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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바쁜 황녀님-47화 (47/124)

?제47화. 7장. 반역을 막는 방법 (10)

“기존에는 그쪽과 거래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에 비밀리에 접촉을 하더니 최근에는 거래 횟수가 크게 늘었습니다.”

“갑자기 필요한 게 생겼다는 거네.”

갑자기 필요한 물건이라.

크레톤 왕국은 작지만 강력한 군사력으로 유지하는 나라이기도 했다. 결국, 크레톤 왕국의 상단이라는 것도 왕국의 산하에서 관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곳과 갑자기 거래량이 늘었다는 것은 하나밖에 생각할 것이 없었다.

“앞으로 더 자세히 관찰해 줘.”

“네, 알겠습니다.”

내가 과거로 회귀한 후, 지금까지 조용했던 반역의 세력이 드디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빠르건 느리건 이제부터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긴장을 놓지 말고 상황을 예의 주시해야 했다.

과거에 반역이 진행된 과정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게 아쉬웠다. 그 상황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지금 이렇게 불안해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어쨌거나 알고 있는 몇 가지 정보로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

“일단 이 정도로 된 건가.”

에밀의 보고서를 덮었다. 후원을 좀 걸으면서 머리를 정리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였다. 에밀이 말을 이어 나갔다.

“아직 하나…더 있습니다.”

“하나?”

그게 뭐지.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에밀이 이번에는 얇은 서류를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서류를 내미는 에밀의 얼굴이 심상찮았다.

에밀이 내민 얇은 문서를 살펴보았다. 한 장을 넘기고 다시 한번 넘기자 끝이었다. 고작 3장이 전부인 문서. 그런데 어쩐지 정리된 문서 위에 다른 색으로 표시해 놓은 것들이 눈에 띄었다.

“이건…….”

나는 문서에서 에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문서의 정체를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문서에 적혀 있는 글자와 숫자들이 익숙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공작가의 내정을 정리한 거네.”

“맞습니다.”

이것 역시 꾸준히 확인하는 것이었다. ‘이걸 왜 주는 거지?’ 하며 확인했을 때였다.

“근데 여기 표시해 놓은 것들은 뭐지.”

“그건…….”

에밀이 내민 얇은 문서는 공작가의 내정을 간략하게 정리한 것이다. 문서는 대부분 숫자로 가득했다. 그중에 눈에 띄는 것은 에밀이 따로 표시해 놓은 부분이었다. 표시가 되어 있는 곳마다 숫자가 맞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오류입니다.”

“오류…?”

내가 되물었다. 에밀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 심각한 얼굴로 말을 이어 나갔다.

“적혀 있는 숫자와 실제로 확인해 본 것들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월마다 정리하는 문서에 오류가 계속 발생하고 있고요.”

“…단순한 실수는 아니니까 에밀이 정리한 거겠지.”

“몇 번이나 확인해 봤습니다.”

나는 문서에 표시되어 있는 것들을 다시 한번 꼼꼼하게 확인했다. 에밀이 아니라면 놓쳤을 만큼 잘 만들어진 문서였다.

나는 에밀이 표시한 것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을 가리키며 물었다.

“여기 나와 있는 차액의 용도는?”

에밀의 말대로 분명 내게 보고하기 전까지 그녀는 수차례 확인을 거듭했을 것이다. 혹시 자신이 실수한 부분은 없는지. 아니면 무슨 다른 문제가 있는 것인지.

하지만 결국 내게 이 문서를 보고했다. 그건 확신이 섰기 때문이다.

“지금 알아보고 있는 중이지만, 자세한 사항은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

“곧 알아내는 대로 다시 보고하겠습니다.”

“응, 부탁해.”

에밀이 물러났다.

나는 다시 한번 문서를 확인했다. 에밀이 건넨 문서는 이중장부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몰래 자금을 빼돌려 다른 곳에 사용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문서에 따르면 그 차액은 공작가의 1년치 예산이 넘을 정도로 큰 금액이었다.

‘이 정도의 금액이 필요한 곳이라.’

지금 공작가의 내정은 내가 쥐고 있었다. 가계 상황이 어떤지를 비롯한 가문에서 흐르는 돈의 흐름을 알 수 있었다. 그건 이사벨의 기를 눌러 주기 위해서였던 것도 있지만, 공작가의 자금 유통을 파악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이건 공작가의 재정 상태를 확인할 때 전혀 본 적 없는 내용이었다. 거기에도 드러나지 않았던 예산. 즉, 헤레이스가 따로 관리하는 것이었다. 내가 알지 못하도록 한 것이겠지.

그레이스에 이어 헤레이스까지 마치 계획한 것처럼 흐름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변화가 생긴다는 것은 그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인다는 뜻이었고, 그건 결국 반역이었다.

뭐지, 이 허탈함은. 어쩐지 기분이 나빴다.

‘왜…?’

왜 이런 일로 기분이 싱숭생숭한 거지? 내가 기분이 왜 나빠야 하지?

어차피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두 눈으로 목격하고 두 손으로 느끼고 온몸으로 부딪혔던 일이다. 그런데 이 새삼스러운 기분은 뭘까.

“하아…….”

한숨이 나왔다. 마른세수를 하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지금은 나와 헤레이스가 겉으로지만 가장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때였다. 그럴 때 변화가 시작되었다.

생각이 복잡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잠시 나와서 주변을 걷고 있을 때였다. 하필이면 헤레이스가 나를 불렀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부인. 이 시간에 왜 나와 있습니까.”

“…….”

“혹시 어디 몸이 안 좋은 건가요.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헤레이스가 다가왔다. 그러고는 걱정하는 목소리로 내 안색을 살폈다.

나는 그런 헤레이스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의 표정, 목소리, 몸짓 어느 것 하나 가짜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공작님께서는요.”

“일이 좀 많아서요.”

과연 그 일이 무슨 일이었을까. 공작가의 일일까. 아니면……. 생각이 끊임없이 흘렀다.

그때였다. 헤레이스가 내 앞에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말했다. 의미심장한 듯한 미소를 씨익, 지으면서.

“혹시 잠이 안 오는 거라면…….”

“?”

“제가 재워 드릴까요.”

헤레이스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는 여전히 장난스러우면서 다정했다. 이런 식으로 나를 속여 온 거였나.

잠시 머리를 식히려고 나온 산책이었는데 오히려 더 복잡해졌다. 나는 그만 방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나는 살짝 몸을 돌려 말했다.

“인제 그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같이 갈까요.”

나는 대답 없이 돌아섰다. 지금은 그를 상대해 줄 감정의 여유가 없었다. 그가 의아해하는 것이 보였지만, 나는 모른 척 돌아섰다.

내가 왜 기분이 이렇게 복잡 미묘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이번에도 헤레이스에게 속을 뻔했다. 내 앞에서는 나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척 행동하면서 뒤에서는 나와 루이스의 뒤통수를 치기 위한 반역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뻔뻔한 얼굴을 하고서!

‘그럼 그렇지.’

결국 헤레이스가 나를 좋아한다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역시나 헤레이스가 달라졌을 리 없었다. 상황에 따라 변화로 보이더라도 결국, 헤레이스였다. 과거에 나를 배신하고 루이스를 죽인.

나는 지금까지 말도 안 되는 고민과 혼란을 겪은 것이었다. 웃는 얼굴로 내 뒤에서 착실하게 준비하고 있는 헤레이스에게.

입술이 자꾸만 파르르 떨렸다.

* * *

아직은 이른 오전이었다. 이제 아침 식사를 마무리했을 뿐인데, 올리비아가 벌써 찾아왔다.

“올리비아 님께서 오셨습니다.”

“벌써?”

방문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나의 연락을 받자마자 올리비아가 찾아온 것이다. 나는 반갑게 그녀를 맞이했다.

“에일린!”

“올리비아. 와 줘서 고마워.”

올리비아가 시원하게 웃으며 말했다.

“당연하지. 누구 부탁인데.”

그 모습이 유난히 반가웠다. 내 부탁에 한달음에 달려와 준 것이 고마웠다.

에밀이 곧 차와 함께 간단한 다과를 가져왔다. 짧은 안부를 묻고 난 후, 올리비아가 진지하게 물었다.

“에일린,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놀러 오라며 보낸 연락이었지만, 올리비아가 보기에 갑자기 와 달라고 한 내 연락이 아무래도 걱정됐나 보다. 하지만 원래 올리비아에게 하려고 했던 말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헤레이스의 마음을 이용할수록 마음 한 편에서는 양심에 찔렸다. 그때 올리비아가 보낸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해야 한다는 편지는 마치 나를 옆에서 지켜보기라도 한 것 같은 말이었다. 그래서 올리비아에게 물어볼 것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어제 오후까지는.

하지만 지난 밤사이에 사정이 달라졌다. 헤레이스가 뭔가 남모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정황을 포착했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반역을 위해 자금을 따로 모으는 것일 확률이 높았다. 포장에 불과할지라도, 과거와는 달리 나와 헤레이스의 사이가 좋은 이 상황에서마저도.

결국, 그는 과거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뜻이었다. 과거와는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모두 착각에 불과했던 것이지.

내가 다른 생각에 빠져 대답을 하지 못하자, 올리비아가 다시 한번 물었다.

“혹시…지난번에 얘기했던 거랑 관련이 있는 거야?”

“…….”

“역시…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

올리비아가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며 물었다.

“소문이랑은 뭔가 다른 거지.”

올리비아가 조심스럽지만, 확신을 가지고 물었다. 짐작하고 있는 것이 있다는 것처럼.

올리비아가 얘기한 소문이라는 것은 그동안 내가 일부러 만들어 놓은 것들이었다. 거기에 소문을 접한 사람들의 반응이 섞여서 생긴 말들.

결혼 전, 일방적인 관계로 사람들은 나와 헤레이스의 결혼생활이 불행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결혼 직후, 내가 바로 황궁으로 돌아가자마자 사람들은 더더욱 확신을 가졌다. 그중에서는 나와 헤레이스를 두고 내기를 한 자들도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내가 황궁에서 공작가로 돌아오자 모든 것이 돌변한 것이다. 갑자기 헤레이스가 사람들 앞에서 내게 애정을 표현하고 내연관계를 정리하더니 나와 헤레이스의 관계가 역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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