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465화 (465/475)

〈 465화 〉 외전 11) 머무르는 이유 (Side : Witson) (4)

* * *

주위를 경계하면서 아래로 내려간 지 이틀.

장소를 잘못 찾았나 싶을 만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흘째 되는 날에 호수 바닥에 다다르고, 거북이를 통해 주변을 탐지하면서 일주해보아도 특별히 눈에 띄는 점은 없었다.

‘무언가 있을 줄 알았는데…….’

조건은 모두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

호수 속은 마력이 물의 형태를 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신비’로 가득 차 있다.

수면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이 약해지는 곳부터, 그럭저럭 연식이 된 숲의 웅덩이보다도 진한 마력이 흐르고 있었다.

이런 곳에 수십 명…… 아니, 어쩌면 소문을 들은 인간들 모두의 두려움이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문’을 만드는 데엔 한참 모자라도 ‘침입자를 찢어버리는 수호 괴물’ 정도는 만들고도 남을 텐데.

그러나 아무것도 없었다.

혹시 몰라서 하루쯤 더 바닥에 머물렀음에도 어떤 이상현상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돌아갈 수도 없고.’

제대로 원인을 파악해서 이 마을을 납득시키고, 이곳엔 보물이나 다른 세계로 가는 문 등, 그들이 꿈꾸는 건 그 어떤 것도 없다는 것을 확실히 주지시켜야 한다.

안 그러면 이 마을은 지금처럼 계속 호수에 탐구심을 품고 이런저런 상상을 펼칠 터.

그러도록 내버려두면, 이 호수는 은근한 시간을 들여서 자연이 생성한 미지가 아닌, 인간의 환상을 품은 유희거리로 전락해버리겠지.

‘미확인 생물 얘기가 나온 지금이 가장 적기인데.’

생존자가 아니라 사망자가 나와버렸으니, 반드시 괴생물체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걸 없애고서 ‘이거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그의 주장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데.

‘근데 왜 없냐고.’

거북이의 힘으로 물을 차단한 공간 속에서 빵을 우물거리던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 순간만 반짝 작동한 것도 아닐 거면서.’

­가능성은 있군.

속으로 한숨을 쉬며 투덜거리는 그에게, 불현듯 정령이 말을 건넸다.

­완전히 같지는 않으나 유사한 일이 있기도 하였으니.

‘응? 그랬나?’

­기억을 더듬어보라.

인간의 공포를 읽어서 탄생한 것이, 찰나의 순간만 존재했다가 사라지던 현상.

곰곰이 생각에 잠기면서 빵에 이어 사과주를 들이켜던 그의 뇌리에, 한 기억이 번쩍 스쳐 지나갔다.

‘미로.’

­그래.

소소한 사고가 생긴 탓에 폐쇄된 ‘끝없는 장서관’, 그 전신(??)이 갖추고 있던 방어장치가 비슷한 모습을 보이긴 했다.

혹시 여기도 그런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인가?

‘확인할 가치는 있군.’

위슨은 사과주가 든 병을 배낭에 넣어서 단단히 여민 후, 물을 차단하고 있던 경계를 허물어뜨렸다.

그리고 예전에 했던 것처럼, 물 속을 떠다니는 흐름을 붙잡고서 짧은 명령을 내렸다.

‘밝아져라.’

파앗—

그러자 일대가 순식간에 환해지는 것이었다!

끝에서 끝까지 훤히 내다보일 정도로 밝아진 시야에, 위슨은 약간 어처구니없기까지 했다.

‘와, 이렇게 원시적인 상태였어?’

­그만큼 인간의 힘이 모이지 않은 것이겠지.

8년이나 관심을 받았건만, 아직도 확연한 존재를 탄생시키지 못했다니.

어쩌면 다들 내심 ‘그런 거 없었으면 좋겠다’고 무의식적으로 바랐는지도 모른다.

소란과 평안 중에 전자를 택할 사람은 별로 없을 테니까.

‘그럼 뭐, 간단하네.’

­계획한 대로 이행하는가?

‘자작극이라는 게 좀 다르지만.’

그러니 기왕에 저지르는 거, 좀더 시끌벅적하게 하는 게 나을 것이다.

위슨은 또 다시 마력을 붙잡으면서 씨익 웃었다.

그 후, 호수 밖을 나온 위슨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담당사제는 상당히 메마른 눈으로 그를 보면서 대꾸했다.

“일의 전모가 파악된 건 무척 기꺼운 일입니다. 그런데 위슨 씨.”

“네.”

“굳이 방금처럼 해야 할 필요가 있었나요?”

“물론이죠.”

“……”

단호히 대답하는 위슨을 보는 사제의 눈초리가 한층 더 황량해진 듯했다.

다른 사제들도 탄식하듯 한숨을 쉬는 걸 보니, 누구 한 사람 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게 분명했다.

“호수가 폭발한 것처럼 터지고, 그 속에서 당신이 튀어나와서는 이 생물을 바닥에 패대기칠 필요가 꼭 있었다고요?”

“그럼요.”

“그리고 그 때문에 마을이 물바다가 됐는데, 꼭 그렇게 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는 거죠?”

위슨은 고개를 돌려 물이 고여 있는 바닥을 내려다보고, 벽에 달린 창문으로 물에 푹 젖은 사람들이 터덜터덜 걸어가는 걸 보았다.

그리고 다시 담당사제에게 시선을 돌려, 무척 딱딱한 얼굴로 자신을 보는 사제를 마주하며,

“당연하죠.”

망설임없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담당사제가 얼마 없는 감정을 전부 끌어올려서 무언가 말을 꺼내기 전에, 재빨리 이어 말했다.

“자, 보세요. 제가 저 안에서 딱 네 번 잤거든요? 이래봬도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으니, 제 기준엔 나흘을 보내고 닷새째에 바깥에 나온 겁니다.”

그런데 막상 호수 바깥에 나오니 무려 석 달이 지나 있었다.

시간이 훌쩍 흐르기를 바란 적은 없었으니, 어느 지점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는 모르나 호수 안에서는 시간이 느릿하게 흐르는 게 분명했다.

“즉, 사람들 눈엔 제가 엄청나게 오래 있다가 나오는 건데, 아무 일 없이 조용히 나와봐요. 위험 따위 하나도 없는 줄 알 거 아니에요. 그러니 가능한 요란스럽게 연출해야죠.”

“……그럼 그 꼴이 되신 것도 연출인가요?”

“조금?”

“하아아아…………”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푹 쉬는 사제.

그러는 것도 당연하다. 지금 그의 모습은, 한 마디로 완전히 엉망진창이었으니까.

등에 맨 배낭은 하나 상하지 않았지만, 정갈하게 묶었던 머리는 완전히 풀어헤쳐져 있고, 코트 역시 거의 넝마나 다름없이 너덜거리고 있다.

안에 입은 튜닉과 바지는 물론이고, 옷가지에 덮여 있던 살도 역시 무사를 면치 못했다.

오히려 그 꼴이 되면서 귀나 손가락 하나 잃지 않은 게 놀라울 정도이다.

사제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또 한차례 한숨을 쉬었다.

“사람들이 실망해서 떠나긴커녕 전설이 될 거 같은데요.”

“이렇게 증거도 챙겨왔으니, ‘호수에 깃든 사악을 물리쳤다’고 하면서 정화의식이라도 하시죠.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니니 괜찮지 않겠어요?”

사람의 공포에서 태어난 것이 사람을 잡아먹었고, 그런 게 가능할 법한 생물의 시신이 여기 있다.

애초에 이 호수는 악마 중의 악마, 사탄의 화신인 아트라토스가 남긴 상흔이니, 교단에서 정화의식을 할 명분은 차고도 넘친다.

“게다가 그간 호수에 빠져 죽은 사람들의 원념이 섞여 있기도 하고요. 그게 더 모이기 전에 정화하는 게 좋을 겁니다.”

“네, 그렇겠네요. 대언자께 보고드리고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고생하셨어요. 감사드립니다.”

“뭘요.”

웃으면서 손을 내젓는 위슨.

그런 그를 염려스러운 눈길로 보며 사제가 재차 입을 열었다.

“그런데 정말 치료 안 받아도 되시겠어요? 적어도 쉬었다가 가시지요.”

“아뇨, 괜찮습니다. 이거 보기만 그렇지, 별로 안 다친 거예요. 여기 있으면 괜히 관심을 끌 테니, 그냥 가는 게 나을 거 같습니다.”

“그럼 적어도 옷이라도 갈아입으시고……”

“괜찮아요. 널린 게 숲이니 적당한 데에서 갈아입죠, 뭐. 하늘에서 해도 되고요. 그럼 뒷일은 부탁드리겠습니다.”

위슨은 담당사제의 만류를 부드럽게 뿌리치면서 신전을 나섰다.

그런 뒤, 곧바로 바람을 타고 마을을 벗어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숲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바닥에 발을 딛자마자,

“큭……!”

그대로 풀썩 쓰러져버렸다.

“하…! 으윽……!”

사제에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통증이 꽤 심한 편이었다.

위슨은 눈앞이 흐려지려는 걸 이를 악물고 참으면서 몸을 뒤집었다.

그런 다음,손의 감각만으로 허리춤을 뒤져 병 하나를 바닥에 내려쳤다.

“끼잉…….”

연기 속에서 나타난 늑대가 곧바로 귀를 축 늘어뜨리면서 그에게 바짝 붙어, 그의 얼굴을 핥기 시작했다.

“역시 무리했어요오……!”

“……알잖아. 그냥 힘을 많이 써서 그래.”

물 속에서 싸우는 게 생각보다 제약이 심한 탓에, 예상보다도 더 고생을 하고 말았다.

덕분에 마을 사람들에게 ‘호수 안에는 이 괴물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걸 확실히 인지시킬 수 있었으니, 몸 여기저기에 상처를 입고 완전히 진이 빠져버린 보람은 있다.

다만, 늑대를 불러낸 걸 마지막으로 손가락 까딱할 힘도 남지 않게 된 건 예상을 한참 벗어난 일이긴 했다.

평소처럼 물약을 마셔서 상처를 회복할 수 없게 됐으니까.

당연히 정령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를 나타내듯이 늑대가 그의 머리를 가볍게 물면서 투덜거렸다.

“으으… 다 이를 거예요…! 네이멜이랑 카엘이랑 전부 다……!”

“안 돼…, 잔소리 듣는단 말야…. 그보다 아파…….”

“아프라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위슨은 잔소리 들어야 해요……!”

“으……”

그래도 그가 얼굴을 찡그리며 신음하자, 곧바로 끼잉거리면서 턱을 그의 뺨에 얹는 늑대였다.

자연히 늑대의 목에 얼굴을 묻은 꼴이 된 위슨은, 코에 풍겨오는 향기에 차츰차츰 통증이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그와 함께, 그의 의식이 점차 가물거리기 시작했다.

“조금… 잘게…….”

그를 위해 약초 향을 내어주는 늑대를 가만히 껴안으며 중얼거리자, 대답 대신 까끌까끌한 혀가 뺨을 한 번 핥았다.

간질거리는 느낌에 엷게 웃으면서 그대로 잠에 빠져든 위슨.

꿈조차 꾸지 않을 만큼 곤히 자던 그는, 무언가 가슴을 누르는 느낌에 얼굴을 찌푸리면서 눈을 떴다.

그리고 그대로 아연히 굳어버리고 말았다.

붉은 옷을 입은 사제가 그의 가슴에 엎드리고 있었으니까.

살짝 보이는 얼굴선을 확인할 필요도 없이, 위슨은 사제가 누구인지 곧바로 알아차렸다.

“어, 어라? 로나? 왜 여기에……?”

“………”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로나.

아무런 감정도 떠올라 있지 않은 두 잿빛 눈동자가 그를 향한 순간, 그녀가 표정을 홱 구기면서 그의 뺨을 쭉 잡아당겼다!

“아아악! 아파아파아파, 아파아아! 갑자기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애?! 지금 그런 말이 나와요?!”

맹렬하게 소리치면서 뺨을 뜯어내듯이 손을 놓은 로나는, 이번엔 그의 멱살을 잡고 끌어올리고서 아주 살벌하게 노려보았다.

“아무 말도 없이 석 달이나 안 보이더니!! 이런 데에서 이런 꼴로 드러누워 있어?! 그러면서 나한테 왜 그러냐는 말이 나와요?!”

“로나……?”

“실컷 걱정 끼쳤으면 미안하다는 말부터 해야 될 거 아냐!!”

숲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고함치는 로나의 모습에, 위슨은 벙벙한 얼굴로 눈을 깜빡이면서 입을 떼었다.

“어…? 걱정했어……?”

“그럼 안 해요?!”

정말로 찢어 죽이고 싶다는 듯이 두 눈을 부릅뜨면서 로나가 불을 내뿜듯이 쏘아붙였다.

“일이주에 한 번씩 찾아오던 사람이 갑자기 안 오는데! 어떤 말이 있던 것도 아니고, 내 쪽에서 연락할 방법도 없고!”

이제 질린 거구나.

그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설령 그가 정말로 싫증이 났다고 해도 아무 말없이 사라지지 않을 거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니 무슨 일이 생긴 거란 결론에 다다른 순간,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졌다.

로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그를 앞뒤로 흔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찾아다녔다고요! 숲이란 숲은 다 뒤지고, 동굴도 다 들어가보고! 그래도 안 보여서 부엉이탑에 갔더니, 네이멜 수장이 여기로 가라고 한 뒤론 안 보여서 걱정된다고 했고요!”

“저, 저기, 잠깐, 로나, 잠깐 이거 좀,”

“여기 호수에서 괴물이 나왔다고 해서 보러 간 건데, 그 뒤로 소식이 뚝 끊긴 거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걱정을 안 하냐고요!!”

그 이야기를 들은 로나는 곧바로 ‘바닥 없는 호수’로 향했다.

그리고 우연히 이 근처를 지나는데, 갑자기 땅에서 흙인형이 올라오더니 그녀에게 손짓하면서 숲 속으로 이끈 것이었다!

위슨은 로나의 손에 앞뒤로 세차게 흔들리면서 소리쳤다.

“테라, 너……!”

“흥!”

“왜 테라한테 그래요?! 당신이 잘못한 거잖아요!! 피투성이로 쓰러져 있는 게 잘못이잖아아아!!”

로나는 목이 터져라 소리친 후, 그를 밀어버리듯이 손을 홱 놓았다.

자연히 뒤로 풀썩 쓰러져버린 위슨은, 하도 흔들려서 어지러워진 시야를 회복하려 눈을 몇 번 크게 깜빡였다.

그리고 다시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또 다시 눈을 크게 뜬 채 굳어버리고 말았다.

“말 안 하고 갔으면… 멀쩡히 있던가……!”

뚝. 뚝.

동요라는 걸 모르던 잿빛 눈동자에서, 눈물이 방울져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완전 너덜너덜해져서…! 순간 죽은 줄 알았다고……!!”

“………”

“테라가 있으니까 살아있다는 건 알았어요…! 그래도 안 깨어나는 거 아닌가 하고……!”

“……아, 네가 고쳐줬구나. 근데 그렇게 심한 상처는 아니었는데.”

“어쨌든 다친 거잖아요!”

괜히 한 마디 했다가 고함만 받고 말았다.

이런 걸 두고 ‘매를 번다’고 하던가?

위슨은 자조하면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로나.”

그리고 이제 얼굴을 덮은 채 어깨를 떠는 그녀를 가만히 끌어안았다.

그의 온기가 무언가를 끊어버렸는지, 로나는 온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크게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미안해.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어. 네가 걱정할 줄은 더더욱 몰랐고.”

“날 뭘로 보는 거야!!”

“억.”

순간, 등에 묵직한 타격이 작렬하면서 그의 숨이 턱 막혀버렸다.

그 탓에 그가 기침하자, 로나가 한층 더 크게 울면서 그를 안아오는 게 아닌가?

본인이 때려놓고 뭐하는 건지 모르겠다.

위슨은 헛웃음을 켜면서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내가 왜 당신 걱정을 안 해! 제일 오래 사귄 사람인데에에!”

“그렇겠구나. 응. 미안해.”

속삭이는 그의 얼굴엔 엷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녀에게 들키면 이번엔 진짜로 얻어터지겠지만, 그래도 그는 웃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걱정을 받았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기뻤으니까.

“흑… 우으… 싫증났다고 해도 받아들일 테니까… 말하고 없어지란 말이에요…….”

“싫증날 리가 없잖아. ……응, 다음부턴 꼭 말하고 갈게.”

“기본 아니냐고…. 대체 뭘 배운 거야…….”

“미안.”

자신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훌쩍이는 그녀를 토닥이며,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속삭인다.

자신을 꽉 안는 그녀의 손길에, 가슴이 꼭 죄이는 듯하면서 벅차오른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희미한 기쁨이 담긴 그녀의 속삭임.

위슨은 끓어오르는 격정에 그대로 몸을 맡겨, 그녀에게 깊이 입을 맞추었다.

눈물에 젖어서 짜디짠 입술을 몇 번이고 포개면서, 그녀에게 자신이 지금 여기에 살아있음을 전했다.

그런 뒤, 눈물에 젖은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고마워, 로나. 찾아와줘서.”

“……다음엔 안 찾을 거예요.”

중얼거리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품에 있는 그녀의 모습에 깊이 미소 짓는 위슨.

문득, 수장이 했던 이야기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너는 사랑하는 사람을 항상 떠나보내는 입장이란다.

수장의 말은 대부분 옳지만 그것 하나는 틀렸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항상 떠나보내는 입장에 있지 않다.

다른 사람처럼, 그 역시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날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는 마법에 자신을 완전히 물들이지 않은, 엄연히 힘에 한계가 있는 ‘사람’이니까.

“다음에 또 그래봐요. 진짜 묵사발 내버릴 거예요.”

“안 찾을 거라며? 근데 어떻게 묵사발을 내려고?”

“……으으으! 나쁜 사람이야, 진짜!”

“아하하.”

빽 소리지르는 그녀를 꼭 안으면서, 위슨은 정말 즐거운 듯이 웃었다.

역시 한동안은 계속 이대로 있는 게 좋을 것 같다.

‘적어도 네가 있는 동안엔, 이대로 있을게.’

자신이 없어진 것에 불안을 느껴버린 이 사제를 위해.

그리고 여전히 이 사제를 사랑스럽다고 느끼는 그 자신을 위해서.

그녀가 찾아온 게 이렇게 기쁜 것도, 그녀가 우는 모습에 가슴이 아픈 것도, 전부 다 ‘사람’이기에 느끼는 것일 터.

그러니 가능한 오랫동안, 그 감정들을 온전히 느끼면서 깊이 새기고 싶다.

언젠가 찾아올 끝날까지.

­­네가 제대로 각오했으면 할 뿐이야.

‘……네, 각오했어요. 수장님.’

반드시 그 끝을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마지막 날까지 고이 기억하리라.

속으로 굳게 맹세하며, 위슨은 품 안의 소중한 보물에 입을 맞추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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