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애의 경호관-89화 (89/94)

89화. 둘이 하나가 되는 (2)2016.11.08.

[오늘 청와대 영빈관에서 강현석 대통령의 영애인 강조국 양의 결혼식이 비공개로 열립니다. 청와대 홍보실에 의하면 강조국 양은 직장 생활을 하던 중 만난 김민준 군과 2년여의 열애 끝에 오늘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김민준 군은 평범한 공무원으로 1남 1녀 중 장남이라고만 공개가 되어 있으며 자세한 인적 사항에 대해서는…….]

며칠 내내 구름이 끼어있던 하늘이 오늘은 거짓말처럼 파랗게 맑았다.

조용히 결혼식을 올리는 만큼 설은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아침 일찍부터 청담동 헤어숍에 앉아 얌전히 메이크업을 받고 있었다.

“이 기사 봤어? 오늘 대통령 딸이 결혼을 한다는데? 상대가 평범한 직장인이라는데 평범한 재벌 2세인가 보지?”

설 가까운 곳에서 메이크업을 받던 여배우가 핸드폰으로 기사를 검색하던 중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평범한 재벌 2세 아니면 평범한 정치가 집안 아들이겠지요. 우리랑은 평범하다는 기준이 다르니까요. 보니까 결혼식 사진은 외부 유출이 금지되어 신랑 신부 얼굴은 볼 수도 없다는데 뭘 그렇게까지 숨기는 건지. 안 그래요, 신부님?”

설의 머리를 만져주던 원장이 슬쩍 눈치를 살피며 설에게 말을 걸었다.

원래는 예약이 없으면 고객을 받지 않게 되어 있는데, 오늘 그녀가 직접 메이크업을 하게 된 신부는 어찌 된 영문인지 예약 없이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어젯밤 평소 알게 지내던 지인으로부터 은밀한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자세한 내용은 묻지 말고 내일 오후 결혼식을 올리는 신부의 메이크업을 직접, 정성껏 해달라는 전화였다.

그 지인이 이름만 대면 알만한 사모님이었기 때문에 이 미스터리한 신부에 대한 그녀의 궁금증은 상당했다.

“……그러게요. 그럴 만한 사정이 있나 봐요.”

설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얼버무렸다.

그녀는 엄마가 아는 지인에게 부탁을 해서 지금 이곳에 와 있었다.

아무리 조용히 치르는 결혼식이라고 해도 설에겐 평생에 한 번뿐인 결혼식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딸이 오늘 누구보다 예쁘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신랑님은 뭐하시는 분이세요? 언뜻 보니까 모델 일 하시는 분 같던데…… 맞아요?”

그녀는 소파에 앉아 잡지를 뒤적거리고 있는 민준을 흘끔 쳐다보며 물었다.

신랑은 대기실을 두고 굳이 신부 가까이에 앉아 손으로는 잡지를 넘기면서 눈으로는 줄곧 신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가끔씩 원장을 쳐다보는 그의 눈빛이 신부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자신에 대한 고마움이 아니라, 그녀를 건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눈빛이어서 그녀는 흠칫흠칫하며 몸을 떨어야 했다.

“그냥…… 공무원이에요.”

“어머! 무슨 공무원이 저렇게 잘생겼대요? 그런데…… 신랑님은 왜 저렇게 무섭게 절 쳐다보시는 건지…… 호호호, 그냥 제 기분 탓이겠죠?”

설은 거울로 민준과 눈이 마주치자 빙긋 웃었다. 그는 그녀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눈을 감았다 뜨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주변이 온통 여자들뿐이라 불편할 만도 한데 민준은 처음부터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설과 눈이 마주친 민준은 의미 없이 손에 들고 있던 잡지를 다시 한 장 넘겼다.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도 예쁜 설이 점점 더 예뻐지고 있었다.

앉아 있는 자리가 불편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는 설을 지켜야 했다.

선녀처럼 예쁜 그녀가 날개옷을 입고 그동안 고마웠다는 말을 남긴 채 하늘로 올라가 버릴지도 몰랐다.

민준도 엉뚱한 상상이라는 걸 알았지만, 설은 그만큼 아름다웠다.

짙은 향수와 화장품 냄새가 가득한 이 공간이 그에게는 마치 고문실 같았지만, 민준은 인내심을 가지고 꿋꿋하게 참고 있었다.

그가 머리가 아플 때마다 설을 바라보면 지끈거리는 두통이 마법처럼 깨끗이 사라졌기에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다 됐습니다, 신부님.”

자신감이 충만한 원장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돌아보았다가 깜짝 놀라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언제 왔는지, 그녀 곁에 신랑이 다가와 서 있었던 것이다.

“많이 기다렸죠?”

설이 거울을 통해 민준과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습관처럼 그녀의 얼굴을 만지려던 민준이 허공에서 손을 멈칫 멈추더니 손길을 거두었다. 설을 마음대로 만질 수 없자 그는 기분이 언짢아졌다.

이렇게 예쁜 설이 웨딩드레스까지 입게 된다면 그는 정말 그녀를 관상용처럼 쳐다만 보고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당신 표정이 왜 그래요? 많이 어색해요?”

“응, 어색해. 그러니까 얼른 원래의 당신으로 돌아왔으면 좋겠어.”

“그게 지금 오늘 결혼할 신부에게 신랑이 할 소리예요?”

설이 자리에서 일어나 민준을 향해 곱게 눈을 흘겼다.

민준은 갈 곳을 잃은 두 손을 얌전히 바지 주머니 속에 집어넣고 관상용이 되어버린 설을 아쉬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나 예쁘지 않아요? 내가 보기엔 나 지금 좀 예쁜 것 같은데요?”

“예뻐. 너무 예뻐서 속상할 만큼.”

민준은 풋 하고 웃음을 터트리는 설을 애틋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오래전부터 이미 주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뛰는 그의 심장이 활발하게 제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때, 두 사람 주변에서 찰칵하고 사진 찍는 소리가 났다.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돌리는 민준의 눈에 핸드폰을 손에 들고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고 있는 원장의 얼굴이 보였다.

“신랑 신부님 비주얼이 너무 근사해서 제가 기념으로 사진 한 장 찍었는데 괜찮…… 어어어?”

원장은 너무 놀라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어디에서 나타난 건지,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쏜살같이 달려와 그녀의 손에서 핸드폰을 뺏었던 것이다.

그는 경직된 얼굴로 그녀의 핸드폰에서 사진을 찾아 빠르게 삭제한 후 돌려주며 경고하듯 말했다.

“사진은 안 됩니다.”

“아니, 그냥 사진인…….”

“제가 분명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

‘아니, 두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라고 이렇게까지 하나? 누가 보면 신부가 오늘 결혼한다는 대통령 딸이라도 되는 줄 알겠네!’

원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그러나 뭐라 항의를 하려던 원장은 남자의 살벌한 얼굴을 보며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 경험에서 생각해 보건데 이건 그녀가 얌전히 꼬리를 내려야 할 일이 맞는 것 같았다.

“종로까지 이동하시려면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남자는 조심스럽게 두 사람에게 말을 건넸고 민준과 설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종로…….”

그녀의 머릿속에 불현듯 오늘 결혼할 영애의 남자가 공무원이라는 기사가 떠올랐다.

원장은 입을 떡 벌린 채 멀어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나한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에요, 박 원장.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죠?’

어젯밤 걸려온 전화의 내용을 떠올린 그녀가 힘없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

이날 오후 청와대에는 평소와 다른 긴장된 기운이 맴돌았다.

조용한 침묵 속에 영빈관을 분주히 오가는 직원들은 경직된 얼굴로 그들이 맡은 업무에 대해 거듭해서 점검했다.

그러면서도 이따금씩 영빈관 안을 흘끔거리는 그들의 눈에는 신기함과 부러움 같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예식 10분 전입니다.”

귀에 인이어 이어폰을 꽂고 대기실 안을 지키고 서 있던 여자 경호관이 민준과 설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말에 설은 부케를 쥐고 있던 두 손에 잔뜩 힘을 주었다.

“긴장했어?”

아까부터 그녀의 앞에 서서 설을 바라보던 민준이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 자신도 속내는 설과 별반 다를 게 없었지만, 그는 표정을 감출 수 있다는 좋은 특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긴 한데…… 그래도 당신보다는 덜 긴장한 것 같아요.”

하지만 그 특기는 설 앞에만 가면 제 기능을 상실해 버렸다.

그녀는 언제부터인지 민준의 표정과 눈빛의 아주 작은 변화에 담긴 감정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당신이 잘못 본 거야. 난 긴장하지 않았거든.”

여유롭게 웃는 민준의 입꼬리 끝이 어색하게 말려 올라갔다. 그는 주먹을 꽉 쥐고 있는 손에 설의 시선이 머물자 픽 웃었다.

설에게 ‘만지지 마시오’라는 푯말이 붙어 있는 것 같았기에 하루 종일 그녀에게 닿지 못한 민준의 손은 아침부터 내내 방황하고 있었다.

방황하다 지쳐 이제 온몸을 동그랗게 말고 시위를 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얼른 결혼식이 지나갔으면 좋겠어요.”

설이 상체를 앞으로 조금 내밀어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당신이 아무리 그래도 나만큼 간절하진 않을 거야.”

그녀의 얼굴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대로 멀어지자 민준은 눈앞에서 사탕을 뺏긴 아이처럼 못마땅한 얼굴이 되었다.

그런 그를 보며 설이 풋 하고 조그맣게 소리 내 웃었다.

그의 말처럼 민준은 얼굴은 잔뜩 구기고 있으면서도 눈빛으로는 그녀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결혼식이 끝나면 제일 먼저 뭘 하고 싶어요?”

“제일 먼저 당신 손을 잡고 싶어.”

“그리고요?”

“당신 얼굴과 머리카락도 만지고 싶고.”

하얀 드레스를 입고 하늘거리는 면사포를 머리 뒤로 길게 늘어뜨린 설은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그래도 그가 가장 좋아하는 그녀의 모습은 긴 머리카락을 바람에 날리며 환하게 웃는 것이었다.

“예식 5분 전입니다.”

경호관이 다시금 정중한 안내를 했다.

이제 5분 후면 두 사람은 하객들 앞에서 둘이 하나가 됨을 엄숙히 맹세할 것이다.

경호관의 말에 민준은 설의 장갑 낀 손등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강조국.”

“응.”

“결혼 축하해.”

“당신도 축하해요.”

두 사람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미소 지었다.

민준은 사랑한다는 말도, 감사하다는 말도 그의 마음을 온전히 다 표현하지 못해 자신의 심정을 말로 꺼낼 수 없었다.

그런데 설은 현명하게도 그런 그의 마음을 읽어주고 그녀 역시 그러하다고 말을 해주었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사람 중에 나를 찾아 사랑해 줘서 고맙다고, 두 사람은 그렇게 눈빛으로 마음을 대신했다.

“두 분 이동하시겠습니다.”

“이제 그만 갈까?”

민준이 빙긋 웃으며 손을 내밀자 설은 그의 손바닥 위로 장갑을 낀 손을 살짝 얹으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가볍게 심호흡을 한 민준은 설을 놓칠세라 그녀의 손을 가볍게 그러쥐었다.

출입구를 향해 몇 걸음 걷는 걸음이 멀게만 느껴졌다.

잠시 후 출입문이 좌우로 활짝 열렸고, 두 사람은 하객들의 축하 박수 속에 빛 속으로 함께 걸어 들어갔다.

결혼식을 축하해 줄 최소한의 인원만 초청했기에 하객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모두 진심으로 두 사람의 앞날을 축복해 주었다.

‘중국집 할머니 오신 것 봤어요? 아주 곱게 한복을 입고 오셨어요.’

영빈관에 마련된 하객 석에 두 사람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박 단장은 NIS에서 유일하게 두 사람의 결혼식에 초청받은 사람이었기에 벅찬 얼굴로 열심히 박수를 치고 있었다.

박 단장은 예전에 민준이 그에게 결혼했다고 말을 했을 때 국장님께 결혼식에 왜 불러주지 않았냐며, 너무 섭섭하다고 거칠게 항의했던 건 아주 잘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한테 중요한 사람들만 하객으로 불렀는데 당연하지. 다음에 가면 이제 짜장면에 계란 두 개 얹어주실 거야.’

두 사람과 인연이 깊은 중국집 할머니는 눈앞의 광경을 보고도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 듯한 얼굴이었다.

할머니는 혹시 꿈이 아닌가 싶어 남들 모르게 살짝 허벅지를 꼬집어보았다.

예쁜 단골과 잘생긴 총각을 청와대에서 보게 될 거라고는 꿈에서라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두 사람이 결혼을 한다고 해서 신통방통했을 뿐이고, 결혼식 당일 차량을 보내겠다고 해서 뭘 그렇게까지 하냐고 말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 자신을 실은 차량이 청와대 정문을 통과했을 때 그녀는 혼미해지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백건우는 당신이 부른 거야?’

‘건우 씨는 우리 둘한테 고마운 사람이잖아요, 서연 씨 좋아하는 것 좀 봐요.’

‘저렇게 티 나게 좋아하다 아버지께 들키지 않겠나 싶어.’

‘왜요? 들키면 안 돼요?’

‘적어도 오늘은 안 돼.’

**

영애의 결혼식에 그를 제외한 재계 인사는 아무도 초청되지 않았기에 건우는 내심 의아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래도 굵직굵직한 기업의 총수 몇은 청와대에서 부를 줄 알았는데, 영빈관 안에서 그가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몇 명 되지 않았다.

건우는 정면을 응시하고 앉아 있으면서도 이따금 시선을 돌려 서연을 바라보았다. 김 국장 내외 옆에 앉아 있는 서연은 어쩐지 섭섭한 기색이었다.

서연은 이렇게 예쁘게 차려입고 앉아 있는데도 곁으로 다가오지 않는 건우에게 서운해하고 있었다.

오늘 같은 날 부모님께 건우를 소개해 드리고 싶었는데 그가 천천히 인사드리자고 말해서 실망한 것도 있었다.

그녀는 건우의 나이가 나이인지라 혹시 그가 결혼을 서두르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서연이 건우의 마음을 의심하는 건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그녀의 부모님께 인사드릴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는 그의 속을 서연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

‘그런데 황 원장님이 보이지 않네? 당신이 그분을 초청하지 않았을 리가 없는데 말이야.’

‘황 원장님은 오늘 중요한 일이 있어서 부득이하게 참석을 못 하셨어요.’

‘오늘 우리 결혼식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으셔?’

‘그런 게 있어요.’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 거야?’

모든 사람의 눈길이 청와대 영빈관으로 쏠린 오늘, 황 원장은 조용히 평창동 집을 찾았다.

설이 집안사람들에게 미리 언질을 해 두었기 때문에 그가 설의 연구실로 들어가는 데에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그녀의 결혼식을 눈으로 볼 수 없어 섭섭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었고 또 설이 바라던 일이었기 때문에 그의 가슴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기대감으로 한껏 부풀어 있었다.

‘응? 인정 씨 오랜만이네요?’

‘쟤는 하객이 아니라 지금 근무 중이야.’

인정은 여전히 청와대 경호실 파견 임무를 하고 있었지만 이제 더 이상 설의 경호를 하진 않았다.

민준은 인정이 곁눈질로 건우를 흘끔거리는 걸 보며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어떻게 좋아해도 꼭 임자 있는 남자들만 좋아하는 건지, 그것도 재주라면 재주겠다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응?’

‘국장님……하고 어머님이 많이 서운하신가 봐요.’

민준이 흘끔 그의 부모님을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한복 옷고름으로 연신 눈물을 찍어내고 있었고 김 국장은 이따금씩 장갑 낀 손으로 눈가를 빠르게 훔쳐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김 국장 내외가 신랑 측 부모가 아니라 신부 측 부모로 보일 정도였다.

‘너무 좋아서 그러시는 거야.’

‘그래도 두 분이 우시니까 기분이 이상해요.’

‘대신 다른 두 분은 웃고 계시잖아.’

‘우리 부모님도 너무 좋아서 그러시는 거예요.’

대통령은 한쪽 입가에 슬쩍 미소를 걸치고 있었고, 영부인은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만개한 꽃처럼 활짝 웃고 있었다.

처음 민준을 봤을 때 그의 잘생김에 후한 점수를 주었던 그녀는 사람들 속에서 단연 눈에 띄는 민준이 볼수록 흐뭇하고 뿌듯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가 얼마나 예쁠지, 영부인은 상상만으로도 좋았다.

‘여행 멀리 못 가서 서운하지 않아?’

‘내가 당신한테 미안해요, 다 나 때문이잖아요.’

‘당신 때문이 아니라 우리 때문이지.’

‘후훗. 맞아요, 우리 때문이야.’

아무래도 설이 영애이기 때문에 두 사람은 호화스러운 신혼여행을 떠날 수 없었다.

국민들의 이목이 아니더라도 두 사람이 외국으로 나갔을 때 영애의 경호에 공백이 생기는 것에 대해 경호실에서 상당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기도 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결국 서울의 한 호텔에서 오늘 밤을 보낸 뒤, 내일 오후 비행기로 제주도를 가기로 결정했다.

사실 장소야 어디든 상관없었다.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고 온전히 함께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곳이라면 두 사람은 그곳이 어디라도 좋았다.

‘오늘 날씨가 따듯해서 정말 다행이에요. 이제 정말 봄인가 봐.’

‘봄이 오면 같이 민들레 보러 가자.’

‘둘이 같이 자전거도 타고.’

‘그래, 자전거도 타고.’

따듯한 봄기운이 문턱을 서성이는 어느 겨울의 끄트머리, 두 사람은 이렇게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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