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3장. 안 해! (2)
그때, 아픈 게 다 나아 오랜만에 식사 자리에 참석했을 때였다. 여느 때처럼 식사를 하고 있는 헤레이스를 향해 내가 했던 말을 지금 생각해 보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다행이에요. 저한테 옮지 않아서.’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감기몸살에 걸려 고생하는 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그가 감기에 걸릴 이유는 애초에 없었다. 그런데도 저런 속없는 말을 했었다니. 과거의 나의 멍청함에 다시 한번 한숨이 나오려고 했다.
눈앞에 맛있는 음식들이 차려졌지만 나는 상체를 뒤로 빼고 눈을 가늘게 뜨며 이사벨을 바라보았다. 그녀를 관찰하듯이…….
그리고 역시나. 이사벨의 기침이 갑자기 잦아졌다.
“콜록. 콜록.”
예상대로 식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사벨이 기침을 하기 시작하자 헤레이스가 걱정스러워하며 물었다.
“어머니, 괜찮으세요?”
‘그럼 그렇지.’
역시나 이사벨은 회귀 전에 있었던 일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오늘 좀 무리했나 봅니다. 콜록. 콜록.”
헤레이스가 걱정할수록 그녀의 기침 소리는 점점 더 거칠어졌다. 이사벨은 어느새 식사를 멈춘 채 계속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그 당시에 헤레이스가 감기에 걸리기는 했었다. 오랜만에 함께 식사를 한 다음 날부터 헤레이스가 식사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저택에 없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에밀에게 들었다. 헤레이스가 갑자기 지독한 감기에 걸렸다는 것이다.
그가 갑자기 왜 지독한 감기에 걸렸는지는 모르지만, 그 당시에 이사벨은 저택 안에 돈 병균 때문에 헤레이스가 아픈 거라며 속상해했다. 그 ‘병균’은 바로 나였고. 나는 죄책감과 걱정에 곁에서 그를 돌보려고 했지만, 헤레이스가 끝까지 나를 그의 방에 못 들어가게 했었다. 그래, 그런 일도 있었다.
내가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이사벨의 기침은 더욱 거세졌다. 보란 듯이 기침하는 게 느껴졌다. 목에서부터 걸리는 기침 소리.
예전이었다면 내가 바로 주방까지 달려갔겠지. 주위에 있는 시녀들을 두고 채신머리없이 그녀를 위해서 물 잔을 직접 가져와 바쳤을 것이다.
‘어머니. 천천히 드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이렇게 안절부절못하면서. 또 어쨌더라. 물을 못 마시기에 내가 직접 먹여 드렸었지.
그런데 마시는 도중에 재채기를 크게 해서 물 잔이 나한테 쏟아졌었지. 하지만 아무도 내 옷에 쏟아진 물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사벨의 건강을 걱정하는 데 여념이 없었을 뿐.
“콜록. 콜록. 콜록…….”
그녀는 여전히 콜록거리고 있었다. 기침을 하면서도 그녀의 눈빛이 흘깃 나를 보는 것이 일부러 신호를 보내는 것이 분명했다. 내가 물잔을 가져다줄 때까지 기침을 그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전엔 그게 그녀가 보내는 무언의 압박이라는 것을 모른 채 안절부절못했었다. 하지만 이제 5년간의 시집살이로 단련되어서 그녀의 작은 손짓에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완벽하게 알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콜록!”
“저희 때문에 오늘 무리하셨나 봅니다.”
결국,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내가 먼저 말을 건넸다. 그녀가 아플까 걱정되는 얼굴을 한 채. 그러자 이사벨은 이때다, 싶은지 더욱 세게 “콜록! 콜록! 어흣…….” 기침을 하며 손수건으로 입을 가렸다.
저 손수건을 강제로 빼앗아서 확인하면 피는커녕, 분명 그녀가 뱉은 침밖에 없을 것이 분명하다. 괜히 눈살이 찌푸려졌다.
“신혼인 두 사람에게 특별한 식사를 대접하고 싶어서……. 좀 무리했더니. 목이 너무 아프네요.”
“…….”
“물이라도 좀 마시고 싶은데……콜록…!”
그러면서 이사벨은 주위를 쭉 둘러보았다. 마지막에 내게 시선을 멈췄다. 그녀의 말에 옆에 대기하고 있던 시녀가 옆에 있는 물을 따르려고 할 때였다.
“물이 조금 따뜻했으면 좋을 듯합니다.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명백히 시녀에게 말하는 투가 아니었다. 그러면 명령을 할 텐데. 저건 간접적으로 내가 그런 물을 가져와 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물을 가져다주면 이 물은 너무 뜨겁고, 이건 너무 식었고, 온갖 핑계를 대며 나를 여러 번 왔다 갔다 하게 만든 후에 만족스럽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마시겠지.
그렇게 해서 내가 그녀보다 아래에 있으며. 황녀라고 해서 눈치 봐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얼마든지 자신이 무시하고 부려먹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은연중에 어필하려는 것이다.
제국의 황녀이기에 나의 눈치를 보고, 어려워하는 시녀들에게 눈으로 확인시켜 준다. 내가 스스로 자세를 낮춤으로써, 그렇게 회귀 전의 나는 이 식사 자리에서 앞으로의 내 위치를 스스로 망가뜨렸었다.
“많이 안 좋으신가 보네요.”
“그러게요. 생각보다 좀……. 콜록!”
이사벨은 말을 끝내면서 일부러 기침을 했다. 곁에 있는 시녀들이 안절부절못하는 게 보였다. 피식, 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았다.
‘나한테 하는 말이구나.’
하지만, 나는 그대로 이사벨을 무시했다. 이사벨의 속내를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그녀의 뜻대로 움직여 줄 생각 따위 없었다.
‘더 이상 시집살이 같은 건 안 해.’
지긋지긋했다. 이제 이사벨의 눈치를 보고 그녀가 은근 슬쩍한 무시를 감내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사벨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계속 식사를 이어 나갔다. 그럴수록 이사벨의 기침은 더욱 커져만 갔다. 마치 보란 듯이.
“콜록! 콜록!”
이사벨의 기침이 심해질수록 그럴수록 식사의 흐름이 끊기고 분위기 역시 점점 안 좋아졌다.
결국, 내가 고개를 들어 이사벨을 보며 말했다.
“몸이 많이 안 좋으신가 봅니다.”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이사벨이 씨익, 회심의 미소를 짓는 것이 보였다. 이제 자신의 뜻대로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물론, 그게 착각이라는 것을 곧 알게 되겠지만.
“아뇨. 괜찮…. 콜록! 하아….좀 안 좋네요…콜록…!”
“이런, 그 정도면 식사는 이만 마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콜록……. 기침이 멈추질 않네요…….”
나는 식기를 내려놓으며 곁을 지키고 있었던 주방 하녀에게 말했다.
“음식 좀 새로 갖다 줄래.”
하녀가 주방으로 들어갔다. 이사벨은 그 모습을 보더니 이번에는 살짝 물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두 사람을 괜히 걱정하게 만드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하네요.”
나는 그릇을 내 앞으로 당기며 단호하게 말했다.
“아뇨. 그게 아니라 자꾸 그릇에 튀어서…….”
내가 하녀에게 음식을 새로 가져다 달라고 한 것은 이사벨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음식에 그녀의 기침이 튀어서 식사를 하는 게 불편해서였다.
이사벨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에, 에일린…지금 그 말은 뭐죠. 설마 아픈 내게….”
이사벨의 말투가 날카로워졌다. 당황과 불쾌함을 겨우 억누르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이런, 죄송해요.”
“에일린. 앞으로는…….”
내가 꼬리를 내리는 것 같아 보이자, 다시 의기양양해진 이사벨이 내게 훈계라도 하기 위해서 말을 꺼내려고 할 때였다. 나는 그 말을 자르고 주방 하녀를 향해 말했다.
“여기 음식들 전부 새로 가져와 줘.”
“……!!”
“침이 여기저기 튀었을 텐데, 제 생각만 했네요.”
나는 이사벨을 향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다음부터는 몸이 안 좋으면 하녀들에게 꼭 얘기하세요. 하녀가 방으로 식사를 가져갈 겁니다.”
그러니 괜히 나와서 침이나 튀고, 식사를 방해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 말을 알아들은 이사벨의 눈꺼풀이 떨렸다. 하지만 내가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자 이사벨은 헤레이스를 흘깃, 바라보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사이에 음식이 새로 나왔다. 이사벨이 전혀 먹지를 않자, 헤레이스가 물었다.
“식사…더 안 하실 건가요?”
이사벨은 시큰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입맛이 영 없네요.”
“그래도 좀 드세요.”
헤레이스가 재차 권하자 이사벨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포크와 나이프를 집었다. 그러면서 빈 잔을 보고 하녀에게 말했다.
“물을 좀 가져와 줄래.”
“네.”
이사벨이 주방 하녀에게 물 잔을 가져오도록 시켰다. 헤레이스 때문에 상한 자존심이 조금은 회복됐지만, 여전히 얼굴에는 못마땅한 기색이 남아 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주방 하녀가 가져온 물 잔을 받은 이사벨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읏…!”
마치 도저히 물을 삼킬 수 없는 것처럼 힘들어하며 손에 들고 있던 물을 그대로 쏟았다. 내가 보기엔 끼얹은 것이지만, 어쨌든 명분상으론 물을 도저히 삼키지 못한 연약한 이사벨이 잡고 있던 물 잔을 놓쳐 쏟은 것이다. 하녀를 향해 실수인 척 물을 쏟았지만, 미묘한 각도로 나에게까지 물이 튀도록 손목을 돌렸다.
예전에는 이런 상황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속수무책으로 이사벨의 연기에 속아 물에 젖고, 뜨거운 스프가 쏟아져 드레스를 망치고, 손목에 화상을 입기도 했었다.
이제는 그녀의 수법을 질리도록 알고 있었다. 나는 이사벨이 물을 끼얹을 때 몸을 뒤로 뺐다. 하지만 이사벨의 바로 옆에 서 있던 하녀는 피하지 못했다.
“꺄악-!”
하녀의 외마디 비명이 식당 안을 울렸다.
“이런, 미안하구나. 손이 미끄러져서….”
이사벨이 물에 흠뻑 젖은 하녀에게 말하며 흘끗,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젖었는지 확인하는 거겠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사벨이 끼얹은 물에 젖은 사람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
이사벨이 깜짝 놀라 외쳤다.
“어머…헤레이스…! 팔이 다 젖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