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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436화 (436/475)

〈 436화 〉 412화 : 붉은 거룡, 아트라토스 (2)

* * *

놈의 날갯짓이 한층 더 거세어지면서 바람이 불어닥쳤다.

발이 떠오르는 느낌에, 곧바로 검을 땅에 꽂아 자루를 잡고 버텼다.

이거 비만 안 내리지, 바닷가에서 겪었던 그 폭풍이잖아!

“멈추지 마라! 바람과 불꽃은 우리가 삼킬 것이다!”

언젠가 들었던 근엄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부엉이탑에서 그랬듯이 위슨의 파랑새가 직접 말소리를 전한 것이리라.

바람과 불꽃을 삼키겠다는 말처럼, 몸을 마구 밀어내던 거친 바람이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알아둬라, 용사! 위슨은 우리를 부리는 게 한계이니, 다른 도움은 기대하지 마라!”

“괜찮아! 이미 충분하고도 넘쳐!!”

목숨을 태우려는 불꽃을 막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한 상황이다.

질주를 막는 바람까지 막아준다는데, 여기서 뭘 더 바라면 양심이 없는 거지.

나는 불쾌한 얼굴로 날개를 퍼덕이는 놈을 향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드래곤을 사냥하는 법 따위 모른다.

내가 태어났을 땐 이미 옛날 이야기에나 나오는 몬스터가 되었으니까.

산꼭대기에 올라가지 않았다면, 드래곤 구경은 평생 못했을 거야.

하지만 방법을 몰라도 사냥할 수는 있을 것이다.

드래곤은 잡은 적 없지만, 날개 달린 놈들은 여럿 잡아봤으니까 말야.

그럼 뭘 해야 할지 다 정해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야!!

“블루벨!”

“알고 있어!”

굳건한 대답이 들리기가 무섭게, 저만치 앞에서 블루벨이 활 시위를 당기는 모습이 잠깐 스쳤다.

바로 이어서, 굵직한 빛줄기 하나가 놈을 향해 쏘아졌다!

그러자 놈이 곧바로 한쪽 날개를 홱 접어버렸고, 블루벨이 쏜 빛은 그대로 뒷벽을 향해 날아가,

콰아아앙!

엄청난 굉음을 울리며 폭발했다!

아니, 뭐 저런 화살이 다 있어?!

근데 그보다 더 놀라운 건, 그렇게 큰 폭발이 일어났는데도 벽이 멀쩡하다는 것이다!

우와, 드워프가 만들었다더니 내구력 장난 아니네!

“칫, 역시 피하는군.”

“오히려 잘됐어.”

혀를 차던 블루벨이 어처구니없어 하는 듯한 시선을 보내는 게 느껴졌다.

그치만 놈을 떨어뜨리는 데에 실패한 대신, 세 가지를 확인할 수 있었는걸!

일단 블루벨의 화살은 놈이 피해야 할 만큼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곳 벽이 그 위력을 버틸 수 있으니, 무너질 걱정없이 힘을 쏟아도 된다는 것.

마지막으로, 이곳이 무너질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것이다.

놈이 피해버릴 정도로 큰 위력을 버틸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니까.

“계속 노려줘!”

“알았어!”

블루벨을 지나치며 그 말을 전한 후, 놈이 측면 벽에서 날아오는 빛줄기들을 피해 이리저리 날기 시작하는 걸 보며 소리쳤다.

“블루벨 혼자선 못 떨어뜨릴 거야! 우리도 접근해서 틈을 만들거나 잘라야 해!”

“그 수고를 덜어주마!”

“?!”

놈이 벽의 어느 한 지점을 꼬리로 후려친 뒤, 곧바로 우리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바라나이다!”

그와 동시에 큰 목소리로 기도를 올린 뒤, 율리아가 믿기지 않는 높이로 크게 뛰어올라 우리 앞 바닥에 모닝스타를 내려꽂으며 재차 외쳤다.

“나로 하여금 깨지지 않는 방패가 되게 하소서!”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놈의 붉은 대가리가 시야를 온통 채웠고,

쿠우웅—!

가슴속까지 떨리는 진동이 울리면서 놈이 튕겨져 나가는 게 보였다!

“이어서 바라오니!”

반동이 꽤 고통스러운지 얼굴을 잔뜩 찡그리면서도, 율리아는 그대로 또 한 번 기도를 올렸다.

“주여, 우리의 발이 사슴과 같게 하소서!”

그 입에서 말소리가 나오자마자 어쩐지다리가 가벼워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얼굴로 불어오는 맞바람이 한층 더 거세어지며, 바닥을 구른 몸을 일으키고 고개를 흔드는 놈의 모습이 전보다 한층 더 빨리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여기가 워낙 넓어서 체감이 잘 안 나지만, 달리기가 빨라진 게 분명해!

“크르르르……!”

놈은 입을 벌려 포효하는 대신, 또 다시 날아오르려 하는지 날개를 활짝 펼쳤다.

그러자 바위기둥 중 하나에서 작은 반짝임이 일더니,

콰아앙—!

조금 전처럼 굉음이 울리며 놈의 날개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놈이 몸을 뒤틀며 비명을 내지르는 걸 시작으로, 빛 줄기 몇 가닥이 날개에 빗발치며 마구 터져대기 시작했다!

“캬아아아악—!”

“으……!!”

망할! 귀가 울려!

눈앞이 살짝 어지러워지는 순간, 비명소리가 귀에서 멀어지며 잠잠해졌다.

덕분에 발이 꼬이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었다.

차작차작.

……주위에 비처럼 쏟아지는 붉은빛 덩어리들 사이로.

아니 뭐, 날개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마구 터졌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해.

근데 왜 여기까지 살점이 날아오는 거야?

일부러 누가 던지고 있는 거 아냐?

이따금 바로 앞에 떨어져서 나도 모르게 폴짝 뛰어넘었는데, 율리아의 기도 덕분인지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높이 뛸 수 있었다.

“캬아아악! 반푼이 년이, 감히……!!”

“하! 날개 있다고 쫄랑거리더니 꼴 좋다! 반대쪽도 걸레로 만들어주마!!”

“할 테면 해보거라!!”

콰앙!

놈이 바위기둥 근처에서 크게 발을 구르더니, 돌연 허공을 향해 꼬리를 휘둘렀다.

그러자 커다란 물방울이 터지면서 새된 비명이 홀을 울리는 게 아닌가!

설마 방금 그거 블루벨이……?!

“카엘 님! 뒤쪽은 맡기시고 멈추지 마세요!”

율리아의 목소리가 단호히 울렸다.

기척이 멀어지는 것에서, 그녀가 블루벨을 살피러 갔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래, 율리아의 말이 맞아.

블루벨이 걱정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여길 벗어날 순 없어.

그건 놈의 날개를 애써 무력화시킨 블루벨의 수고를 헛되게 하는 거다.

블루벨은 분명 괜찮을 거야.

다쳤더라도 율리아가 갔으니 말끔히 치유되겠지.

어차피 상대를 공격하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니, 그저 전진뿐이다!

“우쭐대지 마라! 이 정도 손상이 나에게 의미가 있을 것 같으냐!”

회복하려고?

그래, 그러시겠지!

그전에 잘라버리면 그만이야!

“으깨어주마!!”

“?!”

놈이 땅을 차며 우리를 향해 앞발을 내리쳤다!

황급히 다리를 틀어 옆으로 뛴다.

내달리던 속도가 남아있는 탓에, 다리가 약간 욱신거리는 걸 느끼며 바닥을 몇 바퀴나 세게 굴러야 했다.

그래도 기회야!

곧바로 몸을 가누고 땅을 박차며 튀어나갔다!

“어딜!”

놈이 포효하며 다른 쪽 발을 휘두른다.

내 키만 한 발톱이 나를 꿰뚫으려 날아오는 걸, 금색 빛이 달려들어 튕겨내버린다.

그를 신호로 삼아, 땅을 박차며 뛰어올랐다.

바닥을 짚은 앞발에 이어져 있는 팔뚝을 디딤돌 삼아 한차례 더 뛰어오르며,

“하아앗!!”

아직 상하지 않은 날개를 향해 크게 검을 휘둘렀다.

찬란한 빛이 칼날처럼 매서운 기세로 날아간다.

놈이 날개를 접으면서 몸을 틀어, 그를 피하는 게 보인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돼.

반드시 놈에게서 하늘을 빼앗아야 한다!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몸을 틀어 다시 성검의 빛을 쏘아날렸다.

그러자 놈이 자리를 이동하면서 꼬리를 휘둘렀다!

피하는 건 늦었어!

본능적으로 성검을 방패 삼아 내밀었다!

채앵!

“……!!”

눈앞이 아찔해질 만큼 지독한 통증이 전신을 감싼다.

몸이 날려가면서 불러온 맞바람에, 의식이 깜빡일 정도로 귀가 시끄럽다.

이대로 날아갔다간 가장자리에 세워진 불꽃에 삼켜진다는 생각이 아득히 떠오른다.

당연히 그렇겠지.

근데 이걸 어떻게 멈춰?

지난번처럼 땅에 검을 꽂았다간 그 즉시 몸이 찢어질 텐데……!

휘이이익!

그때, 어디선가 가느다란 휘파람 소리가 울리더니,

후웅!

“?!”

갑자기 바람이 거세게 휘몰아치면서 몸이 공중으로 튀어 올라갔다!

그런 다음, 온 몸을 부드럽게 감싸며 나를 허공에 둥실둥실 띄웠다.

그리고 그게 다였다.

띄우기만 할 뿐, 바닥에 내려주지는 않는 것이었다.

어떤 다른 뜻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 이유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저 멀리서, 놈이 혼자 몸을 뒤틀며 무언가를 상대하고 있는 게 보였으니까.

푸른빛과 금빛이 각각 놈의 주위에서 쉼 없이 번쩍이고 있었던 것이다.

놈은 지금 나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어.

그 사실을 곧바로 깨달았다.

“벤투스.”

나지막이 이름을 읊조리자, 한 줄기 바람이 호응하듯 이마의 땀을 닦아주었다.

그래, 역시 너구나.

가차없이 날아가는 나를 구할 겸, 공격 기회를 주기 위해서 위슨이 보낸 거야.그렇지?

“후우………”

크게 숨을 내쉬고, 검을 앞으로 뻗으면서 몸을 낮추었다.

놈이 아직 땅에서 공격을 해대고 있다는 건, 블루벨이 걸레짝으로 만든 날개가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는 뜻일 터.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

완전히 없애버린다……!

캬아아아아……!!

멀리서 놈이 날개를 퍼덕이며 무언가를 후려치는 게 보인다.

로나가 당한 걸까?

아니, 어쩌면 메린일지도 몰라.

누구를 날린 것이건,

절대 용서 못해!!

“지금이야!”

낮은 목소리로 소리치자마자, 맞바람이 마구 불어닥치면서 눈앞이 부옇게 흐려졌다.

숨도 제대로 못 쉴 만큼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게 느껴진다.

놈의 모습이 한순간에 시야를 꽉 채울 정도로 커진다.

나를 보며 부릅뜨는 진홍빛 눈동자를 스치고 지나가, 아직 접지 못한 날개면에 깊이 꽂혔다!

“캬아아아아—!!”

놈이 고통에 비명을 지르면서 몸을 마구 뒤흔들었다.

벽을 철썩 치기라도 했는지 숨이 턱 막힐 정도의 충격이 전해져 온다.

이대로 버티는 건 위험해.

놈은 정신을 다잡는 즉시 나를 발로 찍으려 할 거야!

상황 살피면서 앞뒤 가리면 늦어!

“타버려어어!!”

내 외침에 답하는 것처럼, 검신이 환하게 반짝이면서 하얀 불길을 터뜨렸다!

그 반동으로 튕겨져 나가는 내 눈에, 아트라토스의 날개가 커다랗게 구멍이 뚫리고 하얗게 활활 타는 게 보였다.

그리고 푸른빛 일섬이 반대쪽 날개를 완전히 잘라버리는 것도.

그에 성취감을 느낄 새도 없이,

“크억!”

……그대로 바닥에 철퍼덕 떨어져버렸다.

직전에 무언가 물컹한 게 느껴진 것 같기도 한데, 그게 충격을 다 없애진 못했는지 온 몸이 욱신거렸다.

“카엘!”

이내 들려온 메린의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손을 흔들었다.

아마 날개를 베자마자 그 자리에서 즉시 물러난 것이리라.

아, 존나 아파…….

생각 같아서는 이대로 눈 감아버리고 싶어. 내가 왜 이런 개고생을 해야 되나 의구심도 들고.

하지만 안 되지.

일어나야 돼.

편히 드러누워 있을 시간은 없어.

왜 이딴 고생을 해야 되냐고?

어쨌든 내가 용사이니까!

잔기침을 하면서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 앓는 소리가 조금 많이 나왔을 뿐, 그리 어렵지 않게 일어설 수 있었다.

그 상태로 크게 숨을 내쉰 후, 가볍게 팔다리를 흔들어보았다.

……응, 괜찮아. 부러진 데 하나 없어.

얼마든지 더 움직이고 휘두를 수 있다. 좀 많이 무겁지만.

등도 존나 아프긴 한데, 못 펼 건 아니야.

괜찮아.

할 수 있어.

“야, 혼자 움직일 수 있어? 너 엄청 세게 떨어진 거 같던데.”

“응. 괜찮아.”

내 말을 하나도 안 믿는지, 메린의 얼굴엔 걱정이 잔뜩 껴 있었다.

그거랑 숨이 좀 가빠보이는 것 말고는 별다른 이상이 보이진 않는다.

상처도 없고.

……이야, 역시 대단해.

감탄하는 동시에 크게 안도하며, 나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아트라토스를 주시하면서 녀석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봤어?”

“여기다.”

메린을 대신해 근엄한 목소리가 대답하며, 커다란 푸른 새가 공중에서 사뿐히 착지했다.

그간 새의 등에 계속 타고 있었던 건지, 위슨과 율리아의 모습을 바로 볼 수 있었다.

위슨은 나와 메린을 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 파랑새의 등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그런 다음,

“여기요. 조심하셔야 돼요.”

율리아가 당부하며 내려주는 블루벨을 받아 조심스럽게 땅에 뉘이는 것이었다!

“블루벨!”

“안 죽었어……”

곧바로 옆에 다가가서 부르자, 그녀가 눈을 살며시 뜨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율리아의 치료를 받았는지 상처는 하나도 보이지 않지만, 안색이 창백한 게 상태가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으으, 졸렬한 도마뱀 새끼……. 땅을 울려서 떨어뜨리는 건 너무 치사한 거 아냐……?”

“하나도 안 그래 보이긴 한데, 괜찮아?”

“그러면서 굳이 왜 묻니……? 뭐, 괜찮아. 기운만 없어…….”

“……그래. 다행이다.”

그녀의 대답에 조금 안도했다.

놈이 꼬리를 휘두르던 힘을 생각하면, 그걸 맞았는데도 사지 멀쩡하게 살아있는 건 거의 기적이나 마찬가지야.

난 성검으로 막기라도 했지, 블루벨은 그런 것도 없었던 거 같으니까.

그러는 와중, 율리아가 파랑새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잠든 듯이 축 늘어져 있는 로나를 품에 안은 채.

그 모습을 보자마자 손끝이 차가워지는 것 같았다.

그런 내 표정을 본 율리아가 안심하라는 듯,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먼저 말을 꺼냈다.

“정신을 잃었을 뿐이에요. 곧 깨어날 거예요.”

“………그렇군요.”

하…… 율리아가 같이 와줘서 진짜 다행이야.

안 그랬으면 놈의 공격에 당한 로나를 돌볼 수 없었겠지.

그녀가 대언자인 걸 떠나, 부상을 돌볼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 든든하다.

샤아아아……!

불현듯 들린 날카로운 소리.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린 다음, 믿기지 않은 광경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온 몸이 불타오르는 듯한 스라소니가,자신보다 서너 배는 되는 듯한 아트라토스에게 덤벼들며 따귀를 날리고 있어!

놈은 가소롭다는 듯이 콧김을 내뿜으며, 스라소니의 발을 꼬리로 붙잡고는 바닥에 패대기를 치려고 했다.

공중에 뜨자마자 스라소니가 꼬리를 물어버리는 탓에 실현되지 못했지만.

……스라소니가 원래 잘 싸우긴 했지만, 저렇게까지 선전할 줄은 몰랐어.

잘하면 잡는 거 아냐?

“시간 끌기밖에 못 될 것이다. 놈과 비등한 건 불꽃을 다룬다는 것뿐이니.”

파랑새는 그렇게 내 기대를 깨뜨린 후,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날개를 자른 것으로 이 양상인가. 승산이 있으리라 보느냐?”

“당연하지.”

블루벨과 로나의 입에 물약을 흘려 넣고, 내게도 한 병 내미는 위슨의 머리를 모자 위로 가볍게 두드려주며 대답했다.

“날개 못 쓰게 만들었잖아. 절반 잡은 거나 마찬가지야.”

“아니, 이제 시작이지.”

“시작이 반이라는 말 모르냐?”

덤덤히 끼어드는 메린에게 대꾸한 다음, 위슨이 준 물약을 단숨에 마셔버렸다.

아무 냄새도 없고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는 액체가 목을 타고 넘어가자, 곧바로 심장이 두근거리며 온 몸에 열이 돌기 시작한다.

팔다리에 느껴지던 피로감이 빠른 속도로 사라져가며, 무거웠던 눈꺼풀이 솜털처럼 가벼워지며 번쩍 뜨였다.

“후우……”

숲에서 재료 좋은 걸 찾았다더니, 진짜 평소보다 효과가 더 빠르고 크게 올라오는구만.

근데 보통 약효가 강한 것일수록 적게 먹는 게 좋단 말이지…….

“야, 위슨, 이거 부작용 있냐?”

어깨를 으쓱이는 대답이 돌아왔다.

모르는구나. 세상에나.

“뭐 어때.”

일단 저 놈부터 처치하고 보자.

마찬가지로 물약을 마신 메린, 그리고 로나를 위슨에게 맡긴 율리아와 함께 다시 아트라토스에게 향하기 시작했다.

마침 스라소니를 저 멀리 가장자리까지 날려버린 아트라토스는, 자신에게 다시 다가오는 우리를 보고 크게 으르렁거렸다.

“나에게서 하늘을 빼앗은 걸로 모자라, 미끼를 던지고 휴식을 취해?! 용사라는 자가 실로 비열하기 그지없구나!!”

“닥쳐! 덩치가 산만큼 큰 놈이 누구 보고 비열하다는 거냐!! 그 몸뚱이에 날개까지 쓰는 건 엄청나게 치사한 거지!!”

“그래서 이제 비등해졌다 여기느냐? 네놈의 그 오만함을 깨뜨려주마!!”

그런 생각은 안 했는데.

그러나 놈은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없는지, 곧바로 입을 크게 벌리며 포효했다.

날카로운 소리가 귀를 푹푹 찌르는 느낌. 속이 조금 울렁거린다.

그나마 파랑새가 막았기에 이 정도로 그치는 거겠지.

“정령의 계약자가 있으니 불을 토해도 소용없을 터! 그렇다면, 솟구치게 해주마!!”

홀을 쩌렁쩌렁 울리는 고함을 지른 뒤, 놈이 크게 발을 굴렀다.

그러자 땅이 우르르르 떨리더니,

퍼어엉! 펑! 퍼엉!

바닥 여기저기에서 붉은 물기둥, 홀 가장자리에 고여 있던 그 불의 물이 마구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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