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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는 소꿉친구 검성이 무섭다-474화 (474/475)

〈 474화 〉 외전 13) 별을 맞이할 때까지 (Side : Elias) (2)

* * *

함께 건배를 나누었던 동기의 팔을 벤다.

평소엔 엄하게 지도하면서, 남몰래 연애운 좀 봐줄 수 없겠냐고 청하던 선배의 가슴을 찌른다.

그저 얼굴만 아는 수준이었어도,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 은근히 든든했던 일족이 쓰러지는 것을 목도한다.

친애하던 사람들의 피에, 온 몸이 붉게 물들어간다.

‘모르겠어.’

죽고 싶지 않다는 본능대로 검을 휘두르며 엘리아스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정말 모르겠어.’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방울이 방금 얼굴에 뿌려진 뜨뜻한 피인지, 아니면 눈 속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인지.

두 눈을 뜨겁게 덥힌 것이 배신에 대한 분노인지, 아니면 절친했던 사람을 손수 죽이는 것에 대한 슬픔인지.

그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어째서.’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가?

어째서 함께 적과 맞서 싸워서 살아남은 전우의 목을 쳐야 하는가?

“지금이다! 먼저 빠져나가!”

“존! 다른 애들 데리고 가! 어서!”

“큭……! 샘! 조엘! 제레미! 리스! 가자!!”

어째서 누군가를 방패막이로 세운 채 달아나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알현실을 뒤로 하고 기나긴 복도를 달린다.

뒤에서는 살의가 가득 담긴 함성이, 앞에는 부숴진 문을 가로막은 또 다른 전우 다섯의 날카로운 시선이 꽂힌다.

“비켜어어!!”

다섯 중에 가장 연장자인 존이 침통하게 소리쳤다.

역시나 누구도 물러서지 않는다.

그들이 아직 알현실에 있을 때, 다른 병사들에게도 명령이 내려진 것이리라.

그렇다는 건,

‘이미 탑으로 가고 있어……!’

엘리아스는 초조함을 느꼈다.

천문탑은 꼭대기 근방에 있기에, 산의 중간 지역에 있는 이 성과 마을에서 그리로 가려면 꽤 가파른 길을 올라야 한다.

아이레를 무너뜨린 이웃 영주가 천문탑을 장악하는 걸 포기하고 돌아갈 만큼 험하나, 평소에 그 주변까지 순찰을 돌던 병사들에게는 그저 조금 힘든 산책로에 지나지 않는다.

‘서둘러야 해!’

병사들을 제치고 탑에 가서 알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을 닫는다는 유일한 저항조차 못한 채 그대로 붙잡혀 죽게 된다!

엘리아스는 검을 꽉 쥐고서 저 앞을 바라보았다.

그를 포함한 다섯 명과 마주 선 병사들은, 역시나 익히 알던 사람들이다.

해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는 건 더더욱 할 수 없었다.

때문에, 그는 다른 넷을 앞질러 뛰어가 병사들에게 달려들었다.

“아아아아……!!”

경악에 찬 눈길을 마주하며 크게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팔이 그리 무겁지 않았다.

그새 친밀했던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에 익숙해진 것이리라.

반면, 상대는 이제 처음으로 아군이었던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다.

자연히 그를 향한 검과 창에 망설임이 묻어났고,

“커헉……!”

“네놈…! 끄억……!”

그 탓에 다섯 중 둘이 순식간에 쓰러지게 되었다.

나머지 셋은 기세에 눌렸는지 덤빌 생각을 하지 못했기에, 엘리아스와 다른 넷은 그들을 내버려두고 성을 빠져나왔다.

쏴아아아—

바깥에 나온 그들의 머리 위로 비가 매섭게 쏟아졌다.

마치 그들을 대신해 통곡이라도 하듯,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굵직한 비가 퍼붓고 있었다.

그러나 그게 주저할 이유는 되지 않았다.

다섯 명의 에스트렐은 곧바로 안뜰을 가로질러 뛰기 시작했다.

비 때문에 눈을 잘 뜰 수 없고, 어떻게 눈을 뜨고 있어도 시야가 부옇게 흐려져서 그림자만 겨우 보인다.

그럼에도 그들은 날씨까지 자신들을 방해한다고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늘이 도와준다고 무척 감사하고 있었다.

눈앞이 잘 보이지 않는 건, 그들을 추격하는 병사들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게다가 이웃 영주가 이 성을 공격하면서 내벽을 무너뜨렸기에, 그들의 길이 막힐 일도 없었다.

비 때문에 발자국도 남지 않을 테니, 벽만 넘어가면 얼마든지 몸을 숨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폭우는, 분명 천문탑으로 가고 있을 병사들의 발도 묶어주고 있을 터.

그러니 턱까지 차오른 숨을 돌리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마음을 다잡을 여유가 충분히 있을 것이다.

벽만 넘으면,

그래서 이 성을 완전히 빠져나간다면,

그래도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했는데,

철푸덕.

“……?!”

엘리아스의 옆을 달리던 일족, 존이 갑자기 쓰러졌다.

저절로 그의 발이 멈추면서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커질 대로 커진 그의 두 눈에, 존이 그들을 잡으러 오는 병사들의 앞쪽 바닥에 엎어져 있는 게 보였다.

등에 깃털 달린 가느다란 막대가 꽂힌 채.

‘화살……!!’

그를 인지하자마자, 그의 발치에 화살 하나가 푹 내려꽂혔다.

성에서 그들을 향해 활을 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비 때문에 소리가 들리지 않아, 정확히 어느 방향에서 쏘는지 가늠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이대로는 못 가!’

존은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려 애쓰고 있었다.

그런 그를 어떻게 내버리고 간단 말인가?

설령 그래야만 살 수 있다고 해도, 엘리아스는 결코 그럴 수가 없었다.

“존!”

“오지 마!!”

그러나 존은, 다시 일어나자마자 검을 뽑아 허공에 휘두르면서 크게 소리쳤다.

“가, 리스! 난 상관 말고 얼른 가라!! 뛰어어어!!”

피를 토하듯이 고함치며 오히려 병사들을 향해 뛰어가는 존.

자신도 모르게 그를 뒤쫓으려던 엘리아스는, 곧바로 다른 일족의 손에 붙들려 내벽을 향해 달리게 되었다.

쏴아아아—

등 뒤에서 들려오는 건 오로지 빗소리뿐.

비명도, 칼을 맞대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와 함께 뛰던 또 한 사람이 화살에 쓰러지는 소리도, 내벽의 뻥 뚫린 구멍 앞을 지키고 선 두 병사가 창을 들이밀며 소리치는 것도, 그 자신이 칼을 휘두르며 내지르는 고함도.

그 무엇 하나 들리지 않았다.

내벽을 빠져나가자마자 골목으로 들어가, 스스로도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를 만큼 내달린 뒤에야, 엘리아스는 제자리에 주저앉은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어째서… 이런…….”

“……”

축축하게 젖은 물음에 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어두침침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가를 쓸거나, 고개를 떨군 채 바닥에 떨어지는 비를 바라볼 뿐.

단 세 명.

일족 열 몇 명의 시신을 넘어 성에서 빠져나온 세 에스트렐은, 그렇게 빗속에 비통을 흘려보냈다.

잠시 후, 엘리아스는 눈가가 부은 두 일족, 샘과 조엘을 번갈아 보며 나직이 말했다.

“이제 어쩔 거예요?”

“하…… 모르겠어. 이 날씨에 산을 내려갈 수도 없고.”

비에 젖은 얼굴을 쓸며 조엘이 대답하자, 샘이 코를 훌쩍이며 입을 열었다.

“신전으로 가요. 영주가 지껄이던 거 생각하면, 신전만큼 안전한 데는 없을 거예요.”

“……그렇겠군.”

교단은 비록 범죄자라 할지라도, 일단 비호를 바라면 숨겨준다.

영주는 지금 창조주를 들먹이며 에스트렐 가문을 쓸어버리려 하고 있으니, 신전에 숨어도함부로 헤집지 못할 터.

지금 이곳이 어디인지는 모르나, 비가 그칠 기미가 아직 보이지 않는 만큼 조심하기만 하면 신전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엘리아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두 사람을 다시금 살펴보았다.

천갑옷과 문장이 그려진 서코트를 입은 그와 달리, 두 사람은 각각 튜닉과 셔츠 차림이다.

아마 존이나 자신과 달리, 군인이 아니라 일반 행정원으로 일했던 것이리라.

본래는 숨만 돌리고서 곧바로 탑에 갈 생각이었으나, 여차하면 싸워야 하는 상황에 변변한 무기도 없는 두 사람만 가게 둘 수는 없었다.

‘신전에 데려다주고 가자.’

설령 그 때문에 탑에 경고할 때를 놓칠지라도, 확연히 살릴 수 있는 이 두 사람을 내팽개칠 수는 없다.

이 이상, 눈앞에 있는 사람을 내버리고 싶지 않았다.

엘리아스는 굳게 마음먹으며, 한손으로 검집을 꽉 잡고 두 사람에게 말했다.

“그럼 가요.”

고개를 끄덕이는 두 사람.

엘리아스는 골목을 나가기 전, 바깥 대로를 살펴보았다.

누구 한 사람 길을 다니지 않는다는 걸 확인한 다음, 지금 어느 부근에 있는지 알 수 있을 만한 걸 찾아 시선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러던 중,

대앵—……

불현듯 귀에 익은 낮은 울림이 빗속을 뚫고 희미하게 들려왔다.

‘종소리……!’

틀림없이 신전의 종소리이다.

일정한 간격으로 계속 울리고 있는 게, 마침 정오가 되어서 시간을 알리고 있는 것 같았다.

엘리아스는 슬며시 다른 두 사람에게 시선을 돌렸다.

소리가 울릴 때마다 흠칫 놀라는 걸 보니, 정말 다행스럽게도 그 혼자만 들은 게 아닌 듯했다.

세 사람은 서로 마주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인 후, 엘리아스를 필두로 조심스럽게 빗속을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쪽으로 오라고 그들을 부르는 종소리를 향해.

주로 골목을 다닌 덕분인지, 세 사람은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은 채 신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누가 오기 전에 재빨리 문을 열고 들어간 후, 엘리아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두 분 다 꼭 무사하세요.”

“뭐? 잠깐, 그게 무슨 소리야? 가다니, 어디를?”

“천문탑.”

그의 말을 들은 두 사람이 일제히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런 뒤, 각자 하나씩 그의 팔을 붙잡고는 말리기 시작했다.

“정신 나갔어요? 지금 나가면 죽을 뿐이에요! 탑에 가도 이미 늦었을 거고요!”

“나도 거기 가족이랑 친척들 있어. 그러니 네 심정은 이해해! 하지만……!”

엘리아스는 고개를 저으며 그들의 팔을 하나씩 떼어냈다.

그런 뒤, 씁쓸한 기색이 잔뜩 묻어나는 미소를 지었다.

“아뇨, 가야 돼요. 비가 이렇게 내리니, 병사들도 빨리 움직이지 못했을 거예요. 아직 늦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조금 지치긴 했으나, 아직 멀쩡히 움직일 수 있다.

게다가 그는 산꼭대기까지 수차례나 오르내려왔고, 또 병사들과 다르게 혼자 움직이는 만큼 몸을 숨기면서 더 빠르게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두 분은 여기 계세요. 담당사제님께, 영주가 마을에 있는 에스트렐을 전부 다 없애려 한다고 꼭 전하셔야 합니다.”

그가 마음을 바꿀 생각이 없다는 걸 알았는지, 두 사람은 한 번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다. 여기까지 데려다줘서 고마워.”

“꼭 무사하세요.”

두 사람에게 가볍게 목례한 후, 엘리아스는 다시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그런 다음, 망설임없이 다시 빗속으로 뛰쳐나갔다.

골목에서 또 다른 골목으로 옮기고, 매서운 얼굴로 거리를 돌아다니는 병사들과 위병들에게서 몸을 숨긴다.

그렇게 조금씩, 그러나 확연히 빠른 속도로 외벽을 향해 나아갔다.

이윽고 마지막 골목에 다다른 엘리아스.

주의 깊게 외벽 쪽을 살피자, 성문이 완전히 부숴져 있는 것과 위병들이 그 잔해를 치우고 있는 게 보였다.

벽에 구멍이 뚫리지 않은 걸 보면, 이웃 영주가 성문만 부수고 벽은 사다리 같은 걸로 넘어왔었던 모양이다.

즉, 여길 나가려면 성문이 있었던 저곳을 통과해야 한다.

위병들은 병사에 비해선 간단한 훈련만 받으므로 강행돌파를 하려면 할 수 있을 터.

그러나 이 다음에 산을 올라가야 하니, 가급적 기운을 아껴야 한다.

게다가 잘 안 보여서 그렇지, 분명 성벽에서 경계를 서고 있을 터.

소란이 일어나면 곧바로 지원병력을 부르거나 활을 쏘아대겠지.

‘젠장, 변장할 수도 없는데. 차라리 이거 벗고 일반인인 척……할 필요 없어. 맞아.’

문장이 그려진 서코트를 보던 그의 머릿속이 번뜩였다.

위병들은 병영에 있는 병사들과 마주할 일이 거의 없지 않은가?

즉, 병사들과 달리 그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없다.

게다가 외벽 성문에 위병들만 세워둔 걸 보면, 성에 소속된 에스트렐 일족이 여기까지 나오리란 상정을 하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혹은 이미 마을을 빠져나간 걸로 보고 산 아래로 내려갔거나.

‘잘하면 그냥 지나갈 수 있을지도 몰라.’

어차피 길은 성문밖에 없으니, 상황이 어떻든 가야 한다.

엘리아스는 작게 심호흡을 한 후, 자연스럽게 보이기를 간절히 바라며 가볍게 뛰어갔다.

그러자 그의 인기척을 느낀 위병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엉? 뭐야, 당신…… 아, 군인 양반이시군. 댁도 나가려고?”

“예. 필히 저 위에 올라가야 합니다. 영주님께서 전언을 명하셔서요.”

“위? 아, 아아~ 댁도 탑에 가는구만? 나 참, 그러고 보면 그 양반들도 참 안 됐어. 괜히 화풀이나 당하고…….”

그에게 말을 건 위병이 한숨을 쉬며 푸념하자, 다른 위병이 사색이 되어서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작게 소리쳤다.

“쉿! 그런 소리하지 마, 큰일난다! 에스트렐 가문으로 몰릴지도 모른다고!”

“엉? 아, 크흠! 무, 물론 영주님이 다 생각이 있으셔서 그러신 거겠지. 아무렴.”

‘생각은 무슨. 그냥 미친 거예요!!’

그렇게 소리치고 싶은 걸 꾹 참으며, 엘리아스는 가볍게 목례하면서 낮게 말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어, 어어, 그래, 수고하쇼.”

영주에게 밉보일지도 모르는 말을 해서 그런지, 위병은 그를 더 살피지 않고 지나가도록 비켜섰다.

괜히 지체했다간 마을로 도망친 그와 다른 두 일족을 찾으려는 병사들의 눈에 띌 터.

엘리아스는 서둘러 문을 통과해, 산꼭대기로 이어지는 길에 올랐다.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밟아대서 그런지, 산길은 군데군데 움푹 패인 채 흙탕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 길은 조금 좁긴 해도 생필품 등의 물자 운반을 위해 다진 것이라, 이대로 쭉 따라가면 길을 잃거나 미끄러져서 떨어질 염려없이 탑에 갈 수 있겠지.

그러나 그래서는 결코 병사들을 제칠 수 없다.

엘리아스는 한동안 길을 따라가다가, 어느 지점부터 샛길로 들어가서는 마구 질주하기 시작했다.

성인이 되기 전, 탑과 마을을 오가면서 찾아둔 지름길이었다.

‘산 뛰어다닌 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문득, 그는 무엇이든 경험이 된다던 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가 책이 아닌 슬링을 만지작거리고, 별자리보다는 산짐승을 더 잘 외워도 타박하지 않던 아버지.

심지어 그가 밤하늘에서 엉뚱한 별자리를 그려도, 그를 꾸짖는 대신 ‘개척정신 보게’라며 껄껄 웃었었다.

‘아버지.’

직계 중에서 유일하게 탑을 나가겠다는 자신을 타박하는 대신, 오히려 ‘꿈을 크게 가지라’고 응원해준 아버지.

그러한 아버지가 지금, 정신나간 영주 때문에 영문도 모른 채 위험에 빠져 있다.

‘제발, 무사하세요……!’

그렇게 간절히 바라며 저 위에 보이는 탑을 향해 내달린 엘리아스.

빗속에서 간간이 숨만 돌리며 걸음을 서두르는데,

쿠르르르……

콰과아앙—!

“……?!”

돌연 눈앞이 번쩍이며 귀를 찢는 굉음이 울렸다.

그게 천둥번개라는 걸 알아차리고 눈을 끔뻑이는 순간,

“……?”

저 멀리, 닭 모양 조각이 달린 풍향계가 떨어지는 게 보였다.

‘……어라, 저거.’

천문탑의 옥상에 있던 것이었을 텐데.

엘리아스의 눈이 멍하니 탑을 올려다보았다.

한참 올라왔으니, 고개를 조금 드는 것만으로도 탑의 꼭대기가 보여야 하건만.

“……허?”

마치 누가 뜯어간 것처럼,

탑이 움푹 패여 있었다.

어떻게 된 건지 미처 깨닫기 전에 또 번개가 쳤고,

“……!”

이번에는 위쪽에서 그를 향해 흙더미가 쏟아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재빨리 두툼한 나무 뒤로 피한 그의 옆으로, 정갈하게 쌓인 잿빛 돌덩이들이 토사(??)에 섞여 흘러가는 게 보였다.

돌덩이의 안쪽에는, 자그마한 그림이 걸려 있었다.

‘설마.’

마치 그의 생각이 맞다는 듯이 번쩍이는 하늘.

콰과아앙—!

이윽고 굉음이 울리면서, 무언가 우지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저절로 돌아간 시선 끝에, 나무줄기가 그를 향해 떨어지는 게 보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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