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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443화 (443/475)

〈 443화 〉 419화 : 마지막 선택 (3)

* * *

다음날, 마을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을 기념해서 숲으로 향했다.

도중에 지나친 공동경작지에선, 밀짚모자를 쓴 사람들이 금빛 물결 속에 허리를 굽히고 한창 낫을 휘두르고 있다.

이틀 전까지도 잔디랑 구분이 안 갈 정도였는데, 하늘에서 종소리가 들리면서 눈 깜짝할 새에 다 익은 보리로 변해있었다나?

덕분에 생각보다 빠른 시일 내에 맥주를 다시 마실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말하며 껄껄 웃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절로 쓴웃음을 짓게 되었다.

……그나저나 진짜 신기하네.

저 사람들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숙취라는 걸 모르는 것처럼 멀쩡하게 움직이고 있다.

어제 다들 몸 속의 피를 포도주로 바꿀 기세로 퍼 마셨었는데 말야.

신성한 술이라 그런가?

그 덕에 지금 광장에선 자그마한 무투회를 벌이는 중이다.

석 달 전에 여기 쳐들어온 대악마가 망가뜨렸던, 더럽게 아프기만 하고 죽거나 뼈가 부러지지 않게 하는 장치를 말끔히 고쳐서.

여태 정체를 알 수 없던 그 신비한 장치를 고치는 건 무척 간단했다.

대회장을 표시하는 가벽 구조물에 룬을 적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그걸 알아본 게 루크 사제를 위시한 교단이 아니라 위슨인 게 좀 의외였지?

사제들이 가벽에 남아있는 글자의 뜻을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하는 중, 위슨이 그 틈에 불쑥 끼어들더니,

­­전사를 보호하고 축복해달라는 뜻으로 적었던 거 같은데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이렇게 쓰라’면서 글자를 알려주고 휙 가버린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신기해.

여기 놋지빌 말고 룬을 쓰는 곳은 부엉이탑과 ‘끝없는 장서관’처럼 마법과 관련된 곳밖에 없잖아.

혹시 이 마을에도 옛날에 마법사가 있었던 걸까?

아니면 신비한 힘을 쓰는 요정에게 배웠거나.

……아무튼 한동안 광장에 가고 싶지 않았기에, 마지막으로 둘러볼 겸 숲을 산책하기로 한 것이었다.

물론 검을 차고서.

어제 종소리가 울리면서 몬스터들이 죄다 달아났고, 율리아도 ‘한동안 몬스터가 없을 것’이라 했지만……

혹시 모르지? 귀가 없는 몬스터가 튀어나올지 누가 알겠어?

그렇게 조심조심 찾아온 호수는 여전히 맑고 잔잔했다.

잔뜩 경계했던 게 무색하게, 여기 오는 내내 몬스터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호수면 저편에 보이곤 했던 검은 자락들…… 드라우너의 머리털도 하나 안 보이네.

음울한 바람소리조차 듣지 못한 건 진짜 태어나서 처음인 거 같아.

와, 진짜 몬스터가 숨긴 했구나.

그 생각에 감탄하는 때,

“웡!”

“응? 와악!”

잿빛 덩치가 달려들어 나를 넘어뜨리더니 얼굴을 마구 핥기 시작했다!

“아하핫, 간지러! 그만해, 테라! 그만하라니까~!”

하지만 늑대는 내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결국 얼굴이 완전 침 범벅이 되고 말았다.

그런 뒤에야 만족했다는 듯이 비켜서는 늑대.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다 나왔다.

어휴, 내 주변 아가씨들은 왜 죄다 이렇게 막무가내야?

이 녀석은 사람이 아니라 늑대…이기 전에 정령이지만.

“어쨌든 아가씨가 말야. 그렇게 막 달려들어서 되겠어? 응? 완전 축축해졌잖아.”

불평하면서 늑대의 머리털을 헝클어뜨릴 기세로 마구 쓰다듬었다.

그래도 좋다면서 꼬리를 흔들고 있으니…….

나 원, 진짜 못 당하겠네.

“세수나 해야지.”

“끼잉……”

“뭐 임마, 끈적끈적하다고. 너 이 녀석, 반성할 기색이 전혀 없구나? 수건 대신 써버려야지, 안 되겠네.”

“웡! 웡!”

……꼬리 흔드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왜 더 좋아하는 거지? 알 수가 없네.

“생각해보니 털 붙겠구나. 안 해야지.”

“끼잉……”

귀가 축 쳐졌다.

엄청나게 실망한 모양이군.

근데 왜……?

나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세수를 한 후, 시무룩해질 대로 시무룩해진 늑대를 껴안고서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어제는 도와줘서 고마워. 덕분에 그 지랄 맞은 놈을 해치울 수 있었어.”

“고맙긴요오… 그 놈이 꼴불견이어서 그랬는데요, 뭐어…….”

거리가 가까워서 그런지, 짖는 대신 속닥속닥 말을 하는 늑대였다.

목덜미를 부벼오는 게 정말 귀여워 죽겠어. 향기도 좋고.

“대낮부터 참 뜨겁게 바람 피시네요.”

“누가 바람 핀다는 거야, 임마!”

반사적으로 빽 소리지르고 나서야 그 해괴한 말을 지껄인 게 위슨이란 걸 깨달았다.

또 숲을 돌아다니면서 한바탕 채집한 건지, 버섯과 풀때기가 한껏 담긴 소쿠리를 들고 있다.

몬스터도 안 나오겠다, 신나게 따고 꺾고 뽑았겠구만.

진짜 뭐 하나 멸종한 거 아닌지 몰라.

“근데 너 왜 여기 있냐? 무투회 참석 안 했어?”

“제가 그걸 왜 해요? 무투파도 아닌데.”

“격투기 쓰는 놈이 뭐라는 거야.”

“그거 그냥 호신용이에요. 격투기라 할 것도 아니고요. 그냥 거리 좁혀서 손발 지르는 건데.”

……세간에선 그걸 격투기라고 하지 않나?

뭐, 자세 같은 게 정형화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겠지.

“그러는 형은 왜 여기 있어요?”

“나도 무투파 아니잖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사할까 해서.”

단연코, 이 숲을 좋아하지 않는다.

굳이 꼽자면 활활 불태우고 싶지. 소중한 가족을 한순간에 빼앗아갔으니까.

여기서 나오는 독기 때문에 골골 앓기도 했고.

하지만 동시에, 나는 여기를 미워할 수 없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해줬고, 병약한 몸 때문에 심신이 구석에 몰렸던 나를 여러모로 보살펴줬기 때문이다.

어쨌든 19년이나 부대끼며 살았으니,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해야지.

그게 도리에 맞을 거야.

“들었지? 나 내일 여기 떠나. 그리고 다시 안 돌아올 거야.”

주변을 돌아보며 조금 크게 말을 던지자,

­가버리는 거야? 멀리멀리? 쓸쓸해. 슬퍼.

숲 곳곳에서 여러 목소리가 한꺼번에 속삭이며, 여기저기서 요정들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픽시, 트릴드, 노움, 블레이즈 등등.

호숫가를 오고 갈 때, 특히 낚시할 때마다 날 놀려먹던 망할 요정들.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친구들이다.

­이제 용사 아니잖아. 왜 또 가는 거야?

“메린이랑 결혼해서 살려고.”

­여기서 살면 되잖아. 여기에 모두 있는데.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지루함, 공포와 안도감, 신비함과 진부함.

다른 곳에선 결코 맛볼 수 없는 진한 감정들이 흘러 넘치는데.

­바깥에 가면 완전히 망가질 거야. 더럽혀질 거야. 안 돼. 가지 마.

“아니, 여기가 여러모로 더 안 좋지.”

저 녀석들이 장난을 거는 건 그렇다 치고, 몬스터와 그 독기 때문에 다른 데보다 목숨을 잃기 쉬운 곳이다.

그러니 가능하면 여기 말고 다른 데에서 살아야지.

……그보다 누가 망가졌다는 거야?

그리고 더럽혀지긴 뭘 더럽혀져!

하여간 요정 놈들은 말을 괴상하게 한다니까.

“그래서 인사하러 왔어. 잘 있어라, 짜증나는 녀석들아. 사람 적당히 괴롭히면서 지내렴.”

­그렇구나… 가버리는구나…….

바람이 크게 불며 내 머리를 흩뜨리고 지나간다.

왠지 한숨을 쉬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내, 숲은 잔바람에 이파리들을 흔들며 사각사각 웃음을 터뜨렸다.

­괜찮아. 우리는 쓸쓸하지만 다른 우리가 너를 환영할 거야.

잘 가, 깨끗해서 망가져버린 아이야. 널 초대하지 않은 걸 항상 자랑스러워할 거야.

“……”

요정들은 손을 흔들면서 밝은 목소리로 재잘거리고, 하나 둘 모습을 감추었다.

이내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고요해진 호숫가.

내가 인사를 나누는 동안 잠자코 있던 위슨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쟤네가 초대를 안 했다는 게 무슨 소리예요?”

“아, 그거? 자기들 나라로 가자고 꼬시는 거 얘기야. 나한테는 한 마디도 안 했거든. 딴 사람한테는 실컷 하면서 말야. 웃기지 않냐?”

“………”

“난 천천히 돌아갈까 하는데, 넌 계속 여기 있을 거야?”

고개를 끄덕인 후, 위슨은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입가를 매만지더니 결국 입을 열었다.

“카엘 형, 저는 앞으로도 여기 정기적으로 찾아올 생각이에요. 좋은 재료가 많으니까요. 그러니,”

녀석은 공연히 발치에 앉은 늑대를 내려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형이 여기 사람에게 어떤 소식을 전하고 싶을 땐 알려주세요. 제가 전해드릴게요.”

“네가 어디 있을 줄 알고?”

“아, 그건 걱정 마요. 한두 달에 한 번쯤, 형이랑 누나를 찾아갈 생각이니까.”

“뭐? 굳이 왜? 아니, 싫은 건 아닌데, 너 세계 여행할 거라며.”

우리가 어디서 살건, 한두 달에 한 번 들를 수 있을 만큼 세계가 좁을 거 같진 않은데.

멀뚱거리는 나를 담담히 마주하며, 위슨은 어깨를 으쓱였다.

“돌아다니면서 가끔 들르는 정도인데요, 뭐. 형이 이 녀석을 너무 길들여버려서, 한두 달에 한 번이라도 만나게 해줘야지, 안 그러면 탈출해버릴 거 같단 말이에요.”

“길들였다니, 내가 뭘 했다고…….”

“그리고 저도…… 메린 누나 요리가 그리울 거 같고요.”

멋쩍게 웃으며 뺨을 긁적이는 위슨.

아무래도 메린의 요리에 길들여질 대로 길들여진 모양이다.

어쩌면 본인이 오고 싶어서 늑대를 핑계로 내세우는 것인지도 몰라.

“뭐, 오고 싶으면 언제든 와. 메린도 좋아할 거야.”

“하긴, 제가 누나랑 좀 친했죠? 갈 때마다 하루 묵는 거 염두에 둬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너 그냥 오지 마라. 밖에서 쭉 빨빨거리면서 살아.”

“바로 말이 바뀌네. 나 참, 형 같은 사람을 두고 팔불출이라고 하는 거죠?”

어이없다는 듯이 한숨을 푹 쉬는 녀석을, 나는 무척 진지하게 마주하며 대꾸했다.

“아니, 애처가라고 하는 거야. 나는 애처가이지, 팔불출이 아니라고.”

“그게 그거잖아…….”

“전혀 다르거든?”

당당하게 맞받아치는 나를 향한 녀석의 한숨이 더 깊어진 것 같았다.

두 검은 눈동자에 섞인 웃음도 더 진해졌고.

“하여간 정신 나갔다니까. 아까 쟤들도 형이 망가졌다고 했죠? 요정한테 미쳤다고 인정받은 거였네. 우와.”

“시끄러, 임마.”

녀석의 모자 끝을 살짝 퉁긴 후, 한 발 앞서 호숫가를 뒤로 했다.

마을까지 절반쯤 남았을 때, 문득 걸음을 멈추고 제자리에서 한 바퀴 둘러보았다.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바람에 가지를 흔들며 사각거리는 나무들을 보며, 소근거리듯이 이파리를 움직이는 덤불을 쓰다듬으면서 중얼거렸다.

“잘 있어.”

대답이 돌아올 리는 없다.

아까 다 들은 거나 마찬가지이니까.

그러니 그저 다시 걸음을 옮겨 마을로 향할 뿐이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 굳게 다짐하며,

뒤를 돌아보지 않고 걷는다.

그 다음날, 율리아 일행과 같이 마을을 떠날 때에도,

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출발하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작별의 서글픔을 곱씹을 만한 사람이 없으니까.

아버지나 사범님 등등은 며칠 뒤에 다시 볼 거니, 더더욱 돌아볼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나 자신조차 모를 정도로 작은 아쉬움이 있었나보다.

날이 저물어 잘 시간이 되었는데도, 심지어 메린을 껴안고 있는데도 좀처럼 잠들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아니, 어쩌면 아쉬운 게 아닐지도 몰라.

“이제 우리 둘뿐이야.”

정말로 우리 둘이 전부 다 헤쳐가야 해서 불안한 것인지도 모른다.

징그럽게 친숙한 고향을 거부했으니, 분명 수도에 도착하면 여러 낯선 손길들이 우리를 둘러싸겠지.

어쩌면 겉보기만 좋은 독배를 내밀지도 모르고.

그 사람들에 비하면 어리숙하기만 한 내가, 과연 그들에게 속지 않고 잘 선택할 수 있을까?

“……다 잘될 거야. 그렇지?”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품 안의 그녀를 한층 더 깊이 껴안았다.

마주 감싸오는 두 팔의 온기가 전해주는 작은 안도감에, 겨우겨우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왕국의 수도 미드랜드는 석 달 전에 처음 방문했을 때보다 분위기가 조금 칙칙해졌을 뿐, 여전히 화려하고 활기에 차 있었다.

아무래도 수도인 만큼, 다른 성이나 영지보다는 몬스터의 위협을 적게 받았기 때문이리라.

뭐, 그 대신 내부에서 일이 크게 터졌었지만 말야.

세상에, 교단의 수장이 왕성을 점령하다니!

분명 역사책에 대대적으로 기록됐겠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읽어봐야겠다.

그래도 내 옆에 있는 창조주의 대언자, 율리아는 뒤처리를 끝내자마자 국왕에게 모든 권한을 돌려주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외벽 성문을 통과하자마자 국왕이 전령을 보내지.

그것도 온 몸을 철갑으로 감싼 기사가, 수하 병사들을 우글우글 끌고서.

“즉시 알현실에 임하라는 어명이오.”

“……하.”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말이 있긴 해.

그래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은 줘야 되는 거 아냐?

적어도 짐 풀고 숨 좀 돌리게 해줘야지, 어떻게 바로 오라고 하냐?

진짜 어이가 없네.

“폐하를 뵙는 것이라면 조금 몸단장해야 할 텐데요. 우선은 짐을 푼 다음에……”

“못 들었소? 폐하께서 즉시 그대들을 보겠다 하셨다고 전했을 터. 어명을 어길 셈이오?”

“………”

뭐 이리 급하신 건지 도통 모르겠네.

율리아도 탐탁지 않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표정을 풀고, 예의상 짓는 게 분명한 웃음을 띄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바로 폐하를 뵙도록 하겠습니다. 안내해주실 건가요?”

“예, 대언자님. 여러분을 성까지 모시고자 자리한 것입니다. 가시지요.”

기사는 정중히 몸을 굽히고서 수하들을 향해 작게 고갯짓을 했다.

그러자 그의 뒤에 선 병사들이 일정 거리를 띄어서 우리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이딴 게 호위……?

누가 봐도 연행이지, 이거?

“카엘.”

“응, 아냐, 메린. 가만 있어.”

눈살을 찌푸린 메린에게 손을 내저으면서,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태평하게 말렸다.

율리아가 가겠다고 대답한 이상, 얌전히 이들을 따라 왕성으로 갈 수밖에 없다.

아니, 애초에 어명이라 한 시점에서 다른 선택지는 없는 거겠지.

따르지 않으면 반역자로 몰릴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불편하기 그지없는 분위기에서 말을 모는 나에게, 율리아가 생긋 웃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너무 걱정 마세요, 카엘 님. 분명 용사를 빨리 만나고 싶으셔서 부르신 걸 테니까요.”

“예에, 뭐, 그런 거겠죠…….”

씁쓸히 웃으며 대답하긴 했지만, 그런 이유로 부른 건 절대 아닐 거란 예감이 들었다.

아마 율리아 스스로도 믿지 않고 있겠지.

………대언자님.

왕성의 기사는 율리아를 그렇게 불렀다.

국왕의 딸을 칭하는 공주가 아닌, 교단의 최고수장을 가리키는 대언자로 부른 건…… 그저 그녀가 대언자로서 수도를 떠났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안으로 드시지요.”

“……”

불안을 안은 채로, 나는 메린과 율리아, 그리고 다른 동료 세 명과 함께 알현실에 들어섰다.

석 달 전에 왔을 때보다는 확연히 적은 사람들이 자리한 가운데, 국왕이 맨 안쪽에 놓인 커다란 의자에 앉아 있다.

몸집은 여전히 듬직하지만, 얼굴은 전보다 조금 퀭해진 것 같다.

아마 난리를 겪어서 마음고생을 한 탓이겠지.

“잘 왔다, 용사.”

우리의 인사를 받은 국왕이, 엄숙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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