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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431화 (431/475)

〈 431화 〉 407화 : 끝을 향해

* * *

바닥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바윗돌은, 우리 여섯 명이 다 올라설 만큼 충분히 넓었다.

근데 진짜 이게 어딜 봐서 장치라는 거야?

사방면이 무척 매끈매끈하고 반듯하게 깎여 있다는 것 말고는 별 특이한 게 없잖아.

표면에 뭐가 적혀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주변에 무언가 눈길을 끄는 게 놓여 있지도 않고…….

이야기책에서는 이런 거 치우면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오고 그러던데.

이것도 그런 종류인가?

“아니야, 미친놈아.”

“……엉?”

위슨 녀석이 별안간 욕을 날리는 바람에 흠칫 놀랐다.

너무 괴상한 환경에 와서 맛탱이가 좀 갔나봐.

그래서 딱밤이라는 특효약을 주려고 고개를 돌렸는데, 녀석의 어깨 위에 푸르딩딩한 재앙덩어리가 달려 있는 게 아닌가!

세상에, 저 퉁퉁 불은 몸뚱이 좀 봐!

저렇게 살찌기까지 대체 몇이나 희생된 거지?!

경악하는 내 속마음을 들었는지, 놈이 즉각 발끈하며 빽 소리를 질렀다.

“살찐 거 아니야, 미친놈아! 정령은 살 안 쪄!”

“뻥치지 마! 전에 봤을 때보다 더 커졌구만! 세상에, 빵을 얼마나 처먹었길래!”

“마력 처먹었다, 등신아! 이 부근에 철철 흘러 넘쳐서!”

삐이이—

귓속이 울리면서 다리에 힘이 풀렸다.

아아, 약간 찌릿한 통증과 머릿속이 온통 뒤집어지는 듯한 이 감각……

정말 오랜만이군. 염병.

나는 신음을 내뱉으며 바닥을 조금 구른 후, 다시 비틀비틀 일어나서 말을 꺼냈다.

“그래서… 얘는 왜 꺼낸 거야……?”

“위슨 힘 아끼려고.”

“그렇구나…….”

목에 깃들여서 직접 입 밖으로 말을 꺼내는 것보다, 파랑새가 전달하는 방식이 훨씬 힘이 안 든다는 듯했다.

후, 얼른 위슨 녀석이 말을 다시 할 수 있게 되어야 할 텐데.

그거 못 보는 게 좀 아쉽………

“……”

………아니, 지금은 이런 생각하지 말자.

감상엔 다 끝나고 나서 실컷 젖자고.

“율리아 님, 이거 작동 방법 아세요?”

“아니요~”

음, 시작하기도 전에 망했군.

근데 뭐 저리 태평하게 대답하냐?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힌 내 모습이 우습다는 듯, 율리아는 킥킥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이 장치를 만든 건 부엉이탑의 현자예요. 그러니 위슨 씨가 무언가 알아내실 수 있지 않을까 한데요.”

“뭐 느껴져?”

위슨은 내 물음에 어깨만 으쓱였다.

아까 파랑새는 뭐 알고 있는 것 같던데 안 가르쳐주나보군.

……생각해보면 인외의 존재들은 진짜 야박하다.

질문을 던져도, 툭하면 비밀이니 허락되지 않은 지식이니 하면서 뭘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으니까 말야.

그냥 속 시원하게 알려주면 뭐 어떻다고!

내가 속으로 툴툴대는 사이, 위슨은 바닥에 쪼그려 앉아서 돌 표면을 손으로 스윽 쓸고 있었다.

그러다 무언가 보였는지, 갑자기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바닥에 길게 내뿜었고, 녀석을 제외한 나머지는 잠시간 손을 휘저으며 켁켁거려야 했다.

설인들이 청소를 하지 않았던 건지, 먼지가 엄청나게 자욱히 피어오른 탓이다.

“역시 그렇군. 알아냈어.”

위슨은 약간 의기양양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허탕이었으면 곧바로 이마에 손가락 퉁겨주려고 했는데 좀 아쉽군.

녀석은 혀를 차는 나를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증명을 보이면 돼. 그럼 알아서 작동할 거야.”

“증명?”

“섬이랑 똑같아. 손님용 출입구 기억하냐?”

파랑새의 입을 빌려 말을 전하면서, 위슨은 돌 표면을 한 번 더 손으로 슥 문댔다.

그러자 이번엔 흙먼지 대신, 바윗돌 중앙을 제외한 자리에 선과 문양이 떠올랐다!

“이거 룬이잖아. 아니…… 마법진이라고 해야 하나?”

여전히 뜻은 읽을 수 없지만, 돌 표면에 떠오른 문양이 룬이라는 건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게다가 글자 중간중간에 별과 달 등의 그림도 그려져 있으니, 어떤 효과를 바라고 만든 마법진이겠지.

이 바윗돌은 정말로 어떠한 목적을 위해 만든 장치였던 것이다.

위슨은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중앙에 서도록 우리를 모은 후, 나를 돌아보며 고개를 살짝 기우뚱거렸다.

“그러고보니 신기하네. 너 이게 룬인 거 어떻게 아냐? 너네 마을에서 쓰지도 않던데.”

“엉? 쓰는데? 액막이 의식이랑 성년식 때, 룬 새긴 부적 주는데?”

행운과 안녕을 비는 말이라는 것만 알지, 정확한 뜻은 아무도 모른다.

애초에 그 네다섯 개의 문자밖에 안 쓰고 말야.

그런 내 말에, 위슨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너네 고향에서 왜 마법사가 안 나오는지 이해가 안 간다. 아무튼, 섬에 있는 출입구처럼 힘이 담긴 물건을 내려놓으면 돼.”

“힘이 담긴 물건이라……”

그때도 그렇고, 이 상황에서 꺼내기 적당한 건 하나밖에 없지?

나는 배낭에서 돌돌 말린 맹약서를 꺼내어 펼쳤다.

“……”

엘프의 숲을 나온 이후로는 펼쳐보지 않았었지?

마지막으로 찾아간 인어는 협의가 아니라 싸우러 간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때 대표자였던 생선공주에게 선포해서 그런가?

대언자 율리아, 엘프 왕 골든로드, 부엉이탑 수장 네이멜, 드워프 의장 암피오……

네 사람의 서명이 선명하게 떠올라 있는 중앙에, 단 한군데만 무언가 타버린 것처럼 새까맣게 변해 있다.

아마 동맹에서 빠졌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이게 멸족을 뜻하는 건 아니길 바란다.

흉측한 몬스터인 세이렌보다는, 조금 특이하게 생겼기는 해도 일단 지성체인 인어가 훨씬 나으니까.

그 몬스터가 바다를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면……

으, 다시는 바다 못 갈 거 같아.

“야, 춥냐? 왜 갑자기 달달 떨어?”

“아니…… 이거 보니까 갑자기 세이렌이 생각나서…….”

메린은 내 대답에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곧 생각났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그때 너 덮쳤던?”

“………”

쓸데없이 기억력이 좋은 녀석의 발언이 오두막 안에 울려퍼지며,

“뭐? 덮쳐? 우와, 너 몬스터한테 당한 거냐?”

위슨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어오고,

“아, 맞아요~ 그런 일이 있었다고 했죠~ 메린 님이 촉수에 돌돌 말려 있는 동안에 세이렌한테 붙잡혀서 입맞춤이랑 손장난 당하셨다고 했었죠~”

그 말에 확인도장을 찍듯이 로나가 헤실헤실 웃으며 쓸데없이 상세한 설명을 늘어놓았으며,

“연인이 보는 앞에서……?! 그거 완전……!!”

그걸 들은 블루벨은 뭘 떠올렸는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나와 메린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 변태 할망구가 또 무슨 상상을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영원히 알고 싶지 않아.

빌어먹을, 근데 그때 그런 상황이었던 건 맞으니까 뭐라고 할 수도 없네!

“어흑.”

“저런, 꽤 고생이 심하셨군요. 아무튼 빨리 그거나 내려놓으세요.”

“……”

그리고 나를 위로하는 척하면서 얼른 일이나 하라고 재촉하는 율리아였다.

이 사람이 제일 나빠.

나는 바깥의 눈만큼이나 싸늘한 응대에 한숨을 쉬면서 맹약서를 발치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종이에 적힌 네이멜의 서명이 빛을 내더니, 바윗돌에 새겨진 마법진 전체가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다음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걸 보니, 무언가 더 해야 하는 모양이다.

위슨을 힐끗 보자, 녀석은 대답 대신 오두막 입구에 선 설인을 턱으로 가리켰다.

인사하라는 뜻 같아서, 나는 우리를 마주하며 멀거니 선 설인에게 말했다.

“그… 아트라토스가 죽으면 사라지신다고 하셨죠? 그럼……”

“……여기서 작별입니다.”

내 뜻을 이미 읽었다는 듯, 설인은 느릿하게 허리를 숙였다.

“그… 뭐라고 할까… 그걸로 괜찮으신가요?”

“……우리에게 미련은 없습니다.”

설인은 등을 펴고 나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흰자위밖에 없는 눈이라서 여전히 소름 끼치기는 하지만, 그 얼굴이 잔잔한 평온을 꿈꾸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본래 지성 잃은 괴물로서 당신의 손에 죽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연민 덕에 역할을 완수한 존재로서 생을 마치게 되었으니, 어찌 만족하지 않겠습니까?”

“저기, 그럼 이름이라도…….”

“……이름은 잃은 지 오래됐습니다. 되찾는 의미도 없습니다.”

고향은 육백 년 전에 이미 없어졌다.

이곳에 함께 온 가족은 그와 함께 몬스터가 되었다가, 지금은 모두 설인이 되었다.

다른 곳에 있을지도 모르는 친인척 따위, 사람이 아니게 된 그들에겐 아무런 의미도 되지 못한다.

그러니 남길 것은 없다.

초대 국왕이 의도했던 것처럼, 이들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은 채 스러지는 것이다.

봄바람에 물러가는 겨울처럼,

아무런 소리도, 기척도 없이.

눈의 민족이 된 설인은 그걸로 충분하다며 재차 허리를 숙였다.

“……사람의 몸으로 사명을 짊어진 빛의 대행자여, 건투를 빕니다. 부디 우리에게 영원한 안식을 안겨주시기를.”

“……”

대답을 들은 이상, 더 할 말은 없었다.

위슨을 돌아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그가 몸을 굽혀 바닥에 손을 짚었다.

그런 뒤, 그 자세 그대로 다른 손을 퉁겨서 파랑새를 집어넣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호수의 부엉이가 당도했노라. 나는 위슨. 흰 부엉이의 아들이니.”

발 밑에 들썩이는 느낌과 함께, 맹약서의 서명과 마법진이 한층 더 강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뿐 아니라, 마법진의 룬과 문양 사이의 빈 공간에도 또 다른 룬 글자가 떠오르며 진을 빼곡히 채웠다.

위슨은 그걸 힐끗 보고는, 돌 표면을 슥 문지르면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열어라.”

그 말이 울리자마자 발 밑이 붕 뜨는 듯한 부유감이 느껴졌다.

섬과 장서관에서 신나게 맛봤던 감각.

공간이동 마법이 작동될 때의 그 느낌이야. 분명해!

그래서 이제 눈앞의 공간이 일렁거릴 거라 생각했는데,

“으?!”

갑자기 발 밑이 푹 꺼지면서 홱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다음엔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에 풍덩 빠지는 것 같고!

으아아, 축축해!

근데 진짜 뭔 일이야, 눈앞이 캄캄해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겠어!!

그리고 다음 순간,

파아아—

엄청나게 커다란 분수와 함께 물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아앗, 돌바닥이 가까워지고 있어!

어떻게든 착지를……

“억.”

……하고 싶었는데.

발이 미끄러진 탓에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철퍼덕 엎어져 버렸다.

아으, 돌바닥이라 그런지 존나 아파……!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키고 주변을 보니, 나를 제외한 다섯 명은 모두 바닥에 똑바로 서서 옷의 물기를 짜내고 있다.

나만 착지 못하고 굴렀던 모양이군. 빌어먹을.

“큭, 왜 맨날 나만……!”

“네가 중심 못 잡은 걸 누굴 탓하냐? 얼른 일어나기나 해.”

“으으! 드래곤 새끼 반드시 죽인다……!”

이게 다 그 놈 때문이다.

그러니 무슨 일이 일어나건 놈을 반드시 없앨 것이다.

초대 국왕과 같은 실수는 절대 안 해.

딴 사람들이 자비를 베풀자고 해도 조각조각 내서 죽여버릴 거야!

이를 바득바득 갈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동굴처럼 사방이 바위로 되어 있는데, 무슨 복도처럼 길이 일직선으로 뻗어 있다.

한쪽 끝엔 우리가 방금 튀어나온 물이 가득 채워져 있고, 반대편에는 거인도 오갈 수 있을 만큼 커다란 문이 녹색 덩굴로 칭칭 옭아진 채 자리하고 있다.

……분위기상 저 문을 열고 가야 할 것 같지?

그러려면 덩굴을 치워야 할 거고.

“어디……”

검을 뽑아서 힘껏 내리쳤다.

은검의 날이 덩굴에 닿자, 꼭 슬라임을 베는 것처럼 물컹한 느낌과 함께 뒤로 홱 튕겨져 버렸다.

음, 역시 안 되는군.

어깨를 으쓱이는 나를 이어서 메린이, 그 다음으로 로나가 문을 때려보았으나 자그마한 흠집 하나 내지 못했다.

“이것도 장치인가?”

“그렇지 않을까요? 맹약서 한 번 보세요.”

“맹약서? 그건 아까……”

……돌바닥에 올려놓았었는데, 어느새 내 손에 쥐어져 있었다!

우와, 뭐야, 이거.

내가 언제 이걸 집었다고……!

히으, 뭔가 소름 끼쳐!

그동안은 그냥 뭐가 적혀 있는 종이로만 보였던 게, 갑자기 귀신 들린 무언가로 보이기 시작했다.

설마 어느 괴담처럼, 어디 다른 데에 버려도 책상 위에 돌아와 있고 그러는 거 아냐?!

율리아는 질겁한 나를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뭘 그리 놀라세요? 중요한 물건이 주머니에 되돌아오는 건 상식이잖아요?”

“아닌데요. 물건이 혼자 움직이지 않는 게 상식인데요.”

신전에서 대체 뭘 봤길래 저런 뒤틀린 상식을 가지게 된 걸까?

기밀문서나 보물에 죄다 귀환 기능이 달려 있기라도 한 모양이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나는 문에 가까이 가서 맹약서를 펼쳐 보았다.

바윗돌을 생각하면, 장치와 관련된 종족 대표의 서명이 빛날 텐데……

……없어.

누구의 서명도 빛나지 않는다.

어라, 뭔 장치가 아닌가?

그럼 검으로 썰었을 때 잘려야지. 왜 멀쩡해?

심지어 로나가 철퇴로 때려도 끄떡없었잖아.

무기가 안 통한다면……

나는 턱을 문지르며, 거북이의 힘으로 젖은 옷에서 물기를 없애고 있는 위슨을 돌아보았다.

“위슨, 이거 태울 수 있을까?”

“위슨 역할은 아까 걸로 끝일걸? 아무리 플레마가 뜨거운 불길을 내뿜는다고 해도 안 통할 거다.”

“그럼 대체 뭘 해야……”

끼기기긱……

머리를 긁적이는 중에 들린 묵직한 소리.

바닥을 드르륵 긁는 소리에 살짝 몸서리를 치며 돌린 시선 끝에,

“……허?”

뭔 짓을 해도 꿈쩍하지 않았던 문이,

서서히 열리고 있는 게 보였다.

그 앞에 서 있는 것은 블루벨.

대륙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생명수가 피워낸 마지막 꽃인 엘프이다.

그 발치에 덩굴들이 떨어져 있는 걸 보니, 블루벨이 무언가 열쇠가 되어서 문을 연 게 분명했다.

“어라? 진짜 됐네. 그냥 평소처럼 풀리라고만 했는데.”

“………”

……그냥 엘프의 힘으로 꽁꽁 묶었을 뿐이었구나.

진짜 장치도 뭣도 아니었군.

작게 한숨 쉬는 중, 문득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입구인 바윗돌도 그렇고, 이 덩굴도 그렇고……

맹약서에 서명한 종족들이 하나씩 힘을 보탠 것 같은데, 지금 여기엔 드워프랑 인어가 없잖아.

이 다음은 어쩌지?

그러한 작은 불안이 떠오르는 동안, 마침내 문이 완전히 활짝 열리면서 굉장히 밝은 빛이 얼굴을 가격했다!

그대로 눈이 타들어 갈 것 같은 열기와 함께……!

뜨거워……!

그보다 너무 밝아서 눈을 못 뜨겠어!

“얼씨구, 분위기 장난 아니네.”

감탄 섞인 투덜거림이 들리면서 몸을 감싼 열기가 사라졌다.

그르릉 하는 소리가 들린 걸 보아, 위슨이 스라소니를 통해 무슨 처치를 한 듯했다.

덕분에 눈부심도 사라져서 천천히 눈을 뜰 수 있었다.

“……!”

다시 밝아진 시야 한가득, 광활한 홀이 펼쳐졌다.

그 자리를 피해서 파기라도 한 듯, 곳곳에는 바위째로 이루어진 기둥이 세워져 있다.

고개를 완전히 위로 꺾어야만 보이는 천장엔, 무슨 공기 구멍처럼 자그마한 틈이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홀 가장자리엔 드워프 도시 맨 아래층에서 보았던 그 붉은 물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문이 열리면서 들이닥쳤던 열기는 바로 저기서 나온 것이리라.

“……”

가장자리를 보았던 시선이, 마침내 중앙으로 향한다.

더는 피할 수 없다는 듯이, 못이 박힌 것처럼 눈을 뗄 수가 없다.

……흔한 조각상 하나 없는 홀의 중앙엔, 거대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큰 수정이 하나 자리하고 있다.

무슨 힘으로 발산하는 건지 모를 엄청나게 환한 빛을 내뿜으며.

조금 전에 느꼈던 그 눈부신 빛은 아마 저 수정에서 나온 거겠지.

그 때문에 안이 보이지 않지만,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흠흠, 꽤 뜨거웠네요. 아마 인어의 힘이 없어진 탓이겠죠.”

율리아는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말을 꺼내면서 문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런 뒤, 그 거대한 수정을 소개하듯 두 손으로 가리키며 생긋 웃었다.

“짜잔~ 인사하세요! 육백 년이나 처박혀 살고 있는 아트라토스랍니다!”

“……”

무슨 관광 상품 소개하는 듯한 모습에 말문이 막혀 있는데,

­미천한 계집이 건방 떠는구나.

“……?!”

몸 속을 헤집는 듯한 묵직한 울림이 홀 안에 진동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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