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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468화 (468/475)

〈 468화 〉 외전 12) 닻을 내릴 곳 (Side : Bluebell) (3)

* * *

메린은 얼이 나간 듯이 문 앞에 서서 블루벨을 내려다보다가, 돌연 표정을 굳히더니 그녀의 손을 잡고 문 안쪽으로 쭉 잡아당겼다.

자연히 그녀의 몸이 앞으로 쏠려버렸고, 그 탓에 눈을 쓸어모으면서 집 안에 들어가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게 신경을 더 건드려버린 것일까?

메린은 그녀의 발이 문지방을 넘자마자 손을 홱 놓아버렸고, 덕분에 블루벨은 얼음을 타듯이 쭉 미끄러지다가 데굴데굴 구르면서 들어간다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평소 같으면 고개를 홱 쳐들면서 항의할 대우이나, 지금 그녀는 온 몸에 힘이 없는데다 안에 들여준 것만으로도 고맙게 여겨야 할 형편이다.

몇 시인지는 몰라도 한밤중에 쳐들어온 그녀에게, 자신을 박대한다고 토로할 자격 따위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그래도 섭섭한 건 사실이기에, 블루벨은 그 마음을 말이 아닌 눈물에 실어 보냈다.

이윽고 철컥 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 미안.”

“……”

메린이 짤막하게 말을 던지면서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전혀 믿기지 않지만, 고의로 그녀를 내던진 게 아닌 듯했다.

“문을 빨리 닫아야 했어. 애들이 감기에 잘 안 걸리긴 하지만, 아직 돌이 안 된 아이가 있거든.”

그뿐 아니라, 자꾸 무너지려는 그녀의 몸을 지탱한 채 눈을 털기까지 해주고 있었다.

비록 퍽,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숨이 턱턱 막히는 타격이 전해졌으나, 아무튼 그녀를 생각해주고 있는 건 분명했다.

같은 부위를 서너 번씩 두드리는 건, 눈이 찰싹 달라붙어서 잘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리라.

점성을 지닌 눈 따위는 태어나서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없으나, 따져 물을 기운이 없기도 하니 그냥 그렇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메린은 그녀의 등에서 배낭을 풀어서 한 손에 들더니, 다른 손으로 그녀의 팔을 잡고 안으로 질질 끌듯이 데려갔다.

그런 뒤, 어느 의자 근처 바닥에 배낭을 내려놓더니, 바로 그 의자에 블루벨을 앉혀 주었다.

그러자 가까이에서 미약한 열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 기운은 없어서 시선만 살짝 움직이니, 메린이 벽난로에 장작을 더 집어넣고 부지깽이로 살살 뒤적거리는 게 보였다.

“잠깐 있어봐.”

덤덤하게 말을 하고서 어디론가 걸어가는 메린.

이내, 블루벨의 귀에 여러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빠 온 거 아니지? 누구야?”

“축제 때 놀러 오기로 한 귀 뾰족이.”

메린이 어린 소년에게 대답하는 말소리에 이어, 물을 따르는 소리와 함께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블루벨을 위해 차라도 끓여주려는 듯했다.

‘귀 뾰족이’라는 말은 어쨌든, 그 메린이 자신에게 차를 대접해주려 한다는 것에 또 다시 코를 훌쩍이는 찰나,

“에엥? 축제 오늘 아닌데? 하나, 둘, 셋, 넷…… 응, 네 밤 자야 축제잖아. 멜 누나처럼 바보라서 날짜 헷갈린 거야?”

“멜 알아! 그냥 일찍 온 거야! 멍충이 케임처럼 까먹고 있다가 늦을까봐!”

“둘 다 아닐걸? 귀 뾰족이들은 기억력이 좋거든. 그리고 너네 둘, 거기서 투닥대지 마. 꽃 구겨지면 더 만들어야 된단 말야.”

곧 다가오는 축제를 위해 무언가 만들고 있는 중인 듯했다.

메린의 말에 두 아이가 무어라 툴툴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어서 조금 더 나이를 먹은 듯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암튼 그 사람인 거죠? 아빠한테 자꾸 엉기면서 꼬시던 불여우?”

‘아니야아아!!’

속으로 거의 절규하듯이 외치는 블루벨.

힘 한 방울 남아있지 않은 게 이렇게 통탄스러울 수가 없었다.

“아니야, 언니. 남자친구 있으면서 아빠 잡아먹으려고 자꾸 엉겨서 꼬시는 불여우 짓을 하던 고양이야. 맞지, 엄마?”

결단코 아니다.

메린이 대답하기 전에 한 수 앞서서 부정하는 블루벨이었다.

속으로 한 것이라서 그들에겐 들릴 턱이 없었지만.

‘미치겠네, 진짜! 내가 정말 그런 생각을 하기라도 했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블루벨은 자신의 목숨과 명예를 걸고 맹세할 수 있었다.

단 한순간도, 단연코, 카엘 에스트렐이라는 이름의 인간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품은 적이 없다는 것을.

왜냐하면, 그녀가 카엘을 유혹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카엘의 인상은, 간단히 말하면 마른 나뭇가지였다.

키는 크지만 몸집은 메린보다 조금 다부진 정도로, 다른 인간 사내들에 비하면 상당히 홀쭉한 수준이었다.

그나마 끝에 가서야 남자다 싶은 수준이 되었지, 그전까지는 톡 건들면 부러질 것 같아서 함부로 손 대기도 겁났었다.

그뿐인가?

툭하면 그녀를 할머니라고 부르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 싶으면 귀 깎아버린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하기 싫어하는 티를 잔뜩 내면서도 주저없이 그녀를 고문하기까지 한 정신나간 놈이 아닌가!

‘얼굴이 잘생겼으면 또 몰라. 그냥 적당히 생겼잖아. 인파에 섞여 있으면 찾기 힘들 만큼 흔하게 생겼다고.’

그런 카엘을 그녀가 어째서 건드리겠는가?

대체 무엇이 부족해서?

그 인간보다 용모나 성격이 몇 배는 더 좋은 블루스타라는 남자가 있는데!

설령 블루스타가 없었더라도 그를 고를 일은 없다.

아무리 쓸쓸하고 외롭더라도, 그처럼 말랑말랑하면서 어두침침한 인간의 여자가 되는 건 정말 질색이다.

카엘은 그저 동료일 뿐.

고향 숲에 있을 때보다는 속내를 좀더 드러낼 수 있는 편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설령 독한 술을 퍼 마셔서 이성을 다 잃어버린 뒤에 그와 한 방을 쓰게 되더라도, 그야말로 아무 일도 없이 잠만 쿨쿨 자고서 아침을 맞이하겠지.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 사람이기에, 블루벨은 심히 억울한 동시에 무척 기가 막혔다.

‘그보다 진짜 아직도 날 경계하는 거야? 결혼하고 애까지 낳았으면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예상하기는 했으나, 막상 그게 정말로 들어맞는 걸 보니 정말 넋이 나가버릴 것 같았다.

“그치? 멜이 맞지, 엄마?”

“아니, 틀렸어.”

아기가 옹알대는 소리에 섞여, 메린이 웃음기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같은 사람을 남자친구로 둔 할머니이면서, 훨씬 어린 너희 아빠를 잡아먹으려고 자꾸 엉겨서 꼬시는 불여우 짓을 하던 늙은 도둑고양이야.”

‘너무해! 그런 식으로 말할 것까진 없잖아! 사실도 아닌데!’

블루벨은 속으로 울분을 터뜨리면서 다시금 훌쩍이기 시작했다.

여기 올 생각을 한 몇 시간 전의 자신이 무척 원망스러웠다.

환대받지 못할 건 뻔히 알고 있었을 터.

그런데도 왜 자신은 이 집에 오기로 결정했던 것인가?

스스로를 더 비참한 꼴로 몰고 가고 싶었던 걸까?

사랑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와 함께 밤을 보낸 걸 안 걸로도 이미 충분히 비참하건만.

어째서 스스로를 그보다 더한 꼴로 추락시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근데 아빠가 그랬잖아요. 아빠는 옛날부터 엄마 거였다고. 그런데도 아빠 빼앗길까봐 걱정하신 거예요? 왜요?”

“나보다 훨씬 좋은 여자이거든.”

메린은 일말의 주저도 없이 대답했다.

“나만큼 잘 싸우면서 나보다 훨씬 착한 사람이야. 가끔 이상한 말을 하기도 하지만, 그건 너희 아빠도 그러니 뭐……. 내가 저 여자보다 나은 건 요리밖에 없어.”

“아냐! 엄마가 더 좋은 여자야! 뻔해! 왜냐면 엄마보다 예쁜 사람 못 봤는걸!”

“맞아, 맞아! 동네 아저씨들도 다 엄마가 제일 예쁘고 몸매 좋다고 했어! 아빠한텐 비밀이지만!”

그 말에 곧바로 빽 소리지르며 반박하는 두 어린아이.

아마 동생일 터인 두 아이를달래면서 ‘엄마도 착한 사람이다’고 말하는 소녀.

세 아이의 말에 감격할 법도 하건만, 메린은 그저 소리내어 웃기만 할 뿐이었다.

아마 아이들의 말이 마음에 와 닿지 않는 것이리라.

그리고 비교 대상인 당사자 블루벨은, 방금 들은 대화에 무슨 반응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메린이 저런 식으로 자신을 평가하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으니까.

‘몸매만 부러워하는 게 아니었구나.’

같은 여자이기에, 그녀는 메린과 물가에서 함께 목욕을 한 적도 여럿 있다.

그때마다 메린은 그녀의 가슴을 보고, 이어서 자신의 것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푹푹 쉬곤 했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어느 빨간 옷의 사제가 ‘저는 메린 님처럼 되고 싶은걸요!’라고 진지한 얼굴로 말하더라도, 이딴 건 걸리적거리기만 하니 떼어버리고 싶다며 푸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순전히 몸매 때문에 그녀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줄 알았건만, 사실은 성격까지 포함해 전반적으로 자신이 그녀보다 뒤떨어진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아니, 메린은 지금도 그런 줄로 여기고 있다. 그러니 그녀가 나타난 것을 보자마자 얼굴을 찌푸린 것이리라.

아직도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어서 불안한 것일까?

그만큼이나 헌신적인 사랑을 받았었고, 또 지금도 받고 있을 게 뻔한데?

결혼이라는 제도로 정식 부부가 되었고, 반지라는 증표도 나누었으면서.

블루벨 자신은 가지지 못한 것들을 전부 가지고 있건만, 정말 되도 않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없는데…….’

부부라는 관계는 원래부터 없었고, 무언가 증표를 나누지도 않았다.

아이는 있지만, 집을 자주 비우는 엄마보다는 돌보아주는 도우미를 더 친숙히 여기고 있을 터.

‘정말로, 아무것도 없어.’

그 사실을 되새기면서, 블루벨은 또 다시 얼굴을 적셨다.

잠시 후, 발소리가 다시 울리면서 무언가 달그락 하고 놓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서 블루벨의 머리를 묶고 있던 끈이 풀리더니, 부드러운 천 같은 것이 머리 위에 덮이면서 물기를 닦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렇게 물기를 닦으며 블루벨에게 친절을 베푼 뒤, 약간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말소리가 울렸다.

“그래서 왜 온 거냐?”

“………”

“안 자잖아. 아니면 아직도 입이 얼어붙었냐? 불은 꽤 쬔 것 같은데. 아까부터 계속 우는 거 보면 말할 기운이 없는 거 같지도 않고.”

“………”

“뭐, 말하기 싫으면 말아라. 별로 안 궁금하니까.”

툴툴대듯이 중얼거리는 메린.

블루벨은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살짝 움직였다.

그러자 메린이 포대기에 둘둘 싸인 아기를 안고서, 몸을 느릿하게 좌우로 움직이고 있는 게 보인다.

아마 아기를 재우려는 것이리라.

그 다음, 블루벨은 방금 전에 달그락거린 소리가 들린 쪽으로 눈을 돌렸다.

검붉은 액체가 담긴 잔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약한 포도향이 나는 걸 보면, 포도즙이나 술을 데운 것인 듯했다.

축 늘어진 채 가만히 있던 덕에 조금 기운이 생겼기에, 그녀는 잔을 들어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셨다.

뜨거운 포도주가 그녀의 목을 타고 넘어가, 몸 속 깊숙한 곳까지 데워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오늘 아무것도 안 먹었네.’

하지만 배가 고프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평소엔 한끼만 건너뛰어도 꼬르륵거리건만, 세끼를 내리 굶은 것도 모자라 온종일 달렸는데도 허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고 있다.

마음이 너무 무거운 탓에, 뱃속에 다른 걸 넣을 공간이 부족한 것일까?

블루벨은 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어쩐지 어두워져 보이는 바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상태로, 천천히 입을 열어서 말을 꺼냈다.

“……그 애가 막내이니?”

“엉? 어. 딸이야. 피아라고 해.”

“……그리고 멜, 케임, 카린이란 애도 있는 거고?”

“맞아. 카린, 멜, 케임 순이야. 어떻게 알았어?”

“너희 얘기 다 들었어.”

“그래? 하긴, 엘프는 귀가 좋으니까 들렸을 수도 있겠구나.”

메린은 무척 태연하게 대답하면서 옹알이를 하는 아기를 얼렀다.

자신이 아이들과 함께 블루벨의 뒷담을 깠다는 걸 들켰는데도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여전하네.’

아이들에게 말하는 투를 봐도 8년 전보다 더 변했지만, 덤덤하고 무심한 면이 다 사라진 건 아닌 모양이다.

그게 메린답다고 생각하며, 블루벨은 고개를 들고 메린을 바라보았다.

“메린.”

“왜.”

“나 재워주면 안 돼?”

“왜?”

메린은 그녀를 보지도 않은 채 시큰둥하게 물었다.

그 무심한 태도가 어쩐지 무척 편안하게 다가왔다.

그 때문인지, 블루벨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쉽게 이유를 말할 수 있었다.

“집 나왔어.”

“왜?”

“그 사람한테… 다른 여자가 생긴 거 같아서.”

“그 사람? ……아~ 그 파란머리?”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듯이 대꾸한 뒤, 메린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집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아이들에게 ‘이제 슬슬 정리하고 자라’는 말을 하고서 다시 그녀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빈손인 걸 보니, 아기가 잠들어서 방에 두고 온 듯했다.

“그 사람한테 딴 여자가 생겼다고? 확실해?”

“………몰라. 그런 거 같아.”

“확실하지도 않은데 그냥 나와버린 거냐? 뭐, 그건 그렇다 치고, 근데 왜 우리집에 와? 너네 집에서 여기까지 꽤 멀잖아. 골든한테 가지 않고서.”

“어제도 좀 실랑이가 있었거든. 그래서 골든 아저씨 댁에서 자고, 화해하겠다고 나온 길이었어. 나오자마자 다시 돌아가면 웃기잖아.”

정말로 그 이유 때문에 아예 숲을 나온 것인지는 모른다.

그 광경을 본 블루벨의 머릿속엔, 어디든 좋으니 떠나버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으니까.

방금 한 대답은, 그녀에게 이성이 있었을 경우를 가정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대답으로 납득한 건지, 아니면 정말 관심이 없기 때문인지, 메린은 정말이냐고 묻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그게 가출할 일이야?”

그리고 곧바로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터무니없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잔이 너무 따뜻해서 잠시 내려놓았기에 망정이지, 들고 있었다면 필히 바닥에 떨어뜨렸을 것이다.

질문 하나로 단숨에 얼이 나가버린 블루벨은, 메린을 마주하면서 멍하니 되물었다.

“가출할 일이냐니? 무슨 뜻으로 말한 거야? 혹시 아무 일도 아니다, 뭐 그런 뜻이니?”

“남자가 다른 여자랑 자는 건 흔히 있는 일이잖아. 카엘은 안 하지만, 다른 사람은 종종 하는 거 같던데? 돈을 주든 안 주든.”

“계집질 말하는 거야? 그건 밖에서 노는 거지, 집에 들이는 게 아니잖아.”

“아니, 첩 들이는 사람 있잖아. 으응…… 잠깐만…….”

턱을 괴고서 눈을 감는 메린.

잠시 후, 메린은 다시 눈을 뜨고서 천천히 말을 꺼냈다.

“응,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닐 거 같다. 특히 그쪽이랑 놀아났다고 하면 존나 빡칠 거 같아.”

“……아, 그래.”

“그래도 가출은 안 할 거 같은데.”

메린은 몸을 좌우로 흔들흔들 움직이며 말을 이었다.

“애들 봐야 되잖아. 게다가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내가 나가? 빡쳐서 그런 거면, 그대로 카엘을 조지면 되는 거잖아.”

“……나는 그 사람을 더 보기 싫었어. 그 자리에 있기도 싫었고. 애초에,”

작게 한숨을 쉬는 걸로 틈을 두고, 블루벨이 이어 말했다.

“……애초에, 거긴 내 자리가 없었는걸.”

따뜻하게 데운 술이라서 취기가 올라버린 것일까?

블루벨의 혀가 저절로 움직이면서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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