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애의 경호관-58화 (58/94)

58화. 조국의 비밀2016.07.21.

“제가 괜찮다고 했잖아요!”

“안 됩니다.”

민준과 설이 아침부터 주차장에서 승강이를 벌이고 있었다.

민준은 팔짱을 끼고 자동차 운전석 문에 기대선 채로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럼 저는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인정이 뿌듯한 얼굴로 민준에게 인사를 건네자, 그는 설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그녀에게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설이 고개를 돌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인정은 설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뒤돌아 사라졌다.

사실 민준은 오늘 인정에게 작은 미션을 주었다.

그는 그녀가 가져온 서류를 살펴보다 조금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충청도 몇몇 광산의 광업권이 한 신생 외국 기업으로 꾸준히 넘어가고 있었다.

이 지역의 광업권은 이미 오래전부터 유명한 외국 기업들이 상당 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 광업권을 사들이기 시작한 이 기업 같은 경우, 밖으로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는 신생 회사였다.

다른 것이었으면 그냥 넘어갔을 테지만 여기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이곳이 우리나라 최대의 우라늄 광산 지대였기 때문이었다.

민준은 인정에게 최근 2년 사이 이 지역의 광산 개발권을 누가 언제부터 가져갔는지 자세히 알아오라고 했다.

핵주권도 없는 나라에서 경제적 가치도 떨어지는 저품위광 우라늄 광산 개발권을 누가, 왜 그렇게 열심히 사들이고 있는지 알 필요가 있었다.

그는 인정에게 영애 님은 자신이 잘 보필하고 있을 테니 너는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민준에게 쓸모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은 것 같아 몹시 뿌듯했다.

예전부터 그녀는 영애가 공주님 놀이를 왜 이 먼 곳까지 와서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민준이 고작 영애의 운전기사 노릇이나 해야 한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있었다.

인정은 연구실에 앉아 형식적인 근무를 하고 있을 게 뻔한 영애보다 그녀 자신이 훨씬 더 값어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며 자리를 떴다.

인정이 사라지고 난 후, 민준은 조수석 문을 열고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여 설을 쳐다보았다.

그가 턱짓으로 자동차 안쪽을 가리키자 설은 심기가 불편한 얼굴로 조수석 문을 열고 탔다.

그녀가 차에 오르자 민준은 자동차를 출발시켰다.

“저분은 어디 가는 거예요?”

“내가 심부름 보냈어.”

“당신은 어디 갈 데 없어요? 난 혼자 다니는 게 훨씬 더 편하다고요.”

“데려다주겠다는데 도대체 왜 싫다고 하는 거야?”

“싫다는 게 아니라 공과 사를 구분하겠다는 거예요.”

“당신이 오해하고 있나 본데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게 ‘공’이야, 당신이 지금 혼자 가겠다고 우기는 게 ‘사’고.”

“하지만 난 지금 출근하는 게 아니에요. 다른 곳에 잠깐 들렀다 갈 거예요”

“출근이 아니면, 이 시간에 도대체 어딜 가려고?”

민준이 고개를 돌려 설을 쳐다보았다.

“……친구를 만나기로 했어요.”

“친구 누구.”

“내가 당신한테 만나는 사람들을 일일이 다 말해줄 순 없잖아요.”

“내가 알면 안 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건 아니고?”

“아니에요, 난 단지 당신한테 오해받고 싶지 않을 뿐이에요.”

‘오해’라는 단어에 민준의 머릿속에는 한 명이 떠올랐다.

“혹시 백건우를 만나러 가는 거야?”

“그래요. 오늘 건우 씨와 아침 약속을 잡았어요.”

설은 체념하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전 경호관들은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만 전달할 뿐, 보이지 않는 것까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민준은 아니었다. 그는 그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알고 싶어 했다.

설의 입장에서 볼 때 민준은 그녀에게 좋은 경호관이 아니었다.

“오늘도 백건우와 공적인 일이 있는 건가? 오해는 안 하는데 그래도 기분은 별로네.”

민준은 오른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창밖을 바라보던 설은 고개를 돌려 민준을 바라보았다. 그는 감정을 지운 얼굴로 핸들에 왼손을 올리고 있었다.

“Pakin 그룹 투자로 원자력연구원에서 공동 개발하는 일이 있어요. 그 일 때문에 건우 씨를 가끔 만나요.”

“그럼 혹시 백건우랑 같이 밥도 먹을 거야?”

“그건 아니에요. 잠깐 만나 일 얘기만 하고 바로 연구실로 들어갈 거예요.”

“그럼 됐어.”

백건우와 밥을 먹지 않는다는 설의 대답에 민준의 마음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민준은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손등을 쓱쓱 가볍게 문질렀다.

“아니, 밥 먹는 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예요?”

“나한테는 중요해. 기다릴 테니까 일 끝나면 나와.”

“나 기다리지 말고 당신 할 일 해요.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잖아요.”

“내가 기다리면 불편해?”

“응,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아요.”

“알았어, 그럼.”

민준은 설을 약속 장소에 내려주고 그녀가 안으로 들어가자 차를 돌렸다.

민준의 자동차가 반대편에서 오는 건우의 자동차와 스쳐 지나갔다.

**

“Le blanc라는 회사였는데, 본사가 프랑스예요. 생긴 지 2년이 안 되는 곳이래요. 1년 전부터 광산 개발권을 하나씩 사들이고 있는데, 얼마 전엔 대전시에 광구 시추탐사를 위한 굴착 신고도 했대요.”

“굴착 신고를 했다고? 그게 언제인데?”

“바로 내일모레예요.”

오후에 두 눈을 반짝이며 달려온 인정은 오자마자 민준에게 그녀가 알아낸 것에 대해 열심히 브리핑을 하기 시작했다.

시에서 환경문제 때문에 채굴 신청은 불허했지만 광업권을 가진 외국 기업의 시추탐사까진 막을 수가 없었고, 그 기업이 샘플로 채취할 광석들은 본토에 있는 본사로 보내져 광물의 품위를 가리게 될 예정이라는 거였다.

“Le blanc(르 블랑)이라…… 이름부터 마음에 안 드네.”

민준은 거실에 세워 놓은 화이트보드에 Le blanc이라는 글자를 쓰고 주변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는 단어가 주는 느낌 때문에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하얗다는 뜻은 그에게 강설을 연상시키기 때문이었다.

민준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고, 인정은 말을 잘 듣는 학생처럼 의자에 두 손을 모으고 앉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선배님은 왜 대전에 있는 기업들에 대해 조사하는 거예요? 우린 영애 님 때문에 여기 와 있는 거잖아요.”

“저번에 있었던 일도 있고 해서 영애 주변에 문제가 될 만한 일이 있는지 미리 조사하는 거야. 중요한 일은 아니니까 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돼.”

“혹시 영애 님이 우라늄하고 무슨 관련이 있는 거예요?”

“…….”

건성으로 대답하던 민준은 갑자기 정색을 하고 인정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가 설을 의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기분 좋은 듯, 아까부터 기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박인정.”

“네, 선배님.”

“말을 꺼낼 때에는 해도 되는 말인지 아닌지, 먼저 생각이란 걸 한 후에 꺼내면 안 될까?”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말해둘 게 있는데.”

“네, 선배님.”

민준이 감정 없는 눈빛으로 인정을 직시했다.

“영애가 네 모든 언행을 참아줄 필요가 없다는 걸 명심해. 네가 네 아버지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는 것처럼 영애도 똑같이 그럴 수 있다는 말이야. 이해가 돼?”

“……네, 이해했습니다.”

인정이 고개를 숙여 붉어진 얼굴을 감추었다.

민준은 그녀에게 영애 앞에서 까불지 말라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는 청와대 경호실로 뽀르르 전화를 한 인정처럼, 영애도 똑같은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에게 일깨워 줬다.

**

늦은 저녁.

설의 오피스텔 현관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그녀는 702호를 흘끔 쳐다본 후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총총 걸어 빠르게 계단을 내려왔다.

민준은 오늘 그녀가 백건우를 만난 게 신경이 쓰였는지 저녁에 이야기를 좀 하자고 했지만, 오늘 밤엔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설은 그에게 오늘은 피곤해서 일찍 자겠다는 핑계를 댔다.

그녀가 1층 출입 유리문을 열고 막 나가려는 참이었다.

“이렇게 늦은 밤에 어디를 가려고?”

그때 갑자기, 그녀의 등 뒤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쿵.

설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그녀는 당황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민준이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서서 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뭐예요, 지금? 내가 나가는 거 어떻게 알았어요?”

“질문은 내가 먼저 했는데.”

“살 게 있어서 잠깐 요 앞 편의점에 가려는 거예요.”

“편의점 갈 거면 나랑 같이 가, 마침 살 게 있었는데 잘됐네.”

민준은 설이 손에 들고 있는 차 키를 힐끗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그의 시선을 의식한 설이 슬그머니 손을 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하지만 민준은 이미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눈치챈 후였다.

그는 어서 대답을 해보라는 듯 설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무리 당신이라도 내 개인 사생활까지 전부 다 참견할 순 없어요.”

“영애 님의 사생활이라…… 무슨 빨간 비디오 제목 같네. 이 밤에 내가 모르는 남자라도 만나려는 거야?”

“그러면 안 되나요?”

“설득력이 없어, 다른 핑계를 대 봐.”

“왜 설득력이 없어요? 나에게도 당신이 알지 못하는 인간관계가 있다고요.”

“당신이 내가 아닌 다른 남자를 만나고 싶을 리가 없잖아.”

“김민준 씨, 당신이 당신의 모든 걸 나와 공유할 수 없는 것처럼 나도 그래요. 맞아요, 나 사실 약속이 있어요. 그런데 당신이 같이 간다면 나는 너무 불편할 거예요.”

“내가 있어서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벌써 두 번째 듣네, 그것도 같은 날 말이지.”

“미안해요. 그래도 난 당신이 날 좀 편하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싫다면 어쩔 수 없지. 알았어, 같이 가지 않을게.”

민준이 싱겁게 금방 고개를 끄덕이자 설은 미심쩍은 얼굴을 했다. 뭔가 꺼림칙하긴 했지만 지금 가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조심해서 다녀올게요.”

“……그래.”

설은 민준에게 걱정 말라는 눈빛을 보낸 뒤 잠시 후 그의 눈앞에서 차를 몰고 사라졌다.

민준은 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내 잠시 바라보다 따라오지 말라는, 간절한 설의 눈빛을 떠올리며 도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

설은 Pakin이라고 써진 거대한 물류창고 앞 한쪽 구석의 어두운 곳에 자동차를 주차했다.

밤이었지만 그곳에 들고 나는 차들이 많아 설의 자동차가 특별히 눈에 띄지는 않았다.

설은 자동차 문을 열고 나와 물류창고 옆에 조금 떨어져 있는 건물을 향해 빠르게 걸었다.

주변을 살짝 돌아본 그녀는 손에 쥐고 있던 보안 카드를 리더기에 대고 곧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일반 직원들이 접근하지 않는 곳이었다. Pakin 직원들은 연구개발 동으로 알고 있었지만 Pakin을 위한 곳은 아니었다.

설은 지하로 내려가 두 개의 육중한 문을 더 통과했다.

“늦어서 죄송해요.”

“농축 장비를 완성했어요. 여기로 와서 한번 볼래요?”

설이 마지막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먼저 와 있던 사람들이 활짝 웃으며 그녀를 맞았다.

누군가 휘이익- 하고 휘파람을 불며 작게 웃었다.

마침내 농축 장비 조립을 마쳤고, 이로써 원자로 없이도 필요한 실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건우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절대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

청와대.

“다 늦은 저녁에 이렇게 오라 해서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각하.”

오늘 김 국장은 대통령의 부름을 받았다.

대통령이 다 늦은 저녁에 김 국장을 부른 건 사적으로 할 말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가 김 국장에게 사전에 별다른 언질이 없었던 걸로 유추해 볼 때 불편한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았다.

대통령은 책상 위에 팔꿈치를 올리고 깍지를 낀 채로 김 국장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김 국장, 지금 대전에 가 있는 요원이 도대체 누구입니까?”

대통령은 경호실로부터 NIS 요원 둘이 영애의 경호를 위해 내려갔다고 들었다.

그가 지시한 건 여자 요원 한 명이었는데, 내려간 요원은 남녀 각각 1명씩 모두 2명이었던 것이다.

“저번에 말씀하셨던 박인정 요원과 산업보안팀 김민준 요원입니다.”

김 국장의 대답에 대통령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눈썹을 꿈틀거렸다.

“혹시 내가 알고 있는 그 김민준 요원 말입니까?”

“네, 각하.”

“그 친구가 왜 거기에 있습니까.”

“제가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그곳으로 보냈습니다.”

“필요하다라…… 김 국장 혹시 내가 모르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대통령은 심기가 불편해졌고, 언짢은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다른 생각이라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 딸아이 옆에 굳이 김 국장의 아들을 붙여 놓은 이유 말입니다. 난 김 국장에겐 정치적인 뜻이 없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혹시 내가 틀렸습니까?”

“저한테 다른 뜻이 없다고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만, 적어도 각하께서 생각하시는 이유는 아닙니다.”

“다른 뜻이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대통령의 눈빛이 진중해졌다. 그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타닥타닥 두드렸다.

“저는 강조국 양이 원자력연구원에 있는 이유가 따로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김 국장, 그건 이미 다 끝난 일입니다. 김 국장도 확인한 일 아니었습니까? 내 여식이 아무리 영특하다고 한들 장인어른처럼은 될 수 없습니다. 지금 하는 일에 취미를 붙이며 살고 있기 때문에 내버려두고 있는 것뿐이에요.”

“각하께서 그렇게 믿고 싶으신 건 아니십니까?”

“김 국장.”

대통령의 눈빛이 서늘해졌지만 김 국장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각하, 이인호 박사께서 돌아가셨을 때에도 그리고 2년 전 파일을 되찾았을 때에도 미국중앙정보국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파일에 핵무기와 관련된 정보가 담겨 있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아마 지금도 감시의 끈을 놓지 않고 있을 겁니다. 만약 2년 전과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난다면 그들도 이번에는 그렇게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그것은 각하께서 더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NIS에서는 지금 무얼 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대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조사 중입니다. 만약 원자력연구원 측에서 핵과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다면 각국 정보국이 눈치채기 전에 중단시켜야 합니다. 북한에 강도 높은 UN 안보리의 제재가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 대한민국이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하고 있다는 오해라도 받게 되면 일이 복잡해집니다. 게다가 2년 전 파일에 담겨 있던 내용 때문에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국제원자력기구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꼭 그곳에 김민준 요원을 보내야 했습니까? 난 김 국장을 이해할 수 없군요.”

대통령은 이미 2년 전에 자신의 딸 조국에 대한 민준의 마음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가 민준을 집무실로 불렀을 때 민준은 자신이 왜 파견을 나가야 하는지 이유를 묻지 않았고, 그에게 다른 변명을 하지도 않았다.

그랬던 민준이 이번 임무를 순순히 받아들였다는 게 대통령은 영 개운하지 않았다.

대전에 관한 임무를 민준이 받아들인 이유는 그가 딸 조국을 잊었거나, 아니면 흔들리지 않는 냉철한 이성을 가졌거나, 그도 아니면 상명하복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이 셋 중 하나일 것이었다.

대통령으로서는 그 이유가 첫 번째이길 바랐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그는 얼마 전 얼굴이 부쩍 밝아 보이던 조국의 얼굴을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김민준 요원은 상황 판단이 빠르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요원입니다. 그것 외에 다른 뜻은 없습니다.”

‘합리적인 결정이라…….’

대통령은 다시 한 번 더 2년 전 일을 떠올렸다. 그때 민준은 개인적인 감정에 휘둘려 상부의 명에 불복하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 전례에 비추어 볼 때, 민준이 대전으로 간 이유는 아직도 딸 조국에게 그때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았다.

대통령은 눈살을 찌푸리며 이마에 손가락을 짚었다.

“영애와 원자력연구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보고하세요.”

“네, 각하.”

김 국장이 돌아가고 난 뒤 대통령은 장인이신 고 이인호 박사의 말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파스퇴르는,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고 말했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라네. 오랜 타국 생활을 하면서 난 내가 힘없는 나라의 국민이라는 게 이따금씩 서러웠거든. 하지만 난 이제 조국이 있어서 정말 행복하고 또 감사하네.’

그때, 조국이 있어 행복하다고 말하던 이인호 박사의 표정은 희망찼고 벅찼다.

조국이 정말 장인어른의 희망이었을까?

대통령의 얼굴에 시름이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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