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450화 (450/475)

〈 450화 〉 Epilogue (1)

* * *

촛불이 타닥타닥 타오르는 방 안.

적당한 피로감에 나른해진 몸을 침대에 뉘인다.

한 발 앞서 침대에 엎드린 채 책을 읽던 아내가, 그런 나를 보고 살짝 웃으면서 책을 치우고 찰싹 붙어온다.

촛불을 후 불어서 꺼버리고, 항상 그랬듯이 그녀를 껴안고서 이마에 입을 맞추고 어깨를 토닥인다.

잔잔한 행복감에 잠기며 내일 하루도 힘내자고 다짐하는 찰나,

“야, 카엘.”

“……응?”

가끔 그랬듯이, 메린이 돌연 눈을 번쩍 뜨고서 덤덤히 물었다.

“너 왜 요즘 안 하려 드냐?”

“뭘?”

“잠자리.”

“……”

가슴이 철렁했다.

결국 이때가 오고 말았구나.

무거운 마음에 말문을 잇지 못하고 있자, 메린이 손가락으로 내 가슴팍을 콕콕 찌르며 말을 이었다.

“전엔 조금 피곤해도 한 번은 꼭 하고 자더니, 요즘 들어선 아예 안 한다? 왜? 이젠 질렸냐?”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그럼 이젠 내가 안 예뻐? 뭐, 애 셋 낳으면서 좀 달라지긴 했지?”

“절대 아니야. 오히려 지금이 더 예뻐 보여.”

내 아이를 낳은 여자인데 어떻게 예뻐보이지 않을 수 있을까?

게다가 메린은, 이제 결혼한지 6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아침에 나를 깨울 때는 물론이고, 식사를 준비하고 아이에게 밥을 먹이는 모습도 정말 예쁘고 사랑스러워.

저녁에 돌아온 나를 맞이해주면서 뺨에 키스해줄 때, 그대로 침대에 데려가고 싶다고 생각한 게 한두 번이 아니야.

아이가 생기기 전엔 몇 번 그러기도 했고.

그랬던 내가, 요즈음은 껴안는 걸로 그치고 있으니 이상하게 보이긴 하겠지.

물론 핑계를 대려면 얼마든지 댈 수 있다.

너 혼자 아이 셋 돌보느라 피곤할 것 같아서 그랬다…는 건 안 통하겠군.

자신은 멀쩡하다고 덤벼들 게 분명해.

그러니 축제 준비한다고 영주님이 달달 볶아서 피곤하다는 게 가장 무난한 변명이리라.

……하지만 그것 역시 일시적인 방편일 뿐.

절반이나 진심을 숨기는 짓이기도 하니, 그녀를 속이는 거나 다름없다.

어차피 언젠가 말하게 될 거, 이 기회에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게 훨씬 낫겠지.

“……있잖아, 메린,”

메린과 함께 일어나 앉아, 그녀를 마주보며 천천히 말을 꺼냈다.

“우리, 아이 그만 가지자.”

“뭐? 왜? 이제 겨우 절반 왔잖아.”

“아잇, 진짜. 왜 절반이야, 네 명만……! ……아니다. 어쨌든 셋으로도 충분하잖아. 더는 안 낳았으면 해.”

예상대로, 메린은 허무맹랑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렇게 나를 잠시 뚱하게 쳐다본 후, 무언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역시 딴 여자 생겼구나? 뭐랬더라……. 아, 그래, 두 집 살림 중이지?”

“뭔 소리야, 아니거든?!”

“엉? 아니야? 으응, 다른 아주머니들이 그랬는데. 애 때문에 못하는 동안, 딴 살림 차리기도 하고 그런다고. 그러면 두 집 다 먹여 살리기 힘드니까 자식 못 가지게 할 수도 있다고.”

“………”

아잇, 그 여편네들, 진짜 돌아버리겠네!

메린한테 뭔 쓸데없는 소리를 속닥거리는 거야?!

그렇다고 부녀회 빠지라고 할 수도 없고 미치겠네!

나는 눈을 멀뚱거리는 메린의 손을 꼭 잡고 단호히 말했다.

“절대, 그런 거, 아니야. 내가 사랑하고 맨날 안고 싶은 건 너밖에 없어. 한 번만 더 그 소리해봐.”

“맨날 안고 싶은데 왜 안 해?”

“……”

한숨처럼 긴 숨을 내쉰 후, 그녀의 손을 매만지면서 천천히 대답했다.

“……3년 전에 기억나? 네가 멜이랑 케임 낳았을 때.”

“응. 그게 왜?”

“너 그때 죽을 뻔했잖아.”

첫 아이를 낳은 지 두 해가 지난 뒤, 메린의 뱃속엔 두 아이…… 쌍둥이가 들어서게 되었다.

아이 하나를 낳을 때보다 더 위험할 게 뻔해서 내심 걱정했는데, 아니나다를까, 두 아이가 모두 거꾸로 선 탓에 굉장히 심각한 난산이 되고 말았다.

신전으로 옮겨서, 사제가 직접 배를 가르는 수술을 해야 했을 만큼.

당연히 나는 밖에서 기다려야 했는데, 그야말로 생지옥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그녀가 진통 때문에 비명을 지르다가 기절 가까이 가던 모습이 눈에서 떠나지 않고, 그녀의 손에서 느낀 싸늘함이 심장에까지 박혀버려서 몸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메린이 다시 못 나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정말 말 그대로 미치기 직전이었다.

지금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거 같아.

“카엘.”

“알아. 다 잘 끝난 거. 너도, 우리 애들도 잘 자라고 있는 거 알아. 하지만…… 또 그럴지도 모르잖아. 또 쌍둥이가 생기면……!”

“쌍둥이 자체가 그렇게 흔한 게 아니지 않냐?”

“우리가 이렇게 사는 기적도 이뤄졌잖아. 두 번 연속으로 쌍둥이가 들어서는 것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그래서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두근거리더라도, 3년 전 일이 떠오르면서 도로 수그러들었다.

그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나 너 없이는 못 살아. 네가 아이 낳다가 죽기라도 하면, 평생 나 자신을 용서 못할 거야. 그러니까 메린, 그냥 이렇게 다섯이서 살자. 응?”

“………”

“나 너랑 이대로 살아도 행복해. 몸 때문에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아…… 그래, 넣지만 않으면 되는구나. 응, 그래, 너 불만 안 생기게 내가 잘해볼게. 그러니까 그걸로 봐주면 안 될까?”

떨구었던 시선을 조심스럽게 들어 메린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이 열릴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아름다운 주홍빛 눈동자도, 겁쟁이라고 비웃거나 기가 막혀 하는 기색도 없이 그저 덤덤히 빛나고 있다.

얼마간 그렇게 서로 마주했을까?

불현듯 그녀가 부드럽게 웃으며 내 뺨을 쓰다듬었다.

“싫은데? 난 더 낳고 싶거든.”

“메린, 제발…….”

“너 애들한테 껌뻑 죽잖아. 카린이 볼 뽀뽀해줄 때나, 멜이랑 케임이 아빠아빠거리면서 엉길 때마다 좋아 죽으면서.”

“그야 네가 살아있으니까 그렇지.”

그때 쌍둥이만 살았다면…… 아마 그 아이들을 미워하게 됐을 거야.

몸 건강히 자라기를 매일매일 기도하긴커녕, 얼굴 쳐다보는 것도 싫겠지.

너희 때문에 메린이 죽었다고 원망하기도 할 거고.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저지를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하루하루를 견딜 수 없을 테니까.

“……아이보다 네가 더 소중해. 네가 있으니까 아이들을 사랑할 수 있어. 너 없으면 안 돼.”

“글러먹은 아빠구나.”

“……어. 못 돼먹은 아빠야. 그러니 더 희생을 늘리지 말자. 응?”

하지만 메린은 고개를 저었다.

여전히 빙긋 웃는 얼굴로.

좌절감에 떨리기 시작하는 나를 달래듯, 계속 뺨을 쓰다듬으면서.

“잊었냐? 난 우글우글하게 살고 싶다고 했잖아. 그러려고 일부러 방도 더 뒀구만. 게다가 결혼한지 10년째 되면 아버님한테 한 명 보내기로 했으니 그만큼 채워야 되지 않겠냐?”

“무슨 저장고냐? 빈 자리 생기면 생기는 거지, 뭘 채우려 그래? 아무튼 난 싫어. 너 죽는 거 볼 바에야 차라리 고자가 되고 말지!그래, 사제님이랑 상담해서,”

“개소리마라. 내 허락없이 몸에 손대기만 해봐. 그날로 너 죽이고 나도 따라 죽을 거야.”

“……”

이 녀석도 글러먹은 엄마로군.

아이는 어쩌라고 죽겠다는 건지, 원.

이딴 부모 밑에서 커야 하는 애들이 새삼 가엾어졌다.

내일부터 더 잘해줘야지.

“나 괜찮아.”

메린은 양손으로 내 뺨을 감싼 후, 다시금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다들 내가 3년 전에 그런 일을 겪었다는 걸 깜빡할 만큼 팔팔해. 그리고 쌍둥이가 그리 흔하지 않은 건 사실이잖아. 하나만 들어선다면, 카린 때처럼 별 힘들이는 일 없이 금방 끝날걸?

설령 또 쌍둥이가 생긴다고 해도 괜찮아. 그때처럼 잘 넘길 수 있을 거야. 틀림없어.”

“무슨 확신으로……”

“내가 그러길 바라니까. 내 소원은 은근히 잘 이뤄지거든.”

굳건히 말하면서 내 손을 맞잡는 그녀.

그 얼굴에는 여전히 망설임도, 주저함도 엿보이지 않는다.

언제나 그랬듯이, 메린은 단호하고 시원하게 선언했다.

“할 수 있는 만큼 많이많이 낳아서, 너랑 애들이랑 시끌시끌하게 살고 싶어. 네가 한 팔에 다 안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애들한테 둘러싸여서, 그 애들한테 안기는 거 보고싶어.

그리고 있잖아, 아기가 내 품에 안겨서 자거나 젖 먹는 거 볼 때마다 마음이 엄청나게 따뜻해져. 네가 안아줄 때랑은 또 다른 따뜻함이라서 무지하게 좋아. 그래서 가능한 많이 느끼고 싶어.”

“…………”

“응? 그러니까 네 아이, 더 낳게 해주라. 분명 괜찮을 거야. 만약 또 수술로 낳는다면, 그 다음부턴 더 낳자고 안 할게. 약속해.”

그러니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

그렇게 덧붙이는 그녀의 목소리는, 어쩐지 간청하는 것처럼 들렸다.

조금 전까지는 내가 매달리는 상황이었을 텐데, 일이 희한하게 되어버렸네.

………내 아이를 낳고 싶다.

아이를 안을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 느낌이 좋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반대할 수 있는 남자가 얼마나 있을까?

게다가 나는 예전부터 녀석이 조르는 것에 약했다.

평소엔 부탁이란 걸 잘 안 하니까, 왠지 나를 의지하는 것 같아서 기뻤기 때문이다.

그때만 볼 수 있는 애교가 귀여운 것도 있지만.

그래서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으나, 나는 곧바로 얼굴이 환해지는 메린에게 단호히 덧붙였다.

“먼저 사제님께 진단받고 괜찮을 거라고 확인받아야 돼. 그 다음에 생각해볼게.”

“그럼 됐네~”

그러자 메린이 환히 웃으며 대꾸하더니,

“?!”

그대로 날 넘어뜨리며 위에 올라타는 것이었다!!

“자자자, 잠깐, 잠깐잠깐, 뭐야, 뭐하는 거야?!”

우와, 한손만으로 내 바지 벗겨버렸어!

이거 어째 옛날 생각나는데?!

겨우겨우 묻어버렸던 그때의 공포가 아주아주 조금씩 살아나려는 듯해, 내 웃옷마저 벗겨버리려는 메린의 손목을 힘껏 잡았다.

“안돼안돼, 안 돼, 메린! 말했잖아, 사제님께 확인받아야 한다고!”

“응. 이미 받았어. 첫 애 낳기 전만큼 건강하다던데?”

행동력 장난 아니네!

오늘 완전히 벼르고 있었구만?!

“그 뒷말은 왜 무시하냐! 생각해보겠다고 했잖아!”

“그러면서 한두 달 넘어갈 게 뻔한데, 나보고 그걸 두고 보라고? 싫어. 어차피 고개 끄덕일 텐데, 그냥 해치우고 말지.”

“아아아아, 알았어, 일주일, 아니아니아니, 하루, 하루만 시간을 줘……!!”

“하루?”

눈을 멀뚱거리면서 되묻는 그녀를 올려다보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발제발제발, 메린이 허락하게 해주세요.

하루만 유예를 가지게 해주세요.

마음의 준비 좀 하게 해줘요, 제발!!

내 배에 올라앉은 채 나를 내려다보던 그녀가 부드럽게 웃는다.

가만히 손을 뻗어, 미세하게 떨고 있는 내 뺨을 살살 쓰다듬는다.

부탁 들어주려는 건가?

그런 희망이 살짝 고개를 내민 순간,

“싫어.”

파사삭.

완전히 가루가 되고 말았다.

내 웃옷이 허망하게 허공을 날아 바닥에 떨어진 건 덤이다.

아니, 이 녀석이나 하늘이나 내 말은 진짜 하나도 안 들어주네!

“너 진짜 너무하는 거 아냐? 하루만 기다려달라고 하잖아! 내가 그거 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 했는지 알면서……!”

울분이 차서 쏘아붙이자, 그녀가 부루퉁한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그래서 쌍둥이가 두 살 되고도 네가 나 내버려두는 거 넘어가줬잖아. 일 년이나 참았으면 된 거 아냐? 너야말로 날 얼마나 더 팽개칠 셈이냐?”

“내가 언제 팽개쳤다고……!”

“키스도 안 해주고. 예전처럼 나한테 눈 반짝인다 싶으면 바로 시들어버리고. 애들만 엄청나게 예뻐하고.”

“그, 그건,”

“다른 아주머니들 말처럼 딴 여자가 생긴 거였다면 넘어가주려 했어. 남자가 더 젊고 예쁜 여자한테 꼴리는 건 당연한 거니까. 다른 사람들도 그러고 있고.”

하지만 아무리 관찰해도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아, 오늘 확인할 겸해서 그동안 생각했던 이유들을 대어본 것이다.

메린은 그렇게 말하더니, 돌연 미간을 찌푸리면서 이를 갈았다.

아, 말하다가 화가 올라왔구나.완전 망했군.

본능적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근데 뭐? 내가 죽을까봐 안 해? 야, 이 등신 새끼야, 그럼 그렇다고 진작 말하든가! 괜히 이것저것 생각해버렸잖아, 나쁜 새끼야!”

“아니, 그건 미안한데, 그래도,”

“닥쳐. 네 말 안 들을 거야. 내가 결혼할 때 그랬지? 네가 반대해도 상관없다고. 네 씨를 직접 받아가면 그만이라고……!”

훌렁훌렁.

얇은 옷가지가 허공을 돌다가 어딘가로 떨어진다.

밤의 어스름이 깔린 방 안에서도 보이는 하얀 나신으로, 그녀가 붉게 빛나는 두 눈을 부릅뜨며 씨익 웃었다.

“내일 쉬는 거 알아, 카엘. 그러니 오늘 못 잘 줄 알아. 아니, 네 애 밸 때까지 매일매일 받아갈 거니까 각오해!!”

“히익! 미안해, 메린,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살려주……!”

단번에 우르르 쏟아지던 말이 채 끝을 맺지 못하고 뚝 끊겨버렸다.

메린이 내 말을 듣지 않겠다는 자신의 선언을 몸으로 실천한 탓이다.

“읍… 후음…….”

질척한 물소리가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고개를 돌리고 싶어도 그녀의 손이 얼굴을 붙잡고 있어서 옴짝달싹할 수 없다.

팔이 결박된 게 아니니 뿌리치려면 할 수 있긴 하지만……

아니, 못해.

깊숙이 휘감겨오는 혀, 그리고 입술을 뗄 때마다 나를 보는 눈동자가 애원하고 있으니까.

사랑해달라고,

나를 원한다고.

그렇게 온 몸으로 애달프게 호소하고 있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거듭 말하지만, 나는 예전부터 이 녀석이 뭘 조르면 거절하지 못했다.

“하아… 하… 메린…….”

내 가랑이에 주저앉고서 등을 펴는 그녀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제대로 웃고 있기를 바라며, 나를 멍하니 내려다보는 그녀에게 전했다.

“……이리 와.”

사랑해줄게.

녹아내린 듯이 기쁘게 웃으며 안겨오는 그녀를, 힘껏 껴안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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