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5화 〉 외전 9) 겨울에 묻은 소망 (Side : Merin) (1)
* * *
무겁게 내리깔린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아온다.
푸른빛 어스름마저 물러가고, 하얀 눈이 지붕과 바닥을 덮어버린 정경이 선명해질 무렵,
집집마다 문이 열리며 삽을 든 사람들이 바깥으로 나온다.
살을 에는 듯한 공기에 파르르 떨면서도, 하얀 입김을 뭉글 내뿜으면서 서로 함박웃음을 짓는다.
“새해를 맞이한 것 축하드립니다!”
“좋은 한 해 되세요!”
지난해와 같은 고난이 이어지지 않기를.
올해는 더욱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그렇게 스스로와 이웃에게 축복하며 집 주변의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저 해가 저물고 또 밝아왔을 뿐.
달력을 새것으로 갈았다는 것 외엔 달라진 것 하나 없는 하루이건만.
사람들은 한껏 들뜬 얼굴로 눈을 치우고, 이틀 뒤에 있을 축제가 기대된다며 마주 웃었다.
그렇게 모두가 하나같이 희망을 노래하는 그 시간, 메린 소더는 어느 때보다도 싸늘한 절망을 듣고 있었다.
“틀렸어.”
치료사는 한숨을 쉬며 눈두덩이를 문질렀다.
“맥박이 너무 약해. 지금 겨우 숨만 쉬고 있는 꼴이야. 이 상태론 약을 써봤자 못 버틸 거다.”
“………”
“방금 쓰러진 건 아니지?”
“모르겠어요. 문을 두드려도 조용하길래 들어가봤더니, 침대 바로 옆에 쓰러져 있었어요.”
일단 한 번 눈을 뜨고, 침대 밖으로 나오다가 쓰러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게 새벽인지, 아니면 그녀가 찾아오기 조금 전에 일어난 일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언제 소리가 난 것 같더라는 식으로 추측을 도와줄 수 있었을 터.
그러나 지난밤, 이 집에는 고열로 의식을 잃어버린 젊은 청년, 카엘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의 아버지인 엘리아스는 아침 일찍, 마을을 떠나 수도 미드랜드로 향했기 때문이다.
그가 다시 돌아오려면 빨라도 닷새나 뒤의 일일 터.
치료사는 그 사실을 되새기며 괴로운 듯이 얼굴을 쓸었다.
“하필이면 이때…… 에스트렐 씨에게 뭐라 말해야 된단 말이냐……?”
“그대로 말하면 되죠.”
치료사는 덤덤하게 중얼거리는 그녀에게 기가 막히다는 시선을 보내려 했다.
그러나 고개를 돌린 순간, 그의 두 눈엔 침통한 빛이 일렁였다.
언제나 건조한 표정이던 메린이, 눈처럼 새하얗게 얼어붙은 얼굴로 카엘을 내려다보고 있었으니까.
“그냥, 그대로 말하면 돼요. 갑자기 쓰러져서 앓았다고. 좀 심하긴 했지만, 그래도 일어났다고.
그렇게 그냥 사실대로 말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약이야 잘 들을 게 뻔하잖아요. 그래서 열도 내릴 거고요.”
“메린.”
“여태 항상 그랬어요. 한 번도 그러지 않았던 적 없어. 조금 오래 걸리더라도, 카엘은 다시 깨어나고 다시 일어났어요. 그러니까 이번에도 그럴 거예요.”
메린은 축 늘어진 그의 손을 잡으면서 단호히 말했다.
옆에 서 있는 치료사가 아니라, 그녀 자신에게 들려주듯이.
그 목소리에서 무언가 희미한 감정을 느낀 것일까?
치료사는 그녀를 납득시키는 대신, 물약과 여러 주의사항만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한차례 뭉개진 눈길을 밟는 그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무거웠다.
‘시기가 너무 나빴어.’
메린은 결코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으나, 치료사는 확신하고 있었다.
촌장을 대신해 수도에 다녀온 엘리아스가 보게 될 건, 싸늘하게 식은 집과 차디찬 아들의 무덤이리라는 것을.
카엘 에스트렐은,
오늘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장례에도 참석하지 못하겠지.
그 사실이 무엇보다도 끔찍해, 치료사는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이윽고 허탈한 시선을 들어 하늘을 보며,
‘피아, 여기까지인가 봅니다.’
비탄에 잠긴 한숨을 올려보냈다.
그의 이마에 얹은 수건을 다시 차가운 물에 적셔서 올려준다.
대야를 들고 바깥으로 나가, 집 옆에 소복이 쌓인 눈을 푹 떠온다.
그 대야를 문 근처에 내려놓고, 맨손으로 눈을 한 움큼 떠서 물그릇 안에 넣는다.
그런 다음, 또 다른 수건을 가져와 물에 적셔서 그의 얼굴과 목을 닦는다.
이마에 얹은 수건이 도로 데워지지 않았는지 틈틈이 확인하면서.
“하아………”
활짝 열어 둔 창문과 문으로 바람이 들어와, 메린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내뱉으며 몸을 떨었다.
본래 추위를 타지 않는 편이나, 계속해서 차가운 물에 닿은 탓인지 시간이 갈수록 몸 안팎에 서늘한 기운이 스며드는 것 같았다.
그러나 창문과 문을 닫을 수는 없다.
그래서는 그의 몸에 찬 열을 식힐 수 없으니까.
그것도 모자라, 메린은 침대에 누워 있는 카엘의 이불을 완전히 걷어버린 상태였다.
초가을에도 이따금 춥다며 잔기침을 할 만큼 추위에 약한 그가, 지금 잠옷 한 장만 걸친 채로 한겨울의 싸늘한 공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안 내려…….’
열이 내리지 않는다.
빨갛게 물든 그녀의 손이 금세 제 빛깔을 찾을 만큼, 그의 얼굴은 여전히 뜨거운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틀렸어.
치료사의 말이 재차 그녀의 뇌리를 스친다.
맥박이 너무 약하고, 숨만 쉬고 있는 꼴이라며 중얼거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말대로, 카엘의 숨소리는 귀를 기울여야만 겨우 들려오며, 목을 짚어도 맥박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이따금 그의 가슴에 귀를 바짝 대어,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를 들어야 할 정도로 쇠약해진 상태이다.
그래도 그는 틀리지 않았다.
틀린 건 치료사이다.
‘한두 번 이랬던 게 아니야.’
카엘이 축 늘어져서 움직이지 못한 적은 수없이 많으며, 지금처럼 숨이 끊어질 듯이 약했던 적도 제법 된다.
그러나 심장만큼은, 어떠한 때에도 멈춘 적이 없다.
두근, 두근.
조금 느릿하긴 해도 선명한 울림으로, 자신의 주인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단 한 번도, 그의 심장이 일을 놓은 적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꼭 다시 깨어날 거야.’
무겁게 내리누르는 불안감을 떨치려 고개를 세차게 흔든 후, 그녀는 이를 앙다물고 다시 작업에 착수했다.
한 번 끓이고 식힌 물을 몇 방울씩 그의 입에 떨어뜨린다.
기침을 하는지 작게 들썩거리는 어깨가 진정될 때까지 토닥인 후, 그새 데워진 이마 위의 수건을 다시 적신다.
그릇에 떠온 물이 1/3 정도 줄어들 때까지 반복한 다음, 차가운 물에 적신 수건으로 그의 얼굴과 목을 닦는다.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손을 따라하듯, 그녀의 입 역시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쉼없이 말을 꺼냈다.
괜찮다. 내 말 듣고 있는 거 안다.
금방 열이 내릴 거다. 그러니 괜찮다.
자신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조차 깨닫지 못한 채, 메린은 계속해서 손을 움직이며 그에게 말을 걸었다.
둘 중 하나라도 잠깐 멈추게 되면, 카엘은 정말 떠나가버릴지도 모른다.
그 근거 없는 생각으로 머릿속을 꽉 채운 채.
‘나 두고 가지 마.’
의미를 되새기지 않으면서 속으로 되뇌었다.
‘네가 있어야 돼.’
그래야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들을 듣고, 화를 내는 사람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걸 참을 가치가 있다.
그가 있어야만, 사람의 흉내를 내는 의미가 있다.
‘네가 없으면, 나는……’
사람들의 말처럼, 정말로 괴물이 될지도 모른다.
메린은 지난밤에 꾼 꿈을 떠올리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기를 잠시, 다시금 덤덤히 그를 바라보며 빨갛게 달아오른 뺨을 감쌌다.
손이 데일 것 같은 뜨거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너밖에 없었어.’
처음 만나는 그녀에게 동정심도, 적개심도, 꺼리칙함도, 심지어 호기심조차 품지 않은 건 카엘뿐이다.
정작 본인은 기억도 못하는, 그만큼 숨쉬듯이 자연스럽게 따스함을 준 것도, 카엘밖에 없는 것이다.
메린은 식을 줄 모르는 그의 뺨을 가만히 어루만지며, 그와 처음 만났던 때를 돌아보았다.
지금도 생생히 떠올릴 수 있다.
거대 멧돼지를 죽이고 며칠 후, 여느 때처럼 숲을 쏘다니던 메린의 귀에, 여러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작은 호기심에 나무 위를 타면서 그리로 향했으나, 그녀가 도착했을 때엔 이미 상황이 다 끝난 듯했다.
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깡마르고 작은 아이가 넘어져 있고, 그 주변엔 물고기 여러 마리가 바닥에서 파닥거리고 있다.
작은 양동이와 낚시대로 굴러다니는 걸 보니, 호수에서 낚시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던 듯했다.
아이는 비실비실 일어나 흩어진 물고기들을 잠시 멍하니 보더니, 이내 눈가를 훔치며 훌쩍이기 시작했다.
물고기엔 발이 달려 있지 않으니 그냥 일어나서 주우면 될 텐데, 왜 그걸 못하고 우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맨날… 내가 뭐 했다고… 우으…….”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중얼거리는지, 메린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직전에 들린 웃음소리에서 상황을 유추하기에는 너무나도 어렸던 탓이다.
‘바보인가봐.’
물고기를 주울 생각을 못하는 걸 보니, 마을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얼간이라는 존재가 분명하다.
달리 재미있어 보이는 것도 없으니 그냥 가려 했으나, 아이가 양동이를 질질 끌면서 물고기를 주우려 하는 모습에 발을 멈추었다.
제대로 꼬리를 잡지 못하고, 설령 잡더라도 물고기가 파닥거리자 도로 떨어뜨린다.
그게 두세 번 되풀이되자, 아이는 파닥이는 물고기를 내려다보며 좀더 크게 훌쩍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다시 손을 뻗기를 여러 번, 기어코 양동이에 물고기를 넣는 데에 성공했다.
그 모습을 보자, 어쩐지 가슴속이 조금 울렁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엇 때문에 그런 이상한 느낌이 드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메린은 아이가 두 번째 물고기와 분투하기 시작했을 때에 나무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그런 뒤, 아이의 손에서 양동이를 홱 빼앗아 눈 깜짝할 사이에 물고기들을 전부 주워담았다.
그리고는 놀란 눈으로 자신을 보는 아이에게 양동이를 내밀었다.
“자.”
“……”
“가져가.”
도통 움직이지 않길래, 메린은 양동이를 아이에게 떠안기듯 넘겨주고서 휘적휘적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째서 자신이 그런 짓을 한 것인지 고개를 갸웃하면서.
“저, 저기, 잠깐만……!”
불현듯 들린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아이가 두 손으로 양동이를 든 채 조금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그리고는 자신을 빤히 보는 그녀와 마주보며 헤실 웃었다.
“그, 도와줘서 고마워요.”
아이는 그 말과 함께 양동이를 내려놓더니, 그녀가 주워 준 물고기 중 하나를 두 손으로 꽉 잡아서 내밀었다.
“구우면 맛있어요. 답례로 드릴게요.”
“답례? 그게 뭐야?”
“네? 아, 응, 도와줘서 고마우니까 주고 싶어요. 저녁으로 드세요.”
고마워서 주고 싶다.
여태껏 들어보지 못했던 말에, 메린은 속이 덜컹하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 때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진 탓에, 그녀는 멍하니 눈을 끔벅거리면서 아이가 내미는 대로 물고기를 받아들었다.
그러자 아이는 한층 더 밝게 웃으면서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양동이를 들고 다시 비틀비틀 걸어가기 시작했다.
“고마워요……?”
메린은 망연히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이가 했던 말을 나지막이 되뇌었다.
이내 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 후에도,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젠 움직이지 않는 물고기를 손에 꽉 쥔 채.
그날 이후, 어째서인지 아이가 헤실 웃는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녀를 똑바로 보던 푸른빛 눈동자도.
그 뒤로 꽤 오랫동안 아이를 다시 보지 못했으나, 일곱 살이 되던 해에 그때 만났던 아이가 깜깜한 숲 속으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그래서 메린은 아이의 뒤를 따라갔고, 그로부터 이틀 뒤에 이름을 듣게 되었다.
아이의 이름은 카엘.
이 마을에서 누구보다도 약한 사람이었다.
그 감각들은 아직도 선명하다.
처음으로 들은 ‘고맙다’는 말에 느낀 가슴속의 울렁거림, 그의 말대로 구워 먹은 생선의 맛,
그리고 물고기를 받아든 그녀에게 지었던 그 웃음은, 지금 떠올려도 가슴속이 뭉글하게 데워지는 것 같다.
그 따뜻한 느낌이 좋아서, 그를 다시 만난 이후부터 쭉 따라다녔다.
껴안는 잠버릇이 있는 그의 팔 안이 무척이나 포근해서, 내키지 않아 하는 그를 보채어 술래잡기를 했다.
정말로 겁을 먹은 그를 뒤쫓는 것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놀이가 끝나고 지쳐서 잠든 그가 자신을 베개 삼아 껴안는 걸 노린 것이었다.
그리고 침대에 엎드려 자는 자신을 쓰다듬던 손길이 좋아서, 그가 앓아 누웠을 때마다 간병하겠다고 자청하고 나섰다.
그러다 따스함이 아닌, 카엘 자체에 중독되기라도 한 것일까?
어느 날부터, 그를 하루도 보지 않고는 제대로 생활할 수 없게 되었다.
그의 부루퉁한 얼굴이라도 마주하며 짤막한 아침 인사라도 나눠야지만, 속이 어수선해지지 않고 차분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인사를 나누러 왔더니, 어째서인지 안에서 싸한 공허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기이한 느낌에 의아해하며, 그녀는 문을 열고 들어가 곧바로 그의 방 문을 열어보았고,
카엘?!
침대에서 떨어진 것처럼 쓰러져 있는 그를 발견한 것이었다.
‘어제까진 멀쩡했는데.’
뜨뜻해진 수건을 다시 적셔 그의 이마에 올리며, 굳게 닫혀 있는 두 눈을 마주본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는데도, 두 눈꺼풀은 여태 단 한순간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그 사실을 되새기자, 어쩐지 가슴속이 꽈악 죄여오는 것 같았다.
‘1월에 이렇게 아픈 적은 없었는데.’
얼음처럼 차가운 물을 쉴 틈 없이 묻히고 바깥 공기를 실컷 맞게 해도, 그의 얼굴은 여전히 절절 끓는 것처럼 뜨겁다.
물약은 듣지 않는 걸 넘어, 아예 목 뒤로 넘기지도 못했다.
기침할 기운도 없다는 듯, 어깨만 들썩거리면서 전부 토해버린 것이었다.
“카엘…….”
그의 손을 꼭 잡은 채 가슴 위에 엎드렸다.
여전히 들려오는 심장소리에, 두 눈이 뜨거워지면서 눈물이 솟아났다.
“축제, 같이 가자며……? 근데 이러기냐……?”
일주일도 조금 더 전, 카엘은 그녀를 바라보면서 축제에 같이 가자고 말했다.
푸른빛 두 눈동자를 반짝이며, 여지없이 진중한 얼굴로.
그런 그가 어쩐지 여느 때와 다른 것처럼 느껴져, 그녀는 평소처럼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 뒤로 아침에 일어나면 맨 먼저 달력을 보고, 축제날이 하루하루 다가온다는 걸 되새기게 되었다.
그때마다 그의 그 표정이 뇌리에 스치면서, 어쩐지 맥박이 조금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축제에서 카엘과 무엇을 할지 상상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처음으로 축제날을 기다리며 기대했는데.
‘이래선…… 축제는커녕…….’
다시 눈을 뜨지 못하는 게 아닌가?
그 생각이 미치자, 그녀는 몸을 벌떡 일으키며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결코 그런 일은 없다.
그는 반드시 눈을 뜰 것이다.
이대로 죽어버리는 짓 따위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야. 아니야. 넌 안 죽어. 절대 안 죽어. 꼭 살 거야. 꼭, 반드시, 눈 뜰 거야……!”
메린은 눈가를 훔치고 다시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창 밖, 저 멀리서 들려오는 축제 준비의 소음을 한 귀로 흘려버리면서.
이윽고 파란 하늘에 붉은 노을이 끼고, 이윽고 검푸르게 물들어가면서 사위에 어스름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카엘은,
“우으… 카엘……….”
여전히,
열에 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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