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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바쁜 황녀님-4화 (4/124)

?제4화. 1장. 하필 오늘이라니 (3)

끔찍한 결말의 시작은 바로 나와 헤레이스의 결혼이었다.

만약 내게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헤레이스를 만나기 이전이어야만 했다. 아니, 최소 그와 결혼하기 전날…그것도 안 된다면 결혼식 당일로 보내 줘야 했다. 내가 헤레이스와 결혼하지 않을 수 있도록.

내가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바꿀 기회를 줄 의도였다면…최소한 그랬어야 한다. 그게 자비지!

하지만 내가 돌아온 날은 결혼식 다음 날…즉, 결혼 첫날이었다.

“왜 하필 오늘인 거야…….”

내게는 헤레이스와 엮이지 않도록 그와 결혼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를 고를 수 있는 기회 따위는 없었다. 이미 결혼식까지 치른 후로 회귀하다니. 이게 기회인지 저주인지 알 수 없었다.

딱 하루 차이. 하루…아니 반나절만이라도 앞으로 회귀시켜 주었다면 많은 것이 달라졌을 텐데. 무엇 하나 달라질 게 없는 오늘이라니, 이건 기회가 아니라 농락이었다.

‘앞으로 어떡해야 하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단 하루 차이로 나는 여전히 헤레이스와 결혼한 상황이었다. 내가 어떻게 하는 게 좋지.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부인.”

헤레이스였다. 첫날밤 내내 자리를 비웠던 헤레이스가 아침이 되어서야 돌아온 것이었다.

“…!”

나는 헤레이스를 바라보았다.

그의 앞에서 보란 듯이 목숨을 끊었다. 그런데 죽음을 넘어 회귀를 한 지금 이 순간에도 헤레이스가 내 앞에 서 있었다. 마치 헤어 나올 수 없는 굴레라도 되는 것처럼.

내 앞에 서 있는 헤레이스는 누구라도 한눈에 반할 만큼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금발은 주위마저도 환해지는 듯한 착각이 들 만큼 밝았다. 눈을 가릴 듯 말 듯 한 앞머리 사이로 나를 향하는 그의 검은 눈동자가 또렷하게 보였다.

그의 검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헤레이스는 내가 그를 관찰하듯이 빤히 보고 있는 시선을 마치 알고 있는 것 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회귀 전엔 단지 헤레이스를 보는 것만으로도 온종일 기분이 좋았던 적이 있었다. 오로지 그것만으로도 하루가 훌쩍 지나갈 만큼.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 그의 모습은 즐거움보다는 분노에 가까웠다.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회귀 전 그가 내게 저지른 일들이 소름 끼치도록 생생하게 떠올랐으니까. 더 이상 그의 얼굴을 보고 있는 것은 한계라고 생각했을 때였다.

헤레이스가 말했다.

“이제 황궁으로 가야 합니다.”

이래서 찾아온 거구나. 회귀 전에 지금과는 달리, 그와는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결혼 첫날이 떠올랐다. 그때도 아침이 되어서야 돌아온 헤레이스는 내게 이 말을 했었다. 결혼해서 앞으로 잘 살겠다며 루이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서.

헤레이스의 말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붕 뜬 것 같은 감각이 사라지고, 이게 정말 현실이라는 실감이 났다. 내가 회귀했다는 사실이.

“…알겠습니다. 준비하죠.”

내 대답에 헤레이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방을 나갔다.

나는 천천히 채비를 하면서 다시 한번 생각을 정리했다. 헤레이스를 볼 때마다 울컥하는 감정도 정리해야 했다.

과거에 인사를 하러 갔을 때, 루이스는 헤레이스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마지막까지 나와 헤레이스의 결혼을 반대했으니까 당연한 반응이었다. 황가와 공작가의 악연, 나 혼자만의 일방적인 마음으로 진행하는 결혼식. 루이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헤레이스는 내게 아주 작은 애정조차도 없었다. 그렇기에 결혼식을 하고 신혼여행도 생략했었다. 내 일방적인 고백과 끈질김으로 어쩔 수 없이 허락했을 뿐, 루이스는 결혼 당일까지 내게 다시 생각해 보라고 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루이스에게 헤레이스의 편을 들며 앞으로 보란 듯이 잘살겠다고 큰소리쳤었다. 아무것도 지키지 못한 거짓말이 되어 버렸지만. 언젠가 후회할 날이 올 거라는 루이스의 말이 전부 옳았다.

그러고 보니 지금 이 시기에는 루이스가 살아 있다!

헤레이스의 손에 피를 흘리며 결국 내 앞에서 세상을 떠난 나의 오라버니. 하지만 지금은 그가 살아 있다. 회귀 전과는 다르게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그제야 새로운 가능성이 떠올랐다.

모든 것이 그대로는 아니었다. 회귀한 시기가 이미 헤레이스와 결혼한 상황이라도, 앞으로 모든 일이 그대로 반복되어 결국 반역에 이르게 되더라도, 아직 바꿀 수 있는 것이 남아 있었다. 나의 하나뿐인 오라버니, 루이스가 살아 있으니까.

‘오라버니. 얼른 보고 싶어요.’

빨리 황궁에 가고 싶어졌다. 그리고 두 눈으로 살아 있는 루이스를 확인하고 싶었다.

2장. 나의 오라버니 (1)

훌쩍…훌쩍.

황궁에 들어와 루이스의 얼굴을 보자마자 갑자기 눈물이 왈칵 터졌다. 한 번 터진 눈물은 그칠 기색이 없었고, 나는 눈물도 모자라 콧물까지 질질 흘렸다. 대체 이게 무슨 추태인지.

“폐…폐하아아으…….”

“…….”

“오라버니…이이…흡…흐읍. 흐으으…….”

구름 한 점 없는 칠흑 같은 밤하늘이 떠오르는 까만 머리카락은 나에게도 있었다. 제국의 황후였던 어머니의 머리카락이 검은색이었다. 나와 나의 오라버니가 남매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유일하게 닮은 점이기도 했다.

그리고 갈색인 나의 눈동자와는 다르게 우리의 아버지였던 선황제를 닮아 피를 연상시키는 선명한 붉은 눈동자. 때문에 그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사람들이 무섭게 여기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를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눈동자.

그 모든 것이 정겨웠다. 그립고 또 보고 싶었던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나를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앞에서 느껴지는 시선은 루이스.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은 헤레이스. 하지만 두 사람의 시선도 나의 눈물을 멈출 수는 없었다.

‘살아 있다니.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 있다니.’

루이스가 흘린 피가 아직도 내 손에 끔찍할 정도로 생생한 감각으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눈앞에 있는 루이스를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루이스는 분명 살아 있었다. 내가 회귀했으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감격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루이스가 살아 있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서 손을 뻗었다가 허공에 그쳤다. 아무리 오라버니라고 해도 황제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댈 수는 없었다.

거기다 이미 눈물을 쏟아 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상한 상황이었다. 내가 여기서 루이스의 얼굴을 만지기라도 하면 정말로 내가 이러는 이유를 해명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나도 아직 얼떨떨한데 무턱대고 회귀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눈물만큼은 도저히 참아 낼 수 없었다. 그런 내 모습에 루이스는 혀를 차면서 내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그만 좀 울어라.”

“오라버니를 보니…훌쩍…너무 좋아요……. 훌쩍…….”

“…….”

“크흥-.”

나는 루이스가 준 손수건으로 코를 풀었다. 그래도 울음을 그치기는커녕 여전히 눈물이 나왔다.

보다 못한 루이스가 한마디 했다.

“네 눈물을 모아 놓으면 가뭄 때마다 잔소리하는 것들 입을 막을 수 있겠구나.”

나도 안다. 내가 얼마나 대책 없이 눈물을 쏟고 있는지. 하지만 나는 루이스가 뭐라고 할 때마다 눈물을 그치기는커녕 더 쏟아 냈다.

그야 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 우는 건데. 루이스가 살아 있다. 그것도 언제나와 같은 모습으로.

“어떻게 그런 말을…제가…흐윽…왜…흑……. 우는지도 모르고…흐으…….”

“그래, 내가 보고 싶어서 그런 거지. 우리 무심한 누이가 나를 이리 생각할 줄이야. 결혼하고 나니 갑자기 철이라도 든 거냐.”

“흐윽…그게 무슨……. 원래…흡…생각 많이 했어요!”

너무 반가워서 투정을 부렸다. 마치 어린 시절에 루이스가 내게 장난을 칠 때마다 억울해서 눈물을 쏟으며 시위했던 것처럼.

루이스도 어린 시절이 떠오른 건지 아니면 그저 내 모습이 웃겼는지 피식, 미소를 지었다.

“결혼한다고 해서 섭섭하기만 했는데. 좋은 점도 있구나.”

“오라버니이이이~~!! 흐어어엉-.”

인제 그만 멈춰야 하는데. 아무렇지 않은 척 의젓하게 미소를 지으며 루이스를 봐야 하는데.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감정이 쉬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 결국, 더는 참지 못하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루이스는 그런 나를 보더니 황당한지 입이 살짝 벌어졌다.

“오라버니이이……. 흐으읍…정말 보고 싶었어요…!"

내가 서럽게 울며 그치지를 않자, 처음에는 갑작스러운 돌출 행동 정도로 여기던 루이스의 얼굴이 점점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어느새 헤레이스를 향했다.

“너 무슨 일이 있었구나.”

그의 눈빛이 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져 있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내가 우는 이유를 헤레이스라고 알 리 없었다.

루이스를 본 순간, 내 정신은 5년 전이 아니라 어린 시절로 회귀해 버린 것 같았다. 어릴 때 서러운 일이 있으면 언제나 루이스를 찾아가 이유도 말하지 않은 채 울기만 했었다. 철이 들고 나서는 이렇게 남들 앞에서 울어 본 적 없는데.

“에일린.”

“훌쩍…….”

루이스의 목소리에 장난이 묻었다. 그 순간 루이스가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았다. 내 얼굴을 빤히 보며 이렇게 말하겠지.

“자꾸 못생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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