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449화 (449/475)

〈 449화 〉 425화 : 새로운 나날을 향해 (完)

* * *

지극히 두려운 행복에 쿵쾅거리던 심장이 진정됐을 무렵, 연주자들 가까이에서 단막극이 하나 펼쳐졌다.

삼십 분이 될까 말까 한 길이의 진짜 짧은 연극이었는데, 실제 댄스 타임의 시작을 알리면서 막을 내리는 게 꽤나 인상적이었다.

……근데 진짜 이걸 일주일만에 다 준비했다고?

와, 정말 엄청난 행동력이랑 기획력이야.

율리아의 능력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내 빠른 곡조의 연주가 안뜰을 가득 채우고, 메린과 저번처럼 몸이 움직이는 대로 왈츠 비슷한 것을 춘다.

이어서 그녀가 전통대로 아버지와 춤을 추는 동안, 나 역시 여자 손님들을 상대해야 했는데……

발을 밟지 않도록 조심하느라, 한 번 출 때마다 기력이 팍팍 깎여나가는 것 같았다.

그래도 뭐, 재미있긴 재미있었나봐.

아버지를 비롯한 고향 사람들이 떠날 때가 금방 온 걸 보면 말야.

다른 마을에 사는 슐 누나도 함께 놋지빌까지 갈 생각이라는 듯했다.

“네 아버지께 들었어. 둘이 아직 어디서 살지 못 정했다며?”

고개를 끄덕이자, 누나는 우리 둘의 손을 하나씩 잡으며 활짝 웃었다.

“정해지면 편지 보내줘. 내년에 꼭 아기 보러 오고.”

“안 겹치면 갈게.”

내 말에 잠시간 눈을 끔벅이는 슐 누나.

곧 말뜻을 이해했다는 듯이 크게 웃었다.

“그때는 서로 배 좀 부른 상태에서 만나면 되지, 뭐! 아무튼 몸조심해, 카엘. 메린도.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래도 행복하게 지내렴!”

“고마워. 누나도 잘 지내. 브랜 씨한테도 안부 전해주고. 아버지도 촌장 일 잘 하시길 바랄게요. 또……”

메린과 미리 이야기했던 대로, 나는 의아해하는 아버지에게 또렷이 전했다.

“십 년 뒤에 놋지빌로 손자 한 명 보내드릴 테니, 아버지가 키워주세요.”

“뭐? 왜 그런 짓을 하려 그래?”

“그 마을에서 ‘에스트렐’을 이었으면 해서요.”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촌장이 되길 바라는 건 아니다.

무얼 하며 살든 상관없어.

그저 그 마을에 계속 ‘에스트렐’이라는 성씨를 가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을 뿐이지.

그런 내 대답에, 아버지는 곧바로 미간을 찌푸리셨다.

“네 엄마 얘기 때문에 그러냐?”

“전혀 상관없어요. 어제 메린이랑 정한 거거든요. 자식이 결혼도 했겠다, 아버지도 할아버지 역할은 해보셔야죠.”

“그 안에 내가 딴 살림 차리면?”

“하하하, 말도 안 돼요.”

그간 새 애인 만드려는 낌새도 안 보이셨으면서 딴 살림은 무슨…….

오히려 엄마의 잔재인 ‘그림자’를 찾아 밤의 숲으로 들어가시지 않을지가 더 걱정이다.

내가 웃어넘기는 게 불만이시라는 듯, 아버지는 퉁명스럽게 쏘아붙이셨다.

“십 년 뒤면 쉰이 가까운데, 나보고 많아봤자 열 살인 애를 키우라고? 이런 막돼먹은 놈이 내 아들이라니.”

“그러니 저 같이 안 되게 잘 키우시라고요. 보람찬 노년 되시겠네요, 뭐.”

“콱 그냥.”

말은 저렇게 하시지만 뻔해.

분명 ‘진짜 보냈다’고 툴툴대시면서 키우시겠지.

그때까지도 촌장 일 하고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적적하시진 않을 거다.

직업상 아버지와 가까운 티치 형도 그걸 아는지, 밝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꼭 보내라. 내가 아주 철저하게 훈련시켜줄게.”

“……메린처럼 강할 거란 보장은 없는데요.”

“괜찮아. 어릴 때의 너보단 튼튼할 거 아냐. 이야, 잘됐네. 덕분에 너 훈련 못 시킨 한을 풀 수 있겠어!”

“……”

아이한테 진짜 철저하게 동의를 받아야겠구만.

적당히 했다간 지옥에 자기를 버렸다고 원망할 거 같아!

새삼 굳게 다짐하면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오지 않더라도 연락은 해라.”

“그럴게요. 다들 조심히 돌아가세요.”

고개를 끄덕이시면서도, 아버지의 발은 좀처럼 움직일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 생각하듯, 우리 둘을 지그시 바라보실 뿐.

그러나 이내, 아버지는 내 어깨를 두드리면서 깊이 웃으시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천천히 등을 돌리고 떠나가셨다.

내가 고향을 떠날 때 그랬던 것처럼, 뒤를 돌아보시는 일 따윈 없었다.

“……건강히 잘 지내세요.”

저희도 잘 살 테니까.

메린의 손을 꼭 잡으며, 그 등을 향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점점 작아지는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렇게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 후, 슬슬 피로연이 마무리를 지어갈 즈음.

손님들에 섞여 있던 율리아가 돌연 우리를 찾아오더니 분수 앞에 서라면서 데려갔다.

“왜, 뭐 하시려고요?”

“마무리 인사하셔야죠~”

“네?! 그런 거 해야 한다는 말 못 들었는데요?!”

“지금 들으셨잖아요~”

이 사람이 진짜……!

헤어지기 전에 고맙다고 인사하려던 마음이 실시간으로 깎여나가고 있었다!

“괜찮아요, 그냥 신세진 분들에게 감사 인사하시면 돼요~ 선포식 때 보니 은근히 말씀 잘하시던데요, 뭐!”

“아으……!”

그때는 죄다 짜인 각본인 게 훤히 보여서 긴장이 다 죽어버렸으니 할 수 있었지!

말할 때도 국왕만 쳐다보면 됐었고!

근데 지금은 전혀 아니잖아!

고향 사람들이 다 가버렸는데도 아직 사람이 바글바글한데……!

“저기, 역시 저는……!”

“안 돼요~ 하셔야 돼요~!”

“으아아!”

……그러나 나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다리에 힘주어 버티려 해도 율리아가 생긋 웃으면서 무지막지한 힘으로 끌고 갔으니까.

별 수 없이 분수대 앞에 선 나는, 말 그대로 절망의 늪에 빠진 심정이었다.

“여러분, 주목해주세요~! 용사님께서 감사 인사를 하신답니다~!”

“……”

아니, 꼭 내가 자진했다는 듯이 말하고 있네. 날조 너무 심하잖아!

울컥했지만, 그 정도로는 긴장을 다 지울 수 없었다.

메린이 손을 잡아주어도 목이 풀리지 않아, 결국 시선을 조금 내리깐 채로 반쯤 소리쳐야 했다.

“그… 여, 여기까지 먼 발걸음해주신 여러분께, 가, 감사드립니다!”

아으, 왠지 목소리가 울리는 거 같아!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이러지 않으면 목이 막혀서 말이 안 나오는걸!

“트, 특히 이 자리엔, 여정 중에 연을 맺은 분들이 있죠! 그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말을 꺼내면서 무심코 시선을 들었다.

수많은 얼굴들 속에, 굉장히 친숙한 얼굴들이 중간중간 자리하고 있는 게 보인다.

저마다 염려와 격려를 담은 눈길을 보내오고 있다.

그 시선들을 마주하자, 문득 석 달 간 있었던 일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그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나 스스로도 놀랄 만큼,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야말로 심신이 부서질 것 같은 일도 있었고, 반대로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즐겁고 기쁜 일을 겪기도 했죠. 그 순간순간마다 함께해준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네이멜,

품위를 갖춘 미소를 보내고 있는, 피터 왕자를 비롯한 다섯 명의 귀족분들,

어째 뿌듯해하고 있는 골든로드와 블루스타.

왠지 내 동료들이 하나도 안 보이는 게 의아했지만, 어쨌든 여정 중에 맺은 인연들을 부르며 감사를 전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율리아 님도, 이 자리를 빌어 무척 감사드려요.”

자신에게도 말을 전할 줄 몰랐다는 듯 화들짝 놀라는 전직 공주님에게 고개를 숙였다.

“굉장히 뛰어난 사제도 붙여주시고, 똑똑한 말도 빌려주시고, 지원금도 전해주셨죠. 율리아 님이 뒤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해주셨기에, 대재앙을 석 달 만에…… 그리고 이렇게 무사히 끝낼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멍하니 나를 보던 율리아의 얼굴이 아주아주 잠깐 일그러진 듯했다.

그러나 눈을 깜빡인 순간, 그녀는 얼굴 가득 웃음을 띄우고 있었다.

찡그린 적 따위 없다는 듯이, 아주 조금 물기가 어린 눈을 반짝이며.

아마 분수 때문이겠지.

그렇게 생각해주기로 했다.

그 미소가 너무 환했기 때문일까?

멍하니 그 얼굴과 마주하던 나는, 사람들의 놀라워하는 소리를 듣고서야 발 밑에 연기가 깔리기 시작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고마워할 사람은 저인걸요.”

당혹감이 차오르는 안뜰 안, 그녀의 차분한 목소리가 또렷이 들린다.

마치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있었다는 듯한 태도.

그 순간, 그녀가 세웠다는 계획이 시작되려 한다는 걸 깨달았다.

“거부할 수 없는 사명을 짊어지고서도, 당신은 끝까지 사람으로 남아주셨어요. 그게 저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됐는지, 얼마나 빛나는 희망을 보여주신 건지 모르실 거예요.”

“율리아 님,”

“안녕히 가세요, 다정한 용사님. 창조주의 축복 속에서 늘 행복하시길.”

머리 위를 내리쬐는 햇빛이 조금 더 강해진 것 같다.

무심코 바라본 하객들 틈에서, 대마법사와 엘프의 왕이 살며시 허공에 손짓하고 있는 게 보였다.

이내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우리 발 밑에 깔려 있던 연기가 한데 뭉쳐 구름처럼 만들었다.

그리고는 나랑 메린을 허공에 띄우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아니, 이건 아무리 그래도 좀 당황스러운데!

“아앗! 우리에게 빛을 가져다준 용사님이……! 창조주시여, 두 분을 어디로 데려가려 하시는지요!”

“……”

방금까지 눈물 짓던 율리아가 침통한 표정으로 우릴 올려다보며 외치고 있었다.

창조주가 우릴 데려간다는…… 뭐 그런 어이없는 설정인 것 같군.

당혹과 놀라움이 가득한 눈길이 우리를 올려다보고 있다.

문득 바라본 왕궁에서도, 국왕이 발코니에 서서 눈을 휘둥그레 뜨고 이쪽을 쳐다보고 있다.

왠지 무언가 말을 해야 할 것 같아, 여전히 메린과 한 손을 맞잡은 채 나머지 손을 흔들면서 소리쳤다.

특히 국왕을 향해.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저흰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 던지고 행복을 찾아 떠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

마치 그 말이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바람이 한층 더 강하게 불면서 우리 두 사람을 하늘 저편으로 빠르게 옮겨버렸다.

눈이 부실 만큼 밝고 환한 빛이 우리를 감싸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어느 초원에 내려섰다.

고개를 돌리니, 사과만해진 왕성이 수정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어딘지 몰라도 되게 멀리 왔나보네.

조금 기가 막힌 심정으로 헛웃음을 켜며, 나는 다시 정면을 향했다.

짐을 실은 말 한 마리를 데리고 있는 블루벨, 바닥에 쪼그려 앉아서 무언가 보고 있는 위슨, 우리를 향해 헤실 웃고 있는 로나.

여정을 함께했던 동료들이 쭉 서 있다.

피로연장에 없다 했더니, 여기서 우릴 기다리고 있었구만.

언제 빠져나온 건지, 원.

“그래서 이게 율리아 님의 계획이야? 우릴 피로연 현장에서 날려보내는 거?”

“날려보내다뇨, 두 분은 승천하신 거예요!”

“뭐, 승천? 아니, 우리 죽은 걸로 치는 거야?!”

“아뇨아뇨, 감쪽같이 사라지신 거죠!그래야 국왕이 찾을 생각을 못할 테니까요! 행여나 의심하면 창조주를 멸시하는 거냐고 질타받을 테고요!”

고소해 죽겠다는 듯이 깔깔 웃는 로나.

그런 그녀의 모습에 한숨을 푹 쉰 후, 블루벨이 나에게 말고삐를 넘겨주며 말했다.

“너희 물건들은 전부 배낭에 넣어놨어. 결혼 선물들도 싹 다 넣었으니 나중에 찬찬히 살펴봐.”

“고마워.”

일단은 가까운 숲에 가서 옷부터 갈아입어야 하겠지?

예복 차림은 너무 눈에 띄니까.

고개를 끄덕이고서 말을 살펴보는데, 녀석이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더니 갑자기 앞발을 따각거리면서 히힝 울었다.

뭐지? 그보다 이 녀석, 왠지 익숙한 느낌인데.

의아해하며 눈을 깜빡이자, 블루벨이 피식 웃으면서 말을 전해주었다.

“네 꼴이 되게 웃기대.”

“역시 너였구나, 조지! 근데 이 자식이 보자마자 뭐 어쩌고 저째?!”

“푸르~”

아, 빡쳐. 말 주제에 비웃는 거 같아.

빨리 옷 갈아입든가 해야지.

“근데 교단 거잖아. 우리가 데려가도 돼?”

“네. 율리아 님이 결혼 선물이라고 하셨어요. 요정마랑 혼혈인 귀한 놈인데, 카엘 님 고향엔 요정마가 싸돌아다니니 별로 놀라워하지도 않을 거라고 투덜대시면서요.”

“엥? 그냥 말 아니었어? 어쨌든 놀라긴 했어. 이 녀석만큼 똑똑한 말은 처음 봤거든. 되게 놀랍고 또 감사하다고 전해드려.”

물론 놋지빌엔 더 튼튼하고 빠르고 성질 더러운 말이 많다.

하지만 이 녀석처럼 높은 데서 뛰어내려도 환호하거나, 내 불평을 알아듣고 돌가루를 튀기지는 않는다.

그냥 괜히 성질부리면서 뒷발로 걷어차지.

아무튼 무지 좋은 선물까지 받아버렸네.

진짜 잘 살아야지, 안 그러면 대언자의 권한으로 천벌을 내릴 거 같아.

이제 쭉 함께하게 된 말의 등을 두드리면서 인사하자, 불현듯 위슨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지도를 꺼내게 했다.

그런 뒤, 수도에서 조금 떨어진 어느 지점을 가리켰다.

“지금 여기 있거든요? 가장 가까운 숲이 서쪽에 있으니 일단 그리 가세요. 그 다음은 뭐, 맘대로 가시고요.”

“응, 고마워.

그럼………”

……때가 되었나.

나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위슨에게 먼저 말했다.

“그간 고마웠어, 위슨. 네 그 수상쩍은 물약에 정말 도움 많이 받았다. 나 없다고 사람한테 함부로 시험하고 그러지 마라.”

“인사나 잔소리, 둘 중 하나만 해요. 근데 고마워하지는 마세요. 저는 그냥 형에게 받은 은혜를 갚으려던 거니까.

형 덕분에 살았고, 조금이긴 해도 세상 구경도 잘할 수 있었어요. 형이랑 누나가 투닥거리는 거 재미있기도 했고.”

위슨은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나랑 메린이 하나씩 그 손을 포개듯이 잡자, 그가 한껏 더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두 분이 어디에 계시든 찾아갈 테니, 다시 뵐 때까지 건강하셔야 돼요.”

“너도 잘 지내. 또 봐.”

메린의 인사에 고개를 끄덕인 후, 그가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다음으로 블루벨을 바라보자, 어쩐지 뾰로통한 표정으로 시선을 홱 돌려버렸다.

“댁도 고마워, 블루벨. 나랑 메린 때문에 고생 많았을 텐데, 안 도망가고 끝까지 있어줘서.”

“흥, 알긴 아는구나. …나도 뭐, 일단 고맙다고 해둘게. 너희 덕에 요리 대접이란 걸 제대로 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너희랑은 터놓고 얘기할 수 있어서 좋기도 했고.”

발끝으로 땅을 툭툭 치면서 중얼거리던 블루벨은, 이내 쓴웃음을 지으며 우리를 마주보았다.

“아무튼 그간 고생한 만큼 잘 살아. 네가 어디에 살든 근처에 숲이 있을 테니 찾으려면 찾을 수 있을 거야. 너희 아이가 어떨지도 궁금하니, 한 번은 찾아가줄게.”

“………응, 그래. 인연이 있으면 또 보자.”

사실 사양하고 싶었다.

애들 정서교육에도 안 좋고, 무엇보다 메린의 심기가 좋지 않을 테니까……!

지금도 눈길이 좀 메말랐는걸!

하지만 이 분위기에서 그랬다가는 몸 어딘가에 구멍이 날 터.

일단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설마 진짜 또 만나겠어?

동족 찾느라 바쁠 텐데, 그럴 리가 없지.

……뭐, 정말 찾아오면 반갑긴 하겠지만.

그렇게 블루벨과 인사를 나눈 후,

“로나,”

마지막으로 로나를 마주했다.

지금처럼 항상 헤실헤실 웃으면서 밝은 분위기를 만들어준, 누구보다 고마운 사제님을.

……로나가 있었기에, 내가 한 사람 몫을 못할 때에도 몬스터와의 전투에서 무사할 수 있었다.

이따금 부상을 입더라도 흉터 하나없이 멀쩡해질 수 있었던 것도, 그녀가 치유의 기도로 말끔히 고쳐준 덕분이다.

그리고 그녀 덕에, 나는 메린과 제대로 마주할 수 있었다.

우리가 오늘을 맞이할 수 있었던 건, 이 자그마한 사제님이 도와주었기 때문인 것이다.

“정말 고마워. 네가 우리를 결혼시킨 거나 다름없어. 다 네 덕분이야.”

“아하하, 뭘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인데요!”

로나는 바닥에 철퇴를 내려놓은 후, 천천히 다가와서 나와 메린의 손을 하나씩 잡았다.

“이렇게 훌륭히 결실을 맺어주신 걸로 충분해요. 아니, 오히려 제가 감사해요. 어쩌면 제가 맞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꿈을 보여주셨으니까요.”

“로나……”

“저는 전투사제니까 두 분을 만날 일이 없어요. 두 분이 쭉 이 빨간 사제복을 보는 일이 없기를 바라요. 어디서든 늘 평안하시길 기도할게요.”

“……”

……그렇다.

로나는 이단과 악마숭배자를 물리치는 사제.

그녀가 나타난다는 건 그곳에 악마를 부르려는 사악이 숨어있다는 뜻이며, 곧 그 주변이 피로 물들 것이라는 예고이다.

그러니 그녀를 다시 만나길 바라서는 안 된다.

행복한 삶이라는 것에, 전투사제 로나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요소인 것이다.

그렇게 즐거웠고,

그렇게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재회를 기약할 수 없다니.

“로나……!”

속이 끓어오르는 대로, 그 자그마한 어깨를 끌어안았다.

“정말… 정말 고마워! 그간 너랑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기쁘고 즐거웠어…! 그 시간들, 절대 잊지 않을게. 널 평생… 기억할게……!

“나도 그간 고마웠어. 네가 말해준 것들, 꼭 기억할게. 로나, 잘 지내야 돼!”

메린도 나를 따라 그녀를 껴안으며 속삭였다.

어딘지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로.

로나는 우리 둘의 포옹에 소리 내어 웃으면서, 작은 팔을 뻗어 등을 감쌌다.

“카엘 님, 메린 님. 꼭 행복하게 사셔야 돼요. 두 분이 이 하늘 아래 어딘가에서 그렇게 지내실 수 있도록, 저도 더 열심히 일할게요.”

“……”

“나 참, 다 큰 어른이 우시기는! 좋은 날이잖아요! 메린 님까지…… 으으, 저까지 옮아버렸잖아요!”

투덜대면서 훌쩍이는 로나를 한층 더 꼭 껴안았다.

이내 거기에 위슨과 블루벨까지 합세해, 다섯이서 서로 부둥켜안은 채 눈물을 쏟았다.

안 어울리는 짓을 한다는 헛웃음을 곁들어서.

짧지만, 결코 얕지 않은 시간을 함께한 동료들의 행복을 빌었다.

그렇게 한바탕 쏟아낸 후, 메린과 함께 말에 올라탔다.

무겁다는 듯이 투덜대는 말의 머리를, 웃기지 말라는 마음을 담아 두드려주었다.

그런 뒤, 빨갛게 부은 눈으로 웃으며 인사하는 소중한 인연들에게 마주 손을 흔들어주고,

“이랴!”

보란 듯이 힘차게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뒤에 앉은 메린은, 손이라도 흔들고 있는지 한동안 한 팔로만 나를 붙잡고 있었다.

그러다 잠시 후, 내 허리를 껴안으며 등에 얼굴을 대는 게 느껴졌다.

“옷 갈아입은 다음에 어디로 갈 거냐?”

“글쎄…, 가고 싶은 데 있어?”

“없어.”

껴안은 팔에 한층 더 힘을 주며, 그녀가 웃음을 머금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네가 가는 데면 어디든 다 좋아.”

“……”

또 그 소리. 진짜 변하지 않는구만.

절로 쓴웃음이 지어졌다.

그럼 어디로 갈까?

반드시 가야할 곳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필히 해치워야 할 적이 있지도 않다.

꼭 해야 하는 일도 없고.

지침은 물론이고, 우리의 발을 묶을 족쇄 따위도 전혀 없다.

어디로 가든,

우리는 자유롭다.

“그럼,”

저 앞을 바라보면서, 한 손으로 그녀의 손등을 살포시 감쌌다.

“발이 가는 대로 가보자!”

어딘지 후련한 마음으로 그렇게 말하자, 그녀가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흐려질 기미가 조금도 보이지 않는 푸른 하늘.

여전히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길을 나아간다.

행복이 가득한,

우리의 새 나날이 시작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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