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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410화 (410/475)

〈 410화 〉 386화 : 그립지 않았고 반갑지 않은 고향 (2)

* * *

어째서 저 사람이 숲에 있는 거지?

마을 촌장집이나 그런 데에 있어야 할 사람인데?

어째서, 저렇게 축 늘어져 있는 거냐고!!

“사범님!”

사범님을 부르면서 거의 고꾸라지듯이 내달리며 다가가려는 찰나, 갑자기 팔이 잡히면서 등 뒤로 홱 꺾여버렸다.

불시의 습격자는 내 오금을 차서 무릎을 꿇리고는, 목에 팔을 휘감고 조르기 시작했다!

“커헉!”

격투기?!

빌어먹을, 이런 때에 누가……!!

잡히지 않은 한 팔을 뻗어, 목을 휘감고 있는 누군가의 팔을 떼내려 했다.

숨이 완전히 막히지 않았기에 힘을 주는 데엔 별 어려움이 없었지만, 아무리 용을 써도 팔을 떼어낼 수가 없었다.

팔이 그렇게 굵지도 않은데 어째서……?!

“아윽!”

돌연 등이 뒤로 꺾였다.

습격자가 뒷걸음을 친 게 분명하다.

젠장, 더럽게 아파!

“그만 버둥거려, 미친놈아! 쓸데없이 키는 커 가지고!”

“블루벨……?!”

이 엘프가 미쳤나, 왜 갑자기 기습하고 지랄이야?!

아까 먹은 그 버섯귀신 시체 수프 때문에 환각이라도 보고 있나!

“뭔 생각하는 거야, 이거 안 놔?! 우릴 배신한 거야?! 이러려고 동료 된 거였구나! 사람 마음을 가지고 놀다니……! 망할 귀쟁이, 진작에 귀 깎아버렸어야 했어!!

끄아아악! 아니, 세뇌당했구나! 정신차려, 블루벨! 댁은 지금 속고 있어! 눈을 떠!! 댁이 그 정도로 빡대가리는 아니잖아!!”

“혼자 뭘 주절거리는 거야, 미친놈아!! 배신한 거 아냐! 세뇌도 안 당했고! 망상 그만하고 좀 진정해! 등 접어버린다!!”

“병신 같은 소리하네, 세상 어느 누가 진정하라면서 협박하냐! 으아아악! 알았어, 진정할게! 얌전히 있을 테니까 그만해주세요, 블루벨 씨!!”

다행히 내 간원이 먹혔는지, 블루벨은 나를 홱 놓고는 팔짱을 끼었다.

“흥! 진작에 그럴 것이지! 네 심정 모르는 건 아닌데, 그래도 진정해. 네가 지금 가봤자 방해만 되니까.”

“방해……?”

꼭 무언가 하고 있기라도 한 듯한 말투인데?

나는 바닥을 짚고 엎드린 자세 그대로 고개만 들어 정면을 보았다.

나무에 기대어 앉은 채 축 늘어져 있는 사범님.

그런 그의 손을, 로나가 두 손으로 감싸듯이 쥐고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블루벨에게 된통 당하는 사이에 도착한 건지, 위슨이 그 반대편에 앉아 주섬주섬 물약을 꺼내고 있었다.

녀석은 풀썩 꺾여 있는 사범님의 고개를 살짝 들리게 한 후, 입에 물약을 흘려 넣고서 턱을 더 위쪽으로 들었다.

“쿨럭쿨럭…! 으윽……!”

“사범니, 악!”

쿵.

……사범님에게 기어가려 했는데, 갑자기 등이 무거워져서 그대로 바닥에 철퍽 엎어져버렸다.

“얌전히 있으라니까.”

“……”

블루벨의 목소리가 바로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지금 나 블루벨에게 깔려 있는 건가?

이 변태 귀쟁이가 지금 날 깔개처럼 깔고 앉아있는 거야?!

그런 짓을 하면 메린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잠깐, 그러고보니 왜 메린이 가만히 있지?

원래라면 블루벨이 날 잡았을 때부터 무언가 날아왔어야 정상인데?

“어라.”

……그리고 그제야 나는 메린이 주변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어쩐지 블루벨이 내 팔을 신나게 꺾고 있는데도 조용하더라.

“메린은?”

“로나가 잠깐 기도 끊겼을 때 마을로 보냈어. 사제 데려오라고 하던데?”

“사제?”

원래 우리 마을에는 나이 많은 사제가 하나 있었는데, 율리아 공주가 왔을 때 악마가 사제인 척하고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 뒤에 그녀가 ‘빨리 보내야겠다’는 식으로 말했었으니 사제가 새로 파견되긴 했겠지.

로나가 지난번에 신전에서 들은 것들을 알려줄 때, 우리 마을 쪽에선 싸라기눈이 내려서 돌아버리겠다고 보고했다는 이야기도 했고.

메린에게 여기 데려오라고 한 걸 보면, 로나는 여기 파견된 사제의 보직이 치료라는 걸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다.

미리 보직을 봐뒀나?

그렇게 의아해하는 중,

“와아아아악……!”

갑자기 저 멀리서 처절한 비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또 어디서 사람이 습격당하고 있는 건가?

어, 근데 왠지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 거 같은데……?

그보다 이 할망구, 언제까지 날 깔고 앉을 생각이야?

내가 또 냉정을 잃고 사범님에게 가려고 하니까 힘으로 막은 건 알겠는데, 이제 슬슬 비켜야 되는 거 아닌가?

“왜 아직도 그러고 있는 거야? 그만 비키시지?”

“좀더 있다가~ 야, 이거 은근히 편하다~”

“난 하나도 안 편하니까 얼른 비키라고! 으어어, 왜 더 힘주고 지랄이야……!”

“부탁은 정중하게 해야지. ‘부탁이니 제발 비켜주세요, 블루벨 님.’이라고 하면 비켜줄게.”

역시 이 엘프가 정신이 나간 게 분명하다.

아침에 그 괴상한 걸 맛있다고 먹었으니 오죽하겠어?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블루벨, 댁을 위해서 하는 말이야. 얼른 비켜.”

“날 위하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

블루벨은 말을 다 끝맺지 못했다.

처절한 비명 소리와 함께 땅이 쿠웅 하고 울렸기 때문이다.

내 옆쪽에서 울린 탓에, 고개가 안 돌아가서 볼 수 없지만……

엄청나게 살벌한 분위기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등이 무지하게 떨리기 시작했으니까.

“아아아니야, 메린,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라, 이, 이건 그냥 장난이야, 장난!”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내 등을 누르던 무게가 사라지고 블루벨이 잔뜩 겁에 질린 신음을 흘리는 걸 보니, 굉장히 무시무시한 얼굴을 하고 있는 듯했다.

음, 고개 안 돌려야지.

“아으으…… 진짜 죽는 줄 알았네…….”

그 대신, 기가 빠진 것처럼 비틀비틀 몸을 일으키고서 나를 지나쳐가는 젊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금발머리에 조금 어려 보이는 듯한 인상이다.

뒷머리와 등에 눈이 묻은 걸 보니, 메린이 내려놓으면서 땅을 조금 구른 듯했다.

“사제님이신가요?”

말을 걸자, 남자가 인상을 찡그린 채로 나를 돌아보았다.

“앙? 보면 모르냐? 넌 또 뭐야?”

“………”

금발머리 죄다 왜 이러냐?

하나 빼곤 다 거지 같네.

편견을 조장하는 인사말에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다.

교단의 사제는 스스로 사람이기를 버리는 대신, 창조주에게서 놀라운 힘을 받는다.

그리고 그 힘으로, 창조주가 직접 빚어 만든 자식인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살아남도록 돌보며 지킨다.

그것이 창조주가 그들에게 부여한 사명이기 때문이다.

그 사명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도 아끼지 않는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또는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담대하게 나선다.

그것이 사제라는 존재임을, 나는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었다.

그렇다는 건,

“하, 진짜 돌아버리겠네. 새끼가, 그렇게 가지 말라고 하는데도 뒤지게 안 듣더니! 아니, 똥고집 부리면서 갔으면 멀쩡하게 돌아오든가. 진짜로 뒤질 뻔하면 어쩌자는 거야, 썅!”

빠악!

……마구 성을 내면서 사범님의 머리를 사정없이 후려치는 저 사제는,

인간을 지키는 사명을 위해 진짜 모든 것을 버린 게 분명하다.

세상에, 싸가지를 저렇게 완전 깔끔하게 버린 사제님은 진짜 처음 봐!

게다가 의식 잃은 사람을 인정사정없이 후려치다니, 환자는 조심스럽게 대해야 한다는 상식도 버려버린 모양이다.

“아오, 이러니 내가 매일 아침마다 나 자신한테 치유기도 올리지! 근데 아무리 나라도 머리 빠지는 건 못 막는다고! 내 머리 빠지면 책임질 것도 아니면서! 하………”

한참을 씩씩대고 나서야 사범님의 손을 잡고 기도를 올리기 시작하는 저 미친 사제는,

“아하하, 루크 사제님도 여전하시네요~”

무려 로나처럼 율리아 공주가 특별히 선별한 ‘특별사제’ 중 한 명이었다!

“인성마저 버려야 자신의 보직에서 최고 수준이 될 수 있는 거구나. 굉장히 무서운데?”

그럼 알스 사제도 겉보기만 멀쩡하지, 실상은 개차반이겠네?

귀족들에게 호통칠 때도 속으로는 오만가지 쌍욕을 퍼붓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어우, 무서워라.

“카엘 님도 참! 그럴 리가 없잖아요! 저 사람 혼자만 저 모양이에요. 율리아 님이 어느 뒷골목에서 주워 온 양아치였다고 하더라고요.”

이름은 루크.

보는 것처럼 치유사제이며, 율리아 님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나 반말과 욕을 서슴지 않는 싸가지로 정평이 나 있다.

“정말이지, 아무리 교단이 평판에 신경을 안 쓴다고 해도 그렇죠. 일부러 품위를 깎아 먹을 것까진 없지 않아요? 안 그래도 귀족에겐 눈엣가시인데, 양아치 출신 아니랄까봐 정말 아무 생각이 없다니까요!”

그렇게 거리낌없이 말하며 헤실 웃는 로나를 보며, 나는 이 녀석이야말로 진정한 싸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기도를 마친 루크 사제가 사범님을 바닥에 눕혔다.

치유 보직의 최고봉이라는 건 사실인지, 사범님은 한결 편안한 얼굴로 고른 숨을 내쉬고 있었다.

메린은 그 모습을 보고 안심한 듯이 크게 숨을 내쉬고서 루크 사제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사제님.”

“됐어. 그냥 할 일 한 것뿐이니까. 얼른 이 새끼 옮기기나 해.”

루크 사제의 퉁명스러운 말이 아무렇지도 않은지, 메린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고서 사범님을 두 팔에 안아들었다.

그런 뒤, 엘크가 끌고 온 자신의 말 위에 올렸다.

아마 마을까지 그렇게 싣고 가려는 것이리라.

“그리고 너,”

“……?”

왠지 부르는 것 같아서 고개를 돌리자, 예상대로 루크 사제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인상을 구긴 채로.

“네가 용사냐? 꼬라지가 영 아닌데.”

“댁의 혓바닥 꼬라지보단 낫다고 보는데?”

“……”

루크 사제의 표정이 한층 더 꼬깃꼬깃해졌다!

하, 기분이 나쁘시기라도 한가?

예부터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고 했어.

사제라고 무조건 존대할 줄 알면 큰 오산이야!

“용사가 되는 조건에 인성이 없는 건 분명하구만? 하, 나 참, 이런 경우 없는 놈을 봤나. 야, 이 새끼야, 너 나 봤냐? 어디 처음 보는 사람한테 그 따위로 굴어? 네 아버지가 그리 가르치던?”

“이런 썅, 그러는 댁은 나 봤어?! 메린은 언제 봤고?! 사제면 다냐, 새꺄! 율리아 님이 그리 가르치던?!”

맞받아치자마자, 루크 사제가 내 멱살을 잡고 눈을 부라렸다.

와, 진짜 이딴 게 사제라고?!

“이 새끼가 어디 율리아 님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려?! 뒈지고 싶냐?!”

“어어, 치겠다? 응? 한 대 치겠어? 그래~ 쳐라. 치고 싶으면 쳐. 근데 네가 나 치는 순간, 나 가만히 안 있는다. 넌 나한테 쳐맞는 처음이자 마지막 사제가 될 줄 알아!

뭐해? 치라니까? 쳐보라고, 등신 새끼야!!”

루크 사제의 눈에 핏발이 서는 순간,

“네~네, 그만하세요~”

“커헑!”

로나의 목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날 붙잡고 있던 루크 사제가 별안간 몸을 굽히며 픽 쓰러졌다.

……가랑이에 두 손을 대고서.

멍하니 앞을 쳐다보자, 로나가 헤실 웃는 얼굴로 철퇴를 들고 서 있었다!

우와, 설마 저걸로……?

“히익.”

나도 모르게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꺄으흐으윽……!! 너, 이 도토리, 새끼……!!”

“아하하, 주제도 모르고 까부니까 그렇게 되는 거죠! 교단 사제가 어디 용사님께 함부로 손을 올리나요? 율리아 님이 아시면 엄청 화내실걸요~”

로나는 헤실헤실 웃으면서 철퇴로 루크 사제의 엉덩이를 퍽퍽 때렸다.

저 녀석, 엉덩이를 부숴버릴 작정인가?

“으억! 악! 야, 너 지금 뭐하는 거야?! 그만해!”

“왜요? 빨리 일어나실 수 있도록 응급처치해드리는 건데요.”

“지랄 마, 씨발, 뼈 울린다고!!”

……루크 사제는 한동안 바닥에서 꿈틀거린 후에야 겨우겨우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왠지 그의 몸에서 은은한 빛이 퍼진 걸 본 거 같은데, 혹시 기도를 올린 걸까?

“으으…… 진짜 이게 뭔 꼴이야……. 아무튼 용사 너, 마을 가면 나 좀 봐.”

“왜?”

“네 내장 꼬라지가 수상해서 그런다, 새꺄! 너 자꾸 반말할래? 너 이 새끼, 몇 살이야?!”

“열 아홉.”

“………”

어라? 갑자기 말이 없어졌네.

하하, 이 새끼, 나보다 어리구만?

루크 사제는 내 눈을 피하려는 듯이 로나를 보면서 말했다.

“야, 로나, 여기서 할 거 있냐? 없으면 마을로 가자. 저 등신 놈의 부하들도 봐야 되고 바빠.”

“바쁘다고요? 그럼 후딱 가야겠네요? 마침 잘됐네요. 저희도 마을 가던 중이었는데!”

로나는 괜히 불안해지게 방긋 웃으면서 위슨을 보았다.

“위슨 씨, 루크 사제님이 마을에 빨리 돌아가셔야 한대요. 힘 좀 써주시면 안 될까요?”

“뭐…… 환자도 있으니 그게 낫긴 하겠네.”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위슨 녀석이 허공에 손을 까닥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엘크가 그에 대답하듯이 앞발을 따각따각 땅에 부딪쳤다.

“날아보자고!”

“?!”

그리고는 갑자기 한껏 고양된 목소리로 소리치며 자신의 뿔을 휘둘렀다.

그러자 갑자기 사방에서 바람이 휘몰아치더니, 발이 땅에서 떨어지며 몸이 둥실 떠올랐다!

“이번엔 또 뭐야?!”

“빨리 가야 하신다면서요? 이거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어요!”

기겁하는 루크 사제에게 킥킥 웃으며 말하는 로나.

나는 절망적인 심정을 안고 녀석을 보았다.

“로나야, 난 천천히 가도 되는데.”

“무슨 말씀이세요? 카엘 님도 얼른 마을에서 숨 돌리셔야죠! 걸어갔다간 오늘 안에 도착 못할 거 같은데요!”

“어흑…….”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뻔하다.

분명 위슨이 곧 엘크에게 ‘가자’고 할 것이고, 우리 모두가 하늘로 핑 날아오르겠지.

그럼 나는 땅에 다시 내려갈 때까지 비명을 마구 지를 것이다.

“꺄아아아아!!”

그래, 이렇게 말야.

눈을 질끈 감은 탓에 풍경이 보이진 않지만, 옷이 죄다 찢어지는 거 아닐까 싶을 만큼 날카로운 돌풍이 맞부딪쳐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아래로 내려 꽂아지고 있다는 것도!

“꺄아아아악!!”

아아, 눈을 감고 있어서 다행이야.

아무리 머리로는 엘크 녀석이 우리 머리를 바닥에 꽂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다 해도, 그 과정을 직접 보았다간 또 정신을 잃었을 테니까.

바닥에 사뿐히 내려앉자마자 눈을 뜨고 주위를 살펴, 나를 포함해 네 명을 빼곤 죄다 거품 물고 기절해 있는 걸 보고 그렇게 확신했다.

“아하하, 재미있었어요!”

“……”

진짜 개판이네.

절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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