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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바쁜 황녀님-36화 (36/124)

?제36화. 6장. 일단 나한테 잘 해 (8)

“황궁에 좀 다녀와야겠어.”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내 말에 에밀은 바로 외출 준비를 했다. 루이스 역시 소문을 접했을 것이다. 황궁의 내정을 확인할 겸 황궁에 가서 루이스를 만날 생각이었다.

황궁에 가기 위해 공작가를 나서려고 할 때였다.

“외출하나 보네요.”

“…?”

“잠시 나와 봤는데 이렇게 마주치다니, 우연이네요.”

나는 내게 다가와 겸연쩍어하며 말하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차피 공작가 안이었다. 얼마든지 우연히 마주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이사벨은 누가 봐도 나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던 티가 났다.

‘목적이 뭐지.’

이사벨이 나를 보며 은근하게 미소를 짓는 것부터 이상했다. 나는 그녀를 유심히 관찰하며 말했다.

“네. 황궁에 잠시 다녀오려 합니다.”

“그렇군요!”

내가 황궁에 다녀온다고 하자 이사벨의 눈이 순간 반짝 빛나는 것 같았다. 은근한 기대감마저 보이는데 뭐지.

이사벨은 갑자기 내게 살갑게 행동하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내게 공작가의 권한을 빼앗겨 이를 바득바득 갈았으면서. 하루아침에 행동을 바꾼 것이다.

“잘 다녀와요.”

“네.”

나는 그대로 다시 출발하려고 할 때였다. 이사벨이 다시 나를 불렀다.

“에일린, 혹시 공작가에서 불편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해요.”

“…….”

“내가 도울게요.”

몇 번인가 말한 적 있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이사벨의 말과 얼굴만 보면 선의로 가득해 보였다. 그녀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착각할 만큼.

나는 이사벨이 한 말을 그대로 의미심장하게 돌려주었다.

“부인이 더 많아질 텐데요. 혹여라도 불편하면 얘기해 주세요.”

이제 공작가에 모든 권한은 내가 가지고 있었다. 과거와는 달랐다.

이사벨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피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살짝 물었겠지. 그녀는 아픈 것도 자신의 몸에 상처가 생기는 것도 싫어하니까.

나와 이사벨 사이에 말없이 서로의 시선이 오갔다. 약간의 정적을 끊어 내며 이사벨이 갑자기 꼬리를 내리며 호호거리며 웃었다.

“그럴게요. 부탁해요.”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이사벨은 분명 내 말에 자존심이 상했을 텐데.

황궁 연회가 있었던 후에도 이사벨은 나에 대한 것은 헤레이스에게 맡긴 채 여전히 뻣뻣하게 굴었다. 헤레이스라도 잘해 주는 것도 내게는 감지덕지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이사벨이 하루아침에 돌변하다니.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알 것 같았다.

‘아…!’

생각났다. 이사벨이 내게 갑자기 이러는 이유.

과거에 내가 공작가를 단번에 일어설 수 있게 해 주었던 것. 바로 제국에서 직접 관리하는 독점 사업권이었다.

제국에서 직접 관리한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귀족이었다. 다만, 그것에 관한 권한을 황제가 위임해 주는 것이었다.

제국에서 관리하는 독점 사업권은 보통 두 가지로 나뉘었다. 일상에 필수적인 것이기에 가격의 폭등을 막기 위한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지나친 과열 경쟁을 막기 위한 것. 사실 두 번째는 제국 초창기에 몇 번의 사태를 맞이하면서 황제가 귀족들에게서 억지로 빼앗아 온 것이었다.

그것 중 대표적인 것이 금 수입 및 유통에 관한 사업권과 희귀 광물이 나오는 특수 광산 채굴권이었다. 그중 하나인 금에 관한 독점 사업권이 곧 발표될 시기였다. 그리고 그것이 이사벨이 나에게 와서 눈웃음을 치며 내 눈치를 보게 만든 원인일 것이다.

‘드디어 현실 파악이 된 건가.’

누구한테 열쇠가 쥐어졌는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나는 그녀를 향해 형식적인 미소를 날리고 돌아섰다.

* * *

황궁에 갔을 때, 루이스는 연무장에 있었다. 평소에도 문서를 보는 것보다 몸을 쓰는 것을 더 좋아하기는 했지만, 최근 들어 루이스가 연무장을 유난히 많이 찾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루이스가 연무장에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그동안 밀린 보고들을 받았다.

나는 황궁에 올 때마다 황궁 내정을 살피는 것과 동시에 황녀의 권한으로 할 수 있는 민생 사업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있었다. 일단 루이스의 평판이 좋아지도록 해야 했다.

백성들에게 루이스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지는 방법은 역시 민생 사업이었다. 하지만 민생 사업은 결국 손해를 보는 사업이었다. 그것을 나서서 할 사람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

어느새 들어온 루이스가 물었다.

“언제 왔어?”

“요즘 연무장에 자주 가시네요.”

“몸이나 좀 풀까 싶어서.”

루이스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옆에 있는 서류를 집었다. 분명 그건 얼마 후에 발표될 독점 사업권에 대한 것일 것이다. 루이스가 서류를 남기며 무심하게 말했다.

“이제 곧 발표할 때군.”

“네.”

서류를 내려놓고 나를 향해 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건가.”

독점 사업권에 대해 내가 할 말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분명 과거에는 헤레이스를 돕기 위해 루이스에게 부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루이스의 눈치를 보며 얘기를 꺼냈다.

“없습니다. 오라버니께서 원하는 대로 하세요. 다만…….”

루이스는 이럴 줄 알았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내가 말하려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이번 독점 사업권을 선정할 때, 그 조건으로 한 가지를 내걸면 어떨까 합니다.”

모두가 원하는 독점 사업권에 민생 사업을 지원하고 관리하는 책임을 함께 주는 것이다.

내 얘기를 전부 들은 루이스 역시 나쁘지 않다며 내 말에 동의해 주었다. 민생 사업은 갑작스러운 재난이 벌어졌을 때와 같은 단기적인 상황이 아닌 이상, 직접 관리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황가에서 하는 민생 사업 역시 특정 가문에 위임을 하는 것이 편리했다.

“물론,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가문에 주어야겠지요.”

“그래야겠군.”

문제는 해 봤자 손해밖에 나지 않는 것을 믿고 맡길 가문이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독점 사업권을 주면서 민생 사업을 같이 위임하기에 적합한 가문은 딱 한 곳뿐이었다.

* * *

황궁에서 돌아온 후, 저녁 식사 자리에서 만난 헤레이스 역시 이사벨과 비슷한 반응이었다.

“황궁은 잘 다녀왔습니까.”

“네. 폐하를 만나고 왔어요.”

“…무슨 얘기를 나눴습니까.”

헤레이스가 내 표정을 살폈다. 역시…이사벨처럼 노골적이지 않을 뿐이었다. 헤레이스도 내가 루이스와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궁금해하는 게 보였다.

한동안 부담스러울 정도로 선물 공세를 퍼부었던 이유는 독점 사업권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럼 그렇지. 나는 무심하게 대답을 했다.

“딱히. 특별한 얘기는 없었어요.”

그러자 헤레이스가 내 얼굴을 살피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시선을 무시하고 식사를 이어 나갔다. 그때였다. 헤레이스가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보니 저는 부인이 좋아하는 것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가 나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그와 나는 연애결혼도 아니었을뿐더러, 결혼 전이나 후에나 서로 교류가 없었으니까. 단지 나만 일방적으로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헤레이스가 또다시 다정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말했다. 마치, 티파티 때 내가 그에게 요청해서 했던 것처럼.

“부인께서 알려 주시면 그게 무엇이든 부인께 해 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시나 근처에 고용인들이 있었다. 나는 한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공작님.”

“예, 부인.”

“이제 그만하셔도 됩니다.”

“이왕 하는 거, 확실하게 하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그가 아직까지도 이러면서 내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이유는 명확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헤레이스에게 주지 않을 것이다.

순간 그를 향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지금 그가 나에게 이러면 이럴수록 느낄 배신감은 커질 것이다.

‘뭐, 계속해 보든가.’

나는 그에게서 돌아섰다. 사업권이 자신에게 올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돌변할 것이다. 그 모습이 어쩐지 기대됐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방으로 돌아갔을 때 나는 에밀에게 조용히 물었다.

“사업권 발표가 언제지.”

언제인지 모르지 않았다. 다만 확인하고 싶었다.

“내일입니다.”

에밀의 대답에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내가 원하는 모습을 내일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헤레이스가 내게 모든 것을 맞추고 잘해 준 것에 대한 대가는 철저하게 배신당할 것이다. 공작가는 독점 사업권을 얻을 수 없을 테니까.

그 사실을 알게 되면 헤레이스도 분명 가만있지 않겠지. 지금까지 억지로 내게 잘해 주려고 맞추던 모든 행동도 끝날 것이다.

그다음에 어떻게 나올까. 내일이 기다려졌다.

* * *

역시나 아침부터 저택이 소란스러웠다. 그중에서도 특히 보좌관들의 발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나는 에밀에게 독점 사업권에 대해 물었다.

“결과가 나왔나.”

보좌관들이 저렇게 뛰어다닌다는 것은 결과를 들었거나 아니면 결과를 조금이라도 빨리 알아내기 위한 것이니까.

“아직입니다.”

“그래…?”

내 물음에 에밀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답했다.

“하지만 곧 나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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