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고양이는 야옹하고 웁니다2016.08.04.
늦은 밤이었다.
두 사람은 오후 내내 밖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마침내 민준의 오피스텔 거실 테이블 앞에 정착했다.
민준은 조금 전부터 턱을 괴고 설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설이 들고 있던 머그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후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늦었는데 자고 가. 내가 내일 집까지 바래다줄게.”
시간을 확인한 설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그가 그녀의 손목을 대뜸 붙잡았다.
농담 같은 말이었지만 숨겨진 뜻은 명확했다.
어른의 대화로 번역하면 ‘오늘 집에 가지 마. 무슨 뜻인지 알지?’였다.
설은 그의 말 속에 숨겨진 뜻을 정확히 알아들었다. 민준의 여기에서 자고 가라는 말은 그 전까지의 장난스런 뉘앙스와 확실히 달랐다.
“괜찮아요, 아직 집으로 가는 버스가 끊기지 않았어요.”
“힘내라고 고기도 많이 먹여놓았는데 그냥 갈 거야?”
역시 그녀의 생각이 맞았다. 어쩐지 그가 오늘 그녀에게 전투적으로 고기를 먹이는 게 이상하다 싶었다.
설에게 힘을 내라더니, 그가 그녀에게 고기를 먹인 이유는 일을 열심히 하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부모님이 엄격하셔서요. 그러니 오늘은 이만 가봐야겠어요.”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민준이 예상외로 순순히 그녀의 손목을 놓아주자 설은 오히려 당황했다.
그렇게까지 단칼에 거절을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다만 덥석 ‘그래요’라고 대답하기가 좀 그랬을 뿐이었다.
“그래도 집 앞까진 바래다줄게.”
“……응. 고마워요.”
설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라고 정말 이런 그림을 원한 건 아니었다.
그가 그래도 가지 말라고 설을 붙잡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렇다면 민준의 의도가 무엇이든 그 옆에 같이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삼고초려는 민준에겐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였다.
설이 702호 현관문을 나와 701호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녀가 도어록에 손가락을 갖다 대자 잠금장치가 풀렸다. 어쩐지 기분이 침울해진 설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을 때였다.
“나 그럼 들어갈게…….”
띠리리리-
민준의 핸드폰이 울린 건 그때였다.
민준이 핸드폰 발신자를 확인하더니 피식 웃었다.
“여보세…….”
-오빠! 생일 축하해!
핸드폰 밖으로 여자의 발랄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 목소리는 설에게도 익숙했다.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였지만 설은 단번에 그녀가 서연임을 알 수 있었다.
‘오늘이 민준 씨 생일이었어?’
설의 두 눈이 휘둥그렇게 커졌다.
그러고 보니 오늘 민준이 마침 미역국이 먹고 싶었다며, 그녀에게 고맙다고 말했던 게 생각났다.
민준이 눈을 둥그렇게 뜬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 그래. 고맙다. 근데 오빠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통화하자.”
-오빠, 밤에도 바빠?
“응, 밤에도 바빠.”
민준은 서둘러 전화를 끊은 뒤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었다. 설이 얼떨떨한 얼굴로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오늘이 당신 생일이었어요?”
“응.”
“근데 왜 나한테 말 안 했어요!”
“나는 오늘 당신이 미역국도 끓여줬고 같이 저녁도 먹었고. 할 건 다 했는데?”
“오늘 생일이었는데 왜 집에 안 올라갔어요? 가족들이 기다릴 거 아녜요.”
“당신이 여기 있는데 내가 서울을 왜 올라가?”
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문을 닫지 않은 베이커리가 분명 있을 터였다.
그녀는 가방을 열고 서둘러 차 키를 꺼낸 후 민준에게 경고하듯, 그를 향해 검지를 길게 뻗었다.
“집에서 꼼짝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요!”
“지금 이 시간에 어딜 가려고?”
“그래도 생일인데 촛불은 꺼야 하잖아요.”
“됐어, 충분해. 나이 한 살 더 먹는 게 뭐가 좋다고.”
“내 마음이 불편해서 안 돼요. 금방 다녀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요, 알았죠?”
“참나. 나랑 같이 가, 그럼.”
“안 돼요! 나 금방 갔다 올 거니까 집에 얌전히 있어요.”
설은 신신당부를 한 후 민준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는 오늘 그녀와 함께 밥을 먹고 하루 종일 같이 있었기 때문에 정말 그걸로 충분했다.
어머니께선 서운해 하실 터였지만 생일이 올해만 있는 것도 아니니 괜찮았다.
그러나 설은 빨간 망토 아가씨처럼 그렇게, 늑대의 생일 케이크를 사러 제과점으로 총총 사라졌다.
**
민준이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슬슬 설이 케이크를 사러 간 게 아니라 사실은 만들러 간 게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딩동-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 찰나에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자, 그녀는 케이크로 추정되는 상자와 와인 박스로 추정되는 길쭉한 상자를 손에 들고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온 설은 서둘러 케이크를 꺼내 주방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민준은 얼굴에 미소를 짓고 그녀가 케이크에 불을 붙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미안하지만 선물은 나중에 줄게요, 괜찮죠?”
“선물은 생일날 줘야지.”
“혹시 집에 와인 잔 있어요?”
“물론, 종류별로 있지.”
“집에 와인 잔이 왜 종류별로 있어요?"
“있냐고 물어놓고 왜 종류별로 가지고 있냐고 하면 난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해?”
민준이 와인을 슬쩍 쳐다보더니 주방 찬장 문을 열고, 길쭉한 와인 잔 두 개를 꺼내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스파클링 와인의 뚜껑을 따고 조심스럽게 기울여 각각의 잔에 따랐다.
“내가 2년 동안 어디에 있다 왔게?”
“이탈리아.”
“그렇지.”
“그런데 왜 이탈리아였어요? 좋은 나라긴 하지만 이왕이면 우리나라하고 지리적으로 가까운 나라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에요.”
“글쎄, 로마의 휴일 때문이었을까?”
민준은 수수께끼 같은 말을 하며 그녀에게 와인 잔을 건넸다.
설이 로마의 휴일 이야기에 눈을 반짝이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당신도 그 영화 봤어요? 혹시 당신도 오드리 헵번을 좋아했던 거예요?”
“공주님 생활이 싫증나서 밖으로 도망쳤던 그 천방지축 아가씨 말이지? 그러면 안 돼, 요원들이 그 아가씨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겠어? 당신은 그 영화를 보고 교훈을 얻어야 해. 경호관 없이 밖으로 함부로 돌아다니면 안 된다는 교훈을 말이야.”
“영화 감상이 겨우 그게 다예요?”
“여주인공 허리가 너무 가늘어서 그 안에 장기가 어떻게 다 들어가는지 잠깐 궁금하긴 했지. 그런데 당신이 이렇게 흥분하는 걸 보니 남자 주인공이 근사했나?”
“그냥 남자 주인공이 아니라 1955년도에 무려 그레고리 펙이었다고요. 앤 공주는 헤어지고 나서 분명히 속상했을 거예요, 그만큼 잘생긴 남자를 또 어디서 만날 거야.”
“강조국이 알고 보니 외모 지상주의였군. 강조국 씨를 위해 앞으로도 잘생김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겠어.”
챙-
민준과 설의 잔이 부딪치며 경쾌한 소리가 났다.
“이제 촛불 꺼도 돼?”
“응, 소원도 빌어요.”
민준이 훅, 입에서 바람을 불어 긴 초 세 개를 꺼트리자 그녀의 얼굴 앞에서 하얀 연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그러고 보니 희미한 어둠 속에서 눈을 반짝이는 설이 오드리 헵번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역시 오드리 헵번보다는 설이 예뻤다.
“생일 축하해요.”
설이 케이크 위로 몸을 숙여 민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민준이 눈을 조금 크게 떴다가 이내 눈꼬리를 부드럽게 접어 내리며 웃었다.
“소원 빌었어요?”
“그럼.”
“뭔지 물어봐도 돼요?”
“당신도 같이 빌어준다면 얘기해 주고.”
“소원이 뭔데요?”
“오늘 밤 강조국이 집에 가지 않게 해 주세요.”
민준이 한 손으로 설의 허리를 감싸 안자 두 사람의 입술이 자연스럽게 맞물렸다.
두 사람은 긴장감을 감추기 위해 이따금씩 작게 웃음을 터트렸고, 쿵쿵 울리는 서로의 심장 소리를 못 듣는 척 외면했다.
민준은 담대하게 웃고 있었지만, 그녀의 허리를 감싼 손이 평소와 다르게 뜨거웠고, 그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게…… 당신 소원이에요?”
“빨간 망토 아가씨가 눈앞에 있으니 다른 소원은 생각이 안 나네. 어때, 이루어질까?”
“늑대가 잘생겨서 어쩔 수가 없네요.”
민준이 그녀의 허리를 끌어당기며 가볍게 안아 들자 설이 그의 목에 두 팔을 두르고 그를 내려다보았다.
두 사람의 입맞춤은 침실까지 이어졌다.
설은 민준의 어깨에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얹었다.
순간 움찔하며 딱딱하게 굳어지던 그의 얼굴이 설과 눈이 마주치자 부드럽게 풀어졌다.
상의를 탈의한 민준이 그녀를 내려다보자, 설은 그의 어깨와 등을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희미한 흉터가 군데군데 남아 있는 그의 상체는 설의 매끈한 피부와 대조를 이루었다.
“……몸에 상처가 너무 많아.”
설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강조국을 만나려고 내가 일부러 만든 거야.”
그녀의 붉은 뺨을 내려다보며 민준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나름대로 긴장을 풀기 위한 농담이었지만 그녀에게 재미있는 농담은 아니었다.
손가락 끝으로 흉터를 어루만지던 그녀의 손가락이 어깨에 난 총상 흉터에 가 머물렀다.
그녀는 어쩐지 가슴이 뭉클해져 눈물이 차오르는 눈을 깜빡거리며 민준을 올려다보았다.
“흠집이 많아서 싫어?”
“……아니.”
민준은 손가락에 설의 머리카락을 감으며 발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설의 뺨에 와 닿는 그의 입술에서 더운 열기가 느껴졌다. 희미한 어둠 속에 쿵쿵 울리는 그의 심장 소리만이 선명하게 들렸다.
“한번 개봉하면 반품 안 되는 거야.”
민준이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그녀의 얼굴 위로 입술을 내렸다.
맞닿은 입술 사이로, 안으로 삼키지 못한 뜨거운 열기가 흘러나왔다.
그와 그녀의 손가락이 사이사이 끼워져 단단하게 얽혔다.
그의 등 근육이 천천히 꿈틀거리기 시작하자, 하얀빛과 까만빛이 번갈아 그녀의 시야를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그녀의 등이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휘어지자 민준이 마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그녀의 입술 새로 흘러나오는 달뜬 신음을 삼켰다.
그녀의 눈앞이 온통 하얗게 변했다.
**
“야옹이.”
민준은 그녀의 머리카락 속에 한 손을 찔러 넣고 설의 목덜미를 가볍게 물었다 놓았다.
그러자 그의 품 안에 갇힌 고양이가 가르랑거리며 작게 바르작거렸다.
“지금이 몇 시인 줄 알아요?”
“알아.”
민준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엉망으로 헤집어 놓으며 웃었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그는 아까부터 설을 멋대로 야옹이이라는 대명사로 바꿔 부르고 있었다.
“야옹이. 좀 있으면 아침이야.”
민준은 그녀의 손목을 물었다가 그녀의 어깨를 물기도 했다. 그때마다 설은 이마를 잔뜩 찡그렸지만 항의할 기운이 남아 있지 않았다.
“제발 나한테 말 시키지 말아요. 나 너무 피곤해요.”
“알았어.”
민준이 웃으며 반대쪽 목덜미를 물자 눈을 감고 있던 설이 칭얼거리며 짜증을 냈다.
“물지도 말고요!”
“오늘은 일단 그만 물게.”
“내일도…… 물지 마요.”
그녀는 많이 고단했는지 웅얼거리며 이내 깊은 잠에 빠졌다.
민준은 설의 귓불을 물려다 잠시 멈칫했다. 오늘은 그만 물라고 했으니 이쯤에서 멈춰야 했다.
잠시 고민하던 민준이 마침내 미소를 지으며 다시 그녀의 뺨에 지그시 입술을 눌렀다.
설은 꿈속에서 성질 고약하게 생긴 강아지가 계속 그녀의 얼굴을 혀로 핥는 꿈을 꿨다.
잠시 후 민준은 설을 품에 안고 눈을 감았다. 맨살에 닿는 그녀의 매끄러운 피부가 부드럽게 감싸 오는 이불처럼 포근하고 따듯했다.
그는 꿈속에서 어린 시절 그의 모습을 보았다. 어린 민준은 어두운 방구석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 그 안에 고개를 깊이 묻고 있었다.
딸깍-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자 그는 몸을 부르르 떨며 고개를 더 깊숙이 숙였다.
두려움에 온몸이 덜덜 떨리고 심장이 쿵쿵거렸다. 아직 맞지 않았는데도 고통을 기억하는 어깨는 불에 덴 것처럼 화끈거렸다.
‘여기서 혼자 뭐 해요?’
그 앞에 누군가가 쪼그려 앉으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그를 불렀다.
민준이 눈을 조금 들자 눈앞에 있는 여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여자는 그를 보며 옅게 웃고 있었고, 그녀에게서는 익숙하고 좋은 향기가 났다.
‘내가 당신을 데리러 왔어요, 그러니까 나랑 같이 가요.’
민준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자는 그에게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오른손을 내밀었고, 잠시 망설이던 민준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녀가 내민 손을 잡았다.
그러자 그녀는 그를 안고 위로하듯 천천히 등을 쓰다듬었다.
민준은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따듯한 온기에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그는 손을 놓으면 여자가 사라질까 봐 그녀의 옷깃을 꽉 붙들었다.
‘나쁜 꿈은 이제 끝났어요.’
환하게 웃는 여자의 미소를 보며 민준은 자신이 오랫동안 그녀를 기다려왔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어둠을 지나 환한 빛 속으로 함께 걸어갔다.
**
민준이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가 정신을 차리고 옆을 돌아보았는데 그녀가 없었다.
꿈이었나, 라는 허탈한 생각이 드는 순간 꿈속에서 느꼈던 감정의 여파 때문인지 민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침대에 누운 채로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았다. 여러 가지 감정들이 한꺼번에 북받쳐 올라 가슴이 먹먹했다.
민준이 희미하게 웃으며 손바닥으로 눈두덩을 문질렀다.
사랑하는 사람과 꿈같은 밤을 보내고 나서 맞이하는 아침에 눈물이라니, 그녀가 지금 옆에 없는 게 다행이었다.
“야옹인 도대체 아침부터 어딜 간 거야?”
민준이 목멘 음성으로 투덜거리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꿈속에서 그의 손을 잡고 나갔으면 책임을 져야 할 게 아닌가.
민준은 혹시 그녀가 거실에 있나 싶어 침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거실엔 적막만이 가득했다.
아쉬운 마음이 들려는 찰나 민준의 눈에는 화이트보드에 가지런히 적힌 글자가 들어왔다.
-깊이 잠들어서 깨우지 않고 가요. 밥 줄 테니 일어나면 건너와요, 야옹.
민준은 화이트보드에 적힌 글귀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눈가는 다시 시큰해졌지만, 가슴엔 행복이 가득 찼다.
잠시 후 샤워를 마친 민준이 젖은 몸의 물기를 닦으며 거실로 나왔다.
그는 곧바로 옷을 갈아입은 후 현관을 열고 나가 701호의 초인종을 눌렀다. 문이 열리자 그 틈 사이로 그의 야옹이가 언뜻 보였다.
민준의 야옹이는 목 끝까지 올라오는, 두툼한 터틀넥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잘…… 잤어요?”
“야옹.”
민준이 슬쩍 웃으며 대답했다. 어쩐지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치기가 어색했던 설이 눈동자를 옆으로 빙그르르 돌리며 물었다.
“아침은 먹었어요?”
설은 그녀가 그에게 아침을 줄 테니 건너오라는 메모를 남겨 놓았다는 사실을 잠깐 잊었다.
하지만 그녀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민준도 정상은 아니었다.
“응. 보고 싶었어.”
“내가 밥 먹었냐고 물었잖아요.”
“보고 싶었어, 야옹이.”
그녀의 오피스텔 안으로 성큼 들어간 민준이 설을 가슴에 안으며 웃었다.
“근데 왜 이렇게 꽁꽁 싸매고 있는 거야?”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요.”
“겉으로 티가 많이 나나?”
“지금 뭐 하는……!”
민준이 갑자기 오른손을 그녀의 스웨터 안으로 쑥 집어넣더니 상의를 위로 살짝 들어 올렸다.
당황한 그녀가 민준의 어깨를 밀쳤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그녀의 울긋불긋한 피부를 관찰하더니 픽, 하는 웃음소리와 함께 다시 상의를 아래로 내려 옷매무새를 정리해 주었다.
그리고 아주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나네.”
강설은 겉으로 보이는 부분도 예쁘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이 더 예뻤다. 물론 마음을 얘기하는 건 아니었다.
어젯밤 그의 품 안에서 가르랑거리던 그녀를 떠올리자 민준은 감전이라도 당한 것처럼 손끝에서 발끝까지 전기가 찌르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들어와요.”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설이 끙 소리와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뒤돌아섰다.
그녀는 잔뜩 인상을 찡그린 채 엄지손가락으로 한쪽 허리를 지압하듯 누르며 걸었다. 밤새 누구한테 두들겨 맞은 것마냥 온몸이 욱신거렸다.
민준이 뒤에서 그녀의 허리를 한 팔로 감싸 안자 설이 가던 걸음을 멈췄다.
그가 오른손으로 그녀의 등허리를 부드럽게 마사지하듯 문지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좀 풀어주면 괜찮을 거야.”
설은 보살핌을 받는 환자처럼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의 손길이 닿자 신기하게도 허리의 은근한 통증이 점차 수그러들었다.
“……평소에 잘 안 쓰던 근육들이 갑자기 운동을 하니까 놀랐나 봐요.”
“내가 당신은 운동 부족이라고 말했잖아.”
“그거랑 이거랑 같은 근육이에요?”
“글쎄.”
민준이 낮게 웃으며 설을 뱅글 돌려 눈앞에 세웠다.
태연함을 연기하고 있는 그녀의 분홍빛으로 물든 뺨이 눈에 들어오자 그의 눈빛이 애틋하게 변했다.
민준이 설을 위로 가볍게 안아 올리며 그녀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오전의 밝은 햇살과 함께 그녀의 미소가 그의 얼굴 위로 가득 쏟아졌다.
“강조국은 오늘도 예쁘네.”
민준이 웃으며 그녀와 시선을 맞추자 그녀가 그의 뺨을 감싸 쥐고 고개를 내렸다.
두 사람의 맞닿은 입술에 사랑이 머물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