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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430화 (430/475)

〈 430화 〉 406화 : 가장 앞의 수호자 (2)

* * *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파란 하늘 아래,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는 하얀 평원을 걷는다.

깊게 쓴 후드 위로 쏟아지는 햇살은 뜨겁고, 이따금 속으로 들어오는 눈은 몸서리가 쳐질 만큼 차갑다.

문득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자, 가죽에 싸인 그 위로 눈송이가 살포시 내려앉기가 무섭게 녹아서 물이 되더니 그대로 말라버린다.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본 후, 이번엔 시선을 내려서 하얀 눈더미를 쓸고 있는 내 두 발을 바라보았다.

“………”

대체 어떻게 돼먹은 동네야?

구름이 없는데 눈이 내리고,

몸에 내려앉은 눈이 곧바로 말라버릴 정도로 햇살이 뜨거운데, 평원에는 눈이 한가득 쌓여 있다.

뙤약볕에도 데워지지 않을 만큼 차가운 눈인데, 발목까지밖에 쌓여 있지 않다.

그야말로 모순에 모순에 모순이 뭉쳐진 듯한 곳.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가 가는 방향이 여전히 북쪽이라는 것이다.

나침반까지 남쪽을 가리키고 있었다면 진짜 돌아버렸을 거야.

“카엘 님, 호흡은 괜찮으신가요?”

불현듯 묻는 율리아에게 괜찮다고 대답하자, 그녀가 생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다행이네요. 어지간히 내성이 없으면 숨쉬기 힘들거든요. 성검 덕분인지도 모르지만요.”

“여기를 아시나요?”

“직접 와본 건 처음이에요.”

율리아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눈을 헤치며 말을 이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아트라토스는 육백 년 전에 봉인되었어요.”

이따금 눈 속에서 튀어나오는 얼음덩어리 골렘과, 냉기를 품은 알 수 없는 영체를 물리치면서.

“처음에 알려드렸죠? 아트라토스가 저 산에 있는 건, 제비뽑기에서 인간이 당첨되었기 때문이라고. 이 부근은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이긴 하지만, 초대 국왕의 고향에서 가까운 편이니 인간의 영역으로 치부되었죠.”

왕국의 수도 미드랜드.

이름과 달리, 이 수도는 대륙 중부에 있지 않고 북부에 자리하고 있다.

북쪽 끝인 놋지빌에서 말을 타고 사나흘만에 갈 수 있을 만큼, 드래곤을 봉인한 산에 가까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코앞에서 지켜볼 수 있는 게 아니니, 놈의 봉인이 풀리면 곧바로 대응할 수가 없다.

때문에, 초대 국왕은 산 아래에 봉인처까지 단번에 갈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기로 했다.

“저 마을은 그 장치를 지키라고 세워진 거랍니다. 사람이 살진 않지만요.”

“네? 그럼 아무도 없다는 말씀이세요? 사람이 살고 있다고 들었었는데.”

직접 가보진 않았지만, 놋지빌에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었다.

북쪽 숲을 빠져나가면 사람이 살고 있는 또 하나의 마을이 있다고.

그래서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마을이 그곳인 줄 알았는데……?

율리아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저기에 사람은 없어요. 정확하게 말하면, 더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게, 무슨……?”

“……”

무겁게 한숨을 쉰 후, 그녀는 눈이 펑펑 쏟아지는 하늘을 살짝 올려다보았다.

눈송이가 눈에 들어갈 텐데, 따갑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저 아래에 있는 마을, 놋지빌은 경계선이에요. 많은 요정에 둘러싸이고, 괴이한 몬스터의 피를 뒤집어쓰고, 그 기운이 섞인 공기와 물을 마셔도 인간인 채 남아있을 수 있는 한계선이죠.”

“그렇다는 건……”

율리아는 아직 때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는 다른 말을 꺼냈다.

“아트라토스와의 대전쟁으로, 고향을 잃은 사람들이 꽤 많았어요. 초대 국왕은 그 중에서 의무감이 흘러 넘치는 사람들을 선별해서 저 마을로 보냈어요.”

어디에도 살 곳이 없는 탓에, 그들은 왕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마을이 자리를 잡으면 위병이 될 병사들도 함께.

그리고 그 일행 중에는 부엉이탑의 현자가 끼어 있었다.

봉인처로 가는 장치를 점검하기 위해서라는 이유였으나, 사실은 다른 의도로 같이 갔을 것이다.

율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마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창조주 외엔 아무도 몰라요. 교단이 만들어진 건 그보다 좀더 지난 때였거든요.”

“그럼 조쉬…… 조슈아 님만 계셨던 건가요?”

“맞아요. 창조주를 섬기는 사제는, 최초의 대언자 하나뿐이었죠.”

그 유일한 신자이자 대언자는 초대 국왕에게 분노해서 그를 떠난 상태였다.

산꼭대기에서 만난 아트라토스의 기억을 가진 빨간 드래곤 말대로, 사랑을 알지 못하는 불쌍한 존재라는 이유로 놈을 봉인해버린 것에 열이 받았던 것이었다.

“멱살을 잡으면서 ‘네가 전부 다 망쳤어! 빌어먹을 새꺄!’ 라고 소리치시는 게 꽤 박력이 있으시더라고요. 괜히 폭풍고래한테 돌려차기 날리신 게 아니라니까요.”

“어…… 꼭 직접 보신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봤으니까요. 림이 보여줬어요.”

대소사를 가릴 나이가 됐을 무렵, 대언자의 동반자인 까마귀가 과거를 보여주었다.

어째서 율리아가 태어나야 했는지 알려주기 위해서.

……그리고 지난번에 만났던 그 희한한 이야기꾼 아저씨는 이 이야기를 전부 다 알고 있었다.

역시 그 아저씨는,

‘쉿.’

아니, 뭐 생각도 못해?

그럼 혹시 이 속삭임이,

‘아니, 나 아닌데.’

……생각을 끊어먹으면서 부정하는 말이 돌아왔다!

그렇구나. 이 속삭임은 진짜로 그냥 잡귀가 쫑알대는 거구나.

이따 율리아에게 봐달라고 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속으로 툴툴대는 내 귀에, 율리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때 통감했어요. 그래서 왕족의 핏줄에서 대언자를 세운 거구나 하고. 조상이 저지른 실수를 만회하라는 의미인 거예요.”

“역시 실수인 걸까요?”

“그럼요. 빼도 박도 못할 실수예요. 우위에 섰다는 오만함에서 비롯된, 사람이기에 저지를 수 있는 치명적인 실수.”

초대 국왕만의 실수가 아니다.

부엉이탑의 현자, ‘노을 숲’이자 현 ‘루 메호’의 엘프, 바위 궁전의 드워프, 바다의 인어.

그 자리에 있는 지성체 모두가 저지른 뼈아픈 실책이다.

그때 그 오만한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일은 없었을 테니까.

율리아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 무렵, 우리는 장치가 있다던 하얀 마을 앞에 다다랐다.

소리마저 눈 속에 묻힌 것처럼 정적에 감싸여 있다.

율리아는 방책으로 세워진 울타리 입구를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초대 국왕을 떠났던 조슈아 님은, 어느 날 북쪽 산 아래에 마을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셨어요. 그리고 이곳에 오셨죠.”

뽀득. 뽀드득.

눈이 발 아래에 뭉쳐지는 소리가 왠지 모르게 더 크게 들리는 듯하다.

바람조차 지나지 않을 만큼 고요하기 때문이리라.

……이곳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율리아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놋지빌에는 이러한 말이 전해진다.

마을의 북쪽 숲에서 북쪽에 사는 사람과 마주하면, 못 본 척하고 지나가라고.

그땐 우리는 왕국 사람이고 저 북쪽은 자치령이라서 서로 껄끄러우니 피하라는 건 줄 알았는데.

……그러나율리아는 조금 전에 또 한 마디 덧붙였다.

여기 있던 자들은 더는 사람이 아니라고.

놋지빌이 인간으로 남아있을 수 있는 한계선이라고.

“여기 오셔서, 보게 되신 거예요.”

광장 같은 널찍한 빈터에 서서, 율리아가 나지막이 말했다.

“뭘요……?”

“사람이 아니게 된 사람들.”

딱딱한 투로 중얼거린 후, 율리아가 크게 박수를 두 번 치면서 소리쳤다.

“해방의 때가 왔나니! 깨어나라!!”

그 울림이 고요에 잠긴 마을 안에 가득 퍼지기가 무섭게,

후두둑, 지붕에서 눈이 떨어졌다.

바닥에 쌓여 있던 눈이 여기저기 흩날려갔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곳에서 눈이 멋대로 혼자 이곳저곳으로 날아가서 쌓이더니,

“……!!”

마치 땅 속에서 기어 나오듯이 바닥을 짚고 일어섰다.

사람 형태의 눈덩이, 말 그대로 눈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 우리를 향해 저벅저벅 다가오기 시작했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그들의 몸이나 다름없는 눈이 부스스 떨어진다.

그 부스러기가 떨어질 때마다, 눈에 덮였던 알맹이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하얀 머리카락.

흰자위밖에 보이지 않는 하얀 눈.

창백한 피부에 파랗게 질린 입술.

그 바깥으로 삐져나온 뾰족한 송곳니.

어디서 본 듯한, 얼어붙은 시체 같은 사람들이 터벅터벅 걸어오더니, 갑자기 제자리에 서서 일제히 한쪽 무릎을 꿇었다.

율리아는 그 괴이한 사람 중 하나의 머리에 손을 올리면서 말했다.

“‘신비’에 먹혀 사람이 아니게 되어버린 눈의 민족. 설인이에요.”

“먹혔…다고요……? 사람이 아닌 거예요? 그냥 인간이 아닌 게 아니라?”

“네. 조슈아 님이 왔을 땐 훨씬 더 심했어요. 커다란 털북숭이 짐승만 가득했거든요. 뭐 이상한 걸 먹은 건지, 아니면 이들과 같이 갔던 그 현자가 무언가 처치한 건지…… 그건 방금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창조주 외에는 몰라요.”

그 진실을 알게 되면 무언가 위험해지기 때문일까?

창조주는 대언자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때문에 대언자는 직접 알아보겠다며 몬스터들을 헤치며 마을을 뒤지고 다녔고, 결국 드래곤의 봉인처로 가는 장치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공간이 담고 있는 과거의 말소리를 읽고, 이 마을을 세운 목적을 깨달은 것이었다.

장치를 지키고 관리한다는 게, 몬스터를 풀어둔다는 뜻이었는가?

이들을 물리치는 것으로 놈을 처치할 만한 자가 맞는지 시험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그렇게 제자리에 엎드려 크게 통탄한 후, 대언자는 자신을 위협하는 몬스터…… 사람에서 변이된 존재를 위해 창조주에게 빌었다.

“……지성을 돌려 달라. 그분은 그리 말씀하셨지요.”

“힉?!”

율리아가 손을 얹고 있는 설인 남자가 그녀의 말을 잇듯이 중얼거렸다!

우와, 지금 말했어! 또랑또랑하게 말했다고!

“혀, 혀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고?! 얼어붙었을 텐데!”

“……그야 보통 생물이 아니니까요. 당신이 대행자, 용사이죠? 재미있는 분이시네요.”

율리아의 손이 설인의 머리에서 떠나가자,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다른 설인들도 모두 그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 아니,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일순간에 몰려든 시선에 속이 울렁거려, 나도 모르게 메린의 팔을 꽉 쥐었다.

으…… 그냥 사람 눈도 힘든데, 이 설인들은 흰자위가 없는 새하얀 눈동자라 더 힘들어.

소름이 엄청 끼친다!

“장치에 가실 건가요? 대언자님.”

“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설인이 먼저 느릿한 걸음으로 눈 위를 걷기 시작했다.

발자국이 전혀 남지 않는 게, 꼭 둥실 떠다니는 것 같아!

더 소름 끼쳐!!

……그래서 나도 모르게 메린의 팔에 달라붙어버렸다.

“야, 좀 떨어져. 눈밭이라서 걷기 힘들단 말야.”

“………”

“어휴, 쫄보 새끼.”

어이없다는 투로 내뱉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메린.

그래도 그 이상 떨어지라는 둥의 말은 하지 않았다.

흑, 정말 좋은 녀석이야.

장치로 안내하겠다는 설인 하나를 뺀 나머지는, 모두 제각기 다른 곳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도로 눈이 되는 건가 싶었는데, 우리가 들어왔던 울타리 입구 앞에 멀거니 서기도 하는 걸 보니 보초를 설 생각인 듯했다.

“지성을 돌려받은 설인들은, 자신들이 인간이 아니라 지성을 가진 몬스터가 됐다는 걸 곧바로 깨달았어요. 그래서 조슈아 님을 통해 창조주와 계약을 했죠.”

느릿하게 움직이는 설인을 따라가면서 율리아가 말했다.

“눈이 되어 이 지대를 지키다, 아트라토스가 멸해지는 것과 동시에 스러지기로 말이죠.”

“지대를 지켜요? 장치가 아니라?”

“……장치를 지킬 필요는 없습니다. 엄중히 봉해져 있으니까요.”

설인은 그 걸음처럼 느릿하게 말했다.

“……이 마을은 장치가 있음을 표시하기 위해 세웠을 뿐. 그리고 우리를 이곳에 두고, 괴물이 되도록 내버려뒀죠. 아무나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늘을 보셨습니까? 저기 떠있는 것은 여러분이 아시는 그 해가 아닙니다.”

자연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게 되었다.

여전히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에, 굉장히 눈부시게 빛나는 둥그런 해가 하나 떠 있다.

햇살이 평소보다 뜨겁긴 한데, 저게 해가 아니면 뭐라는 거지?

설인은 내 의문을 읽기라도 한 듯,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저것은 놈의 분노. 이 일대를 전부 불태우고 녹이고자 하는 의지입니다.”

“그럼 이 눈은 열을 식히려고 당신들이 일부러 내리고 있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받은 권능이기에.”

눈의 민족이 된 덕에, 그들은 무언가 먹을 필요가 없어졌다.

잠을 자지 않아도 되게 되었기에, 끊임없이 눈을 내려서 이 지대가 또 다른 ‘불의 호수’가 되는 걸 막았다.

본래는 사람이 지나다닐 수 없을 만큼 높은 눈더미가 쌓였었다고 말하며, 설인은 느릿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 높이가 낮아질수록, 우리는 기쁨에 찼습니다. 놈의 봉인이 풀려간다는 뜻이었기에. 영면의 때가 다가옴을 알았기에.”

“……”

“……그래도 눈이 완전히 녹은 뒤에 찾아오실 줄 알았는데.”

의외라는 듯한 그의 말에, 율리아가 킥킥 웃으며 대꾸했다.

“좋은 일은 얼른얼른 해치워야 하는 법이잖아요? 조금 많이 서둘렀죠!”

“……허허, 당신께서도 사명이 끝나길 고대하시나보군요.”

“시간 끌어서 좋을 것도 없으니 후딱 끝내야죠!”

뭐, 그렇기는 해.

마지막 징조가 무려 하늘의 별이 떨어져서 지상의 절반을 박살낸다는 거였으니까.

그거랑 드래곤이 멸망시키는 거랑 무슨 차이가 있나 싶긴 한데, 저 멀리 위에 계신 분의 눈엔 다르게 보이는 모양이다.

율리아는 크게 기지개를 켜면서 재차 말을 꺼냈다.

“조슈아 님은 이분들을 돌보신 다음, 초대 국왕과 같이 싸웠던 종족들의 대표를 한데 불러서 맹약서를 만들었어요. 초대 국왕을 쏙 빼놓고.”

“엥? 왜요?”

“완전히 밉보인 게 아닐까 해요. 솔직히 그렇잖아요? 아무리 봉인처를 지키려 했다고 해도 그렇지, 사람이 아니게 된다는 걸 알면서 사람들을 여기로 보내버렸으니까요.”

이상한 데서 동정심을 베풀고, 이상한 데서 비정해지는 인간은 의무를 수행할 수 없다.

그렇게 판단한 대언자는 자신이 인간 대표가 되어 다른 이종족에게 맹약을 맺기를 요청했다.

아니, 강요했다.

그들이 저지른 실수를 뒤처리하기로 결정했으니 고마워하라는 말과 함께.

“참 성질 더럽…… 아니, 강직한 분이시군요.”

“괜히 고래한테 발차기 날렸겠어요? 뭐, 아무튼, 조슈아 님은 맹약서를 만드신 뒤에 교단을 만드셨어요. 처음엔 보직 구분없이 창조주께서 능력을 주시는 대로 받았는데, 그 이후로 대를 거치면서 지금의 형태가 됐죠.”

“흠…… 근데 왜 이런 말씀을 해주시는 거죠?”

안 물어봤는데 말야.

율리아는 내 질문에 눈을 살짝 동그랗게 뜬 후, 곧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모르시겠어요? 전부 다 이때를 위해 계획된 거예요. 이분들이 눈의 민족이 되지 않았다면 이 자리는 불바다가 되어서 특별한 힘이 없으면 통과하지 못했을 거예요. 교단이 세워지지 않았다면 당신의 고향을 개척할 수 없었겠죠.”

그러면 누가 선택을 받았건, 이곳에 오는 길이 더 힘들었을 것이다.

놋지빌을 둘러싸고 있는 숲이 더욱 남쪽으로 퍼져 있었을 테니까.

“놈이 봉인된 순간부터, 창조주는 이때를 계획하신 거예요.”

“……”

“한 가지만 빼고요.”

성검을 내려 용사를 세운다.

그 계획은 꽤 최근에 세워진 것이다.

율리아는 미소를 띤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말씀드렸죠? 제 평생에 놈이 깨어날 거라는 건 알았지만,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몰랐다고. 용사가 나타날 거란 것도 예언이 내려진 순간에나 알았죠. 성검이라니, 세상에! 완전 사기적인 무기잖아요. 균형이 안 맞는 거 아닌가 했는데, 메린 씨를 보고서 알았어요. 놈이 먼저 치사하게 굴어서 균형을 맞추려고 내리신 거라고요.”

지상의 생물의 영혼을 건드리고, 자신의 정수를 부어서 영혼을 옮길 그릇을 만든 것.

그런 반칙을 저지른 놈을 완전히 끝장내기 위해 성검을 내린 것이다.

놈의 영혼이 한 줌도 남지 않고 완전히 소멸되도록.

“뭐, 언제 강림한 건지는 모르지만요. 여하튼 이 일은 그렇게 된 거예요. 용사가 된 게 당신이라는 걸 빼면 전부 한참 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거죠.”

“음…… 왜 제가 용사가 된 걸까요?”

“그건 저도 모른다니까요? 기도로 한 번 여쭤보세요. 혹시 알아요? 응답하실지.”

어쨌든 용사이니까.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는 율리아에게 아무 말도 돌려줄 수 없었다.

그렇게 자리한 침묵 속에서 천천히 눈을 헤치며 걸어갔다.

이윽고 설인은 어느 허름한 오두막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그를 따라 오두막에 들어서자, 움푹 패인 바닥 위에 네모 반듯하게 깎인 바윗돌이 눕혀 있는 게 보였다.

설인은 그 바윗돌을 가리키며 말했다.

“……장치입니다.”

“………”

어디를 봐서?

그 물음이 목구멍까지 단번에 치솟아 올라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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