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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446화 (446/475)

〈 446화 〉 422화 : 모든 인연 앞에서

* * *

그 후, 율리아의 이런저런 넋두리와 불평과 하소연과 푸념을 들으며 차를 마셨다.

동반자라는 거대 까마귀가 침실 문을 벌컥 열고서 ‘그만 노닥거리라’고 하지 않았으면 오후 내내 붙잡혔을 거야.

그녀의 끊임없는 수다에 뛰쳐나간 넋은, 신전 바깥에서 햇빛을 쬐는 즉시 돌아와주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까마귀가 문을 열었다’는 사실에 경악한 것이었다!

으으, 거기서 놀랐으면 어떻게 문 열었냐고 물어봤을 텐데!

그거 때문에 다시 돌아갈 수도 없잖아!

이젠 영영 해결할 수 없게 된 호기심에 한숨을 쉬며 임시 거처로 돌아갔다.

거기서 잠시 숨을 돌린 다음, 점심을 먹을 즈음에 다시 나와서 아버지를 찾아갔다.

장소는 광장 근방에 있는 어느 커다란 여관.

교단에서 아버지를 비롯한 결혼식 참석자들을 위해 마련해준 숙소이다.

끼니를 바로 해결할 수 있어서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안에 들어가자마자 여러 그릇을 비운 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점심 드셔버렸네요.”

“저녁 잔치용 요리 확인할 겸해서.”

으레 결혼식 전날엔 신랑의 아버지가 손님들에게 저녁을 대접하곤 한다.

이번엔 고향 바깥에서 치르는 거지만, 아버지는 그래도 전통은 전통이라며 이 여관에서 소소한 잔치를 열기로 하신 것이었다.

하객들도 티타임 전에 도착하기로 되어 있으니, 시간상으로도 딱 맞다고 할 수 있었다.

여관주인과 직원들이 좀 고생하겠지만.

아무튼, 아버지는 그 잔치 때에 내놓을 음식을 맛보는 걸로 점심을 때워버리신 듯했다.

“아직 안 먹었으면 여기서 먹거라. 여기 음식 솜씨 괜찮아.”

“아니요, 메린이랑 가기로 한 데가 있어서요. 여기 근처에 있는 생선요리집 있죠? 거기가 퍽 맘에 들었나봐요.”

아버지는 알 만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해마다 수도에 오시는 만큼, 아버지도 그 식당에 가신 적이 있는 모양이다.

민물고기요리는 별로 비싸지도 않으니 가실 만하지.

어쨌든, 모처럼 식사 대접을 하려 했는데 글러버렸다.

그냥 용건만 마치고 가야겠구만.

조금 아쉬운 마음에 살짝 쓰게 웃으면서,

“이거, 아버지 드릴게요.”

아버지에게 말끔한 수첩 하나를 건넸다.

그를 받고서 이게 뭐냐는 듯이 수첩과 나를 번갈아 보는 아버지.

어쩐지 그 눈을 마주하기 쑥스러워, 괜히 시선을 돌린 채 대답했다.

“손 굳을까봐, 그간 여행하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적었거든요. 그거 다시 보면서 정리한 거예요.”

“허…… 일지 쓴 거냐? 녀석, 필사하라는 말만 들어도 입부터 나오더니.”

“그건 일이잖아요.”

게다가 원래 있던 내용을 베껴 쓰는 거니 재미도 뭣도 없다.

아무리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책일지라도, 필사 작업에 들어가는 순간 그냥 글자조합물이 될 뿐.

왜냐? 내용 곱씹을 여유가 없으니까.

필사보다는 안내문이나 광고문 쓰는 게 훨씬 재미있고 집중도 잘 되더라.

그런 면에서, 여정을 기록하는 거나 그걸 다시 정리하는 건 꽤 즐거웠다.

어디 팔 것도 아니니 문장력 같은 걸 신경 쓸 필요도 없었고.

“그래서, 이거 마을 장서관에 두라고?”

“맘대로 하세요. 그냥 가지고 계시든, 편집해서 동화책으로 써먹으시든 상관없어요. 그냥 뭐라고 해야 되나……”

톡. 톡.

이젠 괜히 바닥을 발끝으로 두드리게 되었다.

메린 말이 맞긴 하네.

진짜 내가 별의별 걸 다 쪽팔려 하는구나.

“별 희한한 일이 다 있었는데, 저희만 아는 건 좀 그렇기도 하고…… 그냥 잊어버리기도 아깝고…….”

사실 분명한 이유는 없다.

그냥 괜히 수첩을 뒤적이다가, 시간도 남으니 말끔하게 정리하자 싶어서 한 것이니까.

아버지에게 드리는 것도, 그냥 문득 그러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놋지빌의 유일한 ‘에스트렐’이실 아버지에게, 내 흔적을 남기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아버지의 그 허약한 아들내미가 이렇게 세상을 돌아다녔다고, 적과 싸워서 이기기도 했다고 알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르고.

“아무튼 드리고 싶으니 가져가주세요.”

“………그래.”

아버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신 후, 잠시간 수첩을 바라보시더니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읽을거리를 받았으니 바로 훑어봐야지. 이따 소감 들려주마.”

“됐어요. 그런 거 하지 마세요.”

“그래그래, 아주 철저히 비평해줄 테니 기대하려므나.”

“하지 마시라니까요?!”

“그럼 둘 다 이따 보자.”

내 간곡한 외침을 들은 척도 안 하실 뿐 아니라, 더욱 더 크게 껄껄 웃으면서 가버리시는 아버지였다!

아니, 왜 다들 내 말을 안 들어주는 건데?!

“카엘~ 얼른 가자~ 배고파~”

“……”

그리고 메린은 내가 망연해하건 말건 개미 솜털만큼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흑. 다들 너무해.

“오늘도 케이크 시켜도 되지? 벌꿀사과케이크.”

“그러든가…….”

“아싸~”

수락하자마자 녀석이 배시시 웃으며 와락 안겨들었다.

하, 나 참. 사람 기분도 모르고, 후식 먹을 수 있다고 혼자 들떠서는 허리 안아오고 있네.

진짜 어이가 없어서 한숨만 나온다.

도대체가 말야,

“밥 먹고 집에 가는 길에 젤리도 사가자.”

“어, 진짜? 뻥 아니지? 와~ 카엘 최고!!”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까지 귀여울 수 있는 거야?

적당히 해야 될 거 아냐!

하, 돌겠네, 진짜.

속으로 투덜투덜거리면서, 나를 안고 꺅꺅거리는 메린의 어깨를 살며시 감싸 안았다.

그리고 날이 바뀌어, 대망의 결혼식날.

불평 한 마디 할 수 없을 만큼 화창한 아침, 나는 예정대로 단장을 마치고서 대예배당 문 앞에 서서 손님을 맞이했다.

잔뜩 차오른 긴장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뻣뻣해진 채로.

고향 사람들과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와서 인사를 건네는데, 그 말들이 하나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인사도, 그 뒤의 대응도 그냥 몸이 알아서 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으으, 벌써 어깨 결려……!!

속도 좀 울렁거리는 것 같고!

“이 녀석, 이거 시작하기도 전에 쓰러지겠는데? 술이라도 먹여야 되나?”

“그러다 취하면 더 골치 아프지 않아요? 얌마, 카엘, 심정은 이해되는데 긴장 좀 풀어!”

같이 손님맞이를 해주는 아버지와 티치 형이 각자 툭툭 던지듯이 말하고 있었다.

내가 뭐 긴장하고 싶어서 하나?!

나도 긴장 풀고 싶어, 근데 안 풀리는 걸 어쩌라고, 빌어먹을!!

속으로 절규하는 그때,

“어머어머, 세상에!”

굉장히 낯익은 얼굴의 여자…… 슐 누나가 밝게 웃으면서 한걸음에 쪼르르 달려왔다.

남편인 브랜은 치료사라 자리를 비울 수 없어서 혼자 왔는데, 어제 저녁보다는 확실히 공들여서 꾸민 게 보이는 차림이었다.

누나는 뭐가 그리 감탄스러운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거의 소리치듯이 말을 건넸다.

“와아! 카엘, 너 완전 딴 사람 같아! 진짜 잘 어울린다, 얘!”

“아…… 응, 고마워…… 어서 와, 슐 누나…….”

가까스로 목소리를 내서 인사하자, 누나는 사정을 파악했다는 듯이 곧바로 쓴웃음을 지었다.

“너 긴장했구나? 왜 아니겠니. 오다가 예배당을 슬쩍 봤는데, 사람이 꽉꽉 차고 있던걸? 모르는 사람이 훨씬 많은 거 같더라.”

“끄으으으.”

“괜찮아, 카엘! 다 잘 끝날 거야! 그래도 긴장되면…… 에잇.”

착!

누나의 두 손이 갑자기 내 얼굴을 감싸더니 마구 문질러대기 시작했다!

완전히 얼어서 제대로 반항도 할 수 없었다.

누나는 얼마간 신나게 주물럭거리곤, 만족했다는 듯이 웃으며 얼굴을 놓아주었다.

“어때? 긴장 좀 풀렸지?”

“모르겠는데…….”

그래도 조금은 말을 꺼내기 쉬워진 것 같다.

뺨이 얼얼해서 그런가?

멀뚱거리며 뺨을 문지르는 나를 보며 환히 웃은 후, 슐 누나는 아버지와 티치 형에게 재차 인사했다.

“맞아. 지금 메린 보고 오는 길인데, 엄청 예쁘더라! 이야~ 역시 수도의 재단사는 뭐가 달라도 다른가봐!”

“그래? 난 아직 못 봤는데.”

“뭐? 못 봤어? 왜?”

“안 보여주시더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깜빡이던 누나는, 이내 의미심장하게 웃으면서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럼 기대해~ 긴장 따위 싹 다 잊어버릴 정도로 놀랄 거야~! 먼저 들어갈게! 두 분도 수고하세요!”

“……”

긴장을 잊을 정도로 놀랄 거라고?

그거 그냥 심장 멎어서 죽는다는 거랑 똑같은 거 아냐?

“근데 진짜 한 번도 못 봤냐? 시안도?”

누나가 대예배당 안에 들어가자마자 묻는 티치 형.

고개를 젓자, 조금 전의 누나처럼 의미심장하게 웃으면서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아버지도 함께.

둘이서 뭐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럼 맘 단단히 먹어. 나는 있잖냐, 클로다가 드레스 입은 거 몇 번 봤었거든? 그래도 입장하는 거 보니까 숨이 막히더라. 근데 넌 한 번도 못 봤으니 내성이 전혀 없는 거 아냐. 술 갖다주랴?”

“됐어요…….”

“그러지 말고 한 모금 해. 오늘이 네 기일이 될까 걱정이 되어서 그런다.”

“됐다니까요…….”

그 정도로 예쁘다는 거야? 근데 나만 못 본 거고?

하……… 생각할수록 억울하네.

아니, 이 사람들보다 내가 가장 먼저 봐야 되는 거 아냐?

왜 내 여자의 아름다운 모습을 내가 제일 마지막에 봐야 되냐고!

이게 말이 돼?!

“하…………”

울적한 마음에 한숨을 푹 쉬자, 두 어른이 내 어깨를 하나씩 토닥이기 시작했다.

……슐 누나는 틀렸다.

메린을 보기 전인데도 긴장이 싹 다 사라져버렸으니까.

이 두 사람이 나를 위로한답시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어깨를 두드리는 게 무척 약이 오른 탓이다.

“불쌍한 녀석…….”

“……”

짜증나.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 뒤에도 손님맞이는 계속 이어졌다.

대부분은 내가 모르는데다 죄다 고급진 옷을 입은 사람이었는데, 특별한 손님 몇 명 덕분에 기가 죽을 일은 없었다.

국왕과의 회담을 오늘로 잡지 않을까 하더니, 진짜로 엘프의 왕과 부엉이탑의 수장이 온 것이었다!

그것도 되게 특이하게!

아무리 생각해도 종신으로 즉위한 것 같은 엘프의 새 왕, 골든로드는 블루스타와 블루벨이라는 두 측근과 함께 날개사슴 여섯이 끄는 마차를 타고 온 걸로,

대마법사 네이멜은 빗자루를 탄 채로 거의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이 나타나며 주위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었다.

다만, 나를 보고서 하는 행동은 둘 다 똑같았다.

사람이 완전 달라졌다면서 감탄한 다음, ‘오늘 굉장히 재미있는 볼거리가 있을 것’이나 ‘피로연 때 저지를 것’이라며 속닥거리고 휭 가버렸다.

아마 율리아가 준비할 거라던 ‘계획’을 말하는 것 같은데……

저지를 거라니, 대체 뭔 짓을 하려는 거지?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봤자, 내가 알 수 있을 턱이 없다.

피로연이 맨 마지막이니, 그 전까지의 순서를 잘 치를 생각이나 해야지.

슐 누나의 물리적인 격려에도 긴장은 다 풀리지 않았지만, 엘프의 임시 왕인 골든로드가 나눠준 환약 덕에, 결혼식을 생각해도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되지는 않았다.

속도 가라앉았고.

덕분에 헙스트 공작이라는 사람과 그 두 가신, 피터 왕자와 옐리카 아가씨에게 환히 웃으면서 감사를 전하는 등, 걱정했던 것보다도 훨씬 편안한 마음으로 손님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로나가 헤실 웃으면서 다가와서는,

“엘리아스 님, 티치 님~ 이제 슬슬 시간 됐대요~”

“…………”

곧 식을 시작할 거라 전하는 걸 듣자마자 긴장이 도로 울컥 올라와버렸다!

꽤나 보기 힘든 안색을 하고 있는지, 대예배당으로 들어가려던 두 사람이 좀처럼 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에게 로나가 느긋~하게 말하며 손짓했다.

“카엘 님은 제가 데려갈 테니, 두 분은 걱정 마시고 먼저 가세요~”

“예에……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사제님.”

“카엘, 너 죽으러 가는 거 아니니까 긴장 풀어. 심호흡 해, 심호흡.”

두 사람이 마지못해하면서도 자리를 떠나자, 로나는 곧바로 내 손을 꼭 잡고서 방실 웃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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