“………”

덤덤하게 묻는 그녀를 더 꽈악 안았다.

어쩐지 숨이 더 가빠진 것 같았다.

“그렇구나. 괜찮아, 카엘. 그건 꿈이야.”

“메린…… 윽… 메린……”

“응. 나야. 나 여기 있어. 괜찮아.”

그녀는 여기에 있다.

그때도 그랬듯이, 지금도 내 바로 옆에.

아직,

나와 함께 있다.

엄마는 잃어버렸지만 메린은 아직 여기에 있어.

그러니 괜찮아.

난 괜찮은 거다.

오늘도 숨쉴 수 있다.

아직 살 수 있어.

………그렇게 한참 되뇌고 나서야, 겨우 호흡을 가다듬고 물을 수 있었다.

“몇 시야……?”

“여섯 시.”

“다른 사람들은……?”

“버섯귀신의 버섯 말린 걸로 수프 끓여보고 있어.”

그럼 지금 밖에서 나는 이 냄새가 그 버섯귀신 끓여서 나는 거란 거 아냐.

그게 이렇게 좋은 냄새가 난다고?

그보다 그 녀석들, 시체에 돋아난 버섯을 뜯어서 말려 먹을 생각을 했단 말야?!

“미친놈들…….”

우리 동네 사람도 그딴 짓은 안 한다.

세상에, 현지인보다 더하네.

작게 한숨을 쉰 후, 어째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메린의 등을 살며시 쓸어내렸다.

간지럽다며 키득 웃는 소리가 돌아오자, 이게 정말 현실이 맞다는 실감과 함께 큰 안도가 밀려왔다.

“메린…… 좀 쉬었어? 계속 깨어 있던 거 아니지?”

“어. 쉴 만큼 쉬었어. 조금 전에 깨서 보니까 네가 꿈에 시달리고 있더라.”

“………숲에서 자서 그런가봐.”

간만에 꾼 악몽이다.

아마 어제 네이멜과 이야기하다가 예전 일을 떠올려서 그런 꿈을 꾼 거겠지.

엄마가 돌아가신 걸로 된 후, 나는 메린과 함께 일주일 정도 숲을 헤매고 다녔었다.

아직 살아있을 엄마를 구하거나, 아니면 그 시신이라도 찾기 위해서.

불행히도 나는 둘 중 무엇 하나 이루지 못했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쓰러져버렸다.

그 뒤, 정신을 차리니 일주일이 훅 지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숲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가 뭐하고 다녔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또렷이 기억하는 건, 메린과 함께 숲을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다는 것뿐이다.

……어쩌면 방금 꿨던 꿈에서처럼 나를 데리고 나왔던 건지도 몰라.

한차례 콧노래를 부른 메린은, 내 머리를 툭툭 두드리면서 말했다.

“좀더 자. 오늘 새벽에 잠들었는데 꿈 때문에 설쳤으니 피곤할 거 아냐.”

“……싫어.”

“자면 또 꿈꿀까봐? 괜찮아. 불침번 안 서도 되니까 내가 계속 이러고 있어줄게.”

“싫어. 좀더 오래 너 느끼고 싶은데, 자면 그게 안 되잖아.”

나를 감싸는 따스하고 포근한 온기도, 안심하게 해주는 체취도.

잠에 들면 더 느끼지 못하고 뚝 끊겨버린다.

놋지빌로 돌아왔으니,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잖아.

일 초라도 더 오래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녀의 존재를 되새기고 싶다.

……눈이 가물가물한 시점에서 이미 반은 글렀지만.

“그래도 자. 나 너 자는 거 보고싶어. 너 잠든 얼굴 있잖아, 나까지 졸릴 만큼 되게 풀어져 있거든? 근데 보고 있으면 속이 따뜻해져. 그러니까 자라. 응? 자장가 불러줄게.”

“부르지 마, 임마!”

곧바로 발끈하자, 메린이 입을 약간 비죽 내밀었다.

진짜로 부르고 싶었나보다.

돌겠네, 진짜.

아무튼 나는 더 오래 깨어 있고 싶지만……

어쩔 수 없지.

메린이 내가 자는 얼굴 보고 싶다고 하니 자는 수밖에.

“그럼 잘 테니까, 잠깐 놔줘봐.”

메린은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풀어주었다.

나는 옆으로 누운 자세 그대로 조금 더 위쪽으로 올라간 다음, 일직선상으로 마주보게 된 메린의 뺨을 손으로 감싸고 그녀와 입을 맞추었다.

타액을 주고받거나 서로의 숨결을 나누지 않고 그저 입술을 마주 포갠다.

기억에 완전히 새겨질 때까지 몇 번이고 맞대다 떼기를 반복한다.

따뜻해.

맞닿은 입술도, 어깨를 쓰다듬는 손길도.

전부 다 따스하다.

너는 내가 따뜻하다고 했지?

아니, 그냥 네 온기가 옮았을 뿐이야.

네가 나에게 따뜻함을 나눠주지 않았다면, 내 마음은 진작에 싸늘하게 얼어서 죽어버렸겠지.

“……”

그렇게 그녀를 입술로나마 깊이 되새겨서 그런지, 아니면 그녀가 키스하는 동안 머리를 쓰다듬어서인지, 가슴이 쿵쿵 뛰며 설레는 대신에 마음이 차츰차츰 더 차분히 가라앉아갔다.

이내 마지막으로 입술을 뗀 후, 그녀를 깊이 끌어안으면서 이마에 짧게 키스했다.

“사랑해. 이따 봐.”

“……응. 잘 자.”

나지막이 속삭이는 목소리에 이끌리듯 또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그 뒤에 꾼 꿈은, 무언가 보이는 것 하나 없이 그저 포근한 느낌만 가득했다.

다시 깨어난 오전 열한 시, 로나가 방긋 웃는 얼굴로 내미는 버섯귀신 시체 수프 대신에 과일로 허기를 달래고서 마을로 향했다.

남쪽에 있던 마을은 새벽에 서리가 내려도 금방 다 녹더니, 여기는 서리를 넘어서 진짜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근데 이거 사람이 사는 마을에만 적용되는 거 아니었어?

남쪽 마을은 외벽 안쪽만 내리더니, 여긴 숲에까지 싸라기눈이 막 내리고 있네.

그 덕에 겨울 옷과 두툼한 털신발을 신고 걷는 중이다.

아직 8월인데, 나 참.

“히잉… 모처럼 맛있게 끓인 건데요…….”

로나가 시무룩한 얼굴로 터덜터덜 걸으며 중얼거렸다.

내가 버섯귀신 시체 수프를 거절한 것에 상심한 모양이다.

진짜 진심으로 그딴 걸 나에게 먹이고 싶었던 건가?

힘들게 뺀 독기 도로 쌓을 일 있나.

“아니, 겉부터가 망했잖아. 거무튀튀하고 걸쭉해서 무슨 진흙 끓인 것 같더만. 어떻게 그걸 먹을 생각을 하냐?”

“먹을 거 가리면 안 된다고 배웠는걸요. 멀쩡한 식량 구하기 힘든 혹독한 곳에서 싸워야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거 가르친 사람도 아까 같은 건 안 먹을 거다.”

대체 뭘 넣었길래 비 오는 날의 진흙 늪처럼 부글거린 건지 도통 모르겠다.

세 녀석은 그 버섯밖에 안 넣었다고 하던데, 그럼 더더욱 먹으면 안 되는 거잖아.

“왜? 보기엔 그래도 꽤 괜찮은 맛이던데.”

“……”

그리고 그런 나를 향해, 블루벨은 정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 것이었다.

정말 안 먹길 잘했다고 절절이 통감한 순간이었다.

“근데 아까 그 호숫가 정말 위험하긴 했네요. 물맛은 엄청 좋았지만요. 드라우너가 있는 건 그렇다 치고, 무슨 나무귀신이 주변 나무의 절반이나 섞여 있데요? 아까 그 호수가 카엘 님네 마을의 식수이죠? 매일매일 힘들었겠어요~”

“아니, 원래 그 근방에선 안 나오던 놈들이야. 위치는 몰라도 광석 캐러 가다가 종종 만난다고 했어. 근데 그런 놈들이 호숫가에 저렇게 우글거리다니…….”

몬스터의 활동이 격해진다는 게 이제야 실감이 나는 듯했다.

호숫가는 마을의 유일한 식수원인 만큼, 가장 최우선적으로 안전을 확보하던 곳이었으니까.

그런데도 저 모양이 됐다는 건……

다들 어디서 물을 구해서 버티고 있는 거지?

“신전에 우물 없나요? 의식이다 뭐다 해서 물 많이 쓰거든요.”

“글쎄…….”

신전 예배에 꼬박꼬박 출석한 건 아니지만, 우물 같은 걸 본 기억은 없다.

거기 고아원에서 자란 메린도 본 적이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 한 달 전에 결혼식도 올렸었으니 무언가 방법을 마련한 거겠지.”

어쨌든 마을에 가보면 바로 알게 될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서리 뿌리는 나방과 리캠쉬던가 하는 숲 슬라임과 왕도마뱀보다도 더 큰 제왕도마뱀을 차례차례 해치운 다음, 왜 이런 데서 튀어나오고 지랄이냐고 욕을 한 바가지 퍼부으며 계속 가던 중,

“응? 카엘, 저기 엄청 난리 났는데?”

블루벨이 갑자기 어느 한 방향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난리? 지금 우리보다 더해? 오 분이면 가는 거리를 삼십 분도 훨씬 지났는데도 아직 도착 못하고 있는 우리보다 더 심하냐?”

“잠깐 있어봐.”

진중한 표정으로 말하고서 눈 깜짝할 사이에 모습을 감춘 블루벨은, 이내 새파랗게 질린 얼굴이 되어 다시 돌아왔다.

“무슨 큰 전투가 있었던 거 같아. 시체가 막 널부러져 있는데, 사람 하나가 살아있어!”

“살아있다고?”

그럼 서둘러야지!

나는 하얗게 쌓인 눈을 헤치면서 외쳤다.

“블루벨, 로나 데리고 먼저 가! 메린, 위슨, 서두르자!”

시체는 고깃덩어리, 즉 여러 짐승과 몬스터의 먹이이다.

그리고 일부 특이한 놈을 제외하곤 시체보단 살아있는 먹이를 더 좋아하는 법.

그 생존자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한시라도 빨리 가야 해.

기껏 살아남았는데 몬스터가 꼬여서 죽을지도 몰라!

블루벨이 내 말에 고개를 크게 끄덕이더니 로나를 등에 업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나머지 세 사람은 위슨의 엘크에게 말들을 맡기고서, 블루벨이 남긴 발자국을 열심히 뒤쫓아가기 시작했다.

이내 내 평범한 시력으로도 검붉게 물든 바닥 위에 가지각색의 덩어리가 엎어져 있는 게 보였다.

나는 그 덩어리들을 알아보려면 조금 더 가까이 가야 했으나,

나보다 훨씬 더 눈이 좋은 메린은 무엇이 쓰러져 있는지 단번에 알아본 듯했다.

“허……?”

돌연 눈을 휘둥그레 뜨며 갑자기 제자리에 우뚝 서더니,

“사범님!!”

“악.”

크게 소리치며 무서운 속도로 뛰어갔으니까!

녀석이 튀긴 눈이 얼굴로 날아온 탓에, 나는 눈가를 닦고 나서야 녀석의 그 말을 곱씹어볼 수 있었다.

“쟤 지금 뭐라고 하고 간 거냐?”

“사범님.”

“………사범님?”

저 녀석이 아는 사범님은,

아니, 우리 마을에 사범은 딱 한 명인데.

설마.

“……!!”

곧바로 녀석을 뒤쫓아 내달렸다.

평소라면 나뭇가지에 부딪치거나 뿌리에 걸릴 법한데, 신기하게도 무엇 하나 걸리지 않고 있었다.

마치 길이 활짝 열리기라도 한 것처럼.

또 다른 몬스터가 덮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못한 채 정신없이 숲을 달린 결과, 나 역시 점차 보게 되었다.

나무에 기대어 앉은 채 고개를 떨구고 있는, 한 검사의 모습을.

“티치 사범님!!”

메린을 이은 최강자인 마을의 검술 사범, 티치 플린이 축 늘어져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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