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도 바쁜 황녀님-5화 (5/124)

?제5화. 2장. 나의 오라버니 (2)

순간 뚝-. 눈물이 그쳤다. 어릴 적부터 내 눈물을 멈추는 루이스만의 마법의 주문이었다.

‘누가 못생긴 거 모를까 봐 어떻게 더 못생겨 보일까 궁리만 하는 거냐.’

내가 울고 있으면 루이스가 다가와서 장난이 가득한 목소리로 점점 더 못생겨진다고 말했다. 그러면 이상하게 눈물이 뚝 그쳤다. 대신 울음이 그친 자리에 분노가 자리했다.

“제가 어디가 못났습니까!”

“이제 멈춘 거냐.”

“……!”

내가 버럭 화를 내자 루이스가 한쪽 입꼬리를 올린 채 콧등을 툭툭 쳤다. 그의 행동에 순간 나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 그의 놀림에 눈물이 그친 대신 잔뜩 화가 난 내가 루이스에게 따지면, 아주 가끔이지만 루이스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코끝을 꾹 눌렀고, 그러면 그의 높은 콧대가 눌리면서 웃긴 얼굴이 되고는 했다.

‘이제 못난이 남매로군.’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 나는 울다 화내다 웃음을 터트렸다. 그게 내가 열셋이 될 때까지 루이스가 내게 해 주던 특별한 행동이었다.

루이스가 무심하게 툭 던지듯 말했다.

“하여간 손 많이 가기는.”

하지만 그 말에 들어간 마음이 가슴 깊숙한 곳까지 느껴졌다.

루이스 덕분에 눈물은 완전히 말랐다. 대신 밀려들었던 슬픔이 썰물처럼 쓸려 나가자 모두가 보는 앞에서 주책맞게 울었다는 사실이 현실로 확 다가왔다. 얼굴이 붉어지고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진정하려고 앞에 있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딸꾹.”

미치겠다. 진짜 어디 쥐구멍이라도 찾아놔야 할 것 같다. 겨우 진정이 됐나 싶었는데, 이번엔 딸꾹질이라니. 회귀하자마자 왜 이러나…자괴감이 들어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푸하하핫! …진짜 미치겠다.”

결국, 루이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헤레이스는 옆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어깨를 떨고 있었다. 웃음을 억지로 참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하아…….’

갑자기 창피함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살아 돌아오자마자 이게 무슨 짓이지.

억울해서 아무나 붙잡고 해명하고 싶은 심정이다. 나 원래는 이런 사람 아니라고. 이렇게 푼수처럼 울고 떼쓰고 그런 사람 아니라고! 너무 갑작스러운 일들이 한꺼번에 생기면 사람이 이상 행동을 하기도 한다고. 변명하고 싶었다.

‘그런 해명을 할 수 있을 리가…….’

뭐라고 해명한단 말인가. 앞으로 5년 후에 남편이 반역을 해서 오라버니가 죽고 나도 뒤이어 죽는데, 내가 과거로 회귀한 덕분에 지금 살아 있는 오라버니를 봐서 너무 기뻐 울었다고?

내가 그 말을 하는 순간, 루이스는 헤레이스를 비롯하여 의심 가는 귀족들을 모두 소탕할 것이다.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앞으로 벌어질 일이라는 것은, 결국 아무 증거도 없는 망상으로 몰릴 수도 있었다. 루이스가 내 말을 믿어도 다른 사람들 역시 내 말을 믿을 리 없었다. 루이스의 모든 행동은 명분 없이 저지르는 폭정으로 비칠 것이고, 헤레이스를 막아도 다른 곳에서 반역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었다. 그건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내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자 루이스가 놀리듯 말했다.

“이러다 또 우는 건 아니겠지.”

후우…. 한숨과 함께 할 말이 차고 넘쳤지만, 하지 않겠다. 괜히 말실수를 하는 것보다 오해를 받는 게 나았다.

공작가로 돌아가기 전에 오라버니와 단둘이 시간을 가졌다. 아무래도 오늘따라 유난히 이상한 내 모습이 걱정돼서 그런 것 같았다. 루이스는 이미 여기에도 없는 헤레이스를 떠올리는 듯 혀를 찼다.

나의 오라버니이자 제국 역사상 최고의 황권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최악의 폭군이라고 불리는 황제. 하지만 나에게만큼은 언제나 단 하나뿐이었던 오라버니. 루이스를 보니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나는 루이스를 향해 다짐했다.

“걱정 마세요!”

“뭘?”

루이스는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자기가 걱정할 게 이 세상에 있기는 있냐는 듯 거만한 표정이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다짐했다.

“이번에는 제가 지켜 드릴게요!”

우리 두 사람의 거리가 멀어진 계기가 바로 헤레이스와의 결혼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결혼 후에 냉정하게 자주 찾아가지도 않은 나 때문이었다.

황가와 공작가는 사이가 나빴다. 모든 것을 가진 루이스와 모든 것을 잃기 직전의 헤레이스는 너무 다른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헤레이스를 택했었다.

전적으로 그를 위해 공작가의 일원으로서 최선을 다했다. 황궁에 출입이 잦으면 괜한 눈치가 보일까 봐, 중요한 일이 아닌 이상 가지 않았다.

그런데도 루이스는 언제나 내게 서신을 보내고 안부를 물었다. 내 부탁이 그가 싫어하는 공작가를 위한 일임에도 언제나 들어주었다. 그래서 언제나 루이스가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의 등대일 것이라고 믿어 버렸다.

“네가. 나를?”

‘반대가 아니고?’라는 말이 이어서 들리는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나를 지켜 준 것은 언제나 루이스였으니까. 당연한 얘기였다.

하지만 나는 다시 한번 명확하게 말했다.

“네. 제가 폐하를 지켜 드리겠습니다.”

오라버니가 언제나 나의 든든한 등대였다면, 이번에는 내가 그를 지킬 것이다.

인제 그만 돌아가려고 하는데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문 앞까지 가서 다시 루이스를 돌아봤다.

“오라버니.”

가려다가 말고 돌아선 나를 루이스가 쳐다보았다.

“건강하세요.”

“……뭐?”

루이스가 황당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갑자기 이런 말이 얼마나 뜬금없는지 나도 알고 있지만, 그래도 꼭 말하고 싶었다.

“또 올게요.”

나는 루이스를 향해 활짝 웃으며 말한 뒤에야 돌아갈 수 있었다.

* * *

에일린이 돌아간 후, 루이스는 조용히 시종장을 불렀다. 방금 전까지 장난기 가득한 얼굴은 사라지고 냉혹한 얼굴만이 남아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봐.”

“헤레이스 공작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시종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루이스는 대답 대신 그다음 말을 이어 나갔다.

“헤레이스 공작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살피고.”

“네, 알겠습니다.”

시종장은 소리 없이 물러났다. 그는 루이스의 명령을 허투루 듣지 않았다. 그가 에일린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오랫동안 지켜봐 왔으니까.

사실 루이스는 두 가지 이유로 유명했다. 하나는, 제국의 공포 시대를 만들었던 제국 최악의 폭군이라는 사실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바로 그 폭군이 믿을 수 없는 시스터 콤플렉스의 소유자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의 시스터가 바로 에일린이었다.

3장. 안 해! (1)

나와 헤레이스가 탄 마차가 공작가 앞에 멈췄다. 집사 앨버트가 직접 문을 열었다.

“도착했습니다.”

저택에 들어서니 잠시 잊고 있던 사람이 보였다. 헤레이스의 친모인 이사벨이 사람 좋은 얼굴로 이쪽을 향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우리 아드님 오셨습니까.”

공작가에 도착하자마자 이사벨이 발 벗고 달려왔다. 그리고 빛의 속도로 나를 지나쳐 헤레이스 앞에 멈췄다.

그녀는 항상 그랬다. 마치 내가 자신의 아들을 뺏어간 것처럼 여기며 온갖 시기와 질투를 해 왔었다. 멍청한 나는 그를 있게 만들어 준 고마운 분이라며 온갖 시집살이와 이간질을 당하면서도 아무 말도 못 한 채 꿋꿋이 버텼었다. 모든 사정을 아는 에밀의 속만 썩어 들어갔었지.

이사벨을 보니 어쩐지 감회가 남달랐다. 나도 모르게 한쪽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내가 오늘 새로운 출발을 한 두 사람을 축복하기 위해 저녁 식사를 준비했어요.”

“몸도 좋지 않으신데 무리하지 마세요. 어머니.”

어머니에게만큼은 효자인 헤레이스 공작이 따뜻한 말을 건넸다.

이렇게 보니 참 그림처럼 보기 좋은 모자 관계구나. 내가 며느리만 아니었다면 말이지.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헤레이스와 다정하게 대화를 하던 그녀가 돌아봤다.

“혹시 에일린 그대는 별로인가요?”

나는 모자의 그림 같은 모습에 지지 않는 그림 같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럴 리가요. 어머님의 배려에 몸들 바를 모르겠답니다.”

아아, 정확하게 기억난다. 이 저녁 식사가 내 고된 시집살이의 시작이었던 것이.

저녁 식사에 나온 음식 자체는 훌륭했다. 문제는 저녁 식사를 하는 과정이었다.

헤레이스의 모친 이사벨은 그날따라 유난히 병약했다. 정확히는 병약한 ‘척’한 것이었지만. 회귀 전의 나는 그 사실을 결혼하고 나서도 아주 한참 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그녀는 식사를 하는 내내 잦은 기침을 하고 식은땀을 흘렸다. 헤레이스와 나를 위한 식사 준비를 직접 준비했다고, 무리를 했는지 식사도 제대로 못 하겠다며 힘들어했다.

우리 두 사람을 위해서 무리하다가 아프다는 말에 나는 그대로 휘둘렸다. 사실 그 말도 전부 거짓말이었지만. 힘들어하는 그녀를 위해 시녀들을 시켜도 될 일을 굳이 내가 자처했다. 사실, 그녀의 애처로운 눈빛에 흔들린 것보다는 헤레이스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이유가 컸다.

직접 주방으로 달려가 물 잔을 가져오고. 손수건을 가져오고. 그녀를 부축해서 정원을 걷고. 그 중간중간에 일어난 작은 사고들은 모두 내가 남을 돌보는 일이 미숙해서 벌어진 실수라고 착각하면서 애를 썼었다.

그날……. 고작 저녁 식사를 했을 뿐인데도 다음 날 나는 결국 감기몸살이 나서 끙끙 앓아야 했다. 하지만 그런 나를 위해서 밤새 간병을 하고 걱정을 한 것은 이 큰 저택 안에서도 에밀 단 한 사람뿐이었다.

이사벨은 늙고 병약한 자신에게 병이 옮을 수도 있다며 한 번도 찾지 않았고, 헤레이스는 낮에 단 한 번 얼굴만 내비쳤을 뿐 특유의 냉담한 얼굴을 한 채 바로 돌아가 버렸다.

결국, 나 혼자 보답받지 못할 마음을 일방적으로 그들에게 퍼부었을 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