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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바쁜 황녀님-24화 (24/124)

?제24화. 4장. 황궁 생활 (11)

역시나, 연회가 다가오기 전 헤레이스로부터 연락이 왔다. 연회에 참석할 예정이라는 말과 함께 입장하고 싶다는 얘기가 들어 있었다.

얼마 전, 연무장에서 루이스와의 소동 이후에 헤레이스와 만난 적은 없었다. 하지만 헤레이스는 가끔씩 이렇게 서신을 보내오곤 했다. 그렇다고 특별한 내용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그 서신에 한 번도 답신을 보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특별한 용건을 가지고 보낸 서신이었다.

‘일단 대답은 해 줘야겠지.’

나는 펜을 들어 공작가로 보낼 답신을 써 내려갔다. 답신은 정중한 인사말로 시작했다.

[잘 지내시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이번 황궁 연회에 참석하신다니 뵙게 되겠군요. 얘기하신 연회 때 입장은…….]

나는 서신을 봉투에 닫아 잘 마무리한 후, 에밀에게 건넸다.

“공작가로 보내 줘.”

“알겠습니다.”

에밀이 서신이 들어간 봉투를 들고 나갔다.

사실, 나는 황궁 연회 때 입장하는 것 외에도 고민되는 것이 더 있었다. 답신을 쓰다 보니 그 생각이 계속 올라왔었다.

처음 루이스가 황궁에서 지내라고 했을 때, 나는 잠시 황궁에 머물겠다고 했었다. 그 잠시가 사실은 길어지고 있었다. 곧 황궁 연회가 열리는데, 벌써 한 달이 지나 있었다.

이제 곧 결정을 해야 했다. 황궁에 계속 남을지, 공작가로 돌아갈지. 결국, 공작가로 돌아갈 거라면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일단 그건 연회 후에 생각하자.’

나는 일단 공작가로 돌아가는 문제는 덮어 놓고 일어났다. 루이스를 찾아갈 생각이었다. 이제 연회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루이스에게 이번 연회의 중요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

“이번 연회는 그동안 외국과 다져온 협약이 공고하다는 사실을 제국민들에게 재확인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일수록 폐하께서 자리를 지켜 그들과 어울려 주신다면, 분명 사람들의 믿음이 더욱 확고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루이스는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라는 듯 턱을 살짝 들어 올린 채 말했다. 나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연회 때 폐하께서 자리를 지켜 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어째서.”

‘그야 당연히 황궁에서 열리는 연회고. 황궁의 주인은 루이스, 바로 폐하니까요. 게다가 방금 전에 그 이유를 계속 설명했잖아요!’라는 말이 바로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5장. 황궁 연회 (1)

“외국에서도 많은 사람이 오는 중요한 연회입니다. 그 자리를 폐하께서 빛내 주셔야죠.”

“…흐음.”

대신 나는 비굴하게 루이스의 비위를 맞추며 다시 한번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루이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딱히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럴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좀 곤란한데. 루이스가 이번 연회만큼은 자리를 지켜 사람들에게 황제로서의 위엄을 보이는 것이 중요했다.

어떻게 설득하지, 고민 끝에 억지이지만 그래도 어릴 때는 몇 번 먹힌 적 있던 방법을 꺼내 들었다.

“그럼 저는 혼자 입장해야 합니다.”

내가 불쌍한 척 목소리에 힘이 없는 채로 말하자, 루이스가 살짝 반응이 보였다. 나는 더더욱 불쌍한 척 말을 이었다.

“결혼하자마자 황궁으로 돌아온 황녀가 처음으로 참석하는 연회라며 사람들의 말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틈에 저 혼자 입장을 하면…분명 사람들이 저만 쳐다볼 텐데 그 뜨거운 시선을 저 혼자서 받아야 합니다.”

내가 살짝 울먹이며 말을 하자 순간, 루이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살짝 루이스를 보니 고민하는 것이 보였다. 좀만 더하면 넘어올 것 같았다. 나는 좀 더 불쌍한 척 입꼬리를 내리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결국, 루이스가 험악한 얼굴을 한 채로 천천히 입을 뗐다. 억지로 벌린 것처럼 느껴지긴 했지만.

“알았으니까 그만해라.”

“정말인가요…?”

내가 살짝 눈동자만 굴려 루이스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루이스의 눈썹이 위로 꿈틀거렸다. 그러면서 언제든지 그의 말을 덥석 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 그러니까 그 어설픈 연기 좀 그만해.”

“…네.”

루이스의 말에 축 늘어뜨리며 앞으로 접힌 어깨는 다시 펴고, 불쌍한 책 내렸던 입꼬리도 올라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나는 앞에 있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 * *

오늘 황궁에서 연회가 열린다. 평소와는 다르게 타국에서 수많은 사절단이 올 예정이었다. 수도에서 거리가 떨어져 있어 연회에 자주 참석하지 못하는 지방 귀족들 역시 상당수가 참석할 예정이었다.

오늘 연회는 제국과 주변국의 평화 협상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제국의 모든 귀족과 주변국의 황제 혹은 황태자를 포함해 가장 많은 인원이 참석하는 연회 중 하나였다.

원래라면 이런 연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것은 오랜만에 연회에 참석하는 황제 루이스였다. 하지만 이번 연회에서만큼은 루이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결혼하자마자 황궁으로 돌아온 황녀 에일린, 바로 내가 가장 큰 관심이 될 예정이었다.

“이전처럼 해 드릴까요.”

“아니. 그때와는 다르게 할 거야.”

나는 에밀에게 어떻게 준비할 건지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에밀은 시녀들을 직접 진두지휘하며 내가 말한 그대로를 구현해 냈다.

에밀이 감격하며 말했다.

“역시 저는 아기씨를 꾸밀 때가 제일 행복합니다.”

에밀은 손재주가 뛰어났다. 보통 머리 손질이나 단장하는 것은 좀 더 어린 시녀들이 하는 법이지만, 나를 꾸미는 것에서 보람을 느끼는 에밀은 아직까지도 직접 하나부터 열까지 챙기고는 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머리는 굵게 웨이브를 만들었다.

오늘 입을 드레스는 지난번에 헤레이스와 함께 마담 세실 의상실에 가서 맞췄던 것은 아니었다. 공작가를 떠나 황궁에 머물고 있는 시기에 입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아, 따로 준비한 것이었다. 진한 파란색에 작은 보석들을 팔과 치마 부분에 포인트로 박은 것이 특징이었다. 목 부분이 파이고 어깨 부분을 강조한 드레스는, 허리까지 밀착되다가 허리 아래부터 크게 퍼지는 라인이었다.

거기에 화장은 튀지 않도록 연하게 해서 드레스가 강조되면서 얼굴은 그에 맞춘 듯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냈다.

지금 제국의 유행과는 다르게 황녀로서의 품위에 집중한 스타일이었다. 그러면서도 한껏 꾸미고 올 영애들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확실히 에밀의 솜씨가 발휘된 모습이었다.

“마음에 드세요?”

“누가 해 준 건데. 마음에 들지.”

나는 에밀을 향해 싱긋, 웃어 보이며 답했다. 연회에 참석할 준비를 하다 보니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연회장으로 향하기 전에 준비 상황을 확인했다. 연회장 안은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는 상태였다. 마지막으로 나는 외국에서 온 사절단들의 상황을 살폈다.

“외국에서 오는 사절단들은 모두 잘 도착했어?”

“네. 모두 잘 도착해서 황궁에 마련한 궁에서 휴식을 취하고 계십니다.”

마지막까지 확인을 했고, 문제는 없었다. 나는 출발하기 전에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슬슬 시간이 됐겠네.’

이제 곧 연회가 시작될 것이다.

황궁에서 여는 연회라고 해도, 보통 먼저 도착해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귀족들이었다. 그들은 서로 아는 사람들끼리 인사를 하고 간단한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사람들이 어느 정도 도착한 후에 황제인 루이스가 입장해 자리를 빛내게 된다. 그 후, 외국에서 온 사절단과 인사를 나누고 황가의 인물이 첫 댄스를 신호로 연회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릴 예정이다.

“곧 연회가 시작될 겁니다.”

에밀의 말대로 이미 귀족들이 도착하고 있을 것이다. 나도 곧 연회장으로 향했다. 이제 시작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도착해 있습니다.”

나는 바로 들어가지 않고 잠시 기다렸다. 곧 반대편에서 한 무리가 다가왔다.

“폐하.”

루이스가 연미복을 입은 채 다가오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근사해서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목까지 단추를 채운 모습이었다. 루이스는 불편한지 목 부근에 몇 번이나 손을 가져갔다. 당장이라도 단추를 모두 뜯어 버리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어느새 루이스가 내 앞에 서서 말했다.

“가자.”

“네.”

루이스가 살짝 내민 팔에 나는 팔을 둘렀다. 문지기가 우리를 보고 문을 열었다. 연회장 안에는 샹들리에와 온갖 조명으로 환하게 빛나는 공간이 펼쳐졌다.

내가 루이스와 함께 등장하자 귀족의 절반은 ‘역시나.’ 하며 감탄을, 절반은 ‘설마 했는데, 역시나.’ 하며 경악했다.

여자라면 누구나 결혼 후에 참석하는 첫 연회에서 가장 빛나고 싶어 했다.

특별한 상황이거나 신분이 미치지 못할 경우, 다른 곳에서 주최하는 연회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무리였다. 그러다 보니 보통은 결혼 후에 연회를 직접 주최하는 것이 관례처럼 굳어지게 되었다. 여자라면 누구나 자신이 주최한 연회에서만큼은 자신이 가장 아름답고, 가장 행복하고, 가장 사랑받는 모습이기를 바랐다. 그것이 사실이든 꾸며진 것이든.

과거에 나 역시 결혼 직후, 공작가에서 연회를 주최했었다. 그곳에서 나는 충분히 아름다웠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다. 하지만 가장 사랑받지는 못했었다. 사랑받지도 못하면서 행복한 모습이라니. 얼마나 모순적이고 우스웠을까.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회귀한 뒤 결혼 후 첫 연회가 오늘 열리는 것이었다. 게다가 헤레이스와 나는 각자 참석할 것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두 알아차렸을 터였다.

“헤레이스 공작님과 이사벨 부인께서 도착했습니다!”

나는 내심 헤레이스가 그의 수많은 정부 중 한 명과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의외로 이사벨과 나란히 입장했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헤레이스와 이사벨이 루이스에게 와 인사했다. 나는 그 옆에 있었다.

나와 헤레이스의 간격이 가까워지자, 귀족들이 술렁이는 게 보였다. 그럴수록 나는 헤레이스에게 시선을 두지 않았다. 만약 여기서 우리 두 사람이 대화라도 나누는 날에는 내일 대서특필 될 기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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