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441화 (441/475)

〈 441화 〉 417화 : 마지막 선택 (1)

* * *

마을과 세상이 평화를 되찾은 기념으로 연회를 열자!

그렇게 외친 건 대체 누구였을까?

일단 아버지는 아닐 거야.

우리가 북문에 들어섰을 때 자리에 없었으니까.

어쩌면 정신을 조금 차린 촌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누군가의 그 우렁찬 외침에 온 마을 사람들이 찬동해버렸고, 그래서 지금 바깥에선 연회 준비에 한창이다.

다들 하하호호 웃으면서 분주하게 다니는 건 좋긴 한데, 나랑 메린이 머무는 집 앞을 지날 때마다 자꾸 흘긋거리는 건 하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날씨 확인하느라 살폈던 창가에서 멀어지며, 깊은 한숨과 함께 커튼을 쳐버렸다.

“좋은 날에 왜 한숨을 쉬고 그러냐? 복 달아나게.”

그런 나에게 핀잔을 주면서 찻잔을 홀짝이는 아버지.

이 마을 임시 촌장이기도 한 사람이, 왜 연회 준비 감독은 안 하고 여기 있는 건지 모르겠다.

“쑥스러우신 거겠죠. 무려 이번 연회의 주인공이시잖아요? 후후, 어떤 연설을 하시게 될지 기대되네요!”

“그런 거 안 해요.”

그리고 율리아도 신전에 있지 않고, 왜 이 집까지 따라와서는 나를 약올리고 있는 건지 도통 모르겠어.

……아니, 이 두 사람만이 아니야.

검술 사범님에 자경단장까지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다!

한여름에 왜 이런 좁은 곳에 옹기종기 모여야 되는 거야?

진짜 어이가 없네. 더워 죽겠어!

“그보다 우리 보고 쉬라면서요. 근데 왜 죄다 여기 몰려온 건데요? 이래서 어떻게 쉬라고?”

“할 말이 있으니까 온 거 아니냐. 오래 안 걸릴 거야.”

“그럼 후딱 하고 가세요. 덥다고요. 피곤하기도 하고.”

“어쭈? ……그래, 뭐, 피곤하긴 하겠지. 그러니 오늘은 봐주마.”

아버지는 주먹을 쥔 손을 풀고 팔짱을 끼신 다음, 상당히 진중한 얼굴로 말을 꺼냈다.

“대언자님께서 너희 결혼식을 수도에서 하자고,”

“싫어요.”

앗. 나도 모르게 똑 잘라먹고 말았다!

아버지의 눈썹이 꿈틀거리는 게 보였지만, 다행히 내 머리에 혹이 생기는 일은 없었다.

후, 큰일을 치른 뒤라 정말 다행이야.

“옷이며 반지이며 피로연이며, 전부 다 일주일이면 준비하실 수 있다고 하시는구나. 그래서 말인데……”

잠시 말을 끊은 아버지는, 곧 미간을 찌푸리며 재차 입을 열었다.

“전에 듣기는 했지만, 이번에 확실히 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다. 너희 둘, 여기서 살 거냐?”

“아뇨.”

“메린도 같은 생각이냐?”

아버지의 말에, 메린은 어깨를 으쓱이고서 나에게 고갯짓을 했다.

“이 녀석에게 물으세요. 저는 아무래도 좋으니까.”

“……”

아버지는 그 대답에 한숨을 쉰 후, 사범님과 자경단장에게 각각 시선을 돌렸다.

누가 말할 것이냐?

왠지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그 잠시간의 침묵을 깨뜨린 건, 우리 두 사람과 상대적으로 가까운 사범님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마. 여기 남아줘.”

“왜요? 메린 힘 때문인가요?”

“아니, 너희 둘 다 필요해.”

메린이야 아트라토스를 없앤 뒤에도 여전히 무지막지하게 강하니 필요하겠지만, 나는 굳이 왜……?

사악의 천적인 성검도 없으니, 일반 자경단원보다도 약한데 말이지?

메린을 달랠 수 있어서 그런가?

“너도 알다시피 우리 마을은 머리보다는 힘을 더 우선시하고 있어. 그러니 너처럼 지식을 쌓은 사람이 없어지는 건 큰 손실이야. 메린의 힘을 빌릴 수 없는 것만큼이나 크다고.”

“제가 여기서 뭘 할 수 있다고 그러세요?”

“뭘 할 수 있긴. 에스트렐… 엘리아스 씨의 뒤를 이을 수 있잖아. 벤스 촌장님은 곧 물러나시고, 엘리아스 씨가 촌장이 되실 거야. 그럼 네가 마을 필경사가 되는 거지.”

……마을 대소사를 기록하고, 마을에 있는 책들을 필사하고, 또 틈틈이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라는 건가?

아버지가 그러셨던 것처럼?

뭐, 못할 건 없지.

기록이랑 필사야 전부터 하던 일이니까.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별 문제없을 것이다.

메린도 가르쳤는데 애들이라고 못할까.

“그럼 메린은요? 자경단이 되고요?”

“그래. 그리고 나중엔 내 뒤를 이어서 단장이 되는 거야.”

말이 나오길 기다렸다는 듯이, 자경단장은 조금 들뜨기까지 한 목소리로 바로 대답했다.

메린이 자경단장이라……

엄청 빡세겠구만.

뭐, 그것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자경단은 메린이 본래 하고 싶다던 일이니까.

나는 옆에 앉아 있는 메린을 힐끗 바라보았다.

찻잔을 쥔 채 멍하니 테이블만 쳐다보고 있는데, 지금 이야기를 듣기는 한 건가?

“야, 메린, 너 들었냐? 너 여기 계속 살면 자경단 일하면서 나중에 단장이 될 수 있다는데.”

“근데.”

“하고 싶어?”

“말했잖아. 난 아무래도 좋다고. 묻지 마라.”

“………”

돌겠네, 진짜.

나중에 왜 그랬냐고 불평하기만 해봐!

작게 한숨을 쉰 후, 진지한 표정의 사범님과 어쩐지 긴장한 듯한 단장을 번갈아 보며 대답했다.

“모처럼의 제안입니다만 거절하겠습니다. 저희는 여길 떠날 거예요.”

내 대답에 시무룩해지는 단장과 달리, 아버지와 사범님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마치 내가 그럴 줄 알았다는 것처럼.

“어디서 살 건지 정했냐?”

“아뇨.”

고개를 젓는 나를 보는 아버지의 눈에 ‘어처구니없음’이라는 말이 또렷이 새겨져 있는 듯했다!

아니, 못 정한 게 당연한 거 아냐?

그런 거 생각할 여유가 없었잖아!

“그럼 뭐, 무턱대고 짐 들고 돌아다니게?”

“여행 다니고 좋죠, 뭐.”

이번엔 ‘어이구, 철없는 놈아’라는 뜻을 담은 눈길로 나를 마주하는 아버지.

한숨도 나오지 않을 만큼 기가 막히신 건지, 팔꿈치를 괴고 다른 손으로 테이블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지금 이 아래쪽은 외벽을 갖춘 성읍 외엔 대부분이 없어졌다며. 언제 정착할 줄 알고 그래?”

“언젠가 하겠죠.”

“그러다 평생 떠돈다. 안정될 때까진 여기서 지내다가 이사 가는 게 어때?”

“싫어요. 그러다 붙잡힐 게 뻔하잖아요.”

나는 어쨌든, 이 마을은 메린을 절대 놓아주지 않을 거다.

분명 섣불리 몸을 뺄 수 없는 요직에 앉혀버릴 거야.

사범님이라면 그러고도 남아. 아버지도 그렇고.

그러니 평생 떠돌게 되더라도 여기서 나가야 한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야!

단호하게 내건 거절이 또 다시 공백을 만들었고,

“그럼 제 쪽에서 거처를 마련해드릴게요.”

가만히 차를 마시고 있던 율리아가 곧바로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교단에 머무시는 건 어때요? 카엘 님은 제 참모가, 메린 씨는 제 호위와 전투사제의 훈련을 맡아주셨으면 해요.”

“참모? 알스 사제님 계시잖아요.”

참고로 알스 사제는 지금 루크 사제 등등과 함께 신전에서 무언가 일을 처리하는 중이다.

우리가 드래곤과 한 판 벌이는 사이에 놋지빌에 도착했다는 듯했다.

여하튼 알스 사제라는 유능한 사람을 최측근으로 두고 있으면서 왜 나를 써먹으려고 한대?

그냥 메린만 쓰기는 뭐하니까 체면치레해주는 거 아냐?

“어머, 아니에요. 저는 진심으로 카엘 님의 힘을 빌리고 싶은 것이랍니다. 사람의 관점에서 나온 의견이 필요하거든요. 아시다시피 사제들은 너무 합리적이잖아요. 메린 씨를 호위로 두는 이유야 말해봤자 입만 아프고요.”

“………”

“뭐, 당장 답을 달라는 건 아니에요. 결혼식 때까지는 해주셨으면 하지만요.”

율리아는 그렇게 말한 후, 돌연 얼굴 만면에 웃음꽃을 피우면서 재차 입을 열었다.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건, 결혼식은 수도에서 올리셨으면 해요. 여기 에스트렐 씨가 말씀하신 것처럼, 모든 준비는 저와 교단에서 할 테니 부담 가지지 마시고요.”

“아니, 그 제안 자체가 부담이거든요?”

옷이랑 반지 등등, 필요한 걸 전부 준비해주겠다는 말처럼 무서운 게 또 있을까?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것도 있는 법……!

혹시 그걸 빌미로 나랑 메린을 교단에 붙이려는 거 아냐?!

물론 문제는 또 있다.

“그리고 수도에서 올리자는 거, 그 대예배당에서 하자는 말씀이시죠? 거기 엄청 크잖아요! 분명 꽉꽉 채울 거면서!”

“어머, 당연하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용사님의 결혼식인데. 벽 구석까지 하객으로 아주 가득 채워야죠!”

“싫어어엇!”

소리 높여 외치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치만… 그치만 진짜 싫은걸!

그곳에 비하면 손바닥만 한 수준인 여기 신전도 속이 울렁거릴 판에……!

왕성의 알현실도 엄청 죽을 맛이었다고!

근데 대예배당은 그보다도 크잖아!

어으, 싫어.

생각만 해도 벌써 어지럽다.

분명 꼴사납게 기절해버릴 거야. 뻔해!

“하지만 해주셔야 해요.”

딱 잘라 말하며, 율리아는 진지한 눈빛을 보냈다.

“왕국의 백성들은 당신의 결혼식을 보아야 대재앙이 정말로 끝났다고 실감할 수 있을 거예요. 즉, 한때의 평화가 찾아왔다는 뜻을 담자는 거죠.”

뭐……?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덜컥하면서 바짝 긴장이 들었다.

한때의 평화라니 그게 무슨……!

혹시또 뭐가 있을 예정이야……?!

나는 마른 침을 삼키고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한때예요?”

“그야 다들 기운을 차리면 또 자신들끼리 투닥거릴 테니까요. 주로 귀족들이. 뭐, 다 그런 거 아니겠어요?”

아, 뭐야. 괜히 놀랐네.

나는 또 뭔 세상멸망급 재앙이 또 일어난다는 줄 알았잖아!

와, 지금 팔 걷으면 닭살 돋아 있을 거야!

“그 대신, 준비하는 동안 편히 지내시게 해드릴게요. 수도 바깥에서 초대하실 분이 있다면 교단에서 정중히 모실 거고요. 한동안은 몬스터가 돌아다니지도 않을 테니 여행하더라도 큰 위험을 없을 거예요.”

“그래도 하나부터 열까지 다 받기만 하는 건 좀……”

“응당 저희가 해드려야 하는 일이에요, 카엘 님.”

빚을 지우는 게 아닌 은혜를 갚는 것이다.

율리아는 그렇게 단호히 말하며 생긋 웃었다.

“덕분에 세상이 불타지 않고 살아남았잖아요. 저와 교단은 사명을 완수했고, 다른 종족들도 저마다 썩은 상처를 도려낼 수 있었죠. 저 개인적으로도 카엘 님께 입은 은혜를 갚고 싶어요.”

“웬 은혜? 제가 율리아 님께 뭘 해드렸다고요?”

석 달 전에 차를 같이 마신 거랑, 이번에 드래곤을 함께 때려잡은 것 말고는 접점이 없는데?

그러자 율리아가 서늘하게 웃으며,

“어머어머, 저에게 그런 심한 짓을 하셨으면서 모른 척하시는 건가요?”

“…………네?”

무시무시하기 그지없는 폭탄을 터뜨렸다!

“정말 모르시는 거예요? 세상에, 어쩜 그럴 수가……! 가녀리고 세심한 여자의 감성을 마구 유린하셨으면서……!”

“당신 어디가 가녀리다는 거야!! 뜬금없이 무슨 이상한 말씀하시는 거예요, 다들 오해하잖아요!!”

아아, 엄청나게 아프다.

주변에서 마구 보내오는 시선이 너무 따가워!

다들 말은 안 하지만 눈으로 상당히 심한 욕을 보내고 있어!

………정작 메린은 그러거나 말거나 하품하면서 기지개 켜고 있었지만.

진짜 블루벨 아니면 죄다 안중에도 없네.

혹시 율리아는 이 녀석 기준에선 전사가 아닌 걸까?

만나는 몬스터를 모닝스타로 죄다 박살내던 사람인데 말이지?

아무튼 이 전직 공주님, 진짜 돌아버리겠네.

저딴 소리를 퍼붓고서 킥킥거리는 사람이 뭐? 세심하다고?

그것도 본인 입으로 그런 말을 해?

와, 양심도 없네.

창조주의 대리자가 이래도 되는 거냐?

“그렇지만 너무하셨는걸요! 아니, 어떻게 연금(??)된 사람한테 항의장을 보낼 수가 있어요? 그것도 갇혀 있다는 거 다 듣고서!”

응?

내가 그런 쓰레기 짓을 했다고?

…………아, 맞아.

드워프에게 두 번째로 찾아갔을 때, 로나를 찾아온 거대 까마귀를 통해 보냈었지.

“맞아, 맞아. 그랬었죠. 아하하.”

“웃을 일이 아니에요! 정말 어찌나 기가 막혔던지!”

“그래도 그거 기운 내시라고 보낸 건데.”

원래는 정말 순수하게 불만을 제기하려고 목록을 쭉 적었었다.

하지만 탑에 갇혔다는 이야기를 듣고, 힘을 내셨으면 좋겠다 싶어서 맨 마지막에 추신을 달았었지.

‘이에 대한 답은 직접 들려달라’, 뭐 그런 식으로.

율리아는 부루퉁한 표정으로 투덜거리듯이 말했다.

“그래요, 맞아요~ 기운은 확실히 났죠~ 덕분에 왕성 뒤집어 엎을 수 있었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몸둘 바를 모르겠다니까요~”

“어…… 그렇게 화가 나셨던 거예요?”

“당연하죠!! 그게 신사분께 받은 첫 개인적 서신이었다고요!! 내 설렘을 물어내!!”

“………”

왕성의 다른 여자들은 여러 애인이랑 편지이든 선물이든 마구마구 받는데, 자신은 하나도 없었다.

문란의 극치를 이루는 가면무도회를 가더라도 굉장히 건전한 시간을 보내고 신전에 돌아가야 했다.

얼마 전까지 외롭다고 투덜대던 사람의 결혼 주례를 맡는 기분을 아느냐………

그렇게 한동안 자신의 메마르고 쓸쓸한 신세를 한탄한 후, 율리아는 숙연해진 분위기 속에서 조용히 찻잔을 기울였다.

그런 다음,

“어쨌든 이 삶을 이어갈 의욕을 얻은 보답을 하고 싶어요! 그러니 카엘 님, 부디 대예배당에서 결혼식을 올려드리게 해주세요!”

방긋 웃으면서 쾌활하게 말한 것이었다.

마치 넋두리 따위 단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던 것처럼.

하…… 이거 어쩔 수 없구만.

저 이야기를 듣고서도 거절하면 사람이 아니지.

세상에, 이성에게서 난생 처음으로 받은 게 항의 편지라니, 내가 진짜 나쁜 짓을 했던 거구나.전혀 몰랐어!

그리고 재앙이 끝났다는 걸 알리는 상징이 필요하다는 것도 납득이 가는 이야기이다.

본의 아니게 율리아에게 큰 실망을 주기도 했겠다, 눈 딱 감고 해버리자.

……그래, 이게 용사로서 수행할 마지막 일인 거야.

그렇게 생각하자고.

“메린 씨를 이 대륙 역사에 길이 남을 만큼 아름다운 신부로 꾸며드릴게요!”

“네, 율리아 님! 감사히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말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하는 거야.

절대 메린을 예쁘게 꾸며주겠다는 말에 넘어간 게 아니다.

“어휴, 팔불출 녀석…….”

“……”

진짜 아닌데.

……그러나 어째서인지, 한숨을 쉬는 아버지와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이어서 이 마을에서 하객으로 갈 사람 등등을 논의한 후, 율리아는 이틀 뒤에 출발하자는 말을 남기고서 먼저 자리를 떠났다.

사범님도 그 뒤를 따라, 아직 시무룩해 있는 자경단장을 끌고 나가면서 인사를 건넸다.

“그럼, 둘 다 이따 보자.”

“네. 이따 봬요.”

그렇게 또 한 번 문이 열렸다가 다시 닫힌 다음,

“……”

나는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는 아버지를 가만히 돌아보았다.

왜 꼼짝도 안 하시지……?

찻잔은 왜 도로 채우시는 거고?

“뭐 하실 말씀이라도 있어요?”

“나보다는 네가 있지 않을까 해서.”

내가 아버지에게……?

자연히 고개를 갸웃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 다른 사람들이 나갔다고 테이블에 턱만 올린 채 하품하는 메린을 방에 던져야겠다는 생각밖에 없는데.

“카엘.”

의아해하며 눈을 깜빡이는 나를 향해, 아버지가 나지막이 입을 떼셨다.

“네가 왜 직접 독기를 먹게 됐는지 알고 싶냐?”

“……”

“그간 내가 외부인이라는 것 외엔 알려주지 않았지. 궁금하냐? 내가 어떻게 여기 와서 네 엄마를 만나게 된 건지.”

아버지의 얼굴은 사뭇 진지했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부신 건지 모르겠다.

내가 곧 여길 떠난다는 것 때문에 그러시나?

나는 가만히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엘리아스 에스트렐.

내 아버지는 이런 구석에 있는 마을에 홀연히 찾아와서 정착해버린 외부인이다.

마을 누구보다도 글을 잘 알 뿐 아니라, 교단에서도 쓰지 않는 옛 글자까지 알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하지만 이곳에 오기 전엔 무엇을 하던 사람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엄마에겐 말씀하셨을지도 모르지만, 아들인 나에겐 ‘그냥 이런저런 일을 하다 왔다’는 말밖에 하지 않으셨지.

그걸 이제 밝히겠다고 하시는 건가.

에스트렐 가문이 아닌, 아버지의 역사를 알게 된다…….

그리고 왜 마을이 나서서 내 입에 독기를 들이부은 것인지도.

왠지 모를 긴장에 목이 메여서, 나는 말을 꺼내기 전에 크게 심호흡을 해야 했다.

그런 다음, 왠지 조금 표정이 굳어 있는 듯한 아버지를 마주하며 또박또박 대답했다.

“아뇨. 안 궁금한데요.”

“………”

“………”

“……이 자식이, 그럼 분위기는 왜 잡아!!”

빠악!

……결국 머리에 혹을 달고서 아버지를 배웅해야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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