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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애의 경호관-54화 (54/94)

54화. 의심2016.07.07.

금요일 저녁이 되었다.

설은 경호관의 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고, 자신의 아파트가 아닌 청와대로 향했다.

그녀는 오늘 사택에서 부모님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저 왔어요!”

거실 중문을 열고 들어오는 설의 활기찬 목소리엔 오늘따라 유난히 생기가 돌았다.

테이블에 앉아 영부인과 차를 마시던 대통령은 고개를 돌려 설을 바라보았다.

설은 목소리뿐 아니라 얼굴에도 홍조가 가득했다. 뭔가 설레고 기분 좋은 일이 있을 때 짓는 표정이었다.

너무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대통령의 눈에는 그런 딸이 너무 낯설게 보였다.

“매일 연구실에서만 지낸다는 녀석이 얼굴이 왜 그리 좋아? 무슨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는 게냐?”

“제가 언제는 기분이 안 좋았어요? 엄마, 저 배고파요. 얼른 저녁 먹고 싶어요.”

설은 겉옷을 벗으며 기분 좋게 허밍을 했다.

대통령과 영부인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 동시에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일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두 사람은 오랜만에 생기가 도는 딸의 모습이 너무 반갑고 좋았다.

“그래, 요새도 그렇게 일이 많은 게냐? 황 원장이 여러모로 바삐 애를 쓰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너무 바쁜 것 아니야? 네가 그렇게 바쁠 일이 도대체 뭐가 있어.”

“전 다른 사람들하고 똑같이 일하고 있어요, 저만 특별히 바쁜 게 아니라고요.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아빠.”

“젊은 애가 오피스텔하고 연구실만 왔다 갔다 하면 무슨 재미가 있어? 경호관들이 아주 지루해한다던데, 그렇게 재미없게 살지 말고 시간 내서 연애도 하고 그래.”

“그럴까요? 후훗.”

세 가족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 앉아 즐거운 식사를 즐겼다.

설은 접시에 정갈하게 담긴 음식들을 젓가락으로 한 번씩 골고루 맛보았다.

그녀는 마치 맛 평가를 하는 사람처럼 음식을 입안에 넣어 오랫동안 음미했고, 가끔씩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부인은 설이 밖에 나가 살더니 집 밥이 많이 그리웠나 싶어 측은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맛있으면 넉넉히 준비하라고 할 테니 이따 갈 때 좀 가져갈래?”

“아니요, 만드는 방법만 배워갈게요. 제가 집에서 똑같이 만들어 먹으면 돼요.”

“번거롭게 뭐 하러 그래, 네가 음식 만들 시간이 있기나 하니?”

“제가 만들어야 할 것 같아서 그래요. 만드는 방법은 제가 아주머니께 따로 여쭈어 볼 테니 엄마는 신경 쓰지 마세요.”

“강조국. 우리 딸은 엄마 아빠한테 신경 쓰지 말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는 거야?”

영부인이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설을 곱게 흘겨보자, 그녀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배시시 웃었다.

“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이에요. 전 정말 잘 지내고 있거든요, 후훗.”

“혹시, 진짜 누구랑 연애하는 거야?”

“아니요?”

영부인이 가볍게 던진 말에 설이 정색을 하며 대통령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그는 그녀에게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아버지가 설이 민준을 만난다는 걸 알게 되면 분명 그녀의 행동에 어떤 형태로든 제약을 걸 테니, 일단은 모른 척하고 있어야 했다.

게다가 아버지는 2년 전에 설이 민준을 만나러 가는 걸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지금 그녀가 부모님께 민준을 드러내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그럼 엄마가 만나보라는 사람 한번 만나 볼래? 엄마 은사님께서 너한테 누굴 소개시켜 주고 싶다고 하셨는데, 공부를 하는 사람…….”

“저 바빠요, 엄마.”

“그래도 네 나이가 곧 스물아홉이야. 당장 결혼을 하진 않아도 엄마는 네가 좋은 사람 있으면 만나도 보고 그랬으면 좋겠어.”

“한번 생각해 볼게요.”

설이 건성으로 대답하며 다음 반찬으로 젓가락을 옮겼다.

‘이거랑 저거랑…….’

“강조국. 엄마가 저렇게까지 얘기하는데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좀 내보는 게 어떨까?”

그녀는 아버지가 귀담아듣지 않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제가 좀 한가해지면 그때 말씀드릴게요. 지금은 정말 시간이 없어요.”

‘좀처럼 한가해질 것 같진 않지만요.’

설은 하마터면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던 말을 얼른 입안으로 삼켰다.

그 뒤로도 그녀는 내심 추가적인 질문을 대비하고 있었는데, 설의 생각과는 달리 대통령은 그녀에게 별다른 말이 없었다.

“연구원에 별일은 없고?”

“별일 있을 게 뭐가 있어요. 매일 똑같아요.”

대통령은 설의 밝은 표정을 보며 속으로 안도했다.

고집 있고 강단 있는 그녀의 성격으로 볼 때 그 일을 그렇게 묵과하고 넘어갈 것 같지 않았는데, 다행히 그건 대통령의 기우였던 모양이었다.

**

“저 내일하고 모레는 집에서 편히 쉴 거니까 경호관님 일 보실 것 있으면 보셔도 돼요.”

그날 밤 아파트로 돌아온 설은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준비했던 말을 그녀의 경호관에게 조곤조곤 말했다.

“원래 서울에 있을 때에는 집에 혼자 있어요. 제가 방해받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드릴게요, 아마 그럴 일은 없겠지만요.”

“네. 알겠습니다, 영애 님.”

설은 경호관에게 그녀를 방해하지 말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예전 경호관에게는 굳이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그녀는 이제 시간이 날 때마다 민준을 만나야 했고, 그를 만나는 모습이 경호관의 눈에 띄지 말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그녀가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다시 한 번 적당한 말로 구슬릴 생각이었지만, 그전에 그런 일을 만들지 않는 게 더 좋은 방법이었다.

설은 집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난 후 지갑만 손에 들고 밖으로 나왔다.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밤새 음식을 만들어 놓을 생각이었다.

민준에게는 내일 아침 일찍 그의 집으로 건너갈 생각이니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미리 말해 두었고, 문제가 될 건 없었다.

잠시 후 양손에 잔뜩 장을 봐 가지고 집에 돌아온 설은 서둘러 실내등을 켜고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내일 아침까지는 아직 시간이 넉넉하게 남아 있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마음이 급했다.

“피곤하다면서 잠도 안 자고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팔짱을 끼고 뒤 베란다에 서 있던 민준이 고개를 옆으로 비스듬히 기울였다.

밤 11시가 훌쩍 넘었는데도 설의 아파트에서는 아직도 환한 불빛이 밖으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설은 민준에게 내일 아침 그녀가 그의 집으로 건너갈 테니 아침을 먹지 말고 기다리라며 신신당부했다.

심지어 괜히 그녀 때문에 일찍 일어나진 말라며, 비밀번호를 알려주면 그냥 알아서 들어와 있겠다고 말했다.

“내일 물어봐야겠네.”

민준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베란다 창문을 닫고 뒤돌아섰다.

바로 그때, 그의 핸드폰에서 문자 수신음이 들렸다.

-Pakin 그룹, 대전에 물류창고 완공.

“Pakin이 대전에 물류창고가 왜 필요해?”

민준은 문자의 내용을 확인하고선 이마를 찌푸렸다.

설이 공적으로 백건우를 만날 일이 있다고 하기에 민준은 인정에게 그룹 Pakin이 대전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라고 했다.

하지만 뜬금없이 물류창고라니, 이상한 일이었다.

2년 전 일로 Pakin 그룹은 알게 모르게 안팎으로 위축되었다. 그러니 꼭 필요했던 게 아니라면 대전에 거대한 물류창고를 새로 지을 이유가 없었다.

‘건우 씨와 공적으로 만날 일이 있어요.’

“…….”

잠시 고민하던 민준이 인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난 2년간 정부 기관이든 민간 기업이든, 대전광역시에 투자한 단체 리스트 뽑아서 나한테 가져와 봐.”

뭔가 개운치 않을 때에는 그 실체를 낱낱이 파헤쳐 살펴보면 해결될 터였다.

**

쏴아-

민준은 잠결에 물이 흐르는 소리와 그릇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찌푸린 눈으로 손목시계를 쳐다보았다. 아침 6시였다.

설마 이 시간에?

민준이 침대 이불을 옆으로 젖힌 후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설은 흐르는 물소리 때문에 민준의 기척을 느끼지 못하고 분주하게 주방을 오가며 요리를 하고 있었다.

좀처럼 사용할 일이 없었던 가스레인지 위에서 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고, 주방 인테리어를 담당하던 전기밥솥에서는 치이- 소리와 함께 뜨거운 김이 위로 모락모락 올라왔다.

행복이 그의 가슴속에서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민준이 뒤에서 설의 허리를 두 팔로 감으며 그녀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뭉클한 감정이 그의 몸속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번졌다.

설이 그의 주방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하는 모습이 꿈만 같았다.

그녀가 아침에 온다고 말을 하긴 했지만, 이런 모습으로 있을 줄은 몰랐다.

“으응? 벌써 깼어요?”

“……응.”

설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옆으로 돌리려다 다시 어색하게 웃으며 원위치했다.

민준이 자신의 집에선 상의를 탈의한 채 잠이 든다는 건 설이 미처 알지 못했던 습관이었다.

그의 딱딱한 가슴근육이 설의 등에 가깝게 밀착되자 그녀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얼른 씻고 와요. 내가 아침 차려줄게요.”

“……싫어.”

민준이 어리광을 부리듯 설을 두 팔로 더욱 세게 끌어안으며, 그녀의 목덜미에 고개를 더 깊숙하게 묻었다.

낮게 갈라지는 그의 목소리가 설의 심장을 빨리 뛰게 하였다.

설은 그녀의 허리를 감싼 민준의 팔을 천천히 풀며 그를 달래듯 말했다.

“안 돼요, 나 바빠요. 얼른 씻고 와요.”

“……잔소리쟁이.”

민준이 못마땅한 듯 몸을 일으키더니 낮게 웃으며 설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참. 어제 잘 잤어요?”

욕실로 향하는 민준의 뒷모습에 대고 설이 소리쳤다.

“아니, 잘 못 잤어. 누가 자꾸 내 꿈에 나타나서 잔소리를 해.”

민준의 너스레에 설이 풋 웃더니 다시 서둘러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어젯밤 반찬 몇 가지를 미리 만들어 놓았고 민준이 좋아하는 갈비도 양념에 재워 놓았다.

그녀의 좋은 기억력은 다방면으로 아주 쓸모가 많았다.

아주머니께서 알려주신 재료와 요리법은 설이 먹었던 음식과 똑같은 맛과 형태로 정확하게 재현되었다.

잠시 후 민준이 수건으로 머리카락의 물기를 닦아내며 주방으로 들어오다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을 보고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이게 다 뭐야?”

“뭐긴 뭐예요, 아침 식사죠. 얼른 앉아요.”

설이 보글보글 끓고 있는 뚝배기를 식탁 한가운데 올려놓은 후 뚜껑을 위로 열었다.

민준이 멍한 눈으로 음식을 바라보자 설이 웃으며 숟가락과 젓가락을 그에게 건넸다.

“이걸 당신 혼자 다 준비한 거야?”

“응. 그래서 어제 좀 바빴어요.”

“…….”

“감동했어요?”

“그냥, 좀 신기해서.”

“뭐가 신기해요?”

“아침에 눈을 뜨니까 당신이 우리 집에 있고 또, 씻고 나오니까 음식을 차려놓고 나를 기다리고. 뭔가 너무 현실성이 없잖아.”

“상상으로 만든 음식이 아니니까 식기 전에 얼른 먹어요. 참, 아까 당신 씻을 때 전화 왔었는데.”

“그랬어?”

민준은 그녀의 말을 건성으로 들어 넘기며 맛깔스럽게 보이는 반찬에 젓가락을 뻗었다.

언제 이런 요리법을 다 배운 건지, 강설은 정말 신기한 여자였다.

“지금 확인 안 해봐도 돼요?”

“밥부터 먹고 나서.”

인정의 전화였을 것이다. 아마 민준이 알아보라고 한 것을 얘기하려고 전화를 걸었을 터였다.

곰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인정에게도 부지런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런데 민준이 급한 일이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토요일 아침 댓바람부터 그에게 전화를 하는 걸 보면 확실히 융통성은 없는 녀석이었다.

딩동-

“…….”

민준이 젓가락질을 멈췄다.

설마, 그래도 걔도 사람인데 이 정도까지 융통성이 없을 리는 없겠지.

딩동딩동-

젠장.

“누가 왔나 봐요. 안 나가 봐요?”

“나오지 말고 식사하고 있어.”

민준이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의자를 뒤로 밀며 일어났다.

거실 모니터 화면을 보니 생각했던 대로 역시 박인정이었다.

민준이 인상을 쓰며 현관문을 열었다.

“선배…….”

쾅!

민준이 빠르게 현관문을 닫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인정을 내려다보았다.

“너 지금이 몇 시인 줄 알아?”

“아까 전화를 드렸는데 안 받으셔서 그냥 왔어요. 이거요, 선배님.”

민준은 인정이 내민 서류를 받아들었다. 그녀는 민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에 뿌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금 어디서 오는 거야?”

“사무실이요. 자료를 찾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내가 당장 가지고 오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왜 그랬어?”

“제가 빨리 가져다 드리면 선배님께서 좋아하실 것 같아서요.”

“……수고했다. 조심해서 들어가.”

인정이 주말 아침부터 예고 없이 찾아온 건 언짢았지만, 그가 시킨 일을 하다 밤을 새고 왔다는 그녀에게 모진 말을 할 순 없었다.

수고했다는 민준의 말에 인정의 얼굴 표정이 한층 더 밝아졌다.

“선배님은 지금 식사하고 계셨어요?”

“어. 그러니까 너도 얼른 가서 밥 먹어.”

“제가 또 도와드릴 일은 없어요?”

“지금은 없어. 잘 가라.”

그는 인정을 보내고 난 후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무심히 고개를 든 민준의 시선이 거실에서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며 서 있던 설과 마주쳤다.

“밥 안 먹고 왜 여기 서 있어?”

“이렇게 일찍 집까지 찾아온 걸 보니 많이 급한 일이었나 봐요?”

“급한 일은 아닌데 애가 열정이 넘쳐서 그래.”

민준은 서류 봉투를 들고 건넛방으로 들어갔다가 빈손으로 나왔다.

설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표정이 왜 그래?”

“내 표정이 어때서요?”

급한 일도 아닌데 주말 아침부터 민준을 찾아온 그녀는 모니터 화면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녀는 설이 민준을 바라보는 눈빛과 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미묘하게 가라앉은 설의 목소리에 민준이 웃음기를 거두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설이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주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우리 얼른 밥 먹어요.”

“강조국.”

민준이 한숨처럼 설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가 민준의 눈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건 지금 설의 마음이 좋지 않다는 뜻이었다.

“왜 그래?”

민준은 설의 등 뒤에서 그녀의 어깨를 두 팔로 안았다. 그의 목소리가 한숨 같아서 설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민준에게 그녀가 왜 기분이 좋지 않은지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에게, 아까 그 사람이 왜 당신을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거냐고 물을 수는 없었다.

“당신이 예전처럼 밥 먹다 말고 가버릴까 봐 걱정돼서 그랬어요.”

설이 민준의 팔을 풀고 뒤돌아서 그를 바라보았다.

말없이 그녀의 표정을 살피던 민준의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

“정말이에요.”

“오늘은 하루 종일 당신하고 같이 있을 거야.”

“그럼 됐어요.”

설이 그를 올려다보며 미소 지었지만 그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민준은 그녀의 머리카락 속에 두 손을 깊이 묻고 설의 눈을 가까이서 바라보았다.

“근데 왜 안 웃어.”

“갑자기 손님이 찾아와서 긴장했나 봐요.”

“정말 괜찮은 거지?”

“그럼요.”

“그럼 우리 밥 먹자.”

민준은 설의 손을 잡고 식탁에 가 앉았다.

“나 이거 다 먹을 거야.”

“이걸 어떻게 다 먹는다고 그래요?”

설이 샐쭉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흘기자 그제야 민준이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내가 다 먹으면 강조국이 또 해줄지도 모르잖아.”

“나 그렇게 한가한 사람 아니에요. 앞으로 주말에 잘 올라올 수 있을지 몰라서 시간 있을 때 해주고 싶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또 이렇게 만들어 줄 거라는 기대는 당분간 접어줘요.”

“연구원 일이 그렇게나 바빠?”

“아마 당분간 많이 바빠질 거예요.”

“무슨 일을 하는데 주말까지 일해야 할 정도로 그렇게 바쁜 거야?”

“말해주면 당신이 알아요?”

“내가 알까 봐 알려주기 싫은 건 아니고?”

“…….”

“뭘 그렇게까지 정색을 해?”

설이 움찔하며 젓가락질을 멈추고 민준을 쳐다보자 민준이 입술 새로 나직한 웃음을 흘렸다.

그녀는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고 있는 민준이 얄미워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런 당신은 얼마나 중요한 일이기에 후배가 토요일 아침부터 집을 다 찾아와요?”

“……못 본 사이에 강조국의 전투력이 어마어마하게 상승했군.”

설은 민준의 말을 못 들은 척 식사를 이어갔다.

그러자 민준이 식탁 위로 손가락 두 개를 세워 게걸음으로 슬금슬금 다가가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민준을 바라보았다.

“불편하지 않아요?”

민준은 오른손으로 설의 손을 잡고 왼손으로 젓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불편해. 그런데 안 웃는 강조국이 훨씬 더 불편해.”

참나.

설이 옆으로 눈을 흘기며 민준을 바라보다 마침내 웃음을 터트렸다.

“나 미워하면 안 돼.”

민준은 왼손으로 어설픈 젓가락질을 하면서도 식사를 마칠 때까지 설의 손을 놓지 않았다.

**

식사를 하고 난 후 민준이 욕실에 들어가 있는 동안, 설은 아침에 가져온 민준의 옷을 드레스 룸에 가져다 놓기 위해 건너편 방의 문을 열었다.

테이블 위에 옷을 올려놓으려던 설은 테이블 위에 놓인 하얀 봉투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까 민준의 후배라는 사람이 가져온 서류 봉투였다.

민준이 아무렇게나 던져 놓았는지 봉투 밖으로 파일 윗부분이 삐죽 삐져나와 있었다.

‘대전?’

삐져나온 부분에 ‘대전’이라는 글자가 보이자 설은 반사적으로 봉투를 집어 그 안에 들어 있던 파일을 꺼냈다.

투명 파일 안에는 보고서로 보이는 자료가 들어 있었고 상단에 ‘대전광역시 변동 사항’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Pakin을 포함한 몇몇 기업체들의 이름이 소제목으로 언급되어 있었다.

설은 황급하게 봉투 안에 파일을 집어넣은 후 원래대로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도망치듯 밖으로 나와 방문을 닫았다.

민준이 왜 대전과 관련된 기업들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는 거지?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고, 손끝이 차갑게 저려왔다. 머릿속은 온통 뒤죽박죽이었다.

청와대에서, 집 앞에서, 그리고 그 레스토랑에서도…… 민준이 그녀 앞에 다시 나타난 게 어쩌면 우연이 아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http://novel.naver.com/webnovel/list.nhn?novelId=505101&page=4 [carbo]영애의 경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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