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화. 7장. 반역을 막는 방법 (8)
열쇠는 나한테 있는 것 같은데, 열쇠를 맞는 구멍에 제대로 돌리는 법을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뭐가 좋을까.”
내가 혼자 중얼거리는 모습을 본 에밀이 차 위에 꽃을 하나 더 넣으며 말했다.
“꽃차는 보기에 예뻐서 마시기 전에 눈이 한 번, 꽃 향에 다시 한번, 그리고 맛에 한 번 즐거우니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니 무슨 일인지 몰라도 인상을 풀라는 뜻이었다.
‘지금 그런 게 중요해?’
나는 복잡한 얼굴로 에밀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에밀이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에밀의 미소는 의미심장했다. 뭔가 나한테 전달하는 것도 같고. 저 웃음은 무슨 의미지? 그녀의 웃음이 지닌 의미를 파악하려고 할 때였다.
“아…!”
에밀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덕분에 좋은 핑계가 떠올랐다.
‘역시, 에밀!’
에밀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주고 싶었다! 나는 눈을 빛내며 에밀에게 말했다.
“에밀. 다음에 공작님하고 있을 때……,”
“꽃차로 가져가겠습니다.”
에밀이 내 속을 읽고 있다는 것처럼 씨익, 웃었다.
어차피 헤레이스는 내게 적극적으로 다가오고 있으니, 내가 꽃차를 핑계로 먼저 미끼를 던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에밀의 미소에 화답하듯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
헤레이스와 식사 후 간단하게 티타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헤레이스 역시 내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뭔가 말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말할 듯 말 듯 했다.
‘뭐지?’
오늘따라 헤레이스의 행동이 달랐다. 그러다 보니 나 역시 처음 계획했던 말을 쉽사리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헤레이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음부터는 좀 더 마음에 드는 것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그는 여전히 내가 그에게 받은 모든 선물을 거절한 것을 신경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과거에 나 역시 그에게 많은 선물을 했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처럼 아무런 반응 없이 무심했다. 마치 지금 내가 그러듯이. 지금의 나는 헤레이스가 어떤 선물을 가져와도 어떤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
‘그때 헤레이스도 이랬던 건가.’
내가 그에게 과거 내가 겪은 것들을 되돌려주려는 행동에, 오히려 내가 그때의 헤레이스의 입장을 알 것 같았다.
‘웃기네.’
그리고 비소가 흘러나왔다. 헤레이스에게 하는 것인지 나에게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하지만 지금 이렇게 감상에 빠질 때가 아니었다. 나는 얼굴을 가다듬고 찻잔을 매만지며 말했다.
“사실 꽃 선물도 마음에 들었어요.”
“네…?”
내 말에 헤레이스가 놀란 듯 눈이 커졌다. 지난번에 내가 냉정하게 말했었으니까 그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럴수록 나는 수줍은 듯 고개를 살짝 돌리며 말을 이었다.
“처음엔 당황해서 핑계를 대긴 했지만.”
일단, 헤레이스가 꽃 선물을 했을 때 차갑게 거절한 것이 사실은 진심이 아니었던 것처럼.
“이렇게 말리고 나니 꽃 향이 은은하게 감돌아서 마실 때 기분이 좋아져요.”
찻잔을 들어 입가에 대어 그 향을 은은하게 맡으면서 기분 좋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런 다음 헤레이스와 눈을 맞추면서 활짝 웃으며,
“게다가 예쁘잖아요.”
“…!!”
“마실 때마다 생각나기도 하고…….”
마지막은 일부러 말을 흘렸다. 마실 때마다 무엇이 생각나는지 상상에 맡기기 위해. 헤레이스의 반응을 보니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하는 거 맞나.’
헤레이스에게 이렇게 말하기 전, 그에게 어떤 식으로 어떻게 말을 할지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상상해 봤다. 혹시라도 당황해서 실수하지 않도록. 하지만 그래도 망설여졌다. 오히려 더 이상하게 보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입 밖으로는 말이 계속 나왔다. 말하면서도 스스로 신기해할 정도로.
“…….”
역시나, 헤레이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설마 당황한 건가. 아니면 내 말을 의심하는 건가? 그의 반응을 살폈다. 그러면서 나도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점점 의심이 생기려고 할 때였다.
헤레이스가 당황하는 것이 보였다. 갈 곳 잃은 눈동자, 찻잔을 제대로 잡지 못해 더욱 당황하는 모습까지. 그 모습을 보니 일단 출발이 나쁘지 않다는 확신이 들었다.
천천히 그에게 호의를 보이면서 다가가서, 조금씩 그의 속내를 알아볼 것이다. 그의 마음을 돌리는 게 좋을지, 아니면 헤레이스와의 관계를 통해 반역의 흔적들을 찾아내는 것이 좋을지는 그다음 문제였다.
당황해서 얼굴까지 붉어졌던 헤레이스는 어느새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러면서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입니다.”
헤레이스는 내 말 몇 마디, 작은 행동에도 깜짝 놀라며 눈에 띄게 동요했다. 그러면서 얼굴일 붉어지곤 했다. 언제나 무심하게 내 앞에서 고개를 돌리던 모습만 보던 나에게는 낯선 얼굴이었다.
그래도 일단, 헤레이스가 넘어온 것 같으니 나쁜 상황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의도한 대로 흘러간다는 것이니까.
* * *
저녁 티타임에서의 효과는 확실했다. 헤레이스는 바로 그다음 날 내게 선물을 보내 왔으니까. 게다가 지난번과는 다르게 나름의 발전이 있었다.
꽃은 보기에도 예뻤지만, 각각의 기능이 있었다. 꽃차로 만들 수 있는 식용 꽃과 특유의 향기에 향수나 방향제로도 많이 사용되는 꽃이었다. 일부러 이런 꽃들로만 고른 것 같았다.
“감사해요.”
헤레이스는 내가 웃으며 감사하다고 할 때 입이 귀에 걸릴 것 같았다. 입이 찢어질 것처럼 좋아하는 모습에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헤레이스가 돌아가고 공작가의 내정을 확인하고 있을 때였다. 앨버트에게서 전혀 생각하지 못한 얘기를 들었다. 너무 놀란 나는 앨버트에게 되물었다.
“뭐…?”
하지만 몇 번을 되물어도 앨버트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공작가의 영지에 식용이 가능한 꽃을 비롯하여 실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꽃들을 재배하기 시작했습니다.”
헤레이스는 선물로 끝내지 않고 그것을 사업으로 연결했다. 꽃을 재배하는 것, 그것은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한 다양한 효과를 창출한다.
과거에도 이런 사업을 하는 가문이 있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모두 멍청한 짓이라고 비웃었다. 꽃은 보석이 아니었다. 예쁜 것은 잠깐일 뿐 얼마 가지 못하고 시들었다. 게다가 꽃을 먹는다고 감자나 고구마처럼 배가 부르지도 않았다. 보석처럼 귀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영지민들의 굶주림을 채워 주지도 못하는. 예쁘기만 하면 쓸모없는 것, 그것이 사람들이 판단하는 꽃의 존재였다.
하지만 꽃이 만발하고 난 후 상황은 반전됐다. 꽃을 재배한 후 그대로 공급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던 것이다. 꽃차 혹은 약재로 만들어지고, 향이 좋은 것은 향수나 방향제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말린 꽃은 인테리어 용으로 취급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영지민들을 고용해 그들에게 수입원을 제공했다. 꽃은 보석이 아니지만 그래도 비쌌다. 그만큼 영지민들에게 돌아가는 것 역시 많아졌다.
게다가 그 사업은 뜻밖의 효과가 더 있었다. 만발한 꽃밭. 그곳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었다. 찬란하게 펼쳐진 꽃밭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꽃이 가장 만발한 계절인 봄에 공작가의 영지를 일부러 찾는 사람들의 수가 급증했다. 마을 자체가 살아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결국 처음에 비웃던 귀족들이 하나둘씩 따라 했었지.’
그러니 헤레이스의 이번 사업 역시 성공할 것이다. 그것도 대단히.
그런데 그걸 헤레이스가 어떻게 알았지? 정말 단순히 내가 꽃 선물을 좋아해서 생각해 낸 걸까?
헤레이스는 과거에 철저하게 자신을 숨겼다. 과거에는 내가 모든 지원을 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이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공작가를 지탱하기 위해서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작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헤레이스에게 놀랄 때가 많았다. 그는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는 결단력도, 돈이 되는 사업을 알아보고 밀고 나가는 힘도 대단했다.
헤레이스와 저녁 식사를 할 때, 나는 살짝 떠보듯이 헤레이스에게 꽃 사업에 대해 얘기했다.
“이번에 영지에 꽃을 재배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운 좋게도 영지는 언제나 온화한 날씨를 유지해서 꽃을 재배하기 딱 좋은 조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온실도 만들어 기온에 맞지 않는 것도 재배할 생각입니다.”
헤레이스는 사업에 대해 여러 가지 설명을 했다.
그는 최대한 나와 많은 얘기를 하고, 함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내가 아직 뭔가를 제대로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모두 털어놓았다. 덕분에 나는 그에 대한 것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알게 되었다.
이것저것 얘기하던 헤레이스가 갑자기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나를 불렀다.
“부인.”
내가 그를 바라보자, 대단한 용기를 내는 것처럼 결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헤레이스가 천천히 입을 뗐다.
“나중에 꽃이 피면…같이 보러 가지 않겠습니까.”
헤레이스는 마치 사랑을 고백하는 사람처럼 수줍어하고 있었다. 꽃이 피면 같이 보러 가자니. 공작가의 영지. 몇 번이고 간 적 있지만, 결코 좋은 기억은 단 하나도 없는 곳이었다.
헤레이스가 말했다.
“분명 아름다울 겁니다.”
나는 순간 망설여졌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가 기뻐하도록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나와 헤레이스가 그 꽃을 함께 보러 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해야 했다. 결국, 나는 미소를 살짝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네.”
헤레이스는 마치 프러포즈를 승낙 받기라도 한 것처럼 활짝 웃으며 기뻐했다.
헤레이스는 나와의 미래를 그렸다. 그리고 나는 헤레이스와의 끝을 그렸다. 우리 두 사람 사이에서 절대 좁혀질 수 없는 차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