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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412화 (412/475)

〈 412화 〉 388화 : 그립지 않았고 반갑지 않은 고향 (4)

* * *

지금으로부터 대략 한 달 하고도 일주일 전, 이젠 진짜 정신 나갈 것 같은 내 고향 놋지빌은 그때부터 이미 숲과 힘겨운 싸움을 치르고 있었다.

숲에 사는 몬스터의 수가 급증했을 뿐 아니라, 놈들의 힘도 훨씬 더 강해진 탓이다.

아마 북쪽 산의 드래곤이 무언가 영향을 끼치는 것이리라.

그래도 마을은 촌장님의 통솔하에 그럭저럭 이겨내고 있었다.

촌장님도 이번처럼 몬스터가 공세로 들이닥치는 건 처음 겪긴 하나, 이십 년이 넘는 긴 재직기간 동안 쌓인 신뢰와 유대의 힘이 꽤 강했던 것이다.

물론 그러한 끈끈한 관계만으로 이겨낸 건 아니다.

너무 젊어서 은근히 미덥지 못했던 검술 사범님이 훌륭히 능력을 발휘하고, 새로 부임한 담당사제가 기도의 힘을 낼 수 있는 게 굉장히 큰 힘이 되었다.

특히나 사제의 보직이 치유인 덕분에, 마을은 조금 힘겹고 위험하긴 해도 사망자 하나 없이 계속 내일을 맞이할 수 있었다.

“건방진 걸 그대로 넘어가줄 수 있을 만큼 뛰어나더라.”

“그 정도예요?”

“노환만 아니면 다 고치는 수준이야. 심장을 찔려도 숨이 아직 붙어있기만 하면 살리더구나.”

이야, 괜히 최고가 아니구나.

인성을 바친 보람이 있긴 하겠군.

화병도 고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루크 사제는 사건이 일어난 날도 치료사집에서 부상자들을 고쳤는데, 촌장님의 아들인 튜르가 거기 끼어 있었다.

그 후, 촌장님이 신전에 와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치료해주어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는 듯했다.

그리고 그 대답으로, 루크 사제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말해버린 것이었다.

그것도 아버지를 포함해, 마을 사람들이 자체적으로 가족의 안녕과 무사 등을 위해 기도하고 있던 예배당에서.

“‘사생아를 그렇게 끔찍이 아끼다니, 의외로 아내 사랑이 지극하네?’ 진짜 딱 이렇게 말했어.”

“우와…… 근데 치유사제 눈에는 가계도가 보이기라도 한대요? 그걸 어떻게 알았대?”

“글쎄다. 사제님 말씀으로는 핏속에 담긴 생명 정보가 보인다는데, 솔직히 무슨 소리인지 나도 잘 모르겠어.

아무튼 그런 상상도 못한 비밀이 밝혀진 거야. 그 다음에 어떻게 됐을 거 같냐? 온 마을이 아주 그냥 쑥대밭이 됐다.”

루크 사제의 말에 사색이 됐던 촌장님은, 돌연 딱딱하게 얼굴을 굳히면서 집으로 쳐들어갔다.

아버지는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에 서둘러 촌장님을 따라갔고, 그 덕에 사망자가 생기는 건 막을 수 있었다.

유혈사태는 피하지 못했지만.

“참 살벌하더라. 촌장님은 눈에 핏발 세우고서 당장이라도 부인을 죽일 기세이지, 부인은 또 부인대로 ‘당신 씨가 별볼일 없으니까 아들이 안 생긴 거 아니냐’고 맞받아치지,”

“……”

“갑자기 어떤 여자애가 ‘꽝이었다니 이제 난 망했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치지, 튜르는 또 튜르대로 집을 뛰쳐나가서는 그대로 행방불명됐지……. 진짜 난리도 아니었다. 너희가 그때 없는 게 얼마나 다행스럽던지.”

……엥?

중간에 이상한 이야기가 들린 거 같은데?

“튜르 그 새끼가……행방불명이라고요? 여기 나갔어요?”

“아니, 숲으로 갔다더라.”

“………”

……뭐, 아버지 잘난 맛에 살던 놈이니 절망적이었겠지.

잘 살길 바라진 않았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얼굴 한 번은 갈기고 싶었는데.

어쨌든 그 뒤로 벤스 집안은 완전히 풍비박산이 되었다.

촌장님은 술독에 빠져서는 매일 루크 사제를 찾아가서 튜르의 친아버지를 알려달라고 조르고, 벤스 부인은 실종된 아들을 찾겠다고 숲을 마구 쏘다니고 다녔다.

그나마 슐 누나가 가장 사정이 나았는데, 벤스 집안에 큰일이 생겼다는 치료사 아저씨의 편지를 받고서 브랜이 위험을 무릅쓰고 마을에 찾아와 누나를 데려간 것이었다.

“일주일만에 결혼 준비를 마치고 식 올리는 건 정말 처음 봤어. 그렇게 급하게 준비했는데도 부족한 것 하나 없는 멋진 결혼식이었단다. 슐이 몰래 준비하고 있던 게 아닐까 싶더라.”

굳이 꼽자면 신부측 부모가 불참했다는 것뿐이다.

누나의 아버지인 촌장님은 튜르 말고 다른 자식들도 의심하기 시작했고, 그 의심은 루크 사제가 친자식이 맞다고 확인해주어도 풀리지 않을 만큼 확고했다.

어머니인 벤스 부인은 그날도 숲을 쏘다니느라 바빠서 올 수 없었다.

슐 누나는 아버지가 오지 않은 건 조금 슬퍼했지만, 어머니가 없는 것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아마 자신이 결혼하는 것도 기억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누나는 그렇게 말하며 둘째 언니의 도움으로 신부복을 입었고, 내 아버지의 손을 잡고 식장에 들어섰다.

촌장님을 대신해, 촌장집 딸의 아버지 역할을 한 게 인상적이었던 걸까?

그로부터 3주 후, 즉 지금으로부터 2주 전부터 아버지는 촌장의 역할까지 대신하게 되었다.

몬스터의 공세가 격해진 탓에, 더는 통솔자 없이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마지막 발버둥이야.”

아버지는 두 눈두덩이를 문지르며 자조하듯 말을 이었다.

“촌장님이 그렇게 된 순간부터 이 마을의 운명은 기운 거나 다름없어. 마을이 한 몸이 되어도 버틸까 말까 한 판에 그런 일이 일어났으니……. 그 뒤로 이 꼴이 된 거다.”

사람들을 다독여야 할 ‘촌장’이 부재한 3주간, 마을은 점점 몬스터의 공세에 밀리기 시작했다.

사냥터를 빼앗기고 채광터에서 밀려나고, 마지막으로 식수원인 호숫가를 빼앗기면서 숲에서 완전히 쫓겨나게 되었다.

그럼에도 몬스터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고, 종국엔 신전까지 점령당한 것이었다.

“그 뒤로 공세가 조금 약해지긴 했지만,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야. 게다가 카엘, 너도 알겠지만 호숫가는 마을의 유일한 식수원이다. 희한하게 아침마다 눈이 내려서 그럭저럭 버티고는 있지만 그것도 얼마 못 갈 테지.”

“그래서 사범님을 보낸 거에요?”

“그래. 티치가 아니면 돌파할 수 없으니까. 그런데…… 하…… 설마 뒤에 남아버릴 줄이야.”

아버지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푸념하듯 말을 털어놓자, 여태 침묵을 지키고 있던 자경단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죽하면 그러셨겠어요? 저희 단원들은 모두 사범님의 제자나 다름없는데, 싸움에 나설 때마다 한두 명은 죽고 있잖아요. 전대처럼 몇 번이나 난리를 겪으신 것도 아니니, 마음고생이 심하셨겠죠.”

“그러니 어리석은 놈인 거지.”

뜬금없이 툭 던져진 비난에, 자경단장이 곧바로 얼굴을 구기며 고개를 돌렸다.

나 역시 그를 따라 문 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루크 사제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얼굴로 자경단장을 쏘아보고 있었다.

“지 역할도 잊고 앞뒤 생각없이 굴고 말야. 처돌았나, 지가 뭐라고 희생을 하려 들어? 그렇게 여기가 싫었나보지? 나머지 놈들을 죄다 개죽음으로 몰려던 걸 보면.”

“말씀이 너무 심하세요, 사제님! 저를 포함한 자경단은 모두 사범님의 제자이자 전우입니다! 그분은 전우들을 살리려고 그러신 것이라고요!”

“닥쳐!!”

루크 사제는 얼굴은 완전히 험악하게 일그러뜨리며 자경단장에게 일갈했다.

“그 새끼가 네놈들 지휘관이라며?! 지휘관이 뭐야, 대가리 아냐, 대가리!! 생물이든 집단이든 대가리 잃으면 그날로 끝장이야!! 직접 겪고서도 몰라?!

그리고 그 새끼만큼 강한 놈 또 있냐?! 없잖아, 등신 새끼야! 사범 놈이 거기서 뒈졌어 봐, 당장이라도 놈들이 여기 쓸었을 거다!!힘으로도 그 새끼를 대체하지 못하면서 전우는 무슨!”

자경단장은 그 말에 이를 바득바득 갈며 고개를 돌렸다.

아무 반박할 말도 찾지 못한 것이리라.

루크 사제의 말씨가 글러먹어서 그렇지, 내용 자체엔 틀린 말이 없었으니까.

메린이 없는 이 마을에서 사범님보다 더 강한 사람은 없다.

게다가 전투를 지휘하는 역할도 있으니, 최후 항전할 때를 제외하고는 절대로 전장에 남아서는 안 되는 사람이다.

사범님이 그걸 모르진 않았을 터.

그런데도 죽을 각오로 뒤에 남았던 건……

아마 그간 친숙히 지내던 사람이 계속 죽어나가는 꼴을 더 볼 수 없었던 것이리라.

고작 반나절 정도 시간을 같이 보낸 사람이 죽는 걸 봐도 마음이 아픈데, 몇 년간 알고 지낸 사람은 어떻겠는가?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무사히 후퇴하도록 시간을 번 걸 거야.

그러지 않고는 못 배겼던 거겠지.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역시, 객관적으로는 잘못된 행동이었다.

원래도 별로 남아있지 않을 인성을 말끔하게 버린 루크 사제는 그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인 뒤, 말없이 차만 홀짝이고 있는 메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야, 메린, 진짜 잘됐다! 너보다 더 눈치 없는 사람이 나타났어! 이제 넌 세상에서 가장 눈치 없는 애가 아니야. 그냥 눈치 없는 애지!”

“……그거 좋은 거냐?”

“아니. 전혀.”

세상에, 바닥에는 더 깊은 바닥이 있는 법이라더니 진짜였네!

절망적인 심정에 한숨을 푹 쉬자, 루크 사제가 인상을 쓴 얼굴 그대로 나를 쳐다보았다.

“……눈치 없는 사람? 너 지금 나 말한 거냐?”

“그거 알아챌 눈치가 있으면서 자경단장님한테 그런 소리를 해? 사제님아, 사범님이 잘못한 거란 건 여기 있는 사람 다 알아요. 생각보다 빨리 깨어나서 다행이긴 한데, 왜 쓸데없이 분위기 박살내고 그러냐?”

“사범 놈이 얼마나 대가리 텅 빈 짓을 한 건지 똑똑히 박아주려 그랬다! 자경단 새끼들이 다음에 또 그딴 짓 해주지 않을까 기대하면 안 되니까! 꼽냐?!”

음, 이번에 살아남은 자경단원들이 ‘사범님이 또 뒤에 남아서 살려주겠지’라는 기대를 품지 않도록 일부러 들쑤신 거라는 뜻인가?

하긴, 그런 기대감을 품고 싸운다면 조금 곤란하긴 할 거다.

지휘관인 사범이 죽음을 불사하기까지 하며 싸워야 할 때는 최후의 항전뿐이니까.

맞는 말이긴 한데,

“주둥이 놀리는 게 진짜 존나 꼽다. 아야!!”

말을 마치자마자 뒤통수가 얼얼해졌다!

아아, 이 손맛. 진짜 하나도 그립지 않았는데.

나는 곧바로 아버지를 돌아보며 빽 소리질렀다.

“왜 때려요?!”

“어디 사제님께 그딴 말버릇이냐! 아무리 건방지고 못 배운 놈처럼 입이 더러워도 사제님은 사제님이야! 예의를 갖춰! 상대가 개차반이라고 너도 맞지랄 떨면 되냐!”

“………”

……나보다 아버지가 더 심한 것 같은데?

루크 사제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표정으로 나와 아버지를 번갈아 노려보았다.

그러다 이내 혼자 뭐라뭐라 투덜거리더니 고개를 젓고 성호를 그은 뒤, 인상을 조금 풀고 나를 뚱하게 쳐다보면서 말했다.

“빨간 도토리한테 들었어. 용사 너랑 다른 놈들, 호숫가에서 오던 길이라며? 거기 있던 놈들 싹 다 치운 거냐?”

“모르지…요. 덤빈 놈들은 족족 없애긴 했는데…요.”

반말로 끝나려 할 때마다 뒤통수가 아리다!

제길, 이런 놈한테도 존댓말을 해야 하다니.

아아……이게 바로 개 같은 영주 자식놈을 보는 영주민의 심정인가!

루크 사제는 내가 괴로워하는 건 아무 관심도 없는지, 머리를 긁적이며 자경단장에게 말했다.

“그럼 단장, 너네 애들 끌고 호숫가 자리 굳히고 와라. 이 놈 동료 둘이 같이 갈 거야. 그리고 용사, 네 여자가 그렇게 세다며? 신전 가야 되니까 좀 빌린다.”

“싫은데요.”

내 입에서 곧바로 대답이 튀어나왔고, 당연히 루크 사제의 미간이 팍 접히며 눈빛이 매서워졌다.

“뭐? 싫어?”

“네, 존나 싫어요. 누굴 말하는 건지는 몰라도, 다른 두 녀석도 못 데려가고요. 왜 내 동료를 맘대로 데려가서 써먹으려고 하는 겁니까? 우린 저기 산에 올라가야 돼서 바쁘거든요?”

“뭐야? 이런 씨발, 야, 너 여기 출신 아니냐? 네 고향 개박살나고 있는데 그런 소리가 나와?!”

“네, 나와요. 아주 잘 나옵니다! 여기 이 마을만 박살난 게 아니니까!!”

외벽이 없는 마을은 폐허가 되었다.

외벽이 있는 마을은 고립되어서 굶어 죽어가고 있다.

바다를 등진 천연의 요새는, 정작 그 바다가 입을 벌려 삼켜버렸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굶어 죽을 것이고, 이웃이 뜯어 먹히는 소리를 들으며 도망치고 있겠지.

그뿐인가?

당장 내일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이 대륙에 또 무슨 재앙이 새로 생겨날지 모르는 것이다!

“지금 ‘불구덩이’가 끓어오르고 있어요. 당장 내일이라도 넘칠지도 몰라요! 내일부터는 눈이 아침에만 오는 게 아니라 하루종일 퍼부을지도 모르고요! 갑자기 생전 처음보는 전염병이 돌지도 모르는데, 지금 내가 고향이 대수일 거 같아요? 이딴 고향 구하겠다고 시간 쓰고 싶겠냐고요!”

고향?

그래, 여긴 내 고향이다.

평생을 산 곳이라서 얼굴 튼 사람도 많고, 주먹 날리고 싶은 새끼도 있었던 고향.

그리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고, 이 동네에 발을 들이고 사람들을 보는 게 하나도 반갑지 않은 거지 같은 곳!

그래서 여행 떠나면 다들 걸린다는 향수병도 한 번 안 왔어!

여긴 나에게 있어 출생지일 뿐이다.

어머니가 저 숲 어딘가에 묻혔고, 아버지가 아직 숨 쉬고 살아있는 곳일 뿐이야.

그나마 메린을 만났기에, 그 외에도 좋은 사람들과 알고 지냈기에 고향이라 쳐주고 있는 거다.

그러므로,

“허~ 진짜 용사님이시네. 모르는 거 같아서 말해주는 건데, 네 고향 당장 내일이라도 아작날지도 모르거든? 세상을 구하고 산을 내려오면 네 고향 개작살 나 있을 거다. 그래도 좋다는 거냐? 여기가 퍽이나 끔찍했나봐?”

“누가 좋대요?!”

……나는 이 마을이 멸망하길 바라지 않는다.

내가 알고 지낸 좋은 사람들의 터전이니까.

설사 그 수가 손에 꼽힌다 해도, 분명히 존재한 ‘좋은 사람’들까지 고통받는 건 싫어.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나는 용사니까!!”

용사인 내가 이 근방에서 할 일은 단 하나.

당장 산으로 출발해서 드래곤 놈을 없애는 것뿐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그 외의 다른 일에 한눈을 팔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더 이상은 안 돼……!

“누구는 씨발, 이런 소리하고 싶겠냐고……! 진짜 눈치 존나 없네……!”

눈가를 덮으며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아버지의 매서운 손이 뒤통수에 꽂히지 않았다.

자연히 찾아온 침묵 속에서,

“………그래. 그런 놈이로군.”

루크 사제가 조용히 읊조리는 게 들렸다.

이내 긴 한숨 소리에 이어, 그의 말소리가 담담히 방 안에 울려퍼졌다.

“좋아. 왜 신전에 가야 하는지 알려주지.”

“……”

“하나, 신전에 가야 이 마을의 보호 결계를 복구할 수 있어. 그걸로 울타리 내부의 안전은 확보할 수 있지. 그리고 또 하나는, 이 숲 안쪽에 있는 놈들을 캐기 위해서야.”

보호 결계를 복구한다고……?

복구라면, 원래 여기에 그런 게 있었다는 소리잖아.

얼굴을 덮은 손을 치워 루크 사제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로나나 알스 사제처럼 무감정한 표정으로 테이블로 다가오더니,

“사범 놈이 그러더라. 웬 놈이 자기 손에 이걸 쥐어줬다고. 누구 것인지 아는 놈?”

무심히 말하면서 테이블 위에 손을 올렸다.

탁.

손바닥 안에 있던 무언가가 부딪치는 소리.

이윽고 루크 사제의 손이 테이블에서 떠나며, 그 속에 감추어져 있던 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

덜커덩.

아버지가 의자를 뒤로 넘어뜨리면서 벌떡 일어섰다.

그 시선은 테이블 위에 못 박힌 상태이다.

당연하다고 하면 당연한 반응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건, 피아의……!”

엄마가 늘 달고 다니던 브로치였으니까.

아버지도 나도, 덩그러니 반짝이는 브로치에 차마 손을 대지 못하고 멀거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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