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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419화 (419/475)

〈 419화 〉 395화 : 반복되지 않는 역사 (1)

* * *

한밤의 격전 후, 고대하던 일을 끝냈다는 기묘한 해방감이 들며 다리가 홱 풀려버렸다.

“으.”

지팡이 대신 성검을 짚고 무게중심을 가능한 검 쪽에 기울였다.

온 몸에 진땀이 흐르고, 심장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마구 뛰고 있다.

숨이 아예 입 안까지 차오른 건지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다.

……이거 상당히 익숙한 감각인데.

아무래도 생각보다 더 몸을 혹사해버린 모양이다.

“카엘.”

귓가에 들리는 메린의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손을 내젓는다.

괜찮아.

그냥 조금 숨을 돌리면 돼.

그 뜻이 담긴 손짓을, 메린은 당연하게도 무시하고서 나를 들어올렸다.

감각상 어깨에 들쳐업힌 게 아닐까 싶었다.

그대로 살짝 들썩거리는 느낌과 함께 어딘가로 옮겨진다.

몇 마디 말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온다.

수고했다, 근데 이놈은 죽은 거 아니냐, 너도 같이 들어가라……

그런 이야기가 들리다가 별안간 뚝 끊겨버렸다.

정확히 얼마동안 정신을 잃었는지는 모르나,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닌 게 분명했다.

다시 의식이 떠오르면서 약간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길래 눈을 떴더니,

실내복 차림의 메린이 내 위에 올라타서 웃옷을 벗기고 있다는 상당히 아연한 상황에 맞닥뜨렸으니까!!

“아, 뭐야, 깼냐?”

어라, 왜 투덜거리는 것처럼 들리지?

왜 눈살을 조금 찡그리고 있는 것 같고?

너무 지쳐서 귀랑 눈이 맛탱이 가버렸나?

“너 뭐하냐……? 왜 옷을 벗기고 있어……?”

멍하니 묻자, 녀석이 어깨를 으쓱이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편하게 자라고. 더블릿까지 입고 자면 갑갑하잖아.”

“그렇구나……. 근데 아래도 허전한 거 같은데……?”

침대에 누워있으니 신발이 벗겨져 있는 건 이해할 수 있다.

근데 바지는 왜 없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어.

뭣 때문에 밑에 속옷만 입고 누워 있어야 되는지 짐작도 안 간다.

아니, 짐작하기 싫어……!

평정을 유지하려 애쓰는 나와 달리, 메린은 지극히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더러워졌길래 벗겼어. 아까 놈들이랑 싸울 때 묻은 건지, 옷에 뭔 거무튀튀한 자국이 많이 있더라. 나도 옷 다 버렸어. 내일 빨아야 돼.”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푹 쉬는 메린.

녀석의 얼굴에 거짓말을 하는 기색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 것도 아니고 말야.

……근데 이상해.

왜 순순히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 거지?

왜 그랬구나 하고 납득할 수가 없는 걸까?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손을 움직여서 더블릿을 벗겨버리는 메린에게 물었다.

“……진짜 그게 다야?

“엉? 그럼 뭐, 다른 게 더 있어야 되냐?”

“아니…….”

없지. 없어야 해.

아니, 없는 게 당연하다.

메린은 속내를 감추고 일을 꾸미거나 하는 음흉한 녀석이 아니니까.

진짜 몸이 지치긴 많이 지쳤나보다.

메린이 뻗어버린 날 덮치려던 게 아닌가 하는 괴상한 생각이 드는 걸 보니.

하하, 나 참, 진짜 말도 안 되는 생각이야.

녀석이 아무리 막무가내라 해도, 내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중에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는데.

아무래도 쌓이긴 했나보다.

진짜 별 생각을 다하네.

내가 스스로의 불순함에 속으로 자조하는 동안, 메린은 내 어깨까지 이불로 꽁꽁 덮어주고 그 속으로 쏙 들어왔다.

그리고는 내 품에 파고들듯이 찰싹 붙어서는 뺨을 살살 부벼댔다.

그 몸짓이 주는 간지러움과 녀석의 귀여움에, 입꼬리가 절로 위로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늘 그랬듯이, 그대로 녀석을 꼭 껴안고 이마에 입을 맞추자, 간지럽다는 듯이 몸을 꼼지락거리면서 작게 웃었다.

“히히.”

“진짜 껴안기는 거 좋아하네……. 너 원래 그랬던가……?”

뭐, 나도 남 말할 건 못 되지만.

그래도 굳이 꼽자면 껴안는 게 더 좋아.

품속이 가득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왠지 안심이 된다.

푹신하고 따뜻한 것일수록 더 좋고.

그런 면에서 메린처럼 껴안기 좋은 것도 없다.

따뜻하지, 말랑말랑하지, 좋은 향이 나서 더 안심되지.

이 녀석도 껴안는 걸 싫어하긴커녕 오히려 더 좋아하고 말야.

………응?

왠지 누구 하나 더 있는 거 같은데,졸려서 생각이 안 난다.

녀석의 웃음소리가 또 들리면서 생각이 날아간 것도 있지만.

“응. 옛날부터 좋아했어. 따뜻하니까.”

사람이 말할 때 주어를 넣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듣는 사람의 지식과 정신상태에 따라 뜻이 다르게 들리기 때문이다.

나 참, 누가 들으면 나한테 고백하는 줄 알겠네.

“여럿 안겨봤는데, 그 중에서 네가 가장 좋더라.”

“……”

덤으로 왜 단어를 잘 골라 써야 하는지도, 이 녀석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주어와 마찬가지로, 듣는 사람에 따라 완전히 다른 뜻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몸소 그러한 교훈을 깨닫게 해주다니, 메린은 정말 좋은 녀석이야.

이 녀석이 방금 말한 ‘안겨봤다’는 건, 말 그대로 사람 품에 껴안겨봤다는 걸 말한다.

다른 뜻을 가리키는 게 아니야.

근데 그걸 아는데도 방금 좀 섬찟했단 말이지…….

덕분에 잠이 좀 깨버렸다.

후, 말이란 게 참 무섭다니까.

쓴웃음을 지으며, 말버릇도 무시무시한 메린의 등을 살살 토닥여주었다.

……생각해보면 참 신기해.

메린은 평소엔 잠을 거의 안 자고 사는 것처럼 구는데, 어디 앉아 있는 중에 내가 옆에 있으면 어느새 자고 있으니까 말야.

밤도 거뜬히 샐 것처럼 말똥말똥했어도, 내가 토닥여주면 곧 졸기 시작한다.

바로 지금처럼.

“후으…… 카엘…….”

“응?”

“다음엔 꼭 성공할 거야…….”

“……엉? 뭘?”

“우응……”

이 자식이 갑자기 무섭게 뭔 소리를 중얼거리는 거야?

뭘 성공하겠다는 건데?!

어이씨, 이걸 깨워서 캐물을 수도 없고!

“카엘……”

“……으, 응. 왜?”

“나… 네가 가장 좋아…….”

……나도 피곤해서 졸려 죽겠는데,

“네가 가장 따뜻해서… 제일 좋아…….”

“………”

“이제… 너 아니면 싫어…….”

이 녀석이 자꾸 잠을 내쫓고 있다.

먼젓번은 소름을 돋게 하더니, 이번엔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네.

안 되겠어. 빨리 재워야지.

이러다 자칫하면 진짜 다른 의미로 이 녀석을 안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그래, 내가 제일 따뜻해서 껴안기기 좋지? 잘 알았으니 말 그만하고 자.”

그래야 나도 자니까.

그렇게 이으려던 찰나,

“으응… 그거도 있는데… 딴 거…….”

“……뭐?”

“다른 거… 나 있지이… 너……”

녀석이 무어라 웅얼거리다가 그대로 잠들어버린 탓에, 말이 끝까지 맺어지지 못하고 사르르 흐려져버렸다.

“………”

나에게 껴안기는 게 가장 좋다. 내가 가장 따뜻해서 좋다.

그 두 말을 붙이면, 나에게 껴안기는 게 가장 따뜻해서 좋다는 이야기밖에 더 되나?

근데 다른 거라고?

또 뭐가 있을 수 있는데……?

…………혹시 너도 다른 뜻을 품을 수 있게 된 거니?

그런 거야?

“……나 참.”

사람이 말야. 말을 시작했으면 끝까지 해야 할 거 아냐. 왜 도중에 끊고 난리야?

신경 쓰여서 잠이 안 오………는 건 아니군.

이불과 메린에게 따뜻이 감싸이고, 또 녀석의 체취가 풍기는 덕에 곧바로 잠기운이 다시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럴 때 보면 나도 참 웃긴 놈이다.

……네가 무슨 말을 뭔 뜻으로 하려다 말았는지는 모르지만, 내일이 되어도 안 물어볼 거야.

네 입으로 다시 하기 전까지는, 내 맘대로 네 뜻을 해석해도 아무 잘못도 되지 않으니까.

어차피 나 혼자만 알고 있을 거니, 그냥 나 좋을대로 알아듣고 말련다.

그렇게 결정하고 눈을 감았다.

미련이 될 만한 걸 죄다 털어버린 덕인지, 무척 오랜만에 아무런 꿈도 꾸지 않는 밤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튿날,

쾅쾅쾅쾅쾅쾅!!

엄청난 기세로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벌떡 일어났다!

“뭐야, 뭐야뭐야, 뭔 일이야?!”

나도 모르게 소리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벽시계 말고는 아무 장식물이 없는, 침대와 탁자, 그리고 옷장만 놓인 살풍경한 방.

여기 메린 집이잖아.

아니, 진짜 이 녀석 집에서 자버렸네.

멍하니 눈을 끔벅이는데, 문이 부서질 것처럼 마구 두들겨지는 소리가 또 울리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혹시 하루를 꼬박 자버렸나?

지금 저거, 루크 사제가 ‘약속대로 쫓아내러 왔다’면서 문 두들기고 있는 거 아냐?!

그리고 정작 집주인인 메린은 이 난리통에도 엄청나게 쿨쿨 잘 자고 있다.

이 녀석, 잘 때는 청력을 꺼 놓거나 뭐 그런 것도 아닐 텐데…….

원래는 집주인이 나가보아야 할 터.

하지만 이 녀석과 내 관계는 이 마을 안에 다 까발려진 지 오래다.

녀석이 어젯밤에 나를 지 집에 데리고 들어가는 걸 말린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에서, 그게 일종의 상식처럼 되어버렸다고 봐도 되겠지.

왠지 누구 한 명은 약혼이 아니라 결혼한 줄 알고 있을 거 같아.

아무튼 그런 상태이니 내가 대신 나가도 문제없겠지.

방 한쪽 벽에 다소곳이 놓인 배낭에서 바지를 챙겨 입고, 침실을 나가 현관문을 열었다.

문틈으로 들어온 겨울처럼 싸늘한 바람에 절로 몸이 떨리는 가운데,

“비켜어어!!”

“크악?!”

그보다 몇 배는 더 서늘한 살의가 꽂히면서 엄청난 힘에 몸이 뒤로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우와, 방금 멧돼지가 들이받은 거 같았어!

아침부터 뭐야, 진짜?!

격하게 기침하는 중에, 쿵쿵과 콰직이 맞물리는 발소리와 함께 산발머리를 한 거구의 여자가 방으로 들어가는 게 얼핏 보였다.

누구인지 모를 저 미친년, 메린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황급히 쫓아가자마자,

콰앙!

오금이 저리는 소리와 함께 침대가 두 동강이 나 있는 게 보였다!

메린은 반대쪽 벽에 서서 여자와 마주하고 있다.

아직 잠이 덜 깼다는 듯이 하품하고 있는 게 좀 어이가 없긴 하지만, 저렇게 태평하단 건 아무데도 안 다쳤다는 거겠지. 다행이다.

“네년이지! 또 네년일 거야!! 그렇지?! 빨리 그렇다고 해, 죽여줄 테니까!!”

여자는 손에 단검을 든 채, 완전히 정신이 나간 목소리로 소리쳤다.

뭐가 또 저 녀석이라는 건지 도통 모르겠어!

일 저지른 게 한두 번이어야지!

……아니, 잠깐. 그게 아니잖아.

이 마을 와서는 아무 짓도 안 했어. 우린 어제 왔다고.

아침부터 몸통박치기를 당한 탓에 내 정신도 나가버린 모양이다.

“내가 뭐요?”

반쯤 감긴 눈을 비비면서 태평하게 대꾸하는 메린.

그와 대조적으로, 여자는 고개를 마구 흔들며 날카롭게 고함쳤다.

“또 시치미 떼냐?! 네년이 내 아들을 죽였잖아!! 너 말고는 없어. 네년 말고는 그런 짓을 할 년이 없다고!!”

“나 아닌데요.”

“또 그런 속임수를……!!”

“진짜 아닌데요.”

메린은 이 여자가 누구인지 아는 건가?

되게 자연스럽게 대답하고 있네.

“그럼 너 말고 누구라는 거냐!! 대답해! 당장 쳐죽이러 갈 거야! 얼른 말해!!”

이 여자가 누구인지 몰라도, 얼른 알려주고 보내버렸으면 좋겠건만,

“싫어요.”

메린은 어째서인지 눈을 똑바로 뜨며 딱 잘라 거절했다.

당연히 여자는 괴성을 지르며 칼을 휘두르려 했다.

우와, 안 돼, 또 난리 난다!!

“잠깐! 잠깐잠까아아안!!”

목이 터져라 외치면서 여자의 팔을 힘껏 붙잡았다.

여자가 나를 뿌리치려고 이리저리 흔드는데, 우와, 이거 놓치면 그대로 벽에 머리 박고 뒤질 거 같아!

“당신 누구야! 누구이길래 이래?! 아들이 누구인데!!”

내쳐지지 않으려 애쓰면서 소리쳐 물었다.

그러자 갑자기 여자가 제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더니 울음을 터뜨리는 게 아닌가!

아, 진짜 뭐가 뭔지 모르겠네.

“……르으…… 내 아들……! 튜르으으……!! 저 년이 죽였어…… 저 년이 기어코 내 아들을 잡아먹었어……!!”

……뭐? 튜르?

내가 아는 튜르는 이미 뒤진 개놈 새끼밖에 없는데.

아니, 이 마을에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은 그 놈 하나밖에 없지?

“……어, 설마 벤스 부인?”

“불쌍한 내 아들… 아아… 아아아아……! 저 괴물년만 없었어도……!!”

“……”

어제 그 새끼도 그렇고, 이 아줌마도 진짜 변한 게 하나도 없구나.

따져보면 마을이 이 지경이 된 원흉이구만, 그걸 부끄럽게 생각할 머리는 없는 모양이다.

“……메린 아니에요.”

“야, 카엘!”

당황해하는 메린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나는 남의 집에 엎드려서 뻔뻔한 눈물을 흘리는 어미 뻐꾸기를 내려다보며 똑똑히 말했다.

“그 새끼 죽인 건 접니다.”

내 말소리가 끝나는 동시에, 여러 일이 한꺼번에 벌어졌다.

일단 내 몸이 뒤로 홱 잡아당겨지며 바닥에 주저앉혀졌고,

여자…가 아니라 촌장부인이 눈을 부라리면서 뒤로 넘어갔으며,

목에 찢어질 듯한 통증이 흐르면서 뜨거워졌다.

“카엘!!”

자동으로 목에 댄 손 틈으로, 뜨뜻한 액체가 흐르는 게 느껴진다.

아으, 더럽게 아프네.

어쩔 수 없이 잔뜩 찌푸린 시선을 들자, 메린이 완전히 새하얘진 얼굴로 두 눈을 크게 뜨고 있는 게 보였다.

“아, 아아~ ……응, 잘 나오네. 괜찮아. 그냥 스쳤나봐.”

아파서 조금 떨리고 있지만, 목소리를 내는 데엔 아무 문제도 없는 듯했다.

아, 근데 그 놈한테 기도 받기 싫은데. 또 머리 후려칠 거 같아.

그러고보니 오늘 독기 치료 또 받아야 되잖아, 망할!

아니, 지금 이런 생각할 때가 아니지.

메린이 발을 후려버렸는지, 촌장부인이 나자빠져 있는 사이에 여길 나가야 한다.

그래야 하는데,

메린은 완전히 무감정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

“메린……?”

“……거야.”

“뭐?”

“죽여버릴 거야.”

딱딱한 말투로 중얼거리는 녀석의 모습에, 온 몸의 털이 바짝 곤두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 이 녀석, 뭐라고 한 거지?

통증과 혼란스러움으로 뒤죽박죽이 된 머릿속에 그 말뜻이 채 들어오기 전,

콰아앙!!

큰 울림이 나면서 흙먼지가 자욱이 피어올랐다.

통증과 먼지 때문에 기침하면서 다시 정면을 본 순간, 등줄기가 오싹해지며 소름이 돋았다.

침실을 넘어 현관이 있는 거실 겸 부엌까지 벽이 완전히 부숴져 있다.

그 바깥의 바닥이 길게 패인 채 어딘가로 쭉 뻗어져 있다.

그리고, 고함과 비명이 마구 뒤섞이며 울리고 있었다.

메린이 남긴 말. 개판이 된 집 꼬라지.

바깥에서 들리는 비명소리.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 있는 나.

그 의미들을 제대로 깨닫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목을 부여잡은 채 박살난 벽을 통해 바깥으로 뛰쳐나가, 비명이 들리는 방향으로 내달렸다.

얼마 안 가, 자그마한 공터에서 난장판이 펼쳐져 있는 게 보였다.

“이거 놔아아! 죄다 죽여버릴 거야아아!!”

붉은 웅덩이 위에 주저앉은 채 몸부림을 치는 촌장부인.

“그만하세요, 부인!!”

검을 든 팔을 붙잡고서 그 여자에게 소리치는 아버지.

“물러나, 임마!! 진정하고 물러나라고!!”

그리고 검술 사범님이 반대쪽 팔을 붙잡고, 촌장부인이 아닌 정면을 향해 고함치고 있다.

그 맞은편에서는,

“그래, 덤벼, 개년아!! 네년 대가리를 완전히 뭉개줄 테니까!! 놔, 새끼들아!! 저 씨발년 죽여버려야 되니까 놓으라고!!”

메린이 로나와 블루벨에게 각각 다리와 두 팔을 붙잡힌 채,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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