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화. 7장. 반역을 막는 방법 (4)
헤레이스와 함께 손님을 맞이하려 하는데 자꾸만 머뭇거려졌다. 그렇게 말하는 헤레이스가 어쩐지 살짝 신난 것처럼 보였다. 씨익, 웃는 미소까지. 뭔가를 기대하는 것 같은 얼굴을 보니 ‘이게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망설여졌다.
“중요한 손님이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네.”
곧 저녁이었다. 시간이 이렇다 보니 그냥 돌려보내는 것도 보기에 좋을 것 같지 않았다. 식사정도는 해야겠지. 그렇게 대답했다.
헤레이스가 갑자기 낮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부인.”
낮고 느린 목소리는 진중하게 느껴져서 살짝 닿는 숨결마저도 무게감이 느껴졌다. 헤레이스가 고개를 살짝 숙여 나에게 눈을 맞췄다.
“…?”
조금 부담스러울 정도로 얼굴을 다가와서 내가 뒤로 얼굴을 살짝 뺐다. 헤레이스는 내 행동에 미소를 흘릴 뿐, 더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물러나지도 않았지만.
헤레이스는 여전히 내게 눈을 맞춘 채로 말을 이어 나갔다.
“손님 앞이니…우리도…….”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유난히 느리게 말하는 속도에 그의 입 모양이 선명하게 보였다.
“다정한 모습이어야겠죠.”
헤레이스가 살짝 숙이고 있던 고개를 올렸다. 자연스럽게 내 앞에 있던 그의 얼굴이 멀어졌다.
“잘 부탁합니다.”
그러더니 씨익, 웃었다. 어쩐지 의뭉스러워 보이는 미소였다.
헤레이스는 어느새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그래 봐야 세 걸음에서 다섯 걸음 정도 차이. 그 이상 벌어지는 듯싶으면 걸음을 멈추고 기다렸다.
나는 헤레이스의 뒤에서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도저히 그의 속내를 읽을 수가 없었다.
과거에 내가 당했던 일들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제안했다. 과거에 언제나 헤레이스만을 좇는 나를 무시했듯이, 나 역시 헤레이스를 무시해 주리라 다짐했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만큼 내게 잘해라. 내가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해라.
그렇게 해서 이사벨의 자존심인 공작가에 관한 모든 권한을 빼앗고, 티파티를 열어 과거에 그의 내연녀로 유명했던 영애들을 초대해 망신 주었다. 공작가의 관한 권한을 얻어 의심 없이 반역에 대한 정보를 얻고, 티파티를 통해 헤레이스와 영애들 간의 관계를 무너트려 반역을 도모하는 가문들 사이의 균열을 냈다.
마지막은 이 모든 것의 조건이었던 황가에서 위임하는 독점 사업권 등의 지원을 일절 해 주지 않는 것이었다. 과거처럼 독점 사업권으로 쌓은 재물과 권력으로 반역을 일으키는 짓을 처음부터 차단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것을 위해 내 비위를 맞추고 무조건 잘하려고 노력하던 헤레이스가 배신감을 느끼도록. 그래서 괴로워하도록.
‘분명, 과정은 어느 것 하나 잘못되지 않았는데.’
헤레이스의 행동만이 내가 예상하던 것과 너무 달랐다.
그는 사업권이 공작가에게 오지 않을 것을 미리 알았고, 그걸 대신할 사업을 찾았다. 그리고 성공했다. 결국, 나에게서는 어떤 도움도 받지 않은 것이다. 그가 더 이상 내게 굽히며 잘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원했던 독점 사업권은 이미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헤레이스는 여전히 내게 잘했다.
손님이 와서 그들 앞에서 다정한 척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그는 어쩐지 들떠 보였다.
이런 식으로 내 마음을 돌려서 뭔가를 노리는 건가. 아니면 나와 헤레이스가 사이가 다정해 보이는 것만으로도 내가 알지 못하는 헤레이스의 이득이 있는 것일까.
‘대체 나하고 뭘 하려는 거지.’
나는 헤레이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 * *
응접실에 있는 손님은 뉴튼 백작 부부였다. 올리비아의 부모이기도 했다.
‘두 사람이 갑자기 무슨 일이지?’
뉴튼 백작 부부는 나와 교류가 있었고, 헤레이스와도 교류가 있었다. 방문 자체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찾아올 일이 있었나. 그것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다.
“어서 오세요.”
“부인, 오랜만이에요.”
간단한 인사를 하자마자 저녁 식사가 준비되었고, 나와 헤레이스, 뉴튼 백작 부부가 함께 식사를 했다.
“요즘 공작 부부에 대한 얘기가 많이 들리더군.”
뉴튼 백작의 말에 헤레이스가 뻔뻔하게 대답했다.
“이렇게 소문이 날 줄은 몰랐습니다.”
소문이 날 줄 몰랐다니. 전부 소문을 내기 위해 일부러 한 행동들이었으면서.
“하하! 부부 사이가 좋은 건 아무리 소문이 나도 좋은 일이지!”
“그럼 앞으로 더 노력해야겠군요.”
뉴튼 백작의 호쾌한 말에 헤레이스가 맞장구치며 나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눈을 사르르 접으며 웃었다. 오히려 깜짝 놀라고 긴장하는 것은 내 몫이었다. 헤레이스는 지금 이 대화를 즐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와 헤레이스의 얘기는 얼마 하지 않고 지나갔다. 그 후에 나오는 얘기들을 들어 보니 이번에 헤레이스가 하는 세공 사업에 관한 내용이었다.
“생각보다 수완이 좋더군. 허허.”
“도와주신 덕분에 수월했습니다.”
“이 정도야 뭐. 하하!”
뉴튼 백작은 헤레이스의 아버지, 선대 공작과 동년배였다. 헤레이스가 어릴 때부터 교류가 있었기에 공작위를 물려받은 이후에도 두 사람의 관계는 달라지지 않았다. 뉴튼 백작은 여전히 친구의 아들처럼 헤레이스를 대했고, 헤레이스 역시 그를 존중하는 자세로 대했다.
‘생각해 보면 두 사람은 이상하게 사이가 좋았었지.’
뉴튼 백작가는 대표적인 황제파의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내가 어릴 적에 올리비아가 나의 놀이 동무가 되어 황궁에 들어오기도 했었던 것이고.
하지만 헤레이스는 대표적인 귀족파의 가문이었고 결국 반역까지 저질렀다. 그런데도 두 가문은 사이가 좋았다.
저녁 식사 자리가 마무리되고, 뉴튼 백작 부부가 돌아가는 것을 직접 마중했다. 백작 부인이 내 손을 꼭 잡으며 미소를 지었다.
“덕분에 즐거웠어요.”
백작 부인의 미소는 인자해 보였다. 그녀는 웃을 때 눈가에 보기 좋은 주름이 잡혔다. 백작 부인은 나이를 먹었다며 그 주름을 싫어하지만, 사실 이렇게 보기 좋은 주름을 가지는 것은 그동안 그녀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보여 주는 것이기도 했기에 나는 그녀의 주름을 좋아했다.
“식사가 입에는 맞았는지 모르겠어요.”
“너무 맛있었어요.”
의례적이지만 진심이 묻어난 대화였다. 뉴튼 백작이 뒤에서 헛기침을 하는 게 보였다. 나와 백작 부인의 인사가 길어지자 백작 부인에게 눈치를 주는 것이었다. 그녀는 아쉽다는 듯이 붙잡고 있던 내 손을 다시 한번 감싸듯이 잡았다.
“공작 부인, 오늘 즐거웠어요.”
“저야말로 이렇게 뵐 수 있어서 좋았어요.”
“그럼 이만 가 볼게요.”
백작 부인은 돌아서서 마차로 향하려다 말고 나를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활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참, 오늘 초대해 줘서 고마워요.”
“네…?”
“이제 정말 갈게요.”
나는 백작 부인의 말에 당황해서 제대로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백작 부인은 이미 뉴튼 백작에게로 향했고, 마지막 내 물음표 가득한 말을 듣지 못했다.
백작 부부는 마지막으로 나와 헤레이스에게 간단한 눈인사를 하고 나서야 마차에 올랐다.
마차는 어느새 출발해서 공작가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멀어져 가는 마차를 멍하니 바라보며 백작 부인이 한 말을 곱씹었다.
‘이게 무슨 소리지.’
그녀는 분명 내게 오늘 초대해 주어서 감사하다고 했다. 그것도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백작 부부의 마차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자, 보좌관과 뭔가 대화하고 있는 헤레이스가 보였다.
‘초대…? 누가? 언제?’
오늘 백작 부부의 방문은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보통 방문하겠다는 연통 없이 찾아오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지만, 귀족 간의 예절에도 예외는 존재했다. 백작 부부는 이전부터 친분이 있고 최근에 사업도 함께 했으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백작 부부의 말에 따르면 이건 사전에 약속된 방문이었던 것이다. 저절로 헤레이스에게로 시선이 돌아갔다. 내가 아니라면 초대할 사람은 헤레이스와 이사벨밖에 없었다. 이사벨일 리는 없으니 역시 헤레이스였다. 그래 놓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연기한 것이다.
‘속셈이 뭐야?’
헤레이스의 행동은 괴상하다는 말 외에는 표현할 수 없었다. 그때, 헤레이스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의심쩍은 시선을 보내자 고개를 살짝 기운 헤레이스가 갑자기 활짝 웃었다.
헤레이스는 일부러 백작 부부를 초대했다. 정말로 그의 사업 때문에 필요하기에 초대를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방문을 핑계로 다 함께 하는 식사 자리를 만든 것은 분명했다.
‘그런 행동을 해서 얻는 게 뭐지.’
그는 식사 자리에서 종종 내게 다정한 행동을 했다. 스테이크를 굳이 썰어서 준다거나, 비어 있는 잔에 와인을 직접 따르거나, 사소한 것들까지 신경 썼다. 그런 행동들은 이전 티파티에서 영애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 내가 헤레이스에게 요구했던 것들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뉴튼 백작 부부에게 우리가 다정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었나. 백작 부부의 호의를 얻으려고 한 건가.
나와 올리비아의 각별한 관계만큼이나 백작 부부와도 인연이 깊었다. 그러니 우리 두 사람이 잘 지내는 모습을 보면 백작 부부가 헤레이스를 그만큼 좋게 보긴 할 것이다.
하지만 오로지 그것을 위해서라고 생각해도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이미 헤레이스 공작과 뉴튼 백작 역시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고, 사업은 이미 서로 협약을 맺은 후였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헤레이스가 거짓말까지 하면서 식사 자리를 만든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식사 자리는 지극히 평범했다. 별다른 것도 없는 왜 갑자기 찾아왔다는 거짓말을 하면서 그런 식사 자리를 만든 거지.
‘설마 나와 함께 있는 자리를 만들려고…….’
나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하지만 최근 헤레이스의 행동을 떠올리면 그것 말고는 별다른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