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8화 〉 외전 10) 여기, 바깥에서 (Side : Rlona) (1)
* * *
돌을 깎아 만든 제단이 진동한다.
그 위에 눕힌 소녀가 쇳소리를 내지른다.
제단 앞에 선 남자가 새의 머리뼈가 달린 지팡이를 불규칙적으로 흔들면서 낮게 중얼거린다.
“오소서. 오소서. 어둠 속을 기시는 주여.”
소녀가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가슴을 부여잡으며 앞으로 굽힌다.
이내,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붉은 뼈다귀 둘이 작은 등을 뚫고 나온다.
무슨 다리나 팔처럼, 끝부분에 작은 뼈가 세 가락으로 나뉘어져 있다.
등살이 찢기는 고통 때문인지, 소녀는 새된 비명을 지르며 눈물을 쏟는다.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 눈에서, 시커멓고 끈적이는 물이 벌컥벌컥 쏟아져 나와 제단을 새로 칠하고 있었다.
“형제의 피를 갚아주소서. 자매의 눈물을 되돌려주소서. 고통에 응하여 약속된 복수를,”
“줄 거 같아요?”
무감정한 목소리가 남자의 기도를 뚝 잘라버린다.
땀을 흘리며 간청하던 남자의 두 눈에 경악이 차올라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 남자의 눈에, 밤하늘에서도 보지 못할 금빛 반짝임이 스쳤다.
그 반짝임이 무엇인지, 남자는 영영 알 수 없으리라.
황금보다도 찬란한 빛을 눈에 담은 순간, 그의 삶이 끝을 맺었기 때문이다.
푸드득.
머리가 으깨진 남자의 시체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진다.
바로 뒤이어, 금빛 기운이 일렁이는 철퇴가 가슴을 내려친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울리면서 시체가 두 조각이 난다.
바닥이 움푹 패인 건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뒤늦게 바닥을 붉게 적시는 고깃덩어리.
사제는 무정히 그에게서 눈을 돌리고 성큼성큼 제단에 다가갔다.
등에서 돋아난 두 뼈다귀 다리는 허공에서 흐느적거리고 있고, 소녀의 몸은 앞으로 접힌 채 펄떡거리고 있다.
“아, 아아, 아……”
소녀는 그 자세로 고개를 떨군 채 짧은 신음을 흘렸다.
고통 때문일 터이긴 하나, 열이 담겨 있어서 그런지 야릇하게 들린다.
넝마가 가리지 못한 살결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기도 하니, 모르는 사람이 보면 소녀가 열락에 빠진 것처럼 보이겠지.
어쩌면 그 점을 노려서 영양…… 부정을 섭취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제는 소녀의 다리를 적신 백탁액을 보며 홀로 수긍한 후, 주저없이 철퇴를 들어올렸다.
“살…려주……”
“못합니다.”
콰직.
뼈다귀째로 등이 뭉개진다.
“제 일이 아니거든요.”
그 반동에 몸이 튕기며 드러난 배와 가슴에 이어, 멀거니 천장을 보는 머리가 제 형태를 잃어버린다.
그뿐 아니라, 사방으로 튀겨간 살점까지도 치직거리면서 바싹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잿더미만 남은 제단.
사제는 무표정한 얼굴로 금빛 눈동자를 깜빡이며 입을 달싹였다.
“죄악의 창구를 단절하노라.”
기도보다는 선포에 가깝다.
누구에게 향하는지 모를 말을 읊조린 후, 철퇴가 가차없이 제단을 내리쳤다.
파앙—!
쇳덩어리가 닿자마자 제단이 굉음을 울리며 펑 터져버렸다.
사제는 그 잔해를 잠시 내려다본 후, 발걸음을 돌려 그 자리를 떠났다.
굽이진 복도를 걸어, 문을 열고 창고에 들어선다.
바닥에 널부러진 시체를 넘어, 유일하게 멀쩡히 서 있는 선반에서 연노랑색 치즈덩어리를 집었다.
그리고 코를 바짝 대고 킁킁 냄새를 맡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한 입 베어먹었다.
크림처럼 흘러내리면서 텁텁한 내음이 희미하게 입 안을 채운다.
숙성이 조금 덜 된 것 같기도 하지만, 날것으로 먹기에는 딱 알맞은 경도의 치즈이다.
‘빵이 고프네.’
혹은 밍밍한 비스킷과 어울릴 것 같다.
그 위에 청포도알을 하나 곁들이는 것도 괜찮겠지.
‘오늘 저녁에 쓰자.’
어차피 오늘도 야영을 하게 될 터.
규례상 조미료로 간을 할 수 없으니, 수프에 치즈를 넣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사제는 그렇게 생각하며 입으로 먹은 부분을 손으로 뜯어낸 다음, 치즈덩어리를 배낭에 넣었다.
그리고 치즈 근처에 놓인 사과 하나를 집어 우적우적 씹어 먹으며, 창고를 뒤로 했다.
마침내 바깥으로 나와, 푸른 하늘 아래에 선다.
사제는 일을 마쳤음을 실감하며, 아무도 없는 마을에 서서 크게 기지개를 켰다.
가을이 한창인 하늘은 평소보다 훨씬 더 짙은 파랑색을 띠고 있다.
그 빛깔은 어딘지,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의 눈을 떠올리게 한다.
마을 곳곳에 자리한, 붉게 물든 단풍나무 잎에서는 또 다른 사람이 생각난다.
그 주변 바닥을 적신 검붉은 빛깔에선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참으로 다행이지 않을 수 없다.
누구나 기피하는 핏빛보다는, 일반적으로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단풍에서 사람을 연상하는 게 좋은 법이다.
피를 보고 자신을 떠올렸다는 걸 알면, 아무리 그 사람이라 해도…… 아니, 지금의 그 사람이라면 분명 뾰로통해질 것이다.
마지막에 봤을 때도 그 정도의 감성을 갖췄었으니, 그보다 더 세월이 흐른 지금은 더더욱 감성적이게 되었을 테니까.
‘아니, 본인은 가만히 있겠군.’
되려 그 옆사람이 표정을 구기며 항의할 것이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그렇죠, 카엘 님?’
높이 펼쳐진 하늘을 올려다보며, 전투사제 로나는 검붉은 대지 위에서 홀로 미소 지었다.
강림저지 성공.잔여조각 제거 완료.
생존자 전무.
임무완료 보고를 들은 대사제는 눈썹 하나 꿈적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다. 재정비가 필요한가?”
“내일 바로 출전 가능합니다.”
“그렇군.”
대사제는 그녀가 제출한 보고서를 빠르게 훑은 후, 무감정한 눈을 들었다.
무언가를 관찰하듯이, 그녀의 두 잿빛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틀 뒤로 늦추겠는가? 찰스 왕자의 세례식이 있다.”
“아니요. 대언자께서 필히 참석하라 명하신 것도 아니니, 임무에 임하도록 하겠습니다.”
“차후 왕세자가 될 몸이기에, 왕국 전역의 귀족들이 모일 예정이다. 토레스햄 남작도 식솔들을 이끌고 자리할 터. 그럼에도 불참하겠는가?”
그 질문에, 로나는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대꾸했다.
“그게 저와 무슨 상관인지요?”
“용사였던 자가 그 휘하에 있지 않은가? 남작과 함께 자리할 가능성이 크다.”
“……”
대사제의 속셈은 명료하다.
창조주의 택함을 받아 대재앙을 물리쳤던 빛의 대행자, 카엘 에스트렐이 올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가 어떠한 반응을 하는지 보려는 것일 터.
벌써 6년도 넘었건만, 아직도 그녀를 주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대체 언제까지 할 셈이야?’
그녀는 작게 한숨을 쉬고서 입을 열었다.
“그가 오건 말건, 저와 상관없습니다. 그에게서 죄악이 스며든 징후가 보였으면 몰라도.”
“그렇지는 않다.”
“그럼 정말로 저와는 무관하군요. 출전일을 늦출 이유가 없습니다.”
한차례 말을 마친 후, 로나는 무던히 자신을 바라보는 대사제에게 이어 말했다.
“대사제님, 언제까지 이게 이어지는 겁니까? 이제 거의 7년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만.”
“정확히 그날로부터 6년 하고도 한 달이 흘렀지. 7년차가 되기엔 아직 멀었다.”
“그럼 7년 채우는 건가요?용사와 그 일행은 그저 사명을 위해 함께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데 말이죠.”
“약 3년 전에도 그리 말하긴 했지. 메린 에스트렐이 난산으로 수술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서.”
“……”
용사의 사명, 대재앙 아트라토스를 물리친 여정에 함께한 그녀에겐 제약이 걸려 있었다.
다른 전투사제들이 자유로이 길을 다니면서 의무를 수행하는 반면, 그녀는 매번 대사제에게서 직접 임무를 받고 결과를 보고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대사제를 비롯한 여러 감독사제들이 그녀에게 말을 던졌다.
에스트렐 부부의 위치가 확인되었다.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태어났다.
쌍둥이를 낳았는데 난산이었다.
그뿐인가?
동부 지역으로 그녀를 보내면서, 근처에 토레스햄 남작의 영지가 있다는 정보를 주기까지 했다.
조금 전처럼, 그녀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건지려는 듯이 빤히 쳐다보면서.
‘진절머리 나.’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자신을 비롯해, 교단의 사제들은 모두 사람이 아닌 도구이니까.
사람이 사람을 믿는 데엔, 의외로 객관적인 요소보다는 감정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사제는 창조주와의 연결을 위해 영혼을 비운 자.
즉, 스스로 감정을 덜어내어 ‘사람’의 정의를 벗어난 자들이다.
감정의 보조를 받을 수 없는 만큼, 더 많은 성과와 관찰로 확증을 심어야 한다.
그러니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당연하나…… 다른 사제와 달리 감정억제 처치를 받지 않아서 그런지, 로나는 자신의 상황이 불만스럽기 그지없었다.
“좋다.”
그녀의 찌푸린 얼굴을 무감정한 표정으로 마주하며, 대사제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간의 성과와 관찰을 기반으로, 그대가 여전히 주의 검으로서 굳게 서 있음이 판명되었다. 이후의 보고는 서면제출로 충분하다. 또한 유랑을 허가하니, 매년 1월의 신년제에 복귀하는 것을 잊지 말도록.”
참 오래도 걸렸다.
로나는 그렇게 투덜대는 대신, 긴 한숨을 내쉬었다.
대사제에게 불평한다고 ‘의심해서 미안하다’ 같은 대답은 결코 나오지 않으니까.
아마 6년 전에 그녀에게 했던, ‘사람과의 오랜 접촉으로 기능저하를 일으켰는지 봐야 한다’던 말이 토씨 하나 달라지지 않고 되풀이될 뿐이리라.
그야말로 말이 심겨진 인형처럼.
그러니 이럴 때에는,
“예, 대사제님. 이후에도 사명에 전념하겠습니다.”
그저 알겠다고 하는 게 가장 좋다.
로나는 무미건조한 투로 대답하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대사제의 방을 나온 로나는, 어두침침한 복도를 걸어서 위층으로 쭉 올라갔다.
이내 지상과는 한 층 정도 낮은 곳까지 올라오자, 수련생들과 사제들이 각기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이곳과 아래층은 부엌과 식당, 자료실, 정비소 등의 시설이 모여 있기에 지하 신전에서 가장 활기가 넘친다.
그걸 감안해도 제법 밀집해 있는 게 의아스러워서 시계를 보니, 아니나다를까 점심 시간이었다.
‘먹을까?’
배는 그리 고프지 않으나, 이후에 정비를 하다 보면 허기가 질 터.
정해진 시간 외엔 식당을 운영하지 않으니 그냥 먹는 게 나을 것이다.
그렇게 결정하고 식당에 들어가려는데,
“아, 로나 사제님!”
주위 풍경과 어울리지 않게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역시나 검은 수련복을 입은 낯익은 소녀가 환히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돌아오셨었군요! 오늘 오신 건가요?”
“네, 마크레나. 지금 막 대사제님께 보고 올린 참이랍니다. 무언가 용건이라도 있나요?”
빙그레 웃음을 띄우며 묻자, 소녀는 고개를 저으며 배시시 웃었다.
“아뇨. 보이시길래 인사드리고 싶었을 뿐이에요! 아, 혹시 식사 아직 안 하셨나요? 그럼 같이 드시지 않겠어요?”
“……”
로나는 미소를 띤 얼굴 그대로 소녀의 뒤쪽을 살폈다.
아마 동기일 듯한 다른 수련생들이 긴장이 서린 얼굴로 이쪽을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다.
아마 소녀가 자신에게 식사 권유를 한 게 탐탁지 않은 것이리라.
‘뭐, 당연하지.’
서품을 받지 않은 수련생은 아직 ‘사람’이다.
바깥 사람들이야 사제들이 만드는 표면만 보기에 그들에게 경의를 보내나, 수련생들은 일반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교단의 내면을 보게 된다.
사람 하나를 도구로 격하시키는 과정을 지켜보고, 차후엔 직접 경험하게 된다.
그렇기에 수련생들은 사제들에게 존경과 함께 두려움을 품는다.
게다가 자신은 교단의 가장 흉악한 결과물인 전투사제이니, 수련생들이 꺼려하는 것도 당연하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 선, 이 수련생이 특이한 종자인 것이다.
로나는 자신의 눈길을 마주한 수련생들이 흠칫 놀라며 몸을 움츠리는 걸 본 후, 다시 소녀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냥 동기들과 드시지 그러세요? 그 편이 훨씬 즐거울 텐데요.”
“사제님이 계시면 훨씬 더 즐거울 거예요! 제가 오늘 오후에 드디어 마지막 과정을 밟거든요. 보직은 다르더라도 사제님 역시 서품을 받으셨으니 조언이라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마지막 과정? 아아……”
무엇인지 알 것 같다.
로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쉽게도 저는 그 과정을 건너뛰었답니다. 그러니 별 도움을 드릴 순 없겠네요.”
“네? 사제가 되려는 수련생은 모두 받는다고 들었는데요.”
“저는 그럴 필요성이 없게 태어났거든요. 하지만…… 그렇네요……”
뒷말을 흐리며 무언가 생각하는 듯이 손가락으로 입가를 톡, 톡 두드리는 로나.
그러다 이내, 희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서품에 대해서는 무언가 말씀을 드릴 수 있을지도 모르니, 저녁 식사 때에 뵙죠.”
“정말요?! 와!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먼저 들어갈 테니, 동기들과 편히 드세요.”
친절을 내포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남긴 후, 로나는 소녀가 재차 건네는 고맙다는 인사를 들으면서 식당에 들어섰다.
오늘의 점심은 치즈를 갈아 넣은 오믈렛, 베이컨 감자수프, 그리고 약간 딱딱한 빵.
수련생들은 조금 아쉽다는 표정으로 음식들을 보고 있으나, 당장 아침까지 밍밍한 수프를 먹어야 했던 그녀로서는 진수성찬이나 다름없었다.
그 음식들이 담긴 쟁반을 들고 벽 가장자리로 향하자, 이미 한 발 앞서 모여 있던 붉은 사제들이 일제히 그녀에게 시선을 주었다가 다시 그릇을 내려다보았다.
그들 사이의 빈 자리에 앉자,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무미건조한 인사가 툭 떨어졌다.
“왔었구나.”
“와 있었지요.”
“여전하냐?”
“그저께도 끝장냈지요.”
“아니, 그거 말고.”
무심히 식기를 움직이던 손을 우뚝 멈추고, 수염이 지저분하게 나 있는 전투사제가 퀭한 눈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제약, 아직도 있냐고.”
“아, 그거요? 모처럼이니 듣고 축하해주세요. 대사제님이 드디어 괜찮다고 판정을 내리셨어요.”
“하, 축하는 무슨.”
건너편의 젊은 전투사제가 코웃음을 쳤다.
“애초에 그런 제약이 걸리는 것 자체가 수치 아니냐? 얼마나 미덥지 못하면…….”
“그럴 만도 하죠. 저 같은 사례가 없으니까요.”
로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하며 오믈렛을 한 입 크기로 잘랐다.
“당신들은 원래부터 채워져 있던 걸 의도적으로 털어내고, 다시 차지 않게 꽉꽉 틀어막았죠. 저는 원래부터 비어 있어서 그런 걸 안 했으니, 예기치 않게 채워질지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대사제님들이 우려하실 만해요.”
아무리 철저히 처치를 한 전투사제일지라도, 나이를 먹으면서 다시금 감정이 일렁이면서 고장이 나곤 한다.
그러니 아무 처치를 하지 않은 그녀의 상태를 우려하는 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조치인 것이다.여러모로 짜증이 나긴 하지만.
그러나 그 답답한 생활도 이제 끝.
내일부터는 창조주가 이끄는 대로, 그녀의 직감과 코가 알려주는 대로 다니면서 죄악을 처단할 수 있다.
그 사실이 내심 기쁜 로나였다.
“그래, 할 수 있을 때 실컷 시끄럽게 떠들어대라. 곧 처치를 받을 테니.”
“그럴 일 없거든요!”
뾰로통하게 쏘아붙이는 그녀에게 아랑곳하지 않고, 전투사제들은 저마다 그릇을 비우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아주아주 조금 울컥했으나, 로나는 성을 내는 대신 빵을 뜯으면서 투덜대었다.
“흥, 질투하긴.”
“………”
주변 전투사제들의 손이 일순 멈칫했다.
그러나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고, 다시 손을 움직이며 입으로 음식을 나르기만 했다.
그들이 그녀를 시샘한다는 건, 6년 전에 그들 자신이 인정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본래부터 감정이 희박하기에, 가득 차 있던 것을 잃어버리는 상실감을 겪지 않고도 사제가 되었으므로.
정말 우습기 그지없다.
코웃음을 쳐야 하는 건, 건너편의 젊은 전투사제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다.
가슴속에 구멍이 뻥 뚫려버린 이 느낌…… 넌 모르겠지. 원래부터 텅 비어 있었으니까.
왜 모른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저 익숙해져서 둔감해진 것일 뿐인데.
어제까지의 나를 버리는 의식인데, 그걸 안 하다니. 오래 못 가겠구만.
그렇게 중얼거리던 선배도 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정말 기가 막히는 평가이다.
그녀가 달리 버릴 게 없을 만큼 텅텅 빈 존재라는 걸 이해하지 못한 것이리라.
정작 그 평가를 내린 선배는 작년에 고장이 나서 악마에게 먹혔다는 듯했다.
‘어제까지의 나’라는 걸 덜 버렸던 모양이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사람에서 격하된 존재들인 주제에, 누구 앞에서 잘난 척인지.
사람이 아닌 삶을 산 세월을 따지면, 이들은 오히려 자신을 대선배로 모셔야 한다.
속으로 그렇게 콧방귀를 뀌며, 빵을 우걱우걱 씹는 로나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