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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바쁜 황녀님-39화 (39/124)

?제39화. 7장. 반역을 막는 방법 (2)

“…뭐? 방금 뭐라고…?”

“공작님께서 일전에 마님께 선물하신 꽃입니다.”

“내가 사 온 꽃…?”

분명, 시녀에게 처음 물었을 때는 혹시 이 꽃이 내가 사 왔던 꽃이 아닐까 하는 일말의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 대답이 나올 것이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시녀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네.”

“…어떻게 된 거지.”

분명 그때 에일린은 쓸모없다며 싫어했었는데. 그게 어떻게 여기 있는 거지. 분명 버려졌을 텐데.

시녀가 나를 속일 리 없는데도 자꾸만 확인하고 싶었다. 시녀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분명 시녀는 평소처럼 대답하는 것 같은데, 내가 느끼기에는 모든 움직임이 너무 느렸다. 마치 나를 약 올리려는 것처럼.

“마님께서…….”

드디어 시녀가 대답을 하려고 할 때였다. 순간 머릿속에 번뜩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이번에는 혹시라도 시녀가 너무 빨리 대답할까 봐 다급하게 그 말을 가로막았다.

“아니,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아.”

“예?”

갑자기 내가 말을 자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놀란 시녀가 내 눈치를 보는 게 느껴졌다. 혹시 자기가 무슨 잘못을 한 건가 겁을 먹은 모양이었다. 나는 일부러 시녀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차, 덕분에 잘 마셨군.”

내가 집무실을 나설 때 시녀가 뒤에서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게 들렸다. 꽃차를 준 시녀에게 이 정도의 배려쯤이야.

요즘 목적이 없으면 찾아가기도 힘든 에일린을 만나러 갈 명분이 생겼다. 왜 꽃을 버리지 않았는지. 심지어 꽃을 말린 이유는 무슨 의미인지. 물어볼 것이다.

* * *

헤레이스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갑자기 무슨 일로 찾아왔냐고 묻자, 헤레이스는 당당하게 물어볼 것이 있어서 왔다고 답했다. 그러고는 다짜고짜 한 자리를 차지하더니 자신이 준 꽃을 왜 안 버렸냐고 물었다.

그사이에 한 치의 틈도 없어서 ‘따지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의 입가가 자꾸 늘어지는 것을 보면 그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별 망설임 없이 대답해 주었다.

“대답이 됐나요.”

“…부인.”

헤레이스가 초점 잃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공허한 목소리와 함께.

“다시 대답해야 하나요?”

저 멍한 표정은 뭐야. 내 대답을 들은 헤레이스의 반응이 이상했다. 뭔가 충격을 받았는지 실망을 한 건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말해 주었다. 내가 꽃을 일부러 말린 이유를.

“쓸데없는 선물을 한 사람은 미워해도, 죄 없는 선물은 함부로 하지 말라고 했으니까요. 잘못 얻어걸려서 숨이 다한 꽃의 마지막쯤은 가치 있게 해 줘야 하지 않겠어요?”

헤레이스가 가져왔을 때는 몰랐는데, 그가 사 온 꽃은 대부분 식용 꽃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차와 함께 먹으면 그 향과 효과가 좋은 것들이었다. 그래서 버리지 않고 꽃을 말렸다.

“그게 전부입니까.”

“네.”

헤레이스가 실망한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다른 대답을 원했던 것 같다. 갑자기 여기까지 올 만큼 원하는 대답이 있었겠지.

하지만 나는 그가 원하는 대답 대신 다른 대답을 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

“궁금한 건 다 해결이 되었나요?”

“예? 아……. 예…뭐…….”

헤레이스의 영혼 없는 대답이 흘러나왔다. 미련과 실망이 절절히 묻어나왔다. 나는 헤레이스를 향해 인사했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궁금한 거 해결했고, 볼 일 다 봤으면 이제 그만 돌아가라는 뜻이었다.

헤레이스가 돌아가고 나 역시 돌아섰다. 테이블 위에는 이미 온기가 사라진 차가 남아 있었다. 헤레이스가 찾아오는 바람에 소중한 티타임 시간을 방해받았다.

“에밀. 따뜻한 차 좀 다시 준비해 줘.”

“예, 말린 꽃도 더 가져올게요.”

헤레이스는 대체 어떤 대답을 원했던 걸까. 지금 그가 궁금해야 할 것은 독점 사업권 탈락 이유일 텐데, 어째서 꽃차 따위에 그렇게 궁금해한 거지.

에밀이 다시 준비해 준 꽃차를 한 모금 마셨다. 여전히 향기로우면서도 입안에 씁쓸한 꽃차의 맛이 감돌았다.

* * *

오전부터 하녀들이 집 안 곳곳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녀들은 새로운 물건을 가져와 배치하고 기존에 있던 것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저택 내부를 새로 단장하는 중인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집 안 분위기도 이전과는 달라졌다.

‘나는 이런 지시를 한 적이 없는데?’

어째서 갑자기 저택 인테리어를 바꾸는 거지? 그때 마침 내 앞을 지나가는 하녀를 붙잡아 물었다.

“저택 인테리어를 바꾸는 건가?”

“네, 마님.”

“누가 그런 지시를 했지?”

사실 누군지 알고 있었다. 회귀 전에도 항상 이랬으니까.

“원래 이맘때가 되면 인테리어를 정기적으로 교체해 왔습니다.”

하녀는 어째서인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내가 알면 안 되는 일이기라도 한 것인가.

“어째서? 나는 이런 지시를 한 적이 없는데.”

하녀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그녀의 반응을 보고 주위를 둘러보니, 방금 교체한 듯한 커튼을 비롯해서 주위 장식품들이 보였다. 자잘하지만 손이 많이 가고, 그만큼 돈도 많이 드는 작업이었다.

딱히 계절이 바뀌거나 인테리어를 바꿔야 할 만큼 중요한 손님이 오는 것도 아닌데, 굳이 이렇게 바꾼다는 것은. 게다가 눈에 익은 듯한 취향.

‘이런 취향은 공작가에 한 명뿐이지.’

유난히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좋아하면서 화려할수록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취향. 젊은 날에는 마음껏 누렸겠지만, 지금은 욕심에 불과한 취향. 이건 이사벨의 취향이었다.

“마님께서 오시기 전부터 이사벨 님께서 해 오시던 일입니다.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역시나 하녀의 입에서 나온 대답도 내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역정이라도 낼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떨리는 목소리를 쥐어 짜내듯이 말했다.

‘그나저나 이사벨의 취향은 한결같네.’

이사벨은 현실감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공작가의 처지를 생각하고 자신의 위치를 자각할 줄 몰랐다. 그렇기에 공작가가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절약이라는 것을 할 줄 몰랐고, 여전히 그녀의 몸에 휘감고 있는 사치품만으로도 공작가는 더욱 힘들어졌다.

“모두 원래대로 돌려 놔.”

“네…?”

“앞으로 저택 안의 물건 하나라도 교체할 땐 나한테 허락을 받도록 하고.”

“…하지만 그러면 이사벨 님께서…….”

하녀가 난처한 얼굴을 하며 머뭇거렸다.

그녀가 끝까지 잇지 못한 말이 무엇인지 나는 알았다. 분명, 그 말을 전해 듣자마자 길길이 날뛰며 분노할 것이다. 그녀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했지만, 하녀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때는 상황이 달랐다. 그녀는 분노하며 건방진 고용인에 대한 본보기를 보이겠다며 더욱 혹독하게 굴었다. 그렇기에 공작가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이사벨의 영향력이 강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하녀를 향해 매섭게 물었다.

“그래서 내 지시를 못 따르겠다는 건가.”

이사벨이 그렇다고 해서 하녀의 행동을 이해하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 오히려 내 말을 거역했을 때가 더 무섭다는 사실을 알려 줘야지. 공작가의 실권을 잡을 뿐만 아니라, 일하는 자들에게까지 확실하게 알려 줄 필요가 있었다.

겁을 잔뜩 먹은 하녀가 횡설수설하다가 결국 겁을 먹고 고개를 숙였다.

“아,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라……. 죄송합니다. 마님.”

내 말을 듣자니 지금까지 공작가의 안주인 역할을 하던 이사벨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사벨의 말을 듣자니 현재 공작가의 안주인인 내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결국, 어느 쪽을 선택하든 다른 한쪽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받을 것이다. 분명 거기까지 생각에 미친 하녀의 어깨가 잘게 떨렸다.

“가문의 대소사를 관리하는 사람은 이사벨 부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주의하도록.”

그런 하녀가 가엽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 나는 하녀에게 다시 한번 경고를 하며 쐐기를 박았다.

만약 다음에도 비슷한 일이 생기면 그때 본보기를 보여 주면 되는 일이다.

* * *

그동안 다른 일들에 신경 쓰느라 공작가의 내정 상태에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뒤늦게 확인한 공작가의 재정 상황은 그때보다 더 나빠져 있었다. 그리고 그 원인은 이번에도 이사벨이었다.

“에밀.”

“네.”

옆에서 차를 따르고 있던 에밀이 행동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내가 서류에서 한 항목을 보며 손가락을 두드렸다.

“앨버트에게 내 말 좀 전해 줘. 앞으로 이사벨 부인에게는 내가 정해 주는 금액 이상은 절대 내주지 말라고.”

“네. 알겠습니다.”

지출 항목 중에 이사벨의 품위 유지비가 눈에 띄었다. 지나치게 많은 금액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품위란 것이 비싼 드레스와 주얼리로 생기는 게 아니란 걸 알게 해 줘야지.”

귀족들도 구하기 힘들지만 황궁에 사는 내게는 쉽게 손에 들어오는 것들이 많았다. 구하기 힘든 드레스 천도, 세상에 몇 개 없다는 희귀한 보석도 내가 원하면 언제나 내 것이 되었다.

하지만 황궁을 집으로 살기 위해서 그런 것들은 덤에 불과하다. 황궁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어릴 때부터 하루를 엄청난 숫자로 쪼개어 배우고 또 배워도 모자를 만큼 교육받았다.

품위라는 것은 몸에 밴 예절과 사람들 대하는 태도에서 나오는 것이다. 비싼 드레스 같은 것들이 품위를 높여 준다고 믿으면 믿을수록, 사람들은 그 모습에 속으로 비웃는다. 때론, 무조건 비싸고 화려한 것들로 휘감은 모습이 싸구려 옷과 장신구 못지않게 더욱 천박해 보이곤 했다.

“그게 어떤 건지 깨달아야지.”

이사벨이 한 달에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을 정한 후 문서에 작성해 에밀에게 건네줬다.

회귀 전에는 그녀가 돈이 없다는 이유로 위축되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그녀의 품위 유지비를 무조건적으로 지원해 줬었다. 그래서 그녀는 단 한 번도 참고 절제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내 시어머니로서의 최소한의 품위는 갖춰야지.”

“하지만 이사벨 부인이 얌전히 받아들이지 않을 텐데요.”

“그래 봤자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어.”

내가 봐주지 않겠다고 결심한 이상, 이사벨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내 말에도 에밀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것 같았다.

“부인의 성격을 잘 아시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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